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17)
합동 전투 실습 2 (3)
‘낭만가 아델’.
에서 보았던 그녀의 행보는 생각보다 쉽게 요약할 수 있다.
참견쟁이 엘비라 보스전.
관객 속에서 테일리와 엘비라의 결투를 지켜보면서 빙그레 미소 짓던 모습.
글라스칸 토벌전.
벨로스페르의 결계식 때문에 교수동에 갇힌 상태에서도 넉살 좋게 류트나 연주하던 모습.
연금부 학회 탐색.
사건이 끝나고, 연금부 학회 건물의 약초꾼 동상 위에 앉아 노래를 부르던 모습.
글래스트 토벌전.
테일리의 부탁을 받고, 아일라를 구출하기 위한 일행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보조 마법들을 구사하던 모습.
학생회장 선거전.
인파에 섞여 선거의 진행을 지켜보던 모습.
그리고….
3막 5장, 두 번째 합동 전투 실습부터 그녀는 성녀 클라리스와 엮여 큰 비중을 얻기 시작한다.
대주교 베르디오에 의해 밝혀지기 시작하는 그녀의 과거사는 생각 이상으로 어두웠던 것이다.
그 이후… 낭만가 아델은 대주교에 의해 죽게 된다.
플레이어가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이번 합동 전투 실습 이벤트의 마무리 단계에서다.
차례대로 덤벼드는 1학년의 여러 학생들을 꺾고, 각 학부 수석인 요제프와 웨이드까지 꺾고 나면 마지막으로 연금부 수석 클로드가 튀어나온다.
클로드를 제압하고 나면, 분을 못 이긴 그는 금기시 여겨지는 시약 ‘악신의 피’를 들이켜고 타락하게 된다. 악신 메뷸러의 마력을 받아 온갖 암흑 마법을 구사하는 클로드를 플레이어가 직접 제압해야만 한다.
그렇게 날뛰는 클로드를 제압하고 나면 드디어 결투장을 나가게 되는데, 그때 플레이어가 아델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에피소드가 마무리된다.
다음 에피소드로 몰입이 이어지게 하기 위해, 충격적인 사실을 전달하며 이 에피소드를 끝내는 것이다. 아델의 사망 소식을 들은 플레이어는 화들짝 놀라며 빨리 다음 시나리오를 보러 뛰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 거기서부터 3막 최종장, 루시 토벌전까지 한 큐에 이어지는 것이다.
불신의 성녀 클라리스와 그녀를 단죄하려는 텔로스 교단 사이의 이야기. 그곳으로 이어지는 연결 다리가 바로 이 합동 전투 실습 이벤트인 것이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세상의 흐름은 이미 엇나가 있었다.
* * *
“긴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는 입장이지만, 잠시만이라도 담화를 나눌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고 싶은 기분인걸요.”
클라리스가 고풍스럽게 웃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온 호위병 두어 명과 그 뒤로 보이는 학생들의 시선이 은근하게 쏠려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항상 세상에 초연한 모습이던 클라리스다. 누군가에게 스스로 다가가서 말문을 트는 모습 자체를 처음 보는 것이다.
클라리스는 성황을 맞이할 준비를 끝낸 참인지, 몸단장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다소곳이 앉아서 요염하게 치켜뜬 눈이 정말 그 철부지 카일리와 동일인물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영… 광입니다, 성녀님.”
나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한 채로 되도록 자연스럽게 클라리스의 말을 받았다.
클라리스는 단정하게 앉아서 빙긋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예니카 쪽을 바라보았다. 나랑 나란히 앉아 있던 예니카는 히끅대며 딸꾹질을 한번 하더니, 뽈뽈 대며 고개를 숙였다.
“예… 예니카 페일로버라고 해요… 성녀님…. 이렇게 가까이서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완전히 긴장해서 개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다. 그도 그럴 것이 텔로스 교단의 성녀다.
언제나 신성한 성황도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가장 많은 신의 사랑을 받으며, 누구보다도 고결하다던 텔로스의 종복이다.
제아무리 시골에서 오래 살았다 하더라도 텔로스 교단의 위용을 모를 수는 없다. 클로엘 제국 인구의 거의 3분의 1이 이미 텔로스 교단의 신자다.
그 교단의 우상이 코앞에 있는데, 예니카 같은 소녀가 긴장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 그런데에… 분명… 성녀님은, 그으… 오늘 방문하는 성황님을 맞이하러 가신다고….”
예니카는 말끝을 맺질 못했다. 아무래도 혀를 씹은 모양인지 어버버 거리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이윽고 눈물을 글썽인 채로 날 쳐다보며 구조신호를 보낸다. 나는 예니카의 말을 받아서 그대로 이어 갔다.
“성황님과 대주교님께서 곧 방문한다고 들었는데, 여기에 이렇게 계셔도 괜찮습니까?”
“안 그래도 보시다시피 이렇게 치장을 끝낸 와중이에요. 또, 성황님께서 직접 방문하시는 곳은 트릭스관이잖아요? 트릭스관까지 가는 길에 이 학생회관 앞쪽을 지나치니, 마침 동선이 맞아떨어졌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일단 한번 웃었다.
그런 클라리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하얗다. 머리 색이든, 피부색이든, 사람을 대하는 태도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온통 순백색으로 들어찬 인간이다. 그렇게나 새하얗기에, 새하얗지 않은 부분이 오히려 두드러진다.
기본적으로 순백색의 바탕이 있기에 더 강렬하게 피어나는 붉은 눈동자. 그리고 새하얀 머릿결 위에 제 존재감을 발하는 붉은색 나비 머리핀.
진홍색 교복 외투와 더불어 감청색 스커트 또한 그녀의 새하얀 빛무리를 채 감싸지 못했다.
“동선이 맞아 떨어졌다고 함은…?”
“지금 딱 합동 전투 실습의 대진 발표 시간이니까, 에드 선배님이 여기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요컨대 ‘날 만나고 싶어서 왔다.’라는 뜻이다.
그 말에 좌중의 사이로 당혹스러움이 퍼져 나간다. 다들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았지만 일단 나한테는 확실히 느껴졌다.
나는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 일단 상황에 맞는 대답을 잘 골라서 내뱉었다.
“영광입니다.”
“영광이랄 것까지 있나요, 에드 선배님.”
말 한마디 끝날 때마다 자애로운 미소. 아마도 성황도에서 성녀로서 신자들을 대하던 태도가 몸에 체화되어 있는 탓일 터.
“오랜만에 성황님을 만나게 되시니, 다소 긴장되시겠습니다.”
“정말 그 말대로랍니다.”
일단은 내 쪽에서 화두를 던졌다.
나랑 성녀 클라리스 사이의 접점이라 해 봤자, 지난 겨울 갑작스럽게 내 오두막에 쳐들어와서 한번 혼내 준 게 전부다. 그나마도 최대한 뒤끝 없게, 그럴싸한 이유 잘 붙여 가면서 쫓아냈다.
그런데도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갑작스럽게 날 찾아온 이유.
그 이유를 가장 먼저 유추해 내야 했다.
“성황님도 정말 날카롭고 지혜로운 분이시지만, 성황님과 동행하시는 대주교 베르디오 님도 어찌나 명민하신 분인지… 정말 독심술이라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랍니다.”
“그렇군요.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마부가 아까부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만, 혹시 여기서 이럴 시간은 없으신 게 아니신지….”
“글쎄요. 그나저나 베르디오 님이 가진 그 상대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힘은 참 신기한 것 같아요. 역시 성법술의 일종일까요…?”
“글쎄요. 성법술은 역시 성당 관계자가 아니라면 깊게 알기 힘들 테지요…. 그나저나, 지금 시간이 아마도….”
“그렇군요. 하긴 외부인이 성법술의 원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기는 힘들겠지요. 베르디오 대주교님의 그런 모든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도… 어찌 보면 불가사의의 영역이네요….”
…….
묘하게…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다…!
뭔가 의도가 있는 것인지, 클라리스 성녀는 유독 베르디오 대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위주로 화두를 이끌어 간다. 주변에 듣는 귀가 많다는 걸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잠시 호흡을 돌릴 겸 목재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클라리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클라리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멀리서는 몰랐는데, 괜스레 긴장되는 것인지 묘하게 상기되어 있다. 역시 클라리스 본인도 마음이 급한 와중이다.
계속해서 베르디오의 능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면, 그 의도 또한 얼추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클라리스 성녀가 카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베르디오와 마주치면, 내가 성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교단 측에 들키게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정체를 감춰야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클라리스 성녀 입장에서는 썩 달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일단 얼른 나를 만나서 이 사실을 전해 주고 싶었을 터.
허나, 사람을 써서 보낼 수는 없다.
‘에드 로스테일러에게 가서 대주교 베르디오랑 절대 만나지 말아 달라고 전해 주세요.’라고 측근을 통해 전달시키면, 누가 봐도 나라는 인간이 지나치게 수상해 보인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에드 로스테일러라는 인물이 성녀의 비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유추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측근에게 들켜 버려서야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밀랍으로 봉한 서신을 보내자니 시간적인 여유가 너무 없다. 그러니, 동선도 맞아 떨어지는 김에 본인이 직접 와서 이야기를 전달한 것이다.
최대한 티 안 나게, 잡담하는 느낌으로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며, 제발 내가 이 신호를 알아차려 주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오고 나니 나도 슬슬 생각이 정리된다. 결국 클라리스 성녀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바로 이 말일 것이다.
“그 정도라니… 정말 베르디오 대주교님은 대단하시군요. 물론, 저같이 몰락해서 천한 신분은 평생 직접 만나 뵙게 될 일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 런가요…?”
은근하게 눈을 치켜뜨며 다시 한번 확인차 묻는 클라리스 성녀.
나는 거기다 대고 확신을 심어 주었다.
“예. 저는 안 그래도 합동 전투 실습 참석하느라 바쁘고, 애초에 신분 차이도 어마어마하고, 거기다가 성황님 방문 행사에 참석하기 힘든 일정이기 때문에, 아마도 베르디오 님을 절대로 직접 만날 일은 없을 겁니다.”
“…….”
“…절대로.”
이렇게까지 이야기해 주니, 클라리스 성녀의 얼굴에 조금씩 화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뭔가 둘 사이에 쿵짝이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라도 들었는지, 어깨를 휙 떨면서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도록 표정을 가다듬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소녀의 본성은 철부지 소녀 카일리 에크네로서의 모습이다.
환경이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성스로운 소녀로 있게끔 만들었지만, 기쁨이 피어오를 때는 이따금씩 본성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소녀는 그 반응을 절제하는 일 또한 베테랑이다. 일평생을 자기절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저… 저기, 성녀님.”
물론 성녀의 이런 행동들에는 최대의 맹점이 있다. 세간에 보는 눈이 정말 많다는 점이다.
본인 딴에는 할 수 있는 최대한 빠르고 정확한 대처를 하겠답시고 찾아온 거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없이 어색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니카의 입에서 그런 질문이 튀어나가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럼… 여기까지… 오로지 에드를 보기 위해서 오셨다는 거죠…?”
내가 혹시라도 성당 행사에 참여해 베르디오와 만나게 되는 일이라도 생길까 봐 불안에 떨던 클라리스다.
내가 그 가장 큰 불안을 해소해 주고 나자, 드디어 객관적인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 그… 건… 그… 렇죠…?”
급박한 일을 처리하고 나니 이제 수습해야 할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건 바로 주변의 시선들이다.
학생회관 근처에 모여앉아서 대진표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신경 안 쓰는 척하고 있지만 은근하게 이쪽으로 시선이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척 봐도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처해내야만 했지만….
“성황님을 만나기 전에 긴장되는 상황에서… 굳이 굳이 에드를 만나러 마차까지 끌고 와서….”
“아, 아니….”
그 먼 곳에서 한달음에 여기까지 달려온 모습은… 누가 봐도 각별한 사이처럼 보이는 행동이다.
클라리스가 당황하는 모습은 천금만큼이나 귀하다. 언제나 자애롭고 기품 있게 보여야 하는 성녀가 추태를 부리는 것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깨의 짐을 덜어 놓은 카일리로서라면 모를까, 유년시절부터 성녀로서 살아온 클라리스로서는 그런 모습을 쉬이 보여 주지 않는다.
카일리 에크네로서의 자신이 아닌, 성녀 클라리스로서의 자신을 유지하고 마음을 조절한다면, 그 어떤 변칙적인 상황에도 절대 추태를 보이지 않는 임기응변 정도는 보일 수 있다.
일단 마음을 정돈하면, 그 내면에는 철옹성과도 같은 철벽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맹점이 있다면 바로 엮인 상대가 남자라는 점이다.
성황도에서 성녀가 거주하는 종탑은 아예 입구부터 복도까지 전부 금남 구역이다. 성황조차도 그 성스러운 구역에는 아예 발을 붙이지 않고, 입구 언저리를 지키는 경비원들은 그 경계선을 밟는 것만으로 목욕재계를 한다.
출타할 때가 아니라면 남자와 제대로 접해 볼 기회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 상대가 동년배라면 더더욱이다.
세간에서 말하는 남녀 관계란 아델이 몰래 가져다준 삼류 연애 소설 속에서나 보았던 클라리스 아니던가.
그 정도로 남녀 관계로부터 단절되어서 살아온 성녀가, 동년배 남성과 남녀 관계로서 엮였을 때의 대처에 능숙할 리가 없다. 요컨대 그런 쪽으로는 손만 잡아도 볼을 붉히는 유년기 소녀들과 다를 바가 없으니, 능숙한 임기응변은커녕 볼을 홍당무처럼 붉힐 수밖에 없다.
“아니, 이건… 그…?”
참 슬프게도, 그런 반응은 오해를 더 가속시킬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별다른 접점도 없을 나를, 굳이 이렇게 바쁜 시기에 마차까지 불러서 전력으로 달려와 만날 이유랄 것이 전혀 없다.
급하게 뭐라도 이유를 급조해서 둘러대면 될 일이지만, 그 이유라는 게 그리 쉽게 지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황해서 얼굴을 붉힌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 러니까… 음…? 저, 저도… 사람이고…? 물론… 긴장도 한답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실언을 하기 일보 직전이다. 그러나, 평민 된 신분에서 그 누구도 함부로 성녀의 말을 끊을 순 없다.
“그… 그러다 보면… 괜히 음… 보고 싶은 사람도 생기고… 만나고 싶은 사람, 떠오르는 사람이 생겨서… 얼굴 한번… 보려는… 그런….”
“…….”
“아니, 그러니까… 그냥… 긴장도 되니까…? 괜히 보고 싶었던… 그냥… 만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말을 하면 할수록 뭔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는 걸 자각한 것 같다. 제 스스로 말을 멈추고선 주변 공기를 읽는다.
소리를 내진 않고 있지만, 지켜보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항상 고고하던 클라리스 성녀가 저렇게까지 얼굴을 붉히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 결과, 클라리스 성녀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다. 그건 바로 도망이다.
“어느새… 시간이….! 슬슬 성황님이 도착하시겠어요…!!”
제 얼굴을 감싸고 마차로 휙 뛰어들어 가는 모습.
안 그래도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초조해하던 마부는 얼른 채찍을 휘둘러, 호화로운 마차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
“…….”
성녀가 벼락같이 뛰쳐나간 현장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총알처럼 쏟아지는 경악의 시선. 그 중심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 * *
합동 전투 실습은 학생회관의 세 건물 중 두 건물을 사용한다.
1―2학년의 대련은 네일관을 사용하고, 3―4학년의 대련은 글록트관을 사용하기 때문에 두 집단끼리 섞일 일이 없다.
물론 바로 옆 건물이긴 하다. 가려면 금방 가겠지만, 길을 잃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옆 건물로 갈 이유가 없다. 나는 얼른 대련 끝내 버리고 옆 건물 가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번 지켜볼 예정이긴 하지만.
“후우….”
성녀의 폭탄 같은 행보를 뒤로한 채 얼른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일단은 예니카와 헤어져야 한다. 우리는 글록트관 내에서도 사용하는 대련장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니카는 가장 안쪽에 있는 7 대련장이고, 나는 3 대련장이었다.
“??? ??????”
아직도 성녀가 했던 발언이나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지, 예니카는 허공에 대고 굳은 얼굴로 물음표를 연타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디 대련에 지장만 없었으면 좋겠다. 어지간한 학생들은 금방 다 제압해 버리겠지만.
“휴우….”
바깥에서 대기하던 학생들을 헤치고 건물 안에 들어온 보람이 있었다.
당장 대련이 잡힌 학생들이 아니면 대부분 테라스 쪽에서 대기하는 형태다. 안쪽 복도까지 들어오고 나니 제법 조용했다.
예니카는 끔찍한 길치다. 혹시 모르니 예니카가 자기 대련장 잘 찾아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뒤, 나는 3대련장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쭉 들어가면서 대진표를 훑어보았다. 자동으로 배정받은 상대는… 4학년 중에서도 꽤나 실력자로 통하는 전투부의 코르덱이었다. 도끼와 둔기 따위를 사용하는 야만인 같은 전사다.
“흐음… 근접전으로 끌고 가면 불리하겠네.”
이따금씩 학생 한두 명이 지나치는 것 빼고는 인적이 드문 대련장 쪽 복도.
대리석 바닥에 울리는 구두 소리. 은근하게 박자를 맞추면서 걸어가던 나는… 문득 대련장 쪽으로 꺾어져 들어가는 코너에 펑퍼짐한 스커트를 입은 학생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 ♬ ♪”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당황스러웠다.
바닥에 앉아서 류트를 뜯고 있는 아델.
원래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로 유명하다. 대체 왜 여기서 류트를 뜯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장소에만 나타나는 인간이다. 당연히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직접 맞닥트리고 나니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너 여기서 뭐 하냐…. 여긴 글록트관이야. 2학년이면 네일관으로 가야지.”
“어머, 또 뵙네요. 에드 선배님.”
화사한 웃음과 함께 머리에 잔뜩 쌓인 꽃잎을 휘날리며, 아델은 몇 번이고 현을 뜯었다.
“인연이라는 게 놀랍네요. 바람 부는 대로 닿는 것이 인연이라는데, 저희는 제법 가깝게 맞닿아 있나 봐요.”
빙그레 웃는 아델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유로운 데도 정도가 있지.
“너는 합동 전투 실습 참가 안 하냐?”
“그럴 리가요. 이제 슬슬 가야죠. 저는 대진이 좀 나중으로 잡혔거든요.”
빙그레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델. 옷을 탈탈 털고는 싱긋 웃어 보였다.
“마침 딱 좋은 타이밍이네요. 슬슬 출발하면 되겠죠~”
그렇게 넉살 좋게 말하며, 아델은 털레털레 나를 지나쳐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아델이 지나가는 동안 나는…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
서로를 지나치는 순간 그간 쌓아 왔던 생각들이 한 번에 봇물처럼 터져서 밀려온다.
그렇다.
이번 합동 전투 실습이 끝나고 나면, 아델 세리스는 죽음을 맞이한다. 대주교 베르디오에 의해서.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그 명확한 전말은 잘 모른다는 점이다.
내가 을 플레이하면서 얻은 지식은 전부 검성 테일리의 시점에서 얻은 것이다.
아마도 지금 네일관에서 후배들의 도전 세례를 받고 있을 바로 그 검성 소년의 시점이다. 3막 중후반부까지 달려왔으니, 이제 빛나는 별의 세대라고 불리는 2학년 중에서도 강자의 반열에 들 정도로 강해져 있을 것이다.
테일리의 시점에서는… 아델이 정확히 어떤 경위로 죽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합동 전투 실습과 성황의 실베니아 방문은 동시에 이루어지고, 아델이 살해당하는 과정 또한 그 틈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저 주인공 시점에서 알 수 있었던 정보는… 베르디오의 음모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뿐이다. 그가 교단의 비밀을 훔친 채 달아난 아델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죽음으로 응징했다는 그 결과뿐이었다.
그것이 성녀 클라리스의 역린을 찌르는 스위치가 되고, 본격적으로 그녀가 텔로스 교단의 고위 성직자들이 저지른 비리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하는 기점이 되는 것이다.
불신의 성녀 클라리스.
타오르는 오른산의 나무들 사이에서 별이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피투성이 성녀의 그 모습이… 바로 눈앞에 들이밀어진 기분.
상황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사박사박 걸음 소리를 내며 복도를 따라 출구 쪽으로 향하는 아델. 어쩌면 저 모습이, 살아 있는 아델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녀의 죽음을 알고 있는데, 그대로 방치해서 떠나보내는 것이 옳은 판단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도덕률 그 자체다. 사지로 걸어가는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하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정사의 흐름과 그녀의 목숨을 놓고 저울질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1막과 2막을 거치면서 정사의 흐름은 이미 비틀릴 대로 비틀려서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 비틀릴 대로 비틀린 김에, 나는 이미 타냐를 내 손으로 학생회장에 올려놓기까지 하지 않았나.
정사를 따지는 것이 더 의미가 없다면, 결국 남은 것은 도덕률뿐인가.
그러나, 그녀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전말까지는 모르는 내가… 무엇을 주장한들 들어 주기나 할까. 당신 죽으니까, 일단 여기에 있으라는 말을 한들 협조해 줄까.
아무런 증거도 뭣도 없이, 성스러운 교단의 고위 성직자들이 애꿎은 소녀를 죽이려 든다는 말을 떠들고 다닌다고 한들… 그 누가 신뢰해 줄 것인가.
오히려 상대가 독실한 교도이기라도 한다면, 음모론자라고 욕이나 왕창 먹고 신뢰만 깎일 것이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달 밝은 밤에 고목나무 아래에서 죽어 간 노교수다.
물론 글래스트 교수의 죽음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그때는 내 힘이 미약했던 것도 있었고, 내가 말려 본들 말을 들을 상대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델이라면 어떤가. 내 노력 여하에 따라 그녀가 죽음을 피해 갈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일단 있는 힘껏 그녀를 죽음으로부터 구해 내는 게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할 터인데.
그렇게 깊은 고뇌에 빠지려는 순간…
“야.”
문득, 말이 먼저 튀어나갔다. 정면을 쳐다보고 있는 그대로 목소리만 냈다.
밖으로 나아가던 아델이 싱긋 웃으며 돌아보았다.
“네? 에드 선배님.”
“너 곧 죽는다.”
쉴 타이밍조차 없이, 그렇게 결론부터 내던졌다.
그게 뭔 소리냐.
죽는다니,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
농담도 잘하신다.
어떤 대답이 돌아오든, 사리에 맞게 잘 설명해 보자고 결심을 하던 찰나.
“알아요.”
만면에 미소를 띄운 아델은, 그리 짧게 대답하고 출구로 나가 버린 것이다.
그렇게… 기나긴 정적만이 글록트관의 복도에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