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00)
학생회장 선거전 下 (1)
학생회관을 이루는 세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큰 네일관에 학사진들이 모여 있었다.
꽤나 큰 규모의 징계위원회였다.
학사 규정상 교장 오벨 포시어스가 참석해야만 하는 위원회였지만, 교수동을 중심으로 일어난 많은 사건들을 처리하느라 도저히 일정이 비지 않는 그는 결국 불참할 수 밖에 없었다.
교장 오벨의 대리인 자격으로서 부교장 레이첼이 주재하는 이 징계위원회의 핵심 안건은, 오필리스관의 기물을 파손하고 많은 학생들이 대피하도록 만든 루시 메이릴의 징계안을 검토하기 위해서다.
“이상으로, 사건 사실 관계는 완전히 정리되었습니다.”
사건 당시 교수동의 최고 당직자로 근무하고 있던 마물학 선임 교수 플러뱅이 모든 보고를 끝마쳤다.
회의석의 상석에는 부교장 레이첼이 자리를 잡고 플러뱅의 보고를 경청하고 있었다.
화려한 금테가 잔뜩 둘러진 연금술사 로브를 몸에 두른 그녀는 내일 모래 환갑을 바라보고 있는 노년의 여성이다.
교장 오벨보다 경험도 많고 근속 연수도 길지만, 학문적 성취나 마법 실력이 오벨에 밀려서 부교장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진 않았다. 그녀는 철저한 능력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능력있는 자가 더 높은 직위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그녀의 가치관 안에서는 그랬다.
“음…”
그리고, 징계 학생석에 앉아서 멍하니 허공이나 쳐다보고 있는 저 루시 메이릴이라는 학생도 능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자다.
학부 수석, 학년 수석을 넘어서, 이 학교 전체의 수석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자다. 어지간한 교수진들조차도 그녀의 강력한 마법 실력에는 한 수 접어줘야만 했다.
실베니아의 명함이자 자랑과도 같은 루시 메이릴이 이런 징계위원회에나 불려와 앉아 있는 상황은 실베니아 학사진 입장에서도 썩 달갑지는 않았다.
루시 메이릴의 존재는 실베니아가 대외 기관 혹은 다른 교육기관과 기싸움을 할 때 든든한 뒷배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 어떤 기관의 대표 교육생을 데려오더라도 루시 메이릴에게 비벼볼 수 있는 자는 없다.
어떻게 보면 루시 메이릴이라는 학생은 이 실베니아의 대외적 자존심을 지탱해주고 있는 핵심 기둥인 셈이다.
‘퇴학은… 염두조차도 안하는 게 맞다…’
애초에 잘 정리해서 생각해보면 퇴학을 선고할 정도의 죄질은 아니다.
루시는 에드 로스테일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성을 잃은 채 오필리스관까지 달려가, 살해 주선 혐의를 받고 있는 타냐를 사적으로 제재하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메이드들과 학생들에게 위협을 가했고, 2학년 전투부 수석과 연금부 수석은 부상마저 당했다.
재산 피해는 또 어떤가.
열등생들의 오필리스관 반파 사건에 비하면 생각보다 그 피해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타냐의 방이 있는 3층 숙소 외벽, 그리고 그 반대쪽 복도 외벽, 오필리스관 입구 쪽 기둥, 장미정원의 대리석 바닥 조금과 정자 하나.
엄밀히 말해서 복도쪽 외벽은 직스가 부쉈고, 입구 기둥은 루시를 제지하기 위해 클레비어스가 부쉈지만, 그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구분하기보단 전체적으로 뭉뚱그려서 판단했다. 크게 보면 루시가 들이닥쳤기 때문에 부서진 것도 맞기 때문이다.
파괴된 시설들을 생각해보면 복구에 거진 일주일은 걸릴 듯 하다. 그 비용도 적진 않을 것이다. 물론 반파됐던 때에 들어갔던 돈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정상 참작할만한 부분을 짚어보자면, 일단은 인명피해가 없다는 점이다.
현장 증언을 모아보면 최대한 부상자가 없도록 이런저런 대처를 하며 날뛴 모양이고, 타냐를 잡아먹을 듯이 굴었지만 실제로 만난다고 해서 죽였을지 어떨지는 완전히 미지수다.
어느 정도는 이성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니, 의외로 대화로 잘 풀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사건이 끝나자마자 도주하는 일 없이, 현장에 얌전히 앉아 학사 직원들의 수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 이건 거의 자수에 준하는 대처였다.
그리고 유이한 부상자, 클레비어스와 엘비라가 탄원서를 써주었다는 것도 한몫했다. 심정적으로 불안정했던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 결과, 이런 저런 사유들을 감안해서 마음만 먹으면 경징계 선에서 끝내 줄 수도 있는 상황까지는 되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감형 사유만 잘 검증이 되면 말이다.
그건 바로, 잘못에 대한 깊은 반성이다.
“…”
레이첼은 눈가를 좁히고 징계 학생석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반달눈을 뜨고 허공을 바라본 채, 이따금씩 눈을 꿈뻑이는 루시를 보자 한숨이 푹 나왔다.
학교의 수석이라는 자가 이토록 위엄 없고 강단 없어 보여서야 부교장 입장에서도 골이 아프다. 그래도 그 재능만큼은 확실한 것은 다행이다.
어쨌든, 마지막 하나 남은 감형 사유… 죄송스러워 하는 듯한 모습이 잘 보이질 않는다. 멍한 눈에 생기랄 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속마음이 정말로 어떤지 도저히 가늠이 안간다.
이번 징계위원회는 영 머리가 아픈 안건이었다. 실베니아 측에서는 그녀에게 정말 강한 징계, 이를테면 퇴학이나 정학급의 징계를 주는 걸 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수도 없이 루시의 이름을 팔아댔던 실베니아 입장에서, 제 자랑 거리에 스스로 먹칠을 하는 짓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루시의 그런 모습을 보고 얄미워 할 수도 없는 것이, 실제로 실베니아는 루시 메이릴의 이름을 정말 극한까지 이용해먹고 있다.
사사건건 제 편한대로 학사생활을 누리고 있는 루시의 대우도 전부 공짜는 아닌 것이다.
“루시 학생.”
“네.”
듣는 이마저 기운이 빠질 정도로 멍한 대답.
“해당 사건은 가벼이 넘길 수가 없습니다. 오필리스관은 저희 실베니아의 핵심 시설 중 하나이니까요. 이런 시설의 기물을 파손하고, 이용 학생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 것을 저희 위원회에서 쉽게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 그런가요.”
레이첼의 그런 생각마저도 루시는 감안하고 있는 것인지, 원하는 대답이 이거냐는 듯 확신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그런 깔끔한 태도조차도 영 찜찜했지만, 레이첼이 거기다 대고 뭐라 말할 순 없었다.
“그래도 일의 중함을 고려해봤을 때, 루시 학생에게는 그에 합당한 징계를 내려야 함이 타당해 보입니다. 저는…”
루시의 그런 심드렁한 태도에 레이첼은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적당히 중징계는 아니고, 그렇다고 가볍다고 할 수는 없을만한 형을 잘 정해서 선고했다.
“이번 학기 장학금 수혜 자격 박탈, 오필리스관 입주 자격 박탈, 정학 10일, 학생 복지 시설 이용 권한 박탈 70일, 그리고 실기 평가 성적 두 단계 하락 산정.”
경징계라기에는 좀 무겁고, 중징계라고 하기에는 꽤나 가벼운 사항들.
레이첼이 구구절절 이야기했지만, 대부분은 루시가 별 관심사를 둘만한 것들이 아니다.
장학금 수혜 자격 박탈은 의미가 없다. 그녀는 글록트 장학 재단에서 대리인 자격으로 졸업까지 모든 학기의 등록금을 ‘선납’해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마법사 글록트의 유언장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것은 장학 개념이 아닌, 글록트 개인 자금의 사적 활용에 해당했다.
정학이나 성적 차등 평가조차도 큰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 수업 좀 안 가거나, 성적 한등급 낮게 받는다고 수석 자리를 놓칠만한 위인이 아니다. 루시는 수석 중에서도 압도적인 수석인지라, 마법부 차석인 직스와도 아득할 정도로 큰 차이를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 복지 시설은… 아예 이용하지도 않는다.
“네, 알겠습니다.”
결국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만한 징계는, 한 학기 동안 오필리스관에 입주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정도다.
“그럼 루시 메이릴 양은 결정된 징계사항에 대해 불만이 없다는 사실을 이쪽 서명란에…”
“잠깐…!!”
그 때, 누군가가 네일관의 문을 열고 소리치며 들어왔다.
고위 교수진이 모여 앉아 있는 이런 중요한 회의상황에 예의 없게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자가 누구인가. 예절 교육이 덜 되어 있는 것인가.
레이첼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문쪽을 쳐다보니, 거기에 서있는 것은 실베니아에서도 가장 예의를 잘 지키기로 소문난 집단의 수장이었다.
오필리스관의 신임 메이드 장, 벨 마이아.
실베니아의 실권자인 원로 직원들 중에서도 가장 젊은 사람이었다.
짧게 친 단발에, 화려한 꽃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탁 휘감긴 메이드복 스커트. 그리고 붉은 장미가 장식된 카츄샤까지 모두 깔끔하게 각이 잡혀있었다.
“오필리스관을 관리하는 벨 마이아라고 합니다. 증인 신분으로 출석하고자 했는데, 오필리스관 수복 일정과 겹쳐 제 때 도착 못했습니다. 진심을 다한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단아하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가 몸을 일으킨 벨 마이아는 지그시 눈을 감아 점잖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날이 선 것이, 화나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자놀이에 십자핏줄이라도 비죽 솟아오른 듯한 느낌이다.
그 모습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루시 메이릴이었다.
“히, 히익…”
징계위원회 내내 심드렁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던 루시가 드디어 무언가 반응을 보였다. 레이첼은 흥미로운 표정을 하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원로직 직원이 이런 곳까지 오다니, 무슨 일인가?”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루시 아가씨에 대한 징계 사항을 재고해주시길.”
“뭐라고?”
루시는 이쯤 되어서 벌써 확신했다. 벨 마이아는 명백히 화가 잔뜩 나있는 것이다.
그야 그럴만 하다. 평소에 루시의 뒷바라지란 뒷바라지는 다 해왔던 오필리스관의 메이드들인데, 냅다 시간 감옥안에 가두고, 잘 관리해두었던 장미정원을 개판쳐뒀으니…
“저는 루시 아가씨를 1학년 신입생 때부터 시중든 메이드입니다. 루시 아가씨에 대해서는 제가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그건 그렇네만…”
“저는 이런 징계로 루시 아가씨가 진심을 다해 반성하리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징계 내용을… 다음과 같이 수정하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그 다음, 단아하게 웃고나서 벨 마이아가 건의한 징계안은 파격적이었다.
별 쓸 데 없는 징계안들은 전부 삭제하고, 근신 30일로 퉁치라는 것이다.
“근신 30일이라니… 겨우 이 정도 징계로 처리할만한 안건은 아닐 것인데…”
근신은 정학보다도 더 경징계다. 여러 징계 사항들을 덕지 덕지 붙인데다가, 정학 10일까지 더 했는데… 이 모든 것을 근신으로 퉁쳐버리라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제 아무리 정상 참작 사유가 많고, 규모에 비해 피해가 적은 편이라 할지라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루시는 이 안건을 듣자마자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벨의 입에서 나왔다.
“루시 아가씨를 오필리스관에서 내보내는 것은 형벌이 아니라 포상입니다, 부교장님. 정말로 루시 아가씨가 진심을 다해 반성하길 바란다면, 루시 아가씨를 오필리스관 메이드들의 관리 감독 하에 내버려 두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벨은 성큼성큼 걸어와서 징계 결의안을 보고는 고개를 휙휙 가로저었다.
“그리고 정학보다는, 기숙사 외부로의 출입을 최소화 시키는 근신 처분이 루시 아가씨에게 부과하는 징벌로써는 더 합당합니다. 처분 시행에 대해서는 깊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오필리스관 메이드 인력이 최선을 다해 당직을 서가며 24시간 밀착 감시하겠습니다…! 정말 아예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확실하고 깔끔한 일처리 보여드리겠습니다.”
“잠깐만, 안 돼! 나 방금 징계안에 서명할래! 종이 줘! 정학 처분! 정학 처분 해줘!”
계속 심드렁한 모습만 유지하고 있던 루시가, 갑자기 자리에 일어나서 팔을 휙휙 휘저어 댔다. 식은 땀을 흘리며 눈이 핑글핑글 돌아가는 것이 정말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에 레이첼은 깜짝 놀라 반응했다.
“그… 그럼… 메이드 장의 의견을 받아서… 근신 30일 쪽으로…”
어차피 학사 입장에서는 되도록 루시에게 경징계를 부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안 돼…!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은… 절대로 안 돼…!”
“자 루시 아가씨, 여기 서명하세요.”
빙그레 웃은 벨의 손을 보니, 이미 깃펜으로 중요 내용을 전부 찍찍 그어버리고, 징계 사항란을 근신 30일이라고 난폭하게 수정한 서류가 들려있었다.
그대로 벨은 루시의 손목을 잡고 들어서 깃펜으로 서류에 사인을 해버렸다. 이건 뭐 강제로 서명을 시켰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서류에 사인을 마친 벨은 루시를 그대로 잡아안았다. 어차피 루시는 깃털처럼 가벼웠기에, 딱히 무겁다는 느낌도 없었다.
벨은 그대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레이첼에게 청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의견 반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당장 오늘을 기점으로 근신 처분 시행하겠습니다. 귀한 분들 많이 모인 자리에 이런 식으로 방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안 돼! 안 돼애! 제발 한 번만 더 재고해 줘…! 일주일만 갇혀있어도 숨이 안 쉬어졌는데… 한 달 근신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야…?!”
그렇게 벨은 루시를 안아든 채 터벅터벅 회의장 출구쪽으로 향했다.
“갸아아아아아아악!!”
– 쾅
무거운 회의장 문이 쿵 하고 닫히자, 루시의 비명소리도 뚝 끊겼다.
구태여 마법을 쓰지 않는다면 루시의 근력은 일반적인 소녀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루시는 메이드들을 상대로 굳이 마법 같은 것을 구사하지 않는다.
그 결과, 끌려나가는 루시의 모습이 마치 지옥문 너머로 사라지는 희생양의 모습과도 같아, 일동 한동안 침묵으로 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그,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실까요.”
루시를 낚아채 간 벨의 모습에 묘한 귀기가 느껴져서, 레이첼은 잠시간 몸을 떨었다.
“그럼 다음 주에 계획된… 학생회장 선거에 대한 안건입니다.”
*
“그래서 루시는 당분간 근신이래.”
오필리스관에서 한 바탕 난리를 피운지 만 이틀이 지났다.
당일 날 사건들을 대부분 수습해둔 뒤, 다시 북쪽 절벽지대의 동굴로 돌아온 나는 대충 생필품을 가져다놓고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북쪽 숲 가운데에 있는 오두막이나, 생활동 외곽에 있는 도서관과는 또 다른 아지트가 생긴 기분이었다.
물론 그런 아지트들에 비하면 썩 생활 환경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아켄섬 최북단의 인파가 드문 장소인 만큼 은둔 생활을 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절벽을 타고 내려와서 바위지대에 안착한 다음, 그대로 안쪽으로 쭉 들어가야 겨우 보이는 천연 동굴. 정말, 미리 알고 찾아오는 게 아닌 이상에야 수색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동굴 출구 쪽에 마련된 모닥불 위에는 꽤 먹음직스러운 스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모든 조리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간을 본 예니카가 냄비의 뚜껑을 덮었다. 이제 조금 더 끓이다가 그릇에 담아 먹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루시도 고생 좀 하겠네. 걔는 밖에 나돌아다니지 못하면 좀이 쑤셔서 죽는 애잖아.”
“응. 그래도 에드 말대로 징계위원회에선 별 다른 말 안하고 최대한 입을 다물고 있었나봐. 그게 징계위원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진 모르겠지만서두…”
“아마 학사 측에서는 루시에게 큰 징계를 주고 싶지 않았을거야.”
루시가 난리통을 피우며 일으킨 임팩트에 비하면 피해 규모 자체는 그렇게 막대하진 않다.
그걸 감안해도 근신으로 끝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선처라고 할 수 있겠으나…. 하필 그 형벌의 대상이 루시인 것이 신경쓰였다. 마치 루시의 떠돌이 기질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는 누군가가 복수라도 한 듯한 모양새다.
에이 설마.
나는 어느정도 기력이 돌아온 몸을 일으켜 세워서 이리저리 몸을 휘어꺾었다.
예니카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이 도와주고 있었다.
첫날에는 오두막이나 도서관에 있던 내 기본 생필품들을 챙겨다가 가져와 주었고, 생활동 쪽에서 식자재들을 가져다가 요리를 해주거나, 교수동 쪽에서 배부한 수업용 자료들을 챙겨주기도 했다.
또, 당장에 세탁을 할 수가 없어서 꼬질꼬질하게 살아야 할 뻔 했는데, 매번 옷을 챙겨서 빨아다 주기까지 하니…. 이쯤되면 정말 돈이라도 지불해야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조차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안함 반, 고마움 반이 섞인 기분으로 대신 해줄 거라도 없냐고 물어보면 한사코 양팔을 붕붕 휘저으며 사양하는 것이, 사람 자체가 착하다는 게 정말 이런 거구나 하고 여실히 느낀다.
“짜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릇 두 개에 스튜를 가득 담아서 동굴 안쪽으로 들어온 예니카가 발랄하게 외쳤다.
그래도 식사 정도는 내가 준비할 수 있는데, 이마저도 자기가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전부 일임할 수 밖에 없었다.
“고향에 있을 때 자주 해먹었던 비프 스튜인데, 내가 개인적으로 정말 자신있어 하는 메뉴야-!”
내가 그릇 하나를 받아들자, 예니카는 나머지 그릇 하나를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양허리에 손을 올린 채 가슴께를 쭉쭉 펼쳤다. 요컨대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오오- 하며 적당히 반응해준 다음, 그릇을 들고 잠시 자세를 고쳐앉았다.
“….”
“….”
요즘들어 느끼는 건데, 예니카와 단 둘이 있다보면 전조도 없이 갑자기 정적이 찾아오곤 했다. 딱히 서로 간에 어색해할만한 사이도 아니건만, 가끔씩 찾아오는 이 기묘한 정적은 나나 예니카나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 그럼 먹을까…”
“그, 그래…”
괜시리 서로간에 머쓱해져서 얼른 스푼을 집어들었다.
몇 스푼 떠서 먹어보니 과연 정말 맛있었다. 맛없더라도 이렇게까지 해준 정성을 봐서 맛있다고 박수를 쳐줘야 할 상황이지만, 그런 틀에박힌 내숭을 부릴 필요도 없이 정말 순수하게 맛있는 요리였다.
그대로 감상을 전해주면, 예니카도 순수하게 기뻐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거 진짜 맛있다, 예니카. 너 정말 요리 잘하는구나.”
“으, 으응…”
돌아온 반응은 예상과는 미묘하게 달랐던 것이다.
뽈뽈거리며 고개를 푹 수그리고는 손가락 끝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다소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 그 반응에 또 할 말이 없어져… 예의 그 ‘기묘한 정적’을 한 번 더 경험해야만 했다.
“가, 가족들이랑 자주 해먹던 요리니까핫.”
말이 끊긴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스튜를 먹다가 혀를 씹은 모양이다. 예니카는 울상이 되어 입 언저리를 더듬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가족이라고 하니, 타냐를 아직도 못 찾았네.”
“…”
타냐는 오필리스관에서 도주한 그 날부터 쭉 실종 상태였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직스와 예니카가 이리저리 수소문 하며 타냐를 찾으려다녔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야심한 시각이었으므로 목격 증언도 거의 없었다. 사건이 다 끝난 뒤에도 기숙사로 돌아오지 않았고, 기본적인 짐들조차 모두 방에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으음…”
“너무 걱정하지 마, 에드. 분명 잘 있을 거야.”
예니카는 그렇게 나를 위로해주며, 멋쩍은 듯이 볼을 좀 붉히고 스튜를 몇 번 떠먹었다.
나는 스푼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지금 이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그리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