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65)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65화(65/157)
저승 투어 (5)
태구는 향기로운 꽃밭을 지나고 있었다.
자지러지는 망자의 비명 대신 은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여타 지옥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오색 꽃밭도 그 모양새가 이상하긴 했다.
‘혀 위에 자라난 영초라···’
신력 품은 식물은 흙이 아닌 인간의 혀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말로 지은 죄인을 처벌하는 신이라고 하였지.’
이곳을 관장하는 신과 어울리는 꽃밭이었다.
그렇게 흥미로운 눈길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때였다.
“자, 다 왔네. 내가 말한 곳이 바로 저기야. 염라대왕을 포함한 이들은 저 너머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어.”
정원의 중심부.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회랑이 보였다.
“제가 앞장서야 할까요?”
이를 본 태구가 물었다. 진광대왕은 휘휘 손을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신물은 자네의 생애만 비출 테니까.”
“아아—”
오면서 들은바 회랑을 둘러싼 거울은 업경대의 본체라 들었다.
도산지옥에서 본 업경대는 이 거울의 조각으로 만들어졌단 말이다.
조각으로 만든 업경대는 망자의 죄업만 비추지만, 본체는 영혼의 모든 생애를 훑는다.
지옥의 구주들이 태구를 부른 이유였다.
과연 태구가 저들이 생각한 존재가 맞는지, 맞는다면 일을 맡기기에 적합한 인재인지, 출신 성분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등···
업경을 통해 그의 진면모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한 설명에 태구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굳이 제 입으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됐으니.
그런데 걷다 보니 이상했다.
태구가 고개를 갸웃하며 진광대왕을 불렀다.
“차원을 넘어온 자가 아니야? 아니, 아니지. 넘어오긴 하였으나 본래 우리 차원 소속 아이였구나! 허어. 참으로 아까운 인재를 빼앗겼어. 적절한 후보를 보내준다고 하더니! 이런 날강도 같은 것들.”
그는 번쩍이는 업경을 보며 혼잣말하고 있었다.
“진광대왕 님.”
그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왜 그러느냐?”
“어쩐지 회랑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아서요.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겁니까.”
“으응? 이게 다 너 때문 아니더냐! 하하.”
어리둥절한 태구의 물음에 진광대왕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
“대체 그간 무슨 일을 하며 산 건지··· 아무튼 네 생애를 다 비춰야 비로소 회랑은 끝이 날 터.”
“살아온 나날들을 다 비춘단 말입니까? 그 세월을 따지면 백년도 넘을텐데요. 필요한 장면만 골라 보이는 신물이 아니었습니까?”
“그 필요한 장면이 이렇게나 많다는 말이다!”
아. 태구는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회랑 너머에 자리한 누각.
“신들이 보낸 성자임이 확실해졌군.”
“그보다 염라! 신들의 회의에 가면 꼭 따져 물으세요! 감히 우리 차원의 영혼을 데려가다니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우리 아이를 돌려주면서 그런 생색을 내다니.”
“으음. 잘 키워 보내줬으니 좋은 일 아닌가요?”
그곳에 모인 지옥의 구주들이 소란스럽게 떠들어댔다. 업경으로 확인한 태구의 생애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태구는 그들이 찾던 존재가 맞았다.
다차원 신들의 회의에서 보내준 성자··· 그가 바로 태구였다.
변변찮은 녀석이 오면 어쩌나, 또 그들이 찾는 존재가 아니면 어쩌나 싶었는데···
기우였다. 신들은 태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도 괜히 아깝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곳의 신들을 뵙습니다. 헤스티아 님을 모시고 있는 강태구라고 합니다.”
집 나간 아들, 아니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될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
태구는 신들의 환대를 받았다.
익숙한 일이었다.
“세상을 위태롭게 만드는 존재인 줄 알았더니, 그도 아니었군. 일평생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지켜냈더구나.”
마주한 염라는 자비로운 미소를 띠며 말했고.
“그분의 뜻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태구는 그 공을 헤스티아 여신에게 돌렸다.
“끄응.”
“본래는 우리의 뜻을 받들 아이이건만.”
“내 저럴 줄 알았지!”
염라를 포함한 구주들이 침음을 삼켰다.
그들은 업경을 통해 태구의 생애를 보았다.
그러면서 그의 출신 성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본적은 이곳, 지구였다.
첫 번째 생을 끝냈을 때 그는 이곳 저승으로 와야 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타 차원의 신이 태구의 영혼을 이들 몰래 데려간 것이다.
모르면 몰랐지 알고 보니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영특한 자식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렇게 빼앗긴 자식이 장성하여 돌아와 가짜 부모를 찬양하고 있다.
입안이 쓸 법도 했다.
허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염라가 본론을 드러냈다.
“크흠. 이번엔 우리의 뜻을 받들어야겠는데?”
“뜻이라 하면 차원을 넘어온 마물을 말하는 건가요?”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군.”
“제 생각이 맞았나 보네요.”
짐작대로였다.
“그래. 그것들 때문에 세상에 혼란이 일어나고 있어. 죽어 마땅한 망자가 살아 타인을 해치고, 아주 오래전에 봉인된 악령이 눈을 뜨는가 하면 저승의 일꾼인 차사들을 사냥하기에 이르렀지.”
자체적으로 해결을 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염라를 포함한 시왕은 저승을 비울 수 없었고, 인계로 나간 차사들은 그것들보다 약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간 차사들이 맡은 주 업무는 영혼의 수거였으니.
악령과 드잡이할 때도 있었으나, 악령과 악마는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였다.
결국 계속된 차사들의 희생에 염라는 신들의 회의에 참석하여 도움을 청했고, 그들로부터 지원군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존재가 바로 태구였다.
그러한 염라의 설명에 태구는 이제야 귀환의 전후사정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 자네가 우리를 도와줘야겠어.”
경험이 적은 차사들을 교육하고, 악을 상대할 방법을 가르치며, 어지러운 인계의 질서를 바로잡아달라는 명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그럴 겁니다. 그 역시 그분의 뜻이니까요. 다만···”
“?”
“신물을 통해 보아서 아시겠지만 제가 있던 그곳과 이곳의 환경은 매우 다릅니다. 그곳 사람들은 신성력과 성자에 익숙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렇지 않죠. 그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워질 겁니다. 뭐, 저야 상관없지만···”
“아아— 그 걱정이라면 자네가 할 거 없어. 우리 측에서 따로 생각한 바가 있으니까.”
염라가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순간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차사가 잽싸게 태구에게 다가왔다.
그가 금빛 보자기에 싸인 짐꾸러미를 태구에게 넘겼다.
“아무렴 혼란을 잡겠다고 더 큰 혼란을 불러와서 되겠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될 법한 신물들을 몇 개 챙겨 주겠네. 그걸 이용하면 별다른 문제 없을 거야. 자잘한 것들이야 우리 측에서 조처할 테고.”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든 신이 베푸는 건 받고 봐야 한다. 태구는 받아 든 짐꾸러미를 확인했다.
시계, 책, 나침반··· 평범한 물건처럼 보였으나 그럴 리는 없다. 태구는 받아 든 물건에서 강한 신력을 느꼈다.
“신물과 관련해서는 내 수하가 친절히 알려줄 것이야.”
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아하니 꽤 가치가 있는 물건일 터. 짐짓 기대되었다.
“수하라면 저를 안내해 준 차사를 말입니까?”
“그보다 더 유능한 수하를 붙여 주고 싶은데.”
염라의 눈길이 옆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짐꾸러미를 넘겨준 저 차사를 붙일 모양이다. 태구는 고개를 저으며 제 의견을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888번이라 불리는 차사에게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완곡한 거절에 염라가 물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한번 맺은 인연은 중시하는 편이라서요.”
“하, 하하하.”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웃음을 불러왔다. 그런데 그 답변이 퍽 마음에 들었다. 또 그다지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염라는 태구의 뜻을 따라주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불편한 것이 있습니다.”
태구는 기회를 틈타 다시 말을 이었다.
“바라는 것이 꽤 많구나.”
“그렇다고 과한 것을 바라지는 않지요. 이번에 말씀드릴 것도 그렇고요.”
“?”
“인간의 몸으로 저승을 오가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말인데, 제 공간과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공간?”
염라의 되물음에 태구는 심상의 신전을 설명했다.
헤스티아 여신님의 공간이기에 업경에 비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시금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나 길고 긴 대화 끝에 태구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태구는 신들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고, 두 손 무섭게 귀가할 수 있었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올 때 역시 차사와 함께였다.
***
태구가 저승 투어를 마치고 이승으로 돌아왔을 때쯤.
고 씨 부자의 죽음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 때문이었다.
아들과 그 아버지가 작성한 유서.
그중 아들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는 진실을 왜곡하기에 이르렀다.
왜곡된 진실이 기사로 쏟아졌다.
[잘못된 부정이 불러온 참극] [동반자살? 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았나.] [자녀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동반 자살의 비극] [가정폭력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부자] [17살 아이의 몸에 남은 흔적. 가정 폭력 신고는 없었다.]“미친. 야 기사 뜸”
그러한 기사를 본 앳된 얼굴의 여학생이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무슨 기사?”
“기사? 박은솔. 너 운전기사 생겼냐?”
“오, 박은솔 클라스 지려요.”
또래 남학생 무리가 낄낄거리며 반응했다.
“병신들아. 고철 기사 떴다고.”
박은솔은 고개를 저으며 그들의 눈앞으로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그에 남학생 셋이 빠르게 기사 제목을 스캔했다.
“부정? 이거 부정 타서 죽었다는 말임? 귀신 들려서?”
가장 먼저 윤지섭이 반응했다.
“아. 진심 소름 돋는다. 이 무식한 새끼야. 부정이 그 부정이겠냐? 고철네 아빠가 죽였다고 암시 주는 거잖아.”
박은솔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윤지섭이 발작했다.
“무식한 새끼? 야, 박은솔. 내가 경고하는데 진짜 입조심해라. 나 여자도 때린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잘못했어요 할 줄 알고? 누굴 고철로 보나. 야, 때려 봐 ! 바로 우리 아빠 병원 가서 진단서 끊고 네 앞길 조져 주려니까.”
그런 둘의 다툼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최진웅이었다.
“하여간 눈만 마주쳤다 하면 싸운다니까. 둘 다 성격 좀 죽여라. 좋은 날이잖아.”
“···쟤가 나 때린다잖아.”
“그래서 지섭이가 진짜 때리겠냐? 말만 저러는 거지. 그보다 핸드폰 좀 줘봐. 제대로 좀 확인해 보게.”
“으응.”
박은솔이 얼굴을 붉히며 핸드폰을 건넸다. 윤지섭을 대할 때와는 퍽 다른 태도였다. 최진웅은 조용히 기사를 정독했다. 어디에도 학폭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어때?”
“뭐 있어?”
“···”
“왜 말을 안 해. 조마조마하게!”
최진웅은 키득거리며 다시 핸드폰을 건넸다.
“조마조마는 무슨. 누가 보면 우리가 죽인 줄 알아. 아무튼 깔끔해. 별 이야기 없어.”
“하기야 죽은 고철이랑 우리랑 무슨 상관이라고. 그리고 진웅이가 그랬잖아. 별걱정 안 해도 된다고. 난 그 말 믿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건네받은 박은솔이 샐쭉 미소를 지었다. 윤지섭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오, 그래. 나만 쫄렸지? 아무튼 그때 진웅이 네 말 듣길 진짜 잘한 것 같다. 그 와중에 어떻게 그걸 생각하냐? 존나 소시오패스라니까.”
며칠 전, 그들은 고철네 집을 찾았다.
또 보자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싸늘한 시신 두 구였다.
‘우아아악!’
‘시, 시발. 112···’
‘미친 새끼야. 돌았냐? 신고를 왜해. 우리 인생 족친다고.’
‘설마 쟤 우리 때문에 자살함?’
‘···야. 고철새끼 핸드폰 찾아야 할 것 같아.’
‘핸드폰만 가져간다고 될까?’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본인들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를 하는 대신 고철의 휴대폰을 챙겨들었다.
그안에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증거가 차고 넘쳤으니.
“지섭아. 소시오패스가 아니라 이런 걸 두고 현명하다고 하는 거다.”
“응. 니 애비 교수. 잘났어요.”
“응. 니 애비도 만만치 않죠. 부동산 업자.”
“푸흐하하—!”
그들은 그리 말하며 박장대소했다. 그때,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남학생의 입이 열렸다. 김영훈이었다.
“야, 진웅아. 그래서 고철 휴대폰 어쨌냐? 잘 처리했냐? 설마 버림?”
이른바 회장님 아들이었다. 중견기업 회장도 회장이니까. 그 물음에 최진웅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걸 왜 버려. 돈 주고도 못 사는 추억인데. 우리 꼰대가 말하길 학창 시절 추억은 평생을 간다더라. 그래서 내가 잘 보관해 뒀지. 저기 서랍장에 있어.”
김영훈도 피식 미소 지었다. 최진웅이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꺼내올까? 추억 좀 곱씹어 봐?”
“됐어. 보려면 삼 일 뒤에 보자.”
“엉?”
“고철 새끼, 그간 우리 웃음벨 역할 톡톡히 했는데 그 정도 추모 기간은 가져줘야지.”
“푸하하하 ! 그 말도 맞네.”
“그럼 삼 일 뒤에 개봉? 어쩐지 틀딱들의 타임캡슐 버전 같은데?”
그렇게 그들은 사흘 후를 기약했다. 저들에게 닥쳐올 일을 몰랐기에 할 수 있는 약속이었다.
대가를 치러야 할 때
저승 투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인계는 사일이란 시간이 지나 있었다.
처음 예상한 칠일보다 삼일이나 빠른 복귀였다.
‘통로를 뚫어 달라하길 잘했지.’
아니었으면 족히 하루는 더 걸렸을 터.
태구는 심적 피곤함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발 뻗고 한숨 푹 자고 싶었으나.
‘주검은 발견되었으려나. 못해도 죽은 지 칠 일은 지난 듯싶은데···’
그에게는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결국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다시 집 밖을 나선 태구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낡은 빌라 단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이의 기억을 통해 확인한 장소, 고 씨 부자의 집이었다.
“저 집, 짐 빼는 모양이네?”
그들이 살았던 빌라 앞으로 포터 차 한 대가 서 있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은 차량을 보며 입방아를 찧었다.
“아는 집이야?”
“자기 몰라? 저 집 그 집이잖아. 이번에 기사 뜬 부자!”
“어머, 어머! 그 동반 자살?”
슬쩍 들어보니 고 씨 부자 이야기인 듯하다. 다행히 부자의 주검은 수습이 된 모양이고.
“우리 동네라고 듣긴 들었는데. 바로 코앞이었네! 아유, 저 집 아빠가 애를 개 패듯이 팼다면서?”
“응. 어쩐지 애가 항상 우중충해 보이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 나이도 어린데 참 딱해. 얼마나 무서웠을까. 제 손으로 유서까지 쓰고···”
“나도 봤어. 집이 싫다고 적어놓고 그런 선택을 했다지? 하아, 근데 그 아저씨 진짜 사람 좋아 보였는데.”
“그게 다 연기였던 거지! 이래서 사람 겉만 보고는 알 수 없다니까. 게다가 그 아빠, 자기가 애 학대한 거 걸릴까 봐 자퇴까지 시켰다잖아.”
“참 무섭다, 무서워. 나는 내 자식 무릎만 까져도 심장이 찢어질 것 같던데.”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애가 유서를 쓰다니, 아이 아빠가 폭력을 행사했다니. 사실이 아니다.
거짓된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듯싶다. 어떤 경로로 저러한 이야기가 퍼진 걸까?
답은 뻔했다. 이익을 본 자가 범인이다.
‘분명 그것들 짓이겠지.’
태구는 사나운 눈빛을 하며 빌라 출입문을 넘었다. 누군가 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저 사람?”
“왜?”
“그 요즘 유명한 퇴마사 있잖아. 그 사람이랑 좀 닮은 것 같아서···”
“에이. 잘못 봤겠지. 카메라도 안 들고 여길 왜 오겠어.”
문은 열려 있었다. 그 안에서 고인의 짐을 정리하는 두 사람이 보였다.
한 명은 인부로 보이고, 나머지 한 명은 망자의 지인이다. 태구는 단박에 그를 알아보았다. 아이의 기억 속에서 본 사람이었으니.
‘봉봉 삼촌—!’
죽은 아이, 고상철은 그를 그렇게 불렀고.
[봉철아, 우리 부자 뒤처리 좀 부탁한다.]고상철의 아버지, 고인택은 유서를 남기며 저자에게 자신들의 뒤를 부탁했다.
그만큼 그는 부자와 각별한 사이였다.
“뭡니까. 기자예요?”
그런 봉철의 동공에 현관문을 넘어서는 태구가 담겼다. 그가 와락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저 기자 아닙니다. 이 집에 살던 분들에게 부탁받은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태구의 설명에도 그의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아무래도 안 좋은 경험을 겪은 듯 보인다.
“인택이 지인이라면 다 내 지인인데, 부탁은 무슨 부탁을 받아! 기자인 거 다 아니까 나가요. 여기 뭐 주워 먹을 거 없으니까 나가라고!”
그가 손을 휘휘 저으며 앞으로 나서려던 때였다.
“어? 퇴마사?”
누군가 태구를 알아보았다. 짐을 정리하고 있던 유품정리사였다.
“퇴마사?”
그 말에 사나운 기세로 다가오던 봉철이 멈칫하며 되물었다.
“왜 티비에도 나오고 인터넷 방송도 하잖아요. 저 분, 기자 아니에요. 퇴마사 강···태구? 맞죠?”
명성을 갖고 있으면 이런 점이 참 좋다. 몹시 흥분한 유품 정리사가 태구를 대신해 그를 설명했다.
“네.”
“역시! 그런 것 같더라니!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무슨 부탁을 받았길래··· 돌아가신 분들 지인이세요? 그도 아니면 그분들의 영혼과 마주하기라도 한 거예요?”
끄덕끄덕
“어이구야!”
태구의 끄덕임에 유품 정리사는 놀란 얼굴을 했다. 봉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벙벙한 얼굴로 태구를 바라봤다.
“정말입니까? 정말 그 퇴마사··· 아니, 인택이 부탁을 받고 왔다고요? 우리 인택이, 지금 여기 있습니까?”
얼굴은 잘 모르나 태구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전처럼 나가라 말할 수 없었다.
“아뇨. 여기 없어요. 두 분 다 좋은 곳으로 갔습니다. 그래도 잘못된 건 바로 잡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찾아온 겁니다.”
태구가 말했고 봉철은 되물었다.
“잘못된 거라니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사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금 정확하게 듣고 싶었다.
“고인택 씨. 아들 때릴 사람 아니잖아요. 아들이라면 끔찍이 여기는 사람이잖아요. 저승길 위에 혼자 남을 아들이 걱정돼 제 목숨마저 끊을 정도로 부성애가 넘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이런 취급 받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
맞다. 제 친구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아들을 학대할 위인이 못 된다.
그러한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던가.
기자를 찾아가 인터뷰하기도 했고, 경찰에게 재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는, 아니 강태구 퇴마사는 자신 있다는 듯 말하고 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고. 그러기 위해 왔다고.
기대하면 안 되는데, 또 실망만 할 텐데··· 봉철이 울분에 차 소리쳤다.
“맞아요. 내 친구 고인택이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근데 아무도 안 믿어주는데 뭐 어쩌려고요. 어떻게 바로 잡겠다는 건데요? 예? 세상 사람 전부가 인택이가 살인자라고 하는데, 천하의 몹쓸 놈이라고 하는데—!”
태구는 그를 위로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살인자를 찾을 겁니다. 그 증거가 집 안에 있어서 그걸 찾으러 왔고요. 그러니 물건 몇 개 좀 가져갑시다.”
“증거?”
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거침없이 작은 방문을 열었다. 아들, 고상철의 방이었다.
“아이고, 그 방은 이미 다 치웠는데.”
빈 책상, 빈 옷장, 침대···
아이의 방에는 큰 가구만 남아 있었다.
“다행히 남아 있네요.”
태구는 그리 말하며 침대 헤드 부근에 손을 넣어 휘적거렸다. 아빠가 볼까 숨겨둔 아이의 일기장이 만져진다.
‘일단 하나는 찾았고.’
그것들의 악행이 기록된 증거물 1 되시겠다. 태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금 거실로 나갔다.
‘이 자리에서 항상 웃었던 것 같은데.’
학폭으로 병든 아이의 하루는 매일 매일이 지옥이었다. 가만있어도 눈물이 나고, 몸이 떨렸다.
그런데 거실에 나와 있을 때면 억지웃음을 짓곤 했다. 마치 누군가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이다.
사실 아이는 알고 있었다. 저를 걱정한 아빠가 저 몰래 홈 캠을 설치해 뒀음을. 아이는 그런 아빠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찾았다.’
태구의 시선이 화재경보기에 닿았다. 정확히는 화재경보기 모형을 한 소형 CCTV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증거물 2 를 찾아내고야 만 태구였다.
****
학교 폭력은 피해 학생의 존엄과 영혼을 파괴한다.
더 나아가 피해 학생이 속한 가정까지 파괴한다.
심판받아 마땅한 죄악이다. 당장 그것들을 찾아 신전에 가둬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떠난 자이지만 그런 오명을 뒤집어쓰게 할 순 없지.’
아들의 억울함을, 아버지의 오명을 벗겨주고 싶었다.
더불어 그것들의 육신에 벌을 주고자 했다.
영혼은 태구가 맡는다고 쳐도 육신은 다르다.
타인을 때리고 짓밟은 육신 역시 그에 걸맞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무리다. 찾아낸 증거가 있다 한들 자신할 수 없다.
아이의 기억으로 본 그것들의 배경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경찰도 믿지 못했다.
허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아껴둔 카드를 쓰고자 했다.
‘권력에는 더 큰 권력으로, 있는 집에는 더 있는 집으로 상대 해야지.’
[여보세요? 선생님?]수화기 너머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정원의 모친, 오금희였다.
“예. 접니다. 따로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어떤 일이요?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이번에 보도된 부자 동반 자살 사건 아시죠? 실은 그 아이가 생전 학교 폭력을 당해서 자퇴했는데 그 과정에서 담임과 가해 학생들이···”
태구는 사건의 진상을 설명함과 동시에 원하는 바를 말했다.
아이를 괴롭힌 주범의 신상 명세와 학폭을 묵인한 담임의 처벌 그리고 잘못 나간 보도를 바로 잡길 원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갖고 있는 증거물의 사본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에 오금희는 몹시 분노하며 시원시원하게 지원을 약속했다.
태구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진실을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정정 보도는 내일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아직 회수할 물건이 하나 더 남아서요.”
그러고 얼마 후.
태구는 가해 학생의 신상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들의 얼굴과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고.
‘보자, 생년월일이···’
그가 알고 싶은 정보는 생년월일이었다.
태구는 신전 안에 머무는 양복 차사를 불러냈다. 곧이어 양복 차사가 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밥 먹고 있었나 봐?”
태구의 말에 양복 차사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물었다.
“우, 우와. 제가 밥 먹고 있던 것도 보신 겁니까? 역시 신전의 주인답습니다.”
“아니. 뭐 한다고 그걸 보고 있겠어. 그게 아니라 입가에 밥풀 묻었어.”
태구는 그리 말하며 차사의 입가를 가리켰다. 양복 차사가 머쓱하게 웃으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하하. 밥풀 보고 그러셨구나. 아! 물론 시키신 일은 다 끝내고 먹었습니다. 신전에 머무는 김수인 씨가 밥을 차려준다고 하셔서···”
그가 시킨 일이라 함은 신물의 보관을 말했다. 태구는 저승에서 받아온 신물을 신전의 창고에 보관해 두라 일렀었다. 그땐, 이렇게 빨리 꺼내 쓸 줄 몰랐었다.
“김수인 씨, 솜씨 좋지. 알아. 그보다 창고에 보관해 둔 신물 말이야. 그거 당장 좀 쓰고 싶은데?”
“에? 신물을요? 서, 설마 차원의 결계를 넘어온 그것을 찾으신 겁니까?”
“그건 아닌데 뭐, 비슷해.”
“허, 허면 일단 지옥에 보고부터···”
“보고할 거 없어. 우리끼리 가도 충분하니까.”
낯빛이 허옇게 질린 차사를 보며 태구는 다시 말을 이었다.
“명부책이라고 했지? 망자의 생애가 기록된 신물 말이야. 그거랑 생자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는 신물 그 두 가지 좀 가지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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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인적 드문 재개발 주택 부지에 자리한 주택.
“끄, 으으으······”
그곳에 한 아이가 쓰러져 있다. 교복은 붉은 피로 범벅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맞은 것이리라.
“이래서 경력직은 무시 못 해요. 고철 새기는 한 시간 넘게 버티는데 이건 뭐 삼십 분도 못 버티네.”
“그러게, 언제 또 고철만큼 길들이냐.”
그리 만든 이들은 고상철을 죽음으로 몰고 간 김영훈 패거리였다. 그들은 정신 잃은 아이를 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물이라도 뿌려볼까?”
박은솔이 나섰다. 김영훈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됐고, 오랜만에 사진이나 찍자. 그게 더 재미있을 듯.”
그 말에 누구도 토 달지 않았다. 그들의 김영훈의 말이라면 뭐든 따랐다.
윤지섭이 능숙하게 아이의 교복을 벗겼고, 최진웅은 짐짓 진지한 표정을 하며 처참한 아이의 모습을 찍었다.
“크크크.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 난다.”
“고철 생각?”
“엉. 그 새끼 제 사진 볼 때 그 표정 진짜 존나 웃겼는데.”
그러던 그때였다.
“그래. 쟤네 찾아온 거야. 악마나 다름없는 것들이지.”
순간 낯선 이의 목소리가 아이들의 귓가를 때렸다.
이곳은 김영훈 패거리의 아지트다. 그들만의 공간이란 말이다.
그런 곳에 타인의 목소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
“저거 그, 비제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