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87)
에드 토벌전 (10)
– ‘테일리는 말야. 주인공이야.’
– ‘지금 아무리 힘들고 고된 일만 가득한 것 같아도… 다 이겨내고 빛 볼 날이 올 거야.’
별빛이 가득한 밤.
헛간 뒤에 나란히 앉아, 상처 투성이 테일리에게 아일라가 속삭여주었던 말이다.
말뿐인 위로일지언정,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는 테일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 ‘영웅이 멋지고 아름다운 건 고된 시련을 이겨냈기 때문이래.’
– ‘그러니까, 지금 테일리를 향한 이 고된 시련이랑 아픔들도, 전부 테일리가 다 이겨냈을 때, 그 영광을 빛내기 위한 재료들일 뿐이야.’
허나, 말뿐인 위로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아일라 트리스는 진심이었다.
아무리 고된 시련도 전부 이겨내고 나아가는 테일리의 모습을, 아일라는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 ‘원래 해 뜨기 전이 제일 어둡대.’
풀벌레 우는 밤의 시원시원한 공기가 소년과 소녀 사이에 자리한다.
– ‘그러니까 지금 현실이 어둡다고 절대 잊어선 안 돼. 테일리. 너는 네 인생의 주인공이야. 너는 다 이겨낼 거야.’
– 쏴아아아아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여전히 밤은 어둡다.
북쪽숲의 오두막 캠프.
몸을 두들기는 빗줄기 사이에 금발의 소년이 서있다.
차가운 빗방울이 어쨌냐는 듯, 막막한 밤의 어둠은 또 뭐 어쨌냐는 듯.
거룩한 성자처럼 서서 단검을 쥔 손에 힘을 푼 그는… 에드 로스테일러다.
아일라를 바라보며, 뭐라 입을 연 채 이야기 한다.
─말해 무엇하겠는가, 시련이라는 것은 항상 주인공에게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엔 주인공의 삶을 살지 못하는 자가 더 많다.
모든 이를 주인공으로 품기에는, 세상이란 무대는 너무 넓고 등장인물은 지나치게 많다.
그렇기에 아일라든, 에드든, 그 누구든… 우리는 결국 조연의 삶을 사는 법이다.
그런 자에게도 야속한 시련은 공평하게 찾아온다.
아카데미에서 쫓겨나 숲에서 야생의 삶을 이어나가든, 목숨을 위협하는 시나리오의 흐름 속에서 제 자리를 찾아내려고 하든, 아군이 단 한 명도 없는 실베니아에서 이를 악물고 비난을 버텨내든.
시련의 끝엔 빛이 있을거라 희망하는, 그런 주인공의 삶을 사는 자들과는 달리.
그 끝에 빛이 있을지 어둠이 있을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그저 이 악물고 버티는 자들이 가득한 세상이다.
그것이 5막의 마지막 무대에 똑바로 서있는, 에드 로스테일러의 생애다.
예니카 페일로버, 글래스트, 루시 메이릴, 크레핀 로스테일러, 실베니아 로베스테르.
그가 에서 보았던, 무대의 마지막을 담당하던 자들의 결말.
그 두 눈에 아로새겨진, 조연들의 삶이었다.
주연과 조연, 영웅과 악당.
그런 얕은 방식으로 세상을 이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아일라 또한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세상 흘러가는 소식을 듣고 있다보면 알 수 있다. 필시 주연의 삶을 사는 자들이 있다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상엔 주인공보다는 조연이 많다.
무대가 다음 막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온전하게 그 결말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주는 자들이 훨씬 더 많다.
비범함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삶을 사는 작자들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에드는 언제나 그들과 눈을 맞춘다.
학구열 강한 연금술사, 피에 취한 검귀, 초원지대의 수호자, 마음 약한 정령사, 줏대 있는 원소술사.
그 조연들의 삶이 곧 에드의 삶이고, 기약없이 갖은 시련을 버텨내야 하는 우리네 삶이라는 것을…
아일라는 어렴풋이나마 느꼈기에…
“성창룡 벨브로크가 부활할 거다.”
빗줄기 속에서 비장하게 서있는 에드 로스테일러의 어깨가, 생각보다 더 무거워보였던 것이다.
“그걸 죽일 수 있는 사람이 걔밖에 없어.”
*굉음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엘테 상회 건물의 잔해가 상회 앞마당에 우루루 밀려내려왔다.
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어하는 클레비어스를 억지로 끌고서, 안전한 곳까지 나온 엘비라는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스윽 쓸어냈다.
“이거… 내 생각보다 더 일이 커지는데…”
상회 앞마당에 드리워진 가로수 아래에 클레비어스의 몸을 뉘어놓고는 머리에 묻은 물을 쭉쭉 짜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난리를 피워도 괜찮은 거 맞아?”
“애초에 건물 주인이 로르텔이잖아. 에드 선배님도 수습할 방법이 있으니까 저질렀겠지.”
엘비라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한숨을 푹푹 쉬고 있자, 건물 잔해 쪽에서 옷을 털며 직스가 튀어나왔다. 자연스럽게 엘비라의 말에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멀쩡해 보이는 모습이다.
딱히 크게 다친 곳도 없어보이고, 애초에 그렇게 힘내서 싸운 것 같지도 않다.
진짜로 이 악물고 전력을 다해 싸웠던 엘비라와는 달리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어 보이자, 엘비라는 반달눈을 뜨고 직스를 쳐다보았다.
“뭐야, 직스. 멀쩡해보이네. 테일리는 당장이라도 다 부술 기세로 뛰쳐나가던데.”
“그래 보여도 마지막 이성은 잡고 있었던 거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면식 있는 사람을 베고 싶어하진 않았던 것 같다.”
직스도 비에 젖은 채로 앞머리를 탁탁 털어서 걷어 올렸다. 빗물에 눌어붙은 머리칼 때문인지 평소보다도 훨씬 더 차분해보였다.
“사실 우리한테는 별 관심도 없었겠지. 그냥 당장 아일라를 구하러 뛰쳐나가고 싶었을 뿐일테고. 엘비라 너는 다친 데 없고?”
“별 거 없었어. 궁지에 몰면 몰수록 강해지는 기질이라니… 말로만 들을 때는 느낌이 안왔지만, 코앞에서 보고 나니까 과연 고개가 끄덕여지네.”
엘비라는 나무 줄기에 몸을 기대고, 조금 추운 듯이 몸을 떨었다.
“솔직히 직스 네 선에서 끝날 줄 알았어.”
“나도 당황스러웠어. 클레비어스는 언제 온 거야?”
“몰라. 이 멍청한 바보는 왜 여기까지…”
의식을 잃은 클레비어스를 곁눈질로 스윽 보더니, 엘비라는 말을 끝마치지 않고 한숨을 푹 쉬었다. 클레비어스에게 굳이 따박따박 따지고 싶어하진 않는 듯한 눈치였다.
직스는 그 모습을 보고선 헛웃음을 흘렸다.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다들 속내를 까뒤집고 보면 결국 유약한 것이다.
“난 모르겠어, 정말. 일단 가담하긴 했는데 이 일을 다 어떻게 수습할 건지.”
“어쨌든 우리가 해야할 큼직한 일들은 다 마무리 됐으니까 철수 준비하자. 오필리스관으로 갈 거지?”
“그렇지 뭐. 근데… 예니카 선배님이랑 트레이시아나 선배님은?”
엘테 상회 건물 쪽을 보면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저 거대한 건물을 가른 절단면은, 정말 누가 봐도 칼로 벤 것처럼 깔끔하다.
건물이 칼에 베인 광경이라니. 이런 묘한 모습을 볼 기회가 또 있을까.
제 아무리 검성의 후예라고 해도, 이 정도 범위를 이 정도 위력으로 베어버리는 검격을 날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궁지의 궁지에 몰린 테일리가 어떻게든 운명에 저항하는 힘은… 산전수전 다 겪은 두 사람 조차 함부로 가늠할 수가 없었다.
“트레이시아나 선배님은 상회 직원들 수습하고 있어. 사상자가 나오면 안되니까 직접 보호 마법을 발현한 모양이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믿음직하구나.”
“나도 좀 돕다가 왔어. 너랑 클레비어스는 다쳤으니까 뒷수습에 가담할 필요는 없어.”
직스 입장에서 클레비어스의 난입은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다.
원래라면 이 정도까지 테일리를 궁지에 몰 계획은 없었다. 다만, 이조차도 전부 극복하고 뛰쳐나간 테일리의 의지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엘비라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나무 줄기 쪽에 몸을 완전히 기대어 눕자, 직스는 주변을 몇 번 휙 둘러보고선 말했다.
“근데… 예니카 선배님은…? 여기에도 없네?”
*- 쏴아아아아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아일라의 동공이 크게 떨린다.
내가 했던 말을 잠시간 곱씹더니, 떨리는 눈동자를 수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을 더듬었다.
“뭐, 라고요…? 성창룡이… 부활…? 대현자 실베니아의 봉인이 풀린다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이야기다.
길을 가다 아무나 붙잡고, 곧 있으면 이 근방은 싹 다 초토화 되니까 가만히 있지 말고 도망가세요, 라고 말한들…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다.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건지 근거조차 댈 수 없는 상황이다. 정신이 나가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먼저 드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말하면 말하는대로 족족 믿어줄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아일라는 뭐라 입을 떼지 못한 채,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나도 닦달할 입장은 못되므로 가만히 아일라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 에드 도련님…! ]그 때 였다.
갑작스럽게 날아들어온 박쥐 한 마리가, 숲 사이를 헤치고 나와서 내 어깨에 날아와 앉았다.
“머그?”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 않고 머그의 몸에 붙은 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중위 정령이 된 뒤로 기후의 영향을 거의 받게 되지 않은 것이다.
머그는 꽤나 우람해진 몸을 이끌고, 내 귀에 들러붙더니 뭐라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채, 마력을 휙 이끌어내서 머그를 다시 날려보냈다. 그러자 머그가 조용히 역소환되어 사라졌다.
몸에 마력을 거의 이끌어 내기 힘든 상황이다. 정령을 유지하는데 소모하는 마력은 최소화 하고 싶었다.
“테일리가 오고 있다고 하는군.”
“뭐…라고요…?”
“엘테 상회 쪽을 다 정리한 모양이야. 계획과는 달리 전부 뚫어낸 건 아닌 것 같네.”
내가 그리 말하자, 아일라는 다시금 동공을 크게 떨었다.
정말로 거길 다 뚫고 오고 있단 말인가. 그 사실이 믿기질 않는 것이다.
제 아무리 언제나 테일리를 믿고 의지해주었던 아일라라 할지라도, 그 정도 수준의 벽을 전부 다 뛰어넘고 돌파할 거란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주인공의 숙명을 타고난 자라 할지라도, 정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엘테 상회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받은 게 아니라 잘 알 순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곧 캠프에 들이닥칠 거야.”
“그럼… 테일리와 싸우는 거에요?”
“걱정하지 마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안 일어난다.”
나는 몸의 마력을 가볍게 일으켜보았다. 평소 내던 출력의 10분의 1조차 낼 수가 없다.
체력적으로도 몸에 미열이 남아 버겁다. 비까지 맞아서 몸이 무거웠다.
“어차피 지금 내가 테일리를 이길 순 없다. 지금은 몸에 걸린 제약이 너무 많아.”
“그럼 애초에 당신은… 왜…!”
“처음부터 다 말하지 않았냐? 나는 언제나 일관적이었어.”
아일라와 처음 계획을 수립했을 때부터, 나는 언제나 진솔하게 내 목적을 이야기했다.
“걔 스펙을 체크해보고 싶은 게 다야.”
벨브로크를 피해 없이 잡기 위해서는 최소한 갖춰져야할 것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벨브로크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할 테일리의 검성식이 제대로 성장해있을 것. 정확히 말하자면 허검술, 용살검, 성검 구현, 공간 절단, 심검. 이렇게까지는 익혀줘야 한다.
그리고 벨브로크의 부활 때에 최대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그 토벌전에 가능한 많은 세력을 가담시켜야 한다. 규모 있는 토벌대의 체계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대비도 쉬워진다.
황실 기사단, 엘테 상회 용병대, 성황도의 사도들, 제국의 유력가문 구성원들까지… 정치적인 수단을 동원하든, 거래를 하든, 어떻게 해서든지 간에 전부 토벌대에 가담시켜야만 한다.
거기다가… 실베니아 로베스테르가 남겨놓은 유품까지 확보해야만 비로소, 벨 브로크를 인명 피해 없이 잡을 수 있는 ‘최소 조건’이 충족 되는 것이다.
테일리의 성장 체크는 그 첫걸음일 뿐이다.
– 콰앙! 화아아아아악!
북쪽숲 입구 부근에서부터, 마력을 동원해 바닥을 박차는 소리.
푸드덕대며 새가 날아오르고, 그 소란이 숲 전체에 퍼져나간다.
아마도 머리 끝까지 화가 나있을 테일리가, 숲을 헤치며 캠프까지 달려오는 소리다. 그 소리가 직접적으로 들릴 정도가 됐으니 이젠 정말 가까운 것이다.
소리가 가까워지는 속도를 보아하니 거의 다 왔다.
나는 단검의 상태를 확인해서 검집에 집어 넣은 뒤, 캠프 여기저기에 떨어져있는 마공학 용품과 여러 덫, 제작용 도구들을 챙겼다.
비에 젖은 교복 외투를 벗고, 셔츠의 팔을 걷어올렸다. 얼굴을 아래에서부터 확 쓸어서, 앞머리까지 밀어올리며 빗물을 한 번 닦아내었다.
“당신은 대체…”
아일라는 그제서야 말문을 열었다.
“뭘, 짊어지고 있는 거에요?”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불안한 듯이 건네오는 질문.
단검을 완전히 갈무리해서 챙겨 넣고는, 손 끝에 마력을 모았다.
평소와는 달리 검붉은 기운이 피어오르는 그것은… 성위 마법의 힘이다.
“궁금하냐?”
“…”
그럼 알려줄까.
그런 식으로 말하며, 아일라에게 다가갔다.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마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향해,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말 잘 들어라.”
“…”
“그냥… 별 거 없다.”
“……”
조금씩 피어오르는 성위 마력의 힘이, 아일라의 몸을 둘러싸기 시작한다.
정말 미량의 마력일 뿐인데도 몸에 부하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호흡이 간헐적으로 멈추거나, 식은땀이 솟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를 악물고, 성위 마법 ‘현혹’을 발현해낸다, 아직 숙련도 레벨이 1밖에 되질 않아서, 의식을 제대로 장악할 수는 없다.
그냥 잠시 정신을 멍하게 만드거나, 생각이 뻗어나가기 힘들게 만들 뿐이다. 허나 지금 시점에서는 그거면 됐다.
“네가 쓸 데 없는 말을 하면 일만 더 꼬일테니까. 지금은 좀 쉬고 있어라.”
– 휘이이이이이익!
이내 내가 주먹을 꽉 움켜쥐자, 그대로 아일라의 의식이 끊어졌다.
나는 성위 마력의 반동 때문에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격통을 버텨내야만 했다.
-철퍼덕.
이윽고 의식을 잃은 아일라의 몸을 받아냈다. 체구가 왜소해서 별로 무겁진 않았다.
그대로 아일라를 이끌고 목제 쉼터 쪽으로 그 몸을 밀어넣었다. 이 아래에 넣어두면 최소한 비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대충 근처에 굴러다니는 모피 더미들을 덮어둬서 적당히 체온이 유지될 수 있게 해뒀다. 입구 쪽도 더 덧대서 비가 새어들어가지 않도록 잘 체크했다.
그렇게 완전히 의식을 잃은 아일라를 잘 수습해 둔 뒤, 빗줄기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쏴아아아아아
간헐적으로 쿵쿵 거리며 달려오던 소리가 멈춰있었다.
목제 쉼터의 입구를 잘 가린 뒤, 그대로 몸을 일으켰지만… 굳이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 뒤에 누가 와 있는지 예상이 됐으니까.
– 쿠궁, 쿵.
– 쏴아아아아아.
“왔구나, 테일리 맥로어.”
그렇게 나지막이 이름을 불러보았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천천히 시선을 뒤로 돌려보았다. 캠프 입구에 보이는 소년의 모습을 확인하고선, 완전히 그를 향해 돌아보고 섰다.
“에드 로스테일러.”
완전히 헤진 검사 교복에, 피칠갑이 된 몸.
새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칼과,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
더 볼 것도 없이 의 주인공. 테일리 맥로어가 맞다.
이글이글 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모습엔, 분노만이 가득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냉소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너는…”
– 화악!
뭐라 말하기도 전에, 검격이 먼저 날아왔다.
테일리 맥로어에게는 허락된 시간이 거의 없다. 한 마디 주고받는 시간조차도 아까운 것처럼, 일단 달려든 것이다.
– 카앙!
재빠르게 방어 마법을 구현해보지만, 제한된 마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나는 검격에 의한 충격으로 모닥불이 있는 쪽으로 휙 밀려났다. 분명 막아냈을텐데도, 바닥을 몇 번 구르다가 다시 몸을 가누어야만 했다.
“후욱…”
나는 진흙탕 속에서 몸을 일으킨다. 팔뚝으로 얼굴의 진흙을 닦아내고, 빗줄기 속에서 테일리를 다시 쳐다본다.
이 세계의 주인공이, 으리으리한 마력이 흐르는 대검을 들고 눈을 치켜 뜬다.
척 봐도 알 수 있다. 검성식 중에서도 절명기에 해당하는 ‘단말마’ 스킬이 발동된 상태다. 엘테 상회에서의 시련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테일리는 테일리대로 궁지에 몰린 상태인 것이다. 검성식의 힘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가 없다.
저 쪽은 만신창이고, 이 쪽은 마력을 못 쓰는 상황. 아이러니하게도 저울의 무게추가 그럭저럭 맞아 떨어지는구나.
그리 독백하고선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한 번 해보자.”
나는 단검을 역수로 쥐고서 반대 손에는 마공학용품을 한웅큼 꺼내들었다.
비가 내리는 오두막 캠프. 그렇게 테일리와 한참을 마주본 채로… 상대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무대는 종막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
“마부한테 말해. 마차를 출발 시키라고.”
듄의 설명이 다 끝났을 때는, 이미 루시의 눈빛은 심상치 않은 상태였다.
페니아 황녀와 그 측근들은 서로 간에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정말로 페르시카 황녀의 호송대가 그런 이유로 섞여온 거라면, 페르시카 황녀는 페니아 황녀의 동선을 자기 술수에 이용해먹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페니아 황녀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루시는 그런 페니아 황녀의 입장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마치 제가 황녀라도 된 것처럼 황녀의 마부에게 지시한 것이다.
“나도 캠프로 갈래.”
듄이 떨리는 눈으로 루시를 바라보았다.
마녀 모자를 고쳐 잡은 채 멍한 눈을 뜬 그 표정엔, 어떤 감정이 서려있는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