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09)
이보세요, 예니카 씨 (1)
학생회장 선거전이 마무리되고, 타냐 로스테일러의 새 내각도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 가고 있는 시기였다. 굳이 시간으로 따지자면 선거 종료일 이후 열흘 정도 지난 시점이다.
“너 에드랑 사귀냐?”
정령학 선임 교수 멜리나는 누가 봐도 불량한 모습 그 자체였다.
수수한 흑장발은 그나마 깔끔하게 빗어 내렸지만, 피폐한 눈매에 비죽 내민 입은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 몸의 굴곡이 여실히 드러나는 옷매무새도 교수라기보다는 어디 여관의 주인 같은 모습이다.
파이프 담배를 머금고 있다가 연기를 훅훅 내뱉는 모습. 정말 가까이하기 부담스러운 인상이었다.
“…네…?”
“에드랑 사귀냐고.”
1, 2학년들 정령학 과제 검토 관련해서 도움을 받고자 예니카를 호출한 참이었다.
그래서 예니카는 교수동 개인 연구실까지 찾아왔건만, 처음으로 건넨 말이 그런 것이다.
예니카 성격상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그그그건 갑자기…?? 왜 그런 소리가…?”
“장난하냐. 정령학 수업 말고도 분기별 공통 수업이나 원소학 수업까지도 둘이 딱 붙어 다니잖아. 학생 복지 시설이나 학생 식당에 뭐 먹으러 다닐 때도 붙어 다니고.”
“…그거… 는….”
“남녀 간에 눈높이만 맞아도 온갖 연애 회로가 가동하고 구설수를 돌려 대는 게 너네 나이대 여자애들인데, 그 정도면 소문이 돌고도 남지. 안 그래?”
멜리나 교수는 징글징글하다는 듯이 치를 떨고서는 다시금 연기를 푹푹 내뱉었다.
“거기다가, 요즘 예니카 너 틈만 나면 헤실헤실 거리기만 하고… 강의 시간에도 멍하니 칠판 쳐다보다가 배시시 웃어 대잖아. 이제 막 연애 시작한 꼬맹이들 같아서 한숨만 나와. 대체 뭐냐고, 무슨 실없는 생각을 하기에 그런 넋 나간 얼굴로 입꼬리를 헤벌레― 하냔 말이야.”
“그,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확실히 예리한 지적이다. 괜스레 콧노래를 부르거나, 목소리 톤이 괜히 붕붕 뜨는 둥 누가 봐도 요즘 예니카는 신이 나 있다.
에드의 은둔 기간을 기점으로 둘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아졌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에드는 가까이 지내는 동급생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학사 생활을 할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예니카와 함께 보냈다.
겹치는 수업도 많고, 밥도 같이 먹고, 과제도 같이 해결하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 땐 찰떡같이 붙어 다니고 있었다.
행복에 치사량이 없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국이었다.
“그래… 네가 누굴 만나서 뭘 하든 교수인 내 입장에서야 참견할 일은 아니겠지. 오늘 너를 호출한 건 그냥 1, 2학년 정령 감응 과제 채점 관련해서 도움을 받을까 해서 불러 본 거란다.”
“채점을요…? 제가요…?”
“안 될 것도 없잖니? 가산점 줄게.”
정령술에 한해서라면 이 학사에서 예니카를 따라올 수 있는 자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썩어도 준치라고, 멜리나 역시 교수직이기 때문에 자신의 전공 분야인 정령술에 대한 조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깊다.
그러나, 그 범위는 학술 분야의 영역을 넘어서기 힘들다.
정령학의 본질. 역사. 정령들의 생태계. 정령 친화에 대한 개념. 감응력 수련 방식. 감응력이라는 개념에 대한 깊은 이해 등등.
학술의 분야라면, 예니카는 당연히 평생을 연구해 온 교수진한테는 발끝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감각의 영역은 완전히 다르다.
구기 종목을 잘 아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감각의 영역으로 들어선다면 고위 정령조차 자유자재로 다루는 예니카의 감각은 그 깐깐한 멜리나조차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조만간 합동 전투 실습도 예정되어 있으니, 선배로서 위엄을 바로 세울 기회라고 생각해 둬.”
“위엄 같은 걸 세우고 싶진 않아요…”
“사실 위엄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그냥 제발 수업 중에는 세상 행복하다는 듯이 빙긋빙긋 웃어 대는 것만이라도 어떻게 좀 참아라. 꽃피는 청춘을 구가하는 거야 네 복이지만, 옆에서 보고 있는 입장에선 ‘얘가 진짜 정신이 나간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예니카는 괜스레 얼굴이 훅훅 달아올랐다. 삐질삐질 고개를 숙이고는 금세 휙휙 끄덕였다.
한번 제 세계에 빠지기 시작하면 주변 시야를 잘 의식하지 않는 기질이 있다. 그래서인지, 근래 들어 묘하게 텐션이 높은 자기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려를 표할 만한 일도 아니다. 뭐 좀 평상시에 헤실헤실 댄다고 입꼬리가 닳는 것도 아니니.
다만, 예니카가 감안하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에드와 함께 학사를 쏘다니며 꽁냥거리는 모습은 삼자 입장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연인처럼 보여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두 사람이 ‘저희 사귀어요.’ 하고 선언해도 ‘역시 그랬군―’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같다.
그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썩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
뚱한 얼굴로 도끼눈을 뜨고 망토를 갈무리한 아니스 헤일란은… 찻잔에 단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다.
학생회관에 마련된 찻집의 테라스석에 앉아서 가만히 광합성을 하고 있는 예니카. 봉제 인형인 양 미동도 없이 화사한 얼굴로 빙긋빙긋 웃는 모습이었다. 얼굴에는 윤기가 반질반질하게 흐르는 것이 세상 행복해 보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푼수 그 자체다. 헤실거리는 모습 주변에는 꽃이라도 피어나는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겠네, 예니카. 오늘 마물 생태학 과제는 정말 양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잖아.”
“응? 으응~”
“…이른 저녁도 먹었겠다. 해 떨어지기 전에는 기숙사로 돌아가서 스트레이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고대 문헌 해독에 도전해 봐야겠어. 수업 때 들었던 내용만 봤을 때는 혼자 하기 힘들어 보이던데, 그래도 시도는 좀 해 봐야지….”
“으응~ 그렇네에~ 한 번은 해 봐야겠네~ 이번 해독학 수업은 그래도 과제는 많진 않았으니까~ 괜찮겠지이~”
“…….”
평소처럼 아니스의 말을 경청해 주며, 적당히 받아 주고, 맞장구도 쳐 주는 예니카다. 그러나 아니스는 묘하게 화가 났다.
아니스 역시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눈은 웃고 있지만, 십자 핏줄이 비죽하고 솟아오른 느낌이다.
세상 행복한 예니카의 모습을 보면 아니스도 흐뭇한 미소를 흘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인데, 본인은 대체 왜 지금 미묘하게 화가 나고 있는가?
조금만 자기 감정을 되새겨 보면 그 이유를 금방 깨우칠 수 있겠지만, 아니스는 당장 그리하진 않았다.
“그건 그렇고, 예니카… 그 남자 말인데….”
“응? 에드 말이야…?”
“응. 예니카는 그 남자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나 보네?”
처음에야 난데없이 요리를 해 대는 예니카의 모습을 보고 정말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인가 걱정하던 아니스였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때의 행동들이 모두 납득이 됐다.
예니카는 애초에 에드 로스테일러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비밀로 숨긴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니카가 그리했다면, 분명 납득 갈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아니스는 모르지는 않지만, 아니스는 괜스레 심술이 났다.
“나… 그때 정말 예니카 걱정 많이 했거든. ‘그 남자의 죽음으로 인한 상심이 너무 커서 정말 예니카가 많이 힘들어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어. 예니카는 내 소중한 친구잖아.”
“으, 으응….”
“그래서 말야…. 야속한 기분이 좀 들었어. 나는 예니카를 이렇게나 걱정하는데, 예니카 혼자만 진실을 알고 함구하면서 걱정하는 날 보고만 있었잖아, 응?”
“아, 아아니… 그, 그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친구인 예니카를 상대로 지금 무슨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인가. 왜 이런 의미 없는 추궁 따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스는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이 스스로도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저 입으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미… 미안했어… 아니스. 근데 정말 사정이 있었어.”
“나한테도 말해 줄 수 없을 정도로…?”
“으, 응….”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아니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곁눈질로 예니카의 눈치를 스윽 보았다.
세상 착한 예니카답게 제 손끝을 어루만지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비릿한 통증이 가슴께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적절한 배덕감은 사람의 탈선을 부추기는 힘이 있다.
“분명 예니카라면, 에드 그 남자를 도와주다가 큰일에 휘말린 상황이었겠지.”
“비… 비슷해….”
비슷하고 자시고 그 말이 정확했다. 제한된 정보를 통한 추론 작업은 아니스의 주특기였다.
“애초에 예니카는… 그 남자가 상대면 맨날 도와주기만 하고, 퍼 주기만 하는 거 같아….”
너무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서 좀 그런 감은 있지만, 어쨌든 팩트긴 했다.
“예니카가 그 남자 식모야…? 은둔을 하면 했지, 대체 그 남자가 뭐라고 밥 지어 주고, 살림 챙겨 주고 하는 건데…? 그렇게 해서 그 남자가 뭐 돈이라도 줬어…? 포옹이라도 한번 해 줬어…? 먼저 연심 품은 사람이 을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선을 넘었잖아…!”
“그, 그건….”
“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그렇게 간이고 쓸개도 다 빼 주다가,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건 순식간이야…! 사실 에드 로스테일러는 그러고도 남을 남자 아니야…??”
“여기서 왜 에드 욕으로 이야기가 꺾이는 거야…? 아니스, 저번에 에드 정도면 꽤 괜찮은 사람이라 그랬잖아…!”
“읏…!”
아니스는 거기서 말문이 한번 막혔다. 애초에 뭔가 지금 말이 나가는 대로 이야기를 쏟아 내는 느낌이라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느낌도 들었다.
에드 로스테일러가 예상보다 생각이 깊고 괜찮은 남자라는 사실은 아니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묘하게 그를 험담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 가슴을 쑤셨다.
허나 전술했듯, 적절한 배덕감은 사람의 탈선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정답만을 고르며 착실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한번 삐끗했을 때의 그 묘한 비틀림에 기묘한 끌림을 느끼는 것이다.
“허, 험담할 마음은 없었어…. 미, 미안….”
“아, 아니야….”
잠시 침묵.
미묘한 분위기. 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둘 다 모른다.
“그, 그래도 말이야 예니카.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단 말이지.”
“조심하다니… 뭐를…?”
“그냥 좀 복합적인 얘기야. 사실 생각해 보면 예니카가 이렇게 헌신적인데도 에드 그 남자가 이렇다 할 뭔가를 해 준 적은 없잖아? 그게 사실이긴 하잖아…?”
“매, 매번 고맙다고 해 준단 말이야. 나 없으면 정말 끔찍했을 거라 이야기해 주면서 어깨도 토닥여 주고… 악수도 해 주고….”
“결국 말뿐인 겉치레잖아…!”
전형적인 매 맞는 아내의 사고방식에 한없이 수렴해 가고 있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니스의 조언 또한 묘하게 이상한 방향으로 튀기 시작했다.
“이건… 그 남자를 시험해 봐야 할 타이밍이야, 예니카.”
“시험이라니… 내가 에드를? 그렇게 말하면 내가 꼭 에드를 못 믿는 것 같잖아.”
“지금은 의심해야 할 타이밍이야. 넌 그럴 권리가 있어, 예니카. 에드에게 해 준 게 한둘이 아니잖아. 이대로 주고만 살 거야? 받을 때는 받아야지! 너 그러다 진짜 호구 된다…!”
그 상단의 로르텔처럼 고풍스럽고 여우 같은 밀당은 바라지도 않는다. 포기한 지 꽤 오래됐다.
하다못해, 퍼 주기만 하고 인사치레로 퉁 치기 당하는 일은 피하는 게 맞지 않나.
“에드 그 남자를… 좀 화나게 만들어 봐.”
“뭐…? 내가… 왜…?”
“사람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을 때 제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야, 예니카.”
그러니 뭔가 그 남자가 화낼 일을 해서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라는 이야기다.
에드 로스테일러가 화내는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진 않지만, 어쨌든 그도 사람이니 분노할 때는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에드는 단 한 번도 나한테 화내 본 적이 없는걸….”
곤란한 듯 땋은 머리를 배배 꼬며 그리 이야기하는 예니카가… 아니스는 왠지 모르겠는데 무지하게 얄미웠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얄미울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데… 그냥 그랬다.
“그리고, 시험해 보겠답시고 사람의 화를 돋우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설마 했던 정론. 허나 반박할 논리가 없진 않다.
“예니카. 잘 들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예니카는 그 남자를 짝사랑하고 있잖아?”
“허읍.”
제아무리 본인이 자각한 감정이라도, 말의 형태가 되어 입 밖으로 내놓고 보면 괜스레 부끄러워지는 게 사람 심리라는 것이다.
깜빡이 없이 확 들어와서 사실을 들춰 내는 아니스의 말. 예니카는 침을 꼴깍 삼키며 볼을 붉혔다.
“그런데 지금 예니카는 그 남자의 연인이라기보다는 절친한 친구나 가족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 알아…?”
“그, 그건….”
그야말로 정곡이었다.
에드의 얼굴을 떠올리거나, 그의 캠프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떠오르는 푸근하고 편안한 감각.
그의 어깨에 기대는 상상을 한다면, 예전에야 심장이 쿵쾅대고 얼굴에 핏기가 쏠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요즘에는 고향에 돌아온 듯 편안한 느낌이 떠오르고 만다.
“바로 그게 문제야, 예니카! 그 남자도 뭐 매한가지겠지…! 너희 둘한테 필요한 건 관계의 ‘재정립’이야!”
“재정립…?”
“그래… 너희들은 좀 ‘낯설어’질 필요가 있어! 서로가 서로에게 당연한 존재로 남으면 두근거리질 않잖아!”
아니스의 말에는 묘한 마력이 있다. 어느샌가 예니카도 침을 꼴깍 삼켜 대며 그녀의 이야기에 솔깃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적당히… 화나게 만들어 봐. 그럼 진짜 그 남자의 본 모습이 나올 거야.”
마른 침을 꼴깍 삼키는 예니카의 모습을 보면서… 아니스 또한 묘하게 가슴이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그럼 난 가 볼게…! 내일 또 보자, 아니스…!”
안 그래도 예니카는 오늘 중에 에드 로스테일러의 정령 감응 훈련을 좀 봐주기로 했다.
그런 일정을 이야기하며 학생회관을 떠나는 예니카를 배웅하고, 아니스는 얼굴을 감싸 쥔 채 근처 벤치에 주저앉았다.
일단 그 남자를 화나게 만들어 보라는 헛소리. 관계의 재정립이니 뭐니 하는 그럴싸한 명분을 가져다 붙였지만, 결국 예니카에게 헛물을 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건… 세상 그 누가 봐도 이간질이다.
그런 제 행동이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아니스는 한동안 목재 벤치에 앉아 열기를 식혀야만 했다.
그러나… 가슴 한편으로는 다른 의문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묘하게 피어오르는 배덕감과 죄책감을 그나마 중화시켜 주는 의문이다.
애초에 예니카가… 그 남자의 화를 돋우는 게 가능할까…?
“…….”
결론부터 내려 보자면, 절대로 불가능하다.
애초에 예니카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에드 로스테일러라면 더더욱 그렇다.
“진짜… 쓸데없는 짓이나 하고는….”
아니스는 얼굴을 북북 쓸어내리면서 제 머리를 때렸다.
* * * 기술 숙련도: 6 마공학품 이해: 7 빠른 제작: 4 수집한 제작식:
미약한 바람 발산기 (Lv 4)
산울림 소음 발생기 (Lv 3)
감응식 자동 마력 체스판 (Lv 1)
온실화 수정구슬 (Lv 3)
푸른 마법구 (Lv 2)
갈퀴손 (Lv 3)
크레이글 마법 잉크 (Lv 2)
투광구 (Lv 3)
오니아의 겁화 (Lv 1)
텔로스의 서릿빛 가호 (Lv1)
벼락 맞은 천년 나무 지팡이 (제작식 개방!)
글록트의 눈 (제작식 개방!)
델 헤임 모래시계 (Lv 1)
나는 마공학 슬롯에서 내가 제작할 수 있는 여러 마공학 용품들의 목록을 훑어보았다.
그중에서도 지금 가장 관심사에 들어와 있는 건 ‘벼락 맞은 천년 나무 지팡이’다.
일단 제조식 자체는 무척이나 간단하다. 공정도 거의 없고, 그 난이도 수준도 높지 않은 주제에 위력 등급은 높다.
그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재료를 구하기가 무척이나 힘들기 때문이다.
천 년 이상 살아 있던 나무가 벼락을 맞아 비틀려 있는 가지. 말만 들어도 대체 어디서 구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재료다.
본편에서는 3막 최종장의 보상 아이템으로 그냥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는 것이지만, 현실이 되고 난 지금 상황이 되고 보니 이걸 어디에서 구해야 하나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뭐, 없다면 만들면 된다.
천 년 이상 된 나무는 흔치 않지만, 적어도 이 북쪽 숲에 한 그루 정도는 있다. 그럼 그 나무의 가지에 벼락을 때려 박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나무는 바로 ‘메릴다의 수호목’이다. 가지 하나 정도는 메릴다에게 부탁하면 어떻게든 꺾어 올 수 있다.
벼락이라면 루시가 다루는 고위 전격 마법 ‘천벌’이 있다. 루시에게 고위 마법은 그냥 귀 후비면서도 난사할 수 있는 것이기에, 부탁하면 해 줄 것이다.
“흐음….”
벼락 맞은 천년 나무 지팡이 ( 매우 희귀 )
모든 속성 정령의 감응력 증폭. 정령계 마법의 마력 효율 증폭.
마공학 용품의 정보란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탐이 나는 능력치다.
애초에 감응력 스탯은 일종의 고유성이 강하게 보장되어 있어서, 장비나 강화 마법으로 어떻게 증폭시키기가 힘든 스탯이다.
감응 스탯은 그 인물 본연의 힘에 의해서만 발현되는 것. 의 핵심 원칙 중 하나를 정면으로 깨부수는 예외성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이 지팡이인 것이다.
모닥불을 부지깽이로 툭툭 건드리면서, 벼락 맞은 나뭇가지 외 다른 재료들을 조달할 계획을 수립했다.
나머지들은 엘테 상회 쪽에 가보면 대부분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의외로 현실성 있는 계획이었다.
“흠…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겠네.”
애초에 내가 쓰려고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예니카가 제 몸처럼 안고 다니는 떡갈나무 지팡이를 떠올려 보았다. 분명 나쁘지 않는 성능의 지팡이겠지만, 제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써서 낡았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선물해 준 지팡이가 잔뜩 있는데도 그 지팡이만 쓰는 데는 모종의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래도, 본인의 잠재력을 한층 더 높여 줄 수 있는 장비가 있다면 그걸 사용하는 게 옳다. 안 그래도 예니카에게는 여러모로 보답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여유가 있다면 내 것도 만들고 싶지만… 등급이 높을수록 다시 제작할 때 들어가는 마력의 효율이 더 나빠진다. 고효율 마공학 용품을 무한대로 양산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두 번째 지팡이는 좀 천천히 만들 각오를 하는 게 맞겠지.
델 헤임 모래시계 같은 전설급 마공학 용품을 다시 제작할 생각이라면… 거의 두 달은 잡아야 할 것이고.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물론 그동안 다른 마공학 용품도 잔뜩 만들겠지만.
일단, 이번 학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다른 전설급 마공학 용품인 ‘글록트의 눈’을 만들고 싶다.
글록트의 눈 ( 전설 )
모든 감응계 능력의 숙련도 일시적 폭증. 저주계 마법의 효율 반감. 방어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됨. 원소계 마법에 면역 상태가 됨.
감응계 능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아이템 중 가장 그 등급이 높은 마공학 용품.
지금 시점에서는 어떻게 만들어 볼 엄두가 안 나지만… 그래도 꾸준히 시간을 들여서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 특히 모든 원소계 마법에 완전 면역 상태가 된다는 점은, 마법사를 상대로 전투할 때 압도적인 우위를 지니게 된다는 뜻 아닌가. 상황을 좀 타지만 반쯤은 사기성 아이템이고, 원작에서도 극후반에나 획득할 수 있던 아이템이다.
무엇보다 글록트의 눈은 소모품이 아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은 존재하지만, 어쨌든 재사용이 가능한 물건이니 일단 만들기만 하면 실질적인 내 스펙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 후… 일단 아득한 목표보다는 눈앞의 목표부터 차근차근 이뤄 내야겠지. 일단은 지팡이부터 빨리 만들면 좋겠는데.”
물론 혼자 힘으로는 어렵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오두막 쪽을 보았다. 딱히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리저리 시야를 돌려 캠프 전경을 전부 훑어보니, 오두막 옆 나무에 그물로 쳐 놓은 해먹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루시가 딱 눈에 들어왔다.
“읏차.”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켜서 해먹 쪽으로 갔다.
나는 고개를 루시의 코앞에 슥 갖다 댄 채 그녀가 숙면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푹 자고 있는 루시였지만, 할 말이 있으면 가감 없이 깨운다. 어차피 루시는 거의 항상 반쯤 졸린 상태이므로, 자고 있는 걸 깨웠다고 해서 거의 달라질 것도 없는 것이다.
본인도 별로 신경 안 쓰는 투이기도 하고.
“야, 루시.”
그렇게 이름을 툭 하고 부르자, 늘 그렇듯 루시가 휙 몸을 일으키고 일어났다.
아니, 사실은 ‘늘 그렇듯’ 일어나진 않았다.
“…….”
“……!!!!”
코 앞에서 내 시야를 마주치고선 갑자기 눈을 확 하고 부릅뜬 것이다. 그러고는 숨을 한번 집어삼키더니 갑자기 몸을 튕기고 부유하듯 날아서 큼직한 나뭇가지 위에 안착했다.
“왜, 왜….”
“…그렇게 놀랄 일이냐…?”
자고 있던 루시를 갑자기 깨운 횟수는 두 손가락으로도 아득히 헬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렇게까지 호들갑 떨 일인가 싶어서 물었더니 루시는 고개를 붕붕 가로저었다.
“…아니다, 괜히 놀라게 만들어서 미안하게 됐네.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은 아니니까 다음에 천천히 말할게.”
“지, 지금 말해도 돼…. 괘, 괜찮아….”
“아니, 생각해 보니까 일정이 있거든.”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해 가며 루시에게 벼락 마법을 시전해 달라 설명하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허나, 생각해 보니 오늘은 예니카에게 내 정령 감응 훈련을 좀 봐 달라고 부탁해 두었던 것이다. 학사 수업 끝나고 7시 무렵에나 캠프에 도착할 것이라 했으니 이제 슬슬 준비해 두어야 했다.
나는 루시에게 손을 휙휙 휘젓고, 괜찮다고 이야기한 뒤 다시 모닥불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위 근처에 앉아 원소학 서적을 읽으며… 그렇게 한참 동안 예니카를 기다렸다.
―바스락바스락.
그렇게 풀숲을 헤치고 예니카가 나타난 것은, 책 페이지가 대여섯 장은 넘어갔을 무렵이었다.
“안녕, 에드…!”
평소 오던 길이 아니라 좀 험한 길로 돌아서 왔는지, 예니카의 옷깃이나 코언저리엔 나뭇잎 몇 개가 붙어있었다. 왜 굳이…?
“오, 예니카. 좀 늦었네.”
“응. 10분 정도 늦었어…!”
“무슨 일 있었어?”
예니카는 그리 말하고 나서 갑자기 팔짱을 끼고는 기고만장한 자세를 취한 채 이야기하는 것이다.
“딱히… 늦은 이유는 없어…!”
“…….”
“그냥… 늦었어!”
그렇게 이야기하고 에헴, 헛기침을 한번 덧붙여 준다.
“…….”
무슨 반응을 원하는 건지,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뭐… 그럴 수 있지. 너는 많이 바쁘잖아. 감응 훈련 도와주러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
그리 이야기하고, 나는 책을 탁 덮고 옷을 털며 일어났다. 감응 훈련이라서 몸을 쓸 일은 별로 없겠지만 이리저리 어깨도 꺾었다.
“…….”
왜인지 모르겠으나… 예니카는 거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주제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