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3)
길고양이 (2)
사람을 동물에 빗대는 건 좀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예니카 페일로버를 보고 있으면 사람 손을 많이 탄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사람 다 반갑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이해 주는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끌어안고 싶다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나.
동급생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지, 길을 가거나 강의실 같은 곳에서 예니카를 마주치면 항상 여자 동급생의 품에 안겨 있거나, 팔짱을 끼고 있곤 했다.
그리고 내가 반경 3m 안으로 접근 하면 혹시 우리 예쁜 예니카한테 안 좋은 영향이라도 미칠까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꼴은 덤이다.
예니카가 그런 둥글둥글한 강아지의 상이라면, 루시 메이릴은 길고양이에 빗댈 수 있겠다.
쌕쌕 거리는 숨소리나, 자기 몸을 끌어안고 잠들어 있는 모습이 일견 고양이 같다지만, 외견만을 보고 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야생의 길고양이는 절대로 길들여지는 법이 없다.
구태여 행인을 상대로 교태를 부리거나 살갑게 대하는 일도 거의 없다. 적어도 내가 살면서 봤던 길고양이들은 죄다 그랬다.
문명의 길바닥에 적응을 마친 길고양이들은, 그들에게만 통용되는 삶의 법칙이 있다.
비루한 뒷골목을 유영하는 삶일지언정 언제나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고, 털가죽에 때가 잔뜩 묻어있을지라도 공주처럼 고고히 보행하는 생물이다.
그렇다고 그런 행동거지들이 허영심이나 선민의식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애초에 그런 생물인 것이다.
루시 메이릴 또한, 애초에 그런 인간이었다.
“으하꺄아악-.”
몸을 쭉 벌리며 기지개를 펴더니, 상반신을 일으켰다.
내가 캠프에 돌아와 루시 메이릴을 발견한지 대략 30분 쯤 흘렀을 때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대체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턱을 괴고 앉은 채 고민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뉘엿뉘엿 지고 있던 해는 거의 퇴장을 마무리했고, 봄날의 드높은 하늘은 이미 동편에서부터 어둠이 침범하고 있었다.
“….”
루시 메이릴은 그렇게 잠이 덜깬 눈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자기주장 강한 머리카락 몇 가닥이 뺨에 눌어붙어 있었다.
그리고 남의 집에서 깨어나자마자 한다는 말이 고작
“…. 배고프네..”
머리를 탁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소녀였다.
루시는 그제서야 나와 눈이 마주쳤다. 타닥대는 모닥불 옆의 바위 의자, 턱을 괸 채 한참을 앉아있는 상태였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냥 쳐다만 보고 있는 모습. 평범한 소녀라면 여기서 헛숨이라도 들이 삼키며 당황하는 반응을 보이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상대는 루시 메이릴이었다.
“100점 만점에… 90점 정도…?”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나뭇잎으로 마감하니까 은근하게 햇빛이 들어와서 좋더라. 외풍도 들어오는 게 선선해서 너무 기분 좋았어. 눕자마자 바로 잠들어버렸지 뭐야.”
아무래도 내 캠프는 루시 메이릴 선정, 실베니아 아카데미에서 가장 낮잠 자기 좋은 장소 베스트 쓰리 안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근데 바닥이 옷가지들로 대충대충 마감되어 있으니까 엎드려서 잘 수밖에 없네… 좀 푹신했다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볕 잘들고… 냇물 졸졸 흐르는 소리도 너무 좋았어.”
그리고 멍한 얼굴에서 표정하나 안 바꾸고 능청스럽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완전 좋았어.”
표정 변화는 하나도 없지만 묘하게 반짝반짝 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 이게 이 소녀의 흡족해하는 얼굴인가 보다 하고 납득해버린다.
…뭘 납득을 하고 있냐 나는?
루시 메이릴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서 다시 한 번 기지개를 거하게 했다.
여러 번 보강작업을 거친 내 목재 쉼터는 생각보다 넓다. 그러나 그거야 가로 넓이고, 천장 높이래봐야 내 어깨 언저리에서 끝난다. 요컨대 저 안에서 나는 일어설 수도 없었다.
그런 협소한 공간에서 기지개까지 펴고 있는 루시 메이릴을 보고 있노라면 체격의 차이를 실감하고 만다. 정말로 왜소한 소녀인 것이다. 애초에 교복도 제일 작은 사이즈일터인데도 소매가 헐렁해 보인다.
이윽고 루시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루시는 쉼터 밖으로 튀어나왔다.
‘튀어나왔다’는 건 정말로 정확한 표현이었다.
루시 메이릴의 움직임은 마치 무협 영화에서나 보는 무림 보법을 보는 듯 하다. 발 끝에 마력을 모아 박차고, 그 왜소한 몸집을 원소계 바람 마법과 중력 마법, 상급 충격 흡수 마법 등을 이용해 원하는 자리에 착지한다.
온갖 고급 마법을 덕지덕지 발라 마치 신선처럼 노니는 몸놀림. 마법부 교수들도 집중해서 하나 하나 사용하는 마법을 대여섯 개씩 멀티 캐스팅한다. 그것도 의식적이 아닌 본능적으로.
“이거, 말린 고기야? 먹어도 돼?”
그런 루시가 착륙한 곳은 내가 조잡하게 만든 건조대 위였다. 그곳엔 내가 잘 양념해서 널어두었던 육포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
놀랍게도 이 시점에 와서까지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애당초 이 소녀와는 최대한 접점을 가지고 싶지가 않았다.
‘나태한 루시’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전교생은 물론이고 글래스트 교수부터 교장 오벨까지 혀를 내두르며 인정하게 될 희대의 천재.
‘실베니아의 낙제 검성’에서도 상당히 비중 있는 감초 캐릭터이자, 시나리오가 끝날 때까지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는 상대였다.
특정 루트에 진입하면 나태한 루시와 전투를 해볼 수 있는데, 상대의 스탯을 엿볼 수 있는 ‘스피어 마인드’ 스킬의 숙련도를 최대까지 올려도 그 능력치가 보이질 않았다. 거기서 나는 개발자의 의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애초에, 이기라고 만들어 놓은 캐릭터가 아니다.
“먹어도 돼.”
그렇게 이야기 하자 루시는 널려있는 육포 하나를 집어 들어 앙 하고 물었다. 그리고 입술을 앙다문 채 우물거리며 맛을 보다가
“우엑-! 너무 짜!”
표정을 찡그리며 조막만한 혀를 내밀어 보였다.
“…. 근데, 뭔가 또 오묘한 맛이 있을지도?”
그리고서는 다시 육포를 입에 무는 것이다.
그렇게 우물거리면서 육포를 씹다가, 이윽고 그 특유의 짭짤한 맛이 퍽 맘에 들었는지 한 입에 집어넣고서는 다음 육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나 더 먹어도 돼?”
“….그래.”
그리고 아예 건조대 위에 걸터앉더니, 발을 휙휙 휘저으면서 육포의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짠맛이 너무 싫어서 찡그렸지만, 이내 완전히 맘에 들었는지 흡족한 얼굴로 우물대고 있었다.
….뭐지 이 기분은? 뭔가가 가슴을 채우는 기분이다.
작은 포유류 동물에게 먹이를 건네줄 때 드는 그 특유의 충족감….
다들 이렇게…. 캣맘이 되는 것인가?
좀 중독 될 거 같은데…?
“…”
나는 고개를 휙휙 휘저었다. 정신 차려라… 쟤는 루시 메이릴이다.
이 ‘실베니아의 낙제검성’ 시나리오에서 막대한 비중이 부여된 핵심 인물이라고. 이 이상 관여되어서 좋을 일이 절대로 없다.
그래, 일단은 쫓아내야 한다. 최대한 마찰 없이 돌려보내는데 정신을 집중해야 한단 말이다.
“처음에는 너무 짰는데 오히려 너무 짜서 좋아. 자극적이야.”
“…”
“이 짭쪼름한 느낌… 너무 좋아…”
그쯤 되니 이해가 됐다.
루시 메이릴은 1학년생 중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는 희대의 천재이니 만큼, 최고의 학생들에게 허락되는 오필리스관에서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실베니아에 있는 3대 학생 기숙사 중에서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오필리스관. 압도적인 신분이나 압도적인 성적이 없으면 자리를 내주지 않는 곳.
그 오필리스관의 학생식당은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요리사들이 최고의 음식들을 매일 같이 내준다. 그러니 미각에서만큼은 고위 귀족 저리가라 할 정도로 눈이 높아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급 음식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란 게 있다.
이른바 맵 짠 단 이다.
재료의 신선도, 맛의 하모니, 영양의 균형 등을 극한까지 신경 쓴 고급식단의 밖에 있는 영역. 건강 따위는 개나 주라는 듯이 향신료로 범벅을 하는 그 자극의 참맛.
그 불량스러운 자극은 평생을 건강 고급 식단에서만 살아온 자에게는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다.
“다 가져가도 돼 이거?”
“아니.”
그래도 그건 좀 선 넘었지. 그거 내 도시락이야 이자식아.
“우윽..”
기가 죽은 모습이 퍽 불쌍하긴 하다만, 너에게는 간식거리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생존에 직결된 문제다.
너는 그냥 오필리스관에서 고급진 음식이나 잔뜩 먹으면 될 일이다.
“그러고보니 말이야…”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세파에 한없이 초연한 루시 메이릴은 이 아카데미 내에 무서워하는 자가 없다. 자애의 황녀 페니아도, 황금의 딸 로르텔도, 소문난 악질 교수 글래스트도 천성이 풀려있는 루시 앞에서는 다 평등한 인간이다.
그러나 이 종잡을 수 없는 루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 오필리스관 메이드들이 너를 찾던데.”
그 말을 듣자마자 루시의 안색이 새파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허공에 휙휙 휘젓던 발길질도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쉼터로 날아들어 챙이 넓은 마녀모자를 챙겨들었다.
“있잖아, 나 가야 될 거 같아.”
“그래… 고생해라.”
“다음에 또 올게.”
오지마 그냥 제발.
“근데, 가기 전에 할 말 있어. 쟤가 말 좀 전해달래.”
루시한테 휘둘려서 시간을 너무 낭비했다. 얼른 내일 입을 운동복부터 세탁하기 위해 세탁 도구들을 정리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루시가 숲 쪽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뭐?”
루시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지만, 그곳엔 녹음 가득한 숲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
“저 집채만 한 늑대 말야. 계속 지켜보고 있었잖아.”
일순, 소름이 등허리를 타고 내달렸다.
아직 정령 감응을 제대로 수련할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는, 아직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역이 있다.
“언젠가, 꼭 예니카를 구해달래.”
그렇게 별 거 아니라는 듯이 그 전언을 내려놓은 후, 루시는 오필리스관 방향을 향해 사라졌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루시가 가리켰던 숲쪽 방향을 다시 쳐다보았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풀벌레 우는 소리만 가득했다.
그것 말고, 더 보이는 건 없었다.
*
———————————————– [ 공고 ]
1, 2학년 합동 전투 수업이 예정되어있습니다.
네일관 공통 전투 훈련 시설에서 기초 협력 전투 개론/심화 수업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배부된 명단을 통해 같은 조를 확인해 주십시오.
※ 연금부 학생들의 수업 참여율이 지나치게 저조합니다! 연금 실험도 좋지만, 꼭 공통 수업에도 참여해주세요!
– 전투 실습 담당 조교수, 클레어 엘핀.
———————————————— 이튿날.
학생회관에서 이루어진 2학년생들의 회동에서 공고문이 배부되었다. 벌써 1, 2학년 합동 전투 수업 이벤트가 진행될 때가 되었나.
진도가 꽤 빠르구나. 합동 전투 수업 이벤트는 분명… 예니카 페일로버가 처음 게임에 등장하는 이벤트였지.
그렇다는 건 벌써 ‘황금의 딸 로르텔’과 ‘자애의 황녀 페니아’가 생각 차이로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겠군.
마물 전투 파트와 별개로 학생 정치극 파트가 제대로 시작되는 2학년 편. 그 밑밥이 지금부터 벌써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투 파트도 정치 파트도 모두 이 세계에서는 중요한 변수니까 잘 주시하고 있어야겠지.
뭐, 무대에서 한 걸음 떨어져있는 내 입장에서야 간간히 들리는 소문이나 이런 시간의 흐름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게 확실한 법이다.
주인공 테일리가 어느 쪽 세력의 편을 들지, 어떤 분기점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를 잘 주시하고, 결과적으로 어떤 쪽으로 세상이 흘러갈지 잘 가늠해야겠지.
어쨌든, 저번 입학식 때는 학장 면담에 불려가느라 테일리의 모습을 제대로 찾아보지도 못했다.
이번 합동 전투 수업이라면, 분명 시나리오 메인이 되는 1학년생들의 얼굴을 전체적으로 한 번씩 확인할 수 있겠지.
어쨌든 이야기가 별 변수 없이 ‘정사’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지 확인할 기회인 셈이다.
밤새서 화살을 다듬느라 찌뿌둥해진 어깨를 가다듬으며, 나는 학생회관을 걸어나왔다.
지옥 같은 생활의 연속이지만, 역시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다. 어떻게든 몸이 적응해 나가고 있는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체력 스탯에 좀 유의미한 변동만 있으면 좋을텐데.
그래도 뭐, 잘 풀리겠지.
이제는, 그런 희망적인 생각도 제법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