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30)
합동 전투 실습 2 (16)
?거대한 고래가 우는 소리가 지축을 울린다.
그 꼬리와 지느러미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강풍이 불어 닥친다. 텔로스의 사도들은 진영을 갖추고 방어 법진을 발현해 그 거대한 강풍을 막아냈지만, 애초에 바람을 일으킨 것은 공격행위조차 아니었다.
사도들은 눈빛만으로 재빠르게 의견을 교환했다.
승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마력만 충분히 공급된다면 여섯 명이서 동시에 발현하는 협동 법진은 충분히 저 괴물 같은 고래의 움직임을 저지할 수는 있다.
허나, 지금은 저 최고위정령을 토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사도들의 목적은 벨브로크의 어금니 목걸이를 탈환하는 것이다. 모든 계획의 핵심이 되는 유물이다.
그러나 수많은 비행 정령들이 동선을 막고 있는데다가, 저 멀리 에드와 예니카가 타고 도주 중인 익룡 또한 속도가 엄청나다.
그렇다면, 그들을 추격하기에 적임인 자는 제 3좌 신속의 탈다렉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사도들은 재빠르게 계획 수립을 끝냈다.
세 명은 저 최고위정령의 움직임을 최대한 저지하고, 둘은 탈다렉이 날아갈 동선을 확보한다, 그럼 탈다렉은 최고 속력으로 에드와 예니카에게 도달해 그들을 제압하고 유물을 탈취한다.
어차피 저 수많은 정령들도 본체인 예니카를 제압해버리면 전부 무용지물이다.
행동에 옮기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탈다렉의 날개가 착 하고 펼쳐졌다.
“예니카, 정신 차려!”
이마가 용광로였다. 얼굴이 완전히 붉어진 것은 평소처럼 괜시리 부끄러움을 타는 것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양의 마력을 당겨 쓴 바람에 고열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에드는 비틀대는 예니카의 몸을 받치고, 벨브로크의 어금니를 꺼내보았다. 표면을 타고 흐르는 마력이 확실히 약해지고 있다.
아켄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마력은 점점 더 미약해져갈 것이다.
“에드…….”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다. 예니카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최대한 정령들을 지휘하고 있다.
하늘을 호령하는 최고위 물 정령 프리데.
그 거대한 고래가 발현하는 마법진이 하늘을 가득 매웠다. 온갖 종류의 물 원소 마법이 하늘을 가른다.
창공을 가르는 바람 속에서, 제 3좌 탈다렉이 공기를 꿰뚫고 날아든다.
그 속도는 총알에 비견할만 하다. 인식도 못한 채 창에 꿰뚫릴 뻔 했다.
다행스럽게도 창에 꿰뚫린 것은, 예니카의 연분홍빛 머리카락 몇 가닥과, 타고 있는 익룡의 등이었다.
익룡의 등이 창에 꿰뚫리자, 비명을 지르며 그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에드와 예니카는 또 다시 지상으로 추락했다.
***
“지금 성황도의 무력만으로는 성창룡 벨브로크를 토벌할 수 없어요. 역사책 속의 두루뭉술한 서술만 가지고 함부로 상대를 재단하지 마세요.”
말에 군더더기가 없다.
클라리스는 다소곳이 앉아서 핵심만을 짚었다.
하늘을 뒤 덮은 물 정령의 위용은 깨진 스태인드 글래스 너머로 똑똑히 보인다. 학사 사람들은 물론이고 성당 기사들까지 모두 식은땀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성녀 클라리스에겐 별로 대단한 광경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저것보다 몇 배는 거대한 성창룡 벨브로크가 이 아켄섬을 통째로 작살내는 것을 수십 번은 보았다.
그렇기에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 모습에 성황 엘데인과 대주교 베르디오는 큰 위화감을 느꼈다.
언제나 세상사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순수하게 뛰놀던 성녀 클라리스는 이미 없다.
손을 모으고 가만히 앉아있는 저 성녀는 이미 현실의 쓴맛을 잔뜩 보았다.
“성녀님. 그걸 대체 어떻게…….”
“잘 들어요, 베르디오.”
한 남자가 있다. 클라리스가 몇 번이고 죽음을 지켜보았던 금발의 몰락 귀족이다.
그의 죽음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한다. 클라리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클라리스를 여기까지 데려와 앉히기 위해 그가 해낸 일이 너무 많다.
이제는 클라리스가 제 역할을 할 차례였다.
그 누가 뭐라해도, 클라리스에게는 교단의 성녀라고 하는 절대적인 지위가 있다.
대주교와 성황에게 직접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자, 그런 측면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클라리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그렇기에, 클라리스는 당당히 이야기한다.
“저는 같은 시간을 수도 없이 반복한 끝에 여기 앉아 있습니다.”
좌중에 정적이 감돌았다.
“시간이 반복되는 이유는 아직 잘 파악하지 못했지만요. 대충… 짐작이 가는 바는 있지만.”
– 콰앙! 콰앙!
아켄섬의 상공에서 거대한 고래와 텔로스의 사도들이 맞부딪힌다. 그 수가 가뿐하게 세자릿 수는 넘어 보이는 온갖 비행정령들도 거들고 있었다.
학사 직원들도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 뛰쳐나왔다. 온갖 방어 마법진을 펼치긴 했지만, 거대한 고래는 학사 쪽엔 관심도 없다.
그런 웅장한 광경조차도, 성녀 클라리스에게는 그저 소음을 내는 배경일 뿐이다.
“성녀님.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시끄러워요, 베르디오. 저는 성황님께 이야기하고 있어요.”
“예? 성녀님…?”
클라리스는 이미 냉정해져 있었다.
베르디오를 보면서, 그를 독실한 신자로 여기고, 존경의 눈빛을 보내던 성황도 시절의 그녀와는 명백히 다르다. 앳된 눈빛과 부들부들 떠는 손은 여전히 안쓰러웠지만, 그렇다고 말문이 막히는 일은 없었다.
무언가를 잔뜩 경험했고, 가치관도 많이 변했으며,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심정적으로 기대고 있다.
인간은 지탱해줄 자가 있다면 빠르게 성장한다. 그 사실을 실감하고서, 클라리스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성황님. 제가 왜 대외비였던 벨브로크 토벌계획을 알고 있었을까요? 이 아켄섬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계획이었을 텐데.”
주름살이 가득한 성황 엘데인의 눈이 클라리스의 새빨간 눈동자에 똑바로 향한다.
“방금 성당을 습격해서, 벨브로크의 어금니를 가져갔던 금발의 남학생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성황도에서 고위 성직자들끼리 오갔을 계획을 어떻게 아켄섬에 있는 마법부 남학생이 알 수 있었을까요?”
베르디오의 두 눈이 조금씩 휘둥그렇게 커져간다.
방금 성당을 습격한 금발의 남학생.
유리를 박살내고 들어와서, 당황한 성당 기사들이 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목걸이부터 챙긴 후 도망친 행동은… 정말로 교단의 계획을 전부 간파하고 있는 듯 한 모습이었다.
“저는 어떻게 성황님과 베르디오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걸까요? 두 분과 호위인력들은 은신 마법을 써가며 최대한 은밀하게 이 곳 성당까지 움직였을 텐데.”
시선이 모여든다.
“애초에, 다 경험해 본 일이니까.”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싶지만, 막상 반박할만한 말은 없다.
“베르디오는 교단을 파멸로 몰고 갈 인물이에요, 성황님.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그의 광기가 교단을 집어삼키겠죠.”
“광기라니, 성녀님. 말씀이 너무 극단적이십니다.”
“기회가 있을 때 그를 잘라내야만 해요. 지금 당장 그를…….”
“성녀님!”
“시끄럽다고 했잖아요, 베르디오!”
쾅, 하고 클라리스가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리고 정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성황 엘데인.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클라리스와 베르디오.
“어떻게 제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이윽고 나타난 베르디오의 반응은 완전히 의외의 것이었다.
그는…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막 차기 성녀로 왔을 때부터, 성녀님의 추대만을 위해 항상 발로 뛰었습니다.”
“…….”
“행여나 적응하지 못하실까봐 전해드릴 수 있는 모든 지식을 전해드리고, 불온한 세력들로부터 첨탑을 지키고, 불신자들의 음해로부터 성녀님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몇 년입니까.”
늙은 대주교가 흘리는 비탄의 눈물에… 성황 엘데인의 동공이 조금 흔들렸다.
“성녀님을 위해 이리 헌신했습니다. 그 사실은 성황도의 성당 기사들은 모두가 알 것입니다. 여기에 모여 있는 기사들은 물론이고, 성황 엘데인 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그 누구보다도 제가 성녀님의 가장 열렬한 후원자였습니다. 항상 성녀님의 신변에 안정과 행복만이 있기만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원하던 자가 바로 저입니다.”
베르디오의 눈은 절망과 비탄으로 가득차 있었다.
“성녀님! 성녀님이야말로 이 성황도의 가장 신성하고 위대한, 주신 텔로스님의 총애를 받는 보물이옵니다. 이 모자란 대주교에 비하면 훨씬 가치 있는 분이시지요. 저는… 항상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제가… 고작… 이런 식으로 음해를 받아야 하는 것에… 이리 비참한 현실에… 눈물이 흐릅니다.”
그 뒤,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흐느끼는 베르디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오로지 성녀를 위해 살았던 지난 삶이 부정당했다는 것. 그것이 가슴에 상처로 남아 비참하게 눈물을 흘리는 자의 모습이다.
클라리스는 그 모습을 보고 천천히 그에게 걸어간다.
그것은 고해를 성사하는 자에게 차분히 걸어가던, 혹은 세례를 받는 신도에게 조신하게 다가가던 모습과 한 없이 닮아 있다.
자애롭게 웃으며, 신의 뜻을 대리하는 그녀의 모습은 모든 기사들의 기억에 아리따운 모습으로 각인되어있다.
클라리스는 그렇게 다소곳한 모습으로 다가가서, 주저앉아 있는 그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 귓가에 이야기 한다.
“그래서, 일이 수틀리면 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했어요?”
베르디오의 차가운 혈관에 한줄기 긴장이 흐른다.
오로지 베르디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유포되었을 리 없다.
시간을 반복하고 있다는 그 어이없는 주장은 단지 좌중을 설득하려고 급조해낸 것이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성녀 클라리스는, 진짜로 여기에 앉아 있는 자들의 밑바닥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엘데인 옆으로 가서, 클라리스가 이야기한다.
“더 속지 마세요, 성황님.”
성황 엘데인은 방관자다. 본질적으로는 베르디오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래도 그에게는 아직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렇기에, 클라리스는 성황 엘데인에게 이야기 한다. 베르디오를 파문시키라고.
“지금이 바로… 결단 하셔야 할 때에요.”
그 순간, 테이블 아래에서부터 폭발이 일어났다.
– 콰앙!!
베르디오의 성법술이었다.
***
아켄섬에서 빠져나와 북쪽으로 한참을 달려가야 나오는 산림지대.
익룡의 형태를 한 예니카의 중위 정령은 그곳의 침엽수 사이를 누비며 겨우 불시착했다.
-카가가가가각!
바닥을 쭉 미끄러지며 고통스러운 듯 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정령은 역소환 되어 사라졌다. 하다못해 우리를 지상에 안전하게 내려놓기는 하려고 최대한 버틴 모양이었다.
예니카와 나는 흙바닥에서 조금 뒹굴었으나, 크게 다친 상처는 없었다.
허나 예니카는 애초에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흙바닥에서 일어섰다. 저 멀리 떨어져있는 예니카에게 얼른 달려가서 상태를 보았다.
“야, 예니카. 괜찮냐?”
힘에 부친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내가 열을 확인해보려고 이마를 쓸어 올렸다. 손으로는 체온이 가늠이 안가서 이마라도 맞대보려는 순간, 예니카는 오히려 내 가슴 언저리를 밀어보였다.
“하… 하지마…….”
“뭐?”
“더… 열 오른단 말야…….”
예니카는 콜록대며 스스로 몸을 가누었다.
아무래도 혼자 걷기는 힘들어 보이기에, 내가 어깨를 빌려주었다.
“여기는 아마도… 크레트 대삼림이다.”
“응… 더 가야 해…?”
예니카의 질문을 듣고 벨브로크의 어금니 목걸이를 꺼내보았다. 마력 반응이 있긴 있었지만, 정말 미약했다.
이제 정말 조금만 더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예니카를 부축하며 함께 걸어 나갔다. 벨브로크의 봉인에 영향을 주지 않는 곳까지 도달하면, 땅에 묻어버리든 근처 호수에 던져버리든 해서 아무도 찾지 못하게 만들면 끝난다.
그러나, 그리 순탄하게 풀릴 리는 없었다.
– 콰앙!
착지라고 해야할까, 추락이라고 해야할까.
본인의 몸은 완전히 멀쩡한 것을 보면 전자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겠다.
허나, 피어오르는 흙먼지의 양은 도저히 착지라고 볼만한 것이 아니다.
– 화아악!
이내 날갯짓 한 번으로 흙먼지를 다 흩어버린다. 그 중심에 서있는 남자는… 텔로스의 사도 그 3좌, 신속의 탈다렉이다.
이미 한 번 상대해 보았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그를 제압했던 기억. 성당 앞에서 그의 창에 몸이 꿰뚫렸지만, 오히려 그걸 기회로 그의 움직임을 제한 시켜서 메릴다의 일격으로 끝내버렸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단기 결전으로 극복한 케이스다. 그러나 그 때와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있다.
목숨을 판돈으로 내밀 수 없는 상황인데다가, 심지어는 글래스트의 반지를 이미 예니카가 사용해버린 상태다. 예니카의 마력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반지를 쓸 수 없다.
그 전과는 달리 이 쪽에는 예니카라는 전력이 있다는 것이 호재이긴 하지만…
“에드… 나 앞이… 안 보여…….”
“흙먼지 다 걷어질 때까지는 눈 꼭 감고 있어.”
“아니… 그게 아니야…….”
당장 눈앞에 강림한 탈다렉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예니카의 말에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내게 부축 받아 서있는 예니카의 눈동자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다.
“야… 너….”
“일시적인 현상일거야….”
“…타이밍이 안 좋네.”
반지의 부작용이 확실해 보였다. 생각 이상으로 더 막대한 마나를 당긴 모양이다. 회복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아마 이 사건이 마무리되고 나서도 며칠 간은 혼자서 생활하기가 힘들겠지. 너무 무리한 거 아닌가 싶다가도, 이 정도 쯤 마력을 당기지 않으면 예니카 혼자서 그 사도를 전부 상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근처 나무에 예니카를 기대어 앉혔다.
뒤에는 다른 사도들의 목숨을 담보로 추격에 성공한 사내 하나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로브 뒤로 뻗어 나온 날개. 그늘진 로브 모자 아래로 슬쩍 보이는 둔탁한 느낌의 턱. 창을 잡은 팔에는 우락부락한 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장 그 목걸이를 내놔라.”
내 손에 들려있는 벨브로크의 어금니 목걸이를 가리켰다.
“안 그러면… 네 놈을 죽일 수도 있다.”
나는 예니카의 눈동자 앞에 손가락을 대고 이리저리 움직여보였다.
예니카의 동공은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정지화면처럼 멍하니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고열은 여전하고, 발끝은 떨리기까지 한다. 땀도 어찌나 흘리는지, 교복 셔츠가 다 젖었다. 숨쉬기가 힘들어보여 셔츠의 단추 몇 개를 풀어주고, 숄을 옆으로 밀어주었다. 그 뒤 이마에 땀을 한 번 스윽 닦아준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내가 꽤 근처까지 와있었다. 나는 예니카 쪽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정령들을 다루고 있는 자가 바로 그 소녀인가.”
“…….”
“당장 그 소녀를 제압하지 않으면, 내 동료들이 위험할 수도 있겠군.”
예니카가 이렇게까지 극한 상황으로 몰려 있는 것은, 아직도 수많은 정령들을 다루며 사도들의 추격을 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다렉 입장에서는 당장 예니카를 제압해서 다른 동료들을 위협하는 정령을 모두 없애고 싶어할 터.
길게 끌어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탈다렉이 순식간에 창을 내지르며 날아왔다.
육안으로 보고 회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도 될 정도의 속도다. 순간적으로 음속을 초월한 그 속도. 내 배를 향해서 직선 궤도를 그리며 날아오는 창은 일격에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 화아아아악!
‘내 인지를 초월한 속도’라는 점은 단 한 번에 한해서 내게 유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딱 한 번만, 인지 밖의 공격을 무효화시켜주는 ‘풍랑의 가호’.
그 창끝에서부터 휘감겨오는 바람이 탈다렉의 몸을 휘감았다.
“뭐, 뭣?!”
나는 풍랑의 가호를 활용하기 위해, ‘일부러’ 탈다렉의 창을 인식하지 않았다.
그를 쳐다보지도, 공격이 날아올 타이밍을 예상하려 들지도 않았다.
– 카앙!
창이 튕겨나가며, 순간적으로 탈다렉의 몸에 큰 빈틈이 생긴다, 아주 잠깐의 제압 상태. 그 때를 틈타 탈다렉의 복부에 중위 불 마법 ‘일점폭발’을 때려 넣었다.
-콰앙!
단검을 꺼내어 뒤돌아 봤을 땐, 폭발의 여파가 남아 있었다.
그대로 뒤로 도약해, 그의 어깻죽지에 단검을 박아 넣는다.
“크으아아아악!”
–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대로 정령식 ‘폭성’까지 발현되고,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난다.
누누이 말했듯, 그를 이기려면 단기 결전과 요행에 기댈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빈틈을 만들어내서 치명타를 박아 넣어야만 한다.
허나, 메릴다를 현현 시킬 수 없는 상태에선 화력에 한계가 있다.
결국 탈다렉을 이기려거든, 메릴다를 현현시켜야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글래스트의 황금 불사조 반지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네놈…!”
탈다렉이 흙바닥에 나가 떨어졌지만, 금세 몸을 가누고 일어섰다. 단검은 옷을 뚫었지만, 성법술을 두른 몸까지 관통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찔러 넣을 때 둔탁한 느낌이 들었었다.
절대적인 화력의 부족. 내 고질적인 약점이었다.
“결국 저항하겠단 말이지…!”
그래서.
반지가 없으면, 뭐 어떻단 말인가.
언제까지 반지에 기대서 마력을 당겨쓰는 걸로, 패널티 다 받아가면서 고위 정령을 다룰 것인가.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력을 가다듬었다.
수십 번의 죽음에 대한 기억들이 계속해서 뇌를 비집고 들어온다.
건물 잔해에 깔려 죽고, 과다출혈로 죽고, 창에 찔려 죽고, 비늘에 맞아 죽고, 뭐 갖가지 이유로 죽어나갔지만… 뇌리에 각인된 수많은 기억은 내게 오로지 고통만을 선사한 것은 아니었다.
위기가 올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메릴다를 소환해댔으며, 수십 번을 반복해왔던 그 마력의 감각은 이제 내 기억 속에 온전히 남아있다.
정령 감응력을 끌어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험의 축적이다.
그리고 그 경험만큼은 이 짧은 시간에 착실히 내 안에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마력의 흐름이 한층 더 부드러워진 것을 실감했다.
“그런가.”
그제야, 내 기억이 온전히 돌아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리 익혀두었던 성위 마법 덕이다.
아직 제대로 다뤄본 적도 없기에 성위계 마법의 숙련도는 다 처참한 수준이었지만….
아델이 꾸준히 시간을 되감는 동안, 그 가까이서 끊임없이 성위 마력에 노출 당한 나는 성위계 마력에 대한 감응도가 꾸준히 증가해온 것이다.
그렇다.
시간이 되감기면 모든 기억과 사건들은 과거로 돌아가지만… ‘스탯창’에 각인된 내 능력치는 온전히 영향을 받아온 것이다.
아델이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몸에서 발현되는 성위 마력의 힘은 조금씩 미약해져간다.
그와 반대급부로 나의 힘은 조금씩 강해져가니, 그 역학 관계가 뒤집히는 순간… 나는 그녀의 성위 마법에 저항해 온전히 모든 기억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령술 또한… 다르지 않았던 것인가.
=== [ 마법 능력 상세 ]
등급 : 능숙한 마법학도 전문 분야 : 원소 공통 마법 : 빠른 캐스팅 Lv 12 마나 감지 Lv 13 불 원소 마법 : 발화 Lv 17 일점폭발 Lv 2 바람 원소 마법 : 바람 칼날 Lv 15 정령계 마법 : 정령 감응 Lv 18 (up!)
정령 이해 Lv 18 (up!)
정령 현현 Lv 13 (up!)
감각 공유 Lv 13(up!)
감응 단계 : 5 (up!)
정령식 효율 : 완벽함 (up!) (위상 변이 가능!)
고유 부여 스킬 : 화복의 가호 (일시적 화염 면역 폭증) 폭성 (하위 폭발 마법)
불 마법 능력 증대 감응 단계 : 4 (up!)
정령식 효율 : 매우 좋음 (up!)
고유 부여 스킬 : 수사의 가호 ( 일시적 물리 공격 면역 ) 수원 발현 (하위 물 마법)
물 마법 능력 증대 감응 단계 : 3 (up!)
정령식 효율 : 보통 (up!)
고유 부여 스킬 : 풍랑의 가호 (주기적으로 피해 무력화) 상승 기류 (중위 바람 마법)
바람 마법 능력 증대 성위 마법 :
성위계 마력 발현 Lv 3 (up!)
성질 변환 Lv 2 (up!)
사망 면역 Lv 0
시간 감옥 Lv 0
단거리 공간 이동 Lv 0
강제 결집 Lv 1 (up!)
환시 발현 Lv 0
현혹 Lv 0
===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탈다렉이 입은 로브의 옷자락이 퍼덕거렸다.
강풍으로부터 몸을 지탱하기 위해 무게 중심을 낮춰보지만, 이윽고 붕뜬 몸이 근처 나무에 날아가 꽂힌다.
고목조차도 익은 보리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댄다. 자그마한 침엽수들은 뿌리째 뽑혀서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혹여나 예니카가 피해를 입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예니카가 기대어 있는 나무 부근만 기묘할 정도로 바람이 몰아치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바람이란 뜻이다.
시간이 수도 없이 되감기면서, 과거의 나는 몇 번이나 죽었단 말인가.
모든 것을 클라리스에게 일임한 채, 정작 나 자신은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최후만을 맞이한 과거.
이를 악물고 뭔가를 해내려 노력을 쌓아올렸던 기억이 가득하다. 그 결말은 모두 비참한 죽음이었다. 내게 스며들어온 과거의 기억들은 모두 그런 무의미해 보이는 노력의 역사였다.
그 막대한 고통과 죽음들은 모두 없던 일이 되어, 무의미한 발버둥으로만 남았는가?
회피할 수 없는 운명에 포기하지 않고 발버둥 친 역사는, 모두 쓸 데 없는 오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가?
고맙게도 신은, 그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던 것이다.
– 아우우우우
산림 지대에서 늑대 울음소리를 듣거든, 신께 목숨을 구걸하라는 행상인들의 격언이 있다. 산과 숲은 완전히 늑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쭉쭉 뻗어 올라간 침엽수 사이에 집채 만한 늑대가 그르렁 거린다. 마력을 당기는 일도 없이, 온전히 내 힘으로 현현해낸 고위 정령이다.
거대한 메릴다의 서슬 퍼런 눈이 탈다렉을 내려다본다.
***
“커, 흐윽…!”
성당의 천장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성법술에 완전한 면역을 가진 클라리스를 제외하고는… 그 갑작스러운 폭발에 모두 피해를 입고 말았다.
예배당 내부도 이미 난장판이 나있었다. 이 정도 수준의 폭발을 신력으로만 일으키려면 꽤나 긴 영창 시간이 필요하다.
베르디오는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성법술의 주문을 작게 영창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아켄섬에서 시간의 힘을 다룰 수 있는 건…. 아마, 아델 세리스… 그 소녀 밖에 없을 테지…….”
신음소리를 내는 기사들 사이를 헤쳐 나가는 베르디오의 품에 클라리스가 목을 졸린 채 제압당해 있었다. 그나마 기력이 남아있는 기사들도 저항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텔로스 교단의 세례를 받은 베르디오는 성법의 가호로부터 오는 반격에 당하지 않는다. 그녀를 온전히 힘으로 찍어눌러서 제압할 수 있는 것이다.
“크… 커헉…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요, 베르디오?”
“당연히 무사하지 못하겠지요. 그냥… 아델 세리스… 그 여자가 어디있는지만… 말하십시오…. 다 필요 없으니까…!”
이미 모든 계획은 다 꼬였다. 이제와서 뭘 할 수도 없다. 도주로조차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디오는 뭔가가 남았다는 듯이… 성당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이미 모든 계획이 다 무너져 내렸다면, 하다못해… 하다못해….”
“크윽…!”
클라리스는 이를 악물고 벗어나려 했지만 힘의 차이를 극복할 수가 없다.
그저 절망감만이 밀려 올라온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는데, 정말 거의 다 왔는데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와서 방심하고 말았다. 베르디오의 순간적인 판단과 과감함은 그녀의 예상보다 더 했던 것이다.
– 쾅!
그대로 베르디오는 성당 정문을 박차고 나갔다. 마차에 있는 말을 꺼내서 어딘가로 향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좀 늦었네.”
나른한 눈으로 육포를 우물거리면서, 마차의 위에 앉아 있는 소녀가 있다.
아직 그 소녀의 정체도 모르고, 왜 여기에 나타난 건지 알 수도 없는 베르디오다.
“어서와. 기다리고 있었어.”
그러나, 그의 손에 잡혀있는 클라리스는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베르디오에게 남은 퇴로는… 없다.
“이야기는 다 끝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