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7)
합동 전투 실습 (4) (수정됨)
갑작스럽게 결투대를 뛰쳐나와 출구로 달려 나간 페니아 황녀를 어렵사리 호위대장 클레르가 따라왔다.
너무 답답해서 고통스러워하던 황녀는, 그녀의 호위 대장 클레르가 오는 걸 보고서야 겨우 진정을 했다.
제 아무리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고 하더라도 신분이 신분이다. 호위대장 앞에서까지 품위 없는 행동거지를 보여줄 수는 없었나보다.
“저 이대로는 포기 못해요.”
그러나 완전히 화가 삭지는 않은 건지, 심술이 가득한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당신, 뭔가 있죠? 분명.. 뭔가 짊어지고 있다든가, 숨기고 있다든가,.. 대체 왜 말을 안 하고 억지를 부리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진짜 다 알 수 있어요. 악의나 새까만 속내 같은 건 안 느껴지지만…”
“절 너무 과대평가 하시는 거 같습니다. 황녀님…”
“…잘 들어요. 지금은 증거가 없어서 뭐라 말을 못하겠지만…”
황녀의 영롱한 황금색 두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향했다.
역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페니아 황녀 또한 루시 메이릴 못지않게 요주의 인물이다.
무엇보다 황녀 특유의 저 통찰안은 상대하고 있으면 적절히 처세하기가 까다롭게 만든다.
테일리를 향해 소리를 치던 나의 절박함을 그 잠깐의 순간에 캐치해 낸 것처럼, 날카롭게 날이 선 황녀의 육감은 잠깐의 방심도 허용하질 않는 것이다.
‘실베니아의 낙제검성’에서 페니아 황녀의 통찰안은 단순히 전투 시 상대의 다음 행동을 미리 알 수 있거나, 상대의 스탯 일부를 엿보는 능력으로만 구현되었다.
그 외에는 그냥 시나리오를 위한 설정으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막상 현실이 되어 그 능력과 맞닥트리고 나니, 이런 일상생활에서까지 그녀의 예리한 통찰안을 상대해야 하는 건 너무 귀찮고, 정신력 소모도 크다.
역시 페니아 황녀와는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게 좋다.
안그래도 시나리오 메인인물이라 그럴 일 없겠지만, 얘랑은 진짜 절대 친하게 지내지 말자. 그 결론에 더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뭔가 윤곽이 잡히기만 하면, 반드시 대답을 받아낼 거에요.”
…물론 그렇게 쉽게 거리를 둘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 노력 여하에 달려 있겠지.
페니아 황녀는 거기까지 이야기 하고 나서 한숨을 푹 흘렸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웃기고 어이없는지 자각한 모양이었다.
양팔을 허리께에 올리고 한숨을 흘리고서는, 그제서야 겨우 원래 텐션을 되찾았다.
“어쨌든… 윽박지르고 추태를 보인 건 미안하게 됐어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자기 추태를 되새겨 본 황녀는, 자기가 몹시 몹쓸 짓을 했다는 자각이 든 모양이었다.
그렇게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으면서도 마지막엔 결국 사과를 건네고 마는 것은, 페니아 황녀답다.
애시당초 그 상대가 에드 로스테일러인 지금 상황이 이례적인 것이지, 페니아 황녀 자체는 타인을 상대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라 할 것도 참 복잡미묘하다.
일국의 황녀와 일개 학생 사이에 벌어진 신분의 간극은 어마어마하다. 황녀가 내는 자그마한 짜증이나 신경질도 상대의 입장에서는 천지가 개벽하는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황녀의 어렸을 적 에피소드들을 알고 있다. 구구절절 이야기 하기는 좀 길긴 하다.
그러나 저렇게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이타적이고, 배려가 몸에 배인 성품을 가지게 된 이유로서는 그럭저럭 납득할만 했다.
찻잔에 살짝 남아있는 얼룩을 지적했다가 친하게 지냈던 메이드가 황실 정원에서 채찍질을 당한 일.
언제나 독살의 위험을 의식해야하는 황족의 식기에 얼룩 때 같은 게 남아 다과상 위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그토록 중요한 확인의무에 불성실 했다는 단적인 증거였다.
어디 그게 다인가.
정원에서 뛰놀다가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호위 기사의 이름이 바뀐다.
피곤해하거나 잔병치레라도 하면 황실 주치의의 안색이 새파래지고, 황실 연회에서 구두굽이 부러진 날에는 황실 재단사가 직접 방까지 찾아와 온몸을 바닥에 바짝 붙이고 눈물로 사죄했다.
단아한 성품을 타고난 페니아에게는 그 모든 것이 압박이고 속박이다.
고고한 군주의 길엔 일말의 삐끗거림도 허락되지 않는다. 자신의 실책은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된다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물며,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성을 내거나 공분을 내비췄다간, 그 앞길에 어떤 재앙이 도래할지는 페니아 황녀 자신도 가늠할 수 없었다.
자애의 황녀라는 이명은 그녀의 자애로운 성품을 칭송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 그 이명은 황녀를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이다.
그러나 딱히 내가 뭘 해줄 수는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변수였다.
“나가봐도 좋아요. 방금부터 문 쪽만 쳐다보던데, 분명 급한 일이 있는 거죠?”
황녀는 단념했다는 듯이 나를 보내줬다. 내 입장에서는 감사한 일이었다.
어찌됐든, 원래라면 존재해서는 안 될 나라는 변수가 괜히 황녀한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준 건 맞는 것 같았다.
– ‘안 그래도 수업 진행 따라가기도 힘든데, 그 여우같은 상인은 속내를 숨기고 장삿속으로 학교를 잡아먹으려고나 하고…! 글래스트 교수의 심술은 나아질 일이 없고…! 그 와중에 사용인들은 황실의 법도 같은 것이나 들먹이고…! 안 그래도 신경 쓸 거 많은데! 힘든데..!’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억하심정을 잔뜩 털어낸 그 모습은, 확실히 내가 알고 있는 페니아 황녀와는 거리가 있었다.
필시 시나리오상 일어나는 온갖 사건 사고 때문에 마음이 조금씩 마모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나라는 변수까지 거기에 얹어지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겠지.
괜스레 벌써부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니 앞으로의 시나리오 흐름에 악영향이 있을까봐 조바심이 나긴 한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뭘 할 수 있는 일이 있냐 하면… 딱히 없었다.
“제가 무슨 짐을 짊어진들, 황녀님이 짊어지신 짐보다 무겁기야 하겠습니까.”
나가려고 문에 손을 올린 채로 그냥 몇 마디 얹는 게 전부였다. 주제넘은 말일지 모르겠으나 겨우 이 정도 오지랖 가지고 뭐라 하진 않겠지.
“복잡한 정세나 치세를 신경 쓰는 것도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마음을 좀 편하게 드시면 어떻습니까? 여긴 매사 고고하게 권위를 세우는 황실이 아니라… 실베니아 아카데미니까.”
그 말에 황녀의 동공이 일순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놀랄만한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건만.
“자각하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많이 지쳐 보이십니다.”
수도 없이 타인을 꿰뚫어보며 살아온 삶이었지만, 본인의 내면이 타인에게 꿰뚫려 본 경험은 별로 없는 것일까.
폐부를 찔린 듯한 황녀의 그 표정에, 아차차 싶어서 재빨리 문을 닫고 나갔다.
다행히 나를 잡아 세우진 않았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찌됐든 페니아 황녀는 메인 등장인물이다.
지금이야 내가 잔뜩 신경 쓰일지 몰라도, 온갖 사건사고에 휘말리다 보면 나 따위는 금방 잊어버리겠지..!
이제 다시는 보지 말자!
제발!
*
테일리 맥로어를 발견한 곳은 학생회관 외곽에 있는 나무 벤치였다. 결투에 썼던 나무 목검을 그대로 꽉 쥔 채로 앉아있었다.
멀찍이서 테일리의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이 선 것은 아니다.
“흠….”
생각해보면 좀 웃긴 상황 아닌가? 아니, 애초에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테일리 맥로어에게 심한 폭언을 일삼으며, 그를 쫓아내려했던 삼류 악당이다. 이제 와서 격려를 하는 것도 좀 웃기다.
아까야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몸이랑 말이 먼저 튀어나간 것이지만, 차분히 한 번 다시 생각해보면 내 입장에서 테일리를 격려할만한 수단이 전혀 없다.
뭘 어떻게 말을 건네든 간에 진정성이 느껴질 리가 없다.
이런 난감한 상황인지라,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이 됐다. 그래도 발은 테일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순식간에 누군가가 그 앞을 가로 막아섰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이건 또 뭔가 싶었다. 그러나 그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묘한 반가움이 앞서 피어올라왔다.
짧게 웨이브 친 밤색 단발, 유약해 보이는 외견이지만 굳건하게 인상을 쓰고 있는 얼굴엔 의지가 엿보인다.
“너는…”
“가까이 오지… 마세요…”
양팔을 벌리고 벌벌 떨고 있지만, 그래도 똑바로 날 향해 말하는 모습은… 과연 게임 안에서 봤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적어도 실베니아의 낙제 검성을 한 번이라도 플레이 해봤다면 이 얼굴이 반갑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사실상 실베니아의 낙제검성 얼굴마담이자, 힘들고 고된 시련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테일리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지지해주는 그의 소꿉친구, 아일라 트리스를 실물로 보게 될 줄이야.
“에드 로스테일러…. 더 이상…. 더 이상 테일리를 …. 건드리지 마세요…!”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하찮다 못해 불쌍해 보일 지경이다. 그럼에도 그 얼굴에는 진득하게 경멸의 감정이 피어올라 있었다. 이건 또 신선한 느낌이었다.
과연… 에드 로스테일러의 입장이 되어보고 나니 심성이 유약한 아일라가 이런 경멸에 찬 표정을 짓는 것도 볼 수 있군.
“당신이 아니더라도… 테일리는… 충분히 고생이 많았어요.. 이제 됐잖아요! 이제 더 괴롭힐 필요 없잖아요! 당신도 봤잖아요! 충분히… 충분히 힘들었을 거란 말이에요…!”
벌벌 떨리는 목소리는 끊어질 듯 희미하지만, 그래도 그 말을 끝까지 내뱉고 만다. 다른 무엇보다 테일리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하나 만큼은 진심이다. 그 사실에 괜시리 나까지 감동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그래, 이게 아일라지…!
…잡아먹을 듯이 나를 노려보는 상대를 앞에 놓고 구태여 감동 따위를 하고 있는 내 꼴도 참 웃기긴 하다만…
-파삭!
아일라가 들고 있던 철제 물컵이 돌바닥을 굴렀다. 잠시 물을 뜨러 다녀오던 길이었나보다.
물이 바닥에 쏟아지며 철퍽대는 소리에, 테일리가 그제서야 반응했다.
천천히 나무 벤치에서 일어난 테일리가 나와 아일라 방향으로 다가왔다.
나는 여기서 벌써 위화감을 느꼈다. 테일리가 걷는 걸음에서, 특유의 그 힘없이 나약한 느낌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에드… 로스테일러…”
검을 꽉 움켜쥐고 다가오더니, 아일라를 자기 등 뒤로 보내고 나를 노려보았다.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었군요…”
낮고 진중한 목소리. 꽤나 생기가 돌아와 있어서 놀랐다. 결투에서 졌을 때 보았던 테일리의 얼굴은, 확실히 생기라고 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테일리는 무엇인가.
테일리 특유의 그 생동감. 아무리 강대한 상대를 앞에 두고도 꺾이지 않는 투지. 눈동자에서 확실히 느껴지는 그 의지력.
부활했다?
그렇구나.
여기까지 오고나니 일의 전말이 보였다.
나는 황녀랑 그놈의 결투를 진행하느라 테일리를 바로 따라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참관인 석에서 테일리를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던 그의 소꿉친구이자 최대의 버팀목, 아일라 트리스는 뒤도 보지 않고 바로 뛰쳐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어졌을 상황은 직접 보지 않았어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높고도 높은 벽이 막아서고, 서리처럼 차가운 시련이 테일리의 앞길을 막아서려 할 때마다, 아일라는 언제나 테일리를 끌어 안아주고, 격려해주고, 긍정해주었다.
괜찮아. 이번에도 이겨낼 수 있어. 항상 잘 해왔잖아. 널 믿고 있어. 넌 할 수 있어. 좌절 하지 마, 테일리.
그런 가슴 따뜻해지는 말을 끊임없이 해주고, 테일리를 위해 같이 울어주고, 또 같이 웃어주는 것이다.
아일라가 있다면, 테일리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선다.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을 텐데.
“여기는… 무슨 일로… 나한테 용무라도 있어요…?”
그 결과, 테일리는 또 다시 일어선 것이다.
행여나 아일라가 해코지라도 당할까봐 그 왜소한 몸 뒤로 그녀를 숨기고, 똑바로 나를 쳐다보며 다시금 그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가슴께를 타고 피어올라 복받치는 이 감정은 익숙하다.
그래, 테일리로서 수도 없이 많은 경험을 해오면서, 끝까지 그에게 이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굳건한 의지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 칼 좀 잘 쓰더라, 다시 봤다.”
“…. 속 꿍꿍이가 뭔지 확실히 말하세요.”
“그런 건 딱히 없다.”
입학시험에서 자기를 경멸하던 인간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니, 정신이라도 나간 건 아닐까 하는 시선을 받는 거야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번 만큼은 확실하게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상황이 어쩌고 미래의 흐름이 어쩌고 이전에, ‘실베니아의 낙제검성’을 플레이하면서 오랜 시간 지켜봐왔던 정이란 게 있었다.
그 여정의 끝을 함께하면서, 몇 번이고 네 굳은 심지를 확인했다. 아무리 고된 시련이 찾아와도 절대로 좌절하지 않는 의지력에 많은 용기를 얻었었지.
루시한테 한 번 두들겨 맞았다고 모든 의지를 내려놓을 거라 속단하다니. 나란 놈도 참… 걱정도 유분수지.
나 대신에 앞으로 일어날 시련을 대신 받아내줄 해결사니 뭐니, 온갖 호구취급이야 다 했지만… 직접 맞닥트리고 나니 그 마음도 어느 정도 눈 녹듯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뭐… 내 대신 고생을 다 도맡아서 해줘야 하는 건 팩트긴 하지만… 일단 그런 건 차치해 두자… 그럼 내가 너무 냉혈한처럼 보이잖아..
“으읏…”
문득 아일라와 눈이 마주쳤다. 경멸에 찬 눈으로 내 시선을 받아쳐주지만, 나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뒤를 돌았다.
테일리가 무너져 내릴까봐 노심초사 했던 마음이 한 번에 확 뚫린 느낌이었다.
그래도.. 아무리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친구들이여도 그렇지, 이 이상 접점을 가졌다간 정해진 미래 흐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뒤돌아 사라지면서, 등에 박히는 시선이 영 따갑긴 했다. 안 봐도 뻔했다. 저 사람이 대체 왜 저러지??? 하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겠지.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합동 전투 실습이 진행 중인 네일관을 중심으로 불꽃이 치솟아오른 건 그 직후였다.
학생 회관 주변을 노니던 학생들은 하나같이 화들짝 놀라서 네일관을 쳐다보았다. 이런 대규모 화재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어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근데, 애초에 화재가 아니다.
불의 고위 정령 타칸의 화염은, 소환한 정령사가 목표로 한 상대만을 불태우는 저주의 불꽃이다.
그렇다고 해서 뜨겁지 않은 건 아니다. 그 열기가 퍼져나오는 것은 확실히 느껴졌다. 이 정도 거리에서 이 열기면, 참관석에 앉은 학생들은 사막 한복판에 던져진 기분이 들겠지.
“벌써 그럴 타이밍인가.”
주머니에 손을 우겨넣고 네일관으로 돌아가는 와중이었다.
1학년과 2학년의 합동 전투 실습 이벤트. 그 클라이막스 현장이었다.
정사대로였다면, 네일관의 참관인 석에 앉아서 다 같이 지켜봤어야 할 장면이다.
루시가 테일리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버리는 바람에 생각과는 좀 다른 형태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 스케일 덕에 한 눈에 들어오긴 했다.
‘황금의 딸 로르텔’과 ‘정령사 예니카 페일로버’의 대련.
소문난 2학년 수석 예니카 페일로버의 실력을 가늠해보기 위해, 황금의 딸 로르텔은 실격 당할 것을 감수하고 기습적으로 중급 빙결 마법을 시전해 네일관의 천장을 날려버린다.
어차피 천장의 수리비 따위는 그녀에게 있어선 크게 거리낄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예니카 페일로버 또한 본 실력을 온전히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그녀와 계약한 정령 중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타칸을 현현(顯現)시키고 마는 상황이다.
굳이 네일관의 참관인 석에 앉아 있지 않아도 무슨 상황일지 훤히 그려졌다.
커다란 네일 관을 감싸듯이 안고 있는 불타는 도마뱀의 모습은, 예니카의 ‘절친’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그 불타오르는 머리에 똑바로 올라탄 예니카가 어렴풋이 보였다. 행여 중심을 잃고 넘어질까 딱딱한 비늘을 움켜쥐고 지팡이를 휘두르는 모습. 그런 상황에 몰려서까지 당황하지 않고 발랄하게 웃는 모습이 가관이다.
정말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소녀다.
나는 주변 벤치에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어쨌든 많이 지쳤다. 저런 열기 덩어리가 설치고 있는 네일관으로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저물어가는 태양을 배경으로 포효하는 거대 불꽃 도마뱀의 모습은, 확실히 꽤나 초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정사와는 좀 다른 형태가 되었지만, 분명 테일리와 아일라도 저 장면을 보고는 있겠지.
부디 똑똑히 잘 봐줬으면 좋겠다.
앞으로 수도 없이 테일리의 앞을 막아설 시련 중, 가장 먼저 그를 시험하게 될 1막 최종 보스.
실베니아 아카데미 마법부 2학년 수석, 예니카 페일로버.
그 모습을 미리 확인해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