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27)
합동 전투 실습 2 (13)
성당의 입구를 열고 안쪽으로 쭉쭉 들어가면 곧바로 예배당이 나온다.
클라리스는 호위 기사 둘을 대동한 채 성당의 복도를 쭉쭉 걸어 나갔다.
에드와는 갈라져서 움직이기로 했다. 순식간에 너무 많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는데, 막상 에드와 떨어지고 나니 또 괜스레 불안감이 밀려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신 차려야지.’
허나 클라리스는 금방 고개를 가로젓고 목을 빳빳이 했다.
아마도 이 학사 성당의 내부에 모든 일의 전말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 어떤 때보다 재빨리 움직여서 성당 내부까지 진입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해 왔던 과거와는 명백히 다른 회차인 것이다.
“서, 성녀님…?”
복도 쪽 입구에 도달하자, 그 앞을 지키고 있는 텔로스의 사도, 제3좌 탈다렉이 길을 막아섰다.
현 텔로스 교단의 총애를 받고, 그저 이야기 몇 마디 나누는 것만으로도 신의 은총을 받는 듯한 위광이 흐른다는 성녀 클라리스다.
왜인지 모르게 생채기가 많고 피곤에 찬 모습이지만… 그 외관만큼은 누가 보아도 바로 그 성녀가 맞다.
“트… 트릭스관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여, 여기는 대체 어떻게….”
“비켜요, 탈다렉.”
언제나 자애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발랄한 기색이 있던 성녀 클라리스.
허나,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처럼 싸늘한 눈으로… 클라리스는 탈다렉에게 길을 낼 것을 명한 것이다.
왜 여기에 텔로스의 사도가 있는지 놀라는 기색조차 없다. 성황도에서 보았던 성녀 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 기품도 변해 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수십 번이 넘게 지켜본 인간이다.
“하, 하지만… 성녀님. 성황님께서 명하시길….”
“제가 직접 성황님이랑 이야기할 테니까, 비키세요.”
그렇게 말하고, 클라리스는 성큼성큼 걸어서 탈다렉을 지나쳐 버렸다.
탈다렉은 순간적으로 뭐라 말을 하려고 팔을 뻗었으나, 클라리스는 그 손목을 휙 잡은 뒤 잠시간 탈다렉을 올려다본 채… 다시 손을 풀고 제 갈 길을 갔다.
그 뒤를 지키고 있던 성녀의 호위 기사들 또한 서로 눈치를 보다, 천천히 클라리스를 따라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쾅!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예배당의 전체적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정면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연단. 그 뒤로 펼쳐져 있는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 알록달록 빛나는 유리는 태양 볕을 밭아 예쁘게 그 모습을 뽐낸다. 커다란 천사가 날개를 활짝 편 채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 주고 있는 그림이 각인되어 있다.
연단 뒤의 외벽을 따라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고, 그 앞으로는 예배를 하러 온 신도들을 위해 준비된 목재 좌석이 쭉 도열해 있다.
들어와 있는 평신도는 없다. 다만, 고위 신도들이라면 잔뜩 있었다.
이를테면 성황 엘데인, 대주교 베르디오, 텔로스의 사도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성녀 클라리스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사태의 근원, 이 모든 일을 벌인 당사자들이 모두 여기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몇 번이나 방황했는가. 몇 번이나 에드 로스테일러의 죽음을 바라봐야 했고, 학사의 멸망을 지켜봐야 했으며, 바스러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아야 했는가.
이를 악물었지만,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목소리를 내리깐 채, 홀에 울려 퍼지도록 힘을 줘 이야기했다.
“여기서, 뭘 하고 계시나요…?”
연단 위를 보면 봉인된 벨브로크와 공명하는 유물, ‘벨브로크의 어금니 목걸이’가 빛을 발하고 있다. 태초의 검성 루덴이 벨브로크의 부서진 이빨 조각을 가져와 목걸이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용자의 마력 감응력을 폭증시켜 주고, 모든 물리 공격에 막대한 내성을 부여해 주는 전설 등급 물품이지만, 오로지 그것만이 역할의 전부는 아니다.
아켄섬 밑 심해에 봉인된 벨브로크의 생존 본능을 일깨워, 유약해진 결계를 깨부수고 뛰쳐나오도록 유도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클라리스 성녀님…?”
연단 앞에서 사도들을 점검하던 대주교 베르디오가 그 눈에 들어왔다. 한편에는 성황 엘데인도 앉아 있다.
“베르디오 대주교.”
대주교 베르디오는 클라리스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다. 막 성녀가 된 클라리스가 위엄을 갖출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지도해 주었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신실한 모습을 유지하여, 모두의 경의를 한 몸에 받던 자다. 성황도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그를 독실한 신자라고 치켜세워 주었다.
그 평판은 신실한 마음을 증명한 결과일까, 아니면 상인들조차 울고 갈 철저한 처세술의 결과일까.
이 자리에 와서까지 그걸 가늠해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는 있다.
“지금 당장 하는 짓을 전부 멈춰요.”
회갈색 머리칼 사이로는 세월의 흔적 탓인지 희끗한 새치가 꽤나 많이 섞여 있다. 아직은 허리가 굽지도, 몸이 허해지지도 않았지만, 슬슬 신체 능력의 쇠퇴를 걱정해야 할 나이였다.
그럼에도 베르디오는 뒷짐을 지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거의 몇 달 만에 만난 클라리스에게 여유롭게 이야기했다.
“설마, 성녀님께서 성당에 먼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같은 말 두 번 안 할게요.”
클라리스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앞으로 성창룡 벨브로크가 부활하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지금 당장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제가 무엇을 하려는지… 아십니까…?”
“성창룡을 부활시키려 하시겠죠.”
호오, 하고 베르디오가 웃음 지어 보였다. 성황도에서 보였던 근엄하고 인자한 미소와는 명백히 달랐다.
어떻게 알았느냐, 하는 건 지금 따져볼 것이 아니다. 변절자가 있든, 내부에 누군가를 심어 놓았든 간에, 성녀가 진실을 알았다면 일이 꼬이는 건 순식간이다.
“베르디오 대주교. 저는 당신이 성황도만을 생각하는 양심 어린 신자라고 생각했어요.”
“맞습니다. 저는 오로지 성황도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베르디오는 뒷짐을 풀지 않은 채 천장을 보고 숨을 흘렸다. 연단 뒤로 아리땁게 펼쳐진 스테인드글라스가 태양 빛을 받아 빛난다.
“교세 확장도 하나의 사업 분야입니다. 신앙은 곧 신뢰이고요. 거룩하신 주신께서는 언제나 하늘 위에 존재하시지만, 미천한 우민들은 보여 주는 것이 없으면 그걸 믿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성창룡을 죽이고 그 은혜를 널리 퍼트리겠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실패할 가능성은 생각도 안 하나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문득 생각나는 가능성.
클라리스가 시선을 내리깔자 그 아래엔 거대한 희생의 법진이 그려진 게 보인다. 그것은… 성녀 특유의 신력을 이용해 벨브로크를 잠재우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성녀 클라리스가 트릭스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성황과 대주교는 학사 성당에서 이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싸늘하게 식은 클라리스의 눈이 연단 위를 향한다.
“보험은… 제 목숨이었군요.”
부정인가, 긍정인가.
표면적으로나마 부정해 주기를 바랐건만.
“보험일 뿐입니다. 모든 일이 잘 안 풀렸을 때의 이야기죠.”
클라리스의 눈만큼이나 싸늘하게 식어 있는 대주교 베르디오의 표정은… 말 그대로 광신자의 모습이다.
클라리스는 이교도 광신자들을 본 적이 있다. 북방 초원 지대의 아인족들에게 피해받은 마을에 위문을 나갔을 때였다.
이성을 잃고 날뛰는 광신도들의 모습은 이미 상식인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신앙심에 정신이 팔려 윤리와 도덕마저 저버린 자들은 그렇게 문명에서 멀어져 간다.
그런 모습을 보았기에, 클라리스의 머릿속에 있는 광신도란 상식적이지도 않고, 대화도 안 통하는, 정신병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별종들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대로 편협한 시선이다.
이성을 가지고, 품위를 지키며, 대화를 나누고, 언제나 격식 있는 모습인데다가, 의지조차도 숭고하지만… 광신의 영역에 발을 들인 자 또한 존재할 수 있다.
결국 신앙을 위해 어디까지 포기하느냐가 핵심이다.
신을 향한 경의에는 마음을 구원하는 힘이 있지만, 그것이 어디까지 용인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춰선 안 된다.
“성황님. 정말 이거면 된다고 보는 건가요?”
이윽고 클라리스의 눈이 가는 곳은 연단 뒤편에 앉아 있는 성황 엘데인이다.
대주교 베르디오가 주도한 일련의 계획은… 결국 최종 책임자인 엘데인의 지지가 없으면 진행되지도 못했을 터.
주도하지 않았더라도, 방관한 자다. 베르디오를 막을 수 있는 힘과 권력이 있었던 자 아닌가.
그렇기에 클라리스는 간절한 눈으로 성황을 바라보지만… 대주교 베르디오는 성황도를 재정의 위협에서 몇 번이고 구해 냈던 자다. 몇십만의 신도보다도 그 하나가 성황도의 위광에 기여한 바가 훨씬 더 많다.
이윽고 성황이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떨구자, 클라리스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키고 말았다.
분노와는 묘하게 다른, 뜨거운 감정이 목을 타고 넘어간다.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불신’의 새싹이… 그녀에게 속삭인다. 이 재앙을 멈추라고.
몸이 먼저 나갔다.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연단까지 도달한 클라리스가 벨브로크의 어금니 목걸이에 손을 뻗지만, 대주교 베르디오가 그 손목을 잡아채 버린다.
꽉 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클라리스의 손목에서 부서질 듯한 고통이 밀려 올라왔다. 그럼에도 클라리스는 눈을 똑바로 뜬 채 베르디오를 노려보았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성녀님.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니, 잠시 잠들어 계시길.”
클라리스의 뒤편에서부터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앉아 있던 사도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그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 * *
에드는 아델의 손목을 잡아끌고 성큼성큼 걸었다. 성당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 성당 측면으로 돌아가는 둘레길을 타고 있었다.
“그래, 썩 유쾌한 진상은 아니네.”
클라리스로부터 성창룡에 대한 사실을 전해 듣고, 그것을 곱씹고, 납득하고, 다른 곳에 들러서 도움을 요청하고, 이 성당에 도달하기까지 꽤 시간이 흘렀다.
슬슬 성창룡이 부활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에드는 발걸음을 빨리하면서도 아델의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경청했다.
“베르디오 대주교님은 평사제 시절일 때부터 그런 식이었어요. 교세를 불리는 것. 그리고 성황도의 창고를 여유롭게 만드는 것. 그것이 대주교님이 신앙을 증명하는 방식이었죠.”
“사제를 할 만한 인재는 아닌 것 같다.”
아델은 어렵사리 따라붙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앙심만큼은 진짜였어요. 다만, 그 방법론이 너무 극단적일 뿐이었고요.”
“그걸 세간에서는 광신도라고 부른다.”
“그렇게 치부하기엔… 또 지나치게 이성적인 인물이기도 하고요.”
이성적. 그 표현에 에드는 혀를 찼다.
아델이 설명한 성당의 움직임은 그렇게 혀를 차고도 남을 일이었다.
시작은 클로엘 황제의 즉위다. 이번 대 황제는 정말 성군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인물인지라… 클로엘 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대륙의 태평성대를 일구어 낸 인물로 통했다.
대륙을 호령하며 신도의 세를 불려 나가던 텔로스 교단의 위용도 어느샌가 클로엘 황실의 위광에 묻혀, 조금씩 조금씩 신앙을 팔아먹는 장사꾼으로 쇠퇴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말이 쇠퇴일 뿐이지 지금도 텔로스 교단이 제국 최대 가는 규모의 종교 단체임은 틀림이 없다.
대륙 외곽에서 이교도 취급이나 받던 창세기의 텔로스 교단에 비한다면, 지금은 말 그대로 수백 수천 배는 몸집이 불어난 것이다.
그러나, 교세의 쇠퇴를 시대의 변화가 아니라 불신의 증거라고 여긴 것인가.
대주교 베르디오는… 창룡들이 날뛰고 아인족들이 학살을 자행하던 그 옛날 텔로스 교단의 위용을 다시금 부활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기적을 일으킨다.
아켄섬을 위협하는 성창룡을 토벌해, 클로엘 제국 전역에 그 영광스러운 이름을 널리 퍼뜨릴 심산이었던 것이다.
“설득은 해 봤고? 넌 예언가잖아. 네가 하는 말은 다 믿는 거 아니야?”
“저는… 이미 베르디오 대주교의 신뢰를 잃었어요.”
‘왜냐.’라고 묻지는 않았다.
아델은 많은 예지를 해 왔음에도 그것을 온전하게 교단에 전달한 적이 거의 없는 것이다.
심지어는 예언을 감추고, 속이기까지 했다. 성녀의 자리에 오르지 않은 이유는 끝끝내 밝히지 않았으며, 첨탑의 성화를 버려둔 채 야반도주까지 했으니… 이미 교단의 신뢰는 전부 잃었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성황님 또한 베르디오 대주교의 방침에 따라가고 있겠죠.”
“이놈이고 저놈이고 제정신인 놈이 없네.”
“애초에 확신에 차 있었어요. 그럴 만한 전력이에요. 성황도 최대의 성법술사 집단인 ‘텔로스의 사도’를 6명이나 끌고 왔으니까요.”
텔로스의 사도.
한 명 한 명의 힘도 장대하지만, 그 수가 둘이 되고 셋이 될수록 그 강대함이 수십 수백 배가 되어 가는 집단이다.
기초적인 성법술을 공유하고, 막대한 신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다가, 연계 진형, 합동 훈련까지 받아 온 자들이기 때문이다.
다섯이 넘어가는 텔로스의 사도가 진형이 좋고, 물자와 마력이 충분히 제공된다면 수만의 군대를 상대로도 성문이 뚫리지 않는다고 할 지경이다.
그런 텔로스의 사도가 여섯이다. 생각해 보면 성녀를 시찰하러 온다는 것 치고는 지나치게 막대한 전투 병력이기는 했다. 단순 호위 병력이라 생각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가 역사서 속의 세상과는 달리, 현재에 이르러서는 마법에도 막대한 발전이 수차례나 있었죠. 성법술의 효율 개혁도 엄청나게 이루어졌고요.”
“그래서… 성창룡을 부활시켜서 토벌해 버리려 했다 이거냐.”
‘오만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까.
머나먼 역사 속의 괴물을 지금에 이르러서 다시 잡아내겠다는 건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시간이 지난 뒤에 역사 속의 기록을 살펴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기도 하는 것이다.
신화 속의 괴물들. 미노타우르스, 케르베로스, 키클롭스, 하피에 리바이어선에 이르기까지.
모두 책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을 죽인 끔찍한 괴물로 나오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총과 폭탄, 대포, 함선, 전술 핵무기 따위가 떠올라 금방이라도 제압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자고로 역사는 전승되면서 왜곡되고 부풀려지는 것.
제아무리 성창룡 벨브로크라 할지라도, 하늘을 찢고 땅을 가를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겠지.
그러나, 벨브로크에 대한 전승만큼은 거짓된 것이 거의 없다.
단지, 몇백 년도 더 된 옛 기억이기에 확인할 방법이 없을 뿐이다. 태초의 검성은 죽은 지 한참이고, 그 성창룡의 위용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조차 남아 있지 않다.
텔로스의 사도들은 어마어마한 군대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집단이 아닌가. 그런 엄청난 위용을 뿜어내는 장면을 몇 번이고 보았으니… 성창룡마저도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그 오만의 대가는 천 단위가 넘어가는 사람들의 목숨이다. 아켄섬이라는 땅을 아예 지도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잘 들어라, 아델. 너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냐.”
“잘… 모르겠어요… 신력도… 거의 바닥난 상태라….”
다시금 뒤를 돌아보니 아델은 숨을 헐떡이면서 거의 끌려오듯이 따라오고 있었다. 에드는 아델의 몸 상태를 다시금 확인해 보고는, 이내 허벅지를 받쳐 들고 그대로 아델을 들쳐 업었다.
“우, 아앗!”
“조금 쉬고, 딱 한 번만 더 되돌려 봐라. 아랫배에 힘 딱 주고.”
“네…?”
아마도 아델은 한계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여기서 몇 번이나 더 되돌릴 수 있을지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애초에 아델 스스로의 의지로 되돌리는 것도 아니고, 몸에 각인된 성법의 가호가 멋대로 아델의 힘을 끌어다 쓰는 것이다.
“결국 일의 핵심은 간단하지. 저 학사 성당 앞에서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교단 놈들 엉덩이를 두들겨 주면 된다는 거 아니냐.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로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다.”
“…….”
“대주교 베르디오는 광신자인 주제에 지나치게 용의주도하고, 머리가 펑펑 잘 돌아가는 인간이지. 뒤가 없는 계획은 절대 세우지 않는다. 플랜 A가 안 되면 준비해 놨을 B, C가 분명히 있을 거다.”
“에드 선배님은… 베르디오 대주교님을 아시는 거예요…?”
만나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알기는 한다. 그걸 어떻게 둘러대기도 뭣하기에, 에드는 그냥 고개를 가로젓고 대로 사이를 달려 나갔다.
“우리가 할 일은 쥐새끼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모든 탈출구를 차단하는 거야. 용의주도한 놈이니까 한 번에는 힘들겠지. 그러니… 놈이 뭘 하는지 지켜봐야겠어.”
“그럼… 저희는….”
“그래. 내가 길을 틀 테니까, 네가 할 일은 하나뿐이야.”
학사 성당의 뒷문까지 도달했다. 에드는 근처 벤치에 아델을 내려놓고, 눈을 맞춘 채 이야기했다.
“기억해.”
“…….”
“놈이 뭘 하는지 확실하게 기억하고, 날 찾아와. 분명 또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어안이 벙벙하고 있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최대한 빨리 정신 차리고, 사태 파악하고, 일의 전말을 그려 볼 테니까… 나 한번 믿고… 글록트관 앞에 있는 테라스 벤치로 찾아와. 나랑 예니카가 나란히 앉아 있을 거야.”
아델은 힘이 빠져 가는 몸을 열심히 가누기 힘들어 벤치 등받이에 기댔다.
“하지만… 힘이 거의 빠져서… 제대로 설명하기가….”
“설명은 클라리스 성녀님이 하면 되니까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마. 너 혼자 기억 남아 있는 거 아니야. 단지… 더 많은 눈이 필요할 뿐이야.”
“…….”
“살고 싶다 그랬지?”
에드는 외투를 벗어서 아델의 옆자리에 던져 놓고, 셔츠의 팔을 걷어붙였다.
“가만히 있는다고 누가 살려 주냐? 추잡하게 옷깃을 부여잡고, 더러운 진흙탕에 처굴러가면서 발버둥 쳐도 살까 말까 하는데…”
아델의 동공이 커져 간다.
자기를 버리고 떠나가던 아버지의 옷깃을 잡으며 울지 않은 것이, 혼자 있기 싫다고… 무섭다고 호소해 대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아델이 오버랩된다.
“살아남는다는 건 원래 다 그렇게 보잘것없고 추레하게 버티는 거야. 성황도에서 떠받들어지며 성녀로서 사느라 다 잊어버렸어?”
살아남기.
어쩌면 생애 유일의 목표였으며, 허나 끝끝내 손에 닿지 않았던 것이다.
에드에게도 먼 이야기는 아니다.
그에게는 이 아카데미에서 보낸 삶의 모든 순간순간이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너도 알 거 다 알잖아.”
“그래도… 텔로스의 사도는 무력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무력? 무력 자체는 별로 큰 문제가 안 돼. 말했듯이, 놈이 쥐새끼처럼 숨겨 놓았을 다른 탈출로를 전부 차단하는 게 문제지.”
“무력이… 문제가 안 된다고요…?”
텔로스의 사도가 어떤 자들인지 알고도 하는 말인가.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으나, 에드의 얼굴엔 일말의 불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 * *
―쨍그랑.
―콰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텔로스의 사도들이 성녀를 제압하기 위해 날아드는 순간이었다.
연단의 뒤에 있는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한편이 깨지고, 그 절반에 가까운 면적이 조각나서 무너져 내린다. 산산조각 난 유리가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귀를 찌르는 소리를 낸다.
순식간에 예배당 한가운데로 침입한 인간 형태의 그림자는, 공중을 날고 있던 사도 둘을 낚아채서 그대로 연단 중앙에 매다 꽂아 버렸다. 눈으로 쫓을 수조차 없는 속도였다.
착지로 인한 충격은 어찌나 드센지, 그 파동만으로 주변 사람들은 전부 나가떨어졌다. 신도들을 위해 도열해 있던 목재 장의자들도 전부 나가떨어져 바닥을 구르고, 그 자리는 종잇장처럼 날아다니는 인간들이 차지했다.
이내 그 여파가 가라앉고, 먼지도 흩어지자… 그 그림자의 정체가 나타난다.
텔로스의 사도 제5좌 펠버는 바닥에 밟혀 있었고, 제7좌 하브레스는 멱살이 잡힌 채 들려 있었다.
한 손으로는 마녀 모자가 휘말려 날아갈까 봐 꽉 누르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몸집에 몇 배만 한 사도 하나를 잡아채서 집어 들고 있다.
새하얗게 두 갈래로 말려 내려온 머리칼이 충격의 여파로 살랑이고 있었고, 싸늘한 시선에는 그 어떠한 격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루시 메이릴.
그녀는 이내 한 손에 들고 있던 사내를 벽 쪽으로 집어 던져 버렸다.
―콰앙!
―카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의 관에 부딪혀서 그대로 건반 쪽으로 추락했다.
성당 외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에서 불길한 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벽을 부딪치며 울려 퍼진 소리는 재앙의 도래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홀 바닥을 구르며 연단을 올려다본 성직자들은 숨을 삼키고 만다.
부서진 스테인드글라스는 절반만 남아 있다. 자애로운 천사 날개의 각인도 절반만 남은 채 루시의 뒤로 펼쳐져 있다. 여기저기 금이 간 상태였다.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네…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나는, 신 같은 거 안 믿지만.”
반파된 스테인드글라스 아래로 내려오는 빛이 루시의 왜소한 몸을 은은하게 밝힌다.
사도 하나를 짓밟은 채 가만히 성직자들을 내려다보는 모습엔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된다고 하는 말은 맞다고 생각해. 너희 기도쟁이들이 항상 틀린 말만 하는 건 아니긴 하지.”
“뭐… 라고…? 죄라니… 대체… 무슨….”
바닥을 구르다가 겨우 일어선 베르디오가, 연단에 똑바로 선 루시를 향해 이를 악문다.
루시는 여전히 이렇다 할 어조의 변화조차 없이, 조용히 이야기한다.
“너희들이 성전과 법구에 다 새겨 놨잖아.”
교단의 성전을 펼치면 첫 장에 나오는 인간의 칠대죄(七大罪). 루시는 신 같은 것을 믿지 않기에 그런 걸 일일이 외우진 않지만… 일부는 알고 있었다.
시선을 내리깐다.
벨브로크의 어금니, 희생의 법진, 방금 전까지 확신에 차 있던 사도들.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루시는 별다른 의미는 부여하지 않았다.
무신론자, 루시 메이릴.
그녀는 그저 멍한 목소리로 짧게 선고할 뿐이다.
“오만.”
눈앞에 도래한 것이 누구인가. 여덟 명의 사도들이 전부 모여도 겨우 막아 내는 게 최선인, 희대의 대마법사다. 심지어 사도는 애초에 여섯밖에 오지 않았고, 둘은 오자마자 당하고 말았다.
피어오르는 마력이, 예배당을 가득 채워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