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Inquisitor’s Exorcism Broadcast RAW novel - Chapter (98)
전직 이단심문관의 퇴마 방송-99화(98/157)
산과 망령들 (1)
지난날.
해외 방송 촬영 편으로 시청률의 달달함을 맛본 심령솔루션 팀이었다.
일본 전통 가옥에 깃든 악령 뒤에 가려진 소녀 망령과 타국을 떠도는 징용 노동자들.
안쓰러운 그들의 사연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기부금 릴레이와 징용 피해자 지원법 제정 같은 선순환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솜털을 곤두세우는 사연만을 뽑던 제작팀이 달라졌다.
귀신이라고 다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를테면 다락에 발이 묶인 소녀 망령과 누울 곳 하나 없어 옹기종기 모여있던 징용 피해자 망령들이 그러했다.
더불어 태구의 개인 방송을 통해 알려진 사이비 종교 피해자 역시 그 비슷한 경우지 않은가.
그렇게 미스터리물이라고 꼭 무섭고 소름 끼칠 필요 없다는 걸 깨달은 심령 솔루션 팀은 ‘착한 망령’이라는 편을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걸맞은 사연은 무궁무진했다. 제작팀은 그중에서도 해당 사연을 채택한 상태였다.
[두 달 전부터 어머니가 꿈에 나타납니다. 그렇게 제 꿈에 나타나 커다란 개의 목줄을 건네주시는데 처음에는 태몽인가 싶었습니다.]돌아가신 어머니가 자꾸만 꿈에 나온다는 사연이었다. 그런데 꿈 내용이 조금 특이했다.
[50대를 넘어선 저희 부부의 태몽은 아니겠고 주변 사람의 꿈을 대신 꿔주나 싶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거예요.]말 없이 목줄만 건네주고 홀연히 사라지는 어머니의 꿈.
매일 똑같은 꿈을 꾸다 보니 이제는 어머니 곁에 선 강아지의 생김새를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이 아닌 현실에서 그 개를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크기는 진돗개만 했고 백색 등위로 ‘’8′ 무늬가 새겨져 있었으며 한쪽 뒷다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얼핏 보아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견 같았다.
꿈에서만 보던 개를 현실에서 마주했을 때 그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개가 저를 물어뜯을 것처럼 이빨을 딱딱거리며 달려들더라고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죠.]살면서 그렇게 사나운 개는 또 처음이었으니까. 그것도 작은 소형견도 아닌 진돗개 정도 되는 크기의 대형견이 아닌가.
그런 개가 좁은 골목길 사이에서 튀어나와 저를 향해 달려드는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저 도망가는 것이 답이지.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는데 등 뒤에서 갑자기 굉음과 함께 먼지가 솟구쳤어요. 이건 또 뭔가 싶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있던 그 자리 옆 공사장에서 폭발이 일어난 거였더라고요.]다시 말해 그때 그 개를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그 개가 달려들어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크게 다쳤거나 꼼짝없이 죽었을 터였다.
그러고도 제보자는 두어 번의 비슷한 경험을 했고, 결국 그 강아지를 집에 데려오기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제보자는 그런 사연을 적어 보내며 태구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덧붙였다.
자신이 데려온 그 개가 정말 어머니가 보내준 개가 맞는지, 또 맞다면 그 개 옆에 혹은 자신 곁에 어머니가 있는지 말이다.
죽어서도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모성, 떠돌이 들개와의 운명적인 만남, 감동적이고 신비한 사연이 분명했다.
물론 이와 비슷한 사연은 많았지만, 해당 사연이 채택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남자가 사고를 당할 뻔했다는 공사장 폭발 현장.
그 근처에 주차해 놓은 차량 블랙박스에 자신과 그 개가 찍혔다는 남자의 말 때문이리라.
그래서 제작진은 만장일치로 해당 사연을 뽑았다.
“어? 감독님,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강원도 어느 산속에서 겪은 사연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용은 그랬다.
등산하다 조난을 당한 제보자, 산길을 헤매다 만난 중년 여성 덕분에 무사히 산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사연이었다.
문제는 도움을 준 여자가 놀랍게도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는 점이었다.
제보자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헀다. 무섭고 소름끼쳤다고.
허나, 다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기에 군말 없이 귀신을 따라갔고 마침내 제보자는 산에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제보자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여자 귀신을 찾고 싶어 했다.
귀신이 저를 도와줬듯 저도 귀신을 도와주고 싶은 것이리라
“···이거 어제 저희가 회의한 그 내용 맞죠? 메일 주소랑 기재해 놓은 인적 사항 보면 분명 다른 사람인데.”
그런데 놀랍게도 해당 사연은 중복 사연이었다.
이전에 온 사연도 제작팀의 관심을 끌었기에 다들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 제작진은 다시 사연을 체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놀란 표정을 짓게 되었다.
강원도 오지산, 그곳에서 귀신을 봤다는 사연이 퍽 많았기 때문이리라. 인제 보니 한두 명이 아니었다.
여자 귀신이 입고 있던 옷차림 하며, 그 위치하며.
같은 귀신이 분명했다. 결국 제작팀은 회의 끝에 채택 사연을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심령솔루션 제작팀과 태구는 그 산에 있었다.
***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기도 한 번 올리고 시작하죠.”
태구는 함께 산에 오를 이들을 불러 모았다.
지난날, 일본 출장 편에서 함께한 직업 정신 투철한 카메라맨과 김영채 작가. 거기서 한 사람이 더 추가 되었다.
“기도요? 설마 그 방송에서 보던 그 기도요? 어우, 대박.”
심령솔루션 팀에 직접 사연을 보내온 제보자였다.
태구는 호들갑을 떠는 그를 비롯해 일행의 어깨를 짚으며 기도문을 외워주었다.
특히나 산속은 음기가 강하고 망령들이 좋아하는 장소기이게 다른 때보다 강한 축성을 내려준 태구였다
그런 다음 곧장 촬영에 들어갔다. 태구 일행은 깜깜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잡이는 제보자가 맡았다. 정확히는 여자 귀신을 만난 장소로 안내하는 제보자였다.
누차 말했지만 산은 귀신이 좋아하는 장소다. 깃들 곳도 많고 햇빛이 들지 않은 음기가 가득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를 방증하듯 태구는 산을 오르는 내내 수많은 망령을 볼 수 있었다.
개중에는 태구 일행의 곁으로 바짝 다가와 얼굴을 드미는 망령도 있었다.
[히이이익 !]빙의를 시작한 것이리라. 허나, 축성을 받은 이들이었기에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올랐을까.
“어? 여기에요. 여기 맞아요! 이 소나무—!”
제보자가 ‘ㄱ’자로 구부러진 소나무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가 말하길 지난날, 이 소나무 옆으로 난 샛길 쪽으로 내려갔다 길을 잃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김영채 작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멀쩡한 등산로 두고 왜 저쪽으로 내려가신 거예요? 얼핏 봐도 위험해 보여서요. 그리고 제보자님뿐만 아니라 다른 분 몇 분도 여기 소나무를 말씀하셨거든요.”
“그러니까요. 사실 저도 제가 왜 이쪽으로 갔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냥 저쪽으로 가야 할 것만 같더라···”
제보자는 말을 채 다 내뱉지 못했다.
“어억?”
갑자기 태구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후두두둑.
“으, 으아아악!”
그와 동시에 제보자가 서 있던 자리 위로 무언가 떨어졌다. 그로 인해 제보자가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메아리쳐 돌아왔다.
“으, 으아아악히히히.”
“!”
카메라 감독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보다 더한 일도 겪어봤으니까. 그가 재빨리 바닥을 향해 앵글을 돌렸다.
그곳엔 아직 덜 여문 연둣빛 솔방울이 있었다.
“갑자기 이런 게 떨어진다고요? 태구 님. 이거 뭔가 있는 거죠? 그러고 보니 방금 들린 메아리 소리도 좀 이상한 것 같은데···”
그 말이 정확했다. 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나무에 시선을 뒀다.
‘ㄱ’자로 꺾인 소나무 위.
밤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날카로운 솔잎이 춤을 추듯 나부끼고 있다.
후두두둑.
그와 동시에 연이어 떨어지는 솔방울. 이는 소나무에 깃든 어린 망령들 때문이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까르르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소나무 가지 사이를 뛰노는 어린 망령들.
그것들이 태구 일행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순간 두 팔을 활짝 펼친 채 뛰어내린다.
덕분에 수월히 아이들을 잡을 수 있었다.
[기다리라고 했는데. 기다릴까.] [가자, 가자, 가즈아아아]태구는 벼락같은 속도로 아이들을 품에 안아 신전으로 보내버렸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그 많은 사람이 왜 하필 이곳에서 길을 잘못들 게 되는지를.
“마치 꼭 홀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죠? 맞아요. 여기 소나무에 어린 망령 둘이 깃들어 있었거든요.”
그 아이들은 지나는 사람들 등에 업혀 저쪽으로 가자며 속삭여 댔다. 기가 약한 사람들은 그 말에 홀려 샛길로 빠진 것이리라.
“어린 망령이 깃들어 있다고요? 그거 악령인 거죠?”
사람을 홀려 위험에 빠뜨렸으니 악령이라 생각할 법도 하다. 허나, 알고 보면 그런 것도 아녔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망령들은 단순히 어리기만 한 망령이 아니었으니까.
“흐음. 사람을 해할 생각으로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요? 설마 그저 재미 삼아서? 어린 망령이라고 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태구는 고개를 저으며 직접 본 망령의 상태와 사연을 읊어주었다.
“이곳에 깃든 아이들은 자폐증이란 병을 앓고 있었나 봐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아이들. 그들은 한 남자의 손을 잡고 이 산을 올랐다.
[아바, 아빠, 아빠.]남자는 아이들의 아빠였다.
[아빠 말 잘 들어. 아빠 올 때까지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는 거야. 약속할 수 있지?]그는 그렇게 말하며 소나무 옆, 샛길로 빠져나갔다.
[약속할 수 있지? 나는 약속 할 수 있다.]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라고 했는데.]아이들은 그런 아빠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결국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아이들은 그렇게 이곳에 깃들게 되었다.
“그러니까 직접 아빠를 찾아 나서려고 사람들 등에 업힌 거란 말씀이세요?”
맞다. 태구가 본 아이들의 기억은 그러했다. 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사람들 등에 업혀 산 이곳저곳을 헤매다 아빠의 말을 떠올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또 지나는 사람들 등에 업혀 아빠가 간 깃을 헤매고··· 그걸 계속 반복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 태구의 말에 일행들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괜스레 마음이 착잡해진 것이다.
아이들 때문에 큰일을 겪을 뻔했던 제보자도 같은 마음이었다. 분하거나 억울한 마음 같은 건 들지 않았다.
다만, 화는 났다. 아이들을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어쩐지 어깨가 무겁더라니··· 그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애들을 이런 산속에 버려두고. 참, 이거 완전히 죽으라고 내버린 거잖아요—!”
아이들을 두고 간 남자를 향한 분노였다. 그에 태구가 소나무 샛길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어린 망령 둘이 나무에 깃들었다고만 했지, 버림받았다고는 안 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