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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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가 죽던 날 (1)
성화 관리인 아델.
성녀 클라리스가 성도에 있을 무렵, 매일같이 그녀의 침실 창가에 찾아와 류트를 연주하던 소녀였다.
“슬슬 합동 전투 실습일까… 2학년 선배들이랑 대련도 하겠지…?”
간밤의 오필리스관. 침대에 앉아 창가를 올려다보던 카일리―― 성녀 클라리스는 성황도에 있을 무렵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델이 들려주던 노래와 자유에 대한 갈망은 그녀로 하여금 남몰래 새로운 꿈을 품게 만들었다. 아델의 영향이 없었다면 클라리스가 이런 실베니아까지 배움을 청하러 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델이 성도를 떠난 뒤로도 클라리스는 계속해서 다시금 그녀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허나 입학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델을 만날 만한 기회가 생기질 않는다.
“…….”
텔로스 교단의 성지이자 대륙 최대 규모의 도시 국가, 성도 카르페아의 중심에는 우뚝 솟아오른 으리으리한 규모의 대성당이 있다.
전 대륙에 펼쳐진 텔로스 교도들 사이에서 성지로 통하는 그 대성당은, 성황 엘데인이 기거하며 신의 뜻을 전파하는 장소인고로 ‘성황도(聖皇都)’라고 불렸다.
우뚝 솟은 큼지막한 언덕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크고 으리으리한 규모의 대성당. 어지간한 영주의 성 두세 개는 합쳐 놓아야 할 정도의 크기다. 높이도 물론 그만큼 드높다.
중심에 우뚝 솟은 시계탑에 올라서면 북쪽으로는 라멜른 산맥 지대까지 보였고, 남쪽으로는 클로엘 제국으로 이어지는 덴킨 습지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시계탑 꼭대기에는 늘 주신 텔로스를 기리는 성화가 타오르고 있다.
그곳에 앉아 성화를 관리하며, 항상 탁 트인 세계를 바라보고 있던 소녀.
성황 엘데인 바로 다음 가는 고귀함을 자랑하던 클라리스보다, 더 높은 곳에서 세계를 굽어보고 있었을 소녀.
클라리스는 바로 그 음유시인… 아델을 꼭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클라리스는 1학년이고, 아델은 2학년이다.
2학년과 교류할 만한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자리에 아델이 나타나는 일은 드물었다.
애초에 아델은 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사람인지라 동급생 사이에서도 그녀의 행방을 정확히 아는 인물들은 드물었던 것이다.
다짜고짜 수업 중인 교실이나 기숙사에 쳐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클라리스는 그저 ‘때가 되면 만나겠지.’ 하고 학사 생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슬슬 학사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데도 그녀와 만날 만한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이쯤 되니 클라리스도 조금 야속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클라리스 스스로는 아델과 본인의 사이가 제법 각별하다 생각했는데, 아델은 성녀가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 번쯤은 찾아와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클라리스의 입장이 특수하기는 하다. 성녀 클라리스가 아닌, 변방 귀족 카일리로서 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아델은 이 사정을 잘 모를 테니 다소 난감할 것이다. 다만, 지금 성녀 행세를 하고 있는 사람이 가짜 같다는 것은 눈치채지 않았을까.
조금은 엇갈려 있는 입장. 그러나 클라리스는 마음을 급하게 먹진 않기로 했다.
인연이란 떠도는 바람과 같다. 인연이 맞닿아 있다면 세상 어딘가에서든 다시 만나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델이 했던 말이다.
클라리스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 달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흘렸다. 같은 실베니아에 있고, 같은 학사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연이 닿으면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연이 빨리 맞닿아, 그간의 회포를 풀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 * *
루시 메이릴은 뚱한 눈을 반쯤 치켜뜨고 무릎을 감싸 안은 채 오두막 지붕에 걸터앉아 있었다.
거기에 앉아 있으면 나름 캠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지금 보이는 광경이 루시의 눈에는 썩 탐탁지 않은 것이다.
온갖 정령들이 잘 손질된 목재를 으쌰으쌰 나르며 오두막을 짓고 있는 모습은… 루시의 입장에서는 불청객이 캠프에 침범해 오는 느낌이다.
사실 딱히 루시의 캠프도 아니다. 따라서 루시가 불청객이니 뭐니 따질 입장도 안 된다.
그래도 썩 기분이 개운치가 않다. 괜히 뚱한 얼굴을 하고 헛숨을 불어 보거나, 툴툴거리는 모습으로 제 머리칼을 배배 꼬고 있을 뿐이다. 감정 표현이랄 게 거의 없는 루시치고는 제법 드라마틱한 반응인 셈이다.
그 원인이나 다름없는 소녀… 예니카 페일로버는 캠프 중앙에 있는 모닥불터에 앉아서 다리를 쭉 뻗고 있었다.
당초 정령들을 혹사시켜서 5일 완성 계획이 잡혀 있었던 오두막은, 예니카가 타칸의 미간에 지팡이로 꿀밤을 때리면서 모두 무산되었다. 하위 정령들, 특히 머그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박수를 쳤다.
원래 계획대로 이행되고 있는 오두막 건설 계획은 나름 차곡차곡 잘 나아가고 있었다.
3일 차에 벌써 어지간한 터가 잡힌 모습을 보고 예니카는 어찌나 뿌듯해하던지, 종일 캠프에 앉아 있으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에드의 오두막 지붕에 앉아 있던 루시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 편치 않았다. 사실 루시가 아니었어도 예니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것 같다.
모닥불 근처의 나뭇등걸에 앉아서 팔과 다리를 괜히 한번 쭉 뻗어 보고, 캠프 전경을 한번 스윽 보고, 오두막터를 쳐다보더니 빙긍빙긋 미소를 짓는다. 어찌나 웃음이 천진난만한지 헤실헤실 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
그 뒤로 책을 좀 읽는가 싶더니 중간중간에 오두막터를 다시 한번 보고 빙긋 웃고, 장작을 좀 가지러 가는 듯하더니 오두막 주변을 슥슥 돌아보고는 다시 빙그레 웃으면서 종종걸음으로 돌아오고. 정령 감응 훈련을 혼자서 좀 하는가 싶더니 또 오두막 터 쪽을 보고는 골똘히 생각에 빠지고.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괜히 아니꼬워져서, 어느샌가 루시는 낮잠을 자는 것도 잊고 볼만 부풀린 채 앉아 있었다.
“…….”
그러고 있기를 5분 남짓 지났을까, 루시는 건조대에 말려 둔 육포라도 몇 개 집어먹을 겸 몸을 일으켜 모닥불 근처로 휙 날아들었다.
―탁!
모닥불 옆 바위에 예쁘게 착지한 루시는 옷을 몇 번 털고서 바로 섰다.
그대로 휙 내려다보면 나뭇등걸에 앉아서 책 모퉁이를 접으며 장밋빛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예니카가 있다. 참으로 실없는 표정이었다.
“앗….”
예니카와 루시는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순진한 예니카는 순간적으로 반갑게 인사할 뻔했다. 허나, 그럴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이미 오필리스관에서 한번 신경전을 치러 본 적이 있는 상대다. 다만, 누군가와 날을 세우는 걸 싫어하는 예니카 입장에서는 썩 달갑지 않은 상대다.
해코지하거나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지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결국 예니카는 앉은 채로 오두막 쪽을 한번 스윽 돌아본 다음, 양 허리에 손을 얹고, 보란 듯이 가슴을 쫙 펴 보이는 것이다. 나름 거만해 보이겠다고 만면에 미소도 띤 것이 제 딴에는 노력한 모습이다.
화사한 빛이 뿜뿜 흘러나오는 미소에 루시는 반달눈을 뜨고 가만히 옷을 털었다. 저렇게 티 없이 밝은 미소가 이렇게까지 아니꼬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 * *
육포 두어 개를 입에 문 채로 원소학 서적을 가득 안고 학생도서관을 나왔다.
매번 책을 대여해서, 연체 안 하고 꼬박꼬박 반납한 덕분에 이제 제법 많은 책을 한 번에 빌릴 수 있었다. 사서인 엘카 이슬란과 아는 사이라서 좀 눈감아 준 부분도 있긴 하다.
“후우….”
책을 잔뜩 들고 학생 도서관 언덕을 내려와 교수동 동부 광장 쪽으로 쭉 들어갔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원소학 서적만 빌린 것은, 이참에 중위 마법 훈련을 아예 마무리 짓기 위해서다.
중위 마법 ‘일점 폭발’을 성공적으로 익힌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중위 마법이 이것 하나밖에 없다는 건 좀 그랬다.
일점 폭발은 화력 그 자체는 하위 마법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단지 발동이 용이하거나 급습하기 좋고, 상대가 대처하기 까다롭다는 부분이 중요할 뿐이다.
이런 전략적인 이점은 내 전투 스타일상 큰 도움이 되지만, 아무래도 그냥 화력 그 자체가 뛰어난 마법을 익히는 것도 필요하긴 할 것 같다. 전투 상황이란 게 언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불과 바람 원소에 감응력이 강하다. 그래서 이왕이면 중위 바람 마법 쪽을 배워 볼 생각이었으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바람 원소의 마법들 또한 대부분은 전장을 조율하거나 전투를 보조하는 차원의 마법들이지, 순수하게 화력이 강한 마법들은 비교적 적었다.
마공학 용품과 정령술을 다룰 줄 아는 내 입장에서는, 그런 변수 창출 수단은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획기적으로 강해지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화력을 단련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그러니 다음 목표로 정할 만한 마법을 탐색하기 위해 원소학 서적을 잔뜩 빌려 온 것이다.
어찌나 그 양이 많은지, 품에 가득 안고 걸어가야만 했다. 이 또한 체력 단련이라 생각하며 나는 동부 광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학생회관과 오벨관이 있는 중앙 광장을 기점으로 해서 동쪽으로 쭉 뻗어져 나온 길을 따라 걸으면 나오는 곳이 이 동부 광장이다.
중앙 광장에 비해서 비교적 그 크기는 작다. 그래도 나름 광장으로서 갖출 것은 다 갖춘 것이, 중간에 그럴싸한 크기의 시계탑도 하나 있고, 여기저기에 벤치도 마련되어 있으며, 분수도 제법 예쁘장하게 지어져 있었다.
“♪ ♬ ♪”
그 분수의 한편에 앉아서 류트를 뜯고 있는 소녀를 보자, 나는 그 낯익은 얼굴의 정체를 깨달았다.
어찌 보면 ‘자유롭다’라는 표현에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 부합하는 인상이었다.
한창 수업이 진행될 시간인데, 본인이 신청한 수업은 모두 마무리되었는지 편안해 보이는 복장이다.
허벅지를 넘겨서 오는 펑퍼짐한 플리츠스커트와 더불어, 소맷단이 여유로운 블라우스까지 내가 알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허리춤에 매어진 꽃다발 모양 장신구가 옆구리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예쁘게 한쪽으로 땋아 내린 머리에는 백합, 수선화, 안개꽃, 상사화, 프리지어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수놓아져 있는데, 색이 강하지 않은 연노란색 머리칼 덕분인지 그 아리따운 형태가 더 잘 드러난다.
“오늘도 바쁘시네요, 에드 선배님.”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려던 차에, 아델이 먼저 휙 하고 말을 걸어왔다. 이건 또 예상 못 한 상황이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류트를 뜯던 아델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빙긋 하고 웃어 보였다. 서로 아는 체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는가 하면 딱히 그렇진 않다.
아델 세리스는 의 주인공, 테일리 맥로어의 동료다.
온갖 강화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바드인 그녀는, 1막 때부터 꾸준히 등장해서 얼굴을 비추지만… 3막 최종전이 되기 전까지는 전면에 나서서 활약을 하진 않는다.
애초에 꾸준히 얼굴을 비췄던 것도 대부분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 것이다. 2막 최종전에서나 제대로 전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이후로도 딱히 뭔가를 하려는 모습은 보여 주질 않는다.
그 전까지 아델은 대부분 생뚱맞은 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이며 등장하는데, 이는 아마도 자유분방하고 세파에 초연한 그녀의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연출적인 부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악기를 연주하는 소녀.
그녀가 이리도 평온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의 ‘예언가적 기질’ 때문이다.
“…….”
때때로 아델은 주신 텔로스의 성력을 받아 미래를 보곤 한다.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힘은 아니고, 불현듯 계시를 받고서는 홀린 듯 미래를 읊조리는 것이다.
태생부터 텔로스의 성력에 대한 감응이 독보적으로 드높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성도에서도 나름 대접받던 입장이고, 유년 시절에는 성녀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까지 한 인물이다.
“나 말이냐…?”
“테일리랑 아일라가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거든요. 둘은 다소 선배님을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 내 알 바 아니긴 한데….”
시나리오의 주인공 격인 테일리는 안 그래도 승승장구 하고 있는 모양이다.
검술의 재능이야 엄청나서 4막에 도달하면 거의 압도적인 수준의 강력함을 자랑하게 될 테다. 시나리오도 이미 3막의 중반부를 지나가고 있으니, 지금 시점에서 슬슬 두각을 나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야 뭐 학년도 다르고, 사건에서도 미묘하게 떨어져서 지냈기 때문에 이렇다 할 접점은 없지만… 테일리의 성장세가 쉽게 꺾이지 않으리란 사실만큼은 잘 안다.
정말 단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최고 효율로 성장세를 지속시키면, 다음 합동 전투 실습 이벤트에서 웨이드는 물론이고 직스까지도 꺾을 수 있다. 물론 완전히 숙련된 플레이어였을 때의 이야기다.
보통은 웨이드를 잡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애를 먹기 때문에 거기까지 신경 쓰진 못 할 테지만.
“노래 한 곡 들으실래요? 저는 나름대로 전 대륙을 돌아다니던 음유시인이랍니다. 지금은 여기 실베니아에 자리 잡고 있지만요.”
“…됐다.”
“어머, 아쉽네요.”
아델과는 직접 대면해 본 적도 거의 없는데 이리 살갑게 대하는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최근 들어 급격하게 좋아진 학사 내 평판 덕인가 싶기도 하고, 단지 아델 주변 인물 사이에서 내 이야기가 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원소학 서적들을 보란 듯이 고쳐 잡았다. 이렇게 무거운 책들을 잔뜩 들고 있으니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아델은 아쉽다는 듯 미소를 짓고서는, 시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나는 그대로 몸을 휙 돌려서 북쪽 숲 방향으로 향했다.
시나리오도 3막 중반부를 넘어가고 있다. 조금씩 비틀려오던 정사는 타냐의 회장 당선으로 이미 궤도를 많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1막까지만 해도 그냥 엇비슷하게 흘러가던 시나리오도, 2막에서 크게 휘청이더니, 3막에 이르러서는 이제 그 방향성을 종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큼지막한 흐름은 내가 알고 있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내가 쥐고 있는 미래 지식은 아직까지는 충분한 효용성이 있다. 그러나 어긋난 흐름은 이내 알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마치 점선을 따라 긋는 직선이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점선을 따라가면 예쁘장한 직선이 그려지겠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각도의 비틀림이 생겨난다. 처음에는 그 약간의 차이가 별문제 없어 보이지만, 직선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점선과는 아득하게 동떨어지게 된다.
애초에 큰 야망 따위도 없었고, 졸업장을 따는 것만이 목표였을 따름이다. 그저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제 뜻대로 흘러가리라 생각하는 건 역시 오만이다.
결국 세상의 흐름이 이리되었다면, 가만히 숨만 쉬고 있는 것으로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정사는 궤도에서 엇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수습하려거든… 크레핀을 잡아야만 했다.
허나 지금 상태의 크레핀은 정치적으로도 아무런 약점이 없고, 강대하며, 제국 전역에 그를 진심으로 지지하는 추종자도 많으니, 그를 죽이거나 제압해 봤자 천하의 대역죄인이 되어 인생을 그르칠 뿐이다.
애초에 크레핀에게 대적할 정도로 성장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고, 설령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대적한다 할지라도 명분이 없으면 그의 목을 칠 수가 없다.
그러나 나에게 카드가 없는 건 아니다. 로스테일러 가문의 내부자인 타냐가 있고, 그와 적대적인 입장에 서 있는 페니아 황녀가 있다.
4막이 되고 메뷸러의 현현이 가까워지면 분명 크레핀은 스스로 꼬리를 내비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놈은 여지없이 빈틈을 보인다.
상대의 목을 칠 타이밍을 잘 가늠해야만 한다. 그 흉계가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때, 나는 모든 준비가 끝마쳐져 있어야만 했다.
“에드 선배님.”
문득, 돌아가려는 나를 아델이 불러 세웠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돌아보았으나, 아델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발랄한 모습으로 류트를 뜯고 있을 뿐이었다.
듣기 좋은 현의 음색이 분수대의 물소리와 어우러져 늦봄의 광장에 울려 퍼졌다.
“언젠가 가주의 옥좌에 오르거든, 가장 존경하던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이셔야 할 터.”
그것은 전조도 없이, 그저 넌지시 건넨 한마디였다.
“그때에 망설인다면, 죽는 것은 바로 본인이라는 사실을 유념하시길.”
“…….”
뭐라 더 추궁할까 했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아델은 마지막으로 류트를 한번 스윽 훑으며 아리따운 소리를 내더니, 자리에서 일어서서 종종걸음으로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나는 원소학 서적을 잔뜩 안은 그대로, 멀리 떠나는 아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성화 관리인 아델. 낭만가 아델. 그리고, 예언가 아델.
그녀의 예언은 늘 맞아떨어지기만 하는 것은 또 아니라서, 무작정 어떤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지만… 어쨌든 사람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재주 하나는 일품이었다.
아델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은 많지만…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녀의 죽음이다.
3막은 시나리오의 중요 분기점이다. 최종 보스인 루시는 가만히 있으면 무사히 그 역할을 마무리하고 일시적으로 퇴장하겠으나, 그 시나리오 진행 과정에서 루시와 무관하게 주인공 세대의 사망자가 두 명이나 나온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저 음유시인 아델인 것이다.
거시적인 흐름은 아직 정사와 엇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지만, 이미 여러모로 큰 비틀림이 생겨난 지금.
그녀의 말로를 알고 있는 나는, 이제 와서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가.
글래스트 교수의 죽음은 애초에 내 손 밖의 일이었다. 내가 무슨 수를 쓰든 그는 봉서를 탈취해서 학사를 점거했을 것이고, 애초에 일개 학생인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아델이라고 해서 내가 뭐 가능하리란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그녀의 썩 유쾌하지 않은 말로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기분이 싱숭생숭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고개를 몇 번 훑고서는, 책을 감싸 안은 채 북쪽 숲을 향해 나아갔다.
일단은 캠프로 돌아가서 책 정리 마무리하고, 지팡이 만들 준비도 하면서… 당장 당면한 일을 먼저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정리해야 할 생각들이… 너무 많았다.
* * *
“싫어.”
단호하고도 명확한 대답이었다.
모닥불 옆에서 육포를 우물거리며 제 무릎을 만지작거리던 루시는 영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
이건 의외의 반응이었다.
메릴다의 수호목에서 나뭇가지를 두 개 꺾어 온 나는, 지팡이 제작을 위해 루시에게 번개 마법을 구현해 줄 것을 부탁했다.
루시의 마력으로 구현된 번개는 마력량 자체도 엄청나기 때문에, 직접적인 지팡이의 성능에도 꽤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게 벼락 맞은 천년 나무 두 개를 만들어서, 예니카 거 하나, 내 거 하나 이렇게 지팡이 두 개를 만들 예정이라 이야기했다.
사실 루시 입장에서는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애초에 내 부탁은 제법 잘 들어주는 편이기에 별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으나… 오늘따라 루시는 왠지 삐뚤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만 해 줄래.”
제 무릎을 안고 툴툴거리면서 입술이 비죽 나와 있는 모습이 퍽 신선하다. 늘 졸린 상태거나, 아니면 심드렁한 상태밖에 보이지 않는 루시 아니던가.
여전히 뭔가 멍해 보이고, 맥이 빠진 것 같은 인상이긴 하지만, 나름 볼을 부풀리고 있는 듯한 모습은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근래 들어 표정이 뭔가 다채로워 보이는 것이 나도 좀 적응이 안 된다. 그래 봤자 몇 패턴 안 되긴 하지만.
“하나 해 주나 두 개 해 주나 거기서 거기 아니냐…? 어차피 마법 발현은 한 번만 하면 되는 건데.”
“…….”
“에휴, 그래… 뭐 네가 그렇다 하면 다 이유가 있겠지. 골치 아프게 됐네.”
내가 그렇게 말하고 머리를 한번 북 쓸어넘기자, 또 루시는 뭐가 그렇게 신경 쓰이는지 다리 끝을 허공에 휙휙 휘저어 대는 것이다.
“하나 만들면… 그건 누가 쓸 건데…?”
“예니카 줘야지. 이왕 쓸 거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맞을 테고. 나는 아직 정령술 수련을 더 해야 하니까.”
“이익….”
내가 실망한 기색을 내비친 것에 썩 마음이 불편한지, 루시는 입을 우물거리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입술을 비죽 내린 채 휙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내가 앉아 있는 나뭇등걸 쪽으로 털레털레 걸어오는 것이다.
평소처럼 들러붙는 건가 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루시는 뭔가 시선을 내리깔고서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내 무릎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대로 내 품에 푸욱 등을 묻었지만, 어찌나 가벼운지 별로 무게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아까 팔근육만으로 잔뜩 들고 왔던 책더미보다 살짝 더 무거운 수준이다.
“알았어, 해 줄게. 두 개 다.”
그리고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다.
“대신 조건이 있어. 별로 대단한 건 아니지만.”
“조건?”
“나랑 같이 가 줬으면 하는 곳이 있어.”
루시가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또 별일인지라, 나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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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11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