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8)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 8화(8/157)
본체가 무엇이냐
여자의 말로는 실로 비통스러웠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태구는 치솟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마수보다 못한 짓을 하다니! 이쪽이나 저쪽이나 망종들은 어디에나 있구나.”
처음 마주하는 망령의 원한도 아니건만, 이렇듯 볼 때마다 화를 주체할 수가 없다.
당장 그 연놈들을 찾아가 신벌을 내리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제 막 정신을 차린, 악한 감정에서 벗어나 인제야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망령에게 안식을 주는 일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하지 않을 일이었다. 이런 일은 태구의 몫이 아니니까.
요컨대 ‘사도’의 책무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멸악을 또 누군가는 자비를 또 누군가를 교화를 또 누군가는 정화를 행한다.
태구는 그중에서도 멸악을 맡았었다. 악을 단죄하고 징벌하는 이단심문관, 그게 태구였다.
태구의 할 일은 원한의 근원을 찾아 섬멸하는 것이었고 그 외의 일들은 다른 이들이 맡았다.
이를테면 정화나 교화는 성녀 엘가의 몫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지구 아니 당장 이곳엔 성자라곤 저 하나뿐이다. 그러니 일당백 역할을 해야 했다. 멸악, 자비, 교화, 정화··· 그 모든 책무를 혼자 책임져야 했다.
“쯧. 그래. 얼마나 무섭고 아팠겠냐.”
태구는 들끓는 분노를 참으며 눈앞에 서 있는 영혼에게 말을 걸었다.
“아아···”
그것, 아니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탁하디탁한 영혼의 색은 어느새 불투명하게 바뀐 모양새다.
태구가 뽑아낸 신성력 덕분이었다. [정화의 손길] 스킬 대상이 된 그녀는 비로소 ‘악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가슴에 맺힌 원한이 풀렸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살의만 느끼던 그녀가 이제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일 뿐.
“내가 왔으니 이제 넌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느니라.”
“지, 지금 저를 보고 있는 건가요? 제가 보여요?”
“아무렴.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다 봤단다.”
“아아···”
가슴 깊게 사무친 아픔에 그녀가 엉엉 소리 내 울음을 터트렸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이었어요! 한 명은 피를 나눈 자매였고, 또 한 명은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둘이 저를, 저를···”
“그래. 그 짐승만도 못한 것들. 내가 그것들을 찾아내 네가 느꼈을 고통에 곱절을 더해 돌려주마. 네 가슴에 맺힌 원한을 내가 풀어주겠단 말이다.”
“제 원한을 풀어주신다고요?”
끄덕끄덕
“당신은 대체··· 누구신가요? 누구시길래 죽은 저와 대화를 나누고 또 생전의 제 모습을 보고 거기에 제가 품은 원한까지 풀어주신다고 하는 건가요. 신··· 인가요? 신이라면 어째서 왜! 제가 그렇게 도와달라 외쳤을 때 저를 외면한 거죠?”
태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쎄. 그 원망은 내가 들어야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난 네가 생각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서 말이야.”
“···살아있는 사람?”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지. 그러니 너의 원한도 풀어줄 수 있다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고.”
“정말 제 원한을 풀어줄 수 있나요?”
“두 번 말하는 건 딱 질색인데.”
“···제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에요.”
“그래. 내가 그것들을 갈기갈기 찢어···”
“아뇨. 복수 같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녀가 마음에 품은 원한을 털어놓았다. 이건 예상 못 했다. 그러나 못 들어줄 것도 없었다.
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이고 되물었다. 결국 태구가 미간을 찌푸리는 것으로 도돌이표 같은 질문은 끝을 맺었다.
“하면, 네 본체는 지금 어디에 있지?”
“제 몸이요?”
“비록 껍데기일지라도 그렇게 둬선 안 될 노릇이지 않느냐.”
“흐윽. 저, 저쪽이에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그래. 아, 그리고 네 억울한 마음은 알겠지만, 괜한 사람은 괴롭혀서 되겠냐? 저 녀석은 그 망종들과 상관없는 인간일 뿐인데 말이야.”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태구의 타박에 여자는 푹 고개를 숙이며 반성의 기미를 보였다.
“맞아요. 저 인간은 제 남편이 아닌데··· 괜한 화풀이를 했어요.”
“알긴 아는구나.”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그저 저를 좀 도와달라고, 저 좀 찾아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어느 순간 저 인간이 남편처럼 보였어요. 저 인간, 만나는 여자가 여럿 있거든요. 매일 같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이곳에 오는데···”
태구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쨌든 저놈은 네 남편이 아니야.”
“네. 맞아요. 다 제가 잘못한 거예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여자는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면 됐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는 그 말은 저놈에게 직접 전해줄게.”
“···감사합니다.”
“하면 할 말도 끝났겠다, 네 본체부터 찾자고.”
태구의 마음이 바뀔세라 그녀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이쪽이에요.”
한편, 흑룡은 태구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조금 전, 태구의 돌발행동에 놀라 잽싸게 대문 쪽으로 달아난 것이다.
“그, 그러니까 지금 귀신이랑 대화를 나누고 있는 뭐 그런 상황 같은데? 나도 몰라. 주작 아니라고. 진짜 주작이었으면 내가 이렇게 허술하게 하겠냐? 네가 와서 물어보든가!”
그러면서도 카메라는 놓지 않고 있었다. 천생 BJ다. 그런 흑룡의 목소리에 태구는 ‘아차’ 싶었다.
태구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흑룡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흑룡!”
“어, 어··· 왜 또.”
“그간 너를 괴롭혀 미안하다고 그녀가 네게 전해달라는구나.”
굳이 지금 전할 말은 아니었다. 사실 전하지 않는대도 별 상관없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하는 건 뒤늦게 ‘방송’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녀? 그거 귀신 말하는 거야? 그게 나한테 미안하대?”
“그래.”
“시발.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 사람 피 말리게 해놓고! 어?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썅!”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여자? 지, 지가 뭔데!”
흑룡은 퍽 당황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양다리 폭로로 머리 아픈 상황인데 또 여자 문제가 언급되었으니.
“그거 진짜 웃기는 년이네. 처녀 귀신 뭐 그런 거야? 엉?”
그 때문에 괜히 거칠게 반응하는 흑룡이었다.
“쯧, 말본새 하고는.”
“아니, 그렇잖아! 사람 피 말리게 하고는. 엉? 아무튼 그래서 이제 다 끝난 거야? 그 본체인가 뭔가는 찾았어?”
“아직이다. 먼저 네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하여 잠깐 걸음을 멈춘 것이지.”
“엉? 그, 그럼 아직 여기 있다는 거야? 내 말도 다 듣고 있고?”
“그래.”
“히익!”
웃기는 년일세, 처녀 귀신 아니야? 어쩌자고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흑룡이 제 입을 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구는 친절히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튼 그녀가 가진 원한도 확인했고, 본체도 곧 찾을 것 같으니 큰 걱정은 말거라. 다신 너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야.”
“···어, 어. 알았어. 빨리 가주시면 좋겠다고 좀 전해줘.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은 그냥 화가 나서 한 말이니까 대충 흘려들으라고도 해주고.”
“그래.”
“그리고 아까부터 자꾸 본체 본체 하는데 대체 그 본체라는 게 뭐야. 조금 전에 내 목은 왜 조르려고 했고. 엉? 돌발행동은 미리 말해 주기로 했잖아. 나 진짜 지릴 뻔했다고.”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다. 그러나 약속하지 않았던가. 방송에 협조하겠다고.
흑룡도 태구의 그런 마음을 눈치채고 못다 한 질문을 쏟아냈다.
아니나 다를까. 태구는 친절히 답해주었다.
“네 목을 조르려던 게 아니었다. 네 어깨에 붙은 그것에게 손을 뻗은 것이지. 그리고 본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
그런데 그때였다. 본체에 안내해 주겠다던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손을 휘젓고 있는 게 보였다. 태구가 말을 멈췄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영혼의 그릇? 밥 먹는 그릇 말하는 거야? 그릇이 왜? 또 뭐 잘못 됐어?”
“거기란 말이더냐. 알았다.”
그녀는 1층과 2층을 이어주는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이쯤 되면 흑룡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귀신과 소통하고 있구나, 그 본체라는 것을 찾았구나··· 하고 말이다.
“그 본체, 아니 그 그릇인가 뭔가 찾았데? 어디에 있다는데?”
“그걸 확인하기 위해선 망치가 필요할 성싶은데.”
“망치? 그런 게 있을 리가···아! 잠깐만.”
순간 창고를 떠올리는 흑룡이었다. 창고 안에 ‘남자는 장비 빨’편 콘텐츠를 찍으며 모아둔 공구가 있었다.
흑룡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서둘러 창고 안으로 뛰어갔다. 대관절 그 본체라는 게 무엇인지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더불어 지긋지긋한 불면증에서, 매 순간 감시 받는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망치 필요하다고 했지? 어떤 거 줄까?”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연장 꾸러미를 한가득 들고 왔다. 흑룡이 가져온 포대 자루 안에는 장도리, 돌망치와 같은 각종 공구가 매우 수두룩했다.
태구는 망설임 없이 오함마를 들어 올렸다.
***
잠수 중이던 흑룡의 방송 소식에 그의 방송 방은 시청자들로 바글거렸다.
방송을 켠 지 꽤 되었음에도 연이어 사람들이 입장한다.
[정자왕흑룡 님이 달풍 10개 감사합니다.]아, 실방할거면 미리 예고하라고. 소문 듣고 개같이 달려왔네. 씨앙. 근데 뭐 부수냐?
– 지금 그릇 찾는 중임.
– ?? 그릇. 무슨 개소리세요.
– 또 설명해야 해? 잘 들어. 상남이 매니저 태예가 신내림 받음. 흑룡한테 귀신 붙었다 함. 흑룡의 집에 퇴마하러 옴. 흑룡 목 조르기 시전. 그러다 갑자기 그릇 찾는다고 발광 중. ㅇㅋ?
[ 정자왕흑룡 님이 달풍선 10개 감사합니다.]1도 이해 안 감. 퇴마랑 그릇이랑 무슨 상관인데. 그릇에 귀신 붙었대?
– 그건 나도 모름. 아무튼 그릇 찾는 중임.
– ㅅㅂ 그릇은 주방에 가면 많잖아. 왜 그릇을 계단을 쳐부수면서 찾냐고요.
– 걍 처봨ㅋㅋ재밌잖아.
– ㅇㅈ. 이런 뻘짓 신선하잖아. 가보자고!
– 근데 저거 태예 맞음? 태예 아닌 거 같은데.
– 태예 졸라 잘생겨짐ㄷㄷㄷㄷㄷ
– 애들아. 지금 상남이 방송 켰다. 개빡친 얼굴임ㅋㅋㅋ글고 태예 신내림 같은 거 받은 적 없다는데? 걍 둘이 짜고 치는 듯ㅋ
– ㅇㅇ.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건데. 이제 알았누? 상식적으로 퇴마를 누가 저런 식으로 햌ㅋㅋ
– ㅋㅋㅋㅋㅋㅋ근데 그럼 흑룡은 상팸에서 이제 제명된 거임?
시간이 갈수록 방을 찾는 사람들은 불어났다.
BJ흑룡이 대사를 치지 않아도, 화면이 미친 듯이 흔들려도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누가 봐도 헛짓거리하고 있는데, 실제인 것처럼 구는 두 사람의 모습이 퍽 흥미를 끈 것이다.
‘그릇’이라는 어그로 역시 시청자의 호기심을 끌기 충분했다. 더불어 무엇보다 달라진 태구의 얼굴이 아주 재미있었다.
그렇게 태구의 이야기로 또 그릇 이야기로 채팅창은 들썩였다.
그러던 그때였다.
콰쾅 ! 콰쾅!
“어, 어어? 으, 으아아악!”
흑룡이 자지러지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이는 방송으로 그대로 송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