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25)
합동 전투 실습 2 (11)
말의 상태도 썩 좋지는 않았다.
마차를 끌고 있던 말 중 그나마 무사한 놈을 데리고 왔을 뿐이다. 경쾌하게 발굽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이어졌지만, 머지않아서 그 소리도 불규칙해지기 시작했다.
말의 몸이 비틀거리는 것이 조금씩 느껴진다. 머지않아 생명이 다할 것 같았다. 그래도 끝끝내 등에 태운 주인을 위해 달리는 것이 용했다. 어쩌면, 평생을 성녀의 마차를 끌던 정일지도 모른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귀를 찢어발기는 듯한 성창룡의 포효가 다시 울려 퍼졌다. 교수동의 광장들을 가로질러서 달려 나가면 역시 피로 물든 교수동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잘 들으십시오, 성녀님. 일단 이번 회차는 글렀습니다!”
에드는 말 고삐를 꽉 움켜쥐며, 자기 허리에 손을 감고 얼굴을 등에 파묻고 있는 성녀에게 외쳤다.
“일단 최대한 진상을 밝힐 수 있도록 도와 드릴 테니까, 되돌아가신다면… 이번에는 정말 ‘완벽’하게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셔야 합니다!”
바람이 귓불을 스치고 지나간다. 에드의 너른 등판에 얼굴을 묻고 있던 클라리스는 고개를 북북 끄덕였다.
다시 한번 아켄섬 일대를 지진이 뒤덮는다. 오벨이 발현한 고위 원소 마법들이 하늘을 뒤덮고, 생활동을 향해 날아드는 벨브로크의 거대한 앞발을 루시가 막아 낸다.
―콰앙! 콰앙! 콰앙!
한눈에 다 담을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한 방어 법진이 생활동 일대를 감싸지만, 벨브로크의 앞발을 튕겨 낼 때마다 조금씩 그 형태가 일그러져 갔다.
클라리스는 두려움에 떨며 에드를 꽉 안았지만, 이내 그 가슴에 위화감이 전해져 들어왔다.
말 고삐를 쥐고 있는 에드의 팔이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대로 고개를 들어 에드의 얼굴을 보니, 이를 꽉 악물고 비장한 눈으로 앞을 노려본 채 말을 몰고 있었다. 일생일대의 각오라도 한 듯한 눈이다.
그제야 클라리스는 다시금 되새기고 만 것이다.
수십 번을 축적해 온 시간의 반복 속에서 클라리스는 저 거대한 용의 위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맞닥트려 왔다.
이번이 끝나도, 아마 다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 속 에드에게는 매 순간순간이 처음이다.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중 난데없이 나타난 재앙과 맞서야 하는 입장에 선 인간이다.
클라리스에게는 한 번, 한 번의 반복일 뿐이지만, 에드에게는 매 순간이 자기 목숨을 베팅한 도박.
시간이 되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 목숨을 판돈으로 올리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공포를 동반한다.
이를 뿌드득 악물고, 고삐를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간 모습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허나 그는 그런 공포를 절대 티 내지 않는다. 도망치고 싶은 욕구조차도 감내해 낸다. 자신이 동요하면, 클라리스도 함께 동요하리란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클라리스는 에드의 등을 감은 손에 힘을 꽉 넣었다.
―카가가각!
그 순간, 말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쓰러졌다. 기력을 다한 것이다.
그대로 몸이 크게 들리면서 아득한 부유감이 둘의 몸을 휘감았다. 에드는 재빨리 클라리스의 팔을 당겨서 꽉 안은 채 바닥을 굴렀다.
다행히 화단 쪽으로 낙마해서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다만, 에드는 이미 몸을 제법 다친 상태였기에 격통을 참기 위해 숨을 크게 집어삼켜야만 했다.
에드의 품속에서 그 얼굴을 올려다본 클라리스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에드 선배님… 팔에서 출혈이….”
“괜찮습니다. 이보다 크게 다친 적도 꽤 많습니다.”
에드는 팔을 휘적대며 피를 털어 버린 뒤, 자리에서 일어서서 바지를 털었다. 그리고 클라리스를 잡아끌어 일으킨 뒤, 드디어 도착한 학사 성당을 올려다보았다.
―콰앙! 콰앙!
아켄섬을 통째로 부숴 버릴 듯이 날뛰는 성창룡의 마법은 여전히 하늘을 뒤덮고 있다.
그런 밤하늘을 배경 삼아 커다란 십자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뚝 솟아 있었다.
그리 큰 규모의 건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다고 할 수도 없다, 벽돌과 대리석이 적절하게 섞여서 깔끔하게 올라간 외벽에는 중간중간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쁘게 펼쳐져 있고, 주신 텔로스의 가호를 상징하는 십자가가 단출하게 장식되어 있다.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것 같긴 하군요.”
에드는 하늘 높이 솟아오른 첨탑 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마법들이 오가는 별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사내가 하나. 아무래도 은신계 마법으로 최대한 몸을 숨기고 있는 듯했지만, 우리가 성당 가까이 오니 모습을 드러낸 듯했다.
금테가 둘러진 검붉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실루엣으로 그 나이대를 추측해 볼 수는 있다.
꽤나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중년 남성. 각진 턱과 가끔씩 드러나는 팔뚝의 근육을 보아하니 오랜 기간 단련한 흔적이 역력하다.
등에는 날개가 돋아 있다. 로브의 등 부분을 뚫고 나온 날개가 탁 펼쳐져, 그의 실루엣이 마치 등 뒤의 십자가와 닮아 있다.
손에 들고 있는 무기는 철제 창이다. 척 봐도 고급품이었다.
클라리스는 그 낯이 익은 실루엣에 침을 삼켰다.
성황 엘데인의 직속 별동대 ‘텔로스의 사도’.
그 긴 역사와 큰 규모를 지닌 성황도의 성법술사 중에서도, 단 8명에게만 허락된 최고로 영예로운 자리.
에드 또한 잘 알고 있는 집단이었다.
한 명, 한 명이 성황도에서는 최고의 성법술사로 추앙되는 존재들이었다. 8명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다면, 대마법사의 혈통을 이어받은 루시 메이릴조차도 쉽게 돌파해 낼 수 없다.
―파앙!
사내가 성당의 입구에 착지하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 옷깃이 휘날렸다.
그들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신앙심이다.
제아무리 강대한 힘을 가진 성법술사라 할지라도… 주신 텔로스의 축복을 받은 성녀에게는 대항하지 못한다.
그래야 했지만….
“죄송합니다, 클라리스 성녀님.”
위계질서라는 것은 언제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그에게 지시를 내린 자가 성녀 클라리스보다도 더 위에 있는 자라면, 그는 비록 상대가 성녀라 할지라도 그 앞길을 막는다.
“성황 엘데인 님의 지시입니다. 이 뒤로는… 그 누구도 지나갈 수 없습니다.”
클라리스의 눈이 크게 떨렸다.
성황도에서 만났던 사도들은 언제나 듬직한 아군 그 자체였다.
성녀를 만나면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은 채 언제나 제 깊은 신앙심을 드러냈다.
성녀와의 대화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영광스러워했으며, 주신의 세례를 받은 제 삶에 큰 영예를 느끼며 살아가던 자들이다.
그런 그가 성당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클라리스는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당황스러워하는 성녀의 귓가에 에드가 속삭였다.
“무조건 돌파하십시오. 저 문을 열고 성당 내부로 진입해서 진상을 확인하는 것만 생각하시는 겁니다. 다른 잡념들은 다 집어넣어 두십시오.”
“에드 선배님은요…?”
“잠시간 틈을 만들어 낼 수는 있을 겁니다.”
에드가 허벅지 춤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정령식이 각인되어 있는 단검의 날은 달빛을 받아 예리하게 빛났다.
클라리스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붕붕 가로저었다. 이미 에드는 잔뜩 다친 상태였다.
거기다가 상대인 텔로스의 사도는 성황도에서 최고로 치는 인재다. 성녀를 상대로라면 모를까, 에드를 상대론 전혀 봐주질 않을 테니… 그와 싸워 봤자 결과는 뻔할 뻔 자일 터이다.
클라리스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뛰어나가서 사도에게 외쳤다.
“당장 입구에서 비켜서세요…! 안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해야겠어요…!”
“성녀님.”
사내는 묘하게 슬픈 눈으로 고개를 내리깔고 이야기했다.
“죄송하지만,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다만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모두 성녀님을 위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건… 제가 판단할게요.”
클라리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녀님. 이 앞을 지나가신다고 한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카앙!
그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에드의 단검이 그의 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자리를 박차고 뛰어든 에드가 역수로 쥔 단검을 그의 몸에 박아 넣으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사내는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이 반응해 낸다. 창 손잡이를 들어서 그 손목 부분을 받아 내자,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놈은… 뭐지…?”
물론 이 정도 공격은 가볍게 막힐 거란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에드가 단검을 쥔 손을 풀자, 그 안에서 큼직한 수정구슬 하나가 튀어나왔다. 수제작한 마공학 용품 ‘충격강화 파동구’였다.
사내가 눈을 부릅떴지만, 면전에서 터져 나오는 충격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크윽!”
애초에 에드의 목적은 입구에서 사내를 치워 버리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충격파에 밀려서 나가 떨어진 사내가, 성당 외벽을 짚으며 균형을 잡았으나.
―쾅!
이미 클라리스는 문을 박차고 성당 안으로 진입한 상태였다.
“치잇…!”
혀를 찬 사내가 클라리스를 따라 뛰어들어 가려 했지만, 날아든 바람 칼날이 그의 앞길을 막았다.
―카앙! 카앙!
성법술은 신력을 이용해 주신 텔로스의 힘을 빌려 오는 마법이다. 대부분은 신력을 마력으로 치환해 사용하는 수가 대부분이지만, 사내는 대부분의 신력을 신체를 강화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인간의 몇 배에 달하는 근력으로 에드를 내쳐 버리자, 한참을 허공에 부유한 에드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을 몇 번 굴렀다. 기침 사이에 피 맛이 섞여 나왔다.
“이미 출혈이 심한 상태로군.”
사내는 창을 한번 털어 내고, 만신창이 상태로 바닥을 구른 에드를 성당의 입구 계단 위에 서서 내려다보았다.
“그냥 거기 누워서 쉬고 있어라.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에 차질이 생길 것 같다면 네 목숨을 거두어 갈 수도 있다. 나는… 살생까진 하고 싶진 않다.”
그렇게 말하며, 등을 돌려 성녀를 쫓아가려는 순간, 그의 어깻죽지에 다시금 묵직한 타격감이 든다.
에드의 마력 활에서부터 날아든 세 발의 화살이 그의 어깨에 날아와 부딪혔지만, 피부를 뚫고 들어가진 못했다.
“이… 놈이….”
뒤를 돌아본 사내의 눈에 귀기가 서린다.
에드는 재빠르게 전력 파악을 끝냈다. 텔로스의 사도에 대한 사전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성황도 최고의 성법술사를, 이제 본 성장 궤도에 접어든 에드의 스펙으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다른 수를 강구해야 한다.
사내가 창을 고쳐 잡고 날개를 펼쳤다. 재빠르게 에드를 처리하고 성녀를 따라 들어가려는 심산이었다.
에드는 품속에서 ‘글래스트의 불사조 반지’를 꺼내 들었다. 어차피 돌아갈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미래의 마력을 당겨쓰는 데 부담이 없다.
미래의 마력 흐름, 평생 마법을 쓰지 못할 각오까지 한다면 어디까지 마력을 당겨쓸 수 있을까.
에드는 그리 생각하며, 반지에 마력을 주입하며 다시금 몸을 날렸다. 정령식이 새겨진 단검이 다시 제 주인을 찾아 날아서 돌아왔고, 대지에서부터 발현된 마력이 일대를 휘감았다.
사내는 직감이 좋다. 일이 그리 쉽게 흘러가지 않고 있음을 눈치챈 뒤, 손을 들어 기도를 하며 신력을 모았다. 자기 몸을 강화시키고 몸을 날렵하게 만드는 성법술은 그를 인간을 초월한 괴물로 만든다.
마법사와 전사. 당연히 상대는 거리를 좁히려 든다.
상대의 낌새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으니, 사내는 대번에 에드를 제압하려 할 것이다.
그 사실을 방증하듯 사내는 순식간에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그 창은 에드의 심장을 조준한 채 날아든다. 속도만으로는 거의 총알에 비견해도 문제없을 정도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초월한 속도로 나아간 사내는, 에드의 심장에 창이 닿기 직전에 확신했다. 잡았다.
또, 하나의 생명을 거둬들이고 말았다는 죄악감을 뿌리치고 창을 박아 넣는다.
―푸욱!
“커헉!”
직전에 몸을 비틀었는지 심장을 꿰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가슴께를 완전히 뚫린 에드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고위 성직자용 로브에 붉은 피가 튀었다. 그 광경을 보며, 사내는 조용히 신께 기도했다.
또다시, 살생을 하고 말았다. 그 사실을 마음속으로 조심스럽게 고해했다.
―파앗!
그 순간이었다.
피로 범벅이 된 에드의 손이, 창을 쥐고 있는 사내의 손을 휙 움켜쥔다.
깜짝 놀라 에드를 내려다본 사내는… 헛숨을 삼키고 말았다.
창에 꿰뚫린 상태로… 에드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던 것이다. 입가에는 선혈이 튀어나오고 있지만, 그 격통을 버텨 낸 채 반대쪽 손에 있는 단검을 역수로 쥐어 들었다.
그 단검이 향하는 방향은, 사내의 손을 쥐고 있는 자기 오른손이다.
―푸욱!
에드의 손을 관통해, 사내의 손까지 파고들어 간 단검. 섞인 피가 철철 흘러넘친다.
단검은 마치 수갑처럼 에드와 사내의 손을 묶고 놔주지 않는다.
덜덜 떨리는 에드의 손은 그대로 사내의 손등을 꽉 움켜쥐고, 그가 섣불리 몸을 뒤로 뺄 수 없도록 움직임을 봉한다.
“이… 이놈이…?”
비릿하게 웃는 얼굴은 죽음을 앞둔 자의 것이 아니다.
“원래 스펙의 차이를 좁힐 수가 없을 땐….”
또 한번 에드의 입가를 타고 선혈이 튀어나온다. 에드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요행과 도박수에 기대어야지.”
“이런… 미… 친놈이…!!”
에드 로스테일러가 묻는다. 내 판돈은 목숨이다. 그럼 넌 뭘 걸 테냐.
정답은 자기 한 손을 버릴 각오로 에드를 뿌리치고 거리를 벌리는 것이다. 허나, 단 한 순간의 망설임이 그를 사지로 내몬다. 칼끝을 걷는 승부의 세계에는 아주 약간의 판단 유예가 싸움의 결과를 뒤바꾸어 놓는 것이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겨우 발현된 정령 소환식. 바닥을 뚫고 튀어 올라온 고위 바람 정령 메릴다가 입을 벌리고 그를 한 번에 물어뜯어 버린다.
“크아아아아아악!”
메릴다의 입 안에서 선혈이 터져 나왔다. 제아무리 고위 성법술을 몸에 둘둘 두르고 있어도, 그 본질은 인간이다. 그 거대한 늑대의 입에 들어간다면 대리석마저도 산산조각이 난다.
피 칠갑이 된 그의 몸이 메릴다의 입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을 굴렀다. 숨만 겨우 쉬고 있는 형국이었다.
―터억.
에드는 창에 꽂힌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철철 흐르는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화아아아악!
이미 에드는 치명상이다. 아주 약간의 마력 부담만으로도 출혈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터.
메릴다는 재빠르게 본연의 형태를 해제시켜 버리고, 최대한 마력 부담을 줄인 인간형으로 돌아와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에드를 향해 뛰어들었다.
[ 너, 진짜 미쳤니? 제정신이야? 안 돼! 정신 차려! ]에드의 상처를 꽉 움켜쥐어 봤지만, 그 정도 가지고 이 상처를 어떻게 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 왜 이런 미친 짓을 했어! 그냥 정직하게 날 소환해서 정면 승부를 했으면… ]“조용히… 좀… 귀 울린다….”
에드는 붉게 물들어 가는 메릴다의 옷깃을 움켜쥔 채, 피를 한 번 더 토했다.
에드는 사내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 텔로스의 사도는 이미 그의 지식 안에 있는 집단이었던 것이다.
8인으로 이루어진 성황 직속 최정예 별동대, 텔로스의 사도. 그중에서 제3좌에 앉은 신속의 탈다렉.
정면으로 그와 맞서 봐야, 아득히 빠른 속도와 날개를 통한 제공권 장악으로 인해 이쪽이 열세에 밀릴 것이 뻔했다.
안 그래도 스펙 차이가 심한데, 전술적 요소까지 상대에게 건네준 채로 전투를 진행해 봐야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렇기에 단기 결전을 건 것이다. 판돈은 목숨이었고, 쟁취한 것은 아득한 스펙 차이를 뒤집어엎은 승리다.
결투의 승리는 언제나 강하고 약함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그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라는 결과를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승부사다. 어차피 되돌아올 판돈이라면, 그게 목숨이라 할지라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집어 던질 줄 알아야만 했다.
그 공포감을 이겨 낼 정신력의 유무가 핵심이었을 따름이다.
[ 너… 진짜…! 야… 안 돼…! 정신 차려…! 죽지 마! 죽지 말라고! ]메릴다는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에드의 상처를 움켜쥔 채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에드는 삐걱거리는 고개를 들어, 그 입구가 열려 있는 성당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흡족한 얼굴로… 천천히 잠들 듯 눈을 감았다.
* * *
성당의 구조라는 것은 대개 비슷하다. 입구를 지나서 자그마한 복도를 넘어가면, 커다란 예배당이 나오는 것이다.
모든 성당 건물들이 다 마찬가지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은 누가 뭐라 해도 예배당이다.
그러나… 복도로 들어가는 초입부터 문이 잠겨 있었다. 안에서부터 잠금쇠가 걸쳐져 있는 느낌이었다.
클라리스는 이 성당에 몇 번이나 와 봤다. 텔로스 교단의 성녀라는 신분이다. 주말이나 학기 중 행사가 있으면 한 번씩 얼굴을 보이러 나오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내부 구조가 어떤 식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이 너머가 꽤나 넓은 복도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클라리스는 그대로 성력을 끌어 올려서 문을 부숴 버렸다.
―콰앙!!
신의 기운이 기거하는 공간을 성법으로 때려 부수는 상황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신앙심 따위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복도를 가로질러 지나가서 예배당으로 들어간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어… 라….”
“……!”
문을 부수고 들어간 클라리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예배당으로 통하는 복도의 끝에서 비틀대며 걸어 나오고 있는 소녀였다.
가지런히 내려온 연노란색 머리칼에 예쁘게 수놓인 여러 꽃들.
거의 2년 만이었지만, 클라리스는 그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언제나 성황도 꼭대기에 있는 성녀의 방 창문에서 류트를 연주해 주던… 그 어린 음유시인이다.
입학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그녀를 만나 보지 못해서, 클라리스는 언제나 답답한 심경이었던 것이다.
“아… 델….”
이제는 아델이 클라리스의 선배 된 입장이다. 학사 내규만 따르면 말이다.
허나, 클라리스는 그 의외의 얼굴에 당황한 상태인지라, 옛 친구처럼 그 이름을 불렀다.
비틀대며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아델은… 피를 잔뜩 뒤집어쓴 상태였다. 그 피는 모두 아델의 것이었다.
몸에는 온갖 생채기가 가득하다. 몇몇 자상은 어찌나 깊은지, 현재진행형으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델… 아델…!”
“아… 핫….”
클라리스가 뛰쳐나가서 앞으로 넘어가려는 아델의 몸을 받아 내었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울먹이면서 만신창이가 된 아델을 바라보았다.
“아델… 어쩌다가…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성녀님….”
나란히 마주 보고 주저앉아서, 아델의 어깨를 꽉 안은 클라리스의 눈가에 또 눈물이 펑펑 샘솟아 올랐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가. 성당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왜 여기서 나오게 된 것인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잔뜩이었지만, 무엇보다 급한 건 일단 아델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클라리스가 아델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그 말에, 클라리스는 헛숨을 삼켰다.
“…뭐?”
“그래도… 다시 오실 필요는 없어요.”
아델은 이를 악물며 클라리스의 품 안에 있는 자기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힘든 경험 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아델…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래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금방 끝나요…. 조금만… 더 참으면….”
그때, 아델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한쪽 팔에 새겨져 빛나는 것은… 분명 텔로스 교단의 성녀에게만 허락된 ‘성법의 가호’다.
모든 성법술로부터 자기 몸을 지키고, 자기 몸을 해하는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이 성법의 가호는… 1명의 대주교, 6명의 주교, 8명의 사도, 그리고 성황의 성법이 모여서야 비로소 각인시킬 수 있는 교단 최고 수준의 축복이다. 말 그대로 성녀가 아니고서야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내 피어오르는 것은 ‘성위 마법’을 기초로 한 거대 법진. 아델의 몸으로부터 발현되어 퍼져 나가는 그 거대한 시간 역행 마법은… 또다시 세계의 시곗바늘을 앞으로 되감으려 든다.
신력을 성위 마력으로 화할 수 있는 감응 재능. 교단의 역사에 단 한 명도 없었던 희대의 재능을 가진 소녀가, 바로 아델이다.
그 어떤 사건 사고가 실베니아를 덮쳐도 언제나 넉살 좋게 류트를 연주하며 풍류를 읊을 수 있었던 여유로움은… 결국 그녀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성녀였기 때문이다.
몸을 지켜 주는 성법의 가호가 있다면, 살의를 가지는 그 어떤 공격으로부터라도 자신의 몸을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건… 이건….”
클라리스는 동공을 떨며 발현해 가는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온 세상이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 틈 속에서… 아델이 어렵사리 웃는 모습을 겨우 볼 수 있었다.
“아델…! 아델…!”
클라리스는 눈물을 흘리면서 어떻게든 아득해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았지만…
야속하게도 세상은, 그녀에게 다음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 * *
“성녀님. 이야기를 나누자니… 무슨 이야기 말입니까…?”
합동 전투 실습 날의 오후. 드넓고 푸른 하늘, 따사로운 햇살, 목재 테이블.
책을 덮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에드가 의아한 얼굴로 클라리스를 쳐다본다.
“…….”
문득, 클라리스는 테이블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잠시간…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와 예니카만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런 성녀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1분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까, 클라리스는 그 시선을 에드 쪽으로 돌린다.
몇 번이고 자신을 위해 죽음을 반복해 가면서까지, 그 답을 제시해 주려 했던 은인과도 같은 남자다.
그의 도움 덕에 일의 진상에 거의 접근한 듯하지만, 아직 퍼즐 조각이 머릿속에서 온전하게 맞춰지질 않는다.
그저… 클라리스는… 버릇처럼 그 옆에 가 앉아서 팔을 꽉 안았다. 묘한 안정감이 가슴 속에 자리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본 광경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끊임없이 생각했다.
“……???”
“……에엥????”
물론 에드와 예니카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일 뿐이었다.
* * *
― ‘성법의 가호도 성공적으로 몸에 자리한 듯합니다. 이제 대중의 앞에서 성녀가 되었음을 공표하는 ‘성흔 세례’만 마치면, 정식으로 성녀로서 이 성황도의 꼭대기에 군림하시게 되는 겁니다. 아델 님.’
― ‘그렇네요. 확실히 평소보다 신력이 더 밀려 올라오는 것이 느껴져요.’
― ‘성법의 가호는 그 몸에 서린 신력을 극한까지 활용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아델 님은 그 신력을 이용해 성위의 힘까지도 능히 맞닿을 수 있으니, 성황도의 역사상 가장 강대한 성녀로서 이름을 드높이게 되겠지요.’
― ‘너무 과분한 말씀이네요. 대주교님. 이런 막대한 마력이 들어가는 가호를 제가 독차지하다니, 정말 사치를 부리는 기분이에요.’
― ‘성녀님의 고귀함에 걸맞은 가호입니다. 그 성법의 가호는 언제까지고 성녀님의 몸을 지켜 낼 것입니다. 가호의 능력을 모두 이끌어 낼 수 있는 적성도 갖추고 계시니, 언제나 든든한 방패를 두르고 다니는 기분이 들겠지요.’
눈을 뜬다. 글록트관의 전투 실습장으로 향하는 으슥한 구석 복도다.
적당히 그 근처에 주저앉아서 류트나 뜯고 있었던 것이… 한참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다.
쿨럭, 하고 재채기를 하니 입가를 타고 선혈 한 줄기가 내려온다.
흘러나온 피가 웅덩이가 되어, 옆에 뉘어 둔 류트의 표면을 적셨다.
“아핫.”
몇 번이나 다시 보는 이 광경에, 아델은 또 돌아왔음을 직감하고 웃음을 흘렸다.
성창룡이 아켄섬을 부수고 학생들을 학살하던 광경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모두 없던 일이 되었다.
아델의 몸에 둘러진 가호는 시간의 흐름조차도 뒤집어엎는 것이다.
아델은 한참 동안 몸을 뉜 채로 가만히 쉬었다. 상처는 하나같이 그대로다.
“전부 없던 일이 되고, 아무도 기억 못 하게 되면….”
십 분쯤 지났을까, 기운이 좀 돌아오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수십 번을 반복해 왔듯이, 류트를 챙겨 들고,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천천히 천천히 성당 쪽으로 나아간다.
“오히려… 쓸쓸하지도 않겠네.”
몇 번이나 반복했음에도, 이 조용한 복도를 나가는 순간은 익숙해지질 않는다.
― ‘야.’
― ‘네? 에드 선배님.’
― ‘너, 곧 죽는다.’
― ‘알아요.’
이제는 아득한 예전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바로 이 복도에서 에드와 나누었던 담화다.
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건넨 말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묘하게도 아델의 운명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세상은 항상 똑같이 되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허나, 에드는 처음 한 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아델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필시 어떠한 원인이 있기 때문일 터이지만, 아델은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 데에 사고를 분산할 겨를은 없었다.
그저 벽을 짚고 일어서서, 다시 성당 쪽으로 향할 생각만을 해 둔다.
“후우….”
드디어 몸의 신력이 바닥나고 있음이 느껴진다.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비로소 그 끝이 보이는 것이다.
긴 여정이었다. 누구를 탓할까. 제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아델은 그렇게,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글록트관을 나섰다.
성흔 세례 전날, 올려다보았던 밤하늘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날, 아델은 드디어 자신의 미래를 엿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미래가 두려워 성녀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갖가지 이유를 대 가며 아델은 성화 관리인이라는 한직으로 도망친 것이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득한 별하늘 사이로 보인 미래는…
성창룡의 부활을 없던 일로 되돌리기 위해, 성녀로서 희생되는 미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