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0)
학장 면담 (1)
사실 이쯤되면 당연하게 드는 의문이 있다.
일단 내 입에 풀칠하느라 차마 신경을 못 쓰고 있었던 건데, 슬슬 학기가 시작되고 나니 다시금 고개를 내미는 의문이다.
그래서, 주인공 테일리는 지금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데??
*
새로운 학기가 시작하는 시즌이 되면 붕뜨고 들뜬 분위기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미 방학이 막바지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숙사로 돌아왔다. 간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회포는 진즉에 다 풀었겠지. 그래도 개학식 자리에 참석해 있으면 또 새로운 기분이 드는 게 사람 심리다.
교수동 중앙부에 위치한 학생회관. 통틀어서 그냥 학생회관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3개의 건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서편에 위치한 이 케이트 홀은 이런 학교 전체의 거대 행사를 위해 자주 사용되는 곳이었다.
열댓명은 무난히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이 거대한 강당에 수십 개는 퍼져있었다. 그 위는 만찬으로 가득해 있어서, 며칠간 생선과 잡초만으로 연명한 나에게는 지상낙원처럼 보였다.
심지어 나는 새벽 여섯시에 기상해 아켄섬 북쪽 숲부터 구보해서 교수동까지 등교한 상태다. 그런 만찬을 눈앞에 두고 참는 것은 가히 인간의 인내력으로는 버틸 수가 없는 수준의 시련이었다.
잔반만 다 챙겨가도 당분간은 먹을 걱정은 안하고 살 수 있다. 어디 담아갈 봉지나 그릇 같은 거 없나?? 하고 생각해봤지만, 생각만으로 끝냈다.
그 놈의 귀족적인 학교 문화가 뭐라고, 이 놈의 실베니아 아카데미는 ‘품위 유지’를 지나치게 강조한다. 잔반을 그릇에 주워 담아서 챙겨가는 꼴을 보였다가는… 얕보이기만 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아예 직접적으로 품행점수에 감점을 먹을 수도 있다.
[ 새로운 학기가 되어 더 발전된 모습으로 학생들을 보게 되어 반갑고, 또 그간 우리 실베니아 학사회의에서 진행된… ]교장님 훈화말씀은 지루할 수밖에 없다는 법칙은, 시대와 세계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적용된다.
그래도 기특한 것은, 그놈의 품위 품위 품위 때문에 학생들이 하나 같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교장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천의 학생들이 고요 속에서 교장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실베니아의 이름값이라는 게 새삼 실감이 되는 순간이다.
– ‘저길 봐, 저기… 저 사람… 에드 로스테일러 아니야?’
– ‘뭐라고? 신입생들 입학시험에 그 추태를 보였던 2학년?’
– ‘어라, 자세히 보니까 인상이 좀 묘하게 다르긴 한데… 본인 맞긴 맞네..’
– ‘무슨 낯짝으로 입학식에 왔대? 설마 계속 다닐 생각인가? 파문 당했다면서?’
물론 속닥대는 잡담 소리가 아예 없어지는 것은 또 아니다. 학생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있자니 나를 환대해주는 영광스러운 속삭임이 내 귓가에 또렷이 들려왔다.
– ‘저 꼴을 봐, 그렇게 거만하게 굴더니만. 완전히 몰락했네, 몰락했어.’
– ‘쉿, 들릴라!’
– ‘들리면 또 어때? 저 사람 이제 귀족도 아니야.’
뭘 그런 말씀을 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품위 있게 칠면조 구이나 감자 샐러드 따위를 입에 집어넣었다. 안 그래도 아침 구보로 몸이 녹초인데, 이렇게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안녕!”
그렇게 에너지 충전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자니, 발랄한 인사소리가 내 면전에 날아들었다.
“또 보네!”
추하게 몰락해 가문에서 쫓겨난 에드 로스테일러에게, 그리 발랄한 인사를 건넬 사람이야 많지 않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예니카 페일로버가 빙긋거리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오필리스관 친구들이랑은 인사 다 했는데, 에드 너랑은 인사 못했네. 방에 없더라구.”
순간 미간이 확 좁혀지려는 걸 억지로 잘 참았다. 그래도 머릿속에서는 경보가 울려대고 있었다.
접근 주의!
거리를 둬라!
“나한테 말 걸어봐야 좋을 거 없을걸.”
“응? 왜?”
나는 입 대신 눈으로 말했다. 눈알을 굴려 주변을 둘러보란 이야기였다.
이미 주변에서는 수군거리고 있었다.
예니카 페일로버는 2학년 학생들 사이에서는 마스코트 같은 취급이다. 학년 수석이다 보니 모르는 사람들도 없고, 평소부터 발랄하고 푹신한 느낌이 드는 탓에 친구들도 이 애를 아끼는 편이다.
거기다가 입학식 시점이라면, 불의 고위정령 타칸과 계약을 하는 업적까지 세웠을 시점이다. 그야말로 실베니아 마법부 2학년의 희망과도 같은 존재다.
그런 지켜주고 싶은 천진난만 학년 수석이 천하의 호로 쌍놈한테 들이밀고 있으니, 걱정에 찬 시선이 한눈에 쏟아지는 거야 어쩔 수 없다.
결국 걔중에서는 긴급히 구조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도 등장하는 법이다.
단발 주근깨 소녀 하나와 붉은 긴 머리 소녀 하나가 인파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와아! 예니카! 오랜만이다!”
“예니카! 고향집에선 잘 지냈어?!”
누가 봐도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예니카에게 반갑다는 듯이 인사를 하고서는 양 팔을 잡는다.
“으, 응?! 클라라, 아니스! 반갑긴 한데…! 왜 처음 만나는 것처럼 인사해? 우리 어제 오필리스 관에서 분명..”
“그나저나 그거 알아? 저 쪽 테이블에 그 오필리스관 학생식당의 요리장이 만든 디저트들이 있대..! 방학 동안 그 사람 음식 못 먹어서 얼마나 안달이 났는지 알아?”
“그래, 그래! 같이 가서 먹자! 예니카! 회포도 풀고…!”
그렇게 예니카를 불한당의 손아귀에서 구조해낸 두 소녀가 인파들 사이로 사라져 갔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둘을 쳐다보며 끌려가는 예니카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 나이스!
잘했다! 이름 모를 동급생들아..!
“잠시마아안…!”
그러나 기적적으로 두 사람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예니카가 다시 인파를 헤치고 나와서 내 앞에 도착했다.
“그래도 나 이건 자랑하고 갈래!”
“뭐?”
내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자, 예니카가 내 면전에 손을 내밀어보였다.
“어때?”
“…?”
내가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자, 예니카는 이리저리 손을 꺾고 돌려보는 것이었다. 새하얗고 조막만한 손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이리저리 각도를 틀고 있으니, 나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어제 너 가고 나서 글쎄, 호수에서 기어 올라오지 뭐야. 너무 앙증맞고 귀엽지 않아?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했지 뭐야. 내 새로운 친구야. 자, 너도 만져볼래?”
얘가 대체 뭔 소리를 하나 했는데, 계약이라는 말에 금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요컨대, 정령인 것이다. 어떤 형태를 하고 있길래 그렇게 귀엽다고 자랑을 해대는지 모르겠다. 팔각도를 이리저리 꺾는 걸보니 팔을 휘어감고 있는 형태인 것 같은데… 어찌됐든 내 눈에는 보이질 않았다.
뭐, 안보이더라도 대략 유추는 할 수 있다.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 보면 귀엽게 생겼겠지.
여기서 적당히 예니카와 친해지려거든, 너무 귀엽다, 정말 앙증맞다, 이런 정령이랑 계약할 수 있다니 너무 부럽다! 뭐 그런 말들을 하면서 적당히 맞장구 쳐주면 될 일일지도 모른다.
친화력만큼은 학년 제일 가는 녀석이다. 사회생활 하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제일 편했다.
대화의 물꼬를 터보려고 이런 저런 화두를 억지로 던져보거나, 나와 맞는 부분을 찾으려고 애써 고생할 필요도 없다.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발랄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 2학년생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있는 아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거리를 두려거든 더 신중해야 했다. 뭘 해도 친해질 수 있는 녀석이니만큼, 친해지지 않으려면 더 신중한 대처를 해야만 한다.
사실 정답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대화의 물꼬 자체를 차단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나, 정령 안보여. 정령 감응이 안 돼서, 정령 못 봐.”
단칼에 쳐내듯이, 공통 관심사를 없애버렸다. 이렇게 휙 하고 쳐내버리면 저 쪽에서는 더 할 말도 없다. 다른 대화주제를 찾자니 그 쯤 되면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고 만다.
애초에 예니카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거리를 두려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 챌 것이다.
상냥한 사람들에 둘러쌓여 살아온 만큼, 이유 없는 적대감에는 면역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
천천히 대답을 한 예니카는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령이 안보여?”
그게 그렇게 신기할 일도 아니다. 마법부 학생이라고 해서 모두 정령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니카는 고개를 몇 번 갸웃거렸다.
“예니카! 빨리 가자!”
“디저트 다 없어지겠다!”
그제서야 구조대가 돌아왔다. 예니카를 꽉 끌어안으며 다시 인파속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응! 다음에 또 봐!”
그 와중에 활짝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뭐, 저 구조대원들이 디저트를 먹으면서 예니카에게 주의를 줄 것이다. 에드 로스테일러에게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고.
그럼 천천히 나한테 관심을 끄게 되겠지.
내 입장에서야, 그리 나쁠 일도 아닌 것이다.
* [ 마지막으로 각 학년의 수석이 신입생 대표에게 ‘현자의 봉서’를 수여하겠습니다. 호명하는 학생들은 연단으로 나와주세요. ] [ 2학년 수석 예니카 페일로버, 3학년 수석 다이크 엘펠란, 4학년 수석 에이미 이니스.. 그리고 신입생 대표, 존경하는 페니아 엘리어스 클로엘 황녀님. ]
그래도 황족이라고 대우를 받는군. 공적인 자리에서 호명할 때는 꾸준히 ‘존경하는’을 붙여주는구나.
페니아 황녀가 신입생 대표로 선정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성적과 재능만으로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나태한 루시’는 이런 자리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성격이고, 애초에 페니아 황녀만큼 대표성이 있는 인물이 있을 리가 없다.
실베니아의 이번 1학년 멤버는 말 그대로 보석들로 가득차있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2학년과의 괴리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이 세상의 주인공이 1학년이기 때문이다.
실베니아의 낙제 검성을 플레이하고 있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고 만다. ‘아니 근데 이 학교는 뭐 잘나가는 학생이 1학년 밖에 없나??’
2학년 때 학생회를 장악해 실질적인 학생회장으로서 학사를 휘어잡고 실세가 되어 부정을 뿌리 뽑으려 드는 ‘자애의 황녀 페니아’.
반대로 이 실베니아의 어두운 부분을 잠식하고, 돈의 흐름과 물류를 장악하고, 학생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큰돈을 벌어들이려는 ‘황금의 딸 로르텔’.
역사책에나 나오는 대마법사, 글록트에게 별의 축복을 받아 태어난 재능의 화신 ‘나태한 루시’.
뭐 그 외에 일일이 설명하기도 벅찰 정도로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죄다 1학년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제대로 된 수업 커리큘럼이 시작되지도 않았다. 허나 원석과도 같은 1학년 학생들 덕에 벌써부터 교수진들의 분위기도 들떠 있겠지.
[ ‘현자의 봉서’는 이 실베니아 아카데미를 세운 대현자, 실베니아 로베스테르 님이 남기신 기록의 흔적입니다. 배움의 미덕을 강조하시던 실베니아님의 뜻을 이어 받자는 의미에서, 새로운 후배들에게 그 봉서를 수여하는 의식이 있겠습니다. ]이런 저런 의미를 부여해보지만 결국에는 다 의례적인 것들이다.
나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개학식을 쳐다보면서,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년 구분 없이 모두 케이트홀 강당에 모여 앉아 있는 지금이다. 각자 듣는 수업도 다르고, 전공 분야도 다른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온갖 재능과 뒷배경을 잔뜩 안고 있는 거물급 신입생들이 강당을 메우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놈들이야… 전부 다 ‘등장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세계의 주인공 ‘테일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앞으로 이 실베니아 아카데미에 일어날 수많은 시련들을, 굳이 내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발로 뛰어다니면서 해결해주실 고마운 호구…. 아니, 해결사 양반이다.
내 고생길 알아서 다 밟아주시니, 이보다 고마울 사람이 또 없다.
또한, 지금 이 세계가 내가 알고 있는 ‘정사’대로 흘러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그 테일리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녀석의 행보가 곧 이 세계의 정사를 결정한다.
이제 슬슬 좀 돌아다니면서 테일리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 좀 해볼까.
어차피, 에드 로스테일러는 완전히 몰락해서 퇴장한 입장이다. 이런 으리으리한 규모의 입학식 따위에 나 하나가 있든 없든 그다지 신경 쓸 사람도 없을 터이다.
아니, 오히려 이 자리에 있는 편이 더 신경 쓰이겠지.
배도 꽤 채웠겠다,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보려는 순간이었다.
[ 잠시 알림 말씀이 있습니다. ‘에드 로스테일러’ 학생은 맥도웰 학장의 집무실에 방문하여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갑작스럽게 연단에서 내 이름이 들려왔다.
맥도웰. 그 이름은 나는 알고 있다.
실베니아의 마법부 최고 학장. 사실상 교수들의 인사 임명 권한을 손에 꽉 쥐고 있는 학사의 실세였다.
그가 나를 찾는다고?
“설마…. 퇴학 당하나…?”
요즘에는 퇴학을 학사 최고 실권자가 직접 통보해주나? 그렇게 정성스럽게 가시는 길을 마중해준다고?
“….. 망한건가 이거?”
나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아니, 일단 침착하자.
….
뭐지?
대체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