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57)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57화(57/157)
사진 작가를 찾아서 (9)
엘데르 대륙인들은 다신교를 믿었다.
다산과 풍요의 신, 건축의 신, 날씨를 관장하는 신, 역병을 몰고 다니는 신, 전쟁의 신, 동물 신, 일몰의 여신 등···
그곳엔 무수히 많은 신들이 있었다.
그중 태구가 믿고 속한 곳은 헤스티아 교단. 치유와 빛을 상징하는 곳이리라.
헤스티아 교는 제국과 대부분 왕국이 국교로 삼고 있었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제국의 황제도 성자와 교황 앞에선 머리를 숙여야 했다.
그만큼 헤스티아 교단의 영향력은 대단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른 교단을 박해하지 않았다.
물론 사악한 신을 믿는 사교도들에겐 가차 없었지만, 그 외 다른 신과 신도들은 존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이 실재하는 것처럼 다른 신들 역시 실재하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직접 따로 뵌 적도 있었으며, 마왕을 퇴치할 때 협력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
태구는 그 옛날 마주했던 신의 파편을 보고 있었다. 정령왕의 파편이었다.
이곳에서는 산신이라 불리며, 저쪽 차원에서는 정령이라 불리는 존재.
동물의 형상으로 혹은 나무나 돌에 깃들어 산을 지키는 중하급 정령
그것이 생명을 다한 채 쓰러져 있었다.
본래라면 정령계로 돌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언대 정령은 죽은 모습 그대로 땅에 얽매여 있다.
몸체 위에 꽂힌 사특한 말뚝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할파스.’
마경에 서식하는 새과 악마, 녀석의 짓이었다.
놈은 중급 정령의 혼을 물질계에 묶고 그 기운을 야금야금 쪼아 먹고 있었다.
정령과 나름 치열한 공방을 벌였는지 놈의 상태도 정상은 아닌 듯 보였다.
너덜거리는 검은 날개, 부러진 부리에서 새어 나오는 사특한 연기, 군데군데 후벼 파진 살점까지.
녀석은 볼썽사나운 꼴을 하고 있었다.
‘저러니 단번에 정령의 기운을 삼킬 수 없었던 거지.’
뭐든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이니까. 심지어 아플 때는 물만 먹어도 체하는 법이다.
아무튼 잡스러운 망령들이 설치고 다닌 이유도 다 저 녀석 때문일 터.
태구는 그런 원흉과 시선을 마주했다.
놈은 퍼석한 검은 깃털로 제 몸을 둘둘 감싼 채 정령 몸체 위에 걸 터 앉아 있었다.
후벼파진 살덩이를 숨기고 싶어 하는 듯 보이지만 태구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그래. 인간아, 날 찾은 이유가 무엇이냐. 내 귀여운 하인은 왜 죽였지? 혹 그 자리를 대신하고 싶었던 건가?”
성치 않은 몸을 한 녀석이 태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같잖은 거들먹에 태구는 픽 웃으며 녀석을 불렀다.
“할파스.”
“!”
그 말에 순간 움찔거리는 할파스였다.
남자의 입에서 제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태구는 개의치 않고 질문을 이었다.
“이곳엔 어떻게 온 거냐? 또다시 마계 문을 연 건가? 너희들을 이끄는 마왕은 분명 죽었는데··· 대체 누가 그 문을 열었지?”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인간, 대체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곳 인간들은 우리를 모를 텐데, 게다가 인제 보니 더러운 기운 갖고 있···”
근데 저 새끼가 지금 누구 보러 더럽다는 거야.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할 것이지.
순간 태구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할파스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끄아악!”
꽁꽁 감싼 검은 깃털 사이로 은빛 도끼가 꽂혔기 때문이다.
서걱! 뼈를 가르는 묵직한 손맛이 도끼를 타고 흘러들어온다.
대수롭지 않게 휘두른 도끼질 한 번에 놈의 날개가 꺾였다. 검은 깃털이 후두두 공중에 흩날렸다.
물론 죽이진 않았다. 녀석에게 들어야 할 말이 있었으니까.
“너보다 더러울까. 한 번만 더 지껄여 봐. 질문은 나만 하는 거야. 넌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면 되고. 그래서 어떻게 왔다고?”
태구가 다시 물었다. 할파스는 대답 대신 황급히 수인을 맺었다. 과연 매를 버는 놈이다.
“브락티사우···”
허나, 태구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놈이 무얼 하려는지 알아챘기 때문이다.
떠도는 영혼들을 불러 모아 저를 상대하려는 생각이겠지. 어디 저것들 한두 번 상대해 보랴.
‘그래. 다 불러라, 불러. 그럼 나야 좋지. 한 번에 그분 곁으로 보낼 수 있으니. 여기 어디서 짱 박혀 있어 봤자 산 자만 괴롭힐 텐데. 온 김에 깡그리 정리하고 가자고.’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은 태구는 놈이 주문을 외우길 기다려 주었다. 그러고 있자니 묘한 고양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러고 보니 악마를 도륙하던 그때로 돌아온 것만 같구나.’
비록 그때와 비한다면 형편없는 육신을 갖고 있으나 두려울 건 없었다.
휘이이이——
찰나의 순간, 예민한 후각이 시취를 잡았다.
곧이어 땅이 울렸고 망자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그것들은 머지않아 이곳까지 들이닥칠 것이다.
기다려 주는 건 여기까지다.
생각은 곧 현실로 반영되었다.
수인을 끝맺고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는 할파스의 품으로 파고든 태구.
감히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였다.
그렇게 번쩍이는 도끼가 꺾인 날개를 찢고 단단한 주먹이 놈의 두개골을 흔든다.
그 두 수에 놈의 안면이 박살 났다.
“커헉! 비, 빌어먹을··· 자, 자식들아. 죽···여, 당장 죽···여.”
태구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앞서 말했지만, 놈은 하급 악마. 과거였다면 태구의 손짓 한 번으로 타 죽을 존재였다.
그런 놈이 검은 뇌수를 쏟아내며 비명을 내지른다.
이어서 죽은 정령 옆으로 쓰러지는 할파스.
세로로 된 녀석의 동공이 좌우를 살핀다.
내뺄 생각이겠지. 허나, 퇴로는 없다.
날개 꺾인 새는 날 수 없는 법이니까.
태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쓰러진 놈의 발을 잽싸게 낚아채 꺾었다.
“끄아아아아악—!”
그리고는 정령의 몸에 박힌 말뚝을 뽑아내 찢어진 놈의 날갯죽지와 몸통에 쑤셔 박았다.
축성을 마친 말뚝에서 눈부신 광채가 휘몰아쳤다.
“끄아아아아, 아아악! 죽, 죽여 죽여이아아아!”
필사적으로 저항해 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놈은 우리에 갇힌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그제야 태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몸을 돌렸다.
놈이 친히 마련해 준 밥상을 먹을 차례였으니.
[컹컹, 컹컹]“그래. 얼마나 왔는지 한번 보자고.”
썩어 떨어진 방갈로 문짝 넘어.
고인 물을 헤집고 나오는 망령들이 보인다.
***
같은 시각.
낚시터 부근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아물아물 피어오른 아지랑이는 곧 사람의 형태를 갖추었다.
저승의 문을 넘어온 차사들이었다.
머리가 셋 달린 지옥의 파수견도 함께 왔다.
“이, 이게 다 무슨···”
“허어.”
현계에 도착한 그들은 하나같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상치 못한 장면을 목도한 탓이었다.
그간 놓친 영혼들이 모두 다 여기 숨어있었던가. 그 정도로 미수거 영혼들이 득실거리는 현장이었다. 개중에는 동물령도 있었다.
[죽이자, 죽이자, 죽여, 죽여···] [주인님···]그것들은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한 방향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꼭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차사들을 앞에 두고 이렇듯 태연히 달리진 않을 터.
좌우지간 그것들의 목표는 한 남자였다.
“저 자가···”
그들이 찾고 있는, 찢어진 결계를 넘어온 자.
태구였다.
남자는 제게 달려드는 영혼들 사이를 여유롭게 누비고 있었다.
[컹, 컹컹컹 !]혼자는 아녔다. 그를 보조하는 맹수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개의 혼이다.
둘은 토끼 무리에 뛰어든 맹수처럼 달려드는 영혼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남자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광채가 번쩍인다. 이어서 머리가 날아간 영혼들이 연기처럼 바스러진다. 후속타는 네발 달린 맹수가 맡는다. 녀석이 남자에게 접근하는 동물령의 목덜미를 물어 채 그 뼈를 으스러뜨린다.
둘의 활약을 본 차사들은 경외감을 느꼈다.
‘저자가 정말 살아있는 인간이란 말인가?’
베테랑 차사도 남자와 같은 무위를 보이진 못한다.
‘저게 가능하다고? 허허.’
‘한낱 인간 주제에 어찌 신의 권능을 가진 게지?’
일부는 태구에게서 지옥을 다스리는 시왕의 기운을 느끼기도 했다. 이미 다들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저자가 확실하다. 저 남자가 바로 염라대왕이 찾고 있는 분이다.
‘저래서 데리고 오라고 하신 걸 테지.’
그리고 깨달았다.
“저렇게 미수거 영혼들을 저승에 보낸 건가?”
삼도천에 빠진 악령, 저승길을 배회하던 망령과 구렁이의 혼. 모두 저런 식으로 보냈다는 것을···
그런 생각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드는 차사들이었다.
“다들 정신 안 차려? 두 번 일할 거야?”
당장 태구가 보낸 망령만 몇인가.
이대로 있다간 저 많은 영혼이 차사 없이 저승길을 배회하게 생겼다.
이는 분명 저승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일단 다 잡아들여!”
“차사 없이 저승길을 걷게 해서 되겠어?”
“네 이놈들! 여기 다 숨어 있었구나!”
“커, 컹컹컹!”
그렇게 난전 속으로 뛰어드는 차사들이었다.
***
할파스가 불러들인 망령들은 삽시간에 정리되었다.
“이 놈, 저승길에서 도망친 그놈이구나!”
“차사님. 여기 백 년 묵은 놈도 있습니다.”
“용케 도망 다녔구나!”
난데없이 나타난 존재 덕분이었다.
태구는 이들이 누군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영혼, 검은색 복장, 저들끼리 부르는 호칭···
누가 봐도 저승사자가 아닌가.
하는 행태도 그러했다.
그들 중 일부가 날뛰는 망령들을 포승줄로 옭아맨 채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마 저승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가만히 그들을 보던 때.
검은 갓을 쓴 차사 하나가 태구에게 다가왔다.
“할파스를 쫓아 온 건가, 아니면 나를 쫓아온 건가.”
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차사는 잠시 머뭇거리며 되물었다.
“할파스?”
모르는 건가. 확실한 건 보여주면 알겠지.
태구는 차사를 보며 따라오라 손짓했다.
“커, 커컥흑커컥···”
그리하여 방갈로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이었다.
할파스는 말뚝에 박힌 채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차사가 몸서리치며 소리쳤다.
“저게 어찌!”
“아는 거 맞네.”
아는 눈치였다. 그리고 실제로 차사는 저것을 알고 있었다. 눈앞의 존재는 그의 동료들을 소멸시킨 사특한 존재였으니.
“저것의 이름이 할파스입니까? 저걸 혼자 잡으신 겁니까?”
차사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물었다.
“성치 않은 몸을 한 채 숨어 있더라고. 물론 멀쩡했어도 결과는 별반 다를 것 없었겠지만 말이야. 허면, 이제 내가 물어볼 차례인가?”
“?”
“저게 어떻게 이곳에 와 있는 건지 혹시 알고 있나 싶어서.”
차사가 눈을 빛내며 빠르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저것들의 문제로 저승을 다스리는 염라 대왕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말이네.”
그렇다면 놈을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줄 이가 있었다. 냄새나는 것과 드잡이를 할 필요 없었다.
그 말을 들은 태구는 순식간에 놈의 날갯죽지에서 말뚝을 뽑아냈다. 그런 다음 망설임없이 그것의 가슴팍을 찔렀다. 생명의 근간이 되는 핵이 들어찬 자리였다.
“끼아아······”
끔찍한 절규가 방갈로 안을 울려 퍼졌다. 악의로 가득 찬 존재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차사는 등골이 서늘해 짐을 느꼈다.
“그래. 그분이 나를 찾으신다고? 그럼 가야지. 그런데 내가 아직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 있는데··· 흐음. 혹 그곳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 있을까? 내가 저승은 또 처음이라 말이야.”
그러한 기색을 눈치챈 태구가 괜히 맑게 웃으며 말을 붙이던 때였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차사 하나가 갓을 쓴 차사를 찾아왔다.
“선배님. 이것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명부에 적힌 인간 하나를 발견했는데 숨이 안 끊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