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61)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61화(61/157)
저승 투어 (1)
높은 층고와 시원스레 뚫린 통창.
그 안으로 들어오는 채광은 마치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와, 와와와와. 진짜 말이 안 나오네. 그러니까 이게 태구 집이라는 거잖아.”
흑룡은 눈을 반짝이며 집안을 둘러보았다.
새 제품으로 보이는 고급 가구가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몸만 들어오면 될 성싶었다.
아경도 연신 감탄을 터트리며 말했다.
“우와. 이런 집은 텔레비전에서만 봤어요.”
“그러게.”
“아무튼 아직은 아니지만 사장님이 받겠다 하면 사장님 집이 되는 거겠죠?”
그 말에 흑룡은 괜한 불안감을 느꼈다. 문득 스치는 기억 때문이다. 그가 상기된 얼굴을 한 채 소리쳤다.
“받겠다고 하면이라니? 당연히 냉큼 받아야지. 이게 얼마짜린데—!”
“으음. 부담스러워서 안 받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비제이님 말마따나 너무 비싼 집이니까요.”
“아경아. 그게 아니지. 비쌀수록 어떻게든 받아 챙겨야지! 태구가 거절하면 네가 나서서라도 받아야 맞는 거지!”
실로 돈미새스러운 발언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태구 대신 저 사모님한테 서류 같은 거 꼼꼼히 받아 챙기고 후다닥 명의부터 바꾸란 말이야. 아니면 내가 나설까? 아, 아니야. 그건 모양새가 좀 이상한데···”
흑룡은 중얼거리며 손톱을 물어뜯었고, 아경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하핫. 아뇨. 제가 나설 자리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괜히 이러는 게 아니라니까, 진짜 불안해서 그래.”
“에이, 불안할 게 뭐가 있다구요.”
“쟤 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명품으로 휘감았잖아. 그뿐이야? 뭐든 좋은 것만 쓰고, 먹는 거에도 돈을 안 아낀다고. 그래서 물욕이 많은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이상한 데에서 사람을 놀라게 하더라니까.”
“네?”
어느 날, 흑룡은 아주 우연한 기회로 태구의 선행을 알게 되었다. 잘못 걸려 온 전화 덕분이었다.
“구렁이 영혼 씐 아이 기억나지? 왜 우리 같이 강원도로 캠핑하러 갔다가 만난 애 있잖아.”
“당연히 기억하죠.”
“얼마 전에 그 집 할머니가 태구 번호를 착각했는지 나한테 전화하셨더라고.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태구가 그 집 손녀 후원자가 되겠다고 했다네?”
“후원자요?”
“엉. 아이 학비며 상담 치료비며 피부에 남은 옅은 자국 치료비까지. 뭐가 필요하든 다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했나 봐. 근데 그게 어디 한두 푼이냐고.”
심지어 한 번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 누가, 어떤 사람이 대가 없이 그런 선행을 펼칠 수 있을까. 돈미새 흑룡은 좀처럼 태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때쯤 기사 하나를 봤거든? 지역 뉴스에 뜬 기사인데. 태구가 데리고 다니는 강아지 있지? 그 구조견이 소속된 소방서에 익명의 후원자가 거금을 기부했다고 나오더라고.”
그 금액이 무려 1억 원이다. 1억 원, 1억 원! 말이 일억이지 생면부지 타인을 위해 선뜻 낼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사장님이겠네요.”
“엉. 누가 봐도 태구야. 확실해. 아무튼 저거 자기랑 인연 맺은 사람들이면 자기 간이며 콩팥이며 다 떼 주는 인간이더라고. 그러니 내가 걱정되겠어, 안 되겠어? 엉? 준다는 거 안 받고 또 제 사비 털까 봐 조마조마하다니까? 얼핏 봐도 저쪽이 훨씬 잘 사는 집인데!”
당장은 달풍이 팡팡 터진다지만 이렇게 쓰다가는 파산 각이다. 흑룡은 그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 말에 아경은 대꾸 없이 태구를 바라보았다. 순간 가슴 한켠이 울컥했다.
‘맞아. 나만 해도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직원으로 써주시고, 항상 챙겨주시고 배려해 주시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큰 사람인 줄은 몰랐다.
감사와 존경을 넘어서 사장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어렵다면 사장님께 걸맞은 직원이 되고 싶었다. 아경이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뜻이 그렇다고 하면 저도 보탤 거예요!”
“엉?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보태긴 뭘 보태.”
“돈 말이에요. 사장님 돈에 비하면 푼돈이겠지만 뭐든 하나 보단 둘이 낫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사장님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 말을 들은 흑룡이 기겁하듯 손을 휘저었다.
“아익!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아주 그냥 사장이나 직원이나 둘 다 똑같지? 고생한 만큼 돈 챙길 생각을 해야지, 퍼줄 생각부터 하고 있어. 이런 실속 없는 것들 같으니!”
“그러는 비제이님도 똑같잖아요. 저희 언니 장례식 때 근조화환 주문해 주시고 또 지인분들 다 불러서 썰렁한 장례식장 채워주셨잖아요. 저한테 뭘 바라고 돈 쓰신 거 아니잖아요. 그저 제가 안타까워서 좋은 마음으로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비제이님도 사장님이랑 똑같은···”
“무슨 다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있어. 어어? 그보다 저기 뷰 좀 봐. 한강이 바로 보이네. 이런 건 또 가까이서 봐줘야 하는데! 저쪽으로 가 보자. 아니다, 방부터 볼까?”
순간 당황한 흑룡이 딴청을 피우며 자리를 피했다. 그러한 모습에 아경은 픽 미소를 지었다.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 그녀의 눈엔 사장님이나 흑룡이나 비슷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자신도 저 사람들과 같은 결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편, 태구는 오금희의 선물을 받아 챙기고 있었다. 흑룡의 걱정은 기우였다.
“안 그래도 집 앞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퍽 많아 힘들었는데, 잘됐네요. 감사합니다.”
아파트를 받는 데 있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한술 더 떠 다른 것까지 받아낼 생각을 한 태구였다. 있는 자들에겐 더 많은 것을 받아내도 된다는 게 태구의 지론이었다.
“감사는 저희 쪽에서 해야죠. 선생님 아니었으면 우리 아들··· 흐으.”
“무사히 돌아왔잖아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상상하지 마세요. 마음만 괴롭습니다. 아, 그런데···”
“네?”
“이 아파트 말이에요. 주신다니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사실 제가 원한 건 따로 있거든요.”
유정원의 가족은 가진 게 많았다. 최고급 아파트를 턱 하니 내어줄 수 있는 재력, 수많은 경찰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 폭넓은 인맥까지. 그중 태구가 원한 것은 권력이었다.
물론 그 힘이 당장 필요한 건 아녔다. 어쩌면 영영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허나,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미리 이야기 해둬서 나쁠 건 없었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저희야 너무 좋지요. 어떤 걸 원하세요? 혹시 현금을 바라시는 거라면 그 역시 준비해···”
태구가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도움이 필요할 때 편하게 연락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설마 그게 다 인가요?”
“제가 뭘 부탁할 줄 알고요.”
“뭐든 우리 가족이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제 일처럼 나설게요. 약속드려요. 그러니까 저희 가족의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세요.”
오금희는 주저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무슨 일이든 다 돕겠다고 말했다. 당신은 우리 집 은인이라고, 부탁한 일이 설령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도 돕겠다고. 유정원이 목숨값은 그만큼 비쌌다.
그러한 약속에 태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젠가 한 번은 연락할 날이 있을 거로 생각하면서···
***
그날 저녁. 태구는 흑룡의 집을 나와 오금희가 마련해 준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되겠냐는, 하룻밤만 재워달라는 흑룡의 성화에 태구는 그렇게 말했다.
“칠 일 뒤에 부를게.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부를 수도 있고.”
“진짜? 진짜지? 오케이! 부른다고만 하면 나야 얼마든지 기다리지!”
태구는 빈말하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기에 흑룡은 기다릴 수 있었다.
“아, 그리고 고 매니저. 아까 말했지만 전화한다 한들 못 받을 거야. 그러니까 괜히 연락하지 말고 나 없는 동안 푹 쉬고 있어. 해외 출장 건도 미뤄놨지?”
“네. 이번 주는 힘들 것 같다고 전달 했어요.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에요? 어디 멀리 가시는 거예요?”
“설명하자면 길어. 갔다 와서 말해줄게. 그 말을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미, 믿어요! 그러니까 꼭 알려주셔야 해요.”
그렇게 유정원 사건을 마무리한 태구는 모든 외부 활동을 중지했다. 출연 중인 프로그램의 스케줄도 미뤘고, 달프리카에도 휴방을 공지했다.
“이제 가보자고.”
갈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지옥이었다.
“정말 칠일 안에 다녀오실 수 있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삼도천을 건너는 데에만 칠일이 꼬박 걸리는데··· 그렇게 배를 타고 들어가도 바로 대왕님을 뵐 수 있는 게 아니라 제5 지옥까지 가셔야 하는데요.”
“충분해. 내가 또 걸음이 빠르거든.”
“걸음이 빠르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양복 차사가 황당한 눈빛을 띠며 입을 열었다. 허나, 그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이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가고 있는데.”
“하기야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의 경험이 더 낫겠죠. 바로 문 열겠습니다.”
양복 차사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휘적거렸다. 순간 그의 앞으로 구덩이 하나가 만들어졌다.
지난날, 공주 야산에서 본 적 있는 구덩이, 무저갱이었다.
당시 오랏줄에 묶인 망자들은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며 모습을 감췄었다. 이번에는 태구 차례였다.
“이쪽으로 올라서시면 됩니다.”
태구는 망설임 없이 구덩이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곧이어 양복 차사와 태구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
곡소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여기가 바로 저승이구나.’
무저갱에 떨어진 태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흐으윽.”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어떻게 쌓은 재물인데! 그 돈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이렇게 죽을 수가 있냔 말이야.”
“아이고, 아이고. 억울해.”
욱신이라는 허물을 벗은 망령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앞을 향해 걷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검은색 옷을 입은 차사가 있었다.
“여기가 바로 저승길의 시작이자 삼도천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물론 태구의 곁을 지키는 차사도 있다. 함께 온 양복 차사였다.
“선생님. 저들의 발이 보이시나요?”
양복 차사의 말에 태구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망자들은 발목에 무거운 추를 단 듯 어기적어기적 걷고 있었다.
“저게 뭔데?”
느린 걸음에는 이유가 있었다.
검은 흙바닥에서 피어난 아지랑이가 그들의 발목을 잡아채고 있었다. 하얗게 피어오른 아지랑이는 꼭 사람의 손처럼 생겼다.
“저승길에서 자생하는 망령초라는 식물이에요.”
“망령초?”
“네. 망령초는 응어리진 망자의 감정을 먹고 살아요. 미련, 집착, 그리고 염원 같은 것들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이죠. 다만 그 감정이 깊이가 깊을수록 망령초에게 붙잡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법이고요.”
“그래서 저렇게 느리게 걷는 거였군.”
양복 차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곳에서 삼도천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에요. 만일 선생님 없이 저 혼자 간다면 하루 안짝으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지요. 하지만 망령초에게 붙들리는 순간 최소 하루 아니 이틀 길면 사흘 정도 이 길 위에 묶이게 된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최대한 빨리 걸어도 이곳에서 이틀은 버리게 될 거란 의미였다. 그런 양복 차사의 말에 태구는 개의치 않았다. 태구는 낯선 환경이 흥미로웠다.
“망령초라··· 저런 건 또 처음 봐. 재밌네.”
“그야 저승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이니까요. 당연히 처음 볼 수밖에요.”
태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 어투에서 즐거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삼도천도 빨리 보고 싶은걸? 이럴 게 아니라 당장 움직이자고. 아, 그리고 지금처럼 내 곁에 붙어서 계속 저승 이야기 좀 해줘.”
“이야기할 시간이야야 많···억?”
순간, 양복 차사가 눈동자가 커졌다. 제 옆에 있던 태구가 어느새 저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그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태구의 발밑을 바라봤다. 허연 망령초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뭐하고 섰어.”
태구가 다시금 이쪽으로 걸어올 때도, 망령초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어, 어···”
양복 차사가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자기 발목을 옭아매고 있는 망령초가 보였다. 하물며 감정을 비워낸 차사에게도 달라붙는 망령초인데, 어째서, 어째서—!
양복 차사는 혼란함을 느꼈다. 그러던 때, 돌아온 태구가 그의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빨리 가자니까?”
동시에 차사의 발이 자유로워진다. 망령초가 옭아맨 줄기를 풀었기 때문이다.
그걸 본 양복 차사는 그런 생각을 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칠일 안에 대왕님을 뵐 수도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