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88)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89화(88/157)
성전으로 (7)
“그 아이 눈가랑 입 주변이 붉게 물들어 있었어요. 악에 받친 눈빛을 띠고 있었고··· 무튼 제가 분명 봤어요. 그 아이, 여기 있어요?”
있다. 소녀 망령은 교주가 사라진 자리를 가리키며 울고 웃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흑, 흑흐아앙, 끄억, 하하하.]임혜수의 말마따나 그런 아이의 얼굴은 피로 범벅되어 있다. 활짝 웃을 때마다 붉게 물든 치아와 반토막 난 혀가 보인다.
[히히, 흐어엉···]잘 안다고 표현하긴 뭐하다만 안면이 있는 망령이었다. 악령의 기억을 통해 본 아이. 도박 중독자 엄마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들어온 망령이었다.
또한 소녀의 마지막도 봤다. 교주의 뜻에 따라 성전으로 끌려온 아이. 그녀는 교주의 더러운 손길을 피하기 위해 격하게 반항 했고 끝내는 자신의 혀를 깨물었다.
죽을지언정 교주의 유린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아이의 입 주변이 저렇듯 붉은 것이리라.
그런데 임혜수는 그런 아이의 존재를 어찌 알아챈 걸까? 태구는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다만, 방송을 지켜보는 유목현과 시청자들은 다르다. 그랬기에 이런 달풍을 쏘아 올릴 수 있었다.
[유목현 님. 달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혜수야. 나야 목현 오빠. 이제 괜찮아. 태구 님이 거기 있는 나쁜 귀신들 다 퇴치해 주셨어.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네 주변에 여자 귀신 같은 거 없어. 다 끝났어.
“퇴치했다고? 아니야, 안돼. 그렇게 보내면 안 돼···”
임혜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성력 덕분에 기운을 차리긴 했으나 아직 이전의 컨디션을 회복하신 못 한 상태였다.
[벙개의 신님. 달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더 잔인하게 고문하다가 보냈어야 했는데ㅠㅠㅠㅠ
– 죽다 살아났음에도 망령 참교육부터 생각하는 약혼녀ㅎㄷㄷ
– 당연한 거 아니냐. 눈눈이이 가야지.
– 입 주변이 붉게 물들어 있었대 ㅎㄷㄷ
– 복차가 발로 찬 그 망령 말하는 듯. 광신도 망령 말이야.
“광신도 그런 거 아니에요. 그 아이 아니었으면 나는, 나는···”
교주의 혼이 깃든 남자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겠지. 어쩌면 석고상 하나가 더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임혜수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이었다. 태구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로 그녀에게 말했다.
“혀가 잘린 아이 말하는 거죠? 그 아이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잖아요.”
“마, 맞아요! 그 아이···”
“아직 여기 있어요.”
[태정태세문단속 님. 달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그 아이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니? 아직 여기 남아 있다니? 퇴마를 안 했다는거야? 왜? 걔가 뭔데.
시청자의 의문에 태구가 답했다.
“아까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설명을 못 했는데. 성전 그러니까 이 안에 총 세 명의 망령이 있었어. 하나는 교주, 또 하나는 저분의 몸에 올라탄 이곳의 간부 망령,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생전 교주에게 피해를 입었던 어린 소녀 망령.”
– 헐?
– 피해자라고하면 저 석고상 중 하나? ㅎㄷㄷ
– 걔가 뭐 어쨌는데?
한차례 숨을 고른 임혜수가 태구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 아이가 제게 붙은 여자 귀신을 떼어내 줬어요. 그리고 그렇게 소리쳤어요. 빨리 도망가라고, 정신 차리라고. 그렇게 있다가 큰일 난다고. 나는 늦지 않았다고. 돌아갈 집이 있지 않냐고요.”
그렇게 번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임혜수였다. 그뿐만 아니라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상태였기에 망령들의 실체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눈으로 본 아이는 실로 섬뜩한 기세를 띠고 있었다. 제게 무서운 기세로 소리치며 붉은 눈을 한 여자 귀신과 교주의 앞을 막아섰다.
[끼아아아아악! 가, 가가. 정신 차려! 멍청하게 있지 말란 말이야!]그러면서 책상 따위를 움직여 남자의 움직임을 저지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제게 험한 짓을 하려던 남자는 몇 번이고 욕설을 뇌까려야 했다.
임혜수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태구가 들어오면서부터, 음산한 공간 안에 훈기가 돌면서부터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성력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열린 영안이 닫힌 것이리라.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을 테고 제게 속삭이던 목소리를 따라 옷···도 벗었을 거예요. 그땐 그게 맞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막아줬어요. 왜 저를 도와줬는지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아이한테 제 말 좀 전해주세요. 정말 고마웠다고요.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돕고 싶다고요.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요.”
그래서 태구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아이를 볼 수 없으니까.
–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구해준 거구나
– 하여간 못된 놈들은 죽어서도 못됐고 착한 애들은 죽어서도 착해빠졌어.
– 갓직히 모른 척 해도 그만이잖아ㅠ
– 근데 여자 아이라고 하면 나이가 대체 몇 살임.
– 난 모르고 싶어. 들으면 눈물 날 거 같음.
– 더 잔인하게 고문해야 한다고 했던 말 사과합니다.
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앞으로 걸어갔다. 사실 그녀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이곳에 깃든 망령을 다 수거해 갈 참이었다. 그래야 이번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들었지? 네가 구해준 저 여자가 고맙다고 전해달래. 그리고 이번에는 자기가 널 도와주고 싶다는데?”
아이는 제 앞에 선 태구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조금 전까지 낄낄거리며 웃던 아이의 얼굴은 아무 표정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것들한테 속고 있는 모습이 바보 같아서, 꼭 우리 엄마 같아서 정신 차리라고 말해준 것뿐이에요. 고마워할 거 없어요. 그래도 도와주고 싶거든···]“?”
[나도 그것들처럼 없애줘요.]그런데 돌아온 아이의 반응이 의외다. 앞선 망령들처럼 없애달라니. 망령에 있어 그건 형벌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이는 스스로 벌을 주고 싶어 했다.
대체 왜? 태구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네. 근데 진짜 그게 다야?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해줄 말이 있다거나,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거나 그런 마음은 없나?”
[······내가 어떻게! 아니, 없어요.]아이의 얼굴에 자그마한 후회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내 지우고 마는데··· 이래서는 볼 수 밖에 없다. 거짓말을 할거면 티 나지 않게 하던가.
“그래. 그럼 그렇게 해줄게.”
태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아이가 바라는 대로 해주었다. 신전으로 이동시켜 준 것이다. 다만, 앞선 망령들과 달리 상층부에 들어가게 된 아이였다.
더불어 아이의 숨긴 속내도 훑어보았다. 아이의 생애 기억이 눈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
어두컴컴한 방안, 그곳에서 불편한 자세로 새우잠을 청하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망령인 지금보다 더 앳돼 보이는 모습이다.
그때, 인기척을 느낀 아이가 눈을 부릅뜬다. 곧이어 아이의 동공 안으로 서랍을 뒤적거리는 엄마의 뒷모습이 담긴다.
“엄마?”
“어···어? 깼어?”
그 목소리를 들은 엄마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홱 돌린다. 엄마는 아이와 달리 볼품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산 자가 분명한데 마치 죽은 자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얼굴. 특히나 눈빛이 그랬다. 흐리멍덩한 동태 눈깔 같달까.
“대체 뭐 하는 거야!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건데!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얼굴은 또 왜 그런 거야!”
엄마는 흐리멍덩한 눈깔을 굴리며 중얼거렸다.
“얘, 얘가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 엄마가 말했잖아. 할아버지 아니 할머니 아파서 간병하고 오겠다고.”
“거짓말 좀 하지 마! 오늘 할머니한테 전화 왔어! 엄마 어디 갔냐고 묻던데? 거기다 할머니 엄청 화난 목소리였어. 울기까지 하셨다고! 엄마 할머니 집에서 뭐 가져갔어?”
“엄마는 진짜 얘한테 무슨 소리를 한 거야. 가져가긴 뭘 가져가! 할머니가 아파서 헛소리하는 거야. 그보다 예은아, 저번에 아빠가 사준 목걸이랑 팔찌 있지? 그거 어디에다 뒀니?”
“또 거짓말! 할머니 안 아프잖아!”
“말꼬리 잡지 말고! 빨리 팔찌 어디다 뒀냐고—!”
순간, 목소리를 높이는 엄마였다. 이에 놀란 딸이 저도 모르게 그 질문에 답을 해버렸다.
“그거 저기 책상 서랍 보석함에··· 아무튼 이제 엄마도 내 말에 대답해. 자꾸 거짓말 하지 말고. 어디 갔다 온 거야. 무슨 일이야!”
그러자 동태 눈깔에 생기가 깃든다. 엄마는 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잽싸게 책상을 향해 달려갔다.
“여기다가 뒀구나? 그간 준 용돈도 모아놓은 모양이네. 잘했다, 우리 딸. 누구 닮았는지 아주 야무져.”
그러면서 금붙이와 코 묻은 딸의 돈을 챙기는 엄마.
“뭐야. 그걸 왜 엄마가 가져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엄마가 금방 쓰고 다시 돌려줄게. 팔찌도 그래. 엄마가 다 맡아둘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늦었어. 좀 더 자고 있어. 이야기는 내일 하자.”
그렇게 다시금 황급히 딸의 방을 나서려는 때였다. 예은이 엄마의 앞을 막아섰다.
“자라니? 엄마 또 어디 나가려고 하는 거지? 가지 마. 안돼. 못가.”
“얘가 왜 이래. 빨리 비켜.”
“싫어. 안 비켜. 오늘 나랑 같이 자. 아니면 그거 두고 가.”
“두고 가긴 뭘 두고 가라는 거야 ! 이게 버르장머리 없어! 엄마 화나게 하지 말고 빨리 나와.”
“···”
“급하다고 했잖아아악!”
엄마는 참지 않았다. 제 앞을 막아서는 딸을 향해 거칠게 손을 뻗는다. 바짓가랑이를 잡고 우는 딸을 향해 몇 번이고 손을 뻗는다.
허나, 예은은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순 없었으나 그 뒤를 쫓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날.
“나왔어. 빨리 다시 패 돌려!”
예은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예은아. 이대로 집에 가면 엄마 진짜 죽어. 그러길 바래? 엄마 확 그냥 죽을까? 아니지? 그럼 엄마가 시키는대로 해. 아빠한테 전화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경찰에 신고하면 나쁜 아저씨들이 죽인다고 했다고. 돈 가방 들고···”
엄마의 협박과 애원에 이기지 못해 해선 안 될 전화를 하게 되었고.
“예은아 이번엔 진짜야. 엄마가 금방 데리러 올게. 한판 크게 떙기고 데리러 올 테니까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겁먹을 거 없어. 별일 없을 테니까.”
말이 씨가 된다고 실제로 나쁜 아저씨, 그러니까 사채업자들에게 담보로 맡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엄마가 그랬지? 금방 데리러 올 거라고. 이제 가자. 근데 집엔 안 갈거야. 좋은 분들이 말하길 우리 몸에 더러운 것들이 많이 붙었대. 그걸 떼어내야 더 큰돈도 딸 수 있는 법이랬어. 그거부터 떼고 집에 가자.”
예은을 괴롭힌 것은 따로 있었다. 후회였다. 그날, 아빠에게 그런 전화를 걸어서는 안 됐다. 그녀의 머릿속엔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해괴한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예은은 엄마의 손을 잡고 그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새하늘 교회를 거쳐 새하늘 수양원으로.
뒤늦게 정신을 차렸으나 그땐 이미 늦었다. 지옥보다 더한 지옥에 들어와 있었고, 그녀는 끝내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태구는 그런 아이의 기억 속에서 진정 아이가 원하는 바를 눈치챌 수 있었다. 작은 가슴에 들어찬 것은 후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