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62)
에드 로스테일러 쟁탈전 (2)
클로엘 황실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 드높다.
역사책을 훑어보면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군권을 쥐고 사병 세력을 형성한 변경백이나, 황실 중앙 권력의 깊숙한 부분까지 침범해 들어온 대공들은 때때로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기도 한다.
허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황제로 일컬어지는 클로엘 황제의 권위 아래에서는 그 어떤 귀족도 제 기를 펴지 못했다.
아인족과의 전쟁을 끝내는 것을 시작으로, 물류 유통과 화폐 체계를 재정립해 상업의 효율을 늘리고, 북쪽 초원 지대의 영토를 수복했으며, 황실군의 훈련 과정 수립에 직접 개입해 병력의 수준을 높였다.
뿐만 아니라 영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쟁들을 직접 조율할 정도로 성실했고, 신하들을 기용할 때는 오로지 능력만을 보았으며, 황후에게 언제나 다정하면서도 신하에게는 엄격했다.
“린돈 오라버니께서 방에 틀어박힌 지도 어언 2년이네요.”
“흐음….”
황제의 개인 정원.
오로지 황제를 위해서만 관리되는 정원치고는 지나치게 크기가 컸다. 정원이 아니라 공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일 정도였다.
그 중심에 있는 목제 정자에서 2황녀 페르시카와 클로엘 황제는 체스를 두고 있었다.
“슬슬 기운을 차려 주셨으면… 좋겠네요.”
클로엘 황제는 모든 것이 완벽한 군주로 유명했지만, 딱 하나 남들에 비해 모자란 것이 있었다. 바로 황위를 이어 줄 후사가 아직 확실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단 것이다.
린돈 황태자가 황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버린 지도 꽤 시간이 오래 지났다. 그가 당장이라도 나와서 황위 계승을 하고 싶다고 외치면, 클로엘 황제는 당장에 제왕학 교사를 불러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주는 밥만 받아 먹고 있으니… 클로엘 황제로서는 참 골치가 아픈 문제였다.
“하나뿐인 오라버니께서는 몸이 성치 않으시고, 두 자매는 황성을 뜨고 없으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대상도 없어 심히 고독한 기분이에요. 아바마마.”
“평소에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으면서, 참으로 능청스럽구나. 페르시카.”
“그래도 가족 얼굴 정도는 보고 싶은 법이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바마마 존안을 알현하려 온 것이고요.”
페르시카는 그렇게 클로엘 황제에게 웃어 보였다.
황성의 드높은 권세와 권력은 대부분 클로엘 황제로부터 나온다.
황도를 호령하는 황실 중앙군과 더불어, 황실 소속의 온갖 이름난 마법사/연금술사들까지. 모두 클로엘 황제를 우러러보는 백성들이다.
긴 시간동안 무리 없이 국정을 이어 온 그를 존경하는 것은 황실의 모든 신하들이 같았다.
문제는 그 후계자다. 그래서 그 드높은 황실의 이름을 이어받을 자는 세명의 황녀 중 누구인가.
처음에는 페니아의 세력이 제일 드높았으며, 그녀가 실베니아에 입학한 뒤로는 셀라하의 세력이 급부상했다.
황실의 핵심 인력들… 재상과 기사단장, 집사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셀라하와 가까이 지냈다.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엄청난 경륜과 힘을 지닌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모두 셀라하에게 줄을 대고 싶어할 정도로 셀라하의 기세는 등등했다.
북부 대초원의 군단장 매그너스나 황실의 수석 연금술사 델룸 정도만이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있을 뿐이다.
그 둘은 고지식한 성격이라 오로지 황제의 뜻에만 신경을 쓴다. 차기 황제가 누가 되고, 어떻게 줄을 댈지 고민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런 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발 빠르게 움직인 셀라하의 편에 붙은 것이다.
그간 페르시카가 한 것이라고는 도서관에 박혀서 책이나 읽는 것뿐이었다.
‘이제 슬슬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려나.’
어쨌든 클로엘 황실은 긴 세월 실적과 힘을 증명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세 황녀도 그 권력의 덕을 보는 때가 참 많았다.
그 막대한 권력을 고스란히 이어받는 자가 누가 될지는 그야말로 초미의 관심사였다. 슬슬 페르시카도 시동을 걸어야 할 때였다.
“아바마마, 그건 그렇고 대현자 실베니아가 남겨 놓았다는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요?”
페르시카가 본격적으로 운을 떼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클로엘 황제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병사 하나가 뛰어들어 오더니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고서는 뭐라 보고했다.
밤 늦은 시간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보고를 하는 것은, 필시 그만큼 급한 안건이라는 이야기다.
병사에게서 로스테일러 저택의 참극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페르시카 황녀와 클로엘 황제는 모두 표정을 굳혔다.
둘 모두, 긴 고민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 * *
“그대가 우리들의 목숨을 구했으니, 필히 충분한 보상을 받아 마땅하지!”
“정말 고맙구나…. 내 친히 황녀님과 폐하께 보고를 올려 성대한 답례를 받을 수 있게 해 주마!”
“목숨을 빚졌어…! 잘못하면 로스테일러 놈들의 마수에 넘어갈 뻔했다…. 이… 추악한 놈들….”
예니카 페일로버는 손가락 끝을 꼼지락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여기를 보면 남작, 저기를 보면 백작. 하나같이 높으신 분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예니카에게 한마디씩 건네는데… 평생을 평민으로서 살아온 예니카에게는 썩 익숙지 못한 상황이었다.
실베니아 아카데미에서도 귀족은 많이 보았지만, 대부분은 나이가 어린 귀족 자제들이었고,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방침상 그렇게까지 깍듯하게 예의를 취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실베니아에서 나와, 귀족 자제들도 아니고 귀족 본인들에게 이렇게 극찬을 받고 있으니 어떻게 처신해야 할 줄 몰라 어지러워하고만 있었다.
‘피곤해….’
황실군의 도착을 기다리며 로스테일러 저택에 주둔해 있는 사람들. 그 중심에 낀 예니카는 식은 땀을 삐질대며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귀족들의 순회 공연이 끝난 뒤, 마지막에 도착한 사람은 텔로스 교단의 성녀 클라리스였다.
“여기 계셨네요, 예니카 선배님.”
“아, 앗… 성녀님. 방금 전에는 감사했어요. 성녀님 덕분에….”
“에드 선배님을 빼돌려야 해요.”
시간이 여유롭지 않으므로, 클라리스는 가감없이 본론부터 이야기했다. 물론 주변에 듣는 이가 없는지 잘 확인한 직후였다.
“…네에?”
“에드 선배님은 지금 정치적인 말로 써먹히기 딱 좋은 상태예요. 물론 에드 선배님 본인이 잘 처신하시겠지만, 지금은 의식이 없는 상태니까요. 일단은 몸을 추스르고 상황을 파악한 후, 행동 방침을 재설정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요.”
클라리스는 예니카를 똑바로 보면서 속삭였다.
“피해받은 귀족들 사이에서 로스테일러 가문의 여론이 너무 안 좋아요. 제 증언과 영향력으로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울 순 있겠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거예요. 일단은 가문 단위로 황권에 반역을 저지른 상황이니까요.”
“그, 그건 아니잖아요…. 에드는 가주 크레핀이랑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 싸운 사람인데… 성녀님도 목격하셨잖아요, 저는 물론이고 페니아 황녀님도 똑똑히 보셨는데….”
“필요하다면 권력은 진실조차도 비틀어 꺾는 법이에요.”
그 누구보다도 권력의 정점에 서서 살아왔던 클라리스이기에 잘 알고 있다.
클라리스가 작정하고 그를 커버하면 큰 힘이 되겠지만, 반대편 쪽에서 황녀가 튀어나오기라도 한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황권과 교권의 갈등으로 문제가 확산되는 순간 에드 로스테일러 선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게 되어 버린다. 그건 아마 에드 본인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에드 로스테일러의 위치는 굉장히 특수한 상황이다.
차라리 어떤 명분이라도 잡아채서 에드 로스테일러를 성황도로 데려가는 게 더 잡음 없고 깔끔한 방법이었다.
“에드를 굳이 처형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건… 좀 이상해요 성녀님.”
“에드 선배님은 로스테일러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어받은 사람이잖아요.”
아마도 이번 일을 기점으로 황실 내의 기득권층은 로스테일러 가문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 버리려 할 것이다.
황실 내의 요직에 앉은 자들은 물론이고, 로스테일러 가문과 가까운 사이로 연루된 자까지 모두 공직을 내려놔야 할 터.
그렇게 비어 버린 자리를 자기 사람으로 채우기 위해 권력자들끼리 한차례 눈치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핵심 요직에 제 사람을 앉힌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는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그들의 입장에선 로스테일러의 잔재들은 확실히 없애 놓는 게 좋다. 로스테일러의 위광을 잘 이어받아 끌어갈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난다면, 권력은 재편되지 않고 그냥 유지되기만 할 테다.
때문에 권력자들은 이 사건을 절대 ‘크레핀 개인의 일탈’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확대 해석해서 ‘로스테일러 가문 전체의 문제’로 발전시켜 그 권력을 모두 끌어내리려 할 가능성이 컸다.
권력과 위세가 드높을 때는 모두가 그들을 떠받들고 찬양하지만, 끌어내릴 구석이 보이면 하이에나처럼 일제히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권력 다툼이라는 것이 늘 그렇다.
성녀 클라리스는 성황도 꼭대기에서 고고히 앉아, 그런 추한 권력 다툼의 말로를 꽤나 많이 봐 왔다. 고위 성직인이라고 해서 별 다를 건 없었다.
그런 현실 논리로 더럽혀지고 싶지 않아 마음을 정갈히 하고 늘 기도에 집중했을 뿐이지만, 권력에 묻은 때를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식을 잃은 에드가 어떻게 활용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클라리스의 직감은 불길하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니, 기회를 봐서 명분이 될 만한 점을 캐치하면….”
“성황도라고 해서… 다를까요…?”
그것은, 감히 텔로스 교단을 대표하는 성녀 앞에선 절대 내뱉으면 안 되는 말이다.
불신의 뜻을 내비치는 그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예니카가 텔로스 교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네…?”
“저는 성녀님이 에드를 이용해먹으려 하거나, 해코지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다만… 성녀님보다 높으신 분의 의견은 다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예니카는 순수하다. 그렇기에 가감 없이 이야기의 맹점을 찔러 들어온다.
성녀 클라리스보다 높은 지위를 지닌 사람이 텔로스 교단에 어디 있겠는가. 굳이 꼽자면, 딱 한 명 있다.
바로 성황 엘데인이다.
에드 로스테일러라는 군침이 흐르는 말이 손아귀에 들어왔는데, 정말 그를 상처를 치료해 주고 요양만 시켜 준 채 성황도에서 떠나도록 마중이나 해 줄 것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럴 리가 없다. 집단의 의사 결정은 인간적인 정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효율과 합리를 따라가는 법이다.
고위 성직인들은 성녀 클라리스 선에서 모두 통제 가능하지만, 성황 엘데인 만큼은 그렇지 않다.
만약 엘데인이 성녀 클라리스와는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클라리스 선에서는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다만, 엘데인의 품성은 그 정도로 간악하지는 않다. 현실 정치에 해박하긴 하지만, 속세에 영혼을 판 인간은 아니다. 정에 기대야만 한다는 것은 불안하지만… 클라리스가 직접 호소한다면 먹혀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걸어 볼 만한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예니카는 엘데인을 믿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텔로스의 사도들과 치고받고 싸우다 크게 다친 경험이 있으며,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둔 것이 성황 엘데인이다.
실베니아 아카데미에서 엘데인이 보여 준 모습은 우유부단하고, 타협적인 모습이었다. 예니카는 가장 가까이서 그런 모습을 본 자들 중 하나다.
“그… 래도….”
클라리스는 뭐라 말을 하려다 잠시 말문이 막혔다.
예니카는 루시와 함께 기대어서 잠들어 있는 에드 쪽을 보고서는, 턱을 당긴 채 생각에 빠졌다.
현재 로스테일러 저택에 주둔해 있는 군사들의 수는 그다지 많진 않다. 수많은 정령 군단을 긴 시간 유지하느라 지칠대로 지쳐 있지만, 에드 하나를 챙겨서 탈출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하다.
황실의 군세가 도착해 본격적으로 로스테일러 저택에 진입하기 시작하면 점차 탈출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예니카 선배님…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허읍….”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클라리스의 말에 예니카는 헛숨을 휙 삼켰다. 그리고 클라리스를 보고 에헤헤 하고 멋쩍게 웃어보였다.
그 모습만 보고서도 클라리스는 예니카의 생각을 가늠할 수 있었다.
“무모한 생각… 하고 계시는 건 아니죠…?”
“경우에 따라선요….”
예니카가 생각하기에, 지금 시점에서 에드는 어떠한 권력 집단의 손에도 들어가선 안 된다.
차라리 예니카가 에드를 데리고 도주한 후, 고향 땅 퓰란으로 데리고 돌아가는 것이 옳다.
예니카의 고향 마을은 권력과는 거리가 먼, 한적한 산골이다.
거주하고 있는 사람도 모두 마음씨가 착하며, 다양한 약초가 많이 나는 산지인 데다 공기도 좋아 요양하기에도 좋다. 거기다 쉽게 찾아오기 힘든 산지 지역이고, 예니카가 부탁한다면 마을 사람 전체가 입을 모아서 에드의 존재를 은닉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날 수색해 봤자 수색꾼들이 에드를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이 현지인들보다 지리를 더 잘 알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그럼 어떤 권력 집단도 쉽게 에드를 찾아낼 수 없을 테니, 천천히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행동 방침을 재정립할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위험 요소는 있을지 몰라도, 에드 선배님은 성황도로 데려가야 해요. 제가 책임지고 에드 선배님의 처지가 불안정해지지 않게 잘 지켜볼게요. 성황님께도 결사의 의지로 의견을 전달한다면 분명 통할 거예요. 예니카 선배님 혼자서 책임지는 건 너무 위험해요.”
“위험할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제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어요.”
“지금 예니카 선배님은 영웅이잖아요. 황실 포상도 곧 받으실 거고요. 그런 돌발 행동을 하신다면… 순식간에 도망자 신세가 되는 거예요.”
“필요하다면 도망자라도 될 수 있어요. 영웅이니 포상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예니카는 의식을 잃은 에드 쪽을 보고서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이야기 했다.
이야기가 어긋나고 있다. 클라리스는 그런 느낌이 들어, 좀 더 다급해진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예니카 선배님…!”
“에드는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쳐 있어야 해요.”
그렇게 한참 실랑이를 해야만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주변 병사들이 슬쩍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한테 들려서 좋을 이야기가 아니므로, 클라리스는 가까이 달라붙어서 예니카에게 속삭이듯 닦달했다.
“사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심이 섞여 있으신 거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안전이 걸린 문제인데…! 그런 식으로 판단하시면 곤란해요…!”
“사, 사심이라니… 그런 거….”
사실, 둘만의 도피라는 것에 아무런 낭만도 섞여 있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학생회장 선거 때 에드와 단둘이 절벽 아래 동굴에서 비를 피하던 시간들… 아직도 예니카에게는 그때의 기억이 아리따운 추억으로 남아 있던 것이다.
처음으로 제대로 안겨 보고, 서로 간에 얼굴도 붉혀 보고 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올라, 머리에 열기가 오르게 만든다.
거기다 예니카는 품성이 쓸데없이 솔직하다. 거짓말 자체를 끔찍하게 못 한다.
“아, 아예… 없는 건 아니긴 한데….”
“이, 이것 봐요…!”
“그, 그렇게 말하는 성녀님은요? 에드를 데리고 도피해서 관리하에 두고 싶은 것뿐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실하게 대답해야 하건만.
클라리스 또한 성창룡 벨브로크의 마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에드와 수십 번을 도피해 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클라리스를 위해 건물에 깔리고, 바위에 깔리고, 비늘에 맞아 죽으면서도 끝끝내 위로의 말을 건네던 기억들이 뇌리에 피어오른다.
확 하고 안면에 열기가 올라오지만, 클라리스는 얼른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예니카의 말을 받아치는 데 성공했다.
“그럴… 리가 없나…? 없, 긴 해요!”
아니, 성공하지 못했다.
“거, 거짓말!”
“제가 왜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요! 지금 제가 에드 선배님을 성황도로 끌어들여서 제 위치와 권위를 보고 감탄하는 선배님의 모습을 보고 싶고, 에드 선배님이 요양하면서 일상생활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알고 싶고, 성황도 첨탑의 꼭대기에서 다과라도 같이 먹으며 풍경을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거예요…?”
“왜 이렇게 구체적이야…!!”
숨을 몰아쉬며 눈빛을 주고 받는 예니카와 클라리스는… 잠시간 침묵을 유지하며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죄, 죄송해요. 성녀님. 제가 너무 흥분했나 봐요.”
“아, 아니에요. 예니카 선배님. 저야말로 언성 높여서 죄송해요.”
그렇게 서로 간에 정중하게 사과를 주고받은 뒤… 잠시간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한 번 더 흘렀다.
“어쨌든, 에드 선배님은 성황도 쪽으로 모실게요. 제 신변을 위협했으니 성황도에서 일단 성법 재판을 한번 열어야겠다는 명분이라면… 그의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을 거예요…. 황실 쪽에서 다른 맘을 먹지만 않는다면….”
“아니요…. 역시 그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에….”
목축의 땅 퓰란이냐, 성도 카르페아냐.
…당연히 둘 사이의 의견이 좁혀지는 일은 없었다.
다시금 서로가 서로를 도끼눈을 뜬 채 쳐다보지만, 답이 나올 수가 없는 문제였다. 둘 모두 타협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 * *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이다.
로르텔의 얼굴을 본 페니아에게 이윽고 떠오른 생각이다.
로르텔은 에드 로스테일러에게 우호적인 인물이다. 페니아 황녀와는 다소 상성이 맞질 않지만, 어쨌든 적의 적은 아군인 셈이다.
로르텔이 제아무리 이윤에 목을 매고, 권력자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 자라 할지라도… 에드의 목숨이 걸려 있다면 완전히 이야기가 다르다.
페니아와 로르텔은 끔찍할 정도로 사이가 나쁘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로르텔이 페니아의 편을 들 것이다.
그렇기에, 페니아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영웅으로 대접받아야 해요. 황실 차원에서 그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가 망가져 버린 로스테일러 가문을 수습할 수 있도록 복권시켜 줘야 해요. 그라면 어긋나 버린 가문을 잘 수습할 수 있겠죠.”
“세상에, 페니아. 지금 황실을 상대로 반기를 들고, 거의 전복 직전까지 간 가문을 살려 두자고 말하는 거니? 그 누가 납득할 수 있겠어?”
“그 전복을 막아 낸 사람도 같은 가문의 사람이니까요.”
페니아는 셀라하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서, 가만히 앉아 있던 로르텔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로르텔이 황녀 간의 협상 테이블에 난입한 이유는 분명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함일 테다. 로르텔 케헬른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상인이며, 협상의 대가다.
본인의 위치와 상황을 잘 활용하여, 최대한 사태를 원만하게 풀어 낼 수 있는 타협책을 제시할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드의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이니까.
“글쎄요. 적어도 인질로 사로잡혀 있던 귀족분들께서는 납득하지 않을 것 같네요.”
“…네?”
그러나, 로르텔은 페니아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이야기했다.
제아무리 이윤과 인맥에 목을 매는 냉혈한이라 할지라도, 에드 로스테일러의 목숨은 그녀의 역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르텔은 그게 뭐 어쨌냐는 듯이, 여유가 넘치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오히려 황녀님들께는 이만 로스테일러 가문이 완전히 퇴장해 주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편하겠지요. 그간 로스테일러 가문은 황실의 요직을 차지하고, 왕처럼 군림하며 권력을 나눠 먹었으니까.”
“역시 어린 나이에 이 거대한 상회를 이끄는 인재는 보는 시야부터가 다르구나.”
셀라하는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로르텔을 바라보았다. 페니아는 이 시점에서 자각했다.
인간관계란 결국 줄타기다. 누구의 줄을 잡느냐가 핵심이다.
페니아와 셀라하 사이에 앉아 있는 로르텔.
그 사이에서, 로르텔은 셀라하의 줄을 잡은 것이다.
셀라하는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일말의 동요조차도 없다.
둘 사이에서 누가 황제가 될 것 같으냐 묻는다면, 누가 되었든 셀라하의 손을 들 것이다.
페니아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일단 자기부터가 권력욕을 드러내질 않고 살았다.
평소 같으면 로르텔이 셀라하의 줄을 잡은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안이 사안이다.
“이번 기회에 에드 로스테일러까지 한 번에 처리해 버리는 게, 향후 황권 강화 측면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하겠죠. 그는 굉장히 약삭빠르고 능력 있는 인물이에요. 지금 처리하지 못하면 후일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걸요.”
“로르텔 케헬른.”
싸늘하게 소녀의 이름을 불러 보지만, 로르텔은 일말의 동요감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미소를 피식 흘리며, 페니아 황녀에게 확실하게 이야기해 두었다.
“진실이 항상 이윤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죠. 저는 이윤만을 좇는 사람이고요.”
그리고 확실하게 덧대어 이야기한다.
“셀라하 황녀님과의 관계를 터 두는 것이, 더 큰 이윤이 되리라 판단했을 뿐이에요.”
“예니카 페일로버와 루시 메이릴이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둘의 입을 다물게 하는 방법은 널리고 널렸어요. 에드 로스테일러의 신병만 확보해서 감춰 두면 오히려 섣불리 날뛰지 못하겠죠. 그의 생사여탈권만 손에 들어오면 그만이에요.”
당장에라도 에드 로스테일러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다는 위협. 그거면 둘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허나, 에드 로스테일러를 정말로 죽인다면… 로르텔 케헬른 본인의 목숨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로르텔 케헬른이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둘을 제압할 다른 추가적인 수단이라도 마련해 두었단 이야기일까. 페니아에게는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았다.
“로르텔… 당신은….”
페니아 황녀는 등허리를 타고 분노가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애초에 로르텔 케헬른과 인간적인 상성이 잘 맞지 않는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래도 아무리 냉혈한 로르텔일지언정 최소한의 선은 있다고 생각했었다.
허나, 로르텔은 이윤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그런 선마저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드는 인간이었다.
뼛속까지 독종이 된 상인이란 이토록 가증스러운 존재였단 말인가.
그 사실에, 차갑게 식은 페니아의 눈이 로르텔을 똑바로 향했다.
그 언젠가 타칸을 앞에 두고 혼란에 빠져 있던 페니아를 향해… 로르텔이 내비쳤던 경멸의 시선이다.
이번엔 페니아가 로르텔을 향해, 다시 없을 진심 어린 경멸을 담아 내보낸다.
페니아와 로르텔은 평행선을 달리는 인간들이다. 두 선이 맞닿을 일은 절대로 없다.
그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어, 페니아는 깊은 탄식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싸늘해진 어조로 확실하게 이야기했다.
“제가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페니아는 조용히 몸을 돌려서 천막을 나갔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자애의 황녀라는 이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페니아는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있구나, 그러니 그토록 어린 나이에 그렇게 큰 손이 될 수 있었던 거겠지.”
“권력욕과 출세욕은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죠. 굳이 그런 욕구를 숨기려고 하는 자가 더 신뢰하지 못할 자들이고요. 그러니 제가 셀라하 황녀님께 동질감을 느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페니아가 떠난 뒤, 로르텔과 셀라하만 남은 천막은 한결 분위기가 풀어져 있었다.
안 그래도 엘테 상회 쪽과 관계를 터 두고 싶었던 셀라하에게는 이만한 호재가 없었다.
페니아와 셀라하 사이에서 대놓고 셀라하의 편을 들었다는 것은, 적어도 엘테 상회의 실권자인 로르텔이 페니아 쪽으로 붙을 일은 없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황권 경쟁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둘 중 누가 더 황제가 될 것 같냐 하냐면, 저는 무조건 셀라하 황녀님의 손을 들 것 같네요.”
“그래. 페니아는 황제로서의 자질은 부족한 편이지. 자애로운 황녀로서는 완벽하지만 말이야.”
셀라하는 차를 한입 머금고는 안타까운 듯이 이야기했다.
“페니아도 알아야 할텐데. 꽃밭에서 노니는 것만으로는 제국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순 없어. 군주란 제 길을 가는 자야.”
“황녀로서의 삶을 사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어요. 페니아 황녀님도 그 사실을 알게 되시겠지요.”
“그래. 좋은 일이야.”
셀라하는 흡족하게 웃고서는, 로르텔을 돌아보고 이야기 했다.
“엘테 상회 쪽에서 편을 들어 주니, 꽤나 듬직하구나. 내가 황권을 잡게 된다면 올덱 서편 항구가 모두 엘테 상회의 부지가 되는 꿈을 꿔 볼 수도 있겠지.”
“제 선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죠. 다만, 페니아 황녀님을 완전히 무시해선 안 돼요.”
“그래, 나도 잘 알고 있지. 페니아를 지지하는 세력도 무척이나 많아.”
셀라하가 입술을 오므리고서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로르텔은 그 틈을 타 찻잔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했다.
“맞아요. 그러니 무작정 황실로 에드 로스테일러를 데려가는 것은 악수가 될 수도 있어요. 셀라하 황녀님의 세력과 영향력이 가장 세지는 곳이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페니아 황녀님의 목소리도 강해지는 곳이잖아요?”
“페니아는 실베니아 아카데미에 재학하는 동안 자기 세력을 많이 잃었어.”
“다만, 페르시카 황녀님이라는 변수도 있죠. 어쨌든 황권 분쟁의 재료로 에드 로스테일러를 써먹을 생각이시라면, 경쟁 주자들이 있는 곳에 그를 들이는 행동은 오히려 새로운 트집과 빌미를 제공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래… 그 정도 위험은… 가늠하고 있긴 했지….”
로르텔이 조용하게, 천천히, 속삭이듯 이야기한다. 셀라하 황녀의 귀에 조금씩 스며드는 그 목소리는 거부할 수 없다.
바로 그 자애의 황녀 페니아를 눈앞에 두고도 대놓고 셀라하의 편을 든 자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소녀가, 진심 어린 어조로 유혹하듯 내뱉는 말들.
“뿐만 아니라 예니카 페일로버와 루시 메이릴이라는 변수는 생각 이상으로 통제하기 힘들어요. 그녀들은 셀라하 황녀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강력하고 까다롭거든요. 그 둘을 통제하려면 에드 로스테일러의 위치를 숨기고, 언제든지 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야만 해요.”
“호오….”
“대놓고 황실에 그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면 오히려 악수예요. 궁지에 몰리면 황실의 정문을 뚫고 들어올 수도 있는 인간들이죠.”
셀라하도 예니카와 루시의 무력을 확인했다. 로르텔의 말이 마냥 허황된 말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안다.
드높은 클로엘 황실의 권위를 빌리더라도, 쉽게는 제압할 수 없는 상대들이다. 그 사실은 인식하고 있었으나, 설마 제국의 권위고 앞으로의 인생이고 다 내팽개쳐 둔 채 황실 문을 쳐부수고 들어올 거란 생각까지는 못했을 따름이다.
“그럼 황실이 아니라 다른 곳에 그 남자를 숨겨 두는 것이 더 타당하겠군. 그 누구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장소에 말이야.”
“셀라하 황녀님.”
로르텔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스며든다.
철 들었을 때부터 숱한 협상 자리를 오가며 자란 그녀는… 협상의 대가다.
“상업 도시 올덱의 서쪽 만을 따라 쭉 올라가다 보면, 커다란 물류창고가 잔뜩 있는 공터가 넓게 펼쳐져 있지요.”
허나, 협상가와 사기꾼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녀는 뛰어난 협상가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사기꾼이기도 하다.
협상인가, 사기인가.
그 애매한 경계선 사이를 노니며 계약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거상의 자질이다.
“주로 대륙 건너편으로 오가는 교역 상품들을 적재해 놓는 곳인데, 올덱의 무역 규모가 큰 만큼 그 창고 단지도 무척이나 커다랗거든요. 창고의 수도 무척이나 많은데, 적재되는 물건도 매일 바뀌어 대니 창고 주인도 내부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곤 하지요. 물건 주인이 아니면 창고 근처에 잘 가지도 않고요.”
“호오, 그런가….”
“단지 규모가 워낙 커서 내부에서 길을 잃는 사람도 주에 한 번은 꼭 나오지요. 그런 창고들 내부에 뭐가 들어 있는지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요. 서방 대륙으로 갈 과일이든, 요즘 유행하는 의류든, 서책류나 광물이든….”
로르텔은 빙그레 웃으며 넌지시 이야기한다.
“아니면, 사람이든.”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에드 로스테일러의 신병을 그렇게 비밀리에 관리할 수만 있다면 많은 부분에서 유리해지겠죠. 향후 정국에 따라 공개적으로 화형대에 올려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기 애매해진다면, 독살이나 교살시켜 놓고 출혈 과다로 세상을 떴다고 위장할 수도 있겠고요. 그의 죽음에 논란이 있다 한들 엘테 상회가 뒤집어 썼으면 썼지, 셀라하 황녀님이 위험을 부담하실 일은 없을 거에요.”
“호오, 엘테 상회가 혐의를 전부 뒤집어써도 상관없다는 건가?”
“저희는 신뢰 관계를 먹고 산답니다. 그리고 셀라하 황녀님과는 새로운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싶고요. 이건 그 확인 과정이지요.”
그런 때가 오면 셀라하 황녀가 잘 커버해줄 거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불리한 위치를 자처하는 듯한 스탠스다. 신분과 권위의 차이가 있으니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도우면서, 장기적으로 공생 관계를 이어 가자는 의미까지 내포되어 있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쥐고 있는 사이만큼 믿음직스러운 관계는 또 없다.
“대업을 하려거든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죠. 저희가 제일 잘하는 일이고요.”
장사치의 세 치 혓바닥이 조금씩 셀라하의 귀를 타고 들어간다.
페니아를 적대하면서까지 셀라하의 편을 들었다.
권력의 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윤을 위해선 영혼이라도 팔아넘길 준비가 된 소녀다.
“구매하시겠어요?”
셀라하는 입꼬리를 스윽 밀어올리는 것으로 그 대답을 대신했다.
로브 아래에서 조용히 미소지은 로르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에드 로스테일러의 신병은 저희 엘테 상회 쪽에서 인도받아 올덱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면 원하는 것은 모두 제 손 안에 들어와 있다.
세상 누구든 그 세 치 혓바닥에 걸리면 홀린 듯이 넘어가 손 안의 보물을 가져다 바친다. 이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 착각하면서.
사기꾼은 그렇게 희생양을 잡아먹는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올덱으로 데려간다.
로브 자락을 탁 털며 천막을 나온 로르텔은… 여우처럼 음흉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 * *
“…….”
에드의 상태를 확인하러 중앙정원 쪽으로 나온 로르텔은 그대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일단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 정신을 잃은 상태인 에드의 모습을 보고 헛숨을 삼켰지만, 그렇다고 이성을 잃진 않았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은 세상 그 누가 와도 로르텔을 따라잡을 순 없다.
그보다 예니카와 클라리스가 눈을 서로 치켜뜨며 신경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더 골치 아팠다.
잠깐만 이야기를 들어봐도, 대충 왜 싸우는지 그 이유가 짐작이 갔다.
“어, 엇….”
“로르텔… 선배님…?”
현장에 나타난 로르텔을 보고 클라리스와 예니카가 숨을 삼켰다.
그 풍경만 보고서도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쉽지 않은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