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76)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76화(76/157)
기도문의 효능 (3)
분명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두 발을 딛고 서 있다. 엉성해 보이지만 온전히 제힘으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이다.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나날 속에서 아픈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했다.
스스로 몸을 가눌 수만 있게 해달라고. 그리하여 기도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쁘지 않다.
‘이게 정말 기적일까?’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의심이 인제야 든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막내아들의 목소리 때문일까.
[엄마? 내 말 듣고 있지? 제발 문 열지 마. 내 말 한 번만 들어줘. 응?]그도 아니면 강태구 퇴마사가 했다는 말 때문일까.
[그 사람한테 형 이야기했어. 근데 그 사람이 뭐라는 줄 알아? 형 몸 안에 악귀가 있대. 그래서 치료받아야 한대. 위험하니까 접근하지 말라고도 했단 말이야]아무래도 후자 때문인 것 같다.
사실 막내아들의 반응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저런 말을 자주 했으니까. 비단 말만 들은 게 아니다. 막내아들이 몰래 찍은 영상도 보여줬다.
살아있는 앵무를 입 안에 넣던 첫째 아들의 모습, 그리 아끼던 동생을 향해 험한 말을 내뱉던 아들의 모습.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영상이었다. 처음 그 영상을 봤을 땐 어쩌면 막둥이 말이 사실이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허나, 위험한 생각은 의사 선생님께서 친히 잠재워 주셨다. 의사가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아들의 행동은 섬망 증상으로 인한 이상행동이라고. 그 때문에 정신과 협진이 필요하다고도 했었지.
그 말에 정재숙은 안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알게 된 첫째 아들은 몹시 괴로워했다.
‘내가 먹은 건 분명 약이었는데··· 그걸 먹어야 몸이 나을 것만 같았단 말이야. 근데 그게 새였다고? 우리 막내 쿵이었다고? 흐으. 엄마 나 왜 이래. 무서워요.’
‘엄마. 재민이가 자꾸만 그놈으로 보여요. 재민이 목소리 듣는 게 너무 괴로워요. 침대에 누워 있는 날 보며 비웃는 것만 같아요, 그래서 자꾸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게 돼요. 그러니까 재민이랑 나랑 둘이 남겨두지 마요. 네? 나 너무 걱정돼요. 내 동생에게 또 그런 이상한 말을 할까 봐···’
‘엄마도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나 너무 슬플 것 같아요. 가족들에게 폐만 끼치고 그때 그냥 죽었어야···’
첫째 아들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앵무는 꼭 먹어야 하는 약인 줄 알았고, 동생에게 욕을 한 이유는 자신을 그리 만든 놈의 형상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라고.
세상 어떤 엄마가 그런 아들을 보며 악귀에 씌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 결과 그녀는 자책하는 아들을 감싸 안으며 괜찮다고 아파서 그런 거라며 달래주었다.
그러면서 막내아들을 엄하게 단속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아픈 형에게 그런 영상 보여주지도 찍지도 말라고 말이다.
그랬는데 결국 일을 치고야 말았다. 막둥이가 제 말을 안 듣고 찍은 영상을 다른 이에게 보여준 성싶다.
최근 그녀가 흠뻑 빠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출연진, 강태구 퇴마사였다.
그리고 그 역시 막둥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단다. 첫째 아들에게 악귀가 붙었다는 생각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가 그렇게 말했다니.
아들의 말은 흘려들을 수 있으나 그의 말은 쉽사리 흘려들을 수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간 봐온 것들이 있었으니.
‘분명 신부님은 괜찮다고 했는데···’
불안한 마음은 쉬이 가라앉질 않는다.
그 순간, 삐끄덕 몸을 돌린 첫째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엄마, 왔어요?”
어눌한 말투가 고요한 집안을 울린다. 수화기 너머, 막내아들도 그 목소리를 들은 성싶다.
[형이야? 아 진짜! 내가 말했잖아. 들어가지 말라고! 하아, 아니야. 아직 안 늦었어. 엄마. 곧 태구 형님이 우리 집으로 올 거야. 그때 태구 형님이랑 나랑 같이 들어가서 형 보자. 형 몇 시간 혼자 둔다고 큰일 안 나. 그러니까 다시 나가. 응? 형한테 가게에 뭐 두고 왔다고 말해. 제발 이번 한 번만 내 말 들어줘.]형의 목소리에 막내아들은 다급히 말을 이었고 정재숙은 흠칫 몸을 떨었다.
“!”
[엄마?]뒤돌아 있을 땐 몰랐는데 마주 본 첫째 아들의 행색이 실로 처참했기 때문이다.
“재, 재준아.”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항상 열 시에 오시더니··· 아직 다 치우지도 못했는데.”
첫째 아들이 입고 있는 상의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일찍 왔냐 묻는 입가에 검붉은 피와 노란색 털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너, 너 옷이···”
정재숙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빠르게 아들의 뒤편으로 눈을 돌렸다. 이걸 왜 이제 본 걸까. 거실은 처참했다.
정원과 이어지는 창문은 깨져 있었고 주변 바닥은 피로 물들어 있다.
그리고 거실 구석.
‘!’
파헤쳐진 동물의 사체가 있다. 얼핏 봤을 때 길고양이 같다.
‘고양이가 어떻게···’
순간 막내아들이 보여준 영상과 그만둔 요양보호사의 말이 떠오른다.
‘따스한 햇살을 보여주려 문을 열어놨는데 글쎄 집안으로 쥐 떼가 몰려들더라니까요? 내 생전 그런 건 또 처음 봐요. 어으 끔찍스러워. 그렇게 바글바글 몰려든 쥐 떼가 아드님 입안으로 막 들어가는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며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말. 그 말이 진실일 수 있겠다고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깨진 유리창이 그녀의 상상력을 부추긴다.
“흐읍!”
순간 정재숙은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손에 들린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찰나였다.
“놀랐어요? 실은 또 헛것이 보여서··· 정신을 차려보니까 이렇더라구요. 엄마랑 동생 오기 전에 치우려고 했는데, 마음처럼 몸이 말을 안 들어서··· 죄송해요. 그래도 엄마는 저 이해한다고 했잖아요. 그죠? 낫기만 하면 뭐든 괜찮을거라고 엄마가 그랬잖아요.”
“도대체 너, 너···”
“그러니까 엄마 기뻐해요. 나 이렇게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어요. 놀랍죠?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엄마, 나 봐요.”
아들, 강재준은 그리 말하며 엄마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칭찬을 바라는 듯한 말투와 표정이었다. 그러나 비치적비치적 걸어오는 아들을 본 정재숙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흐음. 이상하네. 기쁘지 않은가?”
강재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도 절뚝이는 다리를 멈추진 않는다. 거실과 현관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이대로 있어선 안 될 성싶다. 번뜩 정신을 차린 정재숙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엄마?”
“아, 아냐. 기뻐. 기쁜데··· 갑자기 가게에 뭘 두고 온 게 생각이 나서. 재준아. 엄마 잠깐만 나갔다 올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갔다 와서 이야기하자. 걷는 거 봤으니까 무리하지 하지 마. 거기 그대로 있어. 엄마 금방 다녀올게.”
그렇게 말을 내뱉기 무섭게 몸을 돌리는 정재숙.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그러쥐었다. 그대로 밖으로 나갈 심산이었다. 흘린 핸드폰을 챙길 정신 같은 건 없었다.
[걸어? 누가?···]얼핏 막둥이의 고함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당장은 여길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달칵—
그렇게 손잡이를 돌리던 찰나.
쿠웅!
육중한 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때렸다. 정재숙은 그때 그 소리를 무시했어야 했다. 결심한 대로 문을 열고 나갔어야 했다.
“으윽. 엄마.”
그러나 엄마 정재숙은 그러지 못했다. 아들의 신음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몸을 돌려 아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엄마. 나 좀 도와 푸흐흐···”
거실과 현관 그 사이. 아들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에게 오다 넘어진 것이다. 고개를 들 힘도 없는지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은 채 엄마를 부르짖고 있었다. 양쪽 발목이 꺾여 있었고 고통스러운지 어깨가 파들파들 떨리고 있다.
“재준아! 괜찮아? 어디 봐. 엄마가 일으켜···”
그렇게 쓰러진 아들의 머리맡에서 걸음을 멈춘 정재숙. 그녀가 무릎을 굽힌 채 손을 뻗었다. 모성이 두려움을 밀어내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쓰러진 아들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푸, 푸흐흐. 푸흐흐.”
숨넘어갈 듯한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녀의 손이 아들의 어깨에 닿기 직전, 강재준이 고개를 바짝 쳐든다.
“!”
그와 동시에 정재숙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힌다. 마주 보게 된 아들의 표정 때문이리라. 아들은 아파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게 아녔다.
“끄, 끄흐흐흐하하.”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파들파들 떨리던 어깨 역시 마찬가지다.
“끄, 흐흐. 올 줄 알았지 이 멍청한 년은 매번 속는다니까.”
귀밑까지 찢은 입꼬리가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내뱉는 목소리 역시 달라져 있었다. 아들의 목소리가 아녔다.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으으, 으으···”
쿠당탕탕.
그 순간 정재숙은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아 버렸다. 일어나 자리를 피해야 하는데 풀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저건 우리 아들이 아니야. 흐으, 오면 안 됐어. 그냥 갔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다. 그녀는 행동해야 했다. 그녀는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을 택했다. 앉은 자세로 뒷걸음질 치며 무언가를 읊조리기 시작한 것이리라.
“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 오오늘도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꺄악—!”
주기도문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재숙은 주기도문을 다 외우지 못했다.
쿵쿵쿵쿵, 쿵쿵쿵.
엎어진 첫째 아들이 양팔을 움직여 정재숙을 향해 전속력으로 기어 왔기 때문이다. 끔찍한 몰골을 하고서 말이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푸, 푸흐흐,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아아아멘. 아아아아멘!”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그렇게 달려드는 아들의 입에서 주기도문이 읊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아아악! 놔, 놔!”
“잡혔네,”
그리하여 기어 온 강재준의 손에 발을 붙잡히고 만 정재숙이었다.
****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전.
태구는 아경이 정리한 펭라리의 사연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던 때.
펭라리가 실로 다급한 달풍을 쏘아 올렸다.
[펭라리 님. 달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태구 형님. 엄마가 집에 들어간 것 같아요. 지금 통화하고 있어요. 형이 걷는대요. 엄마가 비명을 질러요.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태구 형님 제 번호 아시죠? 제발 전화 좀 주세요.
그걸 본 태구는 곧장 집을 나섰다. 당연히 아경도 그 뒤를 따랐다.
다행히 펭라리의 집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차량으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
인천, 계양구.
그의 가족은 그곳에 살았다.
아파트 단지와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주택가.
이곳이 펭라리의 집이다.
초인종을 누를 필요 없었다. 대문에 이어 현관문까지 활짝 열려 있었으니.
태구는 거침없이 집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경은 카메라를 들고 뒤따랐다. 도착과 동시에 방송을 켠 상태였다.
이윽고 집안에 들어선 태구와 아경.
그런 둘을 맞이한 사람이 있었다.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정재숙과 그의 아들, 펭라리였다.
– ????????????
– 주작이었누.
– 갑자기 방송 끄고 나가야 한다길래 큰일이다 싶었는데 몹시 평화로운데?
– 그러게, 말입니다. 상황 설명 좀요.
– 근데 그 형은 안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