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22)
합동 전투 실습 2 (8)
지금 할 수 있는 건 도망뿐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채 도주한 지도 몇시간 째다.
크란펠 대삼림 초입에 진입한 에드와 클라리스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이대로 자훌 변경백의 영지에 도착해 도움을 청할 수 있다면, 적어도 두 사람만큼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을 부여잡고, 산림 사이를 계속해서 나아갔다.
에드는 이미 출혈이 심했다. 혼자서는 비틀거리느라 제대로 걷기 힘들 지경이었다.
클라리스는 부족한 근력으로 이를 악문 채 그를 지탱했다.
―콰광! 콰가가가강!
아켄섬에 파멸이 도래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거리로는 벌써 몇 킬로미터는 더 떨어졌을 텐데도 그 소리가 아직도 들려온다. 하늘을 뒤덮은 용의 형상은 아켄섬에서 보았을 때보다 웅장한 자태로 저 멀리 수평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적어도… 사정거리 밖으로만 나가면…. 그러면… 며칠이 걸리든 간에 자훌 변경백의 영토로 갈 수 있어요…. 조금만 버텨요…. 에드 선배님….”
눈물을 흘리면서도 클라리스는 몸에 힘을 풀지 않았다.
허나 성황도에서 평생을 신앙받으며 살아온 성녀다. 몸에 어린 근력이라 해 봤자 또래 소녀들보다도 훨씬 더 연약하다.
그 가냘프고 하얀 팔로 에드의 듬직한 몸을 끝까지 지탱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덜덜 떨리는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나아가 보려 하지만, 이내 조금씩 축 늘어져 가는 에드의 몸이 클라리스를 짓누른다.
“크… 으흑… 으흐흑….”
조금씩 비틀거리며 균형을 잃어 가는 에드를 이를 악문 채 지탱하면서, 클라리스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몇 없는 마력을 끌어서 성법술을 발현해 내 에드의 상처를 압박했지만, 온몸의 상처를 혼자서 다 커버할 수는 없었다.
그대로 이를 악물고 피가 범벅이 된 채로 숲 사이를 헤쳐 나가면서, 유령에게 홀린 듯이 같은 말만 반복해 댔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조금만 더 나아가면 돼요. 자훌 변경백의 영토가 이 앞이에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버텨요….”
에드의 상처는 척 보기에도 꽤 중상이다. 그 상처로부터 올라오는 격통은 차마 버티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에드는 이를 꽉 악문 채로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격통을 참아 내었다. 그것만으로도 가히 혀를 내두를 정신력이었다.
클라리스는 끊임없이 마력을 이끌어 내 상처를 압박하고, 출혈을 최소화시켰지만… 물리적 상처 그 자체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상처 자체를 없애는 것은 성황도의 고위 성법술사들이나 가능한 것들이다.
엇비슷하게나마 흉내를 내 볼 순 있겠지만, 마력 효율이 박살 난 형태로 구현될 것이 뻔했다. 에드의 몸에 생긴 치명상의 절반도 채 해결하지 못한 채 자기만 탈진 상태가 될 것이다. 궁지에 빠진 목숨을 되살린다는 것은 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왜… 아무것도 못 해…. 왜 아무것도 못 하는 거야…. 으흑… 으흐흑….”
이를 악물고, 눈물을 꾹 참은 채로 클라리스는 에드를 끌고 숲 사이를 나아갔다. 성창룡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하늘에 널리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성녀로서 성력과 그에 상응하는 마력은 뛰어나지만, 제대로 활용하질 못한다. 애초에 몸에 감도는 마력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실베니아에 온 것이다.
결국 가진 것이라고는 몸에 둘러진 성법의 가호. 거의 모든 상황에서 죽음을 회피하는 이 축복뿐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에드를 지키지 못했다.
“이딴 가호… 나 같은 사람이 가지고 있느니… 차라리… 차라리….”
에드를 보며 그런 생각을 몇 번이고 반복해 보지만, 이미 몸에 각인된 축복이 다른 곳으로 넘어갈 리도 없었다.
조금씩 핏기가 사라져 가는 에드의 모습을 보면서… 클라리스는 다시 이를 악문 채 걸음을 옮겼다.
“이럴 때가 아니야…. 이번에는… 이번에는 살 수 있어요…. 할 수 있어요….”
―카아아아아아앙!!!
다시금 하늘에 울려 퍼지는 성창룡의 포효. 그 익숙한 소리를 듣는 순간, 클라리스는 직감해 냈다.
한 번 더 온다.
하늘을 뒤덮는 그 비늘의 행렬. 범위 안의 모든 자들을 공평하게 꿰뚫는 그 무시무시한 일격이 다시금 이 일대를 뒤덮을 것이다.
이미 멀어질 만큼 멀어졌지만, 그 한두 번의 충격만으로도 빈사 상태의 에드는 목숨을 잃을 것이다.
“안 돼…. 절대… 절대 안 돼….”
클라리스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에드를 바닥에 눕혔다. 어지간한 엄폐물 뒤에 숨어서 그 충격을 최소화시킨다 하더라도, 공격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성녀가 두르고 있는 성법의 가호를 이용해서 에드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
하늘을 뒤덮는 비늘의 행렬이 다시금 서슬 퍼런 날을 세운 채 돌진해 온다.
클라리스는 그 자그마한 몸집으로 어떻게든 에드의 몸을 이리저리 막아서려고 하지만, 이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에드의 몸을 커버할 수는 없다.
바닥에 누워 있는 에드의 몸을 최대한 품어 안은 채 흐느껴 울지만, 후두둑 하고 쏟아지는 비늘의 행렬은 자비 없이 그의 몸을 관통해 댄다.
“커헉!”
쇄골 쪽을 꿰뚫린 것이 치명타일까. 에드는 붉은 선혈을 내뱉고서는… 초췌해진 눈동자로 클라리스를 올려다보았다.
“안 돼요… 에드 선배님….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나뭇잎만이 바스락거리며 강풍을 받아 내는 삼림 속.
흙바닥 위에 나뒹굴고 있는 에드의 등 뒤로… 피 웅덩이가 퍼져 나간다. 제 손에 묻은 새빨간 피를 보고서 클라리스는 온몸을 떨었다.
“에드 선배님… 에드 선배님….”
생기를 잃어 가는 그의 얼굴은 이것으로 두 번째다.
그럼에도,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는다.
각별한 자의 죽음은 몇 번을 반복해도 절대로 익숙해지는 법이 없다.
저주처럼 그 가슴에 상처로 각인되어, 끊임없이 고통을 이끌어 낸다.
이대로… 에드를 보내 주어야만 하는가.
죽는 그 순간까지 클라리스를 도와주려던 에드다. 이번에는 클라리스가 에드를 구해 보려 했지만… 저주받을 운명은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에드 선배님… 죄송해요…. 죄송해요….”
죽어가는 에드를 끌어안으며, 클라리스는 눈물을 펑펑 쏟아 내었다.
“정말… 죄송해요…. 도움 못 돼서 죄송해요…. 아무것도 못 하고… 도움만 받고… 계속 죽게만 만들고… 그러면서도… 해 준 건 없고… 기대기만 하고… 미안해요…. 미안해요…. 으흑… 으흑흑….”
그렇게… 에드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허나, 바로는 아니었다.
―스윽.
눈물을 닦아 내어 주는 손길에, 클라리스는 정신이 휙 하고 들었다.
피 칠갑이 된 에드의 손이, 마지막으로 힘을 내어 클라리스의 눈시울을 닦아 주고 있었다.
“미안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 괜히 울지 마십시오….”
에드의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클라리스의 눈에서는 한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슬퍼하지 말고, 좌절하지도 마십시오….”
“선배님… 에드 선배님….”
“또… 도와줄 테니까…. 아마도 저는… 그럴 테니까…. 그러니… 울고… 좌절하고… 그러지 마십시오….”
―툭.
끝끝내… 에드의 손은 힘이 빠진 채로 바닥을 굴렀다. 눈을 채 감지도 못한 채, 공허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클라리스는 에드의 품에 안겨서 한참을 오열했다. 눈물을 쏟아 내는 그녀의 등 뒤로 거대한 빛이 쏟아져 내린다.
이윽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오필리스관에서 올려다보았던 바로 그 마법진이다.
실내에서 보았을 때와는 달리, 그 거대한 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별들의 모양을 마법진 안에 구현해 놓고, 푸르스름한 성력으로 구현되어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이윽고 새하얀 빛이 세상을 뒤덮고, 클라리스는 의식을 잃었다.
* * *
“성녀님. 이야기를 나누자니… 무슨 이야기 말입니까…?”
세상에 빛이 돌았다.
하늘을 가르던 성창룡의 포효도 없고, 피칠갑이 된 에드의 모습도 없다.
책을 덮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클라리스를 바로 보고 있는 모습일 뿐이다.
두 번의 죽음을 보았다.
오필리스관의 잔해를 떠받들고, 클라리스를 지키다가 끝끝내 품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모습.
어떻게든 클라리스가 지켜 내려 했지만, 끝끝내 성창룡의 공격을 받아 내고 죽음을 맞이한 모습.
그 어느 쪽이든 피 칠갑이 되어 버린 그의 모습은 클라리스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 멀쩡한 그의 얼굴 위로 몇 번이고 오버랩 된다.
―와락!
“에… 에엑…?! 서, 성녀님… 뭐, 뭐 하시는 거예요…!”
화들짝 놀라며 볼을 붉혀 대는 예니카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성녀는 일단 에드를 꽉 끌어안았다.
그 품에 안기고 나니, 마차 안에서 안겼을 때처럼 듬직한 느낌이 가슴에 가득하다.
“성녀님…?”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에드가 묻자, 클라리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품에 얼굴을 푹 묻었다.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근대는 소리가 주변에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허나 클라리스는 전혀 신경을 쓰는 기색이 없었다.
그 뒤로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에드의 손목을 꽉 움켜쥔 클라리스는 그대로 마차에 에드를 싣고 다시 도주했다. 이번에는 도주 루트를 달리했다. 엄폐물 없는 평원 지대 쪽이 아닌, 조금 돌아가더라도 동쪽의 바위산을 끼고 가기로 했다.
허나, 노련한 마부가 미친 듯이 속도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바위산에 도달하지 못한 채 다시 성창룡의 공격을 받아 내야만 했다.
이번에는 클라리스의 보호로 에드가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바위산에 도달하기도 전에 과다 출혈로 천천히 죽어 갔다. 조금씩 핏기가 흐려지다가 이내 천천히 반응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성녀님. 이야기를 나누자니… 무슨 이야기 말입니까…?”
그다음 돌아왔을 때는 다시 에드의 손을 쥐고 바닷가로 향했다. 괜스레 평원 지대를 가로지르다 비늘에 직격당하느니, 지하로 피신하는 게 훨씬 더 안전할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에드는 피신할 만한 곳을 두 군데 알고 있었다. 서쪽 해안가의 해안 동굴, 그리고 글래스트 교수가 쓰던 비밀 연구실이었다.
그중 서쪽 해안 동굴 쪽으로 피신했으나, 성창룡이 강림하면서 일어난 지진 때문에 동굴 자체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클라리스는 떨어지는 바위에 압사할 뻔했으나, 에드가 달려들어서 지켜 주고 대신 바위에 깔렸다. 하반신을 통째로 짓이겨진 에드는 이를 악물며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지만, 끝끝내 클라리스를 탓하는 일 없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 내어 주며 죽었다.
“일오… 오공공일육공이에요…. 일오 오공공 일육공…!”
이미 성녀의 목적은 에드를 살리는 것으로 변해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에드 로스테일러만큼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편을 들어 준 이 남자의 목숨만큼은 구해 내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이번에는 글래스트의 영혼 도서관으로 피신했다. 위쪽을 막아 내고, 혹시 몰라 천장이 무너질 것을 대비해 지지마법까지 몇 겹으로 구현해 놓았다. 성창룡이 강림하면서 일으킨 지진도 버텨 내었고, 비늘 공격에도 무사할 수 있었다. 클라리스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어지는 성창룡의 마력포에 몇 번이고 공격당한 지반은… 끝끝내 지지마법만으로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쏟아지는 흙더미 속에서, 에드는 죽는 그 순간까지 클라리스의 몸을 자기 몸으로 뒤덮고, 마력을 당겨 써서 지반을 최대한 지탱해 클라리스의 몸에 상처가 없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무너져내리는 지반 속에서, 에드는 다시 클라리스를 지키고 죽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시간이 되돌아가면 복구되지만, 클라리스의 몸에 남은 상처만큼은 온전히 유지된다. 그 이유는 모른다.
그렇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클라리스만큼은 최우선적으로 지키며 에드는 죽고 또 죽었다.
클라리스가 그 죽음에 익숙해지는 일은 없었다.
그가 죽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것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지만, 클라리스는 좌절하지 않고 이를 악문 채 버텼다.
본인이 좌절하고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면… 자기를 위해서 몇 번이고 죽어 준 에드를 구할 사람이 없다.
에드는 몇 번이고, 심지어는 모든 일의 진상을 온전하게 알고 있지도 않은 채로 클라리스를 계속해서 도와주었다. 이제 와서 클라리스는 그의 목숨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성녀님. 이야기를 나누자니… 무슨 이야기 말입니까…?”
클라리스의 얼굴엔 핏기가 가시고, 눈 밑은 퀭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에드의 얼굴을 보면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힘을 낼 수 있었다. 책을 덮고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클라리스를 바라보는 에드의 얼굴을 꽉 껴안고서… 다시금 숨을 다잡았다.
이제 몇 번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클라리스는 에드를 내버려 둔 채 트릭스관의 옥상에 올라서서 성창룡이 강림하는 순간을 똑똑히 보았다.
이번에는 하늘에 가득한 마법진을 관찰해 보았지만, 그 마력의 근원이 어디인지 도저히 특정해 낼 수가 없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시 피 칠갑으로 얼룩져 파멸해 가는 아켄섬을 내려다보았다.
“성녀님. 이야기를 나누자니… 무슨 이야기 말입니까…?”
그 뒤로도 온갖 도주 경로와 은신처를 찾아보았다. 수십 번을 반복해 보았지만, 아켄섬 안에서는 그 어디를 향하든지 성창룡 벨브로크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장소는 없었다. 실패할 때마다 에드는 클라리스를 대신하여 죽어 나가야만 했다.
그렇기에 클라리스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일오… 오공공일육공이에요….”
문득, 그렇게 말하고 난뒤… 클라리스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군번을 정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클라리스를 보고, 두 눈을 둥그렇게 뜬 에드.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클라리스를 위해 죽어 나간 수십 번의 기억들이 암세포처럼 몸을 좀먹어 들어가는 것 같다.
몇 번이고 자신을 위해 죽어 주던 에드의 모습이 끝도 없이 겹쳐져 보이지만… 단 한 번도 에드를 살리지 못했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전부 동원해 보았으나, 저 말도 안되는 강대함을 지닌 성창룡 벨브로크로부터 도망치지도… 숨지도… 그렇다고 이겨 낼 방법을 찾아내지도 못했다.
시간이 계속 되돌아가고 있는 원인조차도 규명해 내지 못했다.
고위 성직자가 연관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 학사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성황과 대주교를 찾아낼 수가 없다.
그 으리으리한 마차는 맥세스 대교 옆의 마차 보관소에 있었고, 최측근을 이끌고 교수동 안으로 사라졌다는 마부의 증언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되돌아갈 때마다 보였던 거대한 마법진 또한… 워낙 규모가 거대해 어디서 발현시켰는지 특정해 낼 수가 없다. 분명 교수동 어딘가인데… 정확한 위치를 짚어 낼 수가 없다.
그저… 반복되는 합동 전투 실습 날의 하루만이… 야속하게 그녀의 정신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애시당초, 여기까지 왔으면 더 이상 에드에게 기대는 것은 그만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러워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면, 이제 그는 내버려 두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처지를 알아줄 수 있는 이해자의 존재를 잃는 것은… 그 이상의 공포였다.
정말로 홀로 남은 듯한 공포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다른 방향의 공포가 클라리스의 가슴을 좀먹어 간다.
완전히 퀭해진 클라리스는… 그렇게 에드의 군번을 읊고서는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성녀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드만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성녀님… 맥세스 대교 쪽에서 검문 인력이 나와 있습니다. 지금 엘테 상회의 교역품들이 맥세스 대교를 통해 건너는 중이라고 합니다. 상품 마차와 호위 용병대들로 인해서 많이 어지러운 상황이니 잠시만 대기해 달라고 하는군요.”
문득, 마부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그제야 클라리스는 지금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니까… 에드를 끌고 와서, 마차에 앉히고, 마부에게 맥세스 대교로 향하라고 명령한 뒤였던 것이다.
클라리스가 퀭한 눈으로 가만히 앉아 있자, 에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떻게든 돌파하라고 마부에게 지시한다.
마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맥세스 대교에 가득한 엘테 상회의 교역 마차 사이로 운전해 나간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차에서 에드가 클라리스의 몸을 꽉 잡아 주었다.
가까이서 본 클라리스의 몸에는… 온갖 생채기가 가득했다. 시간은 되돌아갈지언정, 어째선지 클라리스의 몸에 가득한 상처는 되돌아가질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손목에 새겨진 에드의 손자국뿐이었는데,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자잘한 상처가 가득해져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에드는 마부에게 마차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
공허해진 눈빛으로 클라리스가 에드를 올려다보았다.
“내리십시오, 성녀님.”
“…네?”
“좀 쉬십시오.”
일촉즉발의 상황 아니던가.
에드가 내뱉은 말의 뜻을… 클라리스는 이해하지 못했다.
“…제가… 도움을 청해 볼 만한 사람들을 몇 명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