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6)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6화(6/157)
첫 손님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구나.”
사흘 아침을 내리 찾는 호텔 레스토랑.
태구는 그곳에서 조식을 먹고 있었다.
“태예 아니 태구야.”
세 접시쯤 비웠을 무렵.
누군가 태구가 앉은 테이블 앞에 멈춰 섰다.
“어, 왔느냐.”
다름 아닌 BJ 흑룡이었다.
“와··· 설마 했는데 진짜 태구 너 맞네.”
그는 얼빠진 표정을 한 채 태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복권 당첨이라도 된 거야, 뭐야?’
명품 트레이닝 셋업과 그와 깔맞춤한 명품 신발은 태구의 수준에 맞지 않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상남이 마구잡이로 잘라놓은 머리카락도 단정히 정리되어 있다.
머리빨 덕인가, 옷빨 덕인가.
저렇게 차려입고 있으니 남캠 못지않았다.
그러고 보니 풍기는 분위기도 사뭇 달라진 것 같다. 전에는 자기 눈도 제대로 못 마주 보던 놈이 지금은···
“그러다 닳겠느니라.”
이렇듯 제 눈을 똑바로 보며 태연히 말을 받아칠 정도가 아닌가.
“어? 뭐라고?”
“빤히 보고 서 있지 말고 앉으란 말이다.”
“···와, 하하.”
흑룡은 황당해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 새끼 뭐지?’ 하는 속마음은 드러내지 않았다. 당장 아쉬운 쪽은 흑룡 본인이니까.
“어, 어. 앉아야지. 근데 못 본 며칠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네? 말투 하며 차림새까지. 전보다 보기 좋다야.”
“이제야 좀 사람다워 진 거지. 밥은 먹었느냐?”
“밥은 무슨. 한숨도 못 자고 바로 달려온 거야.”
“그럼 가서 음식 좀 퍼오거라. 이 집 육회 맛이 퍽 좋아.”
“아냐. 뭘 먹고 싶단 생각이 별로 안 들어서. 그보다···”
“하기야. 그렇게 삿된 것을 달고 있는데 입맛이 있을 리 없지. 과연 입맛뿐이겠냐. 잠드는 것도 힘들 터. 게다가 전보다 그 기운이 더 강해졌으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겠구나.”
태구는 그렇게 말하며 신성력을 발현시켰다. 지난 날, 그가 내뱉은 신성 주문에 깃든 성력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었다.
그 강한 기운에 흑룡의 뒤에 붙어 따라온 망령은 이렇다 할 저항 한번 하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
“아, 아니. 잠깐만. 삿된 것? 그거 귀신 말하는 거지?”
그런 줄도 모르고 흑룡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진저리 치듯 몸을 털어댔다.
묻혀온 악한 기운은 쫓아냈으니 당장은 걱정할 거 없다.
라며 흑룡은 안심시켜 줄 수도 있었으나 태구는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본체가 흑룡의 주변에 있는 한 그것은 언제고 또 들러붙을 테니까.
“알고 있으면서 뭘 새삼스레 묻느냐. 부리나케 전화한 것도, 당장 만나자 재촉한 것도 다 그 때문이면서.”
“아아···”
흑룡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 묻고 싶은 말은 많은데 당장 말 한마디 뱉기가 힘들었다. 그가 마른세수를 거듭했다.
그동안 태구는 멈춘 식사를 이어갔다.
시간을 거슬러 와서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역시나 ‘음식’이었다.
젊음, 동향 사람, 문명화된 사회등.
그 모든 것들을 합쳐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만큼의 감흥은 주지 못 했다.
그렇기에 이렇듯 다양한 음식을 씹고 맛보는 지금이 참 행복했다.
반면 흑룡은 간신히 마음을 추스른 후에야 다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실은 최근 이상한 게 보이고 잠만 잤다 하면 가위에 눌리곤 했거든. 심할 땐 막 환청 같은 것도 들리더라고. 근데 난 그게 다 내가 피곤해서 헛것을 보는구나 싶었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한 게 이사에 노잠방 콘텐츠까지 겹치면서 몸컨디션이 말이 아니었거든.”
‘아주 육회가 입에서 살살 녹는구나.’
“그러던 중에 상남이 형이랑 합방이 잡힌 거야.”
‘쯧, 이럴 줄 알았으면 배를 좀 더 퍼오는 건데.’
“사실 처음엔 난 네가 날 팼다고 생각했어. 상남이 형도 그렇게 말해줬고. 그런데 족나 말이 안 되는 게, 맞아서 기절까지 한 내 몸 상태가 너무 좋다는 거야. 정신도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헛것도 안 보이고 잠도 잘 오고. 문제는 그런 몸 상태가 딱 이틀밖에 가지 않았다는거지. 그 이후부터···”
끔찍한 나날의 시작이었다.
헛것을 보는 증상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해졌고, 잠을 자지 않아도 가위에 눌리는 기현상까지 겪었다.
뒤늦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그즈음에 팬이 녹화한 편집 영상을 보게 되었다.
상남이 집에서 쓰러지던 제 모습이 녹화된 영상이었다.
‘분명 내 목소리가 아니었어. 게다가 난 그런 욕을 하지도 않았고···’
여자의 음성으로 비명을 내지리던 제 모습은 정말이지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흑룡은 눈을 질끈 감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다시 눈을 떠 태구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여태껏 자신만 주절주절 떠들어댔지, 태구에게선 이렇다 할 대꾸도 반응도 없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과연 태구는 흑룡을 보고 있지 않았다. 연신 수저질만 하고 있을 뿐.
“내 말 듣고 있어? 어? 태구야.”
흑룡이 목소리를 높였고 태구는 그제야 입맛을 다시며 대꾸했다.
“흑룡아.”
전에는 흑룡 님이라 했지만, 이젠 흑룡아라고 한다.
“···어?”
“이 집 육회가 참 맛있구나.”
“내 말 듣고 있냐니까 갑자기 무슨 육회···”
“입안에서 살살 녹는 것이 신선한 고기를 쓴 모양이야. 달큰한 배와도 퍽 궁합이 잘 맞아. 그런데 정신없이 네 말을 듣고 있다 그만···”
“?”
“고기를 빼먹고 배만 먹었지, 뭐냐. 후유. 이제 와 육회만 먹자니 이미 배와의 궁합을 깨달아버렸고···”
태구는 말끝을 흐리며 육회가 놓인 접시를 한번 흑룡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보았다. 흑룡은 뭔 개소리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한차례 둘의 시선이 오간 끝에.
흑룡이 나직이 한숨을 쉬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까 배 가져 오란 말이지?”
과연 눈치가 빠른 놈이었다.
“기왕 가는 걸음에 와플까지 가져다주면 아주 고마울 것 같구나.”
“···배에 와플. 알았어. 대신 갔다 오면 제대로 대화하는 거다? 어? 나 진짜 절박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 태구야.”
“나도 음식 셔틀이나 시키려고 부른 건 아니란다. 일단 먹던 밥은 먹고 천천히 이야기 하자는 거지.”
어쩐지 무슨 수가 있는 듯한 말투였다.
“어? 어, 어! 알았어. 금방 갖고 올게.”
결국 흑룡은 음식 셔틀을 자처했고 덕분에 태구는 만족스럽게 아침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
“끄윽. 잘 먹었다.”
“그럼, 이제 제대로 얘기 좀···”
태구는 똥 마려운 게 마냥 안절부절못해대는 흑룡을 보며 말했다.
“헛것이 보이고 잠을 잘 수 없다고? 하소연을 하러 이 아침에 여기까지 찾아온 건 아닐 테고 중요한 건 네게 붙어있는 그것을 없앨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더냐?”
“어, 어. 맞아. 그 말이야. 없앨 수 있어?”
“한 번 한 걸 두 번 못 할까.”
“역시! 지난 번에도 나한테 뭔가 한 거지? 퇴마 같은 거였어?”
끄덕끄덕
“근데 왜 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건데?”
“그야 확실하게 떼낸 것이 아니니까.”
“그럼 이번엔? 확실하게 없앨 수 있어?”
“그땐 네게 붙은 기운만 쫓은 것이고, 이번엔 그것의 본체를 찾아 없앨 생각이니라. 그것만 없애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테고.”
“본체?”
말한다 한들 알아들을 수도 없을 텐데.
이러고 있을 시간에 당장 그것을 찾아 나서는 게 유익할 듯싶다.
“어쨌든 네게 붙은 그 삿된 것을 제대로 떼어줄 터이니 걱정 말거라.”
“완전히 완벽히 뗀다는 말이지? 며칠 지나서 다시 붙고 이런 거 아니지?”
끄덕끄덕
“하아, 됐다. 됐어. 그럼 내가 뭘 하면 될까? 응?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는데. 좀 기다려야 하지? 얼마나 기다리면 돼? 필요한 건 따로 없고? 아! 이걸 먼저 물어야 했는데. 너 신내림 받은 거 맞지?”
흑룡은 안심하여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묻고 싶은 게 한둘이 아녔다.
“신내림이 아니라 신의 축복을 받은 몸이리라. 준비는 내가 알아서 할 것이고 기다릴 것도 없다. 지금 당장 너와 같이 나설 생각이니.”
“당장이라고? 그래도 돼?”
“단.”
“?”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어, 어! 당연하지. 복채는 얼마나···”
흑룡이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태구는 잠시 멈칫했다.
뭐든 첫 시작이 중요한 법인데.
얼마가 좋으려나.
“정성껏 내거라. 정성껏 내면 신께서도 응답하실 터.”
고심하던 태구는 ‘정성’이라는 미끼를 던졌다.
과연 흑룡의 정성은 제법 컸음이라.
***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돈미새(돈에 미친 새끼) 미낳괴(미션이 낳은 괴물)
모두 인터넷 BJ에서 파생된 신조어로 태구를 찾은 흑룡 역시 그런 bj중 하나였다.
“그, 혹시 말이야.”
“?”
“네가 말한 본체 있잖아. 그거 없앨 때 방송 좀 켜도 될까? 왜 지난번에도 카메라 앞에서 했잖아. 그럼, 이번에도 가능한 거 아닌가?”
흑룡은 퇴마 성공 보수로 천만 원을 약속했다. 그런데 뒤늦게 그 돈이 아까웠던 걸까. 난데없이 방송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겠나.
“인방을 하겠단 말이더냐?”
“기왕 하는 거 달풍도 땡기면 좋잖아. 도랑치고 꽃게 잡고. 응?”
“가재다.”
“아, 아무튼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응? 내가 방해 안 되게 잘할게. 카메라만 세팅해놓고 전자녀 다 막고 자기들끼리 떠들라고 하고 딱 그 장면만 찍자고. 어떻게 안 될까? 부정 같은 거 타려나···”
이런 상황에서도 방송을 켤 생각을 한다니.
누가 자낳괴 아니랄까 봐.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답이 있었으니.
‘잠깐만. 잘하면 이거···’
다름 아닌 사흘을 내리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답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게 만드는 법, 한 집 걸러 점집인 대한민국에서 ‘신의 사도’로 살아갈 수 있는 법.
방송을 이용해 명성을 얻으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그런 말도 있잖은가. 일단 유명해져라. 그럼,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그렇다고 똥을 싸겠다는 말은 아니고, 적어도 신의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 ‘특수 폭행죄’ 따위의 염려를 피할 수 있을 거란 의미였다.
‘흑룡이라···’
얼마 전 양다리 폭로가 터지면서 민심이 나락으로 떨어진 BJ. 그런데도 여전히 파프리카 10대 BJ로 꼽히는 대형 BJ.
다시 말해 충분히 이용 가치가 있다는 말이었다.
“무릇 방송인이라면 관 뚜껑 닫을 때도 방송을 켜야 하는 법이지.”
태구가 퍽 친절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넌 말을 해도 무섭게··· 알았어. 안 할게. 안 하면 되잖아.”
흑룡이 그러한 태구의 말을 다르게 해석했다.
“누가 하지 말라더냐? 찍거라. 내 친히 협조할 테니.”
“진짜?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 찍어도 된다는 거지? 퇴마하는 데 문제 되는 거 아니지?”
“괜찮다. 대신.”
“아아, 출연비라면 걱정하지 마. 그건 내가 제대로 챙겨줄게. 아니면 아예 비율로 나눠줄까? 그럼, 너도 동기부여가 돼서 더 열심히 할 거 아냐.”
“정말이지 눈치가 빠른 녀석이구나. 그런데 내가 바라는 건 돈 같은 게 아니다.”
“그럼 뭘 원하는데?”
태구는 흠흠 헛기침하며 생각한 바를 말했다. 흑룡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뭘 해달라고?” 되물었다. 정말이지 예상 밖의 요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