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33)
금화 세 닢 (1)
“요즘 에드 선배님이 좀 울적해 보이시던데요.”
오벨관은 온전히 학생회를 위한 시설이다.
학생광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최적의 입지에, 건물 자체의 외관도 깔끔하고 멋진데다가, 내부에는 학생회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사용하는 인원이 적은 것치고는 규모도 크고 상태도 좋다.
여러 귀빈들과 유력 자제들의 지지를 두루 받는 학생회이기에 학사 차원에서 많은 배려를 해 주는 것도 있지만, 일단 학생회 자체가 여러 귀족가나 유력가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받는 이유도 있다.
학생회 내부 인력은 두루 인맥을 쌓기에도 좋고, 학사 성적도 후하게 받는 편인데다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성공적으로 할 일을 마치면 많은 신뢰를 얻는다.
보통은 졸업 이후에도 제국의 요직에 나가 한자리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벌써부터 여러 유력가에서 후원이 들어오곤 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학사 내에 있는 학생회 예산과, 여러 사적인 후원금들, 유력가 자제들이 내는 학생회비까지 합치고 나면 그 규모가 꽤나 살벌하다. 학생 차원에서 이 정도 규모의 예산을 관리해도 될까 싶을 정도다.
물론 최소한의 조력을 위해 고문 교수 한 명이 내정되어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학생회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는 수준이었다.
“오라버니가요…? 울적해요?”
“일전에 캠프에 한번 다녀왔습니다만, 본인은 괜찮다고 하시는데… 그냥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 직감일 뿐이지만요.”
2학년의 마법부 차석인 직스 에펠슈타인은 학생회 행동 위원 중에서는 이미 에이스 취급을 받고 있었다.
본인은 딱히 학생회에 큰 소속감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그냥 겸사겸사 일을 처리하는 느낌이다.
직스는 어디 한 군데에 소속될 사람이라기보단 좀 더 자유분방한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직스는 학생회장의 지시를 받는다기보단, 그냥 타냐의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준다는 느낌으로 일에 임하고 있었다. 오벨관에 잘 나타나지도 않았다.
타냐도 별다른 태도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냥 직스를 학생회에 포섭해 둔 상태라는 것만으로도 큰 자산이기 때문이다.
“울적하다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식인데요…?”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현 학생회장, 타냐 로스테일러는 슥슥 움직이던 깃펜을 내려놓았다.
학생회장의 개인 집무실 책상은 정말로 넓은 편이지만, 그 넓이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서류가 쌓여 있었다.
하루에만 결재해야 할 사항이 산더미다. 매일 아침에 오벨관에 와서 그날의 보고 서류들을 꼼꼼히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오전이 날아간다.
바쁜 자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타냐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나름대로 오기가 있는 성격인지라, 타냐는 최대한 빈틈없이 일 처리를 하려고 매일 매일 시간을 쪼개 쓰고 있었다.
“흐음… 그냥 겉모습만 보면, 평범해 보입니다. 늘 그랬듯이 바쁘게 사시죠. 캠프 생활 하시면서 필요한 활동들 하시고, 학사 장학생 일도 하시고, 수업도 꾸준히 나가시면서 틈틈이 공부 하시고… 그런데… 흐음… 그래도 전 뭔가 에드 선배님이 마음에 짐을 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말입니다.”
“직스 선배님이 그렇게 보고하셨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긴 있겠죠. 그게 명확하지 않은 게 마음이 걸리긴 하지만… 흐음… 그냥 직감이라….”
타냐는 끄으으― 거리며 기지개를 한 후, 푹신한 의자에 자그마한 몸을 묻었다.
타냐의 입장에서 에드 로스테일러 하면 떠오르는 감상은 꽤 달라졌다.
뭔가 묵묵한 느낌으로, 닥친 일은 어떻게든 다 해결해 내는 듬직한 인상이다.
그런 그가 마음을 쓰거나 울적해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상상이 되질 않아서, 타냐는 묘한 호기심이 동했다.
“오라버니한테 안부 못 드린 지도 꽤 됐는데, 직접 만나서 인사라도 드려 볼까요….”
“오후에는 성당 복구 현장 나가 보셔야 하고, 트릭스관에 학생회 정기 업무 보고하러 가셔야 하잖습니까. 저녁 식사 마친 뒤에는 로레일관의 학생 동아리 총회에 현황 보고받으러 나가셔야 하고, 밤 시간에는 개인 학습도 하셔야죠.”
“…왜 이렇게 잘 알고 계세요.”
“수석 비서가 한탄하는 걸 맨날 들어 주다 보니….”
직스가 에드에게 타냐의 소식을 도맡아 전해 주는 이유는, 타냐 본인이 도저히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서다. 그만큼 쫓겨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울적해하는 이유라도 알 수 있으면 덜 답답하긴 할 텐데요. 직스 선배님이 좀 제대로 알아와 주시면 안 되나요? 이번에 파견비 예산도 좀 남았고, 일 처리 하다 수업 빠질 일 생기면 공결 처리 요청도 해 드릴 수 있는데.”
“학생회장님. 제가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학생회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 자금 사적 운용의 여지도 있고, 학생회 차원에서 개인 학생을 사찰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대체 이놈의 회장 자리는 왜 이렇게 제약받는 게 많은 걸까요….”
“원래 권력의 무게란 게 다 그렇잖습니까.”
타냐는 한숨을 푹 흘리고서는 집무실 한편의 벽을 전부 메운 커다란 유리창을 쳐다보았다.
오벨관 4층의 학생회장실에서는 학생광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분주하게 이동하는 학생들의 행렬이 마치 개미 떼처럼 보인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의사를 대리하는 입장이다. 결코 가벼운 자리는 아니다.
사실 무슨 일을 하든, 세상에 부담감 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에드 로스테일러란 인간이 어지간한 부담감 가지고 울적해지거나 흔들거리는 인간은 아니라는 점이다.
말 그대로 사람 목숨이라도 등에 지고 있지 않은 이상에야….
“걱정되네요… 오라버니.”
“저도 걱정되긴 합니다. 사실 저는 그 핀트가 묘하게 좀 다르긴 합니다만….”
“네?”
직스는 집무실 구석에 있는 접객용 쇼파에 대충 주저앉았다.
“사실 에드 선배님이야 뭐 부담감이니 울적한 기분이니, 그런 거 조금 느낀다고 크게 무너질 사람도 아니잖습니까.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일입니다만, 문제는 에드 선배님 주변의 인간관계입니다…”
“인간관계요…?”
“이게… 어떻게 보자면 기회라서요…. 거, 회장님도 에드 선배님 주변 상황이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의자에 몸을 묻고 있던 타냐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슬슬 타냐도 알 건 다 아는 것이다. 뭐 여복을 타고 났니 어쨌니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본인에게는 영 머리 아픈 상황인 것이다.
묘할 정도로 여러 유능한 여성들에게 구애를 받고 있는 에드의 상황을 보건대, 매사 완벽해 보이기만 하는 그가 흔들리는 모습은 커다란 갭처럼 느껴진다.
매사 의존하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 같은 존재가 에드 로스테일러라고 한다면, 그런 그가 오히려 자신에게 기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가슴을 타고 오르는 그 묘한 충족감은… 어쨌든 그를 이성으로 보는 사람들에겐 피할 수 없는 유혹인 것이다.
평소에는 거의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주질 않으니, 이런 기회가 또 얼마나 있을 것인가.
“사실 누구나 좀 울적하고 우울할 때가 다 있는 법입니다. 한껏 위로받아서 회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가 봤을 땐 에드 선배님은 그냥 가만히 놔두는 게 최선입니다.”
“어려운 문제네요….”
“뭐, 이 이상 오지랖 부려 봐야 그냥 주제 넘은 짓일 수도 있으니… 저는 가만히 있으렵니다.”
직스는 그렇게 시원하게 손을 털고, 접객용 쇼파에서 옷을 털고 일어났다.
“사실 이거 보고하러 온 건 아닙니다. 이건 그냥 겸사겸사 전해 드린 말입니다.”
“네…?”
“요즘 좀 수상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다녔습니다만, 건수 하나 잡은 것 같습니다. 곧 있으면 여름 방학 아닙니까? 다음 주 중에 학기말 시험이 끝나면 바로 방학에 돌입하겠죠.”
“네, 그렇죠.”
직스는 품속에서 책 한 권을 꺼내서 앞에 있는 접객용 책상에 던져 놓았다.
집무용 책상에 앉아 있는 타냐 입장에선 잘 보이지 않았지만, 미간을 좁혀서 자세히 관찰해 보니 이었다.
2학년부터 3학년까지 사용하는 가장 기초적인 원소학 서적으로서, 두께는 꽤 두껍지만 원론적인 내용이 알차게 들어차 있어서 거의 스테디셀러 취급을 받는 책이었다.
“지난 몇 년간 아켄섬 내에서 세를 꽤 불렸으니, 이제 슬슬 독니를 드러낼 모양입니다. 이번 건은 아마 그 시초가 되는 작업이겠지요.”
“독니를 드러낸다니… 혹시…”
직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엘테 상회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원소학 서적 매집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이 원소학 개론은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개시되는 시기에 가장 수요가 적다. 더 이상 이 책이 필요 없는 3학년생들이 내다 팔아 버리면서, 일시적으로 중고 서적과 신품 서적의 가격이 하한가를 치는 것이다.
이걸 다 싹쓸이해서 상회의 창고에 쌓아 놓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그 의도가 명백해 보인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판다. 모든 투자 행위의 기본이지만, 아켄섬의 생활동 유통을 혼자서 책임지고 있는 공룡 상회의 입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매점매석은 전통적인 수단인만큼 그 성과가 확실하다. 지금까지는 못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었을 뿐이다. 좀 더 그 몸집을 불리고, 학사 생활동 내의 영향력을 지배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
“뭐 상회 규모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막대한 이득은 아니겠지만… 이건 일종의 전초전입니다.”
“그렇네요. 지금은 원소학 서적 하나뿐이지만, 나중에는 여러 의류, 마공학 용품,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넓혀 갈 수 있을지도 모를 테니….”
엘테 상회의 회주 대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로르텔 케헬른.
타냐는 몇 번이고 그 소녀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아무도 남지 않은 오필리스관 복도 한편에서 시선을 내리깔고 있던 그 모습이다.
에드의 죽음을 등에 업고, 싸늘한 주검처럼 앉아서 타냐를 기다리고 있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능력적으로도 흠잡을 데가 없다. 돈도 돈이고, 마법 실력도 출중하면서, 위기 상황에서 임기응변 능력도 이미 널리 인정받았다.
이젠 학생회장으로서, 그녀를 견제해야만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 * * [ 생활 능력 상세 ]
등급: 중급 장인 전문 분야: 목공 손재주 Lv 15 설계 Lv 10 채집 능력 Lv 13 목공 Lv 14 석공 Lv 7 사냥 Lv 11 낚시 Lv 7 요리 Lv 7 수선 Lv 5 생활계 스킬 중에서 고급 제작 기술 슬롯을 얻은 지도 꽤 되었지만, 아직도 텅 비어 있다.
당장은 전투에 도움이 되는 스킬들을 익혀 나가는 데에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활계 스킬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일단은 기초 스탯 중 재주 스텟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 좋은 장비들을 제작할 수 있다면 당연히 전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은 아켄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는 게임인 만큼, 전투 장비를 조달하는 수단이 정말 한정적이다.
여러 도시들을 모험하는 게임이라면 모를까, 이 게임에서 이용할 수 있는 상점들이라 봐야 생활동에 있는 것들이 전부인 것이다.
학생들을 위한 상품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가끔 전투 장비를 다루는 상점을 발견한다고 해 봐야 일정 수준 이상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결국, 에서는 고급 전투 장비를 조달하려거든 특별한 퀘스트들을 클리어 하거나, 직접 제작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것이다.
어지간한 마공학 용품의 제작식은 글래스트 교수의 영혼 도서관에서 조달해 올 수 있었으나, 직접적인 전투나 모험 장비들은 이왕이면 내 손으로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다. 엘테 상회를 통해 조달해 올 수는 있껬으나, 그 값어치를 일일이 치르기에는 부담이 크다.
뿐만 아니라 생활계 스킬들을 잘 훈련하면 캠프에서의 생활 환경도 훨씬 더 개선될 터이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일단 고급 제작 슬롯 중 하나는 ‘고급 활 제작’을 채워 넣기로 결정했다.
화살에 정령식을 부여하는 것만이 아니라, 활 그 자체에 여러 마법을 인챈트 하고, 특정한 상황에서 명중률과 위력을 드높여 주는 활들을 제작해 둘 생각이었다.
그럼 나머지 한 슬롯에 뭘 넣느냐. 그건…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모닥불 근처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풀 숲 너머에서 한 사람이 나온 것이다. 꽤나 비싸 보이는 금테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이건… 알고야 있었는데 직접 보니 또 묘한 기분이네요.”
로르텔이 캠프에 방문한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안 그래도 학생회장 선거다, 상회 결산일이다 뭐다 바빠서 정신이 없다고 들었다.
“진짜로 오두막을 지어서 눌러앉을 줄이야….”
“오, 어쩐 일이냐. 로르텔.”
나는 불가에 앉아서 생활계 스킬에 대한 고민을 좀 하고 있었고, 내 옆자리에 앉은 예니카는 멍한 눈으로 불을 쬐고 있었다.
로르텔은 자기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더니, 불가 앞에 와서 앉고는 로브 모자를 휙 내려썼다.
그녀를 상징하는 적갈색의 머리칼이 어깨 아래로 흘러 내려온다. 평소에는 한쪽으로 단정하게 땋아 내리고 다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깔끔하게 풀어 헤친 모습이었다.
중요한 자리에 나갈 때 하고 다닌다는 파란색 장미 모양 핀을 한쪽에 예쁘게 꽂혀 있고, 로브 아래에 입은 옷도 나름대로 깔끔하고 새하얀 프릴 드레스였다.
“간만에 에드 선배님 얼굴이나 보자고 왔지만…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이 광경은 좀….”
“…뭐야, 이 목소리는 혹시… 로르텔이니…?”
“오랜만이에요, 예니카 선배님.”
가만히 불을 쬐고 있던 예니카는 흠칫 몸을 떨었다. 뭔가 ‘올 것이 왔다’라는 듯한 표정이다.
“그래. 로르텔이구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은 굳이 필요도 없겠네요.”
로르텔은 한숨을 푹 쉬고서는 예니카를 휙 쳐다보았다.
예니카도 제법 시력이 돌아와서 이제 타인의 시선 정도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애초에 로르텔이 휙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모습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제법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예니카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몸으로 허리를 딱 세우고, 당당히 웃는 것이다.
“에드랑 나는 동거하기로 했거든.”
“…….”
“우리 이제 같이 살아!”
본인도 본인 입으로 말해 놓고 좀 멋쩍은지… 에헤헤, 하고 뒷말을 흐리고 만다.
“같이 산다기보다는 옆집에 산다는 게 더 알맞는 표현인 것 같네요.”
“같은 캠프에 사니까. 같이 사는 거 아닐까? 로르텔은 굉장히 표현 방식이 고루하네…!”
로르텔의 머리에 십자 핏줄이 비죽하고 튀어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
화가 난 듯하다가도, 그렇진 않을 거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애초에 로르텔은 쉽게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다.
언제나 평정을 유지하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녀 아니던가.
“사실 오늘은 에드 선배님 안부도 물을 겸 찾아온 거긴 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좀 전해 드리려고 온 이유도 있거든요.”
“중요한 정보? 그게 뭐냐?”
“에드 선배님. 지금 지갑 사정이 어떨지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다음 학기에 쓸 서적류나 마공학 용품은 지금 미리 구비해 두시는 걸 추천드려요.”
시세 변동에 대한 정보인가.
상회 쪽에 몸을 담고 있는 로르텔이 시세에 대한 예상 정보를 미리 일러주는 것쯤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리 단순하게 생각할 일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뭐, 미리 사 두면 더 싸게 살 수 있긴 하겠지. 시세라는 게 항상 필요할 때가 가까워질수록 치솟는 법이니까.”
“그렇긴 한데요…. 더 비싸고 싸고 할 문제가 아니랍니다.”
로르텔은 빙그레 웃고서 말을 덧붙였다.
“아마, 방학 끝날 때쯤에는 아예 구하지도 못할 테니까.”
“…….”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3막 내내 이어지는, 학사와 상회 간의 신경전.
메인 스토리와는 별개로, 끊임없이 반목하는 학사와 상회 사이에서 누구의 편을 드느냐는 엔딩에 큰 영향을 끼친다.
로르텔의 이번 행보는, 그 신경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예니카 선배님도 소식 들은 김에 겸사겸사 미리 마련해 두는 게 좋을 거예요~ 운이 좋았네요~ 마침 이 타이밍에 옆에 있어서 좋은 정보도 전해 듣고~”
“응~ 고마워~ 그리고, 말해 두자면 나는 에드랑 동거하고 있어서 언제나 옆에 있기 때문에, 굳이 운이 좋다고 표현할 건 없어!”
―빠직.
또다시 핏줄이 비틀리는 듯한 소리에, 나는 슬그머니 로르텔의 표정을 보았다. 역시 지그시 웃고 있는 얼굴은 그대로다.
“눈도 제대로 안 보이면서 입은 살아 있네요…. 아, 저희 상회의 애완조 얘기랍니다. 최근에 많이 다쳐서.”
“응. 그렇구나. 많이 도와줘야겠다. 나는 에드가 항상 옆에서 도와줘서 괜찮아…!”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그 순둥이 예니카 페일로버가….
타인의 악의에 한없이 미약한 소녀이건만, 유독 로르텔을 상대로는 묘하게 독해지는 기색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로르텔은 로르텔이다.
쉽게 이성을 잃거나, 화를 내는 법은 없다.
“…열받네.”
?
“여긴 참 좋네요. 공기도 좋고, 물도 졸졸 흐르고, 왜 그렇게 루시가 여기에서 낮잠을 자려 드는지 알 것 같아요.”
로르텔은 뭔가 인내심의 선이라도 끊어졌는지, 갑자기 어조가 착 가라앉았다.
그리고 터벅터벅 걸어서, 예니카 앞까지 가서는 들으란 듯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여긴 사유지가 아닐 텐데… 뭐, 아켄섬 전체가 학사 부지도 아니니까…. 이쪽의 토지 권한은 제국 쪽에서 관리하겠죠. 그래 봤자 남서쪽 구석에 박힌 섬 한 켠에 있는 숲일 뿐이지만…”
그 말의 의도가 무엇인가. 로르텔은 빙긋빙긋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토지 권한 자체는 워낙 까탈스럽게 관리하니 제가 어떻게 해 보기 힘들겠지만… 글쎄요, 건축 허가 정도는 문제 없겠죠.”
“뭐…?”
예니카는 안색을 새파랗게 물들인 채 로르텔을 바라보았다. 아득한 시야 한편에 어렴풋이 로르텔이 웃는 얼굴이 보였는지… 흠칫 몸을 떨었다.
“어머나.”
로르텔은 그 와중에 캠프 한편, 강 쪽에 가까운 공터를 보고는 싱긋 웃는 것이다.
그리고는 선고하듯이 이야기한다.
“여기, 터가 참 좋네.”
불길한 기운이 캠프 사이로 스며드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