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60)
크레핀 토벌전 (11)
최고위 정령이 잡아먹는 마력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다.
고위 정령을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몸의 마력이 다 빨려 나가는 기분이 드는데, 최고위 정령은 강림해 있는 단 한 순간만으로도 몸의 마력을 바닥까지 다 긁어 버리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최고위 불 정령 ‘테오르피스’를 온전히 소환해 낸 것도 아니다. 그 머리만을 구현해 불을 한 번 뿜어내고, 가호를 한 번 발현한 것뿐이다.
시간으로 되면 단 10초도 되지 않을 시간. 상공에 구현된 법진에서부터 방사된 불꽃이 저택 부지를 반으로 가르는 그 잠깐의 순간.
휘익, 하고 뻗어져 나간 불꽃은 밤하늘로 높게 솟아올랐다.
저택 부지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 광경을 보았다.
로스테일러 저택 부지 바깥에서 귀빈들을 보호하고 있던 성당기사단과 황실 친위대. 그리고 내부에 진입한 별동대들은 물론이고, 중앙 정원 쪽으로 가고 있는 페니아 황녀와 예니카도 마찬가지였다.
저택 부지를 훑고 지나, 밤하늘로 뻗어 가는 한 줄기 불꽃.
중앙 정원의 나무 한편에 기대어 레이시아의 보호를 받고 있는 성녀 클라리스의 눈에도, 아르웬의 시체 옆에서 머그와 함께 망연하게 앉아 있는 타냐의 눈에도 확연하게 들어왔다.
양 갈래로 묶어 내렸던 머리도 풀어헤쳐지고, 생채기가 남은 몸으로 메뷸러와 치고받는 루시의 눈에도 그 불꽃은 확실히 눈에 들어왔으며, 중앙 정원을 걷고 있는 셀라하, 마차에서 내려선 로르텔도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택을 가른 한 줄기 브레스는 드러난 지하연구실, 첨탑, 중앙저택, 한쪽 외벽까지 모두 통째로 태워 버리고 하늘로 뻗어 나갔다.
테오르피스의 겁화는 모든 것을 공평하게 태운다.
지하의 연구 시설, 첨탑의 공예품, 중앙저택의 아리따운 외벽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그 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테오르피스의 불꽃이 정말로 무서운 점은, 일대의 마력조차 모두 불태워 없애 버린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중앙저택 부지의 모든 마력이 불꽃으로 화해 사라진다.
마법의 근원이 되는 인간이 남아 있는 한 머지않아 새로운 마력으로 다시 채워져 가겠지만… 일시적이나마 일대의 모든 마법을 무력화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외부로부터 마력을 주입받고 있는 크레핀의 입장에서는 일시적으로 메뷸러의 모든 마력이 무력화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
―콰아아앙!
―화아아악!
불꽃이 쓸고 지나간 일대에 만신창이가 된 크레핀이 내다 꽂혔다.
이글거리는 열기 사이에서 겨우 몸을 가눈 그는… 기분 나쁘게 꿈틀대던 살점이 모두 마른 잔가지처럼 비틀려 있었다.
“커, 허윽….”
이미 그 몸으로 버티기 힘들 정도의 충격을 연속해서 받은 상태다.
메뷸러의 마력이 모조리 타 버린 상태에서, 크레핀은 각혈하며 몸을 겨우 가눴다.
충혈된 눈이 어렵사리 에드 쪽을 올려다보았다.
테오르피스의 불꽃은 아주 잠깐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양의 마력을 앗아 간다.
에드도 반지의 반동으로 인해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서, 제 몸 하나 못 가누고 있는 상태였다.
불타는 지하 연구 시설.
에드는 그 열기 사이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다.
마무리를 짓는다면 바로 지금이다. 그러나, 크레핀의 몸 역시 의지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쿠궁, 쿵!
지하 시설의 석재 기둥이 불타서 넘어졌다. 지반 자체가 붕괴한 상태에서 큰 충격까지 받아, 얼마 안 있으면 이대로 모두 깔려서 죽을 판이다.
불타는 로스테일러 중앙저택도 기둥이 무너져 내리면서, 이내 폭삭 가라앉기 시작했다.
굉음이 밤하늘로 퍼져 나가며, 로스테일러 가문의 위광을 자랑하던 그 으리으리한 저택이 이내 삶을 마감한다.
거대한 저택이 무너지면서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지하 연구시설까지 덮쳐 왔다.
―화아아아악!
화재 때문에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곳에, 건물 파편까지 덮쳐드니 시야가 완전히 사라지려 했다.
크레핀은 이를 악물고 충혈된 눈을 더 부릅뜨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윽…. 크아아아아악!”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힘을 줘서 겨우 몸을 일으킨 크레핀은 어떻게든 왼손을 들어 올렸다.
비쩍 말라 버린 왼손에는 여전히 메뷸러의 각인이 새겨져 있다. 다시금 메뷸러로부터 마력을 주입받으면 더 싸울 수 있다.
각인에 반응한 메뷸러가 저택 상공에서 다시금 커다란 마력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일시적으로 테오르피스가 일대의 마력을 태워 버린 상황이지만, 메뷸러가 힘을 발산하기 시작하면 다시 제 마력으로 저택을 꽉 채울 수 있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루시는 메뷸러의 그런 의도조차 읽어 낸다.
―화아아아악!
메뷸러를 중심으로 또 다시 수많은 마법진이 발현된다. 외부로의 마력 흐름 자체를 차단하기 위한 마법이다. 내부의 마력 흐름은 막을 수 없지만, 어쨌든 메뷸러의 힘이 전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만 막으면 그만이다.
메뷸러의 수많은 눈동자들이 다시금 상공의 루시를 향한다.
흙먼지가 잔뜩 묻은 얼굴을 소매로 탁탁 털어 내면서, 완전히 풀어헤쳐진 머리칼을 갈무리하고 있는 소녀.
악신조차도 쉬이 제압할 수 없는 인세(人世)의 괴물이다. 멍하고 무감각한 눈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머리끈이 날아가 버려서 밤바람에 흩날리는 머릿결이 거슬린다. 루시는 머리를 뒤로 휙 묶어 올려 버리고, 메뷸러의 모든 마력 흐름을 차단하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수작질 좀 그만해.”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양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막대한 마력이 다시 피어오른다. 메뷸러의 마력에 버금가는 양이다.
루시가 한번 휙 손을 내젓는 것만으로, 백 단위 숫자의 얼음창이 메뷸러를 향해 내다 꽂혔다.
메뷸러의 마력은 오지 않는다.
크레핀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불타는 연구실 중앙, 무너져 내려가는 이 지하시설에 가만히 있으면 지반에 깔려 죽는다.
만신창이가 된 몸이지만, 어떻게든 일단 지상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크, 흐억… 허억….”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은 크레핀도 지지 않는다. 권력 가득한 제 자리를 유지하고, 암투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생에 대한 의지는 그 누구보다도 투철해지기 마련이다.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격통만 가득한 몸을 이끌고 지반 한쪽을 움켜쥐었다.
매캐한 연기와 흙먼지 속에서 어떻게든 몸을 한 번 밀어 올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타고 올라가야 할 벽의 높이가 아득하다.
절반도 채 가기 전에 시설이 먼저 무너질 것만 같지만, 그래도 크레핀은 멈추지 않는다.
이 난리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어떻게든 메뷸러가 다시 마력을 보충해 주기 전까지만 버티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다.
그러니 일단은 지상으로 올라가서 목숨을 부지하고, 어디에든 숨어 있으면 된다.
살아 있다면 기회는 온다. 이런 곳에서 발목 잡혀 개죽음당할 수는 없다.
그런 의지만으로 크레핀은 절벽을 잡고, 어떻게든 몸을 밀어 올리고 또 올렸다. 파편 사이를 타고 오르려는 그의 행동은 처절하다 못해 비참할 수준이다.
―팍.
그러나, 등 뒤의 매캐한 연기 속에서 팔이 뻗어져 나온다.
마치 지옥의 악마처럼 뻗어져 나온 그 팔은, 크레핀의 등 뒤 옷깃을 잡아채서 그대로 땅에 메쳐 버렸다.
처절한 등반으로 겨우 올라갔던 몇 걸음조차, 모두 헛걸음으로 돌아가고 만다.
홀의 바닥에 컥 소리를 내며 처박힌 크레핀은… 다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마에서부터 피를 줄줄 흘리는 에드 로스테일러는, 그만한 수준의 마력을 끌어다 쓰고도 이를 악문 채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독종이고 바퀴벌레고를 넘어서, 아예 인간의 의지력이 아니다.
황금 불사조 반지로 인한 반동은 마력을 쓰지 않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막대한 마력을 동원했을수록, 근육은 굳고, 고열에 시달리며, 의식은 희미해져 간다.
그 예니카 페일로버조차 최고위 정령을 소환하고 나서는 한 달 가까이 앓아누워야만 했다.
그보다 훨씬 규모는 적을지언정, 에드 로스테일러 또한 최고위 정령을 다루었다.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력을 소모하고 나서도, 끝까지 의식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다.
크레핀은 이가 갈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피 칠갑이 된 에드 로스테일러의 살의는 마치 죽는 그날까지 따라붙는 저주와도 같다.
“적당히 좀… 해… 새끼야…!”
결국 신물이 난 크레핀의 입에서도 욕지거리가 나오고 만다.
절로 경외감이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그의 독기는, 이젠 공포심마저 느껴질 정도다.
무너진 기둥의 파편이 튀어 두 사람을 덮쳤다. 돌덩어리 몇이 부딪히는 충격에 크레핀은 컥 소리를 냈고, 에드 로스테일러는 몸의 균형을 잃으면서 지반 쪽으로 넘어졌다.
그러나, 피어오르는 불꽃과 연기 속, 그는 다시 비틀거리며 이를 악문 채 몸을 일으킨다.
남아 있는 마력이라곤 전혀 없다.
크레핀이고 에드고 마찬가지다.
가만있으면 무너져서 지반에 깔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럼에도 에드는 비틀거리며 크레핀의 멱살을 잡아 쥐었다.
크레핀은 그 손을 잡아서 뿌리치는 것만으로도 몸의 힘을 거의 다 사용해야만 했다.
크레핀과 에드, 둘 모두 그 한 번만으로도 몸이 비틀거리면서 균형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에드는 다시 크레핀의 어깨를 잡고 자기 이마로 그의 머리를 내려찍어 버린다.
크레핀은 그대로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 나자빠져 버리고, 에드는 그 위에 올라타서 꽉 쥔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몇 번이고 후려친다.
퍽, 퍽 대는 소리가 한참을 울려 퍼지고, 크레핀이 컥 소리를 내자 어금니 하나가 튀어나와 바닥을 구른다.
그럼에도 에드는 멈추지 않고 그의 얼굴을 계속 후려쳤다. 그렇게 한참을 맞고 있던 크레핀은 젖먹던 힘을 끌어내 에드의 배를 발로 밀어내서 그를 뒤로 넘어뜨려 버린다.
크레핀은 컥컥대며 피를 뱉고,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에드의 발목을 부러져라 밟는다.
에드가 크윽 소리를 내며 발을 꺾자 이번엔 크레핀이 올라타서 에드의 목을 졸랐다.
눌어붙은 피로 범벅이 된 크레핀의 손이 계속해서 압력을 더해 갔다.
안 그래도 반지의 반동 때문에 두통, 고열, 오한이 어마어마한 상태다. 거기에 화재 때문에 피어오른 매캐한 연기가 호흡과 시야를 방해하고, 목을 압박하는 크레핀의 양손 때문에 의식조차 희미해진다.
“흐, 크흑… 크크흑….”
크레핀은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듯한 표정으로, 에드의 목을 계속 압박해 나간다.
“네가… 뭘 알지…. 이 새끼야… 내가 이 한목숨 부지하려고… 얼마나 발버둥 쳤는지 이해나 하나…? 뭐? 도망자?”
크레핀은 힘에 손을 더 넣으며, 충혈된 눈을 부릅뜬 채 이야기한다.
“네 시선으로 날 재단하지 마라, 이 우둔한 새끼…. 내 미학도 뭣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나를 모독하지 마, 이 새끼야…!”
“이… 어중간한 새끼….”
컥컥대며, 에드가 대답한다.
손에 잡히는 돌을 들어서 그의 손을 찍어 버리자, 크레핀은 크아악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뒤로 나가떨어졌다.
“네가 도망자가 아니라 진짜로 순수하게 악의로 똘똘 뭉친 인간이었으면, 후회도 회환도 없었겠지.”
그 충격으로 크레핀의 손톱이 깨져 나갔다. 거의 손이 짓이겨지는 고통이었다. 에드는 비틀거리며 일어서서는 다시 그의 멱살을 쥐고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그런 놈이, 중앙저택의 홀에 아르웬의 초상화를 그렇게 큼지막하게 걸어 놓나?”
크레핀의 동공이 다시금 크게 떨렸다.
불타는 중앙저택의 한편에는, 에드 로스테일러가 처음 저택 부지에 들어왔을 때 보았던 커다란 아르웬의 초상화가 저택과 함께 불타고 있다.
위대한 선조들의 초상화조차도 그 자리를 큼지막하게 차지하진 못했다. 그것은 아르웬에게 남은 일말의 경의를 표한 것인가. 아니면 죄책감인가.
“네가 네 손으로 저지른 일은, 네가 감당했어야지. 애새끼도 아니고, 눈 가리고 에베베 모른 체하면 다 없던 일이 될 것 같았나?”
반복해서 후려치던 에드의 주먹을 크레핀이 막아 냈다. 그대로 휙 당겨서 힘의 중심을 뒤로 빼 버리자, 만신창이가 된 에드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겨우 몸을 가눈 크레핀은 다시 새빨간 눈으로 에드 쪽을 돌아본다.
“입 닥치고… 가만히 좀 나자빠져 있어…!”
그러나 에드는 넘어진 채로 그의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려 버린다.
컥 소리를 내며 덩달아 바닥을 구른 크레핀이, 넝마가 되어 가는 옷깃을 꽉 움켜쥐고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한다.
그러나, 다시금 그 몸을 에드가 올라탔다.
그가 두르고 있던 망토를 옆으로 치워 버리자, 그가 안쪽에 두르고 있던 비단 조끼가 드러난다.
그 가슴 편에는… 아르웬이 선물로 주었을 깃털 장식이 걸려 있었다. 에드의 방에서 나왔던 그 깃털 장식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걸 보자 에드 로스테일러는 헛웃음을 흘리고 만다. 끝까지 그가 놓지 못한 마지막 한 줄의 양심이 고작 이깟 것이라니.
“아르웬 로스테일러가 너에 대한 경의와 존경만으로 이렇게 끝까지 널 따라왔다고 생각하나?”
크레핀 로스테일러의 후계자로서, 언제나 그의 발자취를 좇던 아르웬 로스테일러가 문득 그의 등을 올려다보았을 때,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그를 압박하던 수많은 짐들이었을 테다.
자애로운 모습도, 타락한 모습도, 모두 가면일 뿐이다. 그 수많은 가면의 아래에는, 그냥 막대한 짐의 무게에 짓눌려서 도망치는 비참한 도망자 하나만 들어 있을 뿐이다.
누구보다도 그 모습을 가장 먼저 눈치챘을 사람은 바로 아르웬 로스테일러 본인이다.
“그 여자는 그냥 널 동정한 거야. 그걸 알았어야지.”
크레핀이 피가래가 끓는 소리를 내며 어떻게든 에드의 목을 움켜 쥐려 했다. 그러나 에드는 그 손을 후려쳐 버리고, 크레핀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런 아르웬을 망친 건 바로 너고.”
“입… 닥쳐…!”
크레핀이 이를 악물며 옆으로 구르자, 에드의 몸도 덩달아 떠밀려서 굴러간다.
어떻게든 몸의 자유를 되찾은 크레핀이 다시 하반신부터 일으키자, 에드 또한 정신을 다잡는다.
크레핀이 비틀거리는 몸을 끌고 달려들어서 에드의 몸에 어깨를 박아넣는다. 에드는 컥 소리를 내며 몇 바퀴 나가떨어져서 굴렀다. 이젠 정말 몸 상태가 한계였다.
―파악!
그런 에드의 눈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지팡이가 보였다. 마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지팡이를 들어 올려 봤자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문득 에드의 감각이 향한 곳은 지팡이 끝에 걸려 있는 자그마한 깃털 장식이었다.
그건 분명… 에드 본인의 방 서랍에서 나온 물건이었다. 아르웬과 에드가 주고 받은 편지 사이에 끼어 있던, 자그마한 장식이다.
일단은 마공학 용품 취급이며, 깃펜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장식으로나 쓰는 물건이다.
그러나, 내부에는 미약하게나마 마력이 들어차 있다. 정령의 기운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는 그 마력은 분명… 예니카 페일로버의 것이다.
예니카 페일로버는 에드의 전투 방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극한의 극한까지 치닫는다면, 결국 에드는 글래스트의 반지를 동원해서 모든 마력을 다 태워 버릴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예니카가 보내는 최후의 전투 수단이다.
깃털에 미약하게나마 담겨 있는 마나의 흐름에서 예니카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정말 극한 상황까지 오면, 단 한 줄기의 마력이 조금이라도 더 남은 사람에게로 승패의 저울추는 기울어진다.
“이제 좀… 죽어…!”
이를 악물고 큰 돌을 집어 들어서, 에드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크레핀이 달려들었다.
나자빠져 있던 에드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서, 지팡이 끝에 달려 있는 깃털을 손에 잡아 쥐었다.
―화아아아아아악!
바람의 기운이 크레핀을 감쌌다.
크레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더 이상 남아 있는 마력은 없어야 할 터다. 그만한 수준의 정령을 다루고 마력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발현된 바람 칼날이 그의 어깻죽지부터 허리춤을 갈라 버린다. 푸슉, 하고 피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마력을 바닥까지 끌어모아서 정령식을 발현해, 예식용 단검을 에드의 손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로스테일러 가문의 여러 행사에 쓰이는 예식용 단검에는 비상하는 매가 각인되어 있었다. 드높은 로스테일러 가문의 위광을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그 단검은 그렇게, 가주의 심장을 꿰뚫었다.
―푸욱.
―파악!
피가 치솟아 올랐다.
더 이상 몸에 남은 피가 없는 게 아니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출혈량이었다.
―타닥, 콱!
크레핀이 손에 쥐고 있던 돌이 바닥을 굴렀다.
불타는 지하 연구 시설, 그 중심에서 몇 번 뒷걸음질 치던 크레핀은…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쓰러졌다.
피가 바닥을 타고 퍼져 나간다.
“커, 허윽….”
올려다본 하늘에는… 메뷸러의 눈을 전부 잡아서 터뜨리고 있는 루시의 모습이 보인다.
온갖 법진과 별자리가 펼쳐진 밤하늘.
그 앞을, 피로 범벅이 된 에드가 나타나서 가린다.
“너, 너는… 왜… 이렇게까지….”
에드는 길게 대답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까, 둘 중 하나는 죽었어야지.”
―카강, 캉!
에드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단검이 바닥을 몇 번 때리고 굴러 나갔다. 그대로 에드는 축 늘어진 채 크레핀에게 확실히 말한다.
“그래. 겁쟁이 새끼니 뭐니 해도… 너도 나름대로 비루하게나마 살아남아 보려고 발버둥 쳤던 거겠지….”
“커… 허억… 허억… 안 돼…. 피가… 출혈이…. 살려 줘….”
“그러니까, 나쁜 놈이니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느니…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진 않으마…. 어차피 이건 그 이전의 문제다….”
에드는 다만 나지막이 확언했다.
추한 크레핀에게 들이댈 수 있을만한 온갖 명분과 잣대가 가득하지만, 에드는 그 모든 것들을 전부 감안하지 않는다.
다만, 더 단순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야생과도 같은 이 세상은 약육강식이다. 같은 길을 가다 마주쳐서 부딪힌다면, 둘 중 하나는 끝이 나야만 한다.
“나는 살아남았고, 너는 죽는다.”
오롯이 그것뿐인 이야기였다.
무너져가는 지하 연구실에서, 몸에 힘이 풀려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만신창이가 된 몸이지만, 그는 확실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렇게 또, 살아남았다. 늘 그랬듯이.
* * *
자신을 불러낸 소환자의 기운이 사라지자, 메뷸러 또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막대한 양의 마력을 발현해, 루시가 구현해 놓은 법진을 전부 부수고 다시 일대를 자기 마력으로 뒤덮으려고 한다.
또다시 수많은 그렘린들이 저택 쪽으로 들이닥치고, 힘이 빠진 촉수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일시적으로 저택의 마력 흐름이 모두 사라진 틈을 타, 중앙저택까지 진입한 성당 기사단의 병사들은 모두 당황한다.
그러나, 이내 다시금 달려드는 정령 군단에 의해 그렘린들은 하나하나 정리당해 간다.
루시 또한 가만히 있지 않는다. 또다시 최고위 마법을 구현해 내며, 메뷸러를 계속해서 궁지로 내몬다.
하늘을 뒤덮는 정령들의 군세 사이에서 다급한 표정의 예니카가 나타난다. 예니카와 함께 정령을 타고 중앙 정원에 진입한 페니아 황녀는, 망설임 없이 무너져 내려가는 지하 연구실 쪽으로 몸을 향한다.
그 속에는 초점 잃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본 채 누워 있는 시체 하나와, 그 옆에서 주저앉아 있는 금발의 소년이 있다.
예니카와 페니아가 얼른 무너져 가는 지하 연구실에 착지한 뒤, 만신창이가 된 에드의 모습을 보고 숨을 머금는다.
이미 의식을 거의 잃은 그는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은 상태다.
크레핀의 시체 옆에서 주저앉아, 연기 속에서 눈을 지금시 감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모든 숙명을 마친 순례자의 모습 같다.
인간을 통찰하는 페니아의 두 눈동자에 그가 어떻게 보였는가.
입학 시험 날 학사의 북쪽 숲에서 처음 만나, 온갖 사건 사고 끝에 결국 크레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로스테일러 가문을 제 발로 뛰쳐나와, 홀로 끝까지 살아남아 모든 일을 헤쳐 나갔던 그의 일생이 한눈에 그려지는 듯해… 페니아는 호흡조차 할 수가 없었다.
시련 가득한 그의 길에 페니아는 오롯이 방해만 되었을까. 그 생각이 들자… 등허리를 타고 불줄기가 기어오르는 것만 같다.
예니카가 얼른 뛰쳐나가 그의 어깨를 감싸안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페니아는 깨달았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야생의 삶을 살아온 자다. 숱한 시련도, 이따금씩 찾아오는 결실도 모두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던 과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찌 그 삶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몇 번의 시련과 실패로 황권의 꿈까지 모두 벗어던져 버린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그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부끄러움을 깨닫는다.
페니아 황녀의 눈에 다시금 의지가 돌아온다. 예니카에게 당장 그를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외친다.
불타는 저택 부지.
만신창이가 된 에드의 몸을 잡아끈 채, 두 소녀는 정령을 타고 그렇게 무너지는 지하 연구시설을 탈출했다.
그 아래 끝에는 보이는 것은 크레핀 로스테일러다.
떨어지는 바위 사이에서 더 이상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초췌한 눈동자로… 무너져 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크레핀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 * *
“로스테일러 가문은 이대로 끝이 나겠지.”
중앙정원을 둘러보던 셀라하 황녀가 데스트에게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내부 상황을 대강 확인해 보니, 역시 가담한 자들 또한 대부분 로스테일러 가문의 가신이거나, 사용인들인 듯했다.
“남아 있는 죄인들을 어떻게 단죄하고, 그 끝을 마무리 짓는가가… 아마 차기 황권 경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긴 하구나. 군주란 불충한 자를 적절하게 단죄할 줄도 알아야지.”
로스테일러 저택에서 벌어진 이 학살극은 아마도 황실 역사에 길이 남을 대참사다.
이 대참사의 현장에 본인이 직접 있었던 것은, 신께서 주신 기회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어쨌든, 셀라하는 가만히 저택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필시, 누군가가 주도권을 쥐고 이 상황을 모두 수습해야만 한다.
그 주도권을 가져와 일을 잘 마무리할 수만 있다면, 능력 또한 두루 인정받을 수 있을 터다. 역사에 남을 대참사를 잘 수습해 낸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남아 있는 로스테일러가의 구성원을 모두 잡아들여, 죄를 묻는 것이다.
하늘을 뒤덮은 메뷸러의 기운도 미약해져 간다. 크레핀의 죽음과 함께 매개체를 잃은 메뷸러도 조금씩 힘이 줄어, 이윽고 루시가 메뷸러를 더 강하게 압박해 나간다.
“바빠지겠구나.”
그 모습을 보고 셀라하는 뒤로 돌아섰다.
“일단 황실군이 도착하면 저택의 입구부터 다 틀어막도록 명해야겠어. 쥐새끼 한 마리도 못 나가게 해야지.”
아직, 달이 중천에 떠 있다.
기나긴 밤은 더 이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