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41)
학기말 평가 (5)
“허허… 큭큭….”
웃음이 흘러나왔다. 해괴한 일이었다.
칼레이드는 전쟁터에서 아인족들을 수도 없이 잡아 죽여 왔다.
이제는 먼 과거가 되어 버린 전성기다. 하루하루를 살얼음 위에서 걷는 것 같았던 전쟁터 위의 삶은 절대 잊지 못한다.
전쟁터 위에서 만난 숙적들은 하나같이 눈에 독기가 서려 있다. 포기라는 선택지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려 상대와의 실력 차를 인정하고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그다음 찾아오는 것은 차가운 죽음이다.
“그래… 너는, 일단 어중간한 현역들보다는 확실히 강하군.”
칼레이드는 양손을 주머니에 푹 쑤셔 넣고, 비릿하게 웃었다.
취기도 숙취도 개운하게 가신 느낌이다. 그제야 에드의 눈에 서린 저 한기의 정체를 알 듯하다.
그것은… 수도 없이 사선을 넘어 본 자의 눈에만 서릴 수 있는 독기다.
한창 전쟁터를 거닐던 시절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저런 눈을 하고 있는 자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이제는 슬슬 잊혀 가던 그 날 선 감각이 칼레이드의 뒷목을 싸늘하게 만든다.
고위 바람 정령 메릴다.
그 집채만 한 늑대에게는 이 넓은 대련장조차도 비좁다.
거기다가 관객들까지 가득 차 있으니, 섣불리 날뛰다가는 주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말 것이다.
제아무리 승리를 위해서만 움직인다지만, 그 정도 선은 지킬 터.
그렇다면 강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고위 바람 정령일지라도, 그 힘을 활용하는 데에는 너무나도 큰 제약이 걸린다. 이 전장 자체가 그에게는 불리한 요소다.
사실 그건 칼레이드도 마찬가지였다.
고위 전격 마법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신중하게 조준해야만 했다. 저런 거대한 몸집의 늑대라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콰각!
칼레이드가 뒤로 크게 도약하면서 손에 마력을 모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에드가 도약해서 따라붙었다. 역시나 칼레이드의 예상대로, 에드는 메릴다를 물리적인 전투 수단으로 활용할 마음이 없다.
다만, 메릴다가 다루는 온갖 정령식과 바람 마법들은 여전히 까다롭다.
에드의 등 뒤에 태산처럼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는 늑대. 그 짐승이 한번 포효하자, 네일관의 커다란 대련장 전체에 마력이 담긴 진동이 울려 퍼졌다.
― ‘꺄아아아악!’
― ‘크윽…! 귀가 울려…!’
늑대로부터 수십 발의 바람 칼날이 쏟아져 나왔다. 한 발, 한 발의 위력도 문제지만, 그 횟수도 비범하다.
어지간한 마법사가 정신을 집중해서 한 발씩 쏴 대는 바람 칼날이, 도저히 다 회피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양이 되어 칼레이드를 습격했다.
중위 빙결 마법 ‘얼음벽’. 꽁꽁 얼어붙은 벽이 솟아올라 칼날을 막아 내지만, 절반 정도 막아 내었을 때 벽은 부서져 내려 버렸다.
―카가가각!
그 뒤로 남은 바람 칼날이 칼레이드의 몸을 갈라 버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억지로 마력을 짜내서 아슬아슬하게 구현한 방어 마법으로 남은 칼날들을 모두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이미 에드에게 거리를 내준 상태였다.
역수로 쥔 단검이 칼레이드를 향해 날아든다.
이미 방어 마법은 메릴다의 마법에 의해 무력화됐다.
칼레이드는 취기가 싹 가신 눈을 치켜뜨고 순식간에 몸을 비틀어, 에드의 손목을 낚아챘다. 마법을 쓴 것이 아닌, 직접 몸을 움직인 것이다.
그대로 에드는 붙잡힌 손목을 휙 하고 당겼다. 순간적으로 칼레이드의 무게 중심이 무너지지만, 한쪽 다리를 땅에 때려 박듯이 세운 다음 이를 악물고 에드의 힘을 버텨 냈다.
“근력이… 대단하군.”
어중이떠중이 마법사였다면 여기서 당했을 것이다. 칼레이드는 그리 확신했다.
그는 저 거대한 늑대를 코앞에서 마주해 놓고 아무런 감정적 동요가 없다. 칼레이드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다.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취할 움직임을 결정지었다.
그대로 칼레이드는 중위 불 마법 ‘일점 폭발’을 구현해 냈다.
속사에 특화된 일점 폭발은 상대보다 먼저 마법을 영창해 내야만 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마법이다.
그러나, 에드를 상대로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파아아아악!
에드의 품속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안 그래도 빠른 일점 폭발이지만, 마나 감응력이 극에 달한 칼레이드의 손에서 발현되자 정말 반응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수준의 속도다.
그러나, 에드는 반응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
―화아아악.
불꽃 속에서 에드의 팔이 불쑥 튀어나와 칼레이드의 옷깃을 잡아챘다. 단검은 다시 꽂아 넣은 모양이었다.
‘버텼다고…? 맨몸으로?’
불꽃 속에서 빠져나오는 에드의 모습엔 귀기가 서려 있다.
제아무리 중위 마법 중에서는 화력이 약한 편인 일점 폭발이라 할지라도, 맨몸으로 버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제야 칼레이드의 머릿속에 ‘정령의 가호’라는 가능성이 피어오른다.
화복의 가호.
본래 하위 정령에 의해 발현되는 가호다. 허나 위상 변이에 의해 중위 정령이 된 머그의 가호는 이제 중급 마법의 화력까지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낸다.
에드가 그대로 반대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에 마력을 주입하자, 머그의 정령식 ‘폭성’이 다시 한번 결투대를 휘감는다.
무릇 불꽃은 공평하게 세상을 태우는 성질을 가졌지만, 이번엔 그 영향력이 공평하지 않다.
에드는 일시적으로 불 마법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 상태다. 이 거대한 폭발은 오로지 칼레이드에게만 그 이빨을 드러낸다.
‘이놈… 물건이군….’
칼레이드는 흡족하게 웃으면서, 온몸의 마력을 끌어내어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한다.
‘그래… 패배해 보는 것도, 이놈한테는 좋은 경험일 테지.’
―콰아아아앙!
서로 간에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공을 주고받은 와중이다.
관객 대부분은 이미 둘의 움직임을 따라잡기를 포기했다. 시야를 가려 대는 마법들 사이에서 재빠르게 움직여 대는 통에 눈으로 좇기조차 힘들었다.
피어오른 불꽃과 먼지가 사라지고 나니… 칼레이드는 폭발에 휘말려 나가떨어져 있었다.
좌중으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로 에드가 선임 교수를 이겨 버린 것이다.
…그러나 에드는 방심을 풀지 않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방금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칼레이드는 에드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양의 마력을 끌어모은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
칼레이드는 못 막은 게 아니다, 안 막은 것이다. 그 이유는 뻔했다.
허를 찌르기 위해서다.
―화아아아악.
에드의 중심으로부터 발현된 바람이 그의 몸을 감쌌다.
에드가 발현한 마법이 아니다. 그의 몸을 두르고 있는 ‘풍랑의 가호’다.
의식 밖에서의 공격을 막아 주는 풍랑의 가호가 발현되었다는 것은, 에드가 캐치하지 못한 공격이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다.
에드는 미간을 좁히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여섯 발의 얼음 창이 그의 등을 찌르려다가 가호에 저지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자, 눈앞에 칼레이드 교수의 얼굴이 들이밀어져 있었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전쟁터에서는… 한순간의 방심이 목숨을 앗아 가는 법이지.”
정령식 ― 폭성을 최소한의 마력 방어만으로 버텨 내고, 나머지 마력은 전부 얼음 창을 구현해 내는 데에 투자한 것이다.
“너는 그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군. 딱 한 걸음 모자랐지만.”
그렇게 무리하게 얼음 창을 구현해 낸 이유는, 메릴다의 가호를 미리 빼 두기 위함이다.
머그가 발현하는 화복의 가호를 보고 나서, 메릴다가 발현하는 풍랑의 가호까지 두르고 있음을 미리 예상한 것이다.
양 주머니에 손을 푹 꽂아 넣고, 에드의 면전에서 피식 웃는 칼레이드 교수.
그는 이미 에드의 정신이 뒤쪽으로 쏠린 틈에 다음 마법을 발현한 상태다.
고위 빙결 마법 ‘영구 동토’.
피아를 구분 않고, 그저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전부 얼려 버리는 단순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때에 따라선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일 때가 많다.
대련장 바닥은 이미 전부 얼어붙어 있었다. 에드가 변수를 창출하기 위해 뿌려 두었던 마공 학용품도 전부 얼어붙어 고철 덩어리가 되었고, 뒤를 보면 메릴다조차도 거대한 얼음 조각상이 되어서 미동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에드가 그 마법에 당하지 않은 것은, 재빠르게 튀어나온 중위 불 정령 머그가 냉기를 날려 보냈기 때문이다.
허나, 제아무리 상성 우위가 있다고 한들 중위 정령 선에서 고위 마법을 완전히 무력화할 수는 없었다.
에드의 발목까지는 완전히 얼어붙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 상태였다.
“끝내자.”
그의 손에서 마무리를 짓기 위한 마법이 발현되었다. 그러나 에드가 자기 품속에 손을 집어넣는 게 훨씬 빨랐다.
―파아아악!
충격 강화 파동구. 기초적이지만 위력이 확실한 마공학 용품이었다.
극한의 극한까지 와서 위기 탈출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품속에 남겨 두었던 것이다.
칼레이드의 몸이 충격에 튕겨 나가고, 에드가 마력을 끌어내어서 발의 얼음을 녹이기 시작했다.
“크윽… 무슨… 까도 까도 계속 뭐가 튀어나오네…!”
―쩌저저적! 쩍!
메릴다를 감싸고 있는 얼음 또한 조금씩 갈라져 가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고위 마법이라 할지라도, 고위 바람 정령을 상대로는 잠시간 발을 묶어 두는 게 한계다.
칼레이드는 다시 몸을 일으키고선 에드를 노려보았다.
발을 묶는 얼음은 아직까진 에드의 몸을 꽉 묶어 놓고 있다. 재빠르게 녹여내려 하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메릴다 역시 곧 있으면 다시 몸의 자유를 얻게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풍랑의 가호까지 빼놓았다. 움직임도 자유롭지 않다. 가장 까다로운 고위 바람 정령까지 일시적으로 제압해 두었다.
마무리를 짓는다면 바로 지금이다. 칼레이드는 재빠르게 다음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중위 빙결 마법 ‘얼음 창’. 열댓 개가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수의 얼음 창이 그의 등 뒤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쓰던 얼음 창과는 그 규모부터가 다르다.
에드는 허리를 숙인 채 이를 악물고 발 근처에 마력을 붓고 있었다. 불 원소 마법을 계속 발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고위 마법으로 인해 생겨난 얼음은 그렇게 쉽게 녹지 않는다.
관객들은 호흡하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긴장했다. 저렇게 많은 얼음 창에 직격당한다면, 누가 봐도 크게 다칠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이미 독기가 오를 만큼 오른 칼레이드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심지어 에드라면 이마저도 어떻게든 대처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 됐든 지금이 바로 승부처다.
지금이 아니라면, 메릴다가 다시 몸의 자유를 얻으면서 전황이 더욱더 까다로워진다.
완전히 제압당한 에드를 향해 얼음 창이 날아든다.
에드가 그 방향으로 고개를 확 치켜든 순간――
―카앙!
――너클을 낀 남자 하나가 대련장 위로 난입했다.
* * *
―카가가가강! 파바박!
수많은 얼음 창이 전부 튕겨 나갔다. 내지르는 주먹의 속도가 거의 총알에 비견할 만했다.
짧게 깎은 머리에는 이리저리 스크래치가 나 있다. 어마어마하게 넓고 웅대한 체격이 압권이었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곰 한 마리가 날뛰고 있는 것 같다.
에드는 이미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실베니아 아카데미 4학년 수석이자, 현 학생회 최고 행동위원인 남자. 다이크 엘펠란이었다.
“칼레이드 교수님.”
얼음 창을 전부 튕겨 내고 난 뒤, 다이크는 그 사이에 서서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이건… 너무 선을 넘으신 것 같습니다. 이미 에드 로스테일러는 전투 불능입니다.”
“에드 오라버니…!”
뒤따라서 학생회장 타냐 로스테일러가 대련장 위로 올라왔다.
다리가 얼어붙은 에드 쪽으로 재빨리 달려 나가더니, 에드의 팔을 잡아끌고는 안색을 확인했다.
“에드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크게 다친 데 있어요…?!”
보다 못한 학생회 쪽에서 결국 난입한 것이다.
이미 학생들은 위화감을 잔뜩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학기말 실기 평가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본격적인 전투였다.
중간부터 칼레이드 교수도 흥이 올라 시험으로써의 선을 지키지 못한 점. 이건 학사 쪽에 보고가 들어가면 명백히 징계 사유다.
칼레이드도 그 사실을 자각했는지 한숨을 푹 흘렸다. 한창 전장에 나뒹굴던 때가 기억이 나서 너무 나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칼레이드는 턱을 몇 번 쓸고는 에드 쪽을 쳐다보았다.
끝까지 발밑의 얼음을 녹여 내 보려고 무릎을 꿇고 있던 자세 그대로다.
학생회장 타냐가 울먹거리는 얼굴로 에드에게 달려 나가서, 손수건을 꺼내 그의 얼굴에 묻은 흙먼지들을 닦아 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자기가 얼마나 이성을 놓은 상태였는지가 자각되고 만다.
“에휴….”
“칼레이드 교수님.”
“나이 처먹을 대로 처먹어 놓고 이런 짓에 피가 끓고 있다니. 역시 사내새끼들 나이 처먹어도 다 애라는 아내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리 자조하며, 칼레이드는 마력을 전부 흩어서 없애 버렸다.
에드의 앞에 서 있던 칼레이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를 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됐다, 이해는 무슨. 시말서 쓸 생각에 벌써 신나는구나.”
다이크는 그렇게 정중히 인사를 마친 뒤, 에드의 상태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얼음 창이 날아들었다면 백 퍼센트 치명타였을 것이다. 꽤나 큰 공포감이 엄습했을 터.
그런 에드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라도 뭐라 말을 꺼내 보려는 순간….
―화아악.
에드의 한쪽 손을 중심으로, 검붉은 마력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다이크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물론 타냐도 마찬가지였다.
칼레이드조차도 이상함을 느끼고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에드 로스테일러. 너 지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이크 선배님.”
에드는 정중히 인사를 보내고, 손을 휙휙 털었다.
다이크는 그대로 에드의 발을 묶고 있는 얼음을 보았다. 아주 조금조차도 녹아 있지 않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불 원소 마법을 통해 녹이려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얼음을 못 녹인 것이 아니라, 안 녹이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러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가리고 성위 마력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성위 마력은 일반적인 마력과는 달리 그 색이 확연하게 붉다. 그렇기에, 그 마력의 색조만 보더라도 상대가 성위 마력을 쓰려 한다는 사실을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래서 에드는 얼음을 녹이는 척을 하면서 몰래 손을 감춰 성위 마력을 끌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한순간, 날아드는 그 얼음 창을… ‘강제 집결’을 통해 칼레이드를 끌어들여 막을 셈이었던 것이다. 그의 몸을 방패 삼아서.
그리고 다른 쪽 손에 쥐고 있는 단검의 정령식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반대 손에는 마력이 주입된 단검을 꽉 들고 있었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날아드는 얼음 창. 갑자기 안색을 바꾸며 일어서서 성위 마법을 발하는 에드. 빨려 들어간 칼레이드의 눈앞에 얼음 창이 날아들고, 어떻게든 대처해 낸다고 해도 등 뒤에는 정령식 단검을 든 에드가 있다.
마지막의 마지막, 제압당한 상태에서까지 그 상황을 이용하려 드는 임기응변.
칼레이드는 그 모습을 보고 나서 깨달았다. 마지막에 다이크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승패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마력적인 능력이나, 전장 경험, 전투 능력 자체는 명백히 칼레이드가 위다.
그러나, 매 순간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최적의 수를 도출해 내는 이 대처 능력은… 칼레이드조차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에드 로스테일러.”
칼레이드는 외투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 넣고, 여전히 그 폐인 같은 눈을 부라리며 이야기했다.
“너도 진짜, 어지간히 미친놈이군.”
“…칭찬으로 들으면 되겠습니까?”
“그럼 욕이겠냐? 아, 욕이긴 하군.”
칼레이드 교수는 헛웃음을 짓고서는 관중석을 쳐다보았다. 다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만한 수준의 결투다. 단순히 학기말 시험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본격적으로 치고받고 싸웠다.
심지어 고위 정령까지 꺼내고, 선임 원소학 교수와 호각으로 수를 주고받는 모습까지 나오지 않았나. 이쯤 되면 불만을 가질 인간도 없을 터.
“원소학 실기 시험은 만점이다. 에드 로스테일러.”
원소학은 마법부의 시험 분야 중에서도 굉장히 큰 비중을 가진 핵심 과목 중 하나다.
“필기만 적절히 잘 봤다면, 3학년 수석 자리도 꿈은 아니겠구나.”
좌중에 웅성거림이 오갔다. 실베니아 아카데미 3학년 수석의 자리는, 누가 뭐라 해도 부동의 1등이 존재하는 자리였다.
“뭐, 지금 3학년 수석 자리 먹고 있는 그 정령사라는 애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던데… 네가 수석 자리를 먹을 수 있을지 어떨진 모르겠다만….”
칼레이드 또한 예니카 페일로버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이 실베니아 학사의 유명인이다.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소녀로 통하지 않았던가. 좋은 감응력을 타고 나서,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성적을 내는 장밋빛 길을 걸어온 소녀다.
칼레이드는 그 소녀를 떠올리고, 척 봐도 진흙탕 속에서 이 악물고 버텨 온 에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마다 가치 판단의 기준은 다르다. 그러니, 칼레이드의 의견이 모든 학사 교수진의 의견을 대변할 수는 없다. 오로지 그 자신의 의견일 뿐이다.
“적어도 나는, 네가 더 수석 자리에 어울린다 생각되는군.”
그렇게 말하고, 칼레이드 교수는 비틀거리며 대련장을 내려갔다.
그사이를 못 참고 연초를 말아서 피워 올리고 있었다.
“뭐, 어쨌든 학사 생활 하면서 힘들거나, 클레어 조교수가 개같이 굴면 나한테 꼰지르러 와라.
내가 누구 갈구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니까.
”
손을 휘적거리면서 인사를 하고서는, 다음 시험 전까지 좀 쉴 생각인지 복도 쪽으로 비틀대며 나갔다.
“그땐 고위 마법을 다루는 법도 좀 알려 주지.”
참으로 칼레이드다운 언행이었다.
* * *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요…?!”
타냐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계속해서 화를 냈다.
“학사 일정 진행되는 시간에 술에 잔뜩 취해 돌아다니질 않나, 실기 시험 한답시고 고위 마법을 때려 박지 않나…! 이거 진짜 학사에 정식으로 항의해야겠어요! 제가 책임지고 이번 일에 대해 추궁할게요…!”
노발대발 화를 내는 타냐를 옆에 두고, 나는 학생회관을 나왔다.
무려 학생회장의 부축을 받으면서 관객석 사이를 걸어 나오는 경험은 썩 유쾌하질 않았다. 웅성웅성 대며 쳐다보는 것이 꼭 유명 인사라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하긴, 어딜 가든 대접받는 학생회장님이 직접 나서서 부축을 해 대고 있으니, 유독 호들갑처럼 보이긴 하겠지. 나로서는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학생회장님.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아니, 됐어요… 다이크 선배님은 너무 체격이 커서 오히려 오라버니가 불편하잖아요.”
부들부들 다리를 떨면서도 이 악물고 나를 부축하는 모습이 마치 자그마한 동물 같아서, 나도 다이크도 어이없어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다이크 선배님. 솔직히 좀 쪼들리긴 했거든요.”
“말은 잘하네. 대처할 준비 다 끝내 놓고 있었으면서. 오히려 내가 올라가서 방해된 거 아니냐?”
“실기 점수 잘 받았으면 됐죠. 거기서 더 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렇게 말한 뒤, 타냐의 부축을 받아 오벨관까지 쭉 나아갔다. 그쪽에서 기본적인 응급 처치를 해 주겠다고 한사코 호들갑을 떨어 대는 통에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군. 에드 로스테일러. 서로 존재는 인식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너야 워낙 화려하게 소문난 녀석이고, 나야 뭐 1학년 때부터 쭉 수석이었으니까.”
다이크 엘펠란은 내게 휙 손을 내밀었다.
“보아하니, 이제 슬슬 3학년 수석 자리의 가시권까지 올라온 것 같은데. 조만간 수석 회의 자리에서 예니카 대신 네가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구나.”
나는 다이크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글쎄요. 아시다시피 예니카가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서.”
“뭐, 방학 전에는 결말이 나겠지. 내가 봤을 땐 다음 수석은 너다. 예니카 그 애는 착하긴 하지만… 그 뭐라고 해야 할까.”
다이크는 제 눈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피식 웃었다.
“너한테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독기가 없어.”
“그게 매력인 친구이기도 하고요.”
“듣자 하니, 너 예니카랑 많이 친하다 했지. 이런… 말실수를 했나. 뭐, 험담한 건 아니다.”
다이크는 어깨를 으쓱대고는 오벨관을 올려다보았다. 학생회원들의 활동 중심지와도 같은 건물이었다.
“후배라는 놈들이 하나둘씩 치고 올라오니, 나도 슬슬 위기감이 느껴지는구만….”
다이크는 곰처럼 너털웃음을 흘리고서는, 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을 허탈하게 올려다보았다.
“다음 주 중에 성적 발표도 마무리되고, 이제 방학인가…. 졸업 준비하려면 정신이 없겠구나….”
다이크는 그리 중얼거리며, 앞서 나갔다.
어찌 보면 내년 이맘때쯤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 괜스레 각별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