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62)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62화(62/157)
저승 투어 (2)
“저기 좀 보라구.”
“888번이네. 출발했다는 소리는 들었는···어억? 왜 저리 빨라!”
“망령초가 접근을 안 하는구먼.”
“그러니 어째서! 함께 온 인간이야 생자니 그렇다고 쳐도 888번은 우리와 같은 망자잖아?”
“이봐. 자네 잘못 알고 있구만? 망령초는 생자와 망자를 가리지 않아. 그 옛날 바리데기가 왔을 때를 떠올려 봐.”
맞는 말이다. 저승에서 자생하는 식물이기에 망령초란 이름이 붙은 것이지, 망령초는 생자와 망자를 가리지 않는다.
이는 아주 오래전, 저승을 찾아온 생자로부터 증명된 사실이리라.
“허어.”
누군가 짚어준 정보에 주변이 술렁였다. 차사들은 휘둥그레 뜬 눈으로 태구와 양복 차사를 할깃거렸다.
“손이 참 많이 가는 친구네.”
태구는 양복 차사의 앞에 서 있었고, 양복 차사는 그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양새였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크흠. 죄송합니다. 저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 한 터라···”
그에 양복 차사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사과했다.
“내가 미리 말했잖아. 나 걸음 빠르다고. 내 말을 아주 귓등으로 들었구만?”
“하핫. 그러게요. 저만 아니었다면 벌써 삼도천에 도착하고도 남을 만큼 빠르시네요. 그런데 선생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어떤 질문을 할지 예상이 갔다. 양복 차사는 헉헉거리며 말을 이었다. 태구와 속도를 맞추기 퍽 버거웠다.
“후우으. 어째서 선생님껜 망령초가 달려들지 않는 겁니까?”
아니나 다를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질문이다. 더불어 웃음이 나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건 내가 물어야 할 것 같은데? 저승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라며. 나도 처음 본다니까?”
“아··· 그, 그렇죠.”
“근데 그 이유를 알 것도 같긴 해.”
조금 전, 양복 차사가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예? 알 것 같다고요?”
“그쪽이 그랬잖아. 망령초는 응어리진 감정을 먹고 산다고. 미련, 집착, 한 같은 감정 말이야. 그런데 난 딱히 그런 게 없거든. 그런 이유로 나를 피하는 것 같은데?”
비단 그 이유 하나 때문은 아닐 터다. 그가 가진 성력도 한몫했겠지. 그러니 양복 차사도 망령 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 테고.
“미련, 집착과 같은 감정이 없다고요? 사람이라면 하물며 망자인 저도 갖고 있는데, 어찌···“
양복 차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어쩌랴. 그게 사실인걸.
그는 이번 생을 포함해 총 세 번의 생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 원하는 바를 다 이룬 태구였다.
‘미련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생에 대한 집착, 미련, 집념 같은 감정은 이루지 못한 것에 지니는 감정이 아닌가.
허나, 앞서 말했듯 다 이뤄봤기에 그런 감정이 있을 리 만무했다.
사실 당장 죽어도 별 상관없었다.
그런데도 이렇듯 살아 있는 건 그저 그분의 뜻을 받들기 위함이었다.
굳이 이러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태구는 어깨를 으쓱이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너를 888번이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무슨 뜻이지?”
스쳐 지나온 차사들에게서 들은 말이다. 저들은 분명 양복 차사를 보며 ‘888번’이라 했다.
“아··· 그건 제 이름입니다.”
“888이? 그거참 특이하네. 저승에선 그리 부르나? 숫자를 매겨서?”
역시 저승은 흥미롭다. 태구의 말을 들은 양복 차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다 그런 건 아니고요. 실은 제가 자살 망령 출신이거든요.”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스스로 제 목숨을 끊으면서 그 이름도 버리게 된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저와 같은 자살 망령들은 생전의 이름을 쓰지 못합니다. 기억을 다 잃어버렸기에 생전 어떻게 불렸는지도 모르고요.”
양복 차사는 조금은 서글픈 말투로 자살 망령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기도 잠깐, 그가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저는 다른 자살 망령들에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에요. ‘888’이라는 숫자로 불릴지언정 이렇게 이승을 오갈 수 있는 차사가 되었잖아요?”
“그게 운이 좋은 건가? 다른 자살 망령들은 어찌 지내길래?”
“대부분은 지옥에 갇힌 상태죠. 그들은 죗값을 치러야 해요.”
“죄? 무슨 죄? 설마 스스로 제 목숨을 끊은 것도 죄로 치는 건가?”
양복 차사는 퍽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하죠. 우리가 스스로 포기한 나날은 어제의 죽은 이가 그토록 원하던 나날이잖아요. 그런 귀중한 목숨을 버렸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죠. 그런 이유로 우린 죄인이에요.”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죄인이라고?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타인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이 무슨 상관이라고.
태구는 이해할 수 없었다.
태구가 모시는 그분은 자살 영혼들을 저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저는 생전 쌓은 선행이 많아서 지장보살 님에게 구원받을 수 있었어요. 그 덕에 지옥행도 면했고요. 앞으로 100년 동안 맡은바 열심히 하면 제가 짊어진 죄업도 모두 사라질 거예요. 휴우, 그런데 차사 노릇도 쉽지는 않네요.”
“하, 진짜 웃기는 소리네.”
태구는 결국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 노골적인 비웃음에 양복 차사가 태구를 바라봤다. 짐짓 당황한 눈빛이었다.
“예? 웃기다니요?”
“질병에 걸려 죽은 망자들을 어찌 처리하지?”
태우는 반문 했고 양복 차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질문에 맞지 않는 질문이 돌아온 탓이다. 그렇지만 묻는 말에 곧잘 대답하는 양복 차사였다.
“특별히 다를 건 없어요. 다른 망자들과 똑같이 열 개의 지옥을 거치며 재판받고 심판에 복종해야 하죠.”
“그러니까 생전 지은 죄업과 선업만 가지고 재판을 받는다는 말이잖아. 병과는 별개로 말이야.”
“그야 당연하죠. ‘병’에 걸린 게 죄는 아니니까요. 그들이라고 병에 걸리고 싶어 걸렸겠어요?”
“잘 알고 있네! 그러니까 웃긴다는 거야.”
“예?”
“말귀를 영 못 알아먹네.”
“···정말 뭐가 웃긴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태구는 혀를 차며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방금 그쪽이 그랬잖아. 병은 죄가 아니라며.”
“그랬죠?”
“그런데 자살은 왜 죄업으로 치는 거지? 그들 역시 질병으로 인해 죽은 것뿐인데.”
“질병이라뇨.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요. 우리는 스스로 목숨을···”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가 바로 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육체적 질병만 질병은 아니거든. 마음에 병도 질병이다 이거야. 그들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을 거야.”
“마음의 병, 마음의 병···”
양복 차사는 연신 마음의 병을 되뇌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구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들이라고 제 목숨을 버리고 싶었겠어? 병에 걸렸으니 고통스러웠을 거야. 아팠을 거야. 사는 게 지옥처럼 느껴졌을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하고 만 게지. 그런데 그런 영혼들을 또다시 지옥에 가두다니, 참··· 그분이었다면 따스히 안아주었을 텐데 말이야.”
누구도 저런 식으로 이야기한 적 없었다.
나약한 망령이라며 욕만 해댔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가 아니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죄가 아니라고?’
그 말을 들은 양복 차사의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뭐해. 안 가?”
그러는 와중, 태구가 뒤를 돌며 말했다. 잠깐 사이, 양복 차사는 다섯 발쯤 뒤처져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양복 차사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저를 보는 태구의 뒤로 환한 빛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갑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쓱쓱 비비댔다. 그러고는 다시금 태구의 뒤로 바짝 다가갔다. 그의 눈가가 촉촉했다.
“대충 다 온 것 같은데. 저기 앞이 삼도천인가?”
그 모습을 보았으나 태구는 개의치 않았다. 차사의 눈가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 보이십니까?”
“응. 물비린내도 나고.”
멀찍이 검은색 강과 그 앞에 세워진 배가 보였다.
“맞습니다. 저곳이 바로 삼도천입니다. 저승길을 거쳐온 망자들은 저곳에서 배를 타고 제1 지옥, 진광대왕님이 주관하시는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1 지옥이라. 거긴 어떤 곳인데? 그곳을 다스리는 신에 대해서도 좀 알려줘 봐.”
곧잘 대답하던 양복 차사가 뜸을 들인다.
이어서 머뭇거리며 입을 달싹인다.
“그, 그 전에 저도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그래? 물어봐.”
“조금 전에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분이었다면 따스하게 안아주었을 거라고요.”
“아아. 그랬지.”
“그분이 바로 선생님이 모시는 분입니까?”
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분을 입에 담았다.
“그래. 내가 모시는 분이셔. 자애롭고 따스한 분이지.”
그런데 저거 눈빛이 좀 이상하다. 아무래도 그분의 신품에 놀란 듯싶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호, 혹시 저도 그분을 뵐 수 있을까요?”
“크흠. 아무래도 어렵겠죠? 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그저 자애롭고 따스한 분인 것 같아서 멀찍이서 한 번만 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생님도 저희 대장님을 보러 이렇듯 찾아오시기도 했고···”
양복 차사가 눈치를 보며 웅얼거렸다. 태구는 픽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한 가지만 물어본다고 하지 않았나.”
“아?”
“난 그에 관한 답을 줬고 이번엔 내가 들을 차례야. 질문은 그 이후에 하라고.”
그 말을 들은 양복 차사의 얼굴이 환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허, 허면 알려주시는 겁니까?”
“일단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하면. 제1지옥이 어떤 곳이라고? 그리고 그곳을 주관하는 신은 누구지?”
양복 차사는 즉답했다.
“진광대왕님 이십니다! 십 왕 중 한 분으로 가장 화통한 성격을 지니고 계시지요. 뱉은 말은 꼭 지키는 분이며 차사들에게도 격의 없이 대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면서 본인 역시 그곳 출신이라 덧붙였다.
“자살 망령들이 가는 곳이라고?”
“그들만 다루는 건 아니구요. 불필요한 살생을 한 자, 칼을 쓴 자 등 다양한 유형을 다루고 있습니다.”
“으흥.”
태구의 고갯짓에 양복 차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진광대왕이 다스리는 지옥에 관해 설명할 차례였다.
“그분이 다스리는 지옥은 도산지옥이라고 하지요. 삼도천을 건너면 칼날만이 가득한 숲이 있는데 그 숲을 넘어야 비로소 그분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칼날만 있는 숲이라고?”
“예. 나무도 돌도 흙도 없는 오로지 칼만 존재하는 숲입니다. 하지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칼날 숲은 망자들이 가는 곳이고 저희는 뒷길로 안전히 갈 테니까요. 저승길도 벗어났겠다 제가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뒷길이라니, 말만 들어도 흥미가 떨어진다. 태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곳이 어떤 곳인지, 가는 길은 얼마나 험한지 직접 보고 싶거든.”
“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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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지옥, 도산지옥.
그곳에선 한창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직도 멀었느냐?”
진광대왕의 호통에 곁에 있던 그의 옥졸이 냉큼 답을 했다.
“둘 남았습니다.”
“둘이나 남았다고?”
진광대왕은 그리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곧 십왕 회의가 있다. 저승을 찾아오는 생자 때문에 열린 회의이리라. 그런데 하필 오늘따라 재판받을 망자가 이리 많을 줄이야.
“네. 한데 같이 재판을 치러도 될 것 같습니다. 죄명이 같으며 피로 연결된 부자 사이입니다.”
그의 노여움을 눈치챈 옥졸이 눈치 빠르게 행동했다. 그에 진광대왕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하라는 신호였다.
“들라 하라신다—!”
옥졸이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옥졸이 두 영혼을 끌고 온다.
“아, 아버지···끄으으윽”
“괜찮아, 괜찮을거다. 흐으윽.”
끌려온 영혼은 처참한 행색을 하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처로 가득했다.
너덜거리는 살갗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칼날 숲을 지나며 베인 상처였다.
그런 그들을 보는 옥졸과 진광대왕의 눈빛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진광대왕은 시간 끌 거 없다는 듯 곧장 영혼의 죄명을 물었다.
“그래. 저것들의 죄명이 무어라고?”
명부를 든 옥졸이 냉큼 답했다.
“살생죄입니다. 저것들은 자신의 목숨을 끊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양복 차사와 같은 사유로 죽은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때쯤.
태구와 양복 차사가 재판장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