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63)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63화(63/157)
저승 투어 (3)
“저기가 바로 진광대왕 님이 머물고 계시는 대궐입니다.”
양복 차사가 예스러운 궁을 가리켰다. 둘은 이제 막 칼날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 상태였다.
“저 안에 재판장이 있다 했지? 우리도 들어갈 수 있나?”
“그야 물론이지요. 다만 재판은 볼 수 없을 겁니다.”
“엉?”
“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칼날산을 관리하는 옥졸이 망령들을 붙잡고 있던 모습 말입니다. 진광대왕 님께서 자리를 비워서 그런 거지요.”
정신없이 둘러보느라 대충 흘려들은 말이 문득 떠오른다. 태구가 말했다.
“아. 회의가 열린다고 했었지?”
그 때문에 지옥 열 곳 모두 재판을 멈춘 상태라고 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염라대왕님 대궐로 넘어가셨을 겁니다. 저희가 가는 곳도 그곳이고요.”
“아쉽네. 어떤 식으로 재판하는지 짐짓 궁금했는데 말이야.”
“그런 거라면 제가 실감 나게 설명해 드릴 수 있지요. 제가 또 직접 겪어 본 망령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 전에 선생님. 이제 제 차례인데요.”
“아. 그분을 만나 뵐 수 있냐고 물었었지? 그분의 현신은 보기 힘드나 기운 정도는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양복 차사와 태구가 질문을 주고받으며 대궐로 향하던 때였다.
“네 이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거짓을 고하려 드느냐?”
붉은 문 너머로 벼락같은 호령이 들려왔다. 신력이 담긴 목소리였다. 분명 이곳을 다스리는 존재일 터.
“안에 계시는데?”
“어, 어···그러게요. 제가 금방 확인해 볼게요.”
양복 차사는 그리 말하며 문지기에게 갔다.
잠시 후, 상황을 알아 온 그가 싱글벙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 운이 참 좋으십니다. 지금 안쪽에 망령 둘이···”
양복 차사가 말하길 재판받는 망령은 둘이며, 같은 날 사망한 아비와 그 아들이라고 했다.
둘은 살생죄를 지어 재판장에 섰다고 한다. 타인의 목숨이 아닌 제 목숨을 앗아간 죄였다.
죽은 사유가 궁금해 물어보니 그건 당장 알 수 없고 재판장에 들어서면 알 수 있을 거라 하였다.
“재판에 쓰이는 신물 중 업경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통해 죄인의 죄를 들여다볼 수 있는데 그때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태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양복 차사는 문득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오면서 했던 그 말··· 진광대왕님 앞에서도 하시는 건 아니겠지? 나야 상관없지만 그분은··· 흐음. 크게 경을 치실 텐데.’
그가 태구의 얼굴을 힐긋거렸다. 딱히 변화는 없어 보인다.
그래도 혹시 몰라 조심스레 말을 건네야겠다 싶었는데···
끼이익—
어느새 문지기가 열어준 문을 넘어선 태구였다.
‘이런!’
한발 늦고 말았다. 여기서부턴 진광대왕님의 완전한 영역이었으니. 돌려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여기가 바로 그분의 대궐이자 재판이 열리는 재판장입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진광대왕님이 보고 듣고 또 다스릴 수 있지요. 저희가 들어온 것도 아마 알고 계실 겁니다. 또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진광대왕님은 공명정대하시며 원리원칙을 몹시 중요시하시는 분입니다. 또 그분의 무위는···”
괜한 소리 말라는 말이다.
주절주절 떠드는 말에 태구는 피식 미소 지었다. 그가 무얼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는 괜한 걱정이었다.
‘분명 그분의 뜻에 반하는 곳이나 타파할 생각은 없다. 그러길 바라지도 않으실 테고··· 다만 영혼들을 위해 기도 정도 해 줄 수 있음 좋으련만.’
그것도 깨끗한 영혼일 경우에나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며 태구는 재판장을 훑어보았다.
재판장은 그 옛날 의금부 같았다. 그리고 그곳을 주관하는 진광대왕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상석에 앉아 죄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거짓을! 당장 저놈을 업경대 앞에 세우거라!”
분위기를 보아하니 망령이 거짓말을 한 듯 보였다. 망령은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연신 아니라고 되뇌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저는, 저는···”
옥졸들이 그를 끌고 가 커다란 거울 앞에 세웠다.
‘저게 바로 업경대라는 신물이구나.’
망자의 죄업을 비춰주는 신물이라 했다. 순간 업경대 안으로 망자의 생전 모습이 비친다. 얼핏 보아 죽음을 결심한 순간인 듯싶다.
[아들. 아빠 왔··· 아아, 안돼!]비닐봉지를 든 망자, 아니 중년 남자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나보려 하지만 또 주저앉고 만다. 충격적인 장면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누구 없어요? 누구 없어요?]그가 개처럼 앞을 향해 기어간다. 곧이어 흔들리는 두 다리 밑에서 멈춰선 남자. 그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두 다리를 감싸 안아 올렸다.
[철아, 철아! 이놈의 자식이! 왜 대답을 안 해! 아빠가 부르잖아!]차갑게 식은 아들의 다리였다.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불러 보지만 방안은 고요하다. 화를 내고 애원해도 똑같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철아, 철아. 너 거기 있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 먼저 가면 안 된다!]흐리멍덩한 눈빛에 생기가 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서랍을 뒤적거렸다.
– 아들 혼자 보낼 수가 없어 같이 간다. 봉철아, 내가 따로 부탁할 사람이 없어. 우리 부자 뒤처리 좀 부탁하자. 정말 미안하다, 친구야.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제 용도를 다한 거울이 빛을 잃었다.
“이걸 보고도 아니라 발뺌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있다면 어디 한번 그래 보거라. 네놈의 혀를 뽑아 그 목에 둘둘 감아줄 터이니.”
“끄, 끄으으.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이제야 네 죄를 인정하는구나. 그러나 늦었다. 네놈은 살생죄를 진 죄인이다! 살아생전 덕을 쌓지 않았다면 네놈은 필히 지옥행에 떨어질 것이야.”
진광대왕이 혀를 차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러자 진광대왕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인 하나가 몸을 일으킨다.
“죄인에게 걸어가시는 저분이 바로 지장보살 님이십니다. 아! 정확히는 그분의 분신 중 하나지요.”
“분신?”
“네. 보살님께선 열 개의 지옥에 자신의 분신들을 파견해 놓은 상태입니다.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함이죠.”
양복 차사가 조용히 속삭였다. 태구는 그 여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것일까. 반삭의 여자가 태구와 눈을 마주한다.
그 순간, 여인이 태구를 보며 해사하게 미소 지었다. 실로 애정이 듬뿍 깃든 미소였다. 이유 모를 호의에 태구는 얼떨떨함을 느꼈다.
“저리 밝게 웃으시다니. 지장보살 님께서 선생님을 좋게 보신 모양입니다. 분명 좋으신 분이란 걸 단박에 알아채신 게지요.”
양복 차사도 본 모양이다. 그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사이, 태구에게서 시선을 거둔 지장보살은 망령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런 다음 망령의 어깨로 손을 뻗는데···
“!”
태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퍽 익숙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이는 분명 신성력이었다.
“하핫. 놀라신 모양이네요. 저기 보살님이 들고 계신 보주 보이시죠? 저것 때문이랍니다. 저것 역시 업경대와 마찬가지로 저승의 신물 중 하나이며 마니주 혹은 여의주라고 하지요. 보시다시피 그 능력은···”
힐, 그러니까 치유 능력을 갖춘 신물이었다. 망령의 상태가 신물의 효험을 입증했다. 찢어져 너덜거리는 살갗 위로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지장보살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무어라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망자의 몸에서 투명하고도 밝은 원형 빛무리가 뿜어져 나온다. 물론 단순한 빛무리는 아니었다.
“기억을 뽑아낸 건가.”
망자의 생전 기억, 그중에서도 선업과 관련된 기억이었다. 비눗방울처럼 방울방울 떠도는 기억들이 이내 한 덩어리로 뭉쳐진다. 그리하여 다시금 지장보살의 손을 향해 다가오는 원형 구체.
“업경대로 망자의 죄업을 확인했다면, 이제 선업을 확인할 차례지요. 저기 저 빛무리가 바로 망자가 지닌 선업입니다. 보기보다 꽤, 아니 아주 많네요. 저 정도 선업을 갖고 있다니. 정확한 건 저울에 달아봐야 알겠지만 지옥행은 면하겠어요.”
양복 차사는 쉬지 않고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그런 태구와 양복 차사를 보는 이가 있었다.
‘저놈이 바로 그놈이군. 명부에 적힌 망자를 살려냈다 하였지? 감히 저승의 법도를 거스르다니, 이놈아! 신성한 재판만 끝내면 내가 저놈을···’
진광 대왕이었다. 그는 애초에 태구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태구를 가늠하고 있는 사이.
지장보살은 뽑아온 선업을 옥졸에게 건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판결의 추가 선업 쪽으로 기운 것이다.
“그래도 생전 덕을 많이 쌓은 인간이군. 됐다. 이제 저놈을 업경대 앞에 세우거라!”
결과를 들은 진광대왕이 소리쳤다. 전과 달리 많이 누그러진 어투였다.
“···아? 아, 안 됩니다! 우리 아들은 아무 죄도 없습니다. 제가 그런 겁니다. 제가, 우리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니 세워서는 안 됩···우으읍!”
그 말에 화들짝 놀란 망자가 진광대왕을 향해 내달렸다. 허나, 그는 한 걸음도 채 내딛지 못했다. 옥졸들의 단박에 그의 몸뚱이를 결박했다. 그 입도 막아버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나서는 겁니까? 덕을 많이 쌓았으니 망정이니 다른 망령이었으며 그 다리를 잘라버렸을 겁니다.”
그를 포박한 옥졸이 험상궂은 목소리를 냈다. 그사이, 아들도 그 아비처럼 업경대 앞에 섰다. 업경대가 다시금 빛을 발했다.
[여기 맞아?] [내 정보통 무시하냐? 저기 보이지? 오색빌라. 저기 반지하 산다더라.] [오호. 그렇단 말이지? 이거 아주 만나면 뒈···어? 야. 쟤 아니냐?] [타이밍 보소. 맞네. 야, 고철 ! 어쭈? 뛰어?]너덧 명의 아이들이 어린 망자를 불렀다. 키득키득하는 웃음소리에 악의가 가득했다. 어린 망자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골목길을 달렸다.
퍼억—!
그러나 금방 붙잡히고 만다.
[이게 뒤지려고. 어딜 내빼?] [숨으면 우리가 못 찾을 줄 알았냐? 어?] [게다가 뭐? 학교 폭력으로 자퇴를 해? 이 새끼가, 누굴 엿 먹이려고. 담임이 해결해 줬기에 망정이지. 콱 !] [잘못했다고? 말로만? 그건 아니지.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할 거 아냐.]어린 망자는 몸을 둥글게 만 채 바닥을 굴렀다. 흰색 티셔츠가 회색빛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티셔츠 위로 발자국이 가득했다.
그러기를 한참 뒤.
[내일 또 보자, 고철?] [어디 또 내빼 봐. 그땐 느그 아빠 찾아갈 거야. 요즘 뻑치기 그런 범죄가 많다더라?] [푸, 푸하하. 야. 쟤 떠는 거 봐라.]야차 같은 아이들이 침을 뱉으며 골목을 떠났다. 어린 망자도 골목길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걸어오는 내내 머릿속에서 같은 말이 맴돌았다. 아빠를 찾아가겠다는 협박.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어린 망자는 이를 달달 떨며 더러워진 옷을 벗었다. 그러고 화장실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나름의 배려였다.
그걸 끝으로 업경대는 또다시 빛을 잃었다.
“으, 으어어어. 어어어···”
입을 틀어 막힌 아비의 망령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허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재판은 계속되었다. 절차는 이전과 같았다.
아이의 영혼을 치료한 지장보살이 선업을 뽑아냈다. 다만, 나오는 양이 아비에 비해 확연히 적었다. 선업을 쌓을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저럴 줄 알았습니다.”
“저러면 지옥행인가?”
태구가 어두운 표정을 하며 물었다. 양복 차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은데요.”
“흐음.”
태구는 침음을 삼켰다.
‘안타깝구나. 조금만 더 일찍 만났다면, 그랬다면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터인데.’
나설 수 없는 상황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러던 그때였다.
“선생님. 저 어린 망자가 그리 신경이 쓰이면 제가 좀 나서 볼까요? 차사 활동을 하며 모은 업을 조금 나눠 주면··· 아, 한데 또 생각해 보니 그 양이 또 많지는 않아서··· 이런!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이상한 말이 들렸다. 업을 나눠 준다니? 태구가 고개를 돌려 양복 차사를 바라봤다. 그는 괜한 말을 했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업을 나눠? 선업을?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선업은 아니지만 뭐, 그 일종이죠. 차사 일을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인데···”
그렇게 모은 업으로 자신이 짊어진 죄를 삭감한다고 한다. 다만 양복 차사는 유능한 차사가 아니기에 모은 업이 많지 않다고도 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태구가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빌어먹을 이곳의 법도를 알고 싶었다. 이승이라면 고민 없이 나섰을 테지만 이곳은 신의 영역이었으니.
“허면 그쪽 말고 저 아비가 아들에게 나눠줄 순 없는 거야? 그쪽이 그랬잖아. 저 아비가 쌓은 선업이 꽤 많다고.”
“···그게 또 피를 나눈 혈족은 안 됩니다.”
“그럼 나는? 내가 쌓은 업을 저 아이에게 나눠줄 수 있나?”
그의 물음에 양복 차사는 화들짝 놀라 크게 손을 휘저었다.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저야 몇십 년 아니 몇 백 년 차사 일을 더 하면 그만이라지만, 선생님은 생자가 아닙니까! 나중에 망자의 신분으로 이곳에 오면 선업으로 선생님의 위치가 결정되는데 그걸 어찌···”
그러나 그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진광대왕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하, 하하하! 선업을 나눠주겠다? 실로 오만방자한 말이구나!”
작가의 말
자살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저 사후세계가 있다면 그쪽에서나마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에피였습니다. 글로 제 생각을 전달 드렸어야했는데ㅠㅠ.. 아무튼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오늘도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