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29)
환시 발현 Lv 0 현혹 Lv 0 ==== 합동 전투 실습 2 (15)
글록트관의 외진 복도.
구석에 있어서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지만, 한쪽 벽에 몸을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보는 소녀가 하나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쿠… 흑… 쿨럭….”
목이 턱턱 걸리는 듯한 느낌이 기침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델은 피로 눌어붙은 머리칼을 쓸고, 자기 오른 손목을 내려다본다.
성법의 가호를 새긴 오른 손목. 어느샌가 그 각인이 사라지고 없었다.
돌고 도는 시간 속에서 끝까지 아델을 지키려고 힘내 보았지만, 제아무리 성법의 가호라 할지라도 이 정도 규모의 성법술을 이렇게까지 반복하면 버티지 못한다.
이제야 아델은, ‘죽을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수십 번의 회귀 끝에 겨우 도달한 목표다. 묘하게 개운한 기분이 들지만, 그렇다고 기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델은 벽에 몸을 기대고, 천천히 웃음 지었다.
피가 계속해서 흘러 나온다. 정신도 갈수록 몽롱해지는 기분이었다.
* * *
“에드… 왜 그래 에드…!”
두통과 오한이 몸을 급습한다. 헛구역질이 올라오려 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머릿속을 파고들어 오는 기억들은…. 아델의 성위 마법에 의해 돌아간 과거의 기록들이다.
성위 마법은 세상의 시간을 공평하게 되돌리지만, 그 기억이 증발하는 것까지 저항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성녀 클라리스부터가 되돌아간 시간의 기억들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가.
클라리스가 아델의 성위 마법에 저항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성법술에 그 기반을 둔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아델의 신력에 의해 발현된 성위 마법이기에, 모든 종류의 성법술을 무력화시키는 성법의 가호가 있다면 그 힘이 온전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성위 마법 자체가 어느 정도의 저항력을 갖춘 자에게 온전히 작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굳이 성법의 가호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글록트의 저서인 에서 읽은 내용이었다.
지식은 곧 힘이다.
성위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라면, 필시 성위 마법에 저항할 수도 있다.
물론 힘이나 규모에 차이가 있다면 온전히 방어해 낼 수는 없다. 그래도 약화시키거나, 빈틈을 만들어 내거나, 발버둥을 쳐 볼 수는 있는 것이다.
어차피 현 시대에 성위마법을 제대로 다루는 자는 거의 없기 때문에, 큰 의미 없는 사실이긴 하지만.
“크, 윽….”
머리를 파고들어 오는 기억은, 거의 대부분이 고통스럽다.
건물에 깔려 죽거나, 불에 타 죽거나, 창에 찔려 죽거나, 비늘에 꿰뚫려 죽거나, 과다출혈로 천천히 사망하는 둥….
수십 번을 경험했던 죽음의 기억들이 생생한 현실처럼 느껴졌다. 이를 뿌드득 갈며 테이블에 올려 둔 주먹을 꽉 쥐었다.
예니카가 화들짝 놀라서 내 등을 쓸어 보지만, 당분간은 이를 꽉 악문 채 고통을 버텨 내야만 했다.
그러고 있을 때, 성녀 클라리스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소름 끼치도록 새하얀 백발과, 그에 대비되는 붉은 눈동자. 한쪽 머리에 삐딱하게 걸린 붉은 나비 모양 머리핀. 몇 번이고 그 최후를 함께했던 소녀의 기억들이 각인되면서, 한층 더 몸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
“에, 에드 선배님….”
―탁.
클라리스의 손목을 낚아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변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리지만, 나는 클라리스를 보고 확실하게 이야기했다.
“이번이 아마도,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 말에 클라리스의 눈매가 천천히 확장되어 간다.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에드 선배님… 기… 억이…?”
“시간.”
나는 멎어 들어가는 숨을 어떻게든 갈무리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했다.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최대한 빨리, 신속하게… 어금니 목걸이를 탈취해야 됩니다.”
나는 분명 글록트의 저서를 통해 성위 마법에 입문을 한 상태다.
그러나 아직 성위 마력에 대한 감응력을 드높이지는 못했다. 어째서 이제야 아델의 성위 마법에 저항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에드…!”
내가 비틀거리자, 예니카가 얼른 몸을 받쳐 주었다.
클라리스도 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 이미 주변 학생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예니카와 클라리스를 끼고 발을 구르는 모습이다.
클라리스 또한 내 기억이 온전하다는 사실에 크게 당황한 듯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숱한 위기 속에서 철저하게 학습한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일의 우선 순위를 확실히 정해야 한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성황과 대주교를 막는 것이다.
“에드 선배님… 그럼 어서 마차로…!”
“성녀님은 마차를 타고 당장 성당으로 향하십시오. 저는 따로 가겠습니다.”
“네?”
“시간 없습니다. 빨리 출발하셔야 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성녀님.”
왜 따로 가냐고 묻고 싶은 것 같았지만, 그걸 여유롭게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단지 클라리스가 해야만 하는 일을 짧고 굵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내 클라리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마차 쪽으로 뛰어들어 갔다.
순식간에 마부와 호위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마차는 학사 성당을 향해 달렸다.
“에드… 방금 건 대체….”
당연히 화살처럼 쏟아지는 학생들의 시선은 여전하다. 갑자기 성녀가 나타나더니,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는, 내 지시대로 재빨리 움직이는 모습.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긴 하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건 예니카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그대로 몸을 가눈 뒤, 예니카의 양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 읏… 갑자기 왜…!”
“지금 당장, 성당으로 가야 해.”
그간 끝 없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시작은 늘 비슷했다.
성녀 클라리스가 반복되는 시간과 내 군번에 대한 얘기를 전해 주고, 그대로 시간이 아깝다며 마차에 끌어다 앉힌다.
그리고 마차 안에서 이동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상황을 납득하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마차의 속도로는 늦다. 지형지물을 무시하고 날아갈 수 있는 예니카의 정령들 도움이 절실한 것이다.
“갑자기…? 에드… 합동 전투 실습해야 하잖아…!”
“지금 당장 자세히 설명은 못 하겠지만, 정말 너무 중요한 일이야.”
“에드가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뭘 설명을 하려거든 일단 움직이면서 해야만 했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북쪽 숲까지 달려가서 루시를 불러내는 것이다. 당장 이전 회차에 그렇게 했다.
루시 메이릴은 이 학원 내에서 제대로 상대할 자가 없는 막대한 강자다. 어떤 막다른 길도 다 뚫어 내는 불도저, 혹은 치트와 같은 존재다.
루시가 있다면, 텔로스의 사도든 대주교 베르디오든 다 순식간에 제압해 낼 수 있다.
그러나, 목표는 그들을 제압하는 게 아니다. 섬멸전이 아니라 타임 어택이다.
한시라도 빨리 벨브로크의 어금니 목걸이를 탈취해서, 아켄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 놔야 한다.
얼마나 떨어트려 놔야 봉인과 반응하지 않을지… 그것조차 알 수 없다. 몇 킬로미터 단위로는 안 될 수도 있고, 아예 다른 영지까지 들고 나가야 될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장담할 수가 없다. 시간을 돌려 가며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수 있다면 정확히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아델의 목숨이 담보 잡힌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없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해야 한다.
그렇기에 북쪽 숲까지 루시를 부르러 달려갈 시간은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성당으로 달려가서 벨브로크의 어금니를 1초라도 빨리 탈취하는 것이 낫다.
그 뒤로 어금니를 든 채 아켄섬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난다. 텔로스의 사도는 그다음에 생각한다. 일단 성창룡의 부활부터 막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그리고… 모든 회귀의 시작에는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 예니카가 있었다.
회귀의 주체가 되는 성녀 클라리스는 그녀와 전혀 친분이 없기에, 나를 설득하고 데려가는 데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끌려가기만 하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일단 바쁘다고 하니까 알겠는데… 에드, 지금 몸 상태 안 좋아 보여. 무리하는 거 아니야…?”
예니카가 그리 말하며 정령의 힘을 모았다. 중위 정령을 소환해 낼 정도로 꽤나 많은 양의 마력이었지만, 딱히 힘들어 보이진 않는다.
정령술에 한해서는 경이로운 수준의 감응력을 보이는 소녀다.
이윽고, 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매 한 마리가 커다란 날개를 펼친다. 습기가 가득한 바람이 벤치 근처를 휘감았다.
예니카는 재빨리 매 위에 올라탔다. 거대한 매는 아니지만, 두 사람이 겨우 탈 정도의 크기는 됐다.
예니카가 매 위에서 손을 내밀자, 나는 그 손을 잡고 함께 올라탔다. 이내 날개를 퍼덕이며 조금씩 부유하기 시작하자, 나는 균형을 잡기가 힘들어서 예니카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히끅!”
예니카가 어깨를 떨며 딸꾹질을 해 댔다. 너무 갑작스럽게 몸을 겹친 탓일까 싶었다. 허나 지금은 내 정신 상태를 챙기기도 힘들었다.
창공을 가르며 날아오르자, 저 아래로 분주히 달려가는 성녀의 마차가 보였다.
나와 예니카는 매의 등을 타고 건물과 도로를 무시하며, 저 멀리 보이는 학사 성당까지 직행으로 날아갔다.
“잘 들어, 예니카.”
“으, 응?! 응! 잘 듣고 있어! 에드!”
내가 손을 휘감아 안고 있는 상태가 썩 낯부끄러운지, 예니카는 허둥지둥한 모습이었다. 나도 썩 그렇게 평온한 마음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부터 성황과 대주교의 뒤를 치러 간다.”
그 말에 괜스레 붉어져 있던 예니카의 귀가 원래의 뽀얀 살색으로 돌아왔다.
“뭐라고?”
“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너도 둘에게 적대당할 거야. 도착하고 내가 내리면, 누가 보기 전에 얼른 다시 비행해.”
예니카는 그제야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함을 깨닫고, 몸을 돌아앉았다. 내가 등을 감아 안고 있는 상태에서 몸을 돌리니 마치 껴안은 것 같은 자세가 된다.
문득 눈을 마주치고 예니카는 몸을 흠칫 떨었으나, 지금은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말은… 에드를 버려두고 다시 글록트관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야?”
“1년도 더 지난 일이긴 하지만, 너는 징계위원회에서 중징계를 받았던 기록까지 있잖아. 너 이 이상 사고 치면….”
“에드.”
예니카답지 않게 말을 끊었다. 그대로 지그시 날 바라보는 모습이 무슨 의미일지는 뻔하다.
“상황을 보고 판단해, 예니카. 그러다 잘못하면 퇴학 당한다.”
“성황님이랑 대주교님을 상대로 뭘 할 건지는 모르겠는데, 중징계 기록이 있는 건 에드도 마찬가지잖아. 잘못하면 퇴학당하는 건 에드도 똑같아.”
“나는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예니카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이야기한다.
“설령 도망자 신세가 되더라도, 에드 혼자는 못 보내.”
언제나 쭈뼛거리며 주변 눈치를 보는 모습은 간 데 없고, 그 눈동자에 굳건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퇴학당할 거면 같이 당해. 둘이서 같이 당하면 덜 억울할지두 모르잖아.”
“너무 대책 없이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 여기서 일이 잘못 풀리면 난 꼼짝없이 교단의 추격을 받는 도망자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대책은 그 때가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만약 도망자 신세가 된다면… 같이 도망쳐 줄게. 퓰란에 있는 내 고향 마을은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거기 숨으면 쉽게 찾아내기도 힘들 거야.”
계속해서 똑바로 눈을 맞추고 있는 모습. 아마도 예니카는 진심이다.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같이 떨어져 줄 준비가 되어있다.
너무나도 시원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에는 위화감이 없다.
“아니면 인적 드문 사막 지대나 무법 지대 쪽을 거니는 게 더 안전할지도 모르겠네. 로브를 깊게 눌러쓰고, 둘이서 근근히 의뢰나 수행하면서 입에 풀칠해도 될 일이야.”
“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혼자 갈 생각 하지 말라는 거야. 에드.”
예니카는 마치 내 생각을 읽고 있는 듯하다.
“또 혼자서 고통 받았지?”
“뭐?”
“난 이제 에드 얼굴만 봐두 알아.”
기억에 각인된 것은 수십 번이 넘어가는 죽음이다. 하나같이 고통스러워서, 그 기억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슬아슬한 상태까지 몰렸다.
예니카가 눈을 치켜뜨고는 슬픈 듯이 이야기한다.
“난 에드가 고생하는 거 보기 싫어.”
“…….”
지형지물을 무시하고 창공을 날아 이동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금방 학사 성당의 상공에 가까워졌다.
“각오는 되어 있고?”
“두말하면 잔소리야.”
“…그럼… 스테인드글래스 쪽을 깨부수고 들어가자.”
난데없이 학사 성당의 거대한 유리를 깨부수고, 내부를 습격하자는 요청.
일의 전말을 알 수가 없는 예니카 입장에서는 정신 나간 짓으로밖에 안 보일 일이지만…
“알았어.”
―쨍그랑! 카가가가가가가각!
매의 몸통은 학사 성당의 스테인드글래스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 * *
그 뒤로는 순식간이었다.
기습은 막 돌입했을 때가 핵심이다.
그 거대한 유리창이 깨지고, 조각난 유리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순간.
매에서 뛰어내린 나는 바닥을 몇 번 구르고는 연단 위로 시선을 향했다.
예배석에 앉아 있는 신도들과, 연단 위에 있는 대주교 베르디오. 그리고 연단 뒤쪽에 앉아 계획을 점검하는 성황 엘데인.
모두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져있지만, 그 당황의 틈이 유일한 기회다.
나는 연단위로 뛰쳐올라가서는, 다짜고짜 베르디오의 복부를 발로 차서 밀어 버렸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방어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베르디오는 컥 소리를 내고 연단 위를 굴렀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텔로스의 사도들이 무기를 뽑아 들며 일어섰다. 나는 연단 위에 보란 듯이 자리하고 있는 벨브로크의 어금니 목걸이를 확인했다.
재빨리 목걸이의 줄을 낚아채서 집어 들고는… 예니카가 소환한 매의 목에 걸어 주었다. 전설급 유물인 벨브로크의 어금니 목걸이는 그 줄의 길이도 목 사이즈에 따라 여유롭게 늘어난다.
다소 빡빡하긴 했지만 깔끔하게 매의 목에 걸렸다.
“네놈들… 대체….”
나는 재빠르게 매의 등에 다시 올라탔다. 원래는 마공학 용품들을 활용할 예정이었지만, 예니카가 여기까지 도와준다면 완전히 이야기가 다르다.
이대로 매를 타고, 아켄섬의 바깥까지 날아간다. 성창룡 벨브로크의 부활을 막아 내는 게 가장 우선 순위다.
일의 뒷감당은 나중에 생각한다. 지금은 여러 도박수들을 던져 보며 최적 효율의 루트르 찾아낼 때가 아니다. 더 이상은 아델의 목숨을 담보 잡을 수가 없다.
나는 바닥에 단검을 던져서 꽂았다. 정령식 ― 폭성이 발현되고 연단은 연기에 뒤덮힌다.
텔로스의 사도들이 재빨리 마력을 발현해서 연기를 걷어냈지만, 이미 예니카의 매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창공을 가른다. 그 뒤에서 예니카의 몸을 꽉 껴안고 나란히 비행했다.
텔로스의 사도들이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았다. 그들은 모두 그 거대한 날개를 통한 비행능력을 갖추고 있다. 꽤나 빠르게 날아왔다고 생각했으나, 추격하는 사도들과의 거리는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다.
“예니카!”
바람에 옷깃이 펄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비명을 지르듯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했다.
“이대로 가면 따라잡힌다…! 일단 고도를 낮춰!”
고도랑 추격이 무슨 상관인가. 예니카는 그렇게 되묻고 싶었겠지만, 아래를 보는 것이 더 빨랐다.
사람을 나를 수 있을 정도로 출중한 비행 능력. 그걸 갖춘 정령은 굉장히 유용하지만, 현현하고 유지하는 데에 일반 정령보다 막대하게 많은 마력을 소모한다. 일반적인 정령사는 몇 분 정도 비행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해지곤 한다.
물론 예니카는 정령술에 한해서는 말도 안되는 마력 효율을 가진 자다. 수 킬로미터 정도는 무난하게 날아갈 수 있을 터.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미간을 찌푸리면서,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날아갔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글록트관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에―!”
청천벽력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예니카는 이를 악문 채 정령술에 집중했다.
날개를 퍼덕이며 창공을 가르는 6명의 사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우리들을 향해 온갖 원소 마법을 쏴 대기 시작했다.
동선을 꼬아 가며 마법들을 회피하고 있었지만, 계속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윽고 기초 바람 마법인 ‘바람 칼날’이 매의 등에 명중하자, 우리가 타고 있는 매는 순식간에 원소로 화해 사라져 버렸다.
창공을 부유하는 개운한 감각이 잠시 몸을 지배했지만, 이내 중력이 다시금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파바바박!
퍼덕이는 옷깃 소리.
나는 공중에 부유하면서도, 일단은 허공에 떠있는 벨브로크의 어금니 목걸이부터 재빠르게 낚아챘다.
그대로 지상을 향해 낙하하려는 순간, 내 옷깃을 잡고 있던 예니카는 품속에 쑥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함께 낙하하면서,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이다.
“뒷감당은 에드가 해 줄 거지…?”
“뭐..?”
“난 에드를 믿으니까, 할게.”
내 품속에서 빼간 것은… ‘글래스트의 황금 불사조 반지’다.
예니카가 주먹에 반지를 꽉 쥔 채로 하늘을 향해 뻗자… 하늘이 사라졌다.
―쿠구구구구구궁.
날개라는 하나의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하지만, 그 종류는 제각기 다르다.
작게는 곤충들이나 참새, 박쥐에서부터… 크게는 독수리, 익룡, 해골새에 이르기까지…. 각자 형태가 다른 날개가 세상을 덮는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것은… 고래다.
맑은 날이다.
그러나, 태양 빛은 학사에 닿지 못한다.
거대한 그늘만이 학사에 어둠을 드러낼 뿐이다.
원소 종류들은 개체와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래도 각 원소별로 딱 하나씩만 존재할 수 있는 개체가 있다.
정령사들은 ‘최고위 정령’이라고 부르는 개체다.
부르는 자에 따라선 최초의 정령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 개체들은… 그 원소에 해당하는 정령들 중에서도 가장 최초로 생명을 얻은 개체들이다.
최고위 물 정령 프리데.
학사의 상공에 부유하는 거대한 고래가 울음소리를 냈다. 마치 웅장한 뿔피리가 울리는 것 같다.
주변을 날아다니는 수많은 비행 정령 사이에서 고고히 움직이는 모습. 수많은 호위선을 거느린 모선이 연상된다.
추격하던 텔로스의 사도들마저도…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당황하고 만다.
―탓!
익룡 형태를 한 바람 정령 하나가 나와 예니카를 낚아챘다. 그 푹신한 등에 다시 올라타자, 몸을 짓누르던 추락감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야…! 너 대체 얼마나 마력을 당긴 거야….!”
“모르겠네… 당분간은 정말 몸져눕겠는걸…”
비틀거리며 힘겹게 몸을 가누는 예니카는 지팡이로 익룡의 등을 짚고 천천히 몸을 세웠다.
별다른 설명도 듣지 못했는데, 그저 나 하나만을 믿고 이렇게까지 무리한 것이다.
그것은 꽤나 진득한 부채의식으로 남아… 가슴 한편에 자리한다.
여섯 명의 사도가 잠시 추격을 멈추었다. 이건 상정하지 못한 상황인 듯했다.
이미 학사 쪽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최고위 물 정령 프리데는 신화 속 위인을 둘이나 죽인, 재앙으로 취급받는 존재다.
강제 현현된 프리데를 죽인 것이 대마법사 글록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로, 그 존재 자체가 인류 역사의 공포다.
지금은 예니카의 제어 아래에 있지만, 학사의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알 수가 없다.
사도들이 표정을 싹 바꾸고 집단 성법술을 구현하기 위해 진형을 갖췄다. 그들도 순식간에 깨달은 것이다.
단순한 추격전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진지해져야만 하는 상대다.
* * *
― ‘성녀님. 성녀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 ‘성녀님은 지난 역사를 모두 기억하고 계시며, 일의 전말을 전부 파악한 몇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든 성창룡의 부활을 저지하는 동안, 성녀님께서… 엘데인 성황님을 설득해 주십시오.’
마차에서 내리자, 난리가 난 학사 성당이 보인다.
클라리스는 그대로 기사의 호위를 무르고, 열려있는 성당의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사도를 보내고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습격해서, 벨브로크의 어금니 목걸이를 들고 도망간 학생 하나. 마치 교단의 모든 계획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인상 깊다.
그런 이변이 있은 뒤로는 하늘을 온갖 원소 정령들이 뒤덮기까지 하고 있으니… 상황이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연단에는 대주교 베르디오가 서서 성당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고, 성황 엘데인은 그 뒤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에 비친 학사 상공이 멀고도 높다.
교단의 움직임은 거의 대부분 베르디오 대주교가 주도한다.
성황 엘데인은… 그런 그에게 대부분의 판단을 일임한 방관자다.
방관 또한 가담이나 다름 없다. 거기에 어떤 도덕적 우열도 둘 수 없다.
그러나, 클라리스는 알고 있다.
성황 엘데인은 무기력한 자가 아니다. 단지, 세월의 풍파에 지친 것뿐이다.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다, 조금씩 현실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져 가는 남자다.
“서, 성녀님…?”
“여, 여기는 어떻게… 아니, 지금 상황이 조금 복잡한지라….”
스태인드글래스는 깨지고, 의자들은 바닥을 구르고 있다. 예배당 꼴이 이미 말이 아니었다.
클라리스는 길을 막아서려는 기사들을 무르고, 연단 위까지 걸어 올라왔다.
“클라리스 성녀님.”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성녀 앞에서의 예우는 철저히 해야만 했다.
베르디오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리고는, 일단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말하려 했다.
“저희는….”
“앉으세요, 베르디오 대주교.”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연단 위에 있는 자그마한 테이블. 예배를 위한 촛대와 성수 그릇을 올려놓기 위한 것들이었지만… 클라리스는 전부 밀어서 치워 버리고, 그 위에 다소곳이 앉았다.
대주교 베르디오는 이 시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클라리스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고 있지 않다.
그녀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들인 노력뿐이다.
한 남자가 수십 번을 죽었다. 그렇게 반복해 대면서도, 끝끝내 자기를 위해 헌신하고, 모든 일의 종착점까지 도달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빚의 무게는 차마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부채의식까지 가질 필요야 없겠지만, 받은 것이 너무 많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텔로스 교단의 꼭대기나 다름 없는 자리.
성황, 대주교, 성녀.
그 중심에 앉아, 성녀 클라리스는 엘데인에게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엘데인 성황님.”
연단 뒤편의 목재 의자에 앉아 상황을 관조하고 있던 엘데인은, 반응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리스는 무너진 천장을 올려다보며 이야기했다.
“성황님도 아시겠지요. 끊임없이 고뇌하고 계실 테고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방관자로 계실 수는 없습니다.”
“…….”
“베르디오 대주교는 교단을 좀먹어 가는 암덩어리입니다.”
성당 사이로 웅성거림이 퍼져 나간다. 베르디오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기도 전에, 클라리스가 먼저 대답한다.
“그를 파문시키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