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71)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71화(71/157)
일본 출장 (5)
태구는 두 망령의 생애 마지막을 엿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손목에 찬 시계가 번쩍였다.
저승에서 받아온 신물 중 하나로 접촉한 망령의 생애를 알려주는 기능을 지닌 신물이다. 이른바 명부책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적용 대상이 ‘망자’로 한정된 신물이다.
‘관리대상자라고 뜨는군. 보자, 또 80년 전 사망이라···’
태구는 그렇게 신물의 기능을 통해 망령의 이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들이 이곳에서 얼마나 오랜 기간 머무르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무려 80년이다. 아이들은 강산이 여덟 번 바뀌는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 긴 세월을 이렇게 좁은 다락에 갇혀 있었다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또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아이들의 죽음은 특히나 더 마음이 쓰였다. 거기다 불의의 사고도 아닌 스스로 한 선택이라니.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런 선택을 하고 나서도 그들은 평안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이역만리 타국에 발이 묶이는 지박령 신세가 되었다.
그뿐인가, 저들을 저리 만든 원흉과 같은 땅에 얽매여 있다.
죽어서나 살아서나 악령의 눈치를 보고 좁은 다락을 전전하는 아이들. 여기가 바로 아이들의 무덤이었고 지옥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바라는 거라곤 딱 하나.
복수도, 영면도 아니다.
‘고향, 아이들이 어머니가 묻힌 땅···’
그저 감옥 같은 이곳을 벗어나 그리운 고향 땅을 밟는 것이다.
저승에 가더라도 고향 지하에 있는 저승으로 가고 싶다는 게 공통된 그들의 원념.
참으로 소박한 원념이 아닌가.
그리고 그 소박한 원념을 들어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에겐 신전이 있지 않은가.
“너희들의 어매, 아니 엄마가 묻혀 있다는 그곳으로 내가 데려다줄게.”
태구는 서슴없이 아이들의 한을 풀어 주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 중 하나였다. 악을 처단하고 억울한 망령을 구제해 주는 것···
그러한 태구의 말을 들은 두 명령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어매한테 데려다주겠다고요? 정말 그럴 수 있어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믿어 보고 싶은데···]아이의 어투는 간절했다. 잔뜩 날을 세우며 달려들던 때와는 달랐다.
신성력을 정통으로 때려 맞은 효과였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의 행색 역시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놈이 아래에 있어요. 그, 그놈은 우릴 놔주지 않을 거예요.]입가에 묻은 피거품은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고,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표정 역시 편안해 보였다. 둘의 얼굴은 이제 막 피어난 개나리꽃처럼 말겠다. 그 나이대 아이처럼.
[흐흑흑흑흑]그런 아이들의 눈망울에 물이 차오른다. 그들은 고향으로 데려가 주겠다는 태구의 말을 믿고 싶었다.
생전, 도움을 내밀던 어른과 태구는 질적으로 다른 인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허나, 아래층에 있는 존재가 두려웠다.
“두려워할 거 없어.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그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놈과 마주할 일은 없을 테니까.”
아이들의 걱정을 눈치챈 태구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그것과 마주할 필요 없었다.
밖을 나설 필요 없이 이 자리에서 신전으로 들어가면 그만이니까.
태구는 곧장 신전과 통하는 통로를 열었다. 그러고는 그 안에 머무는 양복 차사를 불러냈다.
마음 같아서는 그가 직접 데려 들어가 안내해 주고 싶다만 당장 할 일이 많았다. 거리를 좁혀오는 그놈의 기척이 느껴졌다.
‘일단 그 원흉부터 잡아 족쳐야지···’
앞서 말했지만, 악의 처단 역시 그가 지닌 사명 중 하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에 양복 차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놈과 마주할 일은 없어? 태구님, 지금 무슨 상황인 거예요? 여, 여쭤봐도 될까요?”
김영채 작가였다. 카메라맨도 짐짓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검은색 그림자 따위가 태구에게 달려들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태구의 모양새에 호기심을 느낀 것이다.
“잠시만요. 일단 영혼부터 보내고 그리고서 설명해 드릴게요.”
태구에겐 상황을 설명할 의무가 있었다. 프로그램 출연진이 아닌가. 하지만 그전에 아이들부터 들여보내고자 했다.
그래서 양복 차사를 보며 눈짓했다. 굳이 말을 내뱉지 않아도 충분했다.
[관리 대상자들이군요. 선생님의 뜻대로 신전 안쪽에 머물게 하겠습니다. 얘들아. 나와 함께 가자. 좋은 곳이야. 그곳으로 가면···]아니나 다를까. 제작진과 태구를 번갈아 본 양복 차사는 눈치 빠르게 행동했다. 그는 두 아이의 손을 이끌고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다락에 머문 두 영혼과 차사가 그 모습을 감추고···
“하나는 열셋, 또 하나는 열다섯 살에 생을 마감한 망령이에요. 종류를 따지자면 지박령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태구는 김영채 작가가 궁금해할 아이들의 이력을 읊어 나갔다.
“그러니까 여기 다락에 머문 망령이요? 문을 막은 망령?”
“맞아요.”
“한데 지박령이라고요? 지박령은 죽은 곳에 얽매이는 영혼 아닌가요? 그럼, 저들이 여기 다락방에서 죽었다는 말인데··· 어떤 이유로요? 아니, 언제요?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곳에서 죽은 이들의 국적은 모두 일본인이었는데. 그런데 태구 님은 한국어로 그들에게 말했고 또 고스트 박스에서도 분명···”
송곳같이 날카로운 비명 사이로 들린 말, 그건 분명 한국어였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일본인이었나? 쓰읍. 그건 또 아닌 것 같은데··· ‘
김영채 작가는 말끝을 흐리며 미간을 찌푸렸고 태구는 그녀가 가진 의문을 바로 풀어주었다.
“김 작가님이 조사한 것보다 더 이전에 죽은 이들이니까요. 정확히는 80년 전,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는 담임의 말에 속아 머나먼 타국 일본으로 건너온 아이였어요.”
“80년 전이라면···”
“일제강점기 시절?”
카메라맨이 불쑥 끼어들어 답을 말했다. 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이를 기다리고 있던 건 학교가 아니라 노동 현장이었죠. 아이는 상급 학교 진학이 아닌 군복을 만드는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게 돼요.”
“근로 정신대에 동원된 분들이었나 보네요.”
여자 근로정신대. 전쟁 군수 물자 생산에 동원되어 노동력을 착취 당한 피해자들을 말하는 용어다.
그렇게 동원된 아이들은 감당하기 힘든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지옥이 있다면 그런 곳이 지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
죽어라 일을 시키면서 밥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 제대로 된 배식이 이뤄지지 않아 공장 근처에 자라나는 풀로 죽을 쒀먹어야 하는 게 그들의 일상이다.
그런 지옥 같은 곳에 어느 날, 동생 분이가 왔다.
“맞아요. 언니가 그렇게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 역시 그곳으로 오게 됐어요. 언니를 일본에 보냈던 그 선생이 동생까지 속인 거죠. 일본에 가면 언니와 함께 먹고 자며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아!”
“이런 개새···”
김영채 작가와 카메라맨은 짜기라도 한 듯 욕설을 뇌까렸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몰랐을 땐 두렵기만 했는데 그 사연을 듣다 보니 어쩐지 안쓰럽게 느껴진 것이다.
태구는 계속해서 망령들의 사연을 읊어나갔다.
“그렇게 공장에서 마주한 자매는 신세를 한탄하며 탈출을 감행했고 또 성공해요. 둘은 산을 넘고 산을 넘고 또 산을 넘었죠. 그러다가 멀끔한 조선 남자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그 남자가 바로 이 집 주인이에요.”
“잠깐만요. 조선 남자라고 하셨잖아요. 당시 조선 남자가 어떻게 이런 집을 갖고 있을 수 있는 거죠?”
“태생은 조선인이었으나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던 놈이었으니까요. 더러운 나야 가시라.”
“더러운 나야 가시라?”
“다락에 머물던 망령이 남자를 부르던 말이에요. 아이들이 말하길, 남자는 같은 동포의 고혈을 빨아먹는 놈이라고 했어요.”
인신매매 혹은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거짓말로 조선인 인부를 구하고, 그렇게 동원한 조선인을 위험한 노동 현장 간부에게 넘기던 놈.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선인 인부들의 월급마저 떼어먹는 천하의 악독한 놈이었다. 그렇게 놈은 부를 쌓았고 그 돈을 이용해 명예 일본인을 자처했다.
“그날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모집한 조선인을 탄광에 넘기고 오던 때였어요. 남자는 숲에 몸을 숨기고 있는 어린 여자 두 명을 발견하게 되는데···”
문득 상황이 그려진다. 김영채 작가는 탄식하며 태구의 말을 가로챘다.
“이런! 그 어린 여자 두 명이 다락에 깃든 자매군요?”
“맞아요. 정처 없이 떠돌던 아이들은 죽기 직전인 상태였고, 남자는 그런 자매를 데리고 와서 성심성의껏 돌봐줘요. 언니의 외모가 꽤 곱상했거든요.”
곱상한 외모. 남자가 어떤 꿍꿍이를 갖고 아이들을 데려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들을수록 기막힌 사연에 김영채 작가와 카메라맨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고작해야 열다섯 살인데, 거기다 죽기 직전 상태였다면서요··· 후우. 진짜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을 텐데.”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아이들을 몰랐어요. 남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저 같은 조선인이고 어른이니까 도와주겠다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죠. 그렇게 얼마간 이곳에서 먹고 자며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의 집으로 낡고 허름한 복장을 한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나야 가시라에게 강탈당한 월급을 되찾기 위해 찾아온 광산의 인부였다. 물론 조선인 인부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며, 떼간 월급을 돌려 달라며 무릎을 꿇고 빌던 인부.
남자는 그런 인부에게 서슴없이 발길질을 해댔고, 집 안에 있던 아이들은 그러한 처참한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남자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태구는 아이들이 다락에 머물게 된 이유를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흐으. 무서운 존재라고만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너무 안쓰럽네요. 볼 수만 있으면 얼마나 힘들었냐고 어른들이 미안하다고 꼭 한번 안아주고 싶은데···”
“그러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은 어떻게 됐어요? 이제 여기에 없어요? 조금 전에 태구님이 그러셨잖아요. 어머니가 묻힌 그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그렇게 묻는 김영채 작가는 진심으로 바랐다. 좁은 다락을 벗어나 저 멀리 훨훨 날아갔기를. 태구가 그렇게 해주었기를.
그런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듯 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신전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더는 여기에 없어요. 둘 다 좋은 곳으로 갔어요. 이제 나머지 한 놈도 보내줘야죠.”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의 기척이 느껴진다.
태구는 살벌한 눈빛을 띠며 카메라맨을 지나쳤다. 그리고 닫힌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끼이익——
“한 놈이라면···”
김영채 작가와 카메라맨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태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놈이 있었다. 귀기가 어찌나 강한지 놈의 모양새가 카메라에 잡힐 정도였다. 실로 끔찍한 몰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