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05)
학생회장 선거전 下 (6)
독수리 기사 카덱과 불곰기사 녹스.
로스테일러 가문의 오랜 가신이자, 에드 로스테일러 사망 사건의 직접적인 범인으로 판명이된 두 사람.
둘은 트릭스관의 감금용 방에 갇혀있었다. 혐의가 거의 확실시 되어 보이니, 학사 차원의 조사가 끝나는 즉시 황실로 이관되어 죗값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젠장…”
카덱은 뒤로 팔이 묶인 채로 낡은 지하 방의 벽에 기대고 앉아 가벼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한 자루 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비싼 극독의 각인이 부여된 단검을 구하고, 타냐의 업무를 돕는다는 명분을 붙여 이 머나먼 아켄섬까지 왔다.
그 정도로 공들여 준비한 피살계획이 이렇게 어이없이 들통이 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쩔 수가 없는 것이, 루시의 무력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 카덱은 파문당한 에드를 이렇게까지 해서 암살하려 했던 크레핀의 의도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카덱과 녹스는 황실 업무를 보는 크레핀의 비서 역할을 하기 전까지는, 가문의 후계자인 에드를 보필하던 기사들이다. 그렇기에, 후계자가 된 뒤로 에드 로스테일러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충분하리만치 잘 알고 있었다.
과연, 권력이라는 것은 이리도 쉽게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일까.
후계자 자리의 달콤함에 취해 폭거를 휘두르던 에드는 금방 그 밑바닥을 드러내었다. 언제나 자애롭던 크레핀 공작마저도, 그를 이 배움의 땅으로 보내 다시 한 번 교육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릴 지경이었다.
그 밑천이 어디가진 않는지, 끝끝내 실베니아에서도 사고를 쳐서 결국 파문 당하고 만 것이 1년 좀 더 된 일인데… 굳이 이제와서 가문을 떠난 옛 후계자를 죽이라는 명령은 무어란 말인가.
어쨌든 두 기사는 지시를 이행하면 될 뿐이다. 크레핀 공작은 언제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카덱…”
건너편 벽에서 카덱과 마찬가지로 몸이 묶인 채 벽에 기대어 있는 기사, 녹스가 말을 건네왔다.
“아무래도… 크레핀 공작님의 판단이 맞았던 듯 하군…”
불곰 기사 카덱은 그 듬직한 덩치를 옆으로 뉘인 채로 한탄하듯 이야기 한다.
카덱은 녹스의 그 말에 잠시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덱과 녹스는 어디가서 절대 꿀릴 일은 없는 실력의 소유자다. 사실 단순 무력으로만 따지면 에드를 상대할 때 둘이 동시에 덤빌 필요도 없었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검술에도 마법에도 재능이 없었으므로, 기본 스펙만으로도 충분히 압도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에 확실함을 기하기 위해 둘이서 동시에 덤볐지만, 둘 다 아무것도 못하고 당했다.
카덱이 에드 로스테일러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단검을 찌를 수 있도록 가슴께를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카덱의 손은 에드의 가슴에 단검을 박아넣는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살점을 꿰뚫고 푸욱 밀려들어가는 단검의 감각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아직 능력적으로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그 정도 임기응변과 전투 숙달이라면… 정말 살아 있었으면 로스테일러 가문에 큰 위협이 되었을지도 모르겠군.”
딱히 에드가 로스테일러 가문에 적대적인 의사를 표하거나, 음모 같은 것을 꾸밀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가만히 놔두면 큰 화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만큼은 든다.
그 머나먼 황도에서 이 곳 아켄섬에 있는 에드의 상황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결국 크레핀의 판단이 맞았던 셈이다.
거기다가 단순히 능력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인간관계, 즉 인맥 마저도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진 정령 감응력을 다 태워버릴 각오를 하고 최고위 정령을 불러내던 3학년 수석 예니카 페일로버나, 에드의 죽음에 분노해서 오필리스관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난리를 피운 루시 메이릴의 모습을 보고나니… 카덱과 녹스는 더욱 더 자신들이 죽인 자가 얼마나 묵직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실감하고 말았다.
가만히 놔뒀으면 정말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서 가문의 큰 걸림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능력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전투 분야가 꽤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이 보완되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쓸 데 없겠지만 말일세.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할 것은… 이 모든 사항들을 어떻게든 가주님께 보고해야만 한다는 것이지.”
실베니아의 낙제 검성, 4막 중간보스인 카덱과 녹스는 충신이다.
계속해서 모든 전말을 실토할 것을 종용하고 협박하는 학사측의 압박에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이대로 황실에 넘어가면 극형에 처해질지도 모른다는 협박에도 둘은 완전히 함구하고 있으니, 학사 차원에서도 조사에 진전이 없어 답답해지는 와중이었다.
“타냐 아가씨…”
허나, 둘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이 모든 혐의를 뒤집어 쓴 타냐 로스테일러다.
원래대로라면 모든 계획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잘 마무리 지은 다음, 타냐를 잘 보필해서 일처리를 끝내 그녀의 짐을 덜어준 뒤 실베니아를 떠날 생각이었다.
일이 꼬여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불똥을 뒤집어 쓴 타냐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이 샘솟았다.
그러나 둘에게는 사과할 방법도, 속죄할 방법도 없다. 그저 팔다리를 묶인 채 방구석에 갇혀 단죄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 뿐.
크레핀에게 모든 상황을 보고 할 수도, 타냐에게 속죄할 방법도 없어 착잡한 심경이었다.
– 타악.
그 때였다. 방의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벌써 식사를 가져다 줄 때가 되었나, 하고 문쪽을 바라보았다. 허나 방에 들어온 사람은 경비병이 아니다.
“자, 자네는…”
젊은 사내. 투박한 가죽 튜닉에 얇은 재킷을 걸친 남자는… 아예 처음 보는 인간이었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돈주머니는 어찌나 묵직해 보이는지 걸을 때마다 찰랑댈 지경이었다.
그 많은 현금을 일일이 가지고 다니는 모습은 되레 수상해 보인다.
대체 당신이 누구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사내는 검지손가락을 들고 쉬이- 하는 소리를 내며 둘을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단검을 꺼내 두 사내의 팔다리 결박을 풀어 주고서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리깔고 이야기 했다.
“저는 듄이라고 합니다. 엘테 상회의 바람잡이지요.”
엘테 상회. 그 이름을 듣자마자 카덱과 녹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겠지요. 어찌하여 엘테 상회의 앞잡이가 이런 곳에 나타났는가, 뭐… 그런 것이 중요하겠습니까? 우리들이야 항상 돈 냄새 나는 곳에는 귀신 같이 나타나는 법인데.”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흑막이다.
그 사실이 느껴졌지만, 카덱과 녹스는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내일 새벽까지 오닉스관 남쪽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경비가 느슨할 겁니다. 그대로 남쪽 해안으로 내려가 해안가를 따라 달리다보면 낡은 나룻배가 놓여있을 겁니다.”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까?”
카덱과 녹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 분이 탈출해야 그 혼란에서 득을 보는 자들도 있는 겁니다. 단지 그 뿐입니다.”
녹스는 고개를 들어 슬쩍 열린 방문 밖을 쳐다보았다. 분명하게 경비원이 복도에 앉아 있지만, 단창을 품에 안은 채로 고개를 까딱대며 창밖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척 봐도 오래 근무한 경비원처럼 보이는데, 대체 얼마를 쥐여줘야 매수할 수 있을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물론, 카덱과 녹스가 신경쓸 일은 아니었다.
*
절벽지대의 동굴 안에서 생활하는 시기는 그야말로 집중 훈련 기간이었다.
야생 생활과 학사 생활을 동시에 유지하던 캠프에서의 나날은 하루의 대부분을 의식주를 유지하는데 소모해야만 했다.
돈은 최대한 아껴야 했고, 학사 일정은 모두 우수하게 통과하고 싶었으며, 거주 환경도 포기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이런 특수한 은둔 생활을 하게 되는 이 잠깐의 시기는 그런 기본 생활을 유지하는데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덜했다.
의식주는 예니카가 도맡아 해결해주었고, 어차피 당분간은 학사 일정에 참여할 수가 없는 신분인데다가, 캠프도 방치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놀 수는 없으므로,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단련에만 쏟을 수 없는 귀중한 시기라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뭐든지 낭비하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 시간이라고 하는 귀중한 재화라면 더더욱이다.
이 시기를 틈타 정말 유의미한 스펙업을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 결심하고, 정말 하루종일 체력 단련을 하고, 정령들과 모의 전투를 하고, 마법서를 탐독해댔다.
학사 생활, 생존 생활, 시나리오 체크에 나누어서 들어갔던 노력들이 온전히 내 단련이라는 한 분야에 집중되자 그 성과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진다.
뭉게구름이 새파란 하늘을 장식하는가하면, 눈부신 별하늘이 가득 채우기도 한다.
그 와중에도 내 루틴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본적인 근력 운동을 반복하고, 예니카가 와서 같이 식사를 하고 나면 하루 종일 마법서를 탐독 했으며, 늦은 오후가 되면 예니카가 소환해준 정령들과 전투 하기를 반복.
그 와중에 마공학용품들의 분해 재조립을 끊임 없이 반복하며 기본 설계를 다시금 머릿속에 집어넣었고, 활 숙련도를 계속해서 올리기도 했다.
우직하게 반복해온 단련의 일과는 그 날 그날에는 그 성과가 미약해 보인다. 원래 꾸준한 노력이라는 것이 가져오는 결과는 그 변화를 쉽게 확인하기가 힘든 법이다.
조금씩, 하지만 착실히 변해가는 것이 핵심이다. 진보라는 것은 대개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하루 일과는 변하지 않는다.
물 양동이를 어깨에 얹은 채 체력 단련을 하고, 모의 전투를 하고, 마법 훈련을 하고, 마공학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면… 하루 일과는 늘 똑같지만 예니카가 물어오는 소식만 바뀌어 있었다.
“타냐가 직접 학사에 출두했대. 그 동안 황족 숙소에서 숨어있었다던데,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조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는 모양이야.
그래도… 학사 여론은 별로 좋진 않더라구. 다들 타냐가 에드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그럴만 하긴 한데… 너무 억울한 일이잖아… 빨리 일이 마무리 되고 타냐를 옹호해주고 싶어… 아, 맞다… 오늘은 야채 샐러드를 할 건데, 에드 혹시 안 먹는 야채 있어?
”
물 양동이를 양 손에 든 채 절벽 바위 지대를 구보하던 날.
“페니아 황녀님이 공식적으로 타냐를 지지하는 선언을 하셨어. 아직 선거기간에 돌입하진 않았지만, 선거 출마가 확실시 되면 페니아 황녀님은 완전히 타냐의 편을 들 생각인가봐. 근데… 그럼 페니아 황녀님은 선거에 출마 안하시는 걸까? 아, 맞다. 오필리스관에서 세제를 받아 왔는데 얼룩이 엄청 잘 빠지는 거 있지? 봐봐, 셔츠가 엄청 깨끗해~.”
중위 마법 이론과 실전 적용에 대해 다루는 마법서를 하루 종일 3회독 하던 날.
“학사 쪽에서 로르텔을 지지하는 학생 세력들이 집결해있더라구. 보니까, 로르텔이 학생회장이 되어야 학생 권익을 더 잘 대변해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하긴… 로르텔이 워낙 꼼꼼한 인상이긴 하잖아… 아직 후보자 확정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알력 다툼이 생기는 분위기야…. 근데 에드, 저번에 로르텔이 동굴에 왔을 때… 뭐했어…?”
“…”
“아, 아니…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부서진 델 헤임 모래시계에서 그나마 쓸만한 재료를 빼내고, 다른 전설급 마공학용품 ‘글록트의 눈’을 제작하기 위해 하루종일 청사진을 그리던 날.
“에드! 이것봐라~! 짜잔~. 덱스관 기숙사 식당에서 남는 식재들을 잔뜩 받아왔어~.”
표적을 세워두고 활 수련을 하고 있던 날.
문득, 그 날 따라 예니카를 돌아보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생활력 넘치는 블라우스 차림에 감청색 치마. 팔을 당차게 걷어붙이고… 이제부터 요리할 건지 머리에 삼각건까지 꽁꽁 싸매고 있다.
이게 지금 학사 최고의 정령사인지, 식모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이다.
이번 은둔 기간 및 집중 훈련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도움을 준 사람은 그 누가 뭐라해도 예니카인 것이다. 그 사실이 문득 가슴에 팍 하고 와닿았다.
이렇게 예니카를 보고 있으면, 등에 날개라도 달려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다.
내가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묘한 기분을 갈무리하고 있는 동안, 예니카는 헤실헤실 웃으며 내가 뭐 할 말이라도 있나 기다려 주고 있는 와중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많이 도움을 받고 나몰라라 입 슥 닦으면… 그건 너무 양심을 물 말아 먹은 것 같다…!
“예니카. 뭐 갖고 싶은 거 있냐.”
“응?”
“뭐라도 선물 해주면 좋겠다 싶어서. 문득 네 모습을 보니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예니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휙 하고 얼굴을 붉힌다.
“아, 아니… 선물이라니… 그게…”
“…아니다. 내가 알아서 생각할게.”
“으, 흣?”
예니카는 갑자기 어깨를 휙 하고 떨더니, 제 입꼬리를 꾹꾹 눌러대기 시작했다.
애초에 예니카는 남한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잘 요구하지 못하는 성격이니, 뭐 가지고 싶냐고 물어본들 뭘 말해야 상대가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따위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마침 마공학 수련의 성과도 있겠다, 생각해두었던 물건이 있었다. 재료를 구하기가 영 까다롭지만 곧 여름이니 아마 어렵지 않게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기, 기대하고 있으면 너무 부담스럽겠지? 하, 하나도 기대 안하고 있을게! 진짜 하나도 기대 안되네…! 정말 기대가 안되니까… 아예 까먹고 있어야겠어!”
“…”
“…말하고 보니 이건 좀 무례하네… 미안, 에드…”
제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모습도 나름 예니카다운 것이라, 나는 거기다 대고 딱히 뭐라 말하진 않았다.
“어, 어쨌든 오늘은 활 연습 할 건가 보네? 정령 모의 전투는 할 생각 없어 보이니까 나는 그냥 모닥불에서 책이나 읽고 있을게…! 식재료만 좀 다듬고..!”
“아니, 오늘도 모의 전투 연습을 좀 하긴 할 건데… 딱히 정령을 소환해줄 필요는 없어. 마침 안부 차 찾아온 사람이 있는데, 수련을 좀 도와달라 했거든.”
“응? 에드는 지금 공식적으로는 죽은 사람이잖아. 안부 차 찾아왔다니…?”
그 때, 동굴 안쪽에서 옷을 탁탁 털며 나온 사람이 있었다.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고, 뒷목 언저리까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소년.
“오랜만입니다, 예니카 선배님. 이 쪽 동굴에는 자주 오시나 보군요.”
2학년 마법부의 차석, 직스 에펠슈타인이었다.
시기가 적절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수련의 성과를 체크해보고 싶었다.
*
“원래는 학생회장 선거 관련해서 말을 좀 나누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만… 타냐양과 페니아 황녀님에 대한 소식도 있고.”
파도가 굽이치는 절벽지대. 그 아래로 한참을 내려와야만 펼쳐져 있는 이 바위 지형은 비교적 평탄했지만 그리 넓진 않았다.
대련하기 좋은 장소는 아니지만, 실전 전장이라는 것이 항상 깔끔하고 널찍하진 않다.
어차피 악조건 속에 싸워야 하는 건 피차 마찬가지일테니, 불공평한 건 없는 셈이다.
“그 전에 가벼운 대련 정도야 괜찮겠죠. 저도 최근에는 이렇다 할 대련을 한 적이 없으니, 마침 몸을 풀어야 할 시기긴 했습니다.”
직스는 마주 선 그대로 검을 뽑아들었다. 검집은 옆에 대충 슥 집어던지고, 가볍게 칼 끝을 몇 번 떨었다.
“그래. 좋은 일이네.”
그렇게 툭 던진 내 말을 기점으로, 우리는 서로 거리를 벌렸다.
직스는 양손으로 검을 쥐고 한 번 심호흡을 했다.
“그럼 갑니다.”
그리고 똑바로 쥔 검을 그대로 위로 들어서 수직으로 휙 한 번 내려그었다. 깔끔하게 내려친 참격이 폭풍처럼 들이닥친다.
일도(一刀). 전투계 스킬 중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면서도, 그 위력이 시전자의 역량을 그대로 따라가는 정직한 기술이었다.
– 카앙!
피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나는 굳이 기초 방어 마법을 발현해서 막아내었다. 빨라진 마나 감응력을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스의 일격은 깔끔하게 막혀서 사라졌다.
허나, 첫 일도는 상대의 빈틈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로 자세를 낮추고, 검을 뒤로 빼든 채 내 사각으로 파고든 직스가 검을 내질렀다. 나는 얼른 상반신을 꺾어 검격을 피하고, 그와 동시에 허벅지 춤에서 단검을 뽑아내어 역수로 쥐었다.
다음 단검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직스가 자세를 바로 잡았지만, 내 단검이 내려찍은 곳은 바닥이었다.
– 파악!
그대로 바닥에 박힌 단검에서부터 ‘폭성’이 발현된다.
– 콰앙!
열 중 아홉은 당하는 정령식 기습. 그러나 실전 감각이 극에 달해있는 직스는, 그 노림수가 바닥이라는 사실을 눈치 챈 순간 이미 뒤로 도약해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 화아아아악!
피어오른 연기를 검격 한 번만으로 걷어내버리고, 다시금 직스가 거리를 좁혔다.
아니, 좁히는 척이었다.
내가 얼른 검을 꺼내들어 반격하려 하자, 직스는 도약하던 몸을 그대로 정지시켰다.
마치 물리법칙에 위배된 듯한 움직임. 관성의 법칙을 완전히 거스르는 것처럼, 진행 방향과 변화 방향이 정 반대다.
신묘한 저 움직임은… 염동 마법을 이용해 몸의 운동 방향을 강제로 꺾어내는 것이 핵심원리다.
이런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저렇게 세밀한 운동 방향을 조절해가며 마력을 운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단순 이론이나 역량 차원을 넘어서, 수십 수백번의 실전 경험이 동반되어야만 익힐 수 있는 움직임이다.
중위 마법 ‘얼음창’. 하나도 아니고 세 개가 발현된다.
이 정도 쯤은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자비 없이 얼음창을 발사해버리는 직스는 그와 동시에 다른 마법을 위한 마력 흐름 발현까지 동시에 해낸다.
– 카앙! 카앙! 카앙!
아슬아슬하게 얼음창을 피해낸 나는 직스의 몸을 감도는 마력을 확인했다. 제법 마력 감응이 뛰어난 직스가 저렇게 영창까지 해대는 걸 보면 쉬이 상대할 수 있는 종류의 마법은 절대 아니다.
그게 무슨 마법이든, 발현 그 자체를 막아버리면 의미가 없다.
나는 재빨리 곡궁을 집어들어서 마력화살 세발을 발사했다.
-카가각!
직스는 발현시키던 마력을 전부 흩어버리고, 얼른 자세를 낮춰서 피했다.
그리고 화살이 꽂힌 바닥으로부터 정령식 ‘수원 발현’이 발동된다.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 조금씩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
보통 사람들은 빗나간 화살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직스 에펠슈타인은 아주 미약한 마력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다.
이윽고, 그 빗나간 화살마저 노림수라는 사실을 눈치 채고 하위 불 마법 ‘발화’를 발현해 바닥에 꽂힌 화살들을 전부 태워버린다.
“방심할 수가 없군요.”
그대로 직스는 몸에 모인 마력을 방출해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고위 마법을 발현한다.
이제 2학년인데 벌써부터 고위 마법을 다룬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성과다.
허나 직스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 온몸에서 푸르스름한 마력을 발산해…. 거대한 마력 구슬 하나를 만들어낸다.
직스가 발현해낸 고위 마법 ‘고급 마나 무장’.
– 화아아아아악!
순간적으로, 둥근 마력이 흩어지더니… 활의 형태가 되어 직스의 손에 잡힌다.
그대로 시위를 당겨 발사하자 강력한 마력 화살이 내 몸을 노리고 날아왔다. 얼른 몸을 굴려 피하자, 내가 있던 자리에 박힌 마력 화살들이 터져나갔다.
몸을 굴려서 회피하는 데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은, 상대에게 추가적인 행동을 할 여유를 제공했다는 것과 같다.
어느샌가 크게 도약해 내 앞까지 도달한 직스의 손에는… 분명 활의 형태를 하고 있었을 마력의 구는 커다란 레이피어로 바뀌어 있었다.
총알 같은 속도의 찌르기. 이건 허용할 수 밖에 없다.
– 화아아악!
“크읏!”
그러나, 내 몸을 휘감는 바람이 직스의 몸을 튕겨내버렸다. 다시금 멀찍이 바위에 처박힌 직스는 몸을 털고 일어서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고위 바람 정령의 상시 발동 스킬, ‘풍랑의 가호’.
한 번 발동하면 다음 발동까지의 시간 차가 꽤 있는 편이니, 이제 남은 코인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풍랑의 가호로 인해 생긴 틈은 내게 다음 마법을 위한 마력을 모을 시간적인 틈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력을 발해, 머그를 날려보냈다.
– 화아아아악!
머그의 몸에서부터 피어오른 불꽃이 시야를 가리며 발하자, 직스가 혀를 차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나는 그 틈을 타 화살을 쏴댔지만, 직스는 시야가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마력의 흐름만을 읽어내어 화살을 모두 튕겨내버린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고 봐도 무방한 감각이다.
그대로 크게 도약해 다시금 거리를 좁힌 직스의 손에는, 이번엔 역수로 쥔 두 자루의 단검이 들려있다.
거의 모든 종류의 무기를 제약없이 다룰 수 있는 직스에게 ‘마나 무장’은 말 그대로 모든 전투 패턴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준다. 보통 마법사가 이 정도로 다양한 무장을 사용하는 경우는 잘 없기에, 거의 직스의 고유 마법이라고 봐도 무방할 스킬이었다.
– 카앙! 카앙!
– 카가가가가각!
어줍잖게 구현해낸 기초 방어마법은 단 두 번의 검격에 박살나버렸다. 그대로 직스는 빈틈을 파고 들려했지만, 나는 그 잠깐의 틈에 ‘바람 칼날’을 구현해 직스의 면전에 때려박았다.
물론 직스는 깔끔하게 막아내었다.
-카앙!
그러나, 그 잠깐의 틈이면 충분했다. 애석하게도 주변은 이미 물바다다.
방금 날려댄 마력 화살은 대여섯발. 이번에는 반격할만한 타이밍이 아슬아슬해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을 것이다.
직스의 등 뒤에서부터 달려드는 암사자 레이시아가 그 어깨를 물어뜯기 위해 입을 쩍 벌렸다. 허나 레이시아의 입에 물린 것은 그 어깨가 아니라, 재빨리 뒤돌아 방어자세를 취한 직스의 단검이었다.
-카가가가가각
직스는 그 공격을 받아내는 순간 이미 직감했다. 이 암사자 레이시아의 공격 또한 빈틈을 만들어내기 위한 페이크일 뿐이다.
재빨리 레이시아의 복부를 발로 차서 밀어내버리고, 얼른 내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내 마법의 발현은 이미 끝나있었다.
– 콰가아아아아아아아앙!
중위 불 마법, ‘일점 폭발’.
시전속도 만큼은 그 어떤 중위 마법이 와도 비벼 볼 수가 없는 속공 마법이다.
-화아아아아악!
그대로 직스는 나가 떨어져서 바위에 처박혔다.
-후두두둑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콜록대는 기침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과연…. 훌륭하십니다. 역시 방심할 수가 없군요, 에드 선배님.”
직스는 그렇게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몸을 겨우 가누고 일어섰다.
“그럼… 저도 좀 진지하게 하겠습니다.”
– 파악!
다시금 발현된 마력의 기운이 직스의 몸을 감싼다.
두 번째 고위 마법, ‘마나 무장 ? 수렴’이 마력 구슬에 덧씌워 진다.
마력 흐름은 여러갈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한 데 뭉치더니…. 이내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창의 형태가 되어 직스의 손에 들린다.
온갖 무기를 전부 다루는 직스지만,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건 창이다. 일대를 휘어잡는 마력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그 거대한 무기. 이르기를, ‘초목의 창’.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그 주변에 폭풍이 휘감겼다. 푸르스름한 마력의 기운은 이내 초록빛을 띄더니, 조금씩 직스의 몸을 두르기 시작했다.
몸은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휘감긴 마력은 몸을 묶는 중력조차도 거스른다.
실베니아의 낙제 검성 4막 7장. 그레골 성당 침투전.
거기서 중간보스로서 상대해볼 수 있는… 직스의 마지막 전투 패턴 상태.
‘초목의 창 직스’였다.
“후우…”
나는 숨을 한 번 휙 내쉬고 몸을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