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08)
학생회장 선거전 下 (9)
태양이 떠오른다.
긴밤 끝의 새벽인가. 그 빛이 너무 눈이 부셔서, 루시는 잠깐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루시 아가씨.”
근신 처분 시작으로부터 30일. 긴 고난 끝에 겨우 탈출의 아침을 맞이했다.
출근하자마자 루시의 방에 들른 벨 마이아는, 본인이 관리하고 있던 방 열쇠를 루시의 손에 다시 쥐어주었다.
그리고 근 한 달간 굳게 닫혀있었던 문이 드디어 스르륵 하고 열리는 것이었다.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태양빛은 어찌나 각별한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근신 처분 끝났고, 이제 일정에 따라 자유롭게 기숙사 내외를 왕래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학사 내부 규정은 잘 지켜주셔야 합니다.”
“드디어…!!”
순간적인 감정에 이끌려 난동을 부렸다가 거의 한 달 동안 지옥살이를 했다. 방구석에 갇혀서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며 얼마나 후회했던가.
루시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형벌이 무엇인지 그 핵심을 콕콕 캐치해내는 벨 마이아의 식견에도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루시 본인은 그 한 번의 난동이 이후 학생회장 선거전의 구도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자각은 없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한 달만에 나온 학사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음을 깨달을 수는 있을 터다.
각 후보들의 학생회장 출마 선언일로부터 열흘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한동안 많은 구설수를 낳았던 선거전도 이제 막바지다.
투표일이 가까워졌고, 어느 정도 구도도 고착화되어서 더 이상의 선거운동이 많은 의미를 가지기 힘든 시기.
“꽃 냄새…”
물론, 장미 정원으로 나와 모자를 꾹 눌러쓰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루시에게… 그런 시국적인 정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랜만에 바깥에서 맞아보는 바람을 음미하며, 갸악 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지개를 한다.
간만에 밖에 나왔으니만큼 온갖 곳을 나돌아다니고 싶은 루시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가볼 곳은 정해져 있었다.
*
“마법부 소속 2학년, 에드 로스테일러.”
사망 사건에 휘말리지 않나, 또 살아서 돌아오질 않나. 온갖 사건사고의 중심에서 난리를 피워댔던 핵심 인물이니 만큼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조사를 받았다.
학사 내에서 학생 회장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내가 받은 조사 횟수를 합치면 두 자릿수는 여유롭게 넘길 것이다.
학사 내부의 조사부와 감찰부는 물론이고 교수진 쪽에도 증언을 하러 다녔고, 3대 학장이 주도하는 공식 조사에도 다녀왔으며, 온갖 증언들을 쏟아내고 서류들을 써대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
이제 정말 조사가 끝났나 싶을 무렵이 되면 또 다른 해명 거리가 생기고, 그럼 또 처음부터 조사 순회를 다니고, 그 짓을 반복하다보니 정말 신물이 다 나올 지경이 된 것이다.
모든 조사가 마무리 되어가고, 이젠 정말 마지막으로 협조를 구하는 것이리라 확언하는 맥도웰 학장을 따라 트릭스관으로 들어갔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번 조사가 마지막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일이 또 어떻게 풀릴 줄알고.
그런 생각을 하며 맥도웰 학장을 따라 가다가, 이내 깨달았다. 이번 대담이야말로 정말 마지막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맥도웰 최고학장이 안내한 곳은 바로 트릭스관 상부의 가장 큰 방. 교장실이었다.
“편한 곳에 앉게.”
그 안에는 이 모든 사건의 종결권한을 지닌 학사의 최고 책임자, 교장 오벨 포시어스가 앉아있었다.
수호자 오벨.
짧게 깎은 머리와 깔끔한 구릿빛 피부. 환갑에 가까운 나이이지만 제법 젊어보이는 모습. 실제로도 원로 교수들에 비하면 젊은 축에 드는지라, 연륜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내가 접견용 쇼파에 앉자, 오벨 교장이 휙 하고 마력을 휘둘렀다. 그러자 티세트가 제멋대로 움직이더니 향기 좋은 차 한 잔이 회의용 탁상에 안착했다.
비서 인력은 되도록 최소화하는 방침을 지닌 오벨이다. 차를 내오는 일 정도는 직접 하는 사람이었다.
“조사 자료 다 읽어 보았네. 정말 고생 좀 했겠더군. 그런 봉변을 당하다니, 학사 차원에서 치안 관리의 미숙함이 있었던 것을 사과하겠네. 피해를 보게 해서 미안하네.”
오벨은 그렇게 교장석에 앉아서 내 노고와 학사의 미숙함에 대한 인정을 먼저 해두었다.
사실 상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한 인사치레 같은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배려를 해주고 있다는 것이니 너무 모질게 생각할 필요는 또 없었다.
“아닙니다. 상대는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준비해온 것이니… 치안 관리 차원의 대처로는 예방하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야기 해주니 내 입장에서는 고맙긴 하지만, 글쎄… 실상은 어떨까.”
오벨은 온갖 학사 시설에서 다방면으로 조사해서 보고해온 서류들을 집무용 책상에 잔뜩 쌓아놓고 있었다.
내가 했던 모든 증언들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관료제 피라미드에서 이렇게 꼭대기까지 올라와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전부 파악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러나 오벨은 모든 보고 서류를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전부 읽어대는 독종 중의 독종이다.
관리자로서는 훌륭한 기질이지만, 부하직원으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인간상이다. 대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다 이런 식인 경우가 많았다.
“극독의 각인이 서린 단검에 찔리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음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델 헤임 모래시계’ 덕이라고 이야기 했었나. 그런 고급 마공학용품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까지는 묻진 않겠네. 보통 학생이 가지고 다닐만한 물건은 아니긴 하지만 말일세.”
“굳이 숨길 마음도 없습니다.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제작 기술 자체는 타 마공학용품에 비해서 단순한 편이지만, 그 재료는 결코 쉽게 구할 수 없었을 것인데. 제작 자체에 들인 시간도 보통은 아니었을테고.”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제작하는 데에는 겨울방학을 거의 통째로 들였고요.”
그리 말하자, 오벨 교장은 눈을 좁히며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오벨 정도의 눈치라면 재료 조달 이야기를 할 때 엘테 상회와 모종의 접점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파했을 것이다. 내 신변에 대한 정보도 충분하리만치 파악했을테니 말이다.
괜히 엘테 상회와 척지고 싶지도 않고, 로르텔이라는 인물은 필요 이상으로 엮여봐야 힘만 빠질 거라는 사실을 은연 중에 잘 알고 있다.
“그 뒤로 절벽 밑의 동굴에서 표류 생활을 하다가… 예니카 페일로버에 의해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그 직후 바로 한 일이 타냐 로스테일러가 연설하고 있던 연단으로 뛰어와 그녀를 옹호하는 것이라, 이건가.”
“예, 그렇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굉장히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네.”
오벨은 서류들을 전부 툭 내려놓고,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맡겼다.
“마치 일이 잠잠해질 때까지 조용히 숨어있었던 것 같은데. 내 예상이 맞나?”
“거기다 대고 제가 뭐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장님 의견이 그러하시다면, 전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류로도 처리할 수 있었던 일을 굳이 자네를 불러내기까지 한 것은, 이런 겉치레 같은 눈치 싸움은 좀 관두자는 의도였네.”
나는 계속 일관된 진술을 해왔기에, 저렇게 잔뜩 쌓아놓은 서류를 읽어보아도 내용이 다 엇비슷할 것이다.
나는 카덱과 녹스에게 찔려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가 겨우 살아남아 표류했다. 그게 내가 말해둔 사실 관계의 전부였다.
“로스테일러 같은 귀족가의 내부 다툼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나는 모르네. 그 과정에서 누가 찔려 죽거나, 사라지거나 하는 끔찍한 일도 자주 일어나겠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그 사정을 알 방도도 없으니 어떻게 대처해줄 수도 없네. 그러니 그 사정에 대해서 깊게 파고들 마음도 없네.”
오벨은 팔걸이에 팔을 걸친 채로 가만히 이야기했다.
“다만, 이 사건 같은 경우에는 학사 내부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문제네. 나는 이 학사를 관리하는 사람이니, 최소한의 사실 관계는 정확하게 판단해서 황실에 보고해야할 필요가 있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다만, 자네의 행적을 보고 유추해보면… 단지 자네는 대외적으로 ‘죽은’ 인물로 남아있고 싶었던 듯 한데… 뭐, 그래봐야 몇 개월이면 금방 아켄섬에서 머나먼 땅까지 그 소문이 퍼지겠지만.”
교장직에서 살아남은 세월이 하루 이틀이 아닌 인물이다. 대개 이 정도 위치를 몇십년동안 사수한 사람이라면, 속에는 능구렁이를 몇 마리씩 키우고 있는 법이다.
그 정도 눈치와 통찰력이 없다면 살아남지도 못한다.
“내 입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네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온천하에 공표하는 게 맞겠지. 이미 자네의 사망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보고 사항은 황실에 보고가 들어갔지만, 그런 것들도 모두 정정해서 재보고 할 필요성이 있고.”
“그 또한 맞습니다. 제 아무리 학업의 성지 실베니아라 할지라도, 황실에 대한 보고 의무는 철저하게 지키는 게 신하의 예에 맞겠지요.”
“그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일세. 바로 책임회피에 대한 이야기지. 다소 적나라한 이야기지만, 굳이 돌려말하진 않기로 하지.”
황실에 보고가 들어간다면 황실 요직의 자리에 앉아있는 크레핀에게도 순식간에 그 소식이 전달될 터. 내 입장에서는 썩 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
“자네를 암살한 혐의를 쓴 카덱과 녹스가 아켄섬에서 탈출했네. 필시 물밑의 세력이 관여한 냄새가 나지만, 굳이 추궁하진 않겠네. 문제는 그 책임을 우리 학사가 덤터기 써야 한다는 점이겠지.”
“…”
“비록 파문 당했다곤 하나 한 때 귀족이었던 자가 보란듯이 학사 내에서 암살 당하고, 그 범인으로 동생이 지목 당하고, 실행범들은 모종의 세력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네. 그야말로 자네가 사실은 살아있다는 사실이라도 공표하지 않으면, 학사 차원에서는 영 책임지긴 힘든 일이지. 그러니 일단 인명피해는 없었다는 점은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게 당연하네.”
결국 높은 자리에 오르고 나면 책임 소재에 대한 문제에 언제나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대마법사의 반열에 올랐다는 오벨조차도, 결국에는 관료 사회의 부품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학사 차원에서 황실에 정정보고를 한다면, 단순 소문으로 소식이 퍼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크레핀에게 소식이 들어갈 것이다.
크레핀은 황실의 재상직을 겸하고 있는 데다가, 클로엘 황제의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황실에 들어가는 소식은 대부분 그의 귀에도 들어간다.
“그래서 자네에게 마지막으로 묻고자 호출했던 것이지.”
오벨의 화법은 에둘러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실상을 놓고 보면 직설적이다.
툭 까고 다 내려놓은 다음 마지막으로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그의 말을 요약해놓고 보면,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화끈한 화법이다.
너의 생존을 황실에 보고할 거다. 그래야 학사 입장에서는 책임 소재가 조금이라도 줄어든다.
근데 조사 자료 보니, 너는 몇 개월이라도 좋으니 당분간은 ‘죽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래도 학사 입장에서는 영 곤란하다. 그래서 보고할까 싶은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나의 모든 의도를 읽고, 그 입장조차 이해하고, 마지막으로 의견을 물어보고자 호출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오로지 서류의 보고 사항만을 읽고 파악해낸 것이니, 타 학사 직원보다 사태의 맥을 짚는 시야가 한층 더 깊다.
너네 가문의 내부 알력다툼을 왜 학사까지 와서 해가지고 이런 애꿎은 피해를 입히냐는 둥… 그런 투덜거림 또한 없다. 애초에 학사 운영이라는 것에는 온갖 변수가 잔뜩 있는 법이고, 그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최대한 일을 조용히 넘기시고자 하는 게 목적이라면, 저의 생존에 대한 보고는 뒤로 미뤄두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조리있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예상하셨겠습니다만, 저의 죽음을 사주한 것은… 로스테일러 가문의 가주이자 황실의 실권자인 제 아버지, 크레핀 로스테일러입니다.”
“말했듯, 가문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 파고들 의지는 없네만.”
“제가 하고싶은 말은… 제 생존을 공론화 시켜봐야 다른 암살 시도가 반복될 뿐이라는겁니다. 하고자 하면 반드시 해내는 분이니… 결국엔 어떤 방식으로든 해내시겠지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학사에서 부담해야할 사건이 더 불어나는 일밖에는 안되는 것이다.
결국 학사의 입장과 내 입장을 최대한 잘 맞춰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제 생존에 대한 보고는 좀 나중으로 미뤄둔다 해서 그리 부담될 것은 없지 않습니까. 핑계야 많습니다. 사실관계 파악에 시간이 걸렸다든가, 서류 반려 및 재검토, 악천후로 인한 파발의 실종… 뭐, 그런 것들이요. 그렇게 하면서 제 생환에 대한 사실을 보고할지 말지 지켜보시는 겁니다.”
“리스크를 감수해가면서 그렇게 해야할 이유가 있냐는 것일세.”
“오히려 리스크를 줄이는 행위입니다. 상황을 관망하실 수 있다는 겁니다.”
나는 찻잔의 끝을 손가락으로 슥슥 더듬으며 천천히 이야기를 이었다.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황실의 집무실에 앉은 크레핀 로스테일러가 보고 서류를 받는다.
서류에는 온갖 사항들이 잔뜩 보고 되었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에드 로스테일러의 사망이 확인되었다는 가장 중요한 정보 한줄 뿐이다.
“황실의 주축이 되는 로스테일러 가문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이번 사건을 그리 큰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덮으려고 한다면 모를까.”
“…”
“물론 판단은 오벨 교장님께서 하시는 것이지요. 나중 가서 필요하겠다 싶으면 제 생존을 보고하실 수 있고요. 여기에 그 어떤 리스크가 있습니까?”
거기까지 이야기 한 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오벨 교장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던 오벨 교장은… 이윽고 피식 하고 웃어보인 것이다.
“에드 로스테일러라고 했나.”
“예.”
“보아하니 성적 상승세도 가파르고, 학생들 사이 평가도 신기할 정도로 반등했다고 하던데.”
생존 사실 보고에 대한 건은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는다. 어떤 내재적인 결론이 이미 내려진 것일까.
“학생 수석들 사이에서 평가도 좋으니, 과연 명문가 로스테일러의 자제라 할만하군.”
“지금은 파문당한 신분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말일세. 그 동생 타냐 로스테일러도 요즘 승승장구하고 있지 않는가. 사실상 차기 학생회장으로 확정되었다고 봐도 될 정세지. 그 언젠가 말했듯, 실베니아는 언제나 학생들의 편이라네. 하물며 그런 모범생들이라면 더 강조할 필요도 없지.”
의미심장한 말이었으나, 나는 그 내포된 의미를 굳이 묻진 않았다.
다만, 오벨에게 미묘하게 인정받은 듯한 느낌이 났다.
“또 보세. 능력 있는 학생이라면 언제든 환영일세. 자네의 이름은 기억해두지.”
*
학사 조사를 받는 동안 대부분은 교수동에서 지냈다. 그 덕에 내 금쪽같은 캠프에 가볼 시간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조사도 마무리 되어가고, 선거도 이틀 뒤 투표 행사를 마지막으로 모두 마무리 될테니 전부 일단락 된 셈이다.
가장 먼저 오래 동안 방치되었던 내 캠프부터 정상화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일단 북쪽숲으로 향할까 싶었다.
교장실을 나와서 최고 학장에게 인사를 건넨 뒤,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 트릭스관 1층으로 나왔다.
학사 행정의 중심지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트릭스관은 언제나 분주한 분위기다.
인파 사이를 헤치고 나와, 교수동 메인 거리로 다시금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교장님께 호출 됐단 이야기 듣고 깜짝 놀랐잖아요, 오라버니.”
이제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한층 더 고고해진 느낌의 타냐 로스테일러가 트릭스관 앞 나무 벤치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굽이쳐 흐르는 풍성한 금발에 기품이 흐르는 눈매.
깔끔하게 차려입은 교복에 예쁘장한 금테가 잔뜩 수놓인 망토를 두르고 있다. 아무래도 야외를 나다닐 일이 많은 모양이다.
안 그래도 눈코뜰새 없이 바쁠 시기인데, 여기까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니 퍽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근 몇 주간 학사 내에서 타냐의 주가는 수직상승했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차기 학생회장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권위를 지니게 되었으니, 추종자들도 잔뜩 생겨났다.
좀 웃긴 점은, 카일리 에크네가 자기가 가장 먼저 들어온 추종자라며 텃새를 부리고 다닌다는 점인데… 그 소녀의 정체를 아는 입장에서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다…
안 그래도 메릴다가 그 소녀에 대해 구구절절 한탄 해대는 걸 듣고 있자면 쉬이 넘겨들을 수가 없는 이야기가 잔뜩이었다.
“선거 소식 들어보니까 거의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다며. 축하한다. 결국 빛 볼 날이 왔네.”
“아직 방심할 수는 없는걸요.”
타냐가 저렇게 빙긋빙긋 순수한 웃음을 짓는 모습은 쉽게 보기 힘들다. 어디서든 그 기품을 중시해야 하는 신분이었고, 이제는 학생회장 직위까지 달게 될 예정이니 더 그렇다.
선거전의 정세는 어쨌든 예상대로 흘러갔다.
타냐의 당선이 확실시 되는데에는 결국 3가지 요소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우선 그 결백이 증명되었다는 점.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결백을 일관되게 말하고, 그렇게 야유하는 대중 앞에서도 최대한 당당하려고 했다.
그 모습에 감화된 사람도 꽤 있는 모양이고, 살인범이라 야유했던 것에 대한 사죄심리도 조금은 녹아 있는 듯 했다.
두 번째는, 학부 수석들 대부분이 타냐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는 점.
그나마 내가 영향력을 좀 행사한 부분이었다.
4학년 3학부, 총 12명의 수석.
그 중 웨이드, 요제프, 클레비어스, 루시, 엘비라, 예니카, 아탈란테, 도로시. 총 8명의 수석이 타냐를 지지했다. 학년 수석의 지지는 굉장히 큰 상징성을 가지므로, 그 학부의 학생들에게도 제법 영향이 가는 것이다.
그런 기조가 대세의 주도권을 쥐는데 큰 영향을 주었고.
마지막으로 선거 초반에 그토록 지지받던 로르텔의 몰락이 결정타였다.
정치전에는 도가 튼 로르텔의 안목이라고 해야할까.
로르텔은 집요할 정도로 이 정치전의 구도를 타냐와 로르텔의 양강 구도, 즉 일대일 싸움으로 몰아갔다.
공적인 자리에서도 언제나 타냐만을 언급하고, 대놓고 경쟁자로 타냐만을 의식했으니… 선거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가 타냐와 로르텔의 싸움으로 이 구도를 이해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렇게 판을 짜놓고, 자체적으로 상회 자금 횡령과 거래처 횡포에 관한 스캔들을 터뜨려 본인은 불명예 속에서 사퇴했다. 온갖 비난과 공격이 그녀를 향했지만, 연단에서 내려오던 그녀가 슬쩍 웃고있던 모습을 나는 확실히 보았다.
양강 구도로 정착 시켜놓은 선거전의 그림은, 로르텔이 퇴장하자마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타냐에게로 쏠린다. 나머지 군소 후보들은 어떻게 비집고 들어올만한 틈조차 없이, 그렇게 황녀의 공식적인 지지를 업고 타냐는 완전히 민심을 장악한 것이었다.
그 결과, 학생회장 투표를 이틀 앞둔 지금에서는… 학사 어디를 가든 타냐의 지지세력밖에 남아 있지 않다.
학생회장 타냐 로스테일러. 그 직함이 거의 정해진 순간이었다.
“저는 선거 치른다, 오라버니는 조사 받으러 다닌다 하면서 거의 이야기를 나누질 못했잖아요?”
“그래도 이런 중요한 시기에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냐? 이야기야 일단 선거 치르고 나서 해도 되는 거고.”
“보아하니, 학생회장 되고 나서 훨씬 더 바빠질 것 같아서요.”
빙긋빙긋 웃는 모습에, 예전처럼 날이 잔뜩 서있던 그 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악의 영애’로서의 모습만 봐왔던 나에게도 다소 신선한다. 그 기품어린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야기할 기회야 잔뜩 있겠지만, 그래도 고맙다는 말은 꼭 해둬야 될 것 같아서요.”
“그 때도 질릴 정도로 말했잖아.”
선거 출마 선언일 당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내 손에 얼굴을 묻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
그 광경이 타냐 본인도 생각 났는지, 갑자기 얼굴을 훅훅 붉히고서는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아, 아니… 그리고… 사실은요… 생각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거든요. 비교적 중요한 일들도 거의 끝나갔고요. 슬슬 이야기 할 때도 되었다 싶어서… 언제까지고 모른 척 할 수도 없고요.”
“정리?”
“에드 오라버니의 살해를 사주한 건 역시…”
그렇다.
타냐가…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나를 죽이려 든 것이 자기가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카덱과 녹스에게 그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래봐야 가문 안에서는 뻔한 것이다.
“아버님… 인가요…”
나는 굳이 소리를 내 대답하진 않았다.
타냐는 로스테일러 가문의 위광을 동경하고, 그 아버지를 롤모델 삼아 살아왔던 소녀다.
그 민낯을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모른 체 하고 살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얼굴을 끄덕이자, 타냐는 고개를 푹 숙였다.
타냐에게는 내가 숨어있을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해둘 필요가 있었다.
특히, 로스테일러 가문에 직통으로 통하는 연락 수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만큼 더욱 더.
그러기 위해서는… 크레핀의 민낯에 대한 이야기도 해둘 수밖에 없다.
“황족 숙소에 있으면서, 페니아 황녀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특히 에드 오라버니에 대한 이야기요.”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를 꺾은 건 타냐였다.
“내 이야기를 했다고?”
“네. 페니아 황녀님은… 마치 에드 오라버니가 일부러 가문에서 나오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
“처음에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싶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저도 그 말에 설득력을 느껴요. 왜냐면… 에드 오라버니는 이 실베니아의 학사에 와서야 비로소 제 모습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나는 벤치에 앉은 그대로 턱을 훑었다. 타냐가 하는 이야기는 흘려들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묻고 싶었어요. 혹시.. 오라버니가 어떻게든 가문에서 나오려고 했던 이유는… 그.. ‘서랍’에 관련된 건가요…?”
“…서랍…?”
“항상… 가까이 못가게 하시고, 절대 못 열어보게 하시던 오라버니 방의 그 서랍이요. 언제부턴가 아예 열쇠로 잠가놓으시기까지 하셨잖아요. 지금도 로스테일러 저택에 가면 그대로 있을 건데…”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에서 에드 로스테일러라는 인물은 초장부에 탈락하는, 지나가는 악역에 불과하다.
그 과거사가 어쨌든 간에 깊이 다루어지지도 않았으며, 내 입장에서도 그리 중요하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가 않았다.
“글쎄다… 기억이 안난다.”
그저 그리 이야기할 뿐이었다.
타냐는 잠시간 나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한층 더 차분해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그 잠깐동안 한층 더 성장한 느낌이다.
“그런 우중충한 과거 이야기보다는,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 타냐 너도 이제 학생회장에 앉았으니… 빛 볼 일만 남았을 거고.”
“글쎄요. 막상 취임을 앞두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니, 당장 처리해야할 일들이 더 많은 느낌이에요…”
어쨌든 타냐는 살아남았다.
로스테일러의 위광을 드높인다는 명목도 아니고, 온전히 자신을 위해 학생회장의 자리에 앉았다. 그 앞길이 탄탄대로라는 보장은 못한다. 그래도 응원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근데 오라버니, 이런 질문… 괜히 짓궂은 것 같기도 하고, 썩 좋은 것 같진 않아서 참으려고 했는데요… 그래도 못 참겠는데 좀 물어봐도 돼요?”
“뭔데?”
“저… 선거 출마 선언 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제 편을 들어주셨던 이유가…”
타냐는 본인 입으로 직접 이런 걸 물어보는 게 멋쩍은지, 볼을 붉히고서는 힐끗힐끗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낯 뜨거운 질문이긴 하다.
“꼭 숨어계셔야 했다면… 굳이 거기서 그렇게까지 나설 이유는 없으셨을텐데. 마치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제가 겪는 불의를 참지 못했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잖아요..?”
“그런 느낌이고 자시고, 그랬던 거 맞아.”
타냐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과민 반응이다.
“가족이잖아.”
“…”
“그럼 편들어 줘야지.”
그 말에 타냐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이내 빙그레 웃고 만 것이다.
“가장 큰 위기 때 옆에 서 있어준 사람이야말로 평생 갈 인연이래요. 사교계 공부하면서 읽었던 책에서 봤던 문구인데요… 썩 좋은 책은 아니었지만 그 문구만큼은 기억에 남았었네요.”
“…”
“뭐어, 이젠 학생회장이고. 공적인 업무를 많이 맡을테니 썩 좋은 태도는 아닐테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편파적이 될 수도 있잖아요? 저도 사람이니까.”
타냐는 빙그레 웃더니, 벤치에서 일어서서는 휙 돌아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위기가 오면 말해요. 제 선에서 가능한 건, 다 도와드릴테니까.”
활짝 웃는 모습이 기품 어린 악역 영애와는 영 거리가 멀어서… 나는 그제서야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가족이라, 좋네요.”
“…언제부터 있었냐.”
“선배님이 타냐를 상대로 낯뜨거운 이야기를 할 때부터요.”
선거 일 관련해서 급히 처리할 것들이 아직도 잔뜩 쌓여있을 것이다. 타냐는 그 와중에 시간을 쪼개서 찾아온 것인지, 떠날 때도 급하게 떠났다.
그리고 타냐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반대쪽 벤치에 앉아있던 소녀가 일어서서 이쪽으로 온 것이다.
내가 앉아있는 벤치 반대편에서, 등받이에 엉덩이를 걸친 채 여우처럼 웃는 소녀는… 엘테 상회의 회주 대리이자, 몰락한 학생회장 후보다.
내가 얼굴을 덮고 한숨을 휙 흘리자, 로르텔은 즐겁다는 듯이 우후후 하고 웃었다.
“뭐, 좋은 이야기만 하고 살아야죠. 구태여 들추지 않아도 될 부분은 덮어두고 사는 게 노련함이라는 거고요.”
내가 타냐를 도운 것은… 그렇다, 본래 타냐가 치러야 할 운명적 시련에 비해 너무나도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즉, 동정심에 기인한 것이며, 또.. 이 넓은 세상에 유일하게 핏줄이라 할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족애라는 것이 그리 쉽게 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또 이 세상에서 하나 뿐인 피붙이 동생이라는 점이 들이밀어지면 쉽게 그녀를 내치지 못하게 만든다.
똑 닮은 금발이나 눈동자 색, 공유하고 있는 가문적 배경이라는 동질감은 신기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행동이란 게 항상 감성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타냐에게는 마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옹호한 것처럼 이야기 했지만… 그녀의 ‘이용가치’ 또한 감안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타냐는 평생을 로스테일러의 위광을 동경하며 산 소녀다. 크레핀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야말로 로스테일러 가문에 뼈를 묻은 내부자 그 자체이며, 포섭할 수만 있다면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학생회장이자, 로스테일러 가문의 내부자. 가문으로 이어지는 직통 연락망까지도 가지고 있으니, 가문 내부 정보를 흐리거나 연막 작전을 펴는데 직접적인 영향력까지 있다.
각별한 관계가 되어두면 얻게 될 그 이점은… 지나치게 타산적인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계산하지 않을 순 없다.
사람 사이의 관계란 언제나 어느 감정 하나로 순수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게…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다.
다만, 이왕이면 밝은 부분만 알고 있는 게 좋다.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놈들끼리만 알면 된다. 이를테면… 어릴 적부터 그런 이해타산 속에서만 살아온 소녀라든가.
결국 그런 부분을 공유할만한 사람이라고는, 끽해봐야 로르텔 뿐인 것이다.
“요즘 학사 내에서 제 악명이 드높거든요. 타냐양 또한 저를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으니, 당분간은 에드 선배님에게 일임해야겠네요.”
“너는 주변 사람들을 죄다 쥐고 흔드려드는 나쁜 버릇이 있는 것 같다, 로르텔.”
“어머, 그냥 직업병이에요. 그리고 저도 휘둘릴 때는 휘둘린답니다?”
“…요즘 들리는 소문이 말이 아니던데, 너는 괜찮은 거 맞냐?”
“소문이 돈 떼어 가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요.”
빙긋빙긋 웃으면서, 로르텔은 가만히 벤치 등받이에 기대어 선 채 하늘을 보았다.
“뭐어, 저는 악역 체질이라서. 선배님만 적으로 돌리지 않으면 됐어요.”
빙그레 짓는 미소가 늘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여튼, 쉽지가 않다.
*
그리하여, 학사는 새 국면을 맞이한다.
학생회장 타냐 로스테일러가 학생회의 권좌에 앉고,
회장 직위를 맡지 않는 페니아 황녀는 황족 숙소에서 고고히 하늘을 올려다 본다. 앞으로 그녀의 행보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는 이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황실 세력과 로스테일러 가문 사이의 알력 다툼 또한 어떻게 되어갈지는 하늘의 뜻에 달렸으며, 남은 3막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진행될지도… 지켜봐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오랜만에 오니까… 진짜 각별하네.”
내 오두막과 캠프는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향처럼 느껴지는 이 캠프가 썩 그리웠다.
일단 난리가 난 오두막 내부를 좀 치우고, 캠프의 정상화를 위해 모닥불 터를 다시 깔끔하게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이전에… 좀 쉬고 싶어졌다.
– 끼익
먼지가 쌓인 오두막 내부로 들어오자, 익숙한 풀내음이 가슴에 묵직하게 눌러앉는다.
일단은 좀 쉴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외투를 목재 책상에 벗어 던진 채 이불을 휙 들었다.
“쿠우으…. 후우….”
“…”
그러나, 선객이 있다.
쌕쌕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루시가 내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베고 자던 베개를 꽉 안고서는 세상 좋다는 듯 숙면을 취한 모습. 마치 수십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듯한 꼴이다.
그 모습을 보자, 이윽고 나는 허탈한 헛웃음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나는 대충 이불을 다시 휙 던져놓고,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휴식용 목재 의자에 몸을 뉘었다.
책상에 있는 원소학 서적 하나를 꺼내서 툭툭 턴 다음 얼굴에 얹어 놓고, 그렇게 잠들었다.
한동안 나와 루시가 쌕쌕 내쉬는 숨소리만이 오두막에 가득했다.
드디어 캠프로 돌아왔다. 일단은 그 기분에 취해있기로 결정한 것이다.
타냐의 학생회장 당선 소식이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3일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