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94)
내 이럴 줄 알았다 (2)
– 쾅!!
야외 실습 수업장에 준비되어 있던 허수아비가 폭발에 불타서 나가 떨어져버렸다.
사실상 학생들끼리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도록 준비된 타겟이다. 그게 마법 한 발에 박살이 나는 모습을 보자 실습장에 모여있던 학생들은 눈을 부릅떴다.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보이는 잔해만 보아도, 어지간한 기초 원소 마법 수준의 위력을 넘어가 있었다.
‘일점 폭발’
중위 마법 치고는 상대적으로 화력이 떨어지는 종류다. 화력을 포기하고 속도를 중시한 실전 전투 마법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크 폭발의 여파 탓에 실습장 주변으로 연기가 퍼져나갔다.
잠시 후 현장의 시야가 돌아오고, 마법의 시전자인 에드 로스테일러가 마력을 발한 손을 탁탁 털고 서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꽤나 많은 마력이 소모되었을 테지만, 힘들어보이거나 무리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그냥 손 한 번 휘젓는다는 감각으로 이 정도 위력의 중위 마법을 발한 것이다.
“됐다. 그 쯤 해둬라.”
실전 원소 전투마법학의 실기 수업.
개학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된 중위 마법 실기 수업에 들어간 3학년 일동들은, 이미 잔뜩 긴장을 하고 모여든 상태였다.
처음 중위 마법을 제대로 배워보려고 모여든 학생들. 그 사이에서 이미 몇 개씩이나 중위 마법을 완벽하게 익힌 에드 로스테일러의 존재는 그야말로 위화감 덩어리였다.
실기 수업장에 나와서 피곤한 눈으로 실습 현장을 보고 있던 칼레이드 교수는, 슬쩍 눈을 돌려서 일반 학생들을 보았다.
척 봐도 튼튼해보이는 허수아비들이 나가 떨어진 광경을 보고 눈을 부릅뜬 상태다.
심지어 마법을 사용한 에드 로스테일러는 힘들어 보이는 기색조차도 없다.
정령술에 대해서는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이야 유명했지만, 원소 마법까지도 이렇게 깔끔하게 구사할 줄 알 거라고는 생각 못한 듯 하다.
연기 속에서 옷을 탁탁 털고 있는 에드를 보고선, 학생들은 의지를 상실한 듯 한 모습이었다.
“에드 로스테일러. 너는 내일부터 그냥 A반 쪽으로 들어가라.”
“반 이동 평가도 아직 안 받았는데요.”
“그 때까지 굳이 기다릴 필요 없다. 내가 트릭스관 쪽에 보고 해놓을테니까 학적 이동할 준비 끝내놔.”
드디어 중위 마법 실습을 한다는 기대감을 품고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그다지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진 않다. 칼레이드 교수는 귀찮아 하면서도, 얼른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애초에 이미 3학년 수석을 찍은 학생이, 아직 반 이동 평가가 치러지지 않았단 이유로 이런 낮은 반에서 수업을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
“보아하니 중위 마법은 이미 능숙하게 다루는 것 같군. A반 가서 그냥 고위 마법 과정 밟아라. 내가 담당하는 수업도 있으니 거기서 다시 보든가 하자.”
“알겠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한동안 수근거림이 오갔다.
고위 마법 과정을 밟으라는 이야기는, 마법부 학생으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 중 하나다.
졸업 전 까지 단 하나라도 고위 마법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면 그 세대의 제일가는 수재 중 하나로 평가받는 것이다.
지금 당장 실베니아 마법부의 전 학년을 통틀어보더라도, 고위 원소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학생의 수는 한 손바닥 안에 든다.
그나마도 교육 체계의 발전으로 수가 늘어난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고위 마법 구사자가 나올 수 있을 거라는 상상같은 건 차마 하지도 못하던 시대가 더 길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봐라. 네가 이 수업에서 따로 배울 건 없다.”
칼레이드는 귀찮다는 듯이 하품을 한 번 하고는 에드에게 손을 휘적거렸다. 더 가르칠 거 없으니 그냥 가라는 의미였다.
이제 막 중위 마법 첫걸음을 시작하는 학생들이 가득하다. 그들 사이에 둬서 좋을 게 없는 부류의 학생이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어이 없다는 듯이 칼레이드 교수를 쳐다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실습장 출구 쪽으로 나아갔다.
태연하게 실습장을 나가는 에드의 모습을 보며, 학생 일동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실습 수업 첫 날부터 시간이 붕 떴다.
난데 없이 실습장에서 퇴장 지시를 받아서, 학생 광장 쪽으로 빠져 나왔다.
원소학 실습 수업을 받고 나서, 식사 후 마물 생태학 수업 들어갔다가, 도서관 들려서 설계 서적 빌리고, 오필리스관의 메이드들에게 부탁해서 수선 레벨을 올릴 수 있을만한 수련 거리 들을 좀 부탁할 생각이었다.
그 뒤 캠프에 돌아가서 통나무 다듬는 작업을 좀 하다가, 사냥 덫 확인하고, 고기들 손질하고, 오두막 보수하고 나서 취침할 흐름까지 머리 안에 들어있었다.
깔끔하게 잘 짜여진 하루 일과에 빈틈이 생기는 건 썩 즐거운 일이 아니다.
슬슬 더운 여름도 다 가고, 조금씩 가을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시기.
학생 광장에 앉아서 한 낮의 태양 빛을 멍하니 받고 있자니… 분주하게 움직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항상 정신 없이 사느라 학사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던 적은 없는데, 확실히 학업의 성지이자 청춘이 꽃피는 곳이라 할만한 광경이 널리 펼쳐져 있었다.
각자 교복을 입고 하하호호 떠들며 학사를 노니는 학생들의 모습은, 보고 있으면 과연 꽤나 낭만어린 장소다.
내가 혼자서 궁상맞게 생존 생활을 이어가느라 자각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조금 여유로워지고 나서야 보이는 것은, 이 실베니아는 귀족 자제들조차도 입학하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곳이라는 점이다.
너무 낭비 없이 살려고 발버둥만 쳤나.
문득 그런 생각이 피어오를 때도 분명 있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사는 게 몸에 배어버렸다.
“흠…”
가만히 벤치에 앉아서 태양빛을 쬐던 나는, 문득 빈 시간동안 할 일이 생각이 났다.
어차피 다음 수업 시작되기 전까지는 학사에서 떠날 수가 없으니 학생 광장에 붙어 있는 오벨관쪽으로 가는 게 낫겠다.
현 학생회의 본거지나 다름 없는 오벨관 건물에는… 엊그저께 귀교한 타냐가 있을 것이다.
귀교 후 밟아야할 여러 수속들이 남아있는 만큼, 타냐도 꽤나 바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빠듯하게 귀교했으니 치러야할 일들이 잔뜩 쌓여있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회 일정이나 학사 일정이 없는 주말에 찾아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에는 나도 그만큼 바쁘기 때문이다.
허나, 이왕 시간이 붕 뜬 김에 한 번 찾아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
로스테일러 저택을 떠나기 전에 보았던 타냐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무너진 저택의 잔해 앞에서, 가문의 인장이 새겨진 깃발을 꽉 움켜쥐고 서있던 모습.
로스테일러 저택을 책임지는 차기 가주로서 마음을 굳게 먹고, 철부지 같은 태도는 완전히 치워버린 채 똑바로 앞을 바라보던 그 만신창이. 그런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 마음에 밟히곤 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로스테일러 잔류 세력의 대표로서 황실과 교섭도 하고, 트레이시아나의 말에 따르면 자기만의 세력을 규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니…
처음 봤을 때에 비해서 많이 어른스러워지고, 무리를 이끄는 리더 같은 기색도 꽤 두드러질 것이다.
일단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정보 교류도 하고, 격려해 줄 부분이 있으면 격려도 해주자.
뭐, 내적으로 많은 성장을 한 모양이니… 그런 건 필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분명, 어련히 알아서 잘 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든 시련 앞에서는 성장하는 법이니까.
*
“다 때려치고 싶어요…. 우으…. 우우….흐윽…”
그런 모든 예상들이 무색하게, 학생회장실에 앉아 있던 타냐는 전혀, 아무것도 바뀌어 있지 않았다.
“분명 학생회장이 되어서 로스테일러 가문의 위광을 널리 펼치는 게 제 꿈이었는데, 가문은 폭삭 가라앉았지, 어딜 가든 로스테일러의 차기 가주라고 속닥대기나 하지, 황실에서는 추궁이나 당하지, 오랜만에 학교에 돌아왔더니 집안 일로 수근거리는 사람들만 가득하지, 그러면서도 학생회장 직위는 남아있어서 처리할 일은 잔뜩이지. 저, 이대로 살고 싶지 않아요. 모든 걸 잊고 떠나고 싶어요…”
“…”
“집… 집을 하나 지을까… 학적도 때려치고… 남은 유산을 끌어 모아서… 어디 코헬톤 지방이나, 아니면 라멜른 산맥 쪽에 바람이 잘드는 초원을 하나 사는 거에요… 거기다가 혼자 살기 꽤 괜찮은 집을 하나 지어서… 방에서 자수나 좀 만들거나, 아니면 그림 같은 거 그리면서 허송세월 보내는 삶… 썩… 나쁘지 않을지도…”
아니, 굳이 말하자면 정반대로 바뀌어 있었다.
세속적인 권력을 손에 넣어서 누구보다도 권위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타냐 로스테일러는, 단 1년 만에 누구보다도 염세적이고 욕심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타냐의 일생을 생각해보건데, 나같아도 그럴 것 같다.
눈물이 앞을 가리려 한다.
“가끔 책이나 읽고… 근처 시골 마을 찻집 같은 데에 가서 단골 행세를 하는 거에요….. 한 번씩 들려오는 도시 소식을 들으며 오호호 하고 웃는, 그냥 그런… 마을에 가끔 나타나는,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아낙네 행세 같은 거나 하면서 살면… 이거 나쁘지 않는 삶이네요… 아… 귀농하고 싶다… 농사 짓고 싶다… 권력이고 혈통이고 다 잊고, 세월의 무상함에 운치를 느끼며 차를 마시고 싶다….”
“타냐… 너 많이 망가졌구나..”
“안 망가지게 생겼어요…..? 우윽… 흐윽…”
으리으리한 학생 회장 책상 앞에서 고개를 묻고선, 타냐는 우는 소리를 냈다.
“오늘 내로 민원 처리 보고 서류를 아흔 일곱개 검토해야 해요. 그리고 귀교 했으니 트릭스관 가서 오벨 교장님이랑 환담도 나눠야 하고, 펠브론 귀족가에서 지원해준 지원금에 감사 편지를 써야하고… 학생 회관 유지보수 공사 잘 끝났는지 시찰 나가야하고, 그러면서도 수업에도 다 들어가래요…”
“…화이팅.”
“거기다가 로스테일러 본가 쪽 일도 체크해야 해요. 셀라하 황녀님이 틈만나면 이상한 견제구를 넣어대는 통에 가신들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하루에 저한테 날아드는 서신만 백단위가 넘어가는데, 그걸 다 읽고만 있어도 눈이 피로해서 시야가 뿌옇게 변해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사람들이 박수쳐주는 것도 아니고, 로스테일러 가문 소속이라고 흘겨 보기나 하고… 살려주세요 오라버니.
”
“….화이팅!!!!!!!!!”
사실, 차기 가주를 자처한 것이 타냐 본인이고,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서 당선된 것도 타냐 본인의 선택이다.
판단 자체도 모두 타냐가 해야할 문제고, 나한테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문제들이다.
“애초에 로스테일러 가문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네 모습은, 훨씬 늠름했던 것 같은데.”
“그 때는… 분위기가 그랬잖아요. 막 제가 용맹해야 할 것 같고, 많은 걸 깨달은 듯이 행세하면서 가문을 이끌 차기 지도자 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래, 그렇긴 했지.”
“저도 그 때 당시에는 속으로 막,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긴 했어요. 근데… 현실은 서류와 격무만이 가득할 뿐이더라구요…”
타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책상에 묻어두었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맞추고선, 여기저기 붕대를 두르고 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
“상처가 좀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지셨네요, 오라버니. 저택에서 봤을 때는 진짜 많이 다치셔서 걱정이 많았어요.”
“네 덕분에 나는 실베니아에서 좀 쉬었다. 네가 일 마무리 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좀 사건이 있긴 했는데, 그럭저럭 마무리 되었어.”
“그건 다행이네요. 오라버니는 일단 졸업 때까지 실베니아에 다니실 예정이죠?”
“뭐, 그렇지.”
벨브로크도 처리해야하고. 이왕 다닐거면 졸업장도 꼭 따고 싶다.
이 학교의 졸업장은 내가 이 세계에 내던져진 시점에서 늘 목표로 하던 것이다. 이제는 꽤 상징적인 의미마저 부여된 느낌이다.
“저는 현실적으로 학교 일도 처리하면서 가문 일까지 처리할 수 있을까… 그런 의구심이 들어요.”
“그럼… 그만 다닐 생각이냐?”
“모르겠어요. 사실 학사에 대한 소속감도 많이 남아있거든요. 이번 학기 다니면서, 밀린 일처리 끝내놓고 생각해보려고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책임감 하나는 확실하게 성장했다.
정 힘들면 일 따위는 다 집어 던지고 나몰라라 도망다녀도 세상 누구도 탓하지 않을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냐는 제 앞으로 주어진 일들을 다 마무리 하기 위해 학사로 돌아왔다.
본인은 우는 소리를 잔뜩 해대지만,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도 오라버니 쪽에서 직접 방문해주시니 기분은 좋네요. 최근 몇 달간 심각한 소리가 오가는 장소나, 무게 잡아야 하는 상대랑만 만나고 다녔더니… 이렇게 한탄해보는 것도 처음이에요. 막상 다 털어내고 나니까 가슴이 홀가분 해지기는 하네요…”
“그래, 고생 많았다…”
“어쨌든 가문 일은 순조롭게 처리되고 있어요. 캘러모어 가문의 매그너스 군단장이나, 블룸리버 가문의 시니르 블룸리버, 엘펠란 가문의 에르켈 엘펠란까지 포섭했거든요.”
하나 같이 제국 어디에서든 그 이름이 통하는 유명인사들이었다. 제 아무리 로스테일러의 이름이 있었다고 한들, 쉽게 가담시킬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어떻게 그런 거물들을 포섭했냐?”
“셀라하 황녀에 대한 적대감을 가감없이 드러냈거든요.”
타냐는 완전히 상반신을 들어서, 푹신한 학생회장용 소파에 몸을 묻었다. 얼떨떨한 듯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말을 쭉 이어나갔다.
“어차피 아군이 될 수 없는 상대라면, 그 반대파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해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결집시키는 게 최고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국 정치적인 판단이었구나.”
“그냥 그 셀라하 황녀님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고요. 자꾸 싫은 소리를 하잖아요.”
좀 더 원초적인 문제였나.
“그리고 뭐, 황족의 피가 다인 것처럼 구는 것도 별로 맘에 들진 않았어요. 혈통이 다 인가. 혈통이란 게 뭐 대수인 줄 아나… 그냥 같은 핏줄 타고난 것 뿐이지…”
그 타냐 로스테일러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에서 보았던 타냐의 모습과는 이미 달라질대로 달라져 있었다. 눈 앞에는 완전히 염세적으로 변해서, 혈통 따위는 그냥 핏줄에 불과하다고 웃음을 흘리는 금발의 소녀가 앉아 있을 뿐이다.
로스테일러 가문의 위광에 목숨을 걸며 언제나 거만하게 웃던 그 악역영애가 맞냐. 가슴이 옹졸해진다…
“당분간은 아군을 포섭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요. 뭐, 가문 쪽 문제는 어지간하면 제가 잘 처리 할 수 있어요. 종종 곤란한 일 생기거나 도움을 청할 일 있으면 오라버니께도 말씀 드릴게요.”
“그래, 가감 없이 말해라. 우리는 우리대로 한 핏줄 타고난 가족이잖아.”
지금 당장은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타냐를 지지해주는 게 중요하다.
나는 타냐를 보고 가감없이 이야기 했다.
“네가 언제나 노력하고 있는 거 잘 알고 있고, 그에 보답 받을 날도 분명 올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너무 상심만 하지 말고, 힘든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내 손 닿는 데까진 다 도와줄 의향이 있으니까.”
“…”
교과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쨌든 틀에 박힌 격려를 했다. 허나 타냐의 반응은 내 생각보다는 좀 더 극적이었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선, 놀란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 신기한 광경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은 뭐냐…”
“아뇨… 오라버니가 격려해주는 건 감사한 일이죠. 단지… 그런 당연한 격려를 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참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동안은 네가 잘하고 있었다는 뜻이지.”
“그렇게 해석하는 게 제 마음에는 더 편하겠죠. 뭐어… 감사해요, 오라버니. 힘내볼게요.”
타냐는 이윽고 은은하게 웃더니, 휙 허리를 펴고선 주먹을 꽉 쥐었다. 제 나름대로 파이팅 하는 모습이다.
내가 학생회원들의 안내를 받아 이 회장실에 들어오기 전까지도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책상에는 서류가 잔뜩이다.
별 것도 아니고, 간만에 제 혈육 만나서 신변잡기 이야기를 좀 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누그러지는 느낌이 드는 듯 했다.
가족이란게 그런 것이다. 대단한 경험을 공유하거나, 엄청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그냥 타지에서 간만에 만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누그러지는 그런 사람들인 것이다.
“오라버니는 학기 내내 쭉 아켄섬에 계실거죠? 일단은 학사 과정 밟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그렇지. 그래도 다음 주 일주일 정도는 아켄섬 밖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긴 한데, 공결 신청 넣을 수도 있어.”
“공결이요? 어디 공적인 행사라도 나가세요?”
“아니, 그… 말하자면 복잡하다만…”
어젯밤 캠프에서 클라리스 성녀와 나누었던 담화를 타냐에게 그대로 일러주었다.
클레드릭 수도원에서 있을 기도회.
귀빈들이 참석하는 그곳에, 페르시카 황녀가 방문한다는 소식.
그리고 추가적으로 클라리스가 화색이 되어 했던 말.
“혹시 같이 기도회에 참석할 마음 없냐고 물어보더라. 나랑 같이 가면 그래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신날 것 같다고.”
“…클라리스 성녀님이 그렇게까지 이야기 해요? 잘 상상이 안되는데에…”
“…”
“그 뭐랄까, 사적인 대화를 길게 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든요. 왜, 그렇잖아요. 클라리스 성녀님은 뭔가… 되게 어른스럽고… 자애로워보이고… 그런 느낌이라서…”
내 오두막에서 의자를 들고 벌을 서던 클라리스의 모습이 생각난다.
눈물을 글썽이며 오들오들 떨고 있던 그 때의 모습을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타냐의 말에 위화감이 느껴지고 만다.
“잠시만… 클레드릭 수도원이요?”
“그래. 알고 있냐?”
“당연히 알죠. 저희 로스테일러 가문도 텔로스 교단의 세례를 받았었잖아요. 가주가 세례를 받은 가문은, 예의상 수도원의 기도회에 대표를 보내서 참석한다구요.”
“네가 갔어?”
“제가 제일 만만하잖아요. 가주의 피를 이어받은 신분인데, 당장 바쁘거나 급한 사람도 아니고… 대표로 제가 가면 제법 면이 살죠.”
기도회에 귀빈들이 많이 참석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대부분은 가문 차원에서 보낸 후계자들인 것이다.
텔로스 교단에 대한 예를 표하기 위해서 대표삼아 온 사람들이기에, 상당히 구색을 갖춘 자리일 가능성이 컸다.
타냐는 그렇게 가만히 생각에 잠기더니, 입술을 비죽 비틀면서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별로 거기 가는 걸 권장하진 않네요…”
“그러냐…”
“애초에 거기는 금남구역이잖아요. 어렸을 적에 들어가 본 기억으로는… 정말 별난 곳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정말 어쩔 수 없는 유지보수 인력이나, 대주교급 되는 고위 성직자가 아니면 남자는 발도 못 붙이는데… 그런데에 에드 오라버니가 들어가면 너무 붕 뜨잖아요.”
나도 썩 편한 입장은 아닌 것이다.
거기다 공결을 내고 기도회에 참석한다고 치면, 수업도 다 빠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 회차 한 회차를 소중하게 소화하고 있는 내 입장에선 썩 달갑게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그럼에도, 페르시카 황녀라는 커다란 변수가 나타나는 장소라고 하니… 마음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100년 넘게 철저히 금남구역으로 유지되던 곳에 오라버니가 어떻게 들어가요?”
“클라리스 성녀님을 보좌하는 입장으로 어떻게든 밀어붙여보겠다던데. 대충 마법적인 이유를 붙여서.”
“아니, 그런 긴 전통을 그리 쉽게 예외를 두도록 하는 건 어렵…. 겠지만, 확실히 성녀님의 권위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긴 하겠네요.”
“…”
“텔로스 교단 사람들은, 성녀의 안위와 편의를 위해선 어지간한 건 다 희생하는 별난 사람들이니까요. 확실히,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남자 하나 들이는 것 정도는 가능한 대의명분일지도… 확실한 목적이 있는거니까…”
“그래서, 네 의견은 그냥 안가는 게 낫다 이거냐?”
내 질문에 타냐는 사정없이 붕붕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해안 위에 지어져서 썰물 때에만 들어갈 수 있는 신비로운 공간이란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거기서 며칠 지내본 제 입장에선 그냥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별세계일 뿐이에요.”
“뭐, 나도 그럴 거란 예상은 하고 있다.”
“신의 뜻을 받드는 고귀한 수도녀들이라고 하지만, 귀족가에서 말썽쟁이 딸을 억지로 보내놓거나, 유배시켜 놓는 용도로 쓰이기도 하거든요. 어쨌든 수도녀가 되었다고 하면 어디 드러내는데 부끄럽진 않잖아요. 뿐만 아니라 남들한테 말못할 사정으로 버려진 고아나, 아니면 함부로 출생을 알릴 수 없는 사생아도 많아요.”
신의 뜻을 받들고 기도하는 자. 일단 그 명함이 달리고 나면 출생의 어둠이나, 내놓기 부끄러운 말괄량이 같은 기질은 어떻게든 덮여지는 법이다.
“진짜로 신실한 신자들도 많고, 가문적 배경 있는 애들까지 모여 있는 곳. 어쨌든 자기들끼리만 동고동락하는 동네거든요. 폐쇄적인 기질도 있고, 거기다가… 외부인에 대한 면역이 거의 없어요…”
“그건 무슨 뜻이냐.”
타냐는 뭔가 기억에 밟히는 것이라도 있는지, 몸을 오슬오슬 떨며 이야기했다.
“그… 수도원 유지 보수로 인한 인력들 중에는 남자도 섞여 있었단 말씀 드렸잖아요. 대부분 건설 인부들이다 보니 우락부락하거나, 수염 지긋한 아저씨들이거든요.”
“…”
“그런 사람들도 수도녀들이랑 눈이 맞아서 발칵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게 말이 되나 싶을정도로 남성에 대한 면역이 없다구요.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꿈에 빠져 있는 사람도 많고요.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는… 그… 뭐라 말하기가 힘드네요…”
뭔가 말하려다가 만 것 같은데… 그게 뭐냐고 더 물어보기가 겁이 날 지경이었다.
“어쨌든, 저도 며칠 간 클레드릭 수도원에서 생활하면서 말문을 트거나 제법 친해진 수도녀들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말이에요. 진짜 남자랑 눈만 마주쳐도 동반자로서 인생의 황혼기까지 흘러가는 일련의 흐름을 상상해댄다니까요…?”
“…”
“심지어 그 우락부락한 아저씨들 상대로도요! 그런 곳에 오라버니 같은 사람이 떨어지면 어떻겠어요…! 나잇대도 딱 맞는데다가, 생김새도 반반하잖아요…!”
클레드릭 수도원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타냐에겐 대체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일까.
진지하게 질색을 하는 모습에, 나는 차마 뭐라고 받아칠 수가 없었다.
“그냥… 자연재해에요… 자연재해! 괜시리 일이 복잡해지고, 사고만 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구요. 그러니까…. 절대 가지 마세요… 저는 절대 권장 안해요. 오라버니 주변의 인간관계를 생각해보면, 절대 반대에요. 절대!”
그렇게 일장연설을 쏟아내고는, 타냐는 다시 소파에 몸을 묻은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 나서 타냐는 잠시간 진정할 시간을 가지더니… 이내 자기가 너무 열을 냈다는 사실을 자각한 듯 했다.
“그… 너무 열내서 제 이야기만 했네요. 죄송해요, 오라버니.”
“아니… 그… 네 의견은 잘 알았다.”
그 신실한 클라리스 성녀마저도 가고싶지 않아하던 클레드릭 수도원이다.
유년 시절의 타냐는, 대체 거기서 얼마나 끔찍한 시간을 보냈던거냐.
차마 타냐의 그런 반응에 뭐라 받아쳐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회장실엔 잠시간 어색한 기류만 감돌았다.
*오늘은 오전 수업만으로 일정이 끝난 예니카다. 그녀는 이미 캠프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보통은 에드와 함께 식사 메뉴를 선정하거나, 남아있는 재료를 보고 어떻게 조리할지 상담하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온전히 혼자서 준비하는 것이다.
뭔가 미리 식사를 준비해두고 에드의 귀가를 기다리는 지금 상황이 괜시리 뿌듯해져서, 팔을 걷어붙인 예니카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캠프에 마련되어 있는 여러 육류나 채소, 향신료들 따위의 갯수를 체크하며 뭘 먹을까 고민하던 차였다.
“아, 안녀엉…!”
캠프에 손님이 온 것이다.
에드의 오두막 캠프는 북쪽숲에서도 꽤나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게 아닌 이상 우연히 손님이 찾아드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대부분 캠프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에드의 지인인 경우가 많았다.
“…?”
한참 식재료들을 체크하던 예니카는 의아한 눈으로 소리의 근원지 쪽을 쳐다보았다. 누군고 했더니 4학년 마법부 소속인 페트리시아나 블룸리버였다.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존재 정도는 알고 있다. 예니카의 입장이다.
페트리시아나 입장에서는 학사의 유명인인 예니카 페일로버는 잘 알다 못해 묘한 친밀감마저 느끼고 있을 정도다.
그래도 서로 친하다 할만한 사이는 절대 아니기에, 페트리시아나는 쭈뼛거리면서 예니카에게 말을 건넸다.
“예, 예니카 맞지…? 이 캠프에서 산다며…?”
“…음, 그러니까아… 페트리시아나 선배님?”
“어, 응! 내 이름 기억해줬네. 그래… 맞아, 나 페트리시아나야.”
뭔가 수상쩍게 접근해오는 페트리시아나를 보며, 예니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니카는 페트리시아나의 비밀 연구실이 북쪽 숲에 있다는 사실까지는 잘 모른다. 메릴다는 그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굳이 예니카에게 일러주진 않았기 때문이다.
숲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전부 예니카에게 보고하려 들었다간 하루 종일 숲 얘기만 해야한다.
결국 정령들이 예니카에게 일러주는 정보라 해봤자, 꼭 예니카가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위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에드랑은 그, 일이 있어서 좀 알게 된 사이거든…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니 뭐 어쨌든 그 혹시 시간 되니?”
페트리시아나는 쭈뼛거리면서 주변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시약을 꺼내들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물건이 있는데… 내 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
세상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예니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네에? 하고 반문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손에 든 시약의 효력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처음에는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예니카는… 이윽고 조금씩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마음을 털어놓게 만들겠답시고 그 사람 의지와 상관없이 약을 쓰는 건 너무한 처사 아닌가.
그런 음험한 짓에 손을 댈 마음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예니카는 에드의 일거수 일투족을 정령들에게 보고 받고 있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보고를 받는다기보단, 정령들이 멋대로 예니카에게 재잘재잘 떠들고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가슴을 내놓고 당당히 이야기할 입장은 안된다…!
그 사실이 괜시리 예니카의 뇌리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 어때…? 괜찮지? 이런 효력 이야기 해주면 많이들 관심 가지지 않을까…?”
“읏.. 으읏…”
예니카는 뭔가 행복한 상상이라도 했는지, 페트리시아나의 손에 들린 시약을 보다가 고개를 붕붕 가로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닌거에요, 페트리시아나 선배님!”
“그, 그래애…?”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요… 이런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오히려 사이를 악화시킬 뿐이에요…”
정령들이 떠들어대는 건, 에드 또한 어느 정도는 의식하고 있다. 에드 본인이 크게 신경쓰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시약에 손을 대는 건 완전히 에드의 의사에 반하고 그를 시험하는 행위 아니던가.
애석하게도 착한 것으로는 둘째가라는 서러운 예니카가 그런 시약에 손을 벌릴 리가 없다.
다만, 페트리시아나 입장에서는 그건 그것대로 충격이었는지… 퀭한 눈으로 예니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럴수가아…”
“일단 저는 그럴 마음이 없어요… 페트리시아나 선배님. 이런 시약은… 그냥 가지고 돌아가주세요…”
차분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예니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페트리시아나.
굳건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젠 또 묘한 반발심리가 들기 시작했다.
“항상 수고가 많으시네요, 벨 씨.”
오필리스관의 복도.
자기 방에서 나온 트레이시아나는, 복도 정리를 지시하고 있던 메이드장 벨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페트린이 들렀다가 갔는데, 혹시 어디로 갔는지 보셨나요?”
“페트리시아나 아가씨 말입니까? 용무가 있으신 겁니까? 그럼 제가 사람을 시켜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아, 아뇨… 직접 찾아야할 것 같아서요… 그 뭔가… 갑자기 불안해져서…”
“…예?”
벨을 보던 트레이시아나는, 불안하다는 듯이 제 지팡이를 품에 안고선 몸을 베베 꼬고 있었다.
“그냥… 혹시… 또 사고 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서…”
“그렇군요. 트레이시아나 아가씨께서 그리 이야기 하신다면 뭐 다 이유가 있겠습니다마는…”
벨은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사서 불안해 하시는 건 너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 그런가요…?”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트레이시아나 아가씨께 보고가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드리겠습니다. 너무 괘념치 마시고, 모처럼 휴식시간이니까 방에서 더 쉬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았어요…”
트레이시아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리 이야기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
트레이시아나를 보낸 벨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다시 정리 지시를 하기 위해 몸을 휙 돌렸다.
역시 개학하고 나니 갑작스럽게 업무량이 늘었다. 벨 또한, 정신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