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72)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72화(72/157)
일본 출장 (6)
‘그놈이라면 나야 가시라?’
다락에 깃든 망령의 안쓰러운 사연을 들어서일까. 그도 아니면 태구가 곁에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일까.
타다다닥—
카메라맨은 저도 모르게 직업적 사명을 불태웠다. 그는 불식간에 태구의 옆으로 달려가 카메라를 곧추세웠다.
그와 동시에 다락을 채우고 있던 은은한 빛이 열린 문 너머로 흘러 나갔고, 하얀 광채는 어둠에 잠긴 좁고 가파른 목재 계단을 환히 비추었다.
그 순간.
끼익, 끼익——
그놈이 보였다. 놈은 네발 달린 짐승처럼 계단 초입부에 올라타 있었다. 마치 핀조명을 내리 꽂은 것처럼 놈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드러나있다.
“!”
그걸 본 카메라맨이 눈을 부릅떴다. 솔직히 예상 못 했으니까. 카메라에 악령의 실체를 담는 날이 오다니. 더 나아가 두 눈으로 이렇듯 놈의 몰골을 볼 수 있을 줄이야.
“흐읍.”
김영채 작가 역시 다를 바 없다. 그녀는 들이켠 숨을 다시 내뱉지 못했다.
숨 쉬는 것마저 잊어버리게 할 만큼 놈은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놈의 머리는 90도로 꺾여 있었고, 양팔과 다리는 기이하게 뒤틀려 있었으며.
뚜욱, 뚝, 뚜욱—
물속에 있다 나온 것인지 퉁퉁 불어 터진 살덩이와 그런 살덩이 끝에 맺힌 검은 물이 목재 계단을 적시고 있다.
한 차례 눈을 껌뻑여 봐도 놈의 형체는 여전히 선명하게 보인다. 솜털이 쭈뼛 서는 것만 같고 어쩐지 공포 영화에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이다.
“우욱.”
구역감까지 치민다. 울렁임에 잠시 뷰파인더에서 눈을 뗀 카메라맨. 그가 고개를 돌리고 치밀어 오르는 토사물을 내리 삼킨다.
그러고 다시 카메라에 눈을 대려는 찰나.
흰자위가 없는 검은 동공과 눈을 마주하게 되는데··
“씨, 씨바. 왜 나만 자꾸···”
카메라맨은 놈이 저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뭐 하는 놈들이지? 대체 저건···’
놈은 다락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보고 있었다. 귀기에 상반되는 힘, 신성력이었다.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하는 이유도 계단 앞에서 서성거리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를 카메라맨이 알 리 없다.
‘저러다 갑자기 달려들 것 같은데. 태, 태구님 등 뒤로 숨어야 하나. 발이 안 떨어질 것 같은데. 허윽.’
그런 생각을 하는 카메라맨의 등골이 식은땀으로 젖어간다. 그때, 카메라맨이 놈과 시선을 고정한 상태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태구님. 저, 저거 보여요? 저거 맞죠? 지금 저게 저를···”
그러나 그는 그 말을 채 다 내뱉지 못했다.
“주춤하는 걸 보니 꽤나 눈치가 빠른 놈이네요. 처음 접하는 기운일 텐데 용케도 알아챘네. 지금까지 만난 망령들은 일단 달려들고 봤는데··· 무튼 잡고 이야기하죠.”
태구가 말허리를 자르며 무어라 읊조렸기 때문이다.
“에?”
동시에 오래된 목재 계단이 신음을 토해낸다.
끼이익— 쿵!
“어어?”
카메라맨과 김영채 작가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외마다 비명을 내질렀다.
‘여, 여기서 뛴다고?’
두 사람의 동공 안으로 태구의 신형이 담긴다.
그는 탈인간급 점프력으로 둘을 놀라게 했다.
가파른 계단을 단숨에 뛰어내려 놈의 등 뒤에 착지한 태구.
순식간에 허리춤에 고정해 둔 손도끼를 뽑아낸다.
순간 그의 손에 들린 도끼에서 어슴푸레한 빛이 흘러나왔고.
[끼아아아악 !]악령은 본능적으로 고통스러운 신음을 터트렸다.
코앞에서 마주한 신성력은 실로 강력한 기운이었으니.
80년간 모아온 귀기가 한순간에 흩어질 만큼 말이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왜 이래?”
그런데 아직 시작도 안 했단다.
악령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꺼림직한 감각을 느꼈을 때,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을 때. 그때 몸을 뺏어야 했는데!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다.
[자, 잠깐. 혹여 조선인 부부가 부른 무속인인 것···]태구는 놈이 교활한 혓바닥을 놀리게 두지 않았다.
기괴하게 꺾인 놈의 머리통을 거칠게 낚아채 1층 바닥으로 끌고 왔다.
[끼, 끼아아악!]그런 망령과의 접촉에 저승의 신물은 여지없이 반응한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놈의 악독한 생애가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악랄한 일본인 간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민족의 반역자 위치를 공고히 다지기 위해.
동포를 잔인하게 죽여 보란 듯 그 인육을 씹어 먹던 놈.
“모기도 동족의 피를 먹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이 사람의 고기를 먹었다라. 맛있더냐? 그리하면 태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더냐?”
놈의 생전 악행을 훑은 태구가 이를 악물며 놈의 면상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빠가각—!
호쾌한 소리와 함께 기이하게 꺾인 목뼈가 다시 부러진다.
목을 덜렁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는 악령.
이윽고 벌어진 놈의 입에서 검붉은 이빨이 쏟아진다. 그와 동시에 사특한 기운, 놈이 지닌 귀기도 같이 토해낸다.
[꾸에에에엑—]악령의 근간이 되는 힘이다. 귀기를 다 쓰면 놈은 소멸할 터.
그러거나 말거나 태구의 손속은 갈수록 사나워졌다. 놈의 생애를 훑으면 훑을수록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되었으니.
“조선인과 명태는 때려서 다스려야 한다고? 살아생전 버릇처럼 내뱉던 그 말이 맞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야. 그땐 어쩔 수가 없었어. 그때는, 그때는···]“그래? 근데 어쩌지. 난 그러고 싶은데. 마침 조선인이 내 눈앞에 있기도 하고 말이야. 거기 말고 너 말이야, 너.”
계단 위를 올려다보던 악령이 온몸을 푸르르 떨며 발작했다. 태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놈의 발목을 잡아 동강 냈다. 써걱—
[끼아아악!]그게 시작이었다.
태구는 그 옛날 그가 행했던 만행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조선인 인부의 월급을 강탈한 양손을 뽑아내고, 그렇게 뽑아낸 양손을 그 입에 처 넣어주었다. 동족의 인육을 탐했던 그 입에 놈의 살이 들어찬다.
[우으으읍, 끼아악 !]생전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죽어서도 산자의 생기를 탐했던 80년 묵은 악령. 놈은 태구 앞에서 어떠한 힘도 쓰지 못했다.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으나 태구의 이력을 알 리 없는 악령은 무력감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가는 꼼짝없이 소멸당할 판이 아닌가. 놈은 처음으로 생자 앞에서 구걸했다.
[제발 그만, 그만! 살아생전 한 짓 때문에 이러는 거야? 그건 이미 다 죗값을 치렀잖아. 그러니까 제발 나 좀 보내줘. 이 집에서 나갈게. 다신 조선인 부부 괴롭히지 않을게. 이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않을게.]그 필사적인 애원에도 태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널브러진 악령의 머리통을 지그시 밟으며 되물었다.
“아. 죗값을 치르셨어?”
[내 과거를 봤으면 알 거 아냐? 내가 왜 죽었는지! 내가 왜 이 모양 이 꼴로 이 빌어먹을 집에 얽매여 있는지 알잖아. 그거면 됐잖아. 나도 억울해, 억울하다고!]정말 억울한지 얼마 안 남은 귀기를 태워 가며 악다구니를 지른다. 그때를 생각하니 퍽 억울한 모양이다. 그리 억울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억울할 게 뭐가 있지? 그 모양 그 꼴로 이 집에 얽매여 있는 이유는 네놈이 자초한 일이야. 네놈이 그리 죽은 이유도 마찬가지고. 다 네놈의 욕심 때문이지.”
해방이 된 직후, 놈을 찾아 이 집에 온 이들이 있었다. 해방 소식을 듣고 광산에서 몰래 몸을 내뺀 조선 인부들이었다.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기 전, 떼인 임금을 되찾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욕심 많은 놈이 돈을 내어줄 리 없었다. 놈은 찾아온 인부들을 여전히 벌레 보듯 대했고 결국 그들에 의해 산채로 우물에 던져지게 되었다.
꺾인 목, 기이하게 틀어진 관절과 뽑힌 손톱, 퉁퉁 불어 터진 몸은 놈의 생전 마지막이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을 거다. 허나 그걸로 퉁쳐서는 안 된다. 저놈의 손에 죽어 나간 생명이 몇인데 그 한 번으로 죗값을 대신하려고 드나.
[그래, 그래. 내 욕심 때문이라고 쳐. 내가 잘못 했어. 그러니까 제발 소멸만큼은···]태구의 발아래 깔린 망령이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겁에 질린 모양새였다. 태구는 서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 생각도 같아. 소멸만큼은 못 시키지. 누구 좋으라고 소멸시켜.”
죗값을 톡톡히 받아낼 생각이었다. 적어도 80년은 데리고 있어야지. 그 말을 끝으로 태구는 신전의 문을 열었다.
***
한편, 김 작가와 카메라맨은 허리춤에 도끼를 집어넣는 태구를 보며 속삭이고 있었다.
“끝난 거 같죠?”
“도끼 집어넣는 것 보면 그럴 것 같은데요. 퇴마 장면은 다 찍었어요?”
“찍기야 찍었는데··· 쓰읍.”
카메라 감독이 말끝을 흐린다. 김영채 작가는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태구님이 계단을 내려간 기점부터 안 보였던 거죠?”
아니나 다를까.
김영채 작가의 말에 카메라가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작가님도요?”
“네. 저도 그때부터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흰색 불빛이 번쩍이는 것도 같긴 했는데··· 그 외엔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고요. 아! 그래도 계단 위에 서 있던 악령, 그 장면은 제대로 잡은 거 맞죠?”
“예. 후우, 다시 생각해도 심장이 벌렁거린다니까요. 내가 악령을 찍다니. 진짜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그러게요. 다른 출연진이랑 있을 땐 한 번도 본 적 없었는데. 무튼 촬영본 보내면 다들 까무러치겠어요.”
비단 제작진만 까무러칠까.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들 역시 기함할 것이다. 또다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겠지. 게다가 공분을 살만한 사연이 아닌가.
김영채 작가와 카메라맨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방송의 후폭풍을 상상했다. 그러는 사이, 태구가 그들에게 걸어왔다. 그에 김영채 작가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질문을 쏟아냈다.
“어, 안 그래도 내려가려고 했는데.”
“아. 그럼 기다릴 걸 그랬네요.”
“그보다 퇴마는 다 끝내신 거죠? 이제 이 집은 안전한 거예요? 그놈은 대체 어떤 이유로 그렇게 사람들을 괴롭혔던 거래요? 아, 아니다. 먼저 퇴마 끝난 검증 작업해야 하니까 emf 측정기부터 써야 하려나.”
듣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었다. 그녀는 태구가 다락에서 깃든 망령을 설명해 주었을 때처럼 자세히 설명해 주길 바랐다. 그 두서없는 질문 폭격에 태구는 즉답했다.
“의뢰인 부부를 괴롭힌 악령 퇴마는 끝냈는데, 그렇다고 또 다 끝난 건 아니고요.”
“에? 이 집에 또 다른 혼령이 있는 거예요? 아! 그렇지! 악령에 의해 죽은 일본인들 있었잖아요. 그들 말하는 거예요?”
“아뇨. 집 말고 다른 곳에 얽매인 망령들이 있어요. 그들한테 가야겠어요.”
갑자기 다른 곳을 가겠다고? 영문 모를 말에 김영채 작가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윽고 태구의 입에서 가고자 하는 장소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카메라맨과 김영채 작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