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43)
금의환향 (1)
“로스테일러 저택이라… 거진 5년 만이네요, 아바마마.”
불꽃처럼 타오르던 황권 계승 분쟁도 몇 년이 이어지니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 가는 듯했다.
어느 날, 불현듯 린돈 황태자가 황위 계승권을 포기해 버린 뒤로 길게 이어져 내려온 신경전이었다.
클로엘 황제 슬하의 세 황녀 사이에서는 모종의 알력 다툼도, 세력 분쟁도 있었으나… 이제는 그 또한 옛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3황녀 페니아는 대륙 최남단 구석의 아켄섬에 처박혀 버렸고, 그 뒤로 2황녀 페르시카 또한 황실 도서관에 박혀 나오질 않았다.
권력욕만으로 똘똘 뭉쳐 접근하는 여러 간신배들에게 환멸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본격적인 싸움 앞에서 숨을 고르는 것뿐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1황녀 셀라하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명하신다면, 다녀와야겠지요. 로스테일러 가문은 황실에 많은 공헌을 하는 명문가이니만큼, 황실에서도 체면을 세워 주어야 할 필요가 있으니.”
차분하게 내려앉은 겨울 공기처럼,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지는 소녀다.
거만함도, 요란함도 없다. 그저 얼음으로 만든 세공품 같은 섬세한 기품만이 몸을 감돈다.
머리칼마저도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아, 마치 살얼음이 낀 눈송이다.
소녀의 체구와 비교될 정도로 거대한 알현실의 중앙에는 클로엘 제국의 지배자이자, 희대의 성군 클로엘 황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풍스럽게 깔린 비단 카펫이 황제의 옥좌로부터 뻗어져 나와, 셀라하의 발밑까지 쭉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창을 세우고 근엄하게 서 있는 황실 근위대는 미동조차도 없다. 황제에게 간언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측근들 또한 알현실의 한편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준비 잘하고, 시간 맞춰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클로엘 황제는 제1황녀 셀라하에게 로스테일러 저택에 다녀올 것을 명했다.
아마 최측근 크레핀 로스테일러와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는 듯했다.
“시기가 맞물리지 않아, 페니아를 만나지 못하는 건 아쉬운 일이네요.”
서리의 황녀 셀라하는 그리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클로엘 황제의 양옆에 자리한 최측근들 사이에서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애의 황녀 페니아 엘리어스 클로엘이 면학을 위해 황실을 떠난 지도 1년이 한참 넘었다.
제아무리 페니아 황녀를 지지하는 세력이 드높았다 할지라도, 본인의 몸이 멀어지면 세력조차 미약해지는 법이다.
모처럼 방학을 맞아 페니아 황녀가 돌아오는 이 시기, 만약 페니아를 지지하는 세력이 이 틈을 타 다시 준동하고, 충성심을 가다듬는다면 셀라하에게는 썩 좋은 일이 아니다.
셀라하는 황궁에 남아 상황을 보고 싶었지만, 이런 시기에 페니아 황녀와 엇갈려서 머나먼 로스테일러 공작령까지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썩 달갑지 않다.
페니아 본인은 그리 권력욕이 없는 편이라 말하지만, 셀라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페니아가 황실로 돌아오는 이 중요한 시기에 자리를 비우도록 명하는 클로엘 황제의 지시가 썩 달갑지는 않았다. 물론, 셀라하가 그걸 거부할 권리는 없다.
“오랜만에 페니아와 만나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겠으나, 네 입장에선 로스테일러 공작령이 훨씬 더 큰 기회가 되겠지.”
혹시 페니아 황녀와 자신을 억지로 떼어 놓는 것이냐. 그런 질문이 내포된 셀라하의 말에, 클로엘 황제는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
“로스테일러 저택의 사교회가 어떤 자리인지는 셀라하 너도 잘 알겠지.”
셀라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스테일러 가문의 가주, 크레핀 로스테일러는 그런 사교회를 여는 것을 그리 즐기진 않는다.
그러나 대륙 최고의 권력가라는 이름이 있다. 그만큼 여러 귀족들을 두루 사귀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사교 행사는 한번 열 때 으리으리하게 연다.
변방의 약소 귀족들에게는 그야말로 금쪽같은 기회다. 온갖 유력가와 귀족가의 사람들이 그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무척이나 드물다.
본래는 황실에서도 최측근을 보내어 자리를 빛내는 관례가 있었지만, 올해는 아예 파견자를 한 단계 격상시켜서 제1황녀가 직접 나간다.
긴 세월 동안 클로엘 황실과 로스테일러 가문에는 깊은 교류가 있었기에, 그 연대를 과시하기 위함이다.
그 상징으로 활용되는 것에 딱히 기분이 상하진 않는다. 무릇 황녀의 자리란 실권보다는 상징성이 더 강한 자리다. 셀라하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이번 로스테일러 사교회는 기회다.
황제가 되기 위해선, 로스테일러 가문은 반드시 다루는 법을 철저히 익혀야만 하는 도구다. 로스테일러 가문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고, 그 구성원과 교류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교회는 무려 닷새에 걸쳐 진행된다, 하나같이 바쁜 참가자들의 일정에 쉽게 맞춰 주기 위해서다.
초청 예정인 사람들의 면면만 살펴보아도 제국을 움직이는 굵직한 인사들이 가득했다. 당장 생각나는 사람만 해도 하나같이 거물들이다.
제국 남단의 최대 곡창 지대를 혼자서 관리하는 자훌 변경백.
엘테 상회의 실무적인 자금 흐름을 모두 책임지는 투자가 롤란드.
최고의 명문 무가 중 하나인 노튼데일 가문의 가주 에비안 노튼데일.
연금술 도시 크레트의 연금술사들에게 ‘아버지’로 통하는 희대의 혁신가 발베른.
텔로스 교단의 꼭대기에서 누구보다 고귀한 신의 사자로 칭송받는 성녀 클라리스.
마법 명문가이자 ‘마녀의 집’으로 통하는 블룸리버 가문의 가주 시니르 블룸리버.
북방 초원 지대를 호령하며 가장 많은 아인족을 죽인 자로 유명한 군단장 매그너스 캘러모어.
클로엘 황실의 제1황녀로, 현재 꽤나 강력한 차기 황권주자로 부상한 서리의 황녀 셀라하까지.
물론, 로스테일러 저택이니만큼 로스테일러 가문 출신의 인물들도 모두 참석할 테다.
가장 고귀한 자, 가주 크레핀 로스테일러. 그리고 그 후계자, 타냐 로스테일러까지.
거기다 크레핀 본인이 말하기로는, 자신의 소중한 아들인 에드 로스테일러를 이번 기회에 복권시킬 계획까지 잡고 있다고 한다.
고귀하디 고귀한 페니아 황녀를 욕보인 죄로 본인이 직접 내쫓은 아들 아닌가. 이제 와서 그를 다시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는데, 그 의도를 알 수가 없다.
‘뭐… 현재 실질적인 후계자는 그 동생인 타냐 로스테일러니….’
셀라하는 알현실을 나와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황실의 중앙 궁전을 빠져나왔다.
으리으리한 규모로 예쁘게 꾸며진 황실 정원을 가로지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만큼, 모든 사람들을 다 포섭할 수는 없다.
최대한 많이 얼굴을 터놓고, 넓게 사귀어 보려 노력하겠지만… 우선순위를 정해 둘 필요는 있다.
무력, 자금력, 그리고 종교적 지지까지.
북방 군단장 매그너스 캘러모어, 엘테 상회와 연줄이 있는 투자가 롤란드, 그리고 교단의 성녀 클라리스 정도로 좁혀진다.
거기다가 로스테일러 가문의 사람들과 한 번 더 안면을 접해 둘 필요도 있다. 현재 후계자 자리에 올라가 있는 타냐 로스테일러와는 안면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터 둘 생각이다.
“흐음….”
이쯤에서 생각나는 건, 이번에 복권하게 된다는 에드 로스테일러다.
크레핀 로스테일러가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셀라하가 오래전에 듣기론, 그는 도저히 구제할 길이 없는 망나니 중의 망나니로 소문이 나 있었다.
어쨌든 근 2년 가까이 몰락 귀족으로 땅바닥에서 살던 남자 아니던가.
기품도 권위도 전부 잃었을 테고, 무엇보다 가문의 위광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지옥 같은지 충분히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 자일수록 가문을 다스리기보다는, 그저 가문에 매달리는 것에 급급한 법이다.
몇 년씩이나 맨바닥에 굴렀으므로 가문 내 입지도 애매할 테고, 여러 유력가와 접할 기회도 없었을 테니 사교회에서도 겉돌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가능성이 보이면 미리 투자해 보자는 생각으로 안면을 터 둘까 싶지만… 주어진 시간을 생각해 보면 그에게 투자할 시간이 날지 알 수가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영 중요성이 떨어지는 자다.
“셀라하 황녀님. 로스테일러 공작령으로 행차하실 준비를 하라 전해 두겠습니다.”
“그러세요.”
셀라하는 근위대에게 그리 전해 둔 뒤, 궁전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지금 셀라하가 가장 신경 쓰이는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페니아 황녀다.
방학 동안에 황궁으로 돌아온 그녀가 무슨 일을 할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셀라하는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 아니던가.
괜스레 불안한 느낌이 들어, 셀라하는 측근들에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지시하기로 마음먹었다.
* *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들어오십시오.”
페니아 황녀의 호위대장, 클레르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하고 황족 숙소의 정문을 가로질러서 들어갔다. 내 뒤를 따라서 들어온 타냐가 쭈뼛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만 꼭 다른 세상인 것 같네요, 오라버니.”
황족 숙소에 처음 들어와 보는 타냐는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혹시나 품위 없어 보였을까 봐 얼른 목을 가다듬었다.
아켄섬에서 최고로 호화롭고 비싼 시설은 오필리스관이다. 단순히 지출 비용으로만 생각하면 황족 숙소가 아슬아슬하게 그다음이다.
다만, 규모의 차이가 있다.
오필리스관은 온갖 귀족가 학생들이 다 같이 쓰기 위해 만든 으리으리한 기숙사이지만, 이 황족 숙소는 오롯이 페니아 황녀만을 위해 건설된 곳이다.
오필리스관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규모이지만, 단 한 사람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사치인 것이다.
호위병들이 지키는 정문을 지나, 정원을 가로질러서, 저택처럼 생긴 숙소에 들어가는 데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그리고 깔끔하고 호화로워 보이는 복도를 거쳐 한참을 들어가고 나서야 페니아 황녀의 접견실이 보였다.
“자, 잠시만요….”
타냐는 접견실에 들어서기 전, 얼른 머릿결을 가다듬고 옷매무새를 다시 정리했다.
이미 몇 번이고 페니아 황녀를 만나 봤을 타냐다. 다만, 학생회장이 된 뒤로 정식으로 찾아온 적은 처음인 것이다.
타냐가 황족 숙소 쪽에 서신을 작성한 것이 바로 어제 오전이다.
여름 방학이 되고, 우리 로스테일러 남매는 본가로 돌아간다. 다만, 그 전에 페니아 황녀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게 이야기의 논조였다.
페니아 황녀는 쉽게 접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허나 학생회장이라는 자리 탓인지, 아니면 그저 우리의 이름을 보고 만나 준 것인지 의외로 흔쾌히 수락했다.
그 결과, 우리 로스테일러 남매는 이른 아침부터 황족 숙소에 찾아온 것이다.
접견실의 문이 열리자,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소파에 홀로 앉아 있는 페니아 황녀의 모습이 보였다.
은은한 분위기가 풍기는 레이스 드레스. 그 옷 선을 따라 백금발 머릿결이 쭉 뻗어 내려온다.
소파의 크기는 소녀의 체구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으리으리하다.
고결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독해 보인다.
“안녕하십니까, 페니아 황녀님. 이렇게 자리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먼저 인사를 올리자, 타냐도 얼른 따라서 고개를 푹 숙였다.
페니아 황녀는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인 뒤, 건너편 소파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나랑 타냐는 군말 않고 가서 마주 앉았다.
“건강해 보이시네요, 에드 로스테일러. 그리고 타냐 양.”
“네. 황녀님께서는 그간 평안하셨는지?”
“…….”
페니아 황녀는 잠시 대답하지 않고 다시금 시선을 내리깔았다.
“늘 그렇듯 똑같아요.”
숙소의 집사가 정중히 찾아와 차를 내려놓았다. 타냐는 얼른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페니아 황녀님. 저희가 오늘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제 권위가 필요하신 거겠지요.”
페니아는 뜸 들이지 않고 본론을 꿰뚫고 들어왔다.
그녀의 눈동자엔 나와 타냐가 어떻게 비치는지, 어떤 식으로 우리를 통찰하고 있는지.
그런 것은 전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적대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페니아 황녀의 어조는 한결 나긋하기까지 했다.
“에드 로스테일러 당신을 파문시킨 일등 공신이 바로 저니까, 제 인정이 있으면 당신이 복권하는 것도 한층 수월해지겠죠.”
다소 적나라하게 말한 감이 있다.
어쨌든 내가 복권을 해야겠으니 좀 밀어 달라는 이야기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말했듯, 로스테일러 저택에 돌아가는 것은 내 입장에선 큰 도박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무력이야 루시와 함께 가기로 했으니 큰 문제는 없다 하더라도, 무력 하나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
귀족들 사이의 문화에서 결국 대부분의 문제는 ‘권위’로 해결된다.
드높고 고귀한 자의 인정은 그 사람에게 쉽사리 손대기 힘들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로스테일러 가문 쪽에 안부 인사를 보낸 지가 오래되었네요. 에드 로스테일러, 당신이 대신해서 제 친필 서신을 크레핀 경에게 전달해 주시겠어요?”
페니아는 긴말 하지 않았다. 애초에 서신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시종이 천천히 다가와서 내민 페니아 황녀의 친서에는… 호화로운 금테가 잔뜩 둘러져 있고, 클로엘 황실의 인장도 붙어 있었다.
황족의 친서는 아무나 그 권리를 위임받아 전달할 수 없다. 이 한 장 친서가 가지는 의미는 생각보다 무겁다.
중요한 점은 밀랍으로 봉인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편지가 봉인되어 있지 않다는 건, 발신인이 전달자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중간에 편지에 아무런 장난질도 하지 않으리라 깊게 믿고 있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타인에게 신뢰하는 사람을 소개할 때 쓰인 고전적인 방법이다. 쓸데없이 복잡한 예법이지만, 황족의 예라는 게 항상 그랬다.
사실상 페니아 황녀의 인정을 받았으며, 그녀의 권위를 위임받아 온 것이나 다름없다. 이 서신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전달자를 함부로 손댈 수 없도록 하는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위임장은 굳이 써 드리진 않았어요. 그 정도만 들고 가도 금의환향일 테죠.”
“이리 쉽게 도와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좀 더… 협상을 할 준비는 되어 있었습니다만.”
“…….”
그 말에 페니아 황녀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페니아 황녀는 로스테일러 가문에 회의적인 시선을 가진 인물이다, 그 점을 파고들어, 로스테일러 가문의 내부 사정을 캐낼 생각이라는 의중을 밝힐 생각이었다.
그러나, 페니아 황녀는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기도 전에 시원스럽게 협조해 준 것이다.
다만 뭐라 더 말을 잇지는 않았다. 말을 던진 내가 뻘쭘해질 정도로, 그 뒤로 한동안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페니아 황녀는 그렇게 한참 동안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만 있었다.
묘하게 아련해 보이는 듯한 시선이 무거워, 달리 뭐라 대화할 만한 주제를 찾아보려 했지만… 마땅치가 않았다.
* * *
― ‘로스테일러 저택 쪽에서 보낸 마차가 이틀쯤 뒤에 도착할 거예요.’
타냐는 그렇게 말하고, 오필리스관 쪽으로 돌아갔다. 이젠 정말 귀가할 시기가 된 것이다.
저택에 돌아가 있는 동안 캠프를 관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장기간 자리를 비워도 괜찮도록 여러 조치를 취해 둘 필요가 있었다.
오두막 문에는 잠금쇠를 만들어서 닫아걸어 두었고, 바깥에 널브러진 도구도 모두 정리했다.
숲 여기저기에 설치해 둔 덫도 모두 회수해서 기름칠을 한 뒤 보관함에 넣어야만 했고, 식재료들은 장기 보관이 가능한 것들을 제외하곤 모두 처리해 두기로 했다.
오늘 중에 전부 마무리 짓자고 생각한 뒤, 캠프로 돌아왔을 무렵이다.
“에, 에드. 왔네에헤―!”
불가에 앉아 있던 예니카가 묘하게 호들갑을 떠는 듯한 어조로 마주해 주었다.
능청스럽게 호들갑을 떤답시고 어조를 높였다가 삑사리가 난 것이, 척 봐도 긴장하고 있다.
“이것 봐, 벨 씨가 귀한 허브를 나눠 주셔서 카레에 넣었거든―! 아까 간 보면서 먹어 봤는데에~… 향이 정말 대단해애―!”
“…….”
반달 눈이 되어 예니카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자, 예니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식은땀을 삐질거렸다.
“너… 왜 그렇게 내 눈치를 보고 있냐….”
히끅대며 딸꾹질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예니카 페일로버 그 자체다.
내가 정곡을 찔렀는지, 예니카는 순간적으로 시선을 휙 돌렸다.
“…….”
“또 쓸데없는 걸로 마음 쓰고 있냐…?”
“아니, 그 있잖아….”
학기말 시험이 끝난 뒤로, 예니카는 쭉 이런 식이었던 것이다.
예니카는 자기 무릎을 안고는 턱을 그 위에 얹었다. 하여튼 주눅들어 있을 때는 늘 똑같은 모습이다.
“난 말야…. 에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가다 보면 전혀 모르는 것 같아….”
“나?”
신발을 벗어서 안의 먼지를 탁탁 털며 이야기했다.
“장담하건대, 이 학사 안에서 너만큼 나랑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또 없을걸.”
“몸이 가까우면 뭐 해…. 에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는지는 전혀 모르는데.”
예니카는 그러고선 한숨을 푹푹 내쉬는 거다. 얘가 또 왜 이러나 싶다가, 문득 예상되는 바가 하나 떠올랐다.
“너 수석 양보해 준 거 때문에 그러냐? 나한테 실례한 거 같아서?”
“허읍…!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다섯 번이나 부정한 거 보면 확실한데….”
신발을 털어 대다 보니 먼지가 피어올랐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휙휙 휘저었다. 하여튼 숲속에서는 조금만 활발하게 돌아다녀도 금방 의복이 더러워진다.
“처음부터 처신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다 그렇게 배우는 거지.”
“…있잖아, 에드… 그거랑 별개로 이야기하는 건데….”
“……?”
“에드, 나한테 실례 한번 해 주면 안 돼? 실수라든가… 뭐, 실언이라든가….”
내가 세상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예니카를 쳐다보자, 예니카는 팔을 붕붕 휘저었다. 세상 미안하다는 표정이라 이쪽이 더 송구스러울 지경이었다.
“호, 혹시 내가 방금 한 말도 실수였어?”
“너 진짜 뭐 잘못 먹었냐?”
결국 예니카는 눈을 질끈 감고서 털어놓는 것이다.
“나, 나도 머리가 터질 것 같단 말야. 그냥 자꾸 나쁜 생각이 들었어….”
“나쁜 생각?”
“…에드 네가 날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거기서는 역시 나도 말문이 막혔다.
예니카는 천성이 착하고 선한 사람이지만, 가끔 그런 태도가 오히려 남에게 실례로 다가가는 경우가 있다.
착하고 잘난 사람일수록 더 그런 경우가 잦아, 그런 식으로 타인의 미움을 산 경험이 아예 없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기에, 예니카는 이토록 허둥지둥거리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나마저도 그렇게 될까 봐.
“걱정도 팔자다.”
“…….”
“네가 다소 실례해도, 내가 너를 그리 쉽게 싫어하겠냐. 나한테 너는 정말 각별한 사람이야.”
예니카는 순간적으로 숨을 휙 몰아쉬더니, 은근하게 시선을 들어서 내 눈치를 보았다. 치켜뜬 눈가에 글썽이는 눈물을 보니, 본인 딴에는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이러면 마치 내가 평소에 예니카에게 못된 짓을 하는 것 같지 않나. 나름 잘 대해 주려고 항상 노력하는 편이건만.
“어쨌든… 할 말이 있다. 너, 이번 방학 때 본가 안 돌아가지?”
“응?”
“혹시 간단한 의뢰 같은 거 받을 맘 없냐?”
* * *
이틀 뒤, 맥세스 대교를 호화로운 마차 하나가 건너왔다.
정문 쪽에서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기다리고 있던 나는 타냐의 짐을 받아서 들어 주었다.
“꽤 큰 마차를 보냈네요. 하긴 마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 테니, 되도록 크고 편한 마차가 좋긴 하죠.”
“간밤에 잠은 잘 잤고?”
“아뇨, 마차에서 자려고 일을 좀 했어요. 오라버니도 좀 피곤해 보이네요.”
“캠프 일 마무리하고 오느라 나도 좀 피곤한 상태야.”
“네에, 뭐… 근데….”
타냐는 맥세스 대교를 넘어오는 마차를 바라보다가, 내 쪽으로 휙 달라붙어서 귓속말을 했다.
“분위기가 너무 무서운데, 혹시 마차에서도 쭉 이렇게 가나요…?”
고개를 휙 돌려서 뒤를 보니, 두 소녀가 나란히 서 있었다.
흰 블라우스에 감청색 플레어스커트, 갈색 숄을 두르고 있는 연분홍빛 머리칼의 소녀가 하나, 그리고 대충 챙겨 입은 셔츠와 스커트에 백발을 늘어뜨리고 있는 왜소한 체구의 소녀가 하나.
말할 것도 없이, 예니카 페일로버와 루시 메이릴이다.
둘은 서로를 보며 의아한 듯이… 쟤가 대체 왜 여기에 있냐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 그렇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