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66)
늑대의 우울 (2)
페트리시아나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그 뒤에 붙은 블룸리버라는 가문명은 꽤나 익숙했다.
의 5막.
성창룡 벨브로크와 대현자 실베니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최종막은, 그 모든 진상이 드러나기 전까진 가문들 간의 신경전을 주로 다루는 에피소드들이 잔뜩 들어차있다.
이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설립과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많은 인물들이 잔뜩 연루 되는데, 그 중에서는 그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훑고 지나왔던 가문들의 인물들도 포함되어있었다.
클로엘 제국에서 이름난 무가를 뽑아보라 하면 캘러모어 가문, 노튼데일 가문, 엘펠란 가문을 꼽고, 마법 명문가를 뽑아보라 한다면 새니얼 가문, 화이트펠츠 가문 따위를 꼽는다.
블룸리버 가문은 그 마법 명문가에서 말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곳이지만, 클로엘 황제가 즉위한 뒤로 워낙에 사고를 잔뜩 치는 바람에 명문가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불명예를 얻은 곳이다.
마법 분야보다는 연금술 분야에 더 관심을 가진 역대 가주들은, 말도 안되는 실험을 하다가 사고로 중상자를 내거나 언덕 하나를 날려먹는 등… 갖가지 사고를 잔뜩 쳐대면서도 공격적인 마법실험을 멈추질 않았다.
물론 악신의 힘을 연구해대는 로스테일러 가문에 비하면 선녀 같은 곳이지만… 문제는 빈도 수다. 잊을만 하면 폭발 사고, 식중독, 수원 오염, 환경 훼손 등이 잇따랐고… 조금만 방심하면 사고를 치는 통에 클로엘 황실에서도 골칫거리로 통하는 곳이었다.
그래도 금기는 철저히 지키는 데다가, 새로 가주의 자리에 오른 시니르 블룸리버는 생각보다 상식인으로 통하기에… 이 괴짜들도 어떻게든 고위 귀족의 자리는 유지하고 있었다.
언제나 기상천외한 마법 탐구만을 해대는 통에 ‘마녀의 집’으로 불리는 이 블룸리버 가문… 그들 또한 실베니아 아카데미에 두 명의 학생을 입학시켰다.
가주 시니르 블룸리버의 쌍둥이 딸, 트레이시아나 블룸리버와 페트리시아나 블룸리버.
연금부로 입학할 거란 예상과 달리 둘 모두 마법부에 입학하였으며, 놀랍게도 언니인 트레이시아나는 마법부의 수석 자리까지 차지했던 것이다.
“뭐어, 지금은 2학년 수석인 루시 메이릴이 너무 말도 안되는 경지까지 올라서 빛이 바랬지만, 본디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전통적인 강자는 4학년 수석들이었잖아요.”
학년이 높으면 당연히 학생 수준도 높아진다.
수석 학생들 중에서도 4학년 수석들의 수준이 가장 높은 것도 당연한 이치다. 다만 주인공 세대의 멤버들이 너무 말도 안되는 평균치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전투부 수석 다이크 엘펠란, 마법부 수석 트레이시아나 블룸리버, 연금부 수석 도로시 화이트펠츠.
내게 편지를 보낸 페트리시아나 블룸리버는, 현재 4학년 마법부 수석으로 이름을 올린 트레이시아나 블룸리버의 쌍둥이 동생인 것이다.
4학년 수석 3인방 중 둘은 이미 만나봤다.
전투부 수석이자 4학년 전체 수석인 다이크 엘펠란은 저번 학기말 시험 때, 칼레이드 교수와의 대련에서 난입했었다.
거구를 이끌고 건틀릿을 낀 채 날렵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마치 곰 한 마리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도로시 화이트펠츠는 글래스트 교수를 추격할 때 본 적이 있다.
예니카에 의해 제압당해버려서 제대로 활약을 펼치진 못했지만, 어쨌든 그 이름난 화이트펠츠 가문 소속이다.
1학년 마법부 수석인 요제프 화이트펠츠의 친누나이자, 연금부의 실질적인 에이스 취급을 받는 소녀이고, 글래스트 교수의 수제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허나, 트레이시아나와 페트리시아나라는 쌍둥이 마법사는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이름도 길고 어려워서 잘 분간이 안되는데, 에서 그리 비중 있는 인물조차도 아니었다.
말썽쟁이 블룸리버 가문 출신의 마법사라기에 뭔가 대단한 역할이라도 있을 줄 알았지만, 딱 시나리오가 고조되기 시작하는 부분이 두 쌍둥이 마법사가 졸업하는 시기였기에… 이렇다 할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하고 퇴장한 것이다.
그러니, 내게 이런 어이 없는 편지를 보낸 인물에 대해서는 내가 개인적으로 조사해봐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
“트레이시아나 선배님은 4학년 학생들 중에서도 고위 마법을 두 종류나 다룰 줄 아는 분으로 유명하죠. 마법부 수석 자리는 아무나 먹는 게 아닐테고, 심지어 4학년 수석이니까요. 사실 그걸 감안해도 말도 안되는 수준이지만.”
“흠, 그런가.”
학생회관 앞에 자리해있는 학생 쉼터. 수많은 목재 테이블이 도열해있는 이 곳은 평소엔 시간대를 불문하고 학생들이 가득 차 있다.
허나, 여름 방학이 한창인 이 때에는 교수동 전체가 한산하다. 학생회관 앞쪽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평소에는 자리 하나 잡으려고 경쟁을 해야하는 곳인데, 한산한 방학 시즌에는 아예 전세를 낼 수 있었다.
“뭐, 블룸리버 가문은 안 좋은 소문이 잔뜩 돌지만… 연금술 실험 분야에 대한 여러 진보를 일구어낸 곳이기도 하니까요. 저도 잘 알고는 있어요.”
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람은 2학년 연금부의 수석인 엘비라 에니스턴이다.
연금술과 마공학 분야에 대해서는 꽤나 깊은 학구열을 지닌 학생이자, 테일리를 위시로 한 ‘주인공 세대’에서 여러 시약이나 마공학용품 관리를 도맡아 하던 녀석이다.
산발이 되어 이리저리 비죽비죽 튀어나와있는 오렌지색 머리칼은 딱히 외모 관리 같은 것에 관심이 없는 그녀의 품성을 잘 나타내준다.
그래도 날카롭고 장난스러워 보이는 얼굴은 마치 작은 악마처럼 앙증맞은 느낌이 남아있다.
“트레이시아나 선배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페트리시아나 선배님은 잘 모르겠는걸요. 소문은 무성하지만요.”
언니 쪽은 학년 수석이기도 하고, 이런 저런 공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드러내서 학생들 사이에서도 꽤 이름이 나있다.
그러나 내게 편지를 보낸 동생 쪽은 생각보다 행방이 묘연하며, 수업 때도 잘 나타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엘비라는 내가 건네준 편지를 쭉 읽어보고서는… 눈을 반쯤 치켜뜬 채 자기 턱을 몇 번 긁었다.
“에드 선배님의 옛 주소지로 날아왔다고요?”
“그래.”
“흠…”
엘비라를 만난 것은 글록트관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뭔가 묘한 짓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기에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엘비라와 그 일행이었다.
엘비라는 연금술 분야에 대해서는 정통한 편이니 만큼, 연금술과 밀접한 가문인 블룸리버 가문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잠시 시간을 낸 참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페트리시아나 선배님은 언니와는 다르게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서 안 나오는 인간이라고 들었거든요. 학사 수업에도 거의 안나오지만, 실습 점수와 독학한 필기 점수로 출석 점수를 거의 메워버렸다고 들었어요.”
“그게 가능한 거냐?”
“뭐, 언니인 트레이시아나 선배님은 꼬박꼬박 수업에 나왔다고 했으니… 그 차이가 수석이냐 아니냐를 가른 거겠지요.”
쌍둥이라고 해서 둘 다 공부를 잘하리란 법은 없지만, 어쨌든 타고난 공부 머리는 비슷한 모양이었다.
“저도 건너 건너 들은 소문인데요. 아예 학사 소문이나 근황 따위엔 전혀 관심 없고, 그냥 자기 연구에만 몰두하는… 전형적인 방구석 폐인이라던데요.”
“…”
“그러니까 에드 선배님이 파문 당해서 오필리스관에서 쫓겨났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옛날 연락망으로 편지를 보낸 거겠죠?”
“내가 오필리스관에서 쫓겨난지 얼마나 오래 됐는데 그걸 아직도 몰라?”
“저도 좀 소름돋긴 해요. 이거 학생회장이 바뀐 것도 모르는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이토록 외부 소식에 관심이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학사 행사는 전부 공지 사항으로 나가는 데다가, 여러 수업에서 교수진들이 한 번 더 읊어주는 경우도 많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큼직큼직한 학사의 소식들을 하나도 모른다는 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저희 같은 연금술사 출신들은 묘한 습성이 있거든요. 어딘가에 비밀 연구실을 마련해놓고 이런저런 실험을 잔뜩 해보고자 하는 로망 같은 게 있는데…”
엘비라는 죄를 고하듯이 슬쩍슬쩍 눈을 치뜨면서 이야기했다.
엘비라 또한 동쪽 절벽지대 한 쪽 구석에 몰래 비밀 연구실을 차려놓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연금부에서는 학생들 개인 연구실을 따로 지하 시설에 챙겨주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서 외부 공간에 따로 비밀 연구실을 마련하기도 하거든요. 만약 그런 거 몰래 만들어서 거기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면…”
“그래도 수업은 들으러 나왔을 거 아니야. 24시간 거기에만 처박혀 있을 수가 있겠냐?”
“그렇긴 한데요….”
엘비라는 뭔가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는 듯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트레이시아나 선배님과 페트리시아나 선배님은 쌍둥이 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마법으로 머리색만 바꾸면 구분이 안가거든요.”
“…”
트레이시아나가 전부 대리출석 했다 이거냐.
왜 이렇게 성적이 좋나 했더니 몇몇 수업을 두 번 씩 들어서 그런 건가?
“사람의 체력으로 그게 가능해?”
“그러니까 수석 자리도 해먹었던 거겠죠. 뭐, 진짜로 그렇다는 건 아니고 제 추측이에요. 그냥 추측.”
엘비라는 편지를 다 훑어보고는 반으로 접어서 다시 내게 내밀었다.
“어쨌든 편지 내용만 읽어보면 페트리시아나 선배님은 묘하게 정의로운 것 같네요. 그러니까, 함부로 사람을 납치 감금하면 안되죠.”
“왜 당연스럽게 이걸 전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니, 뭐 필요하면 사람 하나 정도는 납치 감금할 수도 있긴 하죠. 사정이 다 있으셨던 거 아니에요?”
능청스럽게 이야기하는 엘비라는 치켜뜬 눈을 깜빡거렸다.
그 옆자리를 보고 있으면, 소년 하나가 팔을 뒤로 묶여서 천으로 입과 눈을 가려진 채 바둥거리고 있었다.
“읍! 읍! 으읍!”
호리호리한 체격과 음울한 느낌. 노튼데일 가문의 검귀로 통하는 클레비어스였다.
“아까부터 어렵사리 무시하고 있었던 건데… 그래도 굳이 물어보고 싶다.”
“네?”
“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엘비라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자기 턱을 쓸었다.
“사람으로 만드는 중이에요.”
“…”
“들어보세요, 선배님. 얘가 참 아직도 정신 머리가 없어요. 틈만 나면 우울한 소리나 내뱉으면서 눈 마주치는 사람마다 시비를 걸고 다니잖아요. 저번에 에드 선배님한테도 공연히 소리지르고 화내고 그랬었죠?”
나는 클레비어스가 딱히 공격적인 언사를 해대는 것에 신경을 쓰진 않는다.
원작에서도 애초에 이런 놈이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음울해서 기분이 나빠지지만, 어쨌든 할 때는 하는 놈이다.
“클레비어스는 사회성이라는 걸 좀 더 기를 필요가 있거든요. 틈만나면 불 다 끄고 어두운 방구석에서 으히히 거리면서 이상한 혼잣말이나 해대고 있잖아요.”
“…”
“좀 더 이렇게 의젓하고 멋진 남자가 될 수 있는데 아깝잖아요. 그래서 제가 파티 자리에도 데리고 다니고, 옷도 좀 멋지게 입히고 있어요. 가끔 그 외향적인 분위기에 경기를 일으켜서 도망치려고 하는데, 진정 효과가 있는 시약이 잔뜩 있으니까 쉽게 제압할 수 있죠.”
읍읍 거리는 클레비어스가 몸을 이리저리 꺾자,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가 슬쩍 내려갔다.
그 상태로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제발 한 번만 살려달라고 구조 요청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데?”
“저랑 다음 주에 있을 연금부 만찬회에 같이 가겠다고 말할 때 까지요.”
“거길 꼭 가야하냐?”
“여러 인맥 쌓기도 좋고, 사회성 훈련하기도 그만한 곳이 없거든요.”
내가 어이 없다는 듯한 눈을 한 채 한참을 쳐다보았지만, 엘비라는 아랑곳 하지 않고 콧김을 휙 내뱉었다.
“또 저도 허우대 멀쩡한 남학생 하나 끼고 가고싶은 마음도 있고요. 저도 여자니까~.”
그렇게 말하고 베시시 웃는 모습에,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대로 다시 클레비어스와 눈을 마주치자, 그의 절실한 눈빛에 습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한 번만 살려주세요. 이젠 다시 건방지게 반말 안할게요. 괜히 멱살을 잡지도, 신경질 부리지도 않고 선배 대우 잘 할게요… 뭐 그런 메시지가 전달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렵사리 눈을 휙 피했다.
좀 잡혀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단다… 클레비어스…
*[ 마법 능력 상세 ]
등급 : 능숙한 마법학도 전문 분야 : 원소 공통 마법 :
빠른 캐스팅 Lv 13
마나 감지 Lv 14 불 원소 마법 :
발화 Lv 18
일점폭발 Lv 3 바람 원소 마법 :
바람 칼날 Lv 16 ….성위 마법 :
성위계 마력 발현 Lv 4
성질 변환 Lv 3
사망 면역 Lv 0
시간 감옥 Lv 1 (new!)
단거리 공간 이동 Lv 0
강제 결집 Lv 2
환시 발현 Lv 0
현혹 Lv 1 (new!)
은 이미 10회 넘게 독파했다. 이젠 각 챕터 별 항목 순서까지 싹 다 암기했을 정도다.
디테일한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도 꽤 있지만, 어쨌든 큼직큼직한 내용은 전부 체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위 마법의 성장세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 동안을 수련해도 마력 발현 레벨이 올라가질 않는다.
다른 마법 분야는 원작에 나온 것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훈련하면 될지 가이드 라인이 잡혀있지만, 성위 마법은 정말 아예 처음 경험해보는 것들이다.
그러니 효율적인 수련 방법이라는 것도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계속해서 책을 읽고, 몇 번이나 실전에서 성위 마법을 쓰다보니… 새로운 마법 영역이 뚫리긴 했다.
시간 감옥과 현혹.
시간 감옥은 글래스트 교수나 루시가 사용했던 걸 본적이 있다.
몇 초 내지 몇 분 동안 대상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해버리는 마법이다. 다만, 대상의 시간 그 자체를 정지시켜버리기는 행위기에, 그 몸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제압해 둔 채 공격한다, 라는 제압 마법의 기본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 잠시동안 전장에서 이탈시킨다는 측면이 더 두드러지는 마법이다.
그리고 또 다른 마법, ‘현혹’.
일시적으로 대상의 정신을 지배해서 원하는대로 행동하게 만드는 이 마법은… 다른 성위 마법에 비해서도 훨씬 더 많은 양의 마력을 소모한다.
거기다가 상대의 마력 감응 수준이 나보다 높거나, 현혹의 스킬 숙련도가 지나치게 낮으면 조종 범위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스킬 숙련도가 한계 이상으로 높아지면 정말 대상을 완전히 지배할 수도 있겠지만, 낮은 스킬 레벨로는 상대가 저항할만한 행동은 명령할 수가 없다.
현혹 마법의 스킬 숙련도를 높여서 상대의 거부감을 깨부수고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들… 그렇게 되면 소모되는 마력도 어마어마한 수준이 된다.
낮은 스킬 숙련도로는 상대의 움직임을 유도하거나,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을 분산 시키는 수준 밖에 못하는 것이다.
“흐음…”
성위 마법군의 스킬들을 하나씩 훑어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정말 말도 안되는 위력을 가진 마법들이다.
주로 화력을 담당하는 원소 마법들에 비하면, 성위 마법들은 전장을 조율하고 변수를 창출하는데에 특화되어 있다.
내 전투 스타일과는 정말 딱 맞는 느낌인지라, 최대한 많이 수련해두고 싶었다.
지금은 마력을 제대로 쓸 수가 없는 상황인지라, 새로 익힌 마법들을 사용해볼 수 없다는 사실이 좀 뼈아팠다.
그렇게 새로 익힌 마법들을 이리저리 체크해보고, 올라간 능력치들을 확인하며 글록트관 앞까지 왔을 때 였다.
“드디어 왔구나, 에드 로스테일러.”
글록트관의 입구로 향하는 계단. 그곳 중간 부근에 앉아서 턱을 받치고 있던 소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페트리시아나 선배님?”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나 짓고 있구나! 내 편지를 다 읽었으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보랏빛 단발 머리칼이다. 앞머리를 머리핀으로 올리자 새하얀 이마가 예쁘게 드러난다. 자기 주장 강한 두 눈썹이 앙증맞게 좁혀들었다.
“너, 북쪽 숲에 캠프를 두고 있지?”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보고 발을 동동 굴러대며 노발대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아, 네… 알고 계셨습니까?”
사실 어지간히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뭐, 아직도 학생들 대다수는 내가 숲에서 그런 궁상맞은 야생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못하는 것 같다만, 그래도 딱히 비밀로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거기서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솔직하게 다 불어!”
“…딱히 꾸미는 일은 없고. 살만한 곳이 없어서 거기서 살고 있습니다.”
“거짓말 하지마! 기숙사가 멀쩡하게 있는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기숙사 쫓겨난지 얼추 2년 좀 안 됐습니다.”
“…어?”
페트리시아나는 내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다시 커흠커흠 거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렇구나. 내가… 바깥 소식에 좀 어두워.”
거기까지 말하고 페트리시아는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퍼뜩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언성을 높인다.
상대는 뭔가 무리해서 화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일단 가만히 듣고 있어보았다.
“어쨌든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건 아니고…! 너, 나보다 살짝 키가 더 크면서 뒤로 백발을 올려 묶은 여자애… 알지…?”
“…”
그 인상착의를 듣고 나니 생각나는 사람은 한 명 뿐이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 정령이었다.
본인 딴에는 가출한답시고 캠프를 뛰쳐나간 고위 바람 정령이었다.
“매일 같이 그 애가 캠프를 들락거리다가, 얼마 전에 드디어 북쪽 숲에서 맨발로 뛰쳐나온 거 봤어!”
“…그래서요?”
“일단 내가 확보해서 보호해뒀어. 매일 네 캠프 근처에서 사라져서, 몇날 며칠을 안 나오다가, 며칠에 한 번씩 겨우 산책하듯 나오는 모습을 본 적 있어! 제대로 식사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매일 초췌해진 상태인데다가… 마치 누군가한테 매인 듯이 숲 밖으로 떠나지도 못하고 있었잖아! 무슨 으름장을 놓은 건진 모르겠지만…!”
확실히 설명만 듣고보면 오해할만하다.
“항상 맨발에, 제대로 된 옷가지도 없고… 사람다운 대우도 못받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내가 걔를 챙겨서 확보해뒀어! 제대로 된 진상을 이야기 해주지 않으면… 이대로 학사에 보고할 줄 알아!”
“설명하기 전에… 그… 제 캠프 주변 상황을 어떻게 그리 잘 아십니까?”
그 말에 페트리시아는 헛숨을 휙 삼키고 동공을 떨었다.
“그… 학사 소식은 하나도 모르시는 분이, 어떻게 제 캠프에 들락거리는 그 여자애 근황은 그렇게 잘 아시는지…”
“…그걸 알아서 뭐하게!”
“학사 차원에서 금지하고 있는 개인 비밀 연구 시설 같은 거… 혹시 북쪽 숲 근처에 세워놓으셨습니까?”
“…”
나는 일단 떠보듯이 물었다. 북쪽 숲에 그런 시설이 있었다면, 필시 눈에 띄었을 것이다.
뭐, 나는 일단 인간이고…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한정되어 있지만, 숲 전체를 관리하는 메릴다라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너, 봤구나…!”
보고 자시고 지금 네가 자백했잖아 이 자식아.
갑자기 페트리시아나의 주변에서부터 마력이 뿜어져 올라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실력 행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뭐, 설마 다치게 만들겠냐만은… 일단은 힘으로라도 찍어눌러서 대화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나는 지금 마력을 쓸 수가 없는 상태다. 품 안에 들어있는 이런 저런 마공학 용품으로 손을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 화아아아아악!
순간적으로 대기가 갈라지는 느낌이 났다.
바람이 불어오더니, 나와 페트리시아나의 사이를 가르고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장거리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끼어든 소녀의 모습은… 페트리시아나 블룸리버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다만, 눈매가 좀 더 순둥이 같고, 머리칼은 푸르스름 하다.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페트리시아나와 완전히 닮아서, 처음 본 사람은 머리 색이 아니고서야 둘을 구분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커다란 지팡이를 한 손에끼고 바람과 함께 나타난 소녀는, 순식간에 법진을 발현해서 페트리시아나가 발현한 마력 구체들을 전부 다 터뜨려 없애버렸다.
―콰가가가각!
“꺄하악!”
― 휘이이이잉!
몰아치는 격풍에 페트리시아나가 난간을 잡고 겨우 몸을 가눴다.
그대로 바람과 함께 착지한 소녀, 4학년 수석 트레이시아나 블룸리버는… 교복 외투를 꽉 여미고는 나와 페트리시아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언니…! 마침 잘 왔어! 이 사람이…!”
푸른 머리를 한 트레이시아나는 종종 걸음으로 페트리시아나 쪽으로 가더니, 귓불을 잡아 당기고는 내 쪽으로 데리고 왔다.
“아앗, 아악! 아아아악!”
“미안해, 내 동생이 좀 철이 없어!”
“언니! 아파! 이것 좀 놔! 내 얘기 좀 들어 보라니까!”
트레이시아나는 그대로 페트리시아나의 머리를 푹 눌러서 사과를 시켰다.
“얘가 자기 맘대로 속단하는 기질이 좀 있어서 그렇지, 본질은 착한 애니까 한 번만 눈 감아 줘!”
“언니! 그게 아니라니까! 언니! 이 인간이 사는 캠프.. 거기에… 그 소녀가…!”
“네가 로레일관에 잡아다 놓은 그 애 말이지? 안 그래도 내가 데려왔어! 납치범은 이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겠지, 페트리시아나!”
그렇게 말하고, 트레이시아나가 마력을 발현하자 또 다른 바람을 일으키며, 소녀가 글록트관 상공에서 착지했다.
새하얀 원피스와 머리칼을 날리는 소녀는 눈에 익은 얼굴이다.
“…메릴다.”
메릴다는 뭐라 입을 열어서 말하려다가 말았다. 보아하니 본인이 정령인 것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학사를 노닐 때에는 인간으로서 움직이는 메릴다다. 괜시리 정령인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가 예전처럼 편안하게 학사를 다닐 수 없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정령은 말하는 것만으로도 마력이 느껴지는 울림으로 전달이 되어, 순식간에 정령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 형태의 메릴다는 어지간해선 모르는 사람 앞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본인 딴에는 자기가 납치 당한 신분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듯 한데… 페트리시아나의 감응력이 부족해 불완전하게 현현한 메릴다의 설명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너, 너는…!”
그제서야 페트리시아나는 화들짝 놀라서 메릴다 쪽을 바라보지만, 메릴다는 종종 걸음으로 튀어와서 내 뒤에 쏙 숨었다.
그 광경을 보던 페트리시아나는 잠시간 내 얼굴과 메릴다의 얼굴을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닷!!!!”
진작에 이렇게 상황판단이 빨랐으면 참 좋았을텐데.
*페트리시아나는 벤치 구석에서 팔을 올리고 벌을 선 채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시니르 가주님으로부터 서신을 받았어. 어머니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서신을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나도 좀 당황스러웠어.”
트레이시아나 블룸리버는 페트리시아나와는 다르게 묘하게 어른스러워 보였다.
외모가 이렇게 비슷한데, 풍기는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로스테일러 본가에서 엄청 큰 일을 치른 모양이네. 아직 실베니아까지는 소식이 닿지 않았지만, 곧 있으면 소문이 무성해지겠지. 그만큼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으니까.”
시니르 블룸리버는 로스테일러 저택의 대참극 현장에 있었던 자다.
사건 당사자인 나 에드 로스테일러가 아카데미로 복귀했으니, 덩달아 아카데미에 있었던 딸에게 서신을 보내 이 소식을 알린 것이다. 트레이시아나가 들고 있는 서신은 이제 막 도착한 듯 했다.
“소식을 들은 것 치고는 딱히 절 경계하진 않으시는군요. 트레이시아나 선배님.”
“나는 네 편이야, 에드 로스테일러. 어머니는 네가 로스테일러 가문의 참극에 가담하지 않았을거라고 판단했거든.”
트레이시아나는 시니르가 보내준 서신을 그대로 내게 보여주었다. 날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머니께서 그리 판단하셨다면, 나도 널 믿어야겠지. 그래도 소식이 알려지면 이 학사 내에서도 너에 대한 여러 소문과 여론이 형성될 거야. 어찌됐든 너도 로스테일러의 이름을 달고 있었으니까.”
“저한테 어떤 방식으로든 악영향이 미칠까요?”
“글쎄. 그건 지켜봐야지. 어쨌든 너랑은 얼굴 도장을 좀 찍어두고 싶었는데, 잘 된 일이네. 보아하니 4학년 여론은 너한테 호의적으로 흘러갈 것 같긴 해.”
트레이시아나는 벤치 한 쪽 구석에 앉아서 지팡이를 다듬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전투부 수석인 다이크가 널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더라고. 요즘 보기 힘든 독종이라나. 연금부 수석인 도로시는 좀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싫어한다기보다는 좀 무서워하는 느낌이야.”
“…”
“그냥 묻는 건데, 예니카가 걔한테 무슨 짓 했어?”
“노 코멘트로 넘어가도 됩니까?”
“…그래, 캐묻진 않을게. 페트린, 손 좀 제대로 들어.”
우윽, 거리며 페트리시아나가 손을 꼿꼿이 들었다. 쌍둥이 언니 치고는 권위가 좀 있는 편인 것 같다.
아무래도 페트리시아나가 트레이시아나에게 여러모로 밑지고 있는 게 많은 것일까. 페트린이라는 호칭은 아무래도 별명인 것 같고…
“어쨌든, 너도 한 배를 탄 입장이니까 말해둘게. 우리 어머니이자 블룸리버 가문의 가주인 시니르 블룸리버는… 타냐 로스테일러한테 붙었어.”
그 말에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그리고 천천히 트레이시아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당장 멸문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가문이다. 그런 가문에 가담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가 그 가문의 사람이긴 하지만 말이다.
“로스테일러 저택의 소식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학사 안에 있는 여러 가문 소속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여론이 갈리기 시작하겠지. 그 때가 되면 네 편인 사람과 네 편이 아닌 사람을 잘 구분해야 할 거야.”
“아니꼬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건 익숙해질만큼 익숙해졌습니다.”
“그냥 사람이 아니꼬운 거랑, 그 사람을 반역자로 여기는 건 완전히 무게감이 다르잖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긴 했다.
“4학년 수석인 다이크는 믿어도 돼. 하지만 3학년 연금부 수석인 아탈란테는 잘 모르겠어. 1학년 전투부 수석인 웨이드도 그렇고. 걔네 가문은 황실에 충성하는 애들이거든. 무슨 돌발 행동을 할지 몰라. 오늘 페트린이 그랬던 것처럼.”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조언은 무슨.. 그냥 당연한 이야기야. 그럼…”
트레이시아나는 옷을 탈탈 털고 일어나서, 페트리시아나의 볼을 잡아 당겼다. 그렇게 일으켜 세운 뒤 내게 인사했다.
“어쨌든, 첫인상이 안 좋게 된 건 아쉽게 됐네. 또 보자. 아마… 다음 전투 실습 때나, 아니면 합동 수업 때 또 볼 수도 있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트레이시아나는 페트리시아나를 끌고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일단은 아군으로 붙어준다고 했으니, 꽤나 듬직한 선배처럼 보였다. 체구는 다소 왜소했지만.
“그건 그렇고…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사정을 좀 들어볼까…”
나는 두 마법사를 떠나보내고,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멋쩍은 듯 시선을 피하고 있는 메릴다가 그곳에 있었다.
*
“다음.”
으리으리하고 휘황찬란한 황실 궁전의 손님용 방.
그 중에서도 가장 번쩍거리고 넓은 방의 소파에, 루시 메이릴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황실 주방에 있는 모든 육포를 쓸어서 테이블 위에 가져다 놓은 주방장은… 식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악신 메뷸러를 혼자서 돌려보내버린 희대의 천재 마법사, 루시 메이릴이 소파에 드러 누운 채로 육포를 한 입 한 입씩 씹어먹고 버리고 있었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셀라하는 눈은 웃고 있었지만, 입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이 맛이 아니야…!”
그렇게 대략 세 시간 동안 육포 미식회를 열고 있는 루시 메이릴은… 단 한 번도 만족하지 않았다.
셀라하가 일급 귀빈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인물이다. 13년 째 황실의 주방장을 맡고 있는 사내는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어떻게 이 인간을 만족시켜야 할까 고민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셀라하는 웃는 눈가를 유지하면서도, 지끈거리는 두통을 참아내야했다.
에드 로스테일러의 대타로 황실에 온 이 마법사는… 흙 묻은 옷으로 침대에 드러눕거나, 신발을 벗지도 않고 카페트를 밟아대는 등… 진상도 보통 진상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입맛은 뭐 이리 까다로운지, 황실의 으리으리한 만찬에도 심드렁한 태도만 보일 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매우 띠껍고 얄밉다…!
그러나 셀라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웃음을 유지했다. 그대로 입술 끝을 떨며 맞은 편에 앉아있을 뿐이다.
하는 행동에 품위라곤 전혀 없는 것이…. 그냥 돌려보낼까 싶은 생각만 자꾸 들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허나, 루시 본인은 대우가 매우 불만스러운 것 같아서 금방이라도 돌아가버릴 것만 같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루시가 돌아가려고 마음 먹으면 황실 입장에서는 무력으로는 막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입을 열지도, 뭔가 협상을 걸어오지도 않는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