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64)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64화(64/157)
저승 투어 (4)
“하하하. 선업 나눠주겠다? 실로 오만방자한 말이로구나!”
태구와 차사의 말을 들은 진광대왕은 이때다 싶었다. 그가 박장대소하며 소리쳤다.
‘이런!’
그와 동시에 양복차사가 질끈 눈을 감았다. 선업을 나눠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는데···
‘선생님이 대답하시기 전에 알려드려야, 아니 말려야 해.’
그렇게 양복차사가 용기를 짜냈다. 그가 속사포처럼 떠들어댔다.
“선생님. 안 됩니다. 어서 아니라고 하세요. 당장은 천년만년 살 것 같아도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생자의 인생이란 말입니다. 선생님이 당장 내일 죽어 이곳으로 오게 되면 어쩌시려고요. 심판의 추는 분명 죄업으로 기울어질 겁니다!”
그럴 경우 빼도 박도 못하게 저승행이다.
더군다나 선생님이 모시는 분의 현신은 다른 차원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만에 하나 그분이 나설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선생님은 지옥 불에 떨어져 고통받게 되겠지.’
그런 양복 차사의 우려에 태구가 뭐라 답을 하려던 때였다.
“어찌하겠느냐. 이 오만한 인간아. 이래도 네 업을 나눠주고 싶으냐?”
진광대왕이 다시금 호통쳤다. 쩌렁쩌렁한 목소리 안에 신력이 가득했다. 태구를 압박하기 위함이었다.
‘어서 답해보거라, 이놈아.’
그는 이어질 태구의 반응을 상상했다.
호기롭게 내뱉은 말을 황급히 주워 담는 모습이라던가. 볼품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을 쥐어짜 내는 모습이라던가.
뭐든 좋았다. 놈의 기를 꺾어 놓고 싶었다. 차사들이 꽁지를 말고 돌아오던 때처럼···
‘내가 겁을 먹고 꼬리를 말길 바라고 있군. 꺾인 모습을 바라는 건가?’
그러한 진광대왕의 속내는 태구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마뜩잖은 눈빛이 그 증거였다.
아무래도 지난날, 살려준 유정원 때문이겠지.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신이라고 했으니 내 행동이 고깝게 느껴졌을 거야. 처음 마주한 신부터 저런 분위기면 나머지 신들도 마찬가지겠군.’
그렇다 한들 후회는 없다.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다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로마에 온 이상 로마에 따라야 했다. 더불어 기왕 따를 거면 웃는 얼굴로 따르게 맞았다.
“이놈아 ! 묻질 않느냐!”
진광대왕에 채근에 태구는 공손한 태도로 즉답했다.
“예. 그럴 수 있다면 제 업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혹독한 형벌을 받기에 너무 어리고 불쌍한 영혼이 아닙니까.”
“그, 그러겠다고?”
“저승의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면요.”
진광대왕이 인상을 찌푸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다고 답할 줄이야. 게다가 저를 향한 태도 역시 공손하기 짝이 없다.
‘오만방자하며 무력까지 사용했다 하였는데···’
들은 것과 영 딴판인 모양새가 아닌가.
“가능하겠습니까?”
“···크흠! 잘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냐? 허언 역시 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필히 기억해야 할 것이야.”
그리고 또 한 번 진광대왕의 예상을 빗나가는 상황이 펼쳐졌다.
“저를 이곳까지 안내해 준 차사가 말하길 진광대왕 님은 공명정대하며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분 앞에서 허언하다니요.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태구의 입에서 낯간지러운 말이 쏟아졌다.
그는 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대체로 신들은 대접받길 원했다.
다만 그들을 대하는 데 있어 거짓은 없어야 했다. 무릇 신격을 지닌 존재라면 거짓을 간파할 능력 정도는 갖고 있으니.
그렇다고 비굴하게 몸을 숙여서는 안 된다. 그럼 아첨으로 보일 터이니. 태구는 진광대왕의 눈을 마주한 채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 그리고 직접 진행하신 재판은 아주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감정의 동요 없이 망자에게 심판을 내리던 모습.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면서 성력을 끌어올렸다. 경험상 그의 기운을 싫어하는 신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놈 보게나?’
노기 등등했던 진광대왕의 목소리가 한풀 꺾인다.
“존경스러워? 어, 어떤 점이 그리 존경스러웠느냐? 어디 한번 자세히 말해보거라.”
더불어 흉흉한 안광에 흥미가 피어오른다. 태구는 진심 섞인 답을 올렸다.
“망자의 사연에 감정이입 하지 않는 부분이 존경스러웠습니다.”
“하하! 난 또 무어라고. 그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니더냐.”
“그 기본을 지키기가 가장 어려운 법 아니겠습니까.”
그 달콤한 말에 진광대왕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인제 보니 이치를 아는 인간이 아닌가. 한데 그날은 어찌 그런 짓을 벌였을까.
“하하. 그래, 그렇지! 기본을 지키는 건 어려운 법이지. 그래서 저승의 법도를 그리 어겼느냐?”
진광대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태구는 이 자리에서 꼬인 실을 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예? 저승의 법도를 어기다니요?”
“명이 다한 망자를 살린 일 말이다! 시치미 뗄 생각 말거라!”
진광대왕의 압박에도 태구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한 점의 부끄럼도 없다는 듯 굴었다.
“명이 다한 망자라니요. 아, 혹시 유정원 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흥. 인간 놈들은 꼭 이렇듯 직접적으로 말을 해야 실토하지.”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모든 것을 걸고 말하건대 저는 결코 망자를 살린 적이 없습니다. 제가 도운 유정원 씨는 분명 살아있는 상태였습니다.”
태구는 ‘이승’ 과 ‘생자’를 강조하며 자신이 따라야 할 법도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그러니 저는 저승의 법도를 어긴 적이 없습니다. 제가 도운 이는 생자였고 그가 있던 장소 역시 이승이었으니까요.”
‘작정하고 법도를 어긴 것은 아니군. 따져보면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지도 않았고 저놈도 저놈이 따라야 하는 법도가 있으니···’
이해와 오해는 한 끗 차이라고 했다. 태구의 설명을 들은 진광대왕은 생각이 많아졌다. 그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를 틈타 태구는 본론을 드러냈다.
“진광대왕님.”
“?”
“다시 말하지만 저는 저승의 법도를 존중합니다. 그래서 여쭤보았지요. 제 선업을 저 망자에게 나눠줄 수 있냐고 말입니다.”
진광대왕은 그리 묻는 태구의 의도를 알아챘다. 그는 망자를 도와주고 싶어 했다. 어느 정도 오해가 풀렸기에 진광대왕은 말꼬리를 잡지 않았다.
“그래. 그랬었지. 정녕 그러하겠느냐?”
짐짓 궁금하기도 했다. 어떤 선업을 쌓았는지 말이다. 저승에 불러오긴 했으나 사실 그들도 태구에 대해 잘 알진 못했다.
“예. 그러고 싶습니다.”
그렇게 태구는 지장보살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태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백옥같은 손이 태구의 몸체에 닿는 순간이었다.
솨아아아——
재판장 안으로 하얀 광채가 휘몰아쳤다. 금빛 원형 구체가 재판장을 가득 메웠다.
“이, 이 무슨!”
“이게 저 생자의 선업이라고?”
압도적인 양에 옥졸들이 웅성거렸다. 비단 옥졸들만 놀랐을까.
“!”
놀란 이로 치면 지장보살이 제일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손만 뻗었을 뿐인데 이렇듯 많은 선업이 나올 줄이야.
지장보살은 토끼 눈을 하며 황급히 태구의 몸에서 손을 뗐다.
그러는 순간에도 빛무리는 계속해서 퍼져 나갔고, 그 안으로 태구의 선업이 비친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의 육신을 치료해 주고,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만져주고,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악마를 퇴치하고, 배고픈 이들에게 밥을 주는···
황금빛 구체는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진광대왕은 한 박자 늦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안이 벙벙했다. 쿵당탕탕— 요란한 소리가 재판장을 울렸다. 나무 의자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어찌, 어찌 인간의 몸으로 그리 많은 선업을 쌓을 수 있단 말이냐! 말도 안 된다. 수천 명의 목숨을 살린 의인도 이리 많은 선업을 쌓진 못하였는데. 대, 대체 네놈은 아니 너는···”
신력 깃든 진광대왕의 목소리가 재판장을 울렸다. 태구는 여전히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수천을 넘어 수십억 명의 목숨을 살린 전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공손한 말투에 어울리지 않는 광오한 멘트였다.
***
결과적으로 아이는 도산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태구가 나눠준 선업 덕분이었다.
“너무 아프고 무서웠어요. 흐으, 편해지려고 한 선택이었는데··· 저 때문에 아빠까지 힘들게 만들었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쓸데없는 소리! 아빠는 괜찮아. 그러니까 괜한 소리 말아.”
“흐으으.”
그렇다고 재판이 다 끝난 건 아니다. 저들은 남은 9개의 지옥을 거치며 재판받아야 한다.
허나, 태구는 알고 있었다. 저들은 분명 무탈할 것이다.
애초에 그가 나선 이유도 아이의 영혼이 맑았기 때문이니까. 즉 살생죄를 제한다면 저들이 짊어질 죄명은 없단 말이다.
“그래. 아프고 무서웠지? 그런데 이제 그것도 끝이야. 앞으로는 편안한 일만 있을 거야. 이미 벌어진 일은 돌아볼 필요 없어. 앞으로만 생각해. 미련 두지 말고 아버지 손 잡고 앞만 보고 가. 그러라고 도운 거니까.”
“흐으, 흐으으으···”
태구는 그리 말하며 아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 순간.
아이의 생전 모습이 보였다.
아이가 다녔던 학교, 아이를 괴롭혔던 무리,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처절한 노력까지··· 훌훌 털어버려야 할 기억이었다.
그렇게 아이의 기억을 훑는 사이.
지장보살이 다가왔다.
아비와 아들의 영혼을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듣기로 심판의 추가 선업 쪽으로 기운 망령들은 차사가 아닌 지장보살의 안내를 받는다고 한다.
길잡이가 달라진 만큼 다음 지옥으로 향하는 길 역시 달라진다고 했다.
“잘 가.”
태구는 저들이 편안하길 바랐다. 그런 마음을 담아 작별을 고했다. 아이는 미소로 화답했다. 처음 보는 미소였다.
“형이 말한 대로 앞만 보고 갈게요. 흐읍. 나쁜 생각은 하지 않을래요. 아빠랑 같이 있을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건 다 잊어도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다음 생이 있다면 어떻게든 형을 찾아가 갚을 거예요.”
“그러던가.”
그렇게 두 영혼이 도산지옥을 떠났다.
***
태구에게도 새로운 길잡이가 생겼다.
“저기 보이느냐? 저기가 바로 제2 지옥, 초강이 다스리는 화탕지옥이다. 베풂을 모르는 놈들이 가는 지옥이지.”
진광대왕이었다. 길잡이가 달라진 만큼 가는 길도 달라졌다.
태구는 진광대왕이 다루는 검은색 구름에 올라타 있었다. 발밑으로 저승의 전경이 보였다.
“내가 칼로 다스린다면 초강은 펄펄 끓는 물로 다스리지. 저기 무쇠솥 안으로 버글거리는 것들이 보이느냐? 저것들은···”
“망자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네요.”
“그, 그래! 바로 죄를 지은 영혼들이지!”
진광대왕이 스쳐 지나가는 지옥을 설명했다.
태구를 대함에 있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였다.
태구가 지닌 선업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게다가 공손하기 짝이 없는 태구의 태도는 호감을 불러 사기에 충분했다.
또 그뿐일까. 태구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흥미로웠다. 특히나 심상의 신전에 대해 들었을 땐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너도 저승과 비슷한 공간을 다스리고 있다 하였지? 네가 다스리는 공간도 참으로 궁금하구나.”
어쩐지 처음 볼 때부터 같은 기운이 흐른다 했었지. 자세히 보니 소싯적의 저를 보는 것도 같았다.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만 궁금하다 하시니 다른 분들을 뵙고 난 후에 따로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기대되는구나.”
진광대왕은 호탕한 미소를 띠며 태구의 어깨를 투덕거렸다.
둘은 상공을 가로지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로가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고 즉답했다.
그 과정에서 태구는 저들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제5 지옥에 도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