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4)
합동 전투 실습 (1)
1, 2 학년의 합동 전투 수업은 스치듯 지나가는 이벤트지만 사실 시나리오 전체에서는 꽤 중요하다. 주인공 테일리가 처음으로 검을 잡는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전투부 커리큘럼에 따라 격투술을 익히던 테일리가 불현 듯 검을 잡게되어 ‘나태한 루시’의 전격을 베어내게 된다.
테일리는 검성의 재능을 타고난 자다. 그 재능을 깨닫지 못하고 맨손 격투술만을 수련하던 테일리에게 있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부분인 것이다.
물론, 아직 개화하지 못한 재능으로 루시 메이릴의 상대가 될 리 없다. 루시의 전격을 한 번 베어내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순간적으로 당황한 루시가 툭 던진 중급 전격 마법에 한 방에 제압 당하고 나가 떨어지고 만다.
덕분에 기초 원소 마법만 사용해야하는 룰을 어긴 루시의 실격패가 되고 말지.
그걸 계기로 검성으로서의 재능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1학년생들 사이에서 그 이름이 떠돌기 시작한다. 그 무시무시한 루시 메이릴의 일격을 받아내었고, 비록 실격패였지만 루시 메이릴을 이겼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아직 이렇다 할 변수는 없었으니까, 정사대로 흘러가겠지?”
모처럼의 주말이었다. 수업이 진행되는 주중에는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몰아서 처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식량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여유가 많이 생겼다. 어느 정도 사냥에 숙련이 되고 나니 사냥의 효율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사냥 덫을 설치하는 요령이 생긴 게 가장 결정적이었다.
[ 새로운 제작품 ]올가미 덫 올렌관 공사현장에서 얻어온 밧줄을 탄성있는 나무 줄기에 묶어 설치한 덫. 작은 동물들을 잡는데 효율적이다.
제작 난이도 : ●●○○○ [ 제작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
학생 도서관에서 빌려온 생존 수칙 도서에 나와있는대로 급조한 것인데,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다. 대번에 제작 숙련도가 올라가서 목공 숙련도는 거의 10레벨을 앞두고 있었다.
무엇보다 시간 대비 효율이 좋다. 내가 등교해서 수업을 받는 동안이라 해서 설치해놓은 덫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시간을 훨씬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수업 끝나고 귀가한 뒤, 덫을 설치한 곳에 가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야생동물들을 수거하면 그만이었다.
다람쥐나 토끼 같은 작은 생물부터 시작해서, 정말 대박이 터지면 너구리 같은 게 매달려 있기도 했다. 물론 줄이 끊어져 버리거나, 미끼로 놔뒀던 육포만 홀랑 사라져 있어서 허탕 칠때가 더 많다.
그래도 일단 덫을 설치하는 것만 빼면 노동력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점이 더 큰 셈이다.
직접 사냥 + 덫 사냥의 이중 식량 조달 체계가 정립되자, 고기의 양 자체는 나혼자 먹을만큼은 충분히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 사냥 그 자체가 문제되기보다는 사냥감의 손질에 들어가는 노동이 더 짐이 될 수준이었다. 뭐, 행복한 고민이다.
사냥을 제외하고서도, 개학하고 난 뒤로는 제법 생활 수준의 증대를 꾀할 수 있었다.
당장 숲에서만 조달하는 재료만으로는 제작의 수준에도 한계가 있었으나,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공사현장이나 여러 교실에서 버려진 물품들을 주워오는 것으로 숲에서는 구할 수 없는 여러 자재들을 조달할 수 있었다.
특히, 지금 시기에는 아카데미 내에 ‘황금의 딸 로르텔’의 후원 하에 여러 건물들이 증설되는 시기다. 그덕에 아카데미 외곽에 공사현장이 꽤 있는데, 그런 곳에 기웃거리면 여러 공사 자재를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본래의 사용처들에 사용되고 남은 각목이나 허름하고 녹이슨 못, 길이가 애매하게 남아 버리게 된 밧줄 따위를 잔뜩 얻어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가장 큰 수확을 꼽아보자면 바로 손도끼였다.
-타악! 타악!
경쾌하게 장작을 내려치는 소리가 숲 사이로 울려 퍼졌다.
내가 베어낸 나무 밑동을 작업대 삼아 장작을 패고 있었다. 공사장 인부들이 이제는 낡아서 안 쓴다고 건네준 손도끼는 그야말로 이번 달 최고의 수확이었다.
고맙습니다! 노동의 역군 여러분! 눈물이 흐릅니다…!
“휴우… 힘들긴 힘드네..”
바람 칼날로 통나무들을 큼직큼직하게 썬 다음, 손도끼를 이용해 세로로 쪼개는 과정을 반복했다.
애초에 기초 바람 마법인 바람 칼날 가지고는 나무 하나를 통째로 베는 정도의 위력을 낼 수는 없다.
그래서 그간 모닥불을 뗄 때는 숲에서 아무렇게나 베어낸 나무의 얇은 줄기부분을 썼다. 크기도 제각각이고 물기를 머금고 있는 경우도 많아서 영 효율이 안좋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장작’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불관리 측면에서 어마어마한 효율 증대를 꾀할 수 있다.
그 놈의 모닥불 관리는 정말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잠들어 있을 때에는 그 열기도 필요하고, 주변 야생동물의 접근도 차단해야해서 반드시 불이 유지되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빈약한 불쏘시개들로는 불이 오래가지도 않고, 중간에 꺼져서 갑자기 쉼터 안으로 매캐한 연기가 들어닥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안 그래도 하루에 수면량 너덧시간을 확보하기도 힘든데, 그나마도 중간에 잠을 설치게 되는 것이다.
“쌓아놓고 보니까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네.”
대충 쉰개 남짓 되는 나무 장작들을 캠프 옆에 말려놓았다. 도끼질하느라 고생 깨나 했지만, 다 하고 나니 뿌듯했다. 이렇게 일일이 도끼질을 할 게 아니라 바람 칼날로 전부 다 쪼갤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 뭐, 반의 반절도 채 끝내기 전에 마력이 바닥났겠지만.
그래도… 장작에 좀 남아있는 수분이 날아가고 나면 효율 좋고 괜찮은 연료가 되어줄 것이다.
“어후.. 땀 좀 봐…”
이미 평상복은 땀에 절어 있었다.
주말 같은 경우에는 평상복 세탁을 하루에 두 번 했다.
약초랑 식용 풀을 채집하러 갈 때나, 사냥하러 갈 때, 지금처럼 생필품을 다듬을 때, 캠프 점검 할 때 등등… 그냥 삶의 모든 순간 순간이 유산소 운동의 연속이었으니, 몸에서 땀이 마를 날이 없었다.
나는 일단 땀이라도 씻어낼 요량으로 냇가로 돌아갔다. 그래봐야 몇십미터 거리지만, 캠프가 눈에 들어오니 마음 한 켠이 푸근해졌다. 날이 갈수록 살만해지는 캠프의 외견을 보고 있노라면 괜시리 뿌듯해진다.
“…”
그러나, 최근에는 자주 불청객이 보인다.
냇가 근방의 평평한 바위에서 나른한 포즈로 잠들어있는 루시가 눈에 들어오자,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쉬게 되었다.
캠프에서 루시 메이릴을 맞딱트린 뒤로, 녀석은 종종 내 캠프에 멋대로 찾아와서 낮잠을 자곤 했다.
딱히 방문하는 시간대에 규칙성 같은 것은 없고, 아무렇게나 아카데미 내를 노니다가 생각나면 한 번씩 들리는 모양이었다.
– ‘안녕.’
그리 면식 있는 사이도 아니면서, 그냥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고 자연스럽게 내 거처에서 낮잠을 자고 정신을 차려보면 자연스럽게 사라져 있었다.
루시 메이릴 같은 요주의 인물과는 최대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지만, 며칠정도 지나고 나니 이제 아예 생각을 놓게 되었다.
애초에 루시 메이릴의 방문은 자연재해 같은 것이다.
모처럼 주말을 맞이해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와중이다. 길고양이 하나 내쫓겠다고 노동력을 허비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뭐 큰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제 알아서 퍼질러 자다가, 종종 말려놓은 육포 두어개 집어먹고, 때 되면 알아서 가니까.
그냥 배경, 병풍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놔뒀더니 이제는 내 캠프에서 행동반경을 좀 벌려서 주변의 나무 위나 냇가의 바위 위에서 햇볕을 맞으며 잠들어 있다. 본인 딴에는 이 냇가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최근에는 사냥 덫을 이용해 잡은 담비나 다람쥐 가죽 따위를 잘 말려서 내 쉼터에 깔아놓았더니, 푹신푹신해서 너무 좋다고 본인이 더 호들갑이다.
…. 진짜로 길 고양이 하나 기르는 기분인데…?
“Zzz…. Zzz….”
평평한 돌 위에 넉살좋게 드러누워서 자고 있는 루시를 지나쳐서, 냇가에 세수를 하러 갔다.
수면에 내 얼굴이 비쳐보였다. 장작을 패느라 완전히 피곤에 쩔어있는 모습이다. 시원한 물로 얼굴이라도 한 번 적시려고 손을 담그려는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스탯 확인을 안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응아흐아악?!”
갑작스럽게 비명을 지른 내 기행에 루시가 화들짝 잠에서 깨 바위 아래로 굴렀다.
* [ Name : 에드 로스테일러 ]
성별 : 남 나이 : 17 학년 : 2 종족 : 인간 업적 : 없음 체 력 5 지 력 5 재 주 9 의 지 력 7 행 운 6 전투 능력 상세>> 마법 능력 상세>> 생활 능력 상세>> 연금 능력 상세>>
“안녕, 에드! 오늘 표정이 좋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암, 있다마다.
꾸준히 목공 숙련을 쌓고, 마법 단련을 한 끝에 재주 스탯과 지력 스탯이 하나씩 올랐다. 근데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란다.
체력 스탯이 무려 두 단계나 올라가 있었다.
이게 가지는 의미가 뭐냐.
육체적 능력이라고는 전혀 타고나질 않은 이 빌어먹을 육체에 드디어 단련의 길이 트였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일반적인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이번 달 내내 그토록 육체노동을 해댔는데도 체력 스탯이 오르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그러나, 이 몸뚱아리는 근력, 순발력, 지구력 무엇 하나 제대로 타고난 것이 없었다. 아무리 단련을 해도 스탯 변동이 없으니 슬슬 마음이 꺾이려는 와중이었다. 그 와중에 두단계 상승이라니.
끈질기게 나를 막아서고 있던 단련의 벽이 허물어지고, 다음 단계에 진입한 셈이었다. 이제부터는 꽤 성장세가 붙을거라는 희망도 가져볼 수 있었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냐!
“뭐? 그닥….”
물론, 겉으로 내색할 리가 없다.
헬라 교수의 원소학 개론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하나 둘 강의동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었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예니카에게 최대한 차갑게 대답했지만, 예니카는 여전히 방긋대는 미소로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있잖아, 에드. 내일 있는 전투 실습 수업 말이야. 1학년들이랑 같이한대. 같은 조도 정해졌잖아. 후배들 얼굴 볼 생각하니까 너무 두근대지 않아? 내가 선배라니, 왠지 안 익숙하네. 에헤헤.”
벌써 실습 수업을 할 때가 왔나. 필수 이수 수업이니만큼 나도 참가해야만 했다.
합동 전투 실습은 말 그대로 일대일을 상정한 모의 전투 훈련이다. 물론, 실제로 큰 살상력을 가진 무기나 마법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전투부 학생들은 대부분 모조 무기들을 쓰고, 마법부 학생들도 기초 원소 마법만이 허용되는데다가, 연금부 학생들도 지나치게 위력이 강한 약품이나 정령식은 금지된다.
뭐, 같은 조라고 해서 서로 협업을 해서 뭘 하는 건 아니고, 실제로는 그냥 대진표에 가까웠다.
학년을 섞어서 아무렇게나 짜여진 대진표대로 1 대 1 실습 대전을 수행한다는 게 그 골자다. 물론 모두가 참관하고 있는 와중에 진행된다.
완전 랜덤으로 배치되는 대진 덕분에 다양한 구도가 나온다.
1학년 vs 1학년은, 아직 마법이나 전투가 미숙한 1학년들이 그 실력을 선배들에게 보여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1학년 vs 2학년은, 선후배 간의 직접 대련을 통해 숙달된 전투 능력이나 마법을 경험해 볼 좋은 기회가 된다.
그리고 2학년 vs 2학년은 참관하는 1학년이 당장에 목표로 해야될 전투 수준을 확인시켜줄 계기가 되지.
요컨대 핵심은, 그 전투를 다 같이 지켜보는 것에 있다.
내가 알기로 이 참관 수업에는 시나리오에 크게 관여하는 굵직 굵직한 인물들이 전부 참여한다. 애초에 수업 규모가 워낙에 커서, 전투부 마법부 연금부 구분할 거 없이 모두가 참여하게 되어있다.
자애의 황녀 페니아, 황금의 딸 로르텔, 초목의 창 직스, 정령사 예니카, 노력가 에밀라, 나태한 루시, 음침한 클레비어스, 낭만가 아델…. 한 명 한 명 꼽자면 끝이 없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사람은 역시… 낙제검성 테일리다.
대진도 대충은 다 알고 있다. 물론 승패조차도 전부 안다. 참으로 절망적인 사실인데, 거의 모든 대련에서 1학년이 싹 다 이긴다.
2학년한테 직접 한 번 배워보자는 수업의 취지가 무색하게, 온갖 거물들이 포진한 1학년이 2학년들을 학살하는 형국이 나오지… 흡족한 얼굴로 박수를 치는 글래스트 교수가 참 가관이었다.
어쩌겠어… 꼬우면 주연이 되었어야지…
그래도, 딱 한명, 1학년의 거물급 주연을 상대로 승리를 취하는 2학년이 있긴하다.
황금의 딸 로르텔을 상대로 완전히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니카 페일로버.
언급했듯이, 1막 최종보스이며, 시나리오에 첫 등장하는 순간이 바로 이 실습 수업인 것이다.
“에드, 너도 볼래?”
빙긋빙긋 웃으며 예니카가 내게 대진표를 건네주었다.
아니 됐어, 나중에 알아서 확인할게…하고 거리를 둘까 하다가 문득 내 상대는 누굴까 궁금해졌다.
어찌됐든 나는 이 시나리오에 존재해서는 안 될 인물인 것이다. 내가 끼어드는 것으로 인해 대진표에 큰 변동이라도 생겼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생겼다.
이 수업에 참관하는 1학년생들은 대부분 시나리오 비중이 큰 녀석들이다. 내 기본적인 행동방침은 그런 주요인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지만, 이번만큼에 있어서는 직접 대련 상대가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겠지.
애초에 수업이 그런 방식인 걸 어떻게 해.
그러니 상대가 누가 됐든 간에 침착하게 대처 하자.
“어디 보자…”
“자, 여기! 여기 있어! 봐봐!”
모처럼 자기 말에 본격적으로 반응해주는 것이 퍽 반가웠는지, 예니카가 발랄하게 대진표를 건네주었다.
결론만 얘기해놓고 보면, 큰 변동은 없었다. 대부분이 내가 알고 있던 그대로의 대진이었다. 단 하나만 빼고.
’13조 – 에드 로스테일러 vs 페니아 엘리어스 클로엘’
그 이름이 낯이 익었다.
“….”
오… 신이시여..
“………”
그래도 얘는 좀 아니지 않나요…
*
황족 숙소의 사용인들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오갔다. 아무래도 섬 남서편의 생활동 의류상에서 새로 입고한 의장용품들이 유행하는 모양이었다.
엘테 상회에서 유통한 물류들은 하나같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페니아 황녀에게는 그 사실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그 여우 같은 상인의 꿍꿍이는… 눈에 훤하지만…”
인간을 가늠하는 통찰안을 타고난 페니아 황녀에게는 황금의 딸 로르텔의 그 능구렁이 같은 속내가 영 고까웠다.
반배정 시험에서 글래스트 교수에게 인정을 받은 3명의 A반 학생 중 한 명. 대륙의 거상 엘테 케헬른의 외동딸인 그녀는, 그 아비 만큼이나 능글맞은 속내를 타고난 소녀다.
언제나 예의바르고 품행이 방정해 보이는 외견의 속내 한 켠에는, 세상 모든 것을 이익의 저울 위에 올려놓는 본질을 감추고 있다.
황족 숙소의 개인실, 황녀는 으리으리한 크기의 침대에 걸터 앉아 한숨을 푹 쉬었다.
로르텔에게는 이 신성한 배움의 터마저도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 마법적인 재능과, 한 번 탐독한 책을 대번에 암기하는 출중한 두뇌를 배움에 활용하지 않는다.
황녀의 육감에는 느껴졌다. 조금씩 실베니아의 물류를 장악해가는 엘테 상회의 행적 또한, 그녀와 전혀 연관이 없진 않을 것이라고.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이지만… 사적인 감정만으로 대할 것은 또 아니겠지…”
온갖 마법서와 서류들, 가방 따위가 널부러진 침대위에 쓰러지듯 몸을 묻었다.
“또, 또…. 치세나 정세 따위를 생각하고 있구나 나는… 모처럼 이런 배움의 땅까지 왔건만..”
아무리 으리으리한 황족 숙소라 할지라도, 어쨌든 진짜 황실과는 많이 다르다.
적어도 황실에서는 이렇게 품위 없이 침대에 몸을 파묻거나, 참고서나 서류 따위를 침대에 널부러 놓는 행동 따위는 하지 못한다.
이런 볼품없는 행동 따위에서 일탈을 느끼는 처지에 퍽 자조감이 피어오르긴 했으나, 그럼에도 묘한 충족감을 느끼고 마는 것이 인간이란 생물이었다.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황녀는 다시 기지개를 켰다.
“끄으흑! 후우.. 그래… 가장 중요한 건, 일단 배움을 통해 날 갈고 닦는 것이겠지.”
그리 생각하고선 1학년생들에게 배부되었던 공고문을 확인했다. 수업 관련해서 공고되는 사실은 꼼꼼하게 확인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합동 전투 실습의 조 편성을 보고나서야, 황녀는 또 다시 침대에 몸을 묻었다.
“이건 또 이것대로… 기묘한 악연이로구나…”
그의 퇴학을 종용할지 말지 3일 밤낮의 고민 끝에 결국 보류했었다. 대신, 호위단장 클레르와 마법부 학장 맥도웰에게 그를 주시해줄 것을 부탁했었다. 그는 황녀의 통찰안으로도 그 속내를 꿰뚫어 볼 수 없는, 이례적인 존재였기에.
학기가 시작되고, 온갖 사고에 잔뜩 휘말리다보니 뒷전으로 밀려있었지만… 어찌됐든 황녀에게 있어선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겠지…”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긴 채 일단 잠에 들기로 했다. 교복도 제대로 벗지 않았고, 널부러진 책들도 제대로 정리하진 않았지만 몸의 피로를 푸는 게 먼저다. 물론 황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행동이었다.
알 수 없는 게 많은 사내지만, 어찌됐든 마법적인 재능이 출중해보이진 않았다. 아마도 별 이변 없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페니아 황녀에게는 지금 신경쓸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클로엘 황제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단지 모든 걸 내려놓고 그저 배움의 기쁨을 한껏 누리는 것 뿐이었을 테다. 복잡한 치세나 정세 따위는 내려놓고 학생으로서의 삶을 누리면 될 일이다.
허나 이 어린 군주에게는 그 간단한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어찌보면 그것이, 군주의 숙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