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02)
학생회장 선거전 下 (3)
[ 생활 능력 상세 ]등급 : 중급 장인 전문 분야 : 목공 손재주 Lv 16 설계 Lv 12 채집 능력 Lv 13 목공 Lv 15 석공 Lv 9 사냥 Lv 14 낚시 Lv 12 요리 Lv 7 수선 Lv 5 < 고급 제작 기술 슬롯 : 정령식 주입 > 기술 숙련도 :25 위력 증폭도 :5 주입 성공률 :95
– 불 계열 정령식 숙련도: 6
– 물 계열 정령식 숙련도: 2
– 바람 계열 정령식 숙련도 : 4 계약 정령 : 하위 불 정령 머그 정령 감응도 : 22 정령 이해도 : 27 고유 스킬 : 화복의 가호, 폭성 계약 정령 : 중위 물 정령 레이시아 정령 감응도 : 11 정령 이해도 : 10 고유 스킬 : 수사의 가호, 수원 발현 계약 정령 : 고위 바람 정령 메릴다 정령 감응도 : 4 정령 이해도 : 3 고유 스킬 : 풍랑(風狼)의 가호, 상승기류 < 고급 제작 기술 슬롯 : 마공학 > 기술 숙련도: 6 마공학품 이해 : 7 빠른 제작 : 4 수집한 제작식 :
미약한 바람 발산기 (Lv 4)
산울림 소음 발생기 (Lv 3)
감응식 자동 마력 체스판 (Lv 1)
온실화 수정구슬 (Lv 3)
푸른 마법구 (Lv 2)
갈퀴손 (Lv 3)
크레이글 마법 잉크 (Lv 2)
투광구 (Lv 3)
오니아의 겁화 (Lv 1)
텔로스의 서릿빛 가호 (Lv1)
벼락 맞은 천년 나무 지팡이 (제작식 개방!)
글록트의 눈 (제작식 개방!)
델 헤임 모래시계 (Lv 1)
– 카앙!
역수로 쥔 단검의 날에 커다란 암사자의 엄니가 날아와 박힌다. 그대로 부들부들 흔들리며 힘 겨루기를 해보지만, 당연히 내가 열세다.
이대로 가봐야 밀려날 것이 뻔하기에, 무게의 중심점을 바꿔서 암사자의 몸뚱아리를 휙 흘려낸다.
-파앗!
그대로 바닥을 박찬 암사자의 몸은 물로 이루어져있다.
포효를 내지르며 방향을 꺾은 채 내게 달려들자, 나는 재빠르게 몸을 아래로 팍 숙였다. 방금 전까지 내 상반신이 위치해 있던 곳을 사자의 발이 훑고 지나간다.
그러자 잠깐 동안 사자의 중심이 쏠려있는 틈이 생겨난다. 굳건한 두 다리로 땅을 밀어내며 몸에 힘을 팍 주었다. 그대로 어깨로 사자의 옆구리를 밀어버리자, 캐액대는 소리와 함께 한 번 밀려나간다.
그러나 저만한 몸집의 암사자가 몸통으로 들이받았다고 제압될 리가 없다. 다시금 땅에 착지한 암사자가 향하는 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파도가 치는 바다 쪽이었다.
절벽을 한창 타고 내려와야 있는 암석지대 중에서도 그나마 평평한 지형이다. 파도가 들이치는 곳이므로, 사실상 주변이 전부 바다나 다름없다.
그렇게 암사자는 물로 뛰어들었다. 원래 같으면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커다란 몸뚱아리가 깊은 심해로 빠져들어야 했지만, 실상은 첨벙하고 물이 튀는 소리도 없었고 그 몸이 바다로 빠져드는 일도 없었다.
이 암석지대는 주기적으로 몰아치는 파도 때문에 항상 물이 고여있었다.
마법처럼 바닷속으로 사라져버린 암사자의 형상은, 이내 반대쪽 물웅덩이에서 튀어나온다.
다시 한 번 주변을 압도하는 커다란 포효소리를 내며 내 등 뒤를 덮치지만, 나는 단검을 잡은 손을 휘어 꺾으며 어떻게든 그 발톱을 방어해냈다.
다시금 몸을 뒤로 한 번 날린 사자는 계속해서 물 속으로 사라져 간다.
어느 방향에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압박은 계속해서 내 긴장감을 자극한다.
– 카앙! 카앙! 카앙!
그렇게 몇 번의 공방이 오갔을까, 내 정령 감응력에도 슬슬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 이쯤 해두시지요, 에드 도련님. ]나지막한 여성의 목소리. 레이시아의 목소리였다.
레이시아와 몇 합이나 주고 받았는지 슬슬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온 몸은 땀범벅이 되어버려서 상의도 벗어 던져버렸다. 어차피 틈만나면 파도가 몰아치니, 차라리 상의 정도는 탈의하고 있는 게 나았다.
나는 몰려 올라오는 숨을 가다듬은 채 주변의 바위에 걸터 앉았다.
[ 과연! 엄청난 순발력과 대처능력이셨습니다! 이 불초 머그 감동했습니다! ]날개를 파닥대며 늘 그렇듯 호들갑을 떨어대는 머그가 바위 옆에서 불타고 있었다.
레이시아는 첨벙대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주변까지 돌아와 제 양발에 고개를 얹고 누웠다.
[ 확실히 마법사치고는 근접 대응 능력이 출중해지신 듯 합니다. 꽤 오래 수련을 하신 듯 하군요. ]나는 흥건한 땀을 슥슥 닦아내리며 몸을 가다듬었다.
중위 물 정령 레이시아는 꽤나 좋은 대련 상대였다.
너무 작아서 대련이 성립할 리가 없는 머그나, 반대로 너무 크고 강인해서 상대가 안되는 메릴다와는 달리 딱 적당한 사이즈다.
작정하고 피 튀는 혈투를 해대면 당연히 근접전에서 중위 정령을 이길 수는 없겠지만, 서로 간에 적당히 몸을 부대끼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오히려 살짝 빡센 느낌이라 더 수련이 되는 느낌이다.
원래 수련의 강도는 살짝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정도가 적당하다.
“… 그 집채만한 늑대랑 어떻게 대련을 하냐. 눈먼 발길질 한 번에 바로 황천으로 가는 수가 있다.”
[ 후후, 괜찮습니다. 에드 도련님. 메릴다님과 같이 능력이 출중한 고위 정령은 그 형태도 자유로이 할 수 있습니다. 에드 도련님과의 대련에 최적화한 형태로 변화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숨이 고르게 되고, 땀도 좀 마르자 나는 다시 바위에서 일어섰다. 그대로 팔을 몇 번 휘어 꺾은 뒤 바닥을 짚고 푸쉬업을 해대기 시작했다.
어쨌든 은둔 기간동안은 제대로 마법 수업을 들어갈 수가 없다. 그만큼 시간이 남으니, 몸이라도 단련시켜두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숨을 몰아쉬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몇 번이고 바닥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한다.
“후욱, 후욱… 그래도, 그 녀석과 대련하려거든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긴 하겠지. 아니 애초에 걔는 너무 신출귀몰 해서 언제 나타날지 알 수가 없어.”
[ 그렇지요. 메릴다님은 아무래도 북쪽숲 뿐만 아니라 아켄섬 전체를 나다니시곤 하니까요. 사실상 북쪽숲의 원로와도 같은 분인데, 때때로 교수동이나 생활동에서 나타나기도 하시니… 가끔 용무가 있으면 참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데는 뭐하러 가는거야?”
[ 원체 인간 문명에 관심이 많으신 분 아닙니까. 인간들이 쓴 책이나, 여러 식문화, 생활상 따위에 호기심을 드러내시는 경우도 많고요. 직접 관찰하러 다니시거나, 도서관에서 손님 신분으로 책을 대여하시거나, 풍경 따위를 구경하러 다니시는 거지요. ]하긴 그런 성격이니 예니카와도 순식간에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이겠지.
나는 그리 생각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팔과 코어 근육을 계속해서 혹사시켰다.
그러다 힘이 다 빠져서, 그대로 널부러진채 주변 물 웅덩이에 비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 Name : 에드 로스테일러 ]성별 : 남 나이 : 18 학년 : 3 종족 : 인간 업적 : 치밀한 생존가 (1년) / 고위 정령 소환사 체 력 14 지 력 13 재 주 15 의 지 력 12 행 운 11 전투 능력 상세>> 마법 능력 상세>> 생활 능력 상세>> 연금 능력 상세>> 마치 혼자 쌓아 올린 금자탑처럼 보고 있으면 괜시리 흐뭇해진다고 해야할까, 어지간한 플레이어 스펙의 중상급 수준까지는 올라왔다.
시작했을 때의 스텟을 생각해보면, 1년 좀 넘는 시간만에 이 정도까지 끌어올린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수준의 대발전이었다. 나는 어느 정도 플레이어의 성장 흐름 곡선을 머리에 집어넣고 있었으니 좀 유리한 입장이긴 했다.
각 스탯 수치는 20에 가까울수록 발전이 더뎌져서, 10대 후반 쯤 되면 아예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만 능력치에 변동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것을 감안해보면… 주인공이 아닌 내가 갖출 수 있는 스펙으로서는 조금씩 상한선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 선을 뚫으려면 뭔가 확실한 계기가 필요했다.
물론.. 당장은 그런 것보다 마법 분야의 발전을 좀 더 이루어 내는 게 중요했다. 그 놈의 숙원 사업, 중위 마법 배우기를 슬슬 마무리 지을 때도 되었다.
‘그래… 여기서 만족하고 끝낼 순 없지…’
그리 되뇌이며, 나는 휙하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어머.”
방금까지 내가 앉아있던 바위에 여우같이 음흉한 미소를 띠고 있는 소녀가 앉아있었다.
언제 왔는지 모르겠으나… 한쪽으로 묶어내린 머리칼이나 깊게 눌러쓴 로브 같은 것은 언제나와 똑같다.
“모처럼 눈 호강 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제야 로르텔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의 방향이 명확해졌다.
상의를 완전히 벗어던졌으니, 나는 반쯤은 나체 상태였던 것이다.
*
“쉴 땐 쉬는 것도 중요한 법이에요. 단련 중독에는 약도 없답니다.”
로르텔은 빙긋빙긋 웃으면서 마른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어 주고 있었다.
하여튼 로르텔도 메릴다 못지 않게 신출귀몰한 인간인지라, 언제 어디서 나타나도 이상하지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런 절벽지대까지 와서 은둔해 있다니… 많이 답답하시겠어요, 선배님.”
“익숙해지니니 그럭저럭 지낼만 하더라. 사실 숲에 비해서 더 여유로워진 것 같은 느낌도 들던데?”
“어머, 그런가요?”
“기본적인 의식주 같은 것들은 다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고 있으니까.”
“예니카 선배님이요?”
“주로 그렇지.”
“흐음~.”
로르텔은 말꼬리를 늘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약간의 마력을 모아 주변을 훑었다.
“정령들이랑 단련하고 계셨나보네요?”
“…너는 정령 감응력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 않냐?”
“뭐, 그렇죠. 그래도 에드 선배님의 모습은 멀찍이서부터 봤으니까요.”
그리고는 내 팔을 휘어잡고서는 귓가에 속삭이는 것이다.
“그럼 정령들이 다 보고 있겠네요.”
음흉한 미소. 마치 이런 상황 자체를 즐기기라도 하는 듯.
나는 시선을 내려 머그와 레이시아 쪽을 쳐다보았다.
언제나 점잖은 태도인 레이시아는 고개를 슥슥 휘젓고 있었고, 머그는 자기 혼자 으아아아아아아-! 거리며 불타고 있었다. 얘는 뭘 해도 항상 호들갑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다.
로르텔은 그대로 내 팔을 훑어올리며, 착 내려앉은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말씀드렸듯, 오늘 중에 페니아 황녀님을 찾아가볼 예정이거든요. 타냐에 대한 것들도 좀 떠보고, 그 외에 선거 관련한 이야기도 좀 해볼까 해서.”
“선거? 학생회장 선거 말이냐?”
“네에. 보아하니, 금화 몇 푼 손에 쥘만한 건수가 좀 생각이 나서.”
내가 못 미더운 눈으로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로르텔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내 어깨에 자기 고개를 기댔다.
아주 자그마한 틈새라도 돈을 벌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않는 소녀이니, 이 혼란스러운 판에서도 그녀에게만 보이는 금광이 있는 모양이다.
“그 외에도 황족 숙소에 가기 전에 선배님께 이것저것 일러두고, 상의해두고 싶은 것도 있어서요.”
“뭔지는 대충 예상은 간다만.”
“일단 그.. 선배님이 말하셨던 카덱과 녹스라는 두 기사를 석방하는 건 쉬워요. 어차피 이 아켄섬에서 나가면 다시는 돌아올 일이 없을테니, 그냥 사람 좀 써서 몰래 탈출시키면 되겠죠.”
그 몰래 탈출시킨다는 것이 쉽지가 않을 것인데, 로르텔의 비릿한 웃음에는 모종의 확신마저 서려있다.
“지금처럼 혼란한 선거전 기간은 또 없을거거든요. 에드 선배님이 피살된 건에 대한 수사도 한참 진행 중이고, 오필리스관도 멀쩡하진 않고, 그러면서도 학사 일정은 소화해야하잖아요?”
“그렇지.”
“이런 혼란한 시국일수록 틈은 많이 생기는 법이죠. 결국 학사 집단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작은 사회이잖아요? 협상, 회유, 배신 종용, 뇌물, 납치. 방법은 무궁무진하답니다.”
“…”
“물론, 에드 선배님이 찜찜해할만한 방법을 쓰진 않겠지만~, 적어도 공짜는 아니랍니다? 정확한 가격 책정은 두고봐야겠지만, 일단 선금이라도 먼저 받아둔다고 하면~.”
그리고는 어깨에 기대고 있던 고개를 휙 돌려서, 자기 턱을 거기에 얹더니… 만반의 미소를 띄우며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한 번 안아줄래요?”
훅, 하고 숨이 멎어들어가는 것은 일단 나도 일단 남자이기 때문이다.
잠시간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 과감하게 팔을 슥 벌리니… 로르텔이 그 왜소한 몸을 밀어넣는다.
그러나, 후욱 하고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를 내며 내 가슴께를 밀어낸 것은… 로르텔 본인이었다.
“아, 아니 잠시만요, 선배님.”
“뭐, 뭐하냐…?”
“원래 이런 건… 공격과 수비라는 게 별개거든요. 저도 좀 당황스럽긴 한데.”
제 좋을대로 할 때는 언제고 이번엔 자기가 얼굴을 붉혀대는 것이었다.
“오기 전에 서너번 상상해봤을 때랑은 너무 느낌이 달라서.”
“…”
“아니, 애초에 그러니까 왜 상의를 탈의하고 계셔서는, 괜히 머리에 피가 쏠리게 만들어서..”
“…네가 그러면 나는 뭐가 되냐…”
애초에 로르텔의 이런 반응은 적응하기가 영 힘들다.
예니카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마치 제 집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애초에 그 발랄한 소녀는 주변 사람들을 하여금 편안하게 만드는 특유의 힘이 있다.
허나 로르텔은 사사건건 음흉한 속내를 숨겼다가, 또 소녀 같은 표정을 지었다가 해대니 오히려 상대하는 쪽이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서 반응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쪽도 속으로는 나름대로 줄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 유념해 달라, 뭐 그런 말이에요. 방심했더니 훅훅 들어오는 건 상호간에 예의가 아니잖아요.”
“대체 누가 훅 들어갔다는 거냐…? 그냥 네 원하는대로 다 해주고 있잖아, 지금.”
“그, 그건 맞는 말이지만…”
로르텔은 잠시간 시선을 내리깔더니, 천천히 다시 품속으로 쑤욱 들어온다.
왜소한 몸을 품 안에 기대고서는… 그제서야 긴장이라도 풀어지는지 몸의 무게를 맡겨왔다.
엘테 상회의 회주로서 상도를 휩쓸던 금화의 악마. 그 이름의 무게만으로도 한 걸음 한 걸음에 지축이 흔들린다고 할 수 있는 영향력의 소녀였으나.
실상 그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서, 완전히 가슴 안에 파묻혀 기대어도 내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이란 다 한꺼풀 뒤집어 까놓고 보면 대개 이런 법이었다.
같은 인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드높고 진중해 보이던 자들조차도,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시선을 맞대보면 같은 인간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가장 실감하게 되는 때가 바로 이렇게, 그 사람의 실물을 직접 대면할 때다.
“사실은요. 대답을 미리 듣고 싶어서 왔어요.”
품에 안기고 나서야 본론을 이야기할 마음이 든 것인지, 음흉하게 내리깐 미소도 지우고, 여우처럼 말꼬리를 올려대지도 않은 채 직설적으로 물어온다.
“저번에 했던 약속 기억하세요?”
“…”
“언젠가, 꼭 제 편을 한 번은 들어달라는 이야기요.”
한창 눈 내리던 겨울, 얼어붙어 가던 북쪽 숲의 강가에서 나지막이 달을 올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적이 많이 생길 거 같아요. 설령 학사 전체를 다 적으로 돌린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선배님 만큼은 제 아군으로 남아줬으면 하네요.”
“너, 뭔가 꾸미고 있구나.”
품 속에서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맞춘 로르텔이 다시금 미소를 보인다.
“저는 그냥, 선배님이랑 적이 되고 싶지 않은 것 뿐이에요.”
그리고는 말하는 것이다.
“학생회장 자리를 팔아치울 거에요.”
자고로 상인이란, 돈 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팔아치울 줄 아는 자들이었다.
*
“오필리스관은 기본적인 수복이 끝났다고 합니다. 파괴된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요. 보수작업이라 하기도 뭐하고, 대부분은 단순한 수리작업 선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시설 운영도 이미 정상화 되었고요.”
“그런가요. 그럼 별다른 문제 없이 오필리스관을 계속 이용할 수 있는 거군요.”
“방에 별 이상이 없으시다면, 편하신대로 해주시면 됩니다.”
밤색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소녀, 카일리 에크네는 학사 안내진에게 인사를 하고 트릭스관을 나왔다.
가을에 못지 않게 드높은 봄의 하늘. 쭉쭉 뻗은 청량한 창공에 드리워진 태양 빛이 한 번씩 눈을 자극한다.
아직도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한 어린 성녀의 눈이다. 바깥에서 홀로 올려다보는 이 창공의 빛마저도… 꽉꽉 막혀있는 성황도의 창문 사이로 올려다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친구도 제법 생겼고, 존경해마지 않는 사람이나, 믿고 따를만한 담당 교수도 생겼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성녀의 신분으로 모든 기도식을 주재하지 않아도 되고, 틈만나면 고해성사를 하러 오는 사람도 없으니… 이게 자유의 맛이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카일리는 주변의 목제 벤치에 앉아서 잠시 청량한 봄바람을 가만히 맞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모두 가치있게 살아야지…! 내 인생에 또 언제 이런 시기가 올지 알 수 없는 걸…!’
양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몸에 힘을 넣은 카일리는… 잠시 후 한숨을 쉬며 다시 몸에 힘을 쭉 뺐다.
기운을 내려 해도, 최근 학사 분위기가 영 우중충 하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겨울, 오두막에서 덜덜 떨며 올려다 보았던 3학년 선배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유라는 것은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것이니. 모험 동화 속에서나 보았던 아리땁고 낭만적인 여정 따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피비린내 나는 고깃덩어리와 동물 가죽들, 서슬 퍼런 사냥도구, 냉기가 스며들어오는 통나무 바닥. 그 틈바구니에서 의자에 걸터앉아, 어둠 속에서 소녀를 내려다보던 사내는… 분명 카일리의 기억에 강렬히 남았다.
그 얼굴을 사망 소식을 알리는 학사 소식지에서 확인하게 되었던 것도 소녀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인 일이었으며… 이 학사에 와서 처음 사귀었던 친구인 타냐가 그 용의자로 지목되어 행방불명까지 되는 일은… 아예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다.
세상 일이란 이토록 파란만장한 것이니, 언제나 차분하고 정적이던 성황도에서 바라본 세상과는 역시 너무나도 다르다.
그렇게 우중충한 기분이 되어 잠시 주눅이 들었으나…
“그래도… 기운 빠진 채로만 있을 순 없지…!”
카일리는 다시금 양 손에 힘을 확 쥐고 마음을 다잡았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카일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안 그래도 학업을 따라가기만 해도 벅찬 상황이다. 거기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친구를 사귀고, 두루 경험을 쌓아 빛나는 학사 생활을 해야하는 것이다.
카일리는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기숙사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 ♪ ♬ ♪”
카일리가 앉은 벤치 앞을 지나쳐, 어딘지 모르게 신묘한 느낌이 나는 소녀가 콧노래를 부르며 지나쳐갔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걸음걸이가 기묘해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흐르는 바람을 타는 것 같이 가볍고 사뿐사뿐한 걸음이었다. 얼핏보면 반쯤은 무중력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예, 예쁜 사람이다…’
새하얀 백발을 말꼬리처럼 뒤로 올려묶은 모습. 경쾌한 걸음걸이에 따라 살랑 살랑 머리칼이 흔들린다.
허나, 복장이 기묘하다.
누가보아도 학생처럼 보이는 나잇대의 발랄한 소녀다.
그러나 얇은 끈으로 어깨를 드러낸 새하얀 원피스 한 벌만 가볍게 입고 있는 모습은… 누가보아도 학생은 아니다.
그렇다고 교직원처럼 보이지도 않고, 외부인이라기에는 이렇다 할 업무를 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당차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소녀의 한 쪽 품에는 책을 잔뜩 안고 있다. 책의 두께나 재질도 제각기 다르고, 내용도 완전히 천차만별이다. 예술, 역사, 마법, 위인전, 경제, 철학… 발랄한 인상이지만 사실은 꽤나 식견있는 소녀인 것일까.
카일리는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큰 목표 중 하나는 최대한 많은 친구를 두루 사귀는 것이다.
어차피 오늘 수업 일정도 마무리 되었으니, 카일리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말을 걸어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백발의 소녀는 어찌나 발걸음이 빠른지… 따라잡기가 쉽지가 않다.
가볍게 콧노래를 하며 숨 하나 헐떡이지 않고 있지만, 카일리의 유약한 몸으로는 쉽게 따라갈 수가 없는 속도였다.
한층 더 신기함을 느끼며 어떻게든 소녀를 따라가보려 했던 카일리는… 어느샌가 북쪽숲 입구까지 도달해 있었다.
슬슬 뭔가 이상함을 느낄 때였다.
*
“오오…!”
침대에 파묻혀 베개를 만지작거리던 루시는, 내심 감탄을 한 번 했다.
베개의 모양을 예쁘게 잡은 뒤 잘 세워보면…. 이 물렁한 베개를 세로로도 세울 수 있다…!
전혀 몰랐다…! 세기의 대발견이다…!
“…”
문득 밀려오는 허탈함에 루시는 다시금 침대에 몸을 묻었다.
삼시 세끼도 잘 챙겨먹지 않는 루시는… 지금쯤 대충 며칠이나 지났는지 잘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꽤나 긴 인고의 시간을 버텼으니 얼추 닷새는 지나지 않았을까.
“있잖아… 대충 며칠이나 남았어…?”
4시간 간격으로 교대해가며 24시간 밀착 감시중인 메이드.
빙그레 웃으며 감시하던 현재 당직 메이드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646시간 남으셨습니다.”
현재 남은 시간… D-27…!
“아, 맞다. 알아보니까 근신 징계안이 어제 통과되었더라고요. 당일에 바로 통과가 안되고 좀 밀렸었던 모양이에요. 행정 처리라는게 항상 그렇잖아요. 그래서… 죄송한 일이지만 어제를 시작점으로 삼아서 날짜를 세어야 할 것 같아요.”
“……….”
D?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