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23)
합동 전투 실습 2 (9)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생활동과 교수동에는 갖가지 시설이 가득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것을 찾아보라 한다면 역시 ‘광장’이다.
교수동의 중앙광장, 학생광장, 동부광장, 학회광장. 생활동의 메인광장, 각 기숙사별 광장, 시장 거리, 그리고 입구광장까지.
으리으리하고 큰 광장부터, 단출하고 자그마한 광장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탁 트인 공간이 가득한 것은 학생들에게 최대한 많은 휴식처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광장에는 늦봄의 향취를 느끼며 광합성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꽤나 많다. 교직원들이나 생활동 상인들, 외부인들까지 나름대로 광장을 오가며 한낮의 평화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곳 입구광장은 맥세스 대교를 지나 실베니아의 정문을 지나면 바로 처음으로 맞이하는 학교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다.
에드와 클라리스는 그 광장의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에드가 클라리스의 손을 잡아끌고 있는 형국이었다. 자연스레 주변의 시선이 몰려들고 있었다.
“에드 선배님. 저희… 이럴 시간이… 이럴 시간이 없어요…!”
클라리스를 호위하는 두 기사는 난처한 듯이 에드를 만류하려 했다. 그렇다고 무력을 행사할 수는 없는 것이, 칼을 빼어 들었더니 클라리스가 불처럼 화를 냈기 때문이다.
무력을 행사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놔두자니 클라리스가 난처해 보이는 상황.
하지만, 지금 당장은 클라리스를 트릭스관으로 데려가야 할 임무가 있는 것이 두 기사의 입장이다. 에드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당장은 생뚱맞게 학교 밖으로 마차를 몰고 있는 상황을 막아 주었으니… 일단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에드가 뭐 그리 대단하고 각별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대로 클라리스를 끌고 가서, 가로수 근처의 볕이 잘 드는 목재 테이블에 앉혀 놓았다. 그리고 학생 매점에서 사 온 마실 거리를 탁탁 내려놓은 뒤,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아서 제 얼굴을 몇 번 슥슥 쓸어내린 것이다.
에드도 지금 상황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주어진 정보도 제한적이다.
뜬금없이 시간을 반복하고 있다는 클라리스의 주장. 그리고 먼 과거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군번을 불러 대면서 그 사실을 입증하고는… 이 합동 전투 실습이 끝날 무렵에 성창룡이 부활해 아켄섬을 멸망시킨다는 말을 해 댄다.
일단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성녀가 하는 말은 전부 진실이라는 전제를 깔고서 생각해야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클라리스의 행동거지가 너무나도 이상했다. 뜬금없이 글록트관 앞에 있던 에드를 찾아오더니, 팔을 잡아끌어 마차에 태우고는, 일단 도망쳐야 한다는 말을 하며 학교 밖으로 마차를 끈다.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니고서야, 자기 본분을 내팽개쳐 두고 이런 기행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쉬고 있을 시간 없어요, 에드 선배님. 이러다가… 또 죽을 거예요…. 이번엔 다리를 건너서 해안가를 따라 도망쳐 봐야 해요…. 분명 대륙 쪽으로 넘어가서 해안 지대를 따라 달리다 보면 더 튼튼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은신처가 있을지도 몰라요…. 물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일단 해안 동굴 비슷한 것이라도 있다면….”
“성녀님.”
에드가 나지막이 부르자, 퍼뜩 정신을 차린 듯 클라리스는 헛숨을 삼켰다. 에드는 덧붙여서 말해 주었다.
“침착하십시오. 일단 심호흡부터 하십시다.”
“그럴 시간이 없어요…! 이제… 선배님이 죽는 건 그만 보고 싶어요…. 고통스럽게… 매번… 저를 지키다 죽는 건… 이제 그만… 그만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가야 해요…. 일이 터진 다음엔 맥세스 대교가 막혀요…! 지금이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선배님은 고통스럽게 죽을 거예요…! 그런 건… 그런 건 싫으시잖아요…! 저도 싫어요…! 이번에야말로… 선배님이… 살아남으셨으면 좋겠어요….”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나자, 클라리스의 눈에 휙 하고 빛이 돌아오더니 에드를 쳐다본다.
미동도 하지 않고, 다만 계속해서 괜찮다고만 해 주는 에드의 모습에… 클라리스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에드 선배님….”
글록트관 앞에서 에드를 만나고 나서부터 합동 전투 실습이 끝나는 때까지.
이 짧은 시간 동안 무언가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 몇 번이나 고군분투를 해 왔을까.
에드 입장에서는 알기 힘들다. 성녀의 몸에 가득 생긴 생채기들로 유추해 볼 뿐이다.
“저… 이제 잘 모르겠어요….”
클라리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또다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정도쯤 되면 그 눈물샘이 마를 만도 하건만, 감정은 야속하게도 그녀의 평정을 계속 흔들어 놓는다.
“생각나는 건 다 해 봤어요. 에드 선배님을 억지로 잡아끌고, 이런 식으로 도망쳐 보고, 저런 식으로 숨어 보고, 다 해 봤는데… 정말… 별거 아닌 사소한 희망에, 미세한 가능성에 모두 도전해 봤는데 아무것도 안 돼요…. 되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클라리스는 눈물을 훔치면서 쏟아 내듯 이야기했다.
광장을 지나치는 학생들은 신기한 광경을 쳐다보며 서로 소근거렸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는 호위 병사들은 난처한 듯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좌절한 성녀를 바라보고 있던 에드는… 가만히 일어서서, 그 옆에 가 앉았다. 그리고 클라리스의 팔을 휙 잡아끌더니, 학생 매점에서 사 온 상처용 연고를 꺼내서 휙휙 발라 주었다.
“선배님?”
“일단, 성녀님은 자기 몸을 무조건 제일 순위로 보호하셔야 합니다.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치명적인 리스크입니다.”
이미 에드는 클라리스를 광장으로 데려오면서 모든 생각 정리가 끝나 있었다.
에드의 입장에서 주어진 정보는 한없이 제한적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정황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일단 성녀의 몸에 가득한 생채기부터가 이상했다. 지금부터 성황을 만나러 간다고 몸치장을 하고 나왔을 성녀가, 이렇게 상처 가득한 몸을 그대로 드러낸 채 트릭스관을 향할 리가 없었다.
“성녀님께서 두르고 계시는 성법의 가호는, 성녀님을 적대시하거나, ‘공격 의사’를 가진 모든 위협으로부터 성녀님의 몸을 보호하는 힘이지요. 또한, 주신 텔로스의 가호를 받는 성녀님은 모든 종류의 성법술에 저항력을 가졌다고도 들었고요.”
언제나 독심술처럼 마음을 읽어 대는 대주교 베르디오. 타인의 심정을 꿰뚫는 성법술을 구사한다고 하였으나, 성녀 클라리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이유도 그러했다.
성녀의 세례를 받은 자는 모든 종류의 성법술에 저항력을 가진다. 애초에 교단의 성법술로, 교단의 정점에 선 성녀를 해하려 한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럼… 이 상처들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상처들의… 의미요…?”
지금 성녀는 막다른 벽에 막혀 있다.
자기가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해 보았지만, 성창룡 벨브로크로부터 도망치지 못한 채 좌절한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에드가 해야 할 일은 그런 성녀에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일이다.
“애초에 시간을 되감는 이 현상 자체가 성법으로 인해 구현된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성법의 가호를 받는 성녀님의 기억이 사라지는 일도, 몸의 상처가 되감기는 일도 없는 거고요.”
“…….”
“결국 이 일의 원흉을 찾아보자면, 성법술을 구사하고 있는 교단 관계자가 바로 그 원흉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건… 그렇지만….”
클라리스도 아예 가능성을 두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하늘을 수놓은 마법진 또한, 성법술과 성위 마법의 법진이 뒤섞여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서 알려 준 사람도 에드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성황과 대주교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 마법진이 피어오른 교수동 골목 쪽도 마찬가지다. 백날 찾아가 봐야 그곳엔 공포에 찬 학생들만 가득할 뿐이다.
실베니아의 모든 건물, 모든 방, 모든 곳을 구석구석 다 찾아보면 또 모르지만… 합동 전투 실습이 끝나기까지 이 잠깐의 시간 동안 그 짓을 하려면… 대체 몇 번이나 그 지옥을 마주해야 할지 예상이 가질 않는다. 실베니아 아카데미는 넓어도 너무 넓었다.
거기다 만약 그 두 사람이 작정하고 숨었다고 한다면, 성녀의 고사리 같은 손발로 백날 수색해 봤자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마저 있다. 그렇게 되면 정말 막다른 길이다.
“그렇… 네요…. 애초에 성황님과 대주교님은 맥세스 대교를 통해서 실베니아에 들어오셨을 테니까, 그 동선이라고 해 봐야 주변으로 한정되겠죠….”
“예, 그렇습니다. 다만, 쉬이 파악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변장하거나, 행동을 은닉하기 위한 마법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남들이 모르는 동선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겠지요. 일단 성황님의 마차가 있는 곳… 입구 쪽 마차 보관소에서부터 조사해 나가는 게 편할 겁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남들의 눈을 피해 움직일 이유가 대체 뭐였을까요.”
“보아하니 당당한 이유는 절대 아니었겠지요.”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클라리스의 상처에는 이미 약이 잔뜩 발려 있었다.
에드는 클라리스의 팔을 탁탁 털어 내고, 남은 연고를 휙 테이블 위에 던져 놓았다.
클라리스는 정신을 차려 보니 떨리던 목소리도 잦아들어 있었고, 눈물도 말라 있었다.
그제야 클라리스는 눈치챘다. 에드는 클라리스가 이미 궁지에 몰려서 무너지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막다른 길 앞에서 몇 번이고 머리를 들이박아 왔던 자들이 갈망하는 것은, 다 똑같은 법이다.
“이제 새로운 방향성이 보이십니까?”
에드는 어느 정도 가늠하고 있었다.
만약, 클라리스가 정말로 시간을 반복하고 있었다면, 이것이 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던 3막의 비어 있는 서사 부분일 것이다.
이 또한 정사의 일부라는 이야기지만, 그간의 정사와 달리 이번만큼은 에드가 그 진상을 온전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그 결과만큼은 알고 있다.
태초의 검성이 봉인하고, 대현자 실베니아가 그 봉인을 유지해 왔던 창세의 성창룡.
아켄섬의 지반 아래에 거대한 법진으로 구현된 그 봉인을 깨는 것은 대마법사가 와도 쉽지가 않다. 아니 애초에 대부분은 그 봉인의 존재조차도 모른다.
에서, 3막 시점에 그 성창룡 벨브로크가 부활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성창룡 벨브로크는 철저히 마지막 장 보스다.
지금 시점에서 나타나서도 안 되고, 나타난다고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애초에 모든 이야기의 마지막 서사에 가서야 잡아냈던 적이다. 그걸 여기서 성녀가 잡아내거나 죽였다고 하면, 이야기의 앞뒤가 맞아떨어지질 않는다.
그렇다고 하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애초에 부활 자체를 막아서, 없던 일로 되돌려 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에드가 성녀에게 제시해 줄 방향성은 하나뿐이다.
“도망치는 건 답이 아닙니다. 문제의 원흉을 찾아서 제거해야만 합니다.”
이해는 한다. 섬을 가르고, 하늘을 찢는 신화 속의 드래곤이다. 몇 번의 공격만으로 일대를 지옥으로 만드는 괴물 아니던가.
범인(凡人)이 그런 걸 맞닥뜨리면 그저 도망칠 생각밖에 안 든다. 거대한 재앙 앞에 마주 선 인간은 다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만 해서는 일이 진행되지 않을 터. 그 사실을 상기해 주어야만 했다.
“설령 도망치는 데 성공하더라도, 다시 시간이 되감기면 전부 원점 아닙니까…? 그럼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당장 할 수 있는 게… 도망치는 것밖에 없어서….”
“일단 마음을 추스르고, 잘 다잡으십시오. 너무 지치셨습니다. 성녀님은 지금까지 충분히 잘 하고 계십니다.”
클라리스의 초췌해진 모습. 그 등을 토닥여 주면서 에드는 부드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클라리스는 숨을 집어삼키고는… 다시금 에드의 품에 안겼다.
에드 입장에서는 퍽 당황스러운 일이고, 주변 사람이나 호위 병사들 입장에서는 까무러칠 일이었다. 허나 에드는 일단 당황스러움을 최대한 잘 묻어 둔 채로 천천히 그 머리를 쓸어 주었다.
“애초에 몇 번이나 반복하신 겁니까?”
“몰라요…. 분명 처음에는 세고 있었는데… 열 번 넘어가면서 그냥… 잊어버렸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코를 훌쩍이면서 에드의 가슴에 고개를 묻은 클라리스는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 * *
도움을 청해 볼 만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에드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클라리스는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 본들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에드는 이미 어느 정도의 진상을 머릿속에 그려 두고 있었다.
“잘 들으십시오, 성녀님. 결국 이 일의 핵심은 성황님과 대주교님을 찾아내는 겁니다. 일단 그 둘을 찾아내서, 시간을 되감는 성법술에 대한 진상을 알아내야 뭐라도 일에 진전이 있을 겁니다. 학사 내에서 그 정도 수준의 성법술을 구사할 만한 사람이야 그 둘밖에 없으니까.”
클라리스는 자기 왼손을 에드의 오른손에 깍지를 껴 넣고는, 그의 팔을 꽉 안은 채로 따라붙었다. 행여나 에드가 어디로 사라질까 봐 무서워 꽉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에드의 입장에서야 너무 끈적끈적한 스킨십처럼 느껴지지만, 성녀의 마음고생을 생각해 보면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몇 번이나 찾아봤었어요…. 그렇게 반복했는데 성황님이나 대주교님의 소식이 귀에 들어왔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역시 이상한 일이네요. 그렇게 고귀한 분들의 행보가 이렇게나 베일에 가려져 있다니. 많은 눈과 귀가 쏠려 있었을 텐데.”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 성녀 클라리스가 에드에게 매달려 있는 모습은 척 보기에도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클라리스의 입장에서야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동료지만, 학사 학생들이 보기에는 하루아침에 홀려 버린 모습으로밖에 안 보인다. 사실 그래 봐야… 고생은 에드의 몫이었다.
에드는 한 줄기 식은땀을 흘리며 학생회관으로 향했다.
에드가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곳은 학생회관 중에서도 1―2학년 학생들이 전투 실습을 하고 있는 네일관이었다.
“성녀님… 슬슬 떨어지셔야 합니다…. 바깥에서야 그렇다 치더라도… 실습 중인 학생들이 몰려 있는 대련장까지 이러고 들어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에드가 만류해 보았지만, 클라리스는 울먹거리면서 고개를 붕붕 저어 대고만 있었다.
애초에 이번 회차가 끝나면 클라리스와 에드의 관계는 또 처음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클라리스의 입장에서야 이번이 아니면 이렇게까지 응석을 부릴 수도 없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아야만 하고, 강인해져야만 한다. 그러나 일단 허락된 시간 동안 만큼은 에드에게 들러붙어 있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합동 전투 실습이 끝난다면, 또 그는 어떻게든 클라리스를 지키려고 죽음조차 불사할 것이다.
“…….”
에드는 제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는, 마음을 굳게 먹은 채 네일관의 대련장 문을 열어젖혔다.
―콰앙! 콰아아아앙!
―휘익, 화아아아악!
3막 5장, 합동 전투 실습 에피소드가 한창 진행 중이다. 대련장 위에서는 웨이드와 테일리가 합을 주고받고 있었다.
웨이드는 어떻게든 테일리에게 검격을 먹여 보려고 검을 휘둘러 대지만, 이미 성장 궤도에 오를 만큼 오른 테일리는 웨이드의 검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웨이드의 수비도 만만치 않다. 결국 테일리가 기초 검성식을 발현해 내기로 마음먹은 순간, 웨이드는 전의를 상실하고 검을 떨어트려 버릴 것이다.
에드는 그 뒤로 일어날 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다음 상대는 아마 연금부 수석 클로드일 터다.
테일리에게 온갖 환각 시약과 기초 마법 연계를 통해 압박을 넣지만, 끝끝내 제압당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승부욕에 못 이겨 금지된 시약을 들이켤 테다. 이후의 그림은 아직까지는 에드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에드의 목적은 그 결투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큰 네일관인 만큼, 관중들의 숫자도 많다. 문이 좀 열렸다고 해서 시선이 쏠리는 일은 없었다. 입구 주변에 있는 몇몇 학생들의 시선만 쏠렸을 뿐이다. 다만, 성녀가 에드에게 꽉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 모습을 보자 입을 떡 벌린 채 경악하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은 되돌아갈 것이다. 에드는 그렇게 자기 암시를 걸며, 이를 악문 채 시선을 무시했다.
그렇게 결투에 시선이 쏠려 있는 학생들 사이를 헤치고 나가, 끝끝내 반대쪽 구석에서 벽에 등을 기댄 채 결투를 구경하고 있는 학생 하나를 발견했다. 짙은 붉은색 교복 외투와 그 위에 로브를 두른 여학생이었다. 2학년 학생이고, A반 학생이므로, 아마 이 학생도 꽤 많은 전투 실습이 잡혀 있을 것이다.
에드는 그 옆에 나란히 서서 결투대를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정보 좀 팔아라.”
소녀는 그 목소리에 반응하여, 묘하게 놀란 듯한 모습으로 눈을 잠깐 치켜떴다.
애초에 이 시간에 에드는 여기에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 본인에게 배정된 전투 실습을 하러 글록트관으로 갔어야 할 인물이다. 뜬금없이 1―2학년이 대련하고 있는 네일관에 나타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머.”
그러나, 소녀는 자세한 사정을 묻지는 않았다. 그저 나란히 결투대를 올려다본 채로, 한쪽으로 단정하게 땋아 내린 적갈색 머리칼을 휙 쓸어내릴 뿐이었다.
“이런 곳에서 반가운 얼굴이네요. 돈 되는 일이라도 생기셨나요?”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소녀―― 로르텔 케헬른은 언제나 여우처럼 웃는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나도 딱히 당황하는 법도 없다. 그 어떤 이변 앞에서도 철저히 이성적인 면모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만 암약하는 이 어린 상인은 한없이 가냘파 보이지만, 그 실상을 파내 보면 이 실베니아의 생활동을 제 주머니 속에 넣은… 물밑의 실권자다.
생활동의 모든 정보 흐름은 엘테 상회로 통한다.
그리고 엘테 상회의 모든 정보는 모두 회주 대리, 로르텔 케헬른의 귀로 통한다.
― ‘성녀님… 맥세스 대교 쪽에서 검문 인력이 나와 있습니다. 지금 엘테 상회의 교역품들이 맥세스 대교를 통해 건너는 중이라고 합니다. 상품 마차와 호위 용병대들로 인해서 많이 어지러운 상황이니 잠시만 대기해 달라고 하는군요.’
맥세스 대교에서 이곳 학생회관으로 돌아오면서, 에드는 엘테 상회의 물류 행렬이 다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번잡한 수준을 보아 하면, 절대로 한두 시간 만에 정리될 수준이 아니었다.
애초에 성황과 대주교가 맥세스 대교를 통해 행차했다고 하지 않았나. 맥세스 대교의 물류 흐름이 그렇게 일시적으로 마비된 것은, 필시 두 귀빈이 다리를 지나면서 잠시간 길이 정체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터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엘테 상회의 상인들이 성황의 행차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황의 마차를 맡아 두었을 마차 보관소 직원 또한 생활동 상권의 직원이다. 애초에 그 두 사람이 어딜 가든 생활동 안의 상인들 눈을 피할 수는 없었을 터다.
생활동의 상권은 완전히 로르텔 케헬른의 권역이다. 생활동 안이라면, 바닥을 구르는 금화 한 닢마저도 모두 그녀의 감시망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런 그녀가 직접 수소문하는 것. 그것보다 더 빠르게 성황의 동선에 대해 알아낼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에드는 로르텔이 얼마를 요구하더라도 내줄 의향이 있었다. 누누이 말했지만, 어차피 시간은 되돌아갈 것이다.
“급하게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 적어도 합동 전투 실습이 끝나기 전에는 찾아야 해. 돈은 달라는 대로 주마.”
“뭐어… 다소 갑작스러운 이야기긴 한데요….”
로르텔은 대련장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에드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소 갑작스러운 부탁임에도 한층 여유로운 모습. 그렇다, 로르텔 케헬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굳은 심지의 소유자였으나….
“…엥?”
에드의 팔을 꽉 껴안고, 우수에 찬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성녀를 보고서는… 헛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 얼굴은 눈을 씻고 다시 확인해 보아도, 텔로스 교단의 정점에서 모든 신도의 경의를 한 몸에 받는 바로 그 성녀 클라리스가 맞았다.
“……????”
아무리 냉철한 이성과 식견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이런 광경을 예상하기는 좀 힘들었다.
에드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제 얼굴은 몇 번 쓸어내리며… 로르텔이 눈앞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기다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