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40)
학기말 평가 (4)
― ‘나는 전쟁 같은 건 관둘걸세.’
황도의 수호자 오벨 포시어스는 그렇게 전장을 떠났다.
아인족에게서는 푸르스름한 피가 흐른다.
언제나 그 푸르스름한 피를 뒤집어쓰고, 전장을 나뒹굴던 때가 엊그제 같다.
클로엘 황제의 치세가 이어지면서, 태평성대를 이룩하고 있다는 클로엘 제국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칼레이드의 가슴 한편에는 대륙 최북단에서 잔류하고 있는 아인족들의 세력이 가슴에 남았다.
그러나, 클로엘 황제에게는 더 이상 아인족을 섬멸하려는 의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아인족의 세력은 미약해졌기 때문이다.
황도를 지키던 수호자 오벨 포시어스조차도 숙적의 존재는 뒤로 미뤄 두었다. 그리고는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교편을 잡았다.
― ‘우리는 피를 쏟기 위해 싸우지 않았네. 황도를 지키려고 싸웠던 거지.’
결국 수호자 오벨의 뜻을 따라 절단자 젤란, 탐구자 글래스트, 무법자 칼레이드는 실베니아의 학사로 왔다.
하지만 다른 둘과는 다르게 칼레이드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철들 때부터 전장에서 살았던 칼레이드에게 어딘가 독기 빠진 실베니아 학사는 애들 장난 같았다.
평화에 취해, 낭만에 취해, 학업이라는 구실 아래에서 청춘을 구가하는 학생들에게 전장의 독기 어린 생존술을 가르칠 수는 없었다.
그나마 그의 친우였던 탐구자 글래스트는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학사의 온건한 분위기 속에서 그 독기를 유지해 온 모양이다.
학술적인 그의 태도는 고지식하긴 했지만, 적어도 낭만이나 평화에 취해 본분을 나 몰라라 하거나 물렁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칼레이드가 학사에 재적하던 시절에는, 글래스트와 함께 미친놈으로 통했다. 방향성은 약간 달랐지만.
학생들이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실습을 굴렸고, 밤을 새서 마력 감응 훈련을 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실전에는 낮과 밤이 없다.
적은 내 목을 노릴 때 하늘의 밝고 어두움을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집 좋은 환경에서 자란 온실 속의 화초들에게 야생의 생존술은 ‘부당한 학대’에 가까웠다.
그렇게 온갖 사고를 치고, 학사와 싸우고, 학생들과 이를 갈며 반목한 역사를 반복하고 나서야 그는 학사를 떠났다.
그 뒤론, 코헬톤 무법 지대를 떠돌며 의뢰를 수행하는 모험가로 한참을 살았다.
다시 한번 실베니아의 러브콜을 받았을 때는 이미 떠돌이 같은 삶에도 지긋지긋해진 와중이다.
어차피 이런 태평성대에 더 이상 칼레이드와 같은 인재는 필요치 않다. 후진 양성이라는 것도 오벨처럼 매사에 타협적이어서, 여러 사정들을 두루 이해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결국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그저 월급이나 타 먹으면서 설렁설렁 시간을 때우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마지막으로 그의 눈에 밟힌 자는, 그의 유일한 동료와도 같았던 글래스트 교수가 남기고 간 제자다.
클레어 엘핀. 이제는 그의 후임 교수였던,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조교수가 했던 말이었다.
― ‘유독 생전의 글래스트 교수님은 에드 로스테일러 학생에게 묘한 기대를 걸었던 것 같거든요.’
* * *
오벨관의 전투 실습장은 언제나 여러 일정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실습수업뿐만이 아니라 학생들 간의 개인 대련, 여러 시범 행사, 학생들의 개인 훈련에도 사용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모에 비해서, 관중석이 이렇게 가득 차 있는 날은 그다지 많지 않다. 기껏 해 봐야 학년 수석 대련, 합동 전투 실습, 혹은 교수진들의 시범 대련 때 정도다.
이런 학기말 시험 하나에 이렇게까지 학생들이 몰린 것은, 한때 전쟁 영웅이었고, 또 한때 학사의 미친개였던 칼레이드 교수의 개인 대련을 보기 위해서가 크다.
거기다 그 상대는 3학년에 떠오르는 신성 에드 로스테일러다.
재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노력파로 통하는 학생이다.
1학년 때는 그냥 바닥에 처박혀 있는 수준의 성적이었고, 2학년 때 제법 성적이 오르긴 했지만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었다.
허나 3학년에 진입하면서 아예 학년 강자 수준으로 발돋움을 해, 이젠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드물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부상이 가지는 의미는, 일반 학생들에게는 꽤 컸다.
애초에 딱 눈에 띄는 재능을 타고난 것도 아니며, 파문당한 뒤론 집안의 지원을 빵빵하게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온전히 스스로에 대한 노력과 투자만으로 학년 강자의 반열에 올라, 대단한 배경이 없어도 이 학사에서 한몫할 수 있는 실력자가 될 수 있다는 증거로 통했다.
그런 두 사람의 대련이니만큼, 꽤나 많은 시선이 몰렸다.
학생회장 타냐 로스테일러가 최측근을 낀 채로 대련장에 들어왔을 때는 좌중에 정적까지 감돌았다.
― ‘야, 학생회장까지 직접 행차했는데?’
― ‘저기 봐, 최고 행동위원 다이크 선배랑 수석 서기까지 동행했어…!’
그런 웅성거림은 타냐에게도 이젠 익숙했다. 학생회장이라는 자리는 항상 주변의 시선을 받는 자리다.
타냐는 좀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시간까지 쪼개 가며 에드의 대련을 참관하러 왔다. 어차피 이런 화제성 있는 대련은 자기가 직접 보러 와도 그리 이상하진 않다.
누군가에게는 미친 전쟁광으로 통하고, 누군가에게는 자기밖에 모르는 독선가로 통하며, 누군가에게는 한심한 술꾼으로 통하는… 도저히 학생 평가만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는 인물. 그게 무법자 칼레이드다.
제아무리 에드가 강대한 힘을 손에 넣었다고 한들, 교수진 중에서도 무력만으로는 강자로 통하는 칼레이드의 상대가 될 리가 없다.
적어도 타냐는 그렇게 생각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려거든, 직접 개입을 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당한 일이 생기거나 분위기가 과열되면 눈치를 줄 필요가 있다.
제아무리 막나가는 교수라 할지라도 학생회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 의도가 다분했지만… 칼레이드의 모습을 보고 좀 잘못 판단했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다.
“아이고, 삭신이야….”
중년… 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좀 젊어 보인다.
그러나, 까끌까끌하게 나 있는 수염이나 정리 안 된 더벅머리 탓에 액면가가 좀 올라가는 느낌이다.
외투 주머니에 양손을 푹 꽂고, 음침한 눈을 휙휙 부라리는 칼레이드는 신음성을 냈다.
“취해서 바닥에 널브러져 잤더니 온 관절이 비명을 지르네. 채소랑 유제품을 그렇게 챙겨 먹는데 여기 이 관절 부분은 아직도 삐걱삐걱거려. 등 푸른 생선을 좀 더 먹어야 하나…. 아니면 소금기 있는 음식을 좀 줄여야 하나….”
“…….”
결투대 위.
칼레이드 교수는 비틀거리면서 에드를 똑바로 쳐다봤다.
에드는 자기 상반신만 한 가죽 주머니를 등에 매고 있었는데,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꽤나 묵직해 보였다. 최근 들어 갑자기 챙겨 들고 다니는 주머니였다.
“그래, 에드 로스테일러… 한번 덤벼 봐라.”
가죽 주머니를 구석으로 던져 놓은 에드는 이리저리 팔을 꺾으며 몸을 풀었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그럼 언제 하게? 학기말 평가를 학기말에 해야 하지. 미뤄 뒀다가 내년에 하게?”
피식 웃은 칼레이드 교수는 주머니에 푹 꽂은 손을 꺼내지 않고, 건성으로 마력을 휙 모았다.
그의 다리에서부터 끌어 올려진 마력이 몸을 타고 머리 끝까지 퍼져 나간다.
순식간에 마력에 휘감긴 모습에서 범상치 않은 감응 능력이 느껴졌다.
원래 교수진들은 학생들 선에서는 상대가 안 되는 수준의 사람들이 많다.
칼레이드 교수는 그중에서도 실전 경험과 전투 능력이 특출난 수준이다.
승리는 기대하기 힘들지라도, 적어도 좋은 평가는 받아야 했다.
―휙.
에드가 가볍게 손을 휙 휘둘렀다.
탐색전이라고 해야 할까, 상대의 대응을 보기 위한 움직임에 가까웠다.
에드의 손끝에서부터 마력이 발현되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바람 칼날이 구현되어 칼레이드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마력을 발현해 내 바람 칼날을 막아 내었다.
―카앙!
그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옷깃이 그 여파에 휘말려 파닥대고 있었다.
“오, 생각보다 화력이 좀 되네.”
칼레이드 교수는 왼쪽 허리춤을 꾹꾹 밀면서 펴 댔다. 아직도 삭신이 쑤신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눈빛을 사악 바꾸더니, 거의 들리지도 않을만큼 조그맣게 주문을 외웠다. 채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에드는 그 순간 위기감을 감지해 냈다.
워낙 마력 감응력이 좋은 칼레이드 교수다. 그런 그가 영창을 생략하지 않을 정도라면, 일단 기초 수준의 마법은 절대로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마자, 중급 전격 마법 ‘섬광’이 발현되었다.
― ‘크아아악!’
― ‘악…! 깜짝이야…!’
― ‘눈이… 눈이 안 보여…!’
대련을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 따위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저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한 수단.
그의 몸 근처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의 무리가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각을 일시적으로 빼앗는다.
그대로 칼레이드는 자리를 박차 거리를 좁히고는 근거리에서 기초 충격 마법을 때려 박는다.
이쯤되면 시험도 뭣도 아니다. 그냥 상대를 때려눕히기 위한 공격일 뿐이다.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일반 학생이 이런 급습에 대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에드는 착실하게 방어 마법을 발현해서 칼레이드의 공격을 튕겨 내었다. 위력보다는 빠른 구현에 집중한 마법이다. 에드의 마력으로도 충분히 튕겨 낼 수 있었다.
“오호, 이놈 봐라.”
칼레이드가 피식하고 웃었다.
칼레이드가 섬광을 발현하는 순간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은 것이다. 순발력과 위기 대처 능력만큼은 발군이다.
에드는 그대로 칼레이드의 빈틈이 생긴 순간, 기초 불 마법 ‘발화’를 발현해 냈다.
물론 칼레이드 또한 이 정도는 손쉽게 반응해 낸다. 방어 마법을 구현해 열기를 막아 내고, 다음 공격으로 끝을 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발화 마법은 칼레이드를 향해 날아들지 않았다.
불꽃은 에드를 둘러싸고만 있었다.
“재밌는 짓을 하는군.”
공격하는 척하면서, 방어하는 것이다.
방어가 목적이었다면 방어 마법을 구현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기초 원소 마법을 발현해 근처에 두르는 것은 마력 효율은 물론이고 시전 속도까지도 손해를 봐야 한다.
굳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라면….
“시야를 가리고 싶었던 거겠지!”
―화악!
칼레이드가 방어에 집중하도록 해 놓고, 자기는 더 높은 수준의 마법을 영창할 생각이다.
칼레이드는 그 사실을 간파해서 바람 마법을 발현해 불을 걷어 내어 버렸다.
이미 에드는 중급 불 마법 ‘일점 폭발’의 발현을 끝내 놓은 상태다. 그 손끝의 방향이 칼레이드를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콰광! 쾅!
속도 하나만큼은 중급 마법 중에서도 따라올 수 있는 게 없을 정도로 속공에 특화된 마법.
순식간에 칼레이드의 몸에서부터 폭발이 피어오르지만….
―콰악!
칼레이드가 주먹을 꽉 움켜쥐자, 피어오르던 불꽃은 그대로 마력에 눌려 사그라져 버렸다.
말은 쉽다. 그냥 마력으로 손을 감싸서 불꽃을 찍어 눌러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일점 폭발’의 발동 속도를 보았을 때, 인간의 반응 속도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미리 예상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불꽃을 걷어 내면 곧바로 에드가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고 있지 않으면, 이 정도의 반응 속도가 나올 수 없었다.
숙취에 정신이 혼미해진데다가, 아무 데서나 널브러져 자느라 삭신은 쑤신 상태.
그 정도에서도 이 정도의 판단이 가능한 것은, 이건 이미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감각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정신 상태가 몽롱하다 할지라도,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내 차례다.”
그대로 칼레이드는 말도 안되는 속도로 중급 빙결 마법 ‘얼어붙은 칼날’을 발현한다.
에드에게는 익숙한 ‘얼음 창’과는 그 결이 다르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에 마력을 쏟아부어 적을 관통하는 게 목적인 얼음 창과는 달리, 얼어붙은 칼날은 얼음 결정으로 이루어진 칼날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내 주변 공간을 장악하는 게 목적이다.
하나 하나가 단검과도 같이 날카로운 결정들.
섣불리 움직이면 상처 입는다.
직접 공격이 아닌,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한, 공간 장악 마법.
칼레이드는 이미 에드의 근거리까지 파고든 상태다. 기초 마법조차도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이건….”
에드는 난감했다. 그의 위기 감지 능력이 비명을 발한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당한다.
칼레이드의 의도는 명확했다. 일단 에드의 움직임을 막아 놓고, 방어 마법으로 대처하기 힘든 공격을 가할 생각이다.
회피 기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회피하면 얼음 칼날들에 당한다.
일단 얼음 칼날을 제거하고, 그 방향으로 회피하려 한들 칼레이드가 공격 방향을 바꿀 것이다.
이쪽의 얼음을 제거했다는 것은 이쪽으로 회피할 거라고 알려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변의 얼음 칼날들을 한 번에 없애야 하지만, 일단 에드가 가진 수단만으로는 버겁다.
아주 잠깐의 고민.
결투의 순간은 매초 매초가 판단의 연속이다.
에드의 반사 신경이 순간 원소학이 아닌 다른 마법 영역으로 손을 뻗는다.
기초 성위 마법 ‘강제 집결’.
공간을 비틀어, 주변의 물질들을 한 점으로 강제로 끌어모아 버리는 마법.
적들을 끌어 모으는 수단은 많다. ‘집결의 바람’이나 ‘집결 시약’ 따위의 수단이 있지만, 성위 마법을 기초로 한 ‘강제 집결’ 마법은… 이론적으로 아예 저항할 수가 없다.
공간 자체를 비틀어 버리기에 물리적인 힘으로 저항할 수도, 일반적인 마력과는 성질이 다른 성위 마력을 다루기 때문에 마법적인 힘으로 저항할 수도 없다.
제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일단은 그 힘에 한 번은 이끌려야만 하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 데에 특화된 마법 분야. 그게 성위 마법이다.
검붉은 마력이 에드의 몸을 중심으로 피어올랐다.
“…뭐?”
칼레이드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에드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이건 실수였다. 발 빠른 반사 신경 때문에 몸이 먼저 움직여 버렸다.
자기가 지금 성위 마법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에드는 얼른 마력을 다시 흩어서 없애 버렸다.
―콰앙!
그대로 칼레이드의 기초 바람 마법이 에드의 몸에 직격했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에드는 그렇게 한참을 나가떨어졌다.
―화아아악!
―카가가각!
한참을 나가떨어지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대로 에드는 한참을 누워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한 방 먹었습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칼레이드는 미간을 좁히고 이야기했다.
방금 에드의 몸에 감돌았던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성위 마력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관객들은 눈치 못 챈 것 같지만, 근거리에서 지켜보던 칼레이드는 확실히 보았다.
자기조차도 다루지 못하는 성위 마법을, 분명 에드 로스테일러는 발현시키려고 했다.
“너 방금….”
칼레이드는 순간적으로 자기 눈을 의심했다. 과연, 글래스트 교수가 눈독을 들였을 법한 학생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에드 로스테일러는 마법을 발현하다 말고 칼레이드의 공격을 허용했다.
그 이유가 있다고 하면….
“너, 설마 의식적으로 원소 마법만 사용하고 있었냐?”
“…당연한 거 아닙니까? 지금 이거… 원소학 시험 아닙니까?”
“…….”
“…….”
그 말에 에드와 칼레이드는 물론이고 주변 학생들까지도 정적에 휩싸였다. 아무래도 칼레이드만 의식 못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에드의 말이 타당하다. 원소학 시험인데 원소 마법만 쓰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에드 로스테일러는 원소 마법만을 다루는 학생이 아니다.
소문도 그렇고, 척 보기에도 갖가지 마법 분야를 다양하게 다루는 학생인 것이다. 생각보다 원소 마법의 화력도 강하고, 에드 자체의 대처 능력도 좋아서 거기까지 생각하진 못했다.
이대로 대련을 진행해 봤자 묶어 놓고 패는 것밖에 안 된다.
“나는 애초에 원소 마법 실력만을 보진 않는다.”
“…아니, 누누이 말씀드리는데 이거 원소학 시험 아닙니까?”
“원소학은 모든 전투 마법의 기초이기도 하지. 따라서 단순히 원소 마법만을 쓰는 게 아니라, 여러 다양한 마법 분야와 원소 마법을 접목시켜 조화롭게 다루는 것 또한 원소학의 중요한 한 축 아닌가.”
길게 풀어서 설명했지만, 축약해 보면 간단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도 좋다.”
그 말에, 에드는 고개를 잠시간 들어 보였다.
나가떨어진 상태에서 상반신만 들어서 걸터앉아 있는 모습. 누가 봐도 명백히 패배한 모습이지만, 에드는 아랑곳 않고 칼레이드에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됩니까?”
“왜? 내가 다칠까 봐 걱정되나? 만약 그렇다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일축하고 싶군.”
“그러시다면….”
에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리저리 흙먼지가 묻어 있지만, 그에게는 옷이 이 정도 더럽혀지는 일이야 일상적인 것처럼 보였다.
칼레이드가 미간을 좁히고 방어 마법을 발현했다. 일단 기본적인 방어 마법을 둘러 두는 게 좋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카각!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마력 화살 두 발이 방어진에 날아와 꽂혔다. 고개를 들어 보면 에드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활을 들고 있었다.
―콰아아악!
칼레이드가 구현한 방어 마법진이 그렇게 사라졌다.
기본적인 방어 마법은 일반적인 공격 몇 대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위력보단 공격 횟수 자체가 중요한 경우가 많다.
에드의 공격은 그저… 방어 마법을 없애기 위해 의식적으로 위력을 ‘조절’한 느낌이 들었다.
힘 낭비는 최대한 자제하고, 딱 필요한 수준의 공격만을 감행한다.
이 모든 건 상대에게 치명타를 때려 박기 위한 빌드업이다. 그 순간, 칼레이드는 실감했다.
이 소년은 온실 속에서 화초들과 노닐던 인간은 절대 아니다. 방금 전부터 은근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오로지 승리하기 위한 전투 방식이다. 그러기 위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방향만을 고민한다.
교수와 학생.
압도적인 전력 차가 보장되어 있으면, 학생 입장에서는 언제나 전력을 다할 뿐, 상대를 이기기 위한 전투를 하진 않는다.
그런 심리가 내재되어 있으면, 상대하는 입장에서도 확실히 느껴진다.
애초에 승리를 포기한 자의 공격은 단조롭고, 영혼이 없다. 서로의 목숨을 걸고 칼끝을 걷던 전장의 전투와는 명백히 다르다.
패배를 당연히 여기는 자와의 결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스승된 입장으로서도 가르쳐 줄 것이 없다.
그러나 에드 로스테일러는 반드시 이기기 위한 전투만을 한다.
압도적인 전력 차가 나는 상대와 전투하는 것을 당연하게 느낀다.
패배가 당연시되는 상황 속에서도 상대를 이길 생각을 한다. 심지어는 시험이라는 여건 때문에 원소 마법밖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 아니었던가.
그 제한이 풀린다면, 어떤 수단으로 적을 압박할 것인가.
그 호기심이 피어오르는 순간, 칼레이드는 깨달았다. 발밑 주변이 물웅덩이로 흥건하다.
원소 마법인 수원 발현을 사용한 건가 싶지만, 아무리 그래도 영창 없이 중급 이상의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리 법진을 새겨 놓은 것이다.
‘정령식…!’
칼레이드의 판단은 빨랐다. 그 물웅덩이에서 거대한 암사자가 튀어나오는 순간, 마력을 담은 손으로 중위 빙결 마법 ‘얼음 벽’을 세웠다.
―카앙!
레이시아의 이빨이 거대한 얼음벽에 막혔다.
‘마력 화살에 정령식을 새겼다고…?’
미리 화살에 정령식을 새겨 놓는 것이야 준비성이 철저하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에드는, 즉석에서 발현한 마력 화살에 일일이 정령식을 새겨 넣고 있었다. 속도로 봤을 땐 말도 안 되는 정령 감응력이다.
정령술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로 통하는 예니카 페일로버. 그 소녀쯤 되는 게 아니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칼레이드가 감안하지 못한 점은, 에드가 예니카로부터 정령술을 전수받았다는 점이다.
‘애초에 원소학이 전문 분야가 아니었군.’
말 그대로 팔 다리를 묶어 놓고 패고 있었던 것이다.
한층 더 자유로워진 에드는, 허벅지 한 쪽에서 단검을 꺼내 들더니 칼레이드 쪽으로 파고들었다.
보란 듯이 근접전을 유도하는 모습.
애초에 마법사를 상대로는 근접전이 정답이긴 하다.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건 바로, 자기 자신도 마법사였을 때다.
그러나, 에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근접전을 유도했다. 원소 마법 실력으로 맞붙는다면 칼레이드를 이길 순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말 승리만을 위해 움직이는 모습.
그것은, 전쟁터를 전전하며 매 순간 목숨을 걸고 싸우던 과거의 자신과 다르지 않다.
확실하고도 명백한 압박이 느껴진다.
다시금 방어 마법을 발현해 에드의 단검을 튕겨 냈다. 그러나 에드는 몸을 휘어 꺾어서, 돌려 차기로 칼레이드의 팔을 밀어 버렸다.
칼레이드는 몇 걸음 물러섰다. 어느 정도 거리는 벌려졌지만, 바닥에서 다시금 다른 마력이 느껴진다.
마공학 용품 ― 갈퀴손.
미리 접근하면서 바닥에 설치해 놓았던 수정구슬.
그게 다시금 칼레이드의 몸을 에드의 앞으로 끌어온다. 몸을 휘감는 마력이 등을 떠밀지만, 칼레이드는 이를 악물고 마력을 발현해 그 압박마저도 끊어 내 버렸다.
그러나, 그마저도 에드의 설계 안에 들어 있었을 터.
말했듯, 거리를 좁히는 게 목적이라면 그 수단은 많았다. 문제는 상대가 저항할 수 있냐 없냐다.
이런 기초적 마공학 용품에서 나오는 마력은 칼레이드 수준의 마법사는 손쉽게 저항 가능하다.
단지, 시간을 끌고 싶었을 따름이다.
방금 발현하려다 말았던 성위 마법.
어떤 수단으로도 저항할 수 없는 그 검붉은 마력이 에드의 몸을 타고 피어오른다.
‘강제 집결’.
숙련도 레벨에 따라 범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정도 거리면 충분히 먹혀든다.
그것은, 몸을 꽁꽁 묶인 채 날아오는 총알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피할 방법이 없다.
일단 발현되면, 반드시 당해야만 하는 불합리한 마법이다.
‘일점 폭발’의 속도조차 반응해 내는 칼레이드지만, 성위 마법의 절대성 앞에서는 공평하다.
공간이 비틀린다. 의식을 차려 보면… 코 앞에 에드의 단검이 보인다.
―카앙!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반응 속도다. 칼레이드의 방어 마법 실력은 황실 마법사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다.
그러나, 에드는 단검을 물리적인 공격 수단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에드가 다루는 모든 무기에는 철저하게 정령식이 부여되어 있다.
―콰아아아아앙!
정령식 ― 폭성이 발현된다. 여기까지는 칼레이드도 예상 못 했다.
거의 동물에 가까운 감각으로 일부는 막아 냈지만, 나가떨어진 칼레이드는 어느 정도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쿠, 흑… 커헉… 이놈… 봐라….”
이미 숙취는 날아간 지 오래다. 칼레이드의 안색도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피어오르는 연기를 걷어 내고 나니, 기묘할 정도로 거대한 날개가 에드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박쥐의 크기는 거의 독수리만 하다. 날개를 최대한 넓게 펼치면 사람 하나 정도는 여유롭게 가릴 수 있을 듯하다.
에드의 어깨에 앉아 불을 피워 올리는 그 박쥐는 당장이라도 온 결투장에 불꽃을 휘날릴 기세다.
중위 불 정령 머그. 정령식 ― 폭성의 위력도 이미 중위 마법을 웃돌고 있었다.
에드는 그대로 품속에서 온갖 마공학 용품을 꺼내서 주변에 뿌려 댔다.
이리저리 바닥에 흩뿌려진 마공학 용품은 제각기 생김새도 다르고, 흐르는 마력의 양도 다르다. 뭐가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알 수가 없다.
강자와의 싸움에서 핵심은 바로 변수 창출이다.
그 사실을 지긋하리만치 잘 알고 있는 놈이다. 칼레이드는 그 확신을 얻자마자, 곧 바로 온 몸의 마력을 다 끌어모았다.
이미 학생 수준을 넘어간 인간이다. 이 실베니아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현역들을 웃도는 실력을 가진 학생들도 간혹가다 나오는 경우는 많았다.
그렇다면, 칼레이드도 언제까지고 힘을 빼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 에드 로스테일러라고 했나. 이렇게 됐으니 우리 좀 더 투닥거려 볼까.”
“더 해야 합니까?”
“끝까지 한번 가 보자. 뒷수습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에드가 묻기도 전에, 칼레이드의 온몸에서 마력이 피어올랐다. 지금까지와는 궤를 달리하는 양.
누가 보아도, 전력을 다해 쏘아 내는 단 한 발의 마법이다. 그 마력이 향하는 곳은… 하늘이다.
어차피 미친놈 취급받던 인간이다. 학생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해야겠냐고 시말서를 쓰는 모습이 눈에 아련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관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나왔다. 마법의 규모가 심상치 않다.
관중 사이에 앉아 있던 타냐도 미간을 좁혔다. 이건 시험의 수준을 넘었다. 누가 봐도 이건 말려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콰가가가가가가가각!
고위 전격 마법 ‘천벌’.
구태여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벼락. 그 자체였다.
―콰아아아아앙!
천장을 꿰뚫고 내려친 벼락이 에드에게 직격한다.
그 여파로 인한 바람이 관객석을 덮친다.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몸을 지탱해 본다.
“오, 오라버니…!”
타냐도 바람에 휘날리는 머릿결을 털어 내며, 어떻게든 결투대 위로 시선을 향했다.
―휘이이이이잉!
관중을 습격한 강풍이 가면 갈수록 더 드세졌다.
칼레이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그래도 학생에게 고위 마법을 때려 박는 건… 자기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다.
그저 상대가 이 정도도 버틸 수 있겠지, 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흐름에 못 이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말았다.
이거 진짜 크게 다쳤으면 책임져야 한다. 그 생각에 식은땀이 흐르는 순간, 칼레이드의 외투 한쪽이 바람 칼날에 잘려 나갔다.
―사악.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날아든 습격.
이걸 회피한 것은… 철저히 ‘운’이었다. 시야가 가려져 있어서, 어떻게 공격이 들어올지 공격자도 수비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에드 로스테일러가 제압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허허….”
칼레이드도 꽤 체력을 썼다. 슬슬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 때도 됐다.
피어오른 연기가 차츰 사라지자, 에드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날아드는 고위 마법. 직격은 피했지만 그 중심에서 모든 충격을 받았다. 순간적으로 방어 마법을 발현하긴 했지만, 그 모든 충격을 흡수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어디 부러진 곳은 없는 게 다행인 듯하지만… 이미 꽤 다친 상태인 것 같다. 출혈도 좀 있는 듯했다. 빗나갔는데도 이 정도 상처라면, 직격했으면 정말 중상이었다.
그러나, 칼레이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애초에 빗나간 것이 맞나? 고위 전격 마법이, 이렇게 쉽게 빗나간다고?
빗나간 것인가. 아니면 반응해서 회피한 것인가. 보통이라면 전자라고 생각했겠지만….
“후우….”
에드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상처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시험이라 해도 이건 선을 넘었다. 칼레이드는 이쯤 그냥 고득점 처리를 해 주고 얼른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백 프로 시말서 감이다. 벌써부터 두통이 엄습하는 듯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앞을 보고는, 눈을 의심했다.
이미 꽤 다친 에드 로스테일러지만… 그 눈빛이 살아 있다. 전의를 상실할 만도 하건만.
그는 대련장 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품속에는 방금 던져두었던 가죽 주머니를 안아 들고 있었다.
“하… 하하….”
아직 더 하자는 것인가.
헛웃음이 피어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로 저 소년은, 한번 심지에 불이 붙으면 승리 이외의 결과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칼레이드는 팔을 타고 돋는 소름에 어이없음을 느끼면서도, 다시 마력을 끌어 올렸다. 여기서 더 할 거라면 자기도 뺄 생각은 없다.
에드는 주머니 여기저기를 꽉 묶고 있던 가죽끈을 풀어 버렸다.
이제 와서 보면, 그건 주머니가 아니라 어떤 물건을 가죽 담요로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에드가 들고 다니면서 이런 저런 시험을 하던 물건이다.
풀어 헤쳐진 모습을 보니, 그건 꽤 커다란 지팡이다.
벼락 맞은 천년 나무 지팡이. 예니카가 들고 있던 것과는 형태가 많이 다르다. 여기저기가 많이 깎여 있었고, 갖가지 각인이 여러 개 새겨져 있었다.
한 무기당 하나의 정령식만 부여하던 것과는 달리, 이 지팡이는 온갖 정령식을 한 번에 다 각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감응력이 좋았다.
처음에는 원소 마법만 사용하더니, 단검에 정령식을 쓰고, 더 체력을 빼니 마공학 용품까지 사용하고서는… 마지막엔 지팡이까지 꺼내 든다.
대체 몇 가지 패턴이 있는 건지 칼레이드는 더 가늠할 수가 없다. 허나 지금 당장은, 눈앞의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에드는 왼손에는 역수로 쥔 단검을 그대로 들고, 오른손으로는 그 커다란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에서 일어선다.
바람이 분다.
부는 바람 사이로 섞여 있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칼레이드의 귓가에 은근하게 들려왔다.
그의 등 뒤로 조금씩 몸을 일으키는… 거대한 늑대가 보인다.
관중들은 물론이고, 이미 그 모습을 본 적이 있는 타냐마저도 몸이 굳어 버린다.
이 커다란 대련장조차도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몸을 말고 일으킨 늑대의 위용은 어마어마하다.
에드는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서, 칼레이드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