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21)
합동 전투 실습 2 (7)
“―뛰지 마. 그러다 다칠 거야.”
선착장을 따라 뛰며 술래잡기를 하던 형제가 멈칫했다. 허름한 나무판자로 덧대진 길도 끝이 나고, 이제 막 해안가로 접어들려던 참이었다.
“돌부리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항상 바닥을 조심하며 다녀야지.”
두 형제 중 형이 먼저 고개를 돌려서 목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선착장과 해안선이 맞닿는 부분, 비스듬하게 펼쳐진 방파제 위에 어리숙한 소녀 하나가 무릎을 안고 앉아 있었다.
연노란색 머리칼이 새벽이슬 탓에 추욱 늘어져 있는 모습.
이제야 떠오르기 시작하는 태양. 그 빛을 받은 얼굴을 보면 은은하게 웃고 있었다.
동년배 소녀처럼 보이는데 기묘하게 어른스러워 보인다. 소년은 멍하니 그 소녀의 얼굴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동생의 손을 꽉 잡은 채 해안가 쪽으로 뛰어나갔다.
동갑내기이지만, 소녀는 동생이라도 챙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 넌지시 일러 줄 수밖에 없었다.
“…….”
이윽고 소녀――아델은 바닷가에 피어 있던 히아신스 한 송이의 향기를 맡다가, 예쁘게 갈무리해서 제 머리 한쪽에 꽂아 놓는다.
그리고 새벽녘부터 분주해진 선착장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소금기 가득한 아침 공기를 들이 삼켰다.
상인들의 땅, 올덱이었다.
하루에만 수십 번의 출항이 이루어지는 제국 최대의 상업 도시 올덱.
그곳에 자리한 가장 큰 규모의 고아원, 델드로스 고아 보호원 출신의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 훨씬 더 빨리 철이 든다.
보호해줄 부모가 없으므로 빨리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제 몸을 가눌 수 있게 되면 바로 노동에 투입된다.
바구니를 이고 물을 떠오거나, 간단한 청소를 하거나, 손걸레를 빠는 일부터 시작해서… 조금 자라면 식자재를 다듬고, 옷을 세탁하기도 하며, 손재주가 좋은 아이들은 목공 일을 하기 시작한다.
부모 없이 험난한 사회에서 독립해 나가려면 얼른 자기 몸을 건사할 수 있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소 가혹하다 여겨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델드로스 고아 보호원의 방침이었다.
고아원은 그저 아이를 보호해 주는 곳이 아닌, 아이가 혼자서 험난한 세상을 살아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 올덱이라는 도시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탓도 좀 있지 않을까.
어리숙한 외관의 아델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바닷바람을 가만히 맞고 앉아 있었다.
이제 동이 트려고 하는 이른 새벽인데도 선착장에는 배에 짐을 싣는 인부들이 가득하다.
시끌벅적한 인파들 사이로 주판을 두들기는 상인들이 쏘다니고, 재고 상태를 확인하는 선장이 눈을 굴리고 있으며, 이송 계약서와 보험 계약에 대한 협상을 거는 인부들이 언성을 드높인다.
태양보다 먼저 일어나 활동하는 인간들.
왁자지껄한 이 상업의 도시에서는 근면과 성실이야말로 최고로 치는 가치인 것이다.
“여기에 있었군요. 아델 양.”
문득, 방파제의 맞은편 쪽에서 뒷짐을 진 채 걸어온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
딱 맞게 차려입은 성복은 잔뜩 때가 타 있었다. 경건한 성직자의 모습이었다.
“소식은 들으셨나요.”
“성황도로 파견되신다고 하셨죠? 주교직 심사에 올라가신다고 들었어요.”
아델은 허공에 다리를 휘휘 내저으며 빙그레 웃었다.
“축하드려요. 엄― 청 높으신 분이 되겠네요. 베르디오 대사제님!”
델드로스 고아 보호원은 텔로스 교단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종교 시설이다.
특히, 제국 여러 곳의 고아 보호원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기에, 주교직에 오르기 전 대사제급 되는 인물이 총 책임자로서 온다.
베르디오 대사제는 방파제를 따라 걸어서 아델의 바로 뒤편까지 도달했다.
앳된 소녀의 모습은 빈곤한 고아 그 자체다. 때 탄 스커트와 소매 깃이 헤진 블라우스. 낡은 끈으로 땋아 묶은 머릿결은 푸석푸석하다.
그러나, 아델에게는 묘한 기품이 있다. 나이도 어리고, 헤진 옷에 허름한 장신구를 끼고 있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그 기품. 말로는 설명하기가 힘든 부분이었다.
“성황도를 축복해 주시던 엘니르 성녀님께서 세례 7년 만에 그 명을 달리하셨습니다. 벌써 작년 이야기입니다.”
아델은 베르디오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갔지만, 딱히 뭐라 대답하진 않고 들어 주었다.
“주신 텔로스 님을 향한 기도를 위해선, 계속해서 성녀의 명맥은 이어져야만 하지요. 그에 버금가는 성력을 타고난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현재 성황도 최대의 고민입니다만, 아델 양은….”
“베르디오 대사제님은… 저를 너무 잘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정말이지….”
아델은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코스모스 한 송이의 잎을 슥슥 쓸어내리며 다리를 휘저었다.
“미래를 본다는 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어쩌다가 불현듯이 일어나는 일일 뿐인걸요. 설령 그게 성력에 의한 힘이라고 할지라도, 제 맘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힘이 어떻게 제힘이라 할 수 있겠나요.”
“아델 양. 그런 건 중요치 않습니다.”
베르디오는 뒷짐을 진 채로 나란히 서서 분주한 선착장을 바라보았다. 베르디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성황도의 고위 성직자들이 그를 굳이 올덱에 파견한 이유는 뻔했다. 그의 업무 기질이 상인들의 그것과 한없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르디오는 이 올덱의 문화에 적응하기가 굉장히 수월했다.
“중요한 것은… 비범한 능력을 타고났다는 것 그 자체입니다. 미래를 본다는 것은 주신 텔로스께서 만든 세계의 섭리, 그중에서도 시간의 섭리를 비틀어 꺾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별들의 힘을 이용하는 성위 마법뿐입니다.”
“성위 마법이라니, 저는 그런 대단한 거 할 줄 몰라요.”
“성법의 힘을 빌려 본능적으로 발현한 것 아니겠습니까.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그게 된다는 것부터가 비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뒤로 묶은 붉은 꽁지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베르디오의 머리칼이었다.
“성녀로 추대되어 마땅한 그릇입니다. 텔로스 교단의 정점에 설 성인(聖人)의 그릇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게 된 것은 크나큰 영광이로군요.”
“…….”
“함께 성황도로 향합시다. 성황님께 그 능력을 입증하거든 당신이 바로 차기 성녀로 추대될 것입니다. 아델 양.”
올덱의 고아원 구석에서 썩어 갈 인물이 아니다. 베르디오는 그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아델은 휙 고개를 들어서 베르디오를 보더니, 다시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리고 어깨에 매고 있던 류트를 꺼내서 안았다. 앳된 소녀답게 류트가 품 안에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는 어색한 손짓으로 현을 몇 번 뜯고서는 고개를 까딱대며 리듬을 탔다. 최근 들어 류트를 배우고 있다는 소식은 베르디오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아직은 그 솜씨가 형편없지만.
“미래를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덧없는 일이에요, 대사제님.”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요~ 미래의 흐름이란 건 의외로 생각보다 별거 아닌 걸로 뒤바뀌기도 하고, 또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꿋꿋이 제 흐름을 유지하기도 하거든요.”
왁자지껄한 해안가 사이로 미숙한 류트의 울림이 퍼져 나간다.
아델에게는 많은 미래가 보인다. 아무런 규칙도 전조도 없이, 불현듯 눈앞에 찾아오는 광경이다.
올덱 근처에서 부모 없이 떠도는 아이들이 모이는 이 고아원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아델의 눈에는 종종 이곳에서 지내는 이들의 미래가 보일 때가 있다.
이름도, 성격도 모르지만… 단편적으로 보이는 그 아이들의 미래는 모두 제각각이다.
코헬톤 무법 지대를 거닐며 현상범을 사냥하는 떠돌이 무사, 어린 나이에 그 거대한 엘테 상회의 최연소 실권자가 되어 금권을 쥐게 되는 상인이자 마법사, 세계 최초로 고위 마물을 사육해 내는 희대의 마수 조련사.
그런 빛나는 미래를 가진 아이들도 몇 보았지만, 그 미래가 그대로 도래할지는 아델도 알 수가 없었다.
“수많은 갈래 길로 퍼져 나가는 미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잔가지만을 보았다고 해서, 그게 얼마나 큰 가치가 있겠어요. 의외로 별거 아닌 변화만으로도 휙휙 바뀌는 게 미래인 걸요.”
“…그렇습니까.”
“그런 법이더라고요. 저도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요. 에헤헤.”
소녀가 류트를 뜯으며 해안가를 바라보고 있자, 방금 뛰어나갔던 형제들의 모습이 보인다.
술래잡기를 하며 뛰던 소년들. 형은 한참을 그렇게 뛰쳐나가다가, 문득 고개를 휙 숙이고선 바닥을 본다.
거기에는 커다란 돌부리가 솟아 있다. 몸을 움직이던 관성 탓에 그대로 밟고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돌부리를 피해서 다시 뛰쳐나간다.
넘어지는 일 없이, 바다를 따라 달리는 두 소년은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래도 성황도라고 하면… 분명 이 시끌벅적한 곳보다는 훨씬 더 조용하고 지내기 편한 곳일까요….”
아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을 뿌리는 바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제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자기 자신의 미래’를 엿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클라리스 성녀님. 표정이 편찮아 보이시는데, 괜찮으십니까?”
이미 술렁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합동 전투 실습 날. 글록트관의 입구 근처.
목재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에드와 나란히 앉아 있는 클라리스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 와중에 에드의 얼굴을 슥슥 쓸어내리거나, 다친 곳이 없는지 몸을 이리저리 더듬거나, 눈물을 펑펑 흘려 대는 통에 학생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는 술렁거림만 더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에드가 먼저 팔을 내밀며 성녀에게 묻자… 성녀는 휙 하고 에드의 팔을 낚아챘다.
“…성녀님?”
에드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클라리스는 에드의 반응이나 주변의 시선이 뭐 어쨌냐는 듯이 그를 얼른 잡아끌었다.
“도망가야 해요…!”
“예…?”
“저희… 같이 도망가요…!”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도 많은 일을 겪었기에 이미 클라리스는 과부하가 온 상태였다.
그러나,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사고 안에서도 기억에 남는 충격적인 장면들은 있다.
섬의 상공을 뒤덮은 성창룡의 모습. 날아드는 비늘의 비, 죽어 나가는 학생들. 무언가를 알아낸 듯한 에드의 반응. 무너져 내리는 오필리스관. 그리고…. 소녀를 지키다 끝끝내 그 품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에드의 시체까지.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기억들이 클라리스의 뇌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이 합동 전투 실습이 끝나면 아켄섬에는 멸망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꿈이 아니다. 분명 실제로 겪었던 일이며, 이유는 모르지만 과거로 돌아온 상황인 것이다.
재앙이 도래하기 전에… 최대한 멀리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다. 당연하고도 합당한 반응이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도망쳐야 해요…!”
클라리스는 눈물을 머금고 에드의 팔을 잡아끌고서는 성큼성큼 마차 쪽으로 걸어 나갔다. 나란히 앉아 있던 예니카는 물론이고, 주변에 가득한 학생들마저도 모두 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렸다.
백주 대낮에 에드를 잡아끌고서는 도피하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이 누가 봐도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언급했듯 성녀의 정신 상태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아니, 성녀님…? 성녀님…!”
에드는 성녀의 팔에 잡힌 채 마차까지 끌려갔다. 함부로 뿌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대로 클라리스는 병사들에게 그를 마차 안으로 들이라고 지시한 후, 등을 떠밀었다. 에드는 그대로 화려한 성녀의 마차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클라리스도 몸을 실은 뒤 마부에게 지금 당장 맥세스 대교로 달리라고 명령했다.
“예? 성녀님. 하지만 지금부터… 성황님을 맞이하기 위해 트릭스관으로 가셔야….”
“제가 다 책임질 테니까… 최대한 빨리 맥세스 대교로 달려가세요…!”
지금이라면 아직 성창룡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맥세스 대교에 인파가 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성황과 대주교다. 이 아켄섬에 들어와 있다면, 그들 또한 드래곤의 일격에 휘말릴 것이 뻔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클라리스는 그들의 행방을 모른다. 시간을 돌리기 전에 트릭스관에서 한참 동안 그들을 기다렸지만, 그들은 끝끝내 트릭스관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1분 1초가 아까운 시점이다. 두 사람을 찾아내서, 이 모든 상황을 납득시키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게 만든 다음에 아켄섬 밖으로 도망가게 만들기는 힘들다. 아마 찾아내기도 전에 드래곤이 먼저 강림할 것이 분명했다.
클라리스는 이가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미친 듯이 샘솟았다. 성녀로서 성황과 대주교의 안위를 먼저 확보하고 싶었지만… 끝끝내 이를 악물고 마차가 맥세스 대교를 향하도록 했다.
지금은… 손에 닿는 사람, 구할 수 있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는 게 맞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성황과 대주교를 찾아 헤매다가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한 이 행운을 다시 한번 내다 버릴 수는 없었다.
마부석에는 끝까지 성녀를 위해 말을 보호했던 마부와 성녀를 구출시키고 죽음을 맞이했던 호위 기사들이 앉아 있다.
그리고 클라리스의 맞은편에는… 마지막까지 성녀를 지키다 잔해에 깔려 죽은 에드 로스테일러가 앉아 있었다.
지금 당장 클라리스의 손에 닿는 사람들이란 이 정도뿐인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데리고 나가고 싶었지만, 이 학교의 모든 사람들을 다 구할 순 없다. 기껏해야 마차에 태울 수 있는 몇 명뿐이다.
그렇다면… 제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이라도 먼저 구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목숨을 제 마음대로 저울질하는 듯한 기분. 그 소름 돋는 죄악감이 클라리스의 등허리를 타고 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차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 거대한 드래곤은 인간의 힘으로 맞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죄악감에 못 이겨 가만히 아켄섬에 남아 있어 봐야 그저 개죽음에 지나지 않는다.
“성녀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마구 흔들리는 마차 안. 에드가 클라리스를 만류했다.
“성녀님은 이제부터 트릭스관으로 가 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도 합동 전투 실습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대로 가면 저희 둘 다….”
“합동 전투 실습이 끝나면….”
믿거나 말거나.
솔직히 믿어 줄 거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로, 클라리스는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아켄섬 상공에 거대한 드래곤이 강림할 거예요. 그리고… 저희를 모두 죽이겠죠.”
“…예?”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일단은 털어놓고 싶었다.
“저는… 한번 죽을 뻔했는데… 과거로 돌아왔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도…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클라리스는 에드의 손을 맞잡은 채 울먹이며 이야기했다.
“선배님이 저를 한번 구했어요. 그리고… 뭔가를… 알아낸 듯한 반응을 보이셨는데… 그걸 제게 전달하기 전에… 그만… 건물 잔해에… 그… 으흑….”
다시 한번 그때의 공포감이 솟구쳐 오르지만, 클라리스는 꾸욱 이를 악물며 솟아올라 오는 눈물을 참았다.
에드의 손을 꽉 움켜쥐면서 마음을 다잡은 채, 클라리스는 겨우겨우 말을 끝마쳤다.
“깔려서… 제 대신… 죽고… 그래서… 무슨 일이 있거든… 에드 선배님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물론, 지금 선배님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래도… 그….”
“아니, 성녀님… 그게 대체… 무슨….”
상식적으로 이런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어 달라고 하는 것도 힘들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교단의 성녀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자기를 잡아끌고선 마차에 태워서 한다는 말이 자기가 미래에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클라리스 입장에서는 이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갑자기 그런 식으로 말씀하셔도… 제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믿기 힘든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제가 기댈 만한 사람이 에드 선배님밖에 없어요….”
모든 것이 혼돈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도 홀로 진상 비슷한 걸 깨달은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 바로 에드였다.
그리고, 끝끝내 죽어 가면서까지 성녀를 위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제게….”
“제발… 믿어 주세요…. 정말이에요…. 정말로 드래곤이 나타나는 걸 봤어요…! 학생들이 모두 죽어 나가는 것도, 끝끝내 에드 선배님도 저를 지키다 죽는 것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그때의 광경들이 트라우마로 남아 클라리스의 머릿속을 계속 괴롭혔다. 뚝뚝 흐르는 눈물에서 나름 진정성이 묻어져 나오지만, 여전히 에드의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뿐이다.
클라리스는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눈물을 닦아 내고선… 그제야 에드의 마지막 유언을 떠올렸다.
“성녀님… 일단은… 마차를 세워 주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일… 오….”
에드는 곤란하다는 듯한 얼굴로 일단 클라리스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클라리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일오… 오공공일육공… 맞아요… 일오, 오공공일육공…!”
“예…? 갑자기… 뭡니까?”
“죽기 전에 에드 선배님이 말했어요. 이 말을 꼭 전하라고… 일오, 오공공일육공…!”
“무슨… 숫자입니까?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문득, 익숙한 나열이란 느낌이 들어서 에드의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에드 로스테일러로서 기억하고 있는 숫자가 아니다.
머나먼 세계를 건너, 지금의 몰락 귀족으로서 살아가기 전의 이야기.
굳이 앞 두 글자를 떼서 말한 것은, 죽기 전의 에드 또한 그렇게 떼서 이야기했기 때문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 나니, 순식간에 에드의 뇌리에 익숙한 숫자의 나열이 떠오른다.
15―500160.
그것은… 그가 이 세계로 넘어 오기 전에 기억하던… 그의 군번 숫자다.
순식간에 에드의 표정이 굳어 간다. 그런 정보는… 에드 본인이 아니면 그 누구도 알려 줄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에드 본인이 클라리스 성녀에게 그런 정보를 알려 준 적은 없다.
허나, 너무나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 숫자의 나열이… 성녀의 말에 막대한 신빙성을 부여해 준다.
―끼익.
문득 마차가 멈춰 섰다. 마부석 쪽 창문이 열리더니, 마부가 보고해 왔다.
“성녀님… 맥세스 대교 쪽에서 검문 인력이 나와 있습니다. 지금 엘테 상회의 교역품들이 맥세스 대교를 통해 건너는 중이라고 합니다. 상품 마차와 호위 용병대들로 인해서 많이 어지러운 상황이니 잠시만 대기해 달라고 하는군요.”
“지… 지금이요…?”
“예. 아마 성황님이 지나가신다고 의전을 치르느라 많이 밀려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 많은 마차가 순식간에 정리되기도 힘드니, 지금은 좀 오래 기다려야 하실 수도….”
“그냥 돌파하십시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에드가 마부 쪽 창문을 확 열어젖히고 이야기했다.
“…예?”
“저희 쪽에서 다 책임질 테니까, 지금 상황이 급박하니 그냥 공간이 되는 대로 돌파하십시오.”
“그… 그럼 학사 쪽에서 이야기가 나올 텐데….”
“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니면, 공간이 협소해서 불가능합니까…?”
마부는 머뭇거리면서 맥세스 대교 쪽을 바라보았다.
엘테 상회의 교역 마차들이 잔뜩 올라와 있고, 양옆으로 불규칙하게 용병들이 잔뜩 둘러서 있다.
대교 외곽까지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차의 크기와 용병들의 배열이 제각각이라 어지간해선 돌파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어지간한 마부들의 이야기다.
“…마부 생활만 22년째입니다. 흔들림을 좀 감수하신다면… 과장 좀 보태서 대양도 너끈히 건너 보이지요.”
“좋습니다.”
에드는 그대로 마부 쪽 창문을 닫고, 성녀가 앉아 있는 좌석의 양옆 창문도 단단히 닫아 버렸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는 성녀의 맞은편에 앉아서,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이야기했다. 방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태도가 달라진 모습이었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시 천천히 설명해 주십시오. 하나도 빠짐없이.”
그 모습을 보니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만 같아서… 클라리스는 코를 훌쩍이며 숨을 삼켰다.
“저는… 저는….”
―콰당탕!
그 순간 마차가 거하게 흔들렸다. 검문 인력을 제치고 뛰쳐나간 여파였다.
마구 채찍질을 해 대며 마부가 소리를 지르자, 마차는 이리저리 방향을 꺾으며 인파와 마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헤집고 지나갔다. 몇몇 용병단원이 깜짝 놀라서 넘어지고, 마차 외벽이 서로 맞닿아 긁히기도 하는 둥 위험천만해 보였다.
방향 전환이 힘든 마차를 가지고서도 이 정도로 유연한 동선으로 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물론 그 흔들림은 승객들의 몫이었다.
“꺄아아앗…!”
에드는 반사적으로 창틀을 움켜쥔 채 균형을 잡았지만, 클라리스는 흔들림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에드의 품으로 빨려 들어왔다.
“으읏, 핫….”
에드는 클라리스가 더 튕겨 나가지 않도록 꽈악 잡아서 끌어안아 주었다. 체구가 왜소하고 무게가 가벼운 성녀는 작은 흔들림에도 몸이 크게 튕겨져 나가기에 꽉 잡아 주어야만 했다.
“아… 으앗….”
에드의 품에 안기고 나니 클라리스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에드 딴에는 다치지 말라고 잡아 주는 의도겠지만, 클라리스는 이미 사선을 넘어오며 벌써 몇 번이나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던 것이다.
에드의 단단한 몸에서 피어오르는 체온에 기묘한 안정감이 들어서, 이내 완전히 몸을 맡기고 말았다.
“성녀님. 시간이 없습니다.”
“아, 네에….”
새삼 등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클라리스는 재빨리 숨을 집어삼키고 억지로 평정을 되찾았다.
* * *
한없이 붐비는 맥세스 대교를 헤치고 뛰쳐나오니 마차는 이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맥세스 대교의 대리석 난간에 긁히고, 교역품 마차에도 긁혀대는 통에 양옆에 달린 봉황 무늬 조각상도 떨어져 나갔다, 바퀴도 몇 번이나 외벽에 부딪혀서 덜덜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속도를 줄이는 일 없이 마차는 달려 나간다. 맥세스 대교를 돌파한 뒤로도 속도를 줄이지 말아 달라 부탁했기 때문이다.
아켄섬을 탈출한 뒤로는 한동안은 쭉 평원 지대만 이어진다. 마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나가야 크란펠 대삼림의 초입이 보이고, 그 산을 헤쳐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자훌 변경백의 영토다. 도움을 청할 만한 사람을 구하려거든 아직도 한참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오필리스관까지 무너졌다면, 역시 아켄섬 안에서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었을 겁니다. 일단 무조건 도주를 택한 건 현명한 판단이셨습니다.”
에드는 덜덜 떨며 이야기를 쏟아 내는 클라리스의 설명만으로도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해 냈다.
“그리고… 만약 시간이 되돌아갔다고 한다면… 그건 성위 마법일 가능성이 큽니다.”
“성위… 마법이요…?”
“성녀님도 마법부 학생이시니, 일단 1학년 커리큘럼 진행하시면서 언급 정도는 들으셨겠지요.”
클라리스가 에드의 품속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차의 흔들림도 어느 정도는 버틸 만한 수준이 되었건만, 클라리스는 마치 갓 태어난 아기라도 된 양 에드의 품에 꼬옥 안겨만 있었다.
일일이 따질 만한 시간도 없기에, 에드도 굳이 걸고 넘어지진 않았다.
“현존하는 마법 이론 중에 시간에 간섭할 수 있는 건 성위 마법뿐입니다. 다만… 이 정도로 대규모로 시간의 흐름을 되감아 버릴 수 있는 수준의 마법은… 적어도 인간의 마력으로는 구현할 수 없습니다.”
“그… 런가요…?”
“그러니, 오로지 성위 마법만이 개입되어 있다고 보긴 힘듭니다. 외부적인 마력원을 막대한 규모로 조성해 놓았거나, 아니면 신력으로서 주신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긴 합니다. 다만, 전자의 경우에는 긴 준비 기간과 규모가 큰 마공학 용품이 필요할 테고, 후자의 경우에는 막대한 양의 신력이 소모되어야 할 테지요.”
“신력이라면….”
“예… 성법술입니다. 아무나 쓸 수는 없는 것이지요.”
텔로스 교단의 성당기사단과 고위 성직자들이 쓰는 성법술은 마력의 효율 자체에 개입하는 종류의 것들도 많았다.
그러나, 성위 마법과의 결합은 철저히 실험의 영역이다. 애초에 대규모 성위 마법 자체도 제대로 연구가 되질 않았으며, 시간계 마법은 금기시 여겨지는 부분이 많아 성직자들이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설령 전문 마법사들이라 할지라도 성위 마법은 불가해의 영역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파에 초연한 성직자들이 성법술과 성위 마법을 합쳐 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고위 성직자가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커 보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오필리스관이 무너지기 직전, 하늘의 법진을 보며 무언가를 고뇌하던 에드의 모습이 이제야 납득이 됐다.
상황이 급박해져 가는 와중에도 에드는 사태의 원인을 분석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그런 도전적인 시도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덕분에 목숨을 구했으니 감사할 일이군요.”
“이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겠죠…. 일단은… 자훌 변경백의 영토까지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황실에도 보고가 들어갈 테죠. 그걸로… 그 거대한 용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든지 시도는 해 봐야겠지요. 그나저나, 성녀님… 땀이 차는 것 같습니다.”
에드가 그렇게 말하고 나자, 클라리스는 어깨를 떨며 볼을 휙 붉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에드의 품 안에 구멍이라도 파낼 것처럼 밀고 들어가서는, 그의 옷깃을 꽉 움켜쥐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급박한 와중에도 끝끝내 평정을 유지하는 그의 곁에 있다 보면 알 수 없는 안도감이 피어오른다.
그의 냉정한 모습 덕에 지금까지의 평정심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통 그 나이대의 소녀라면 혼란스러운 심정을 못 이겨서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만 했을 것이다.
“자, 잠시만….”
클라리스는 그렇게 말하고 에드의 품속에 좀 더 파고들었다. 적어도 마차가 달리는 동안에는 이러고 있고 싶었다.
“그… 그럼… 좋으실 대로….”
그리 말하며 팔을 내려놓는 에드의 모습에 또 다른 안도감을 느끼며…. 잠시만이라도 이 평화에 취해 보고자 하려는 순간―――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포효 소리가 창공을 갈랐다.
그 소름 돋는 기억 속의 소리 그대로였다.
아켄섬에서는 이미 꽤 멀리까지 떨어져 나왔다. 맥세스 대교는 물론이고, 그 오른산마저도 저 멀리 풍경의 한구석으로만 보일 정도다.
그러나, 그 거대한 용은… 섬마저 압도할 정도의 크기다. 이렇게까지나 멀리 뛰쳐나왔음에도, 그 거대한 용의 위용은 똑똑히 느껴진다.
오히려 멀리 떨어져서 볼 수 있기에 새삼 그 거대함이 더 실감되고 만다. 실베니아 아카데미 따위는 발길질 한 번만으로도 날려 버릴 수 있는 거대한 드래곤이다.
“히… 이익…!”
악몽같은 기억이 피어오르지만, 이번에는 도주에 성공했다. 그 사실을 되새기며 어떻게든 에드의 품속에서 안정을 되찾아 보려 하던 찰나….
―카가가가가가각!
―휘이이이잉!
마력이 몸을 휘감는 감각.
이것은… 성녀의 몸을 두르는 ‘성법의 가호’가 발동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법의 가호는 적의를 가진 공격으로부터 클라리스의 몸을 보호하는 가호다. 천재지변이나, 사고 같은 것이 아닌 이상… 공격의 의사를 가진 해악으로부터 클라리스는 무조건적으로 보호받는 것이다.
즉, 마차에 대대적인 공격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파사삭 대며 마차의 외벽을 깨부수는 소리는 익숙하다.
―콰강캉!
“꺄아아아아아악!”
성창룡 벨브로크의 공격에는 사정거리의 개념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켄섬을 통째로 뒤덮는 크기의 성창룡이 내뿜는 비늘의 비는… 제아무리 마차를 타고 평원지대를 달린다 할지라도 그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
―쿠구궁! 쿵!
그러나, 멀리 벗어나면 그 밀도와 위력이 떨어지기는 한다.
가까이서 직격당했을 때보다 훨씬 더 여유로운 수준. 구현된 성법의 가호도 훨씬 더 미약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마차는 버티지 못했다. 한쪽 바퀴가 충격에 부서지고, 대각선 바퀴도 떨어져 나가면서 이윽고 무너져 내렸다.
“으아아악, 꺄아아아악!”
몇 번이고 거대한 진동과 뒤틀림 끝에, 성녀의 마차는 제 명을 다하고 말았다.
흙바닥에 엎어진 채 흙먼지를 일으킨 마차 속… 에드의 품에 안겨 있던 성녀는 겨우 눈을 떴다.
“괜찮으십니까, 성녀님.”
“네, 네에…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고 품속에서 에드를 올려다본 성녀는 숨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에드는 머리에서부터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몇몇 비늘에 이미 당한 와중이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콰강! 카가가가각!
저 멀리 아켄섬으로부터 들려오는 전투음이 평원 지대에 가득히 울려 퍼진다.
성창룡의 마법과 그에 맞서는 마법사들의 반격은 폭죽처럼 온 하늘을 밝혀 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상처를 입은 에드는… 옆으로 넘어진 마차 안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치명상은 아니었다.
“에, 에드 선배님…!”
“괜찮습니다. 성녀님을 품에 안고 있어서, 성법의 가호로 여러 급소들과 내장을 보호받은 것 같습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목이나 배 언저리 등은 성녀 덕에 무사한 상태였지만, 팔 한쪽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허벅지도 꿰뚫린 상처가 떡하니 보였다. 그러나 에드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서, 하늘을 향하고 있는 마차의 문을 박차서 열었다.
그리고 성녀를 밀어서 내보내고… 자기도 이를 악문 채 마차 밖으로 나왔다.
“허억, 허억….”
“아아, 아아아….”
말들은 이미 목이 잘려 나가 있었다.
기사와 마부들도… 마차 외벽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비늘 마법에 직격당했다. 그렇게 온 몸에 치명상을 입은 채로 마차가 넘어져서 흙바닥을 한참동안 구른 것이다.
마차가 굴러온 동선에 널브러져 있는 마부와 병사들 시체는… 두 눈을 뜨고 바라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성녀님… 이 삼림 지대를 넘어가면… 자훌 변경백의 영토가 나옵니다….”
에드는 옷깃을 찢어 상처를 억지로 동여매고, 비틀거리면서 일어서서 이야기했다.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클라리스는 덜덜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만신창이가 된 에드를 부축한 채로… 비틀거리면서 평원 지대를 나아갔다.
등 뒤로는 성창룡과 마법사들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