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196)
내 이럴 줄 알았다 (4)
마법실력만으로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나갈 수 없어.
처음으로 고위 마법을 습득하는 데 성공한 날. 기숙사로 돌아온 트레이시아나가 홀로 달을 보며 했던 생각이다.
고위 폭발 마법 ‘파멸’.
며칠 간 집중해서 모은 마력을 모조리 때려박아 구현해낸 그 거대한 폭발은, 교수진들이 안전을 위해 몇 겹에 걸쳐 구현해낸 결계식을 전부 부숴버렸다.
그 성과로 인해 마법부 수석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트레이시아나는 이후 모든 동기생들의 찬사를 받게 된다.
“…”
그러나, 마법 분야에는 하늘이 내려준 천재 루시 메이릴이 있다.
그녀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상, 마법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최고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시대의 선두를 달리는 천재들이란 인종 자체가 다른 자들이다. 실베니아에 재학하는 4년 동안, 트레이시아나는 누구보다도 그 벽을 확실하게 체감했다.
비단 트레이시아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 실베니아 4학년 수석 3인방.
전투부 수석 다이크 엘펠란.
마법부 수석 트레이시아나 블룸리버.
연금부 수석 도로시 화이트펠츠.
이 3인으로 대표되는 실베니아 아카데미 4학년의 인상은… ‘범재’들의 모임이다.
‘황금 세대’로 칭해지는 현 1,2학년 세대와, 그래도 예니카 페일로버와 에드 로스테일러, 드레이크, 아탈란테라는 수재들을 배출한 3학년과는 완전히 다르다.
누구보다 노력하는 범재들.
칭찬으로서의 의미도, 욕으로서의 의미도 담은 그 아이러니한 평가를 트레이시아나는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가치를 오로지 마법 실력 하나만으로 규정지으려 하지 않는다.
아무나 오르기 힘든 마법부 수석의 자리에 올랐지만, 절대로 그 수석의 자리가 자기의 모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꿈의 자리일지도 모르겠으나, 트레이시아나에게는 거쳐가야할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4학년 2학기다. 슬슬 졸업을 내다봐야하는 시기다.
졸업이란 새로운 시작이다. 언제까지고 학사 수석의 자리에만 만족해서는 더 발전할 수 없다.
졸업 이후의 삶.
그것이 눈에 들어오는 시기가 되었기에, 트레이시아나는 언제나 섣불리 처신하지 않는다.
“…”
오필리스관 개인실의 조용한 환경에서, 트레이시아나는 원소학 서적을 덮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광경. 오후 학사 일정이 끝나고, 저녁의 느슨한 분위기에 모두 늘어져 있는 시간대.
창밖으로 보이는 초저녁의 한가한 광경도 이제 반년 이후엔 볼 수 없게 된다.
학생으로서 구가하는 학사 생활도 끝이나고, 이제 블룸리버 가문으로 돌아가 마법 연구의 최전선에서 힘을 써야하는 시기가 온다. 아마 치열하게 살아야할 것이다.
트레이시아나는 서랍에서 가주 시니르 블룸리버가 보내온 편지들을 쭉 훑어보았다. 학사 생활 내내 긴밀이 연락을 주고 받았던 그녀를 따라, 블룸리버 가문의 차기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말괄량이, 사고뭉치, 문제아.
그런 자들로 꽉꽉 차있어서 언제나 이단아 취급을 받고 살아온 블룸리버 가문. 그나마 에니스턴 가문 쯤 되어야 블룸리버 가문의 사고뭉치 기질에 비벼볼만 했다.
그런 사건사고가 가득한 환경에서 진중하고 차분한 기질을 타고는 트레이시아나는 늘 이방인 취급이였다.
그래도 혼자는 아니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그나마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타입의 가주… 시니르 블룸리버.
그녀 덕에 블룸리버 가문은 아슬아슬하게나마 명문가로서의 명예를 잃진 않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시니르의 영향을 가장 진하게 받은 것이 트레이시아나 블룸리버였다.
“타냐 로스테일러와, 에드 로스테일러…”
최근 황권과 더불어서 귀족가 사이에서의 권력 구도도 눈에 띄게 변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그녀가 존경해 마지않는 가주 시니르 블룸리버는 이 권력 구도 개편에서, 로스테일러 가문에 배팅을 한 모양이었다.
– ‘타냐 로스테일러가 재밌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더구나. 나는 그 쪽에 붙을 생각이다.’
학기 시작에 맞춰, 일단 실베니아에 돌아온 학생회장 타냐 로스테일러.
그녀의 행보는 지금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다. 첫인상은 날카롭고, 야욕 넘치는 사람처럼 보였으나… 최근 들어선 눈에 띄게 피곤해보이고, 투덜거리거나 한숨을 푹푹 쉬는 모습이 많아진 듯 하다.
뭔가 독기가 빠진듯한 모습이지만, 트레이시아나의 눈에는 아직도 굳건함을 잃지않은 타냐의 내면이 보인다.
– ‘아마 제국의 유력 가문들끼리 반으로 갈라져서 싸움이 날지도 모르겠구나. 그 때가 되었을 때, 확실히 이기는 쪽으로 붙지 않으면 곤란해. 그러니 트레이시아나.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확실하게 로스테일러 쪽으로 붙거라.’
시니르의 조언은 언제나 핵심을 찌른다.
졸업 이후의 삶을 설계하고 있는 트레이시아나의 마음을 읽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 ‘모든 일이 끝나고 뒤늦게 아군인 척 해봐야 마음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그네들과 진정으로 발을 맞추고 싶다면, 그들이 가장 미약하고 미천할 때… 그 때 진정으로 교감해야만 장기적인 교류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란다.’
시니르 블룸리버는 로스테일러 가문 사람들에게서 뭘 본 것일까.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안목을 의심할 마음은 없다.
실제로 트레이시아나도 에드 로스테일러와 안면을 트고, 그의 부탁에 제법 어울려주었다.
페트리시아나가 친 사고 때문에 덩달아 어울려준 느낌이긴 했지만, 어쨌든 로스테일러 가문 쪽에 접점이 생겼다는 건 희소식이다.
“…”
트레이시아나는 시니르의 편지를 내려놓고, 태양이 저물어가는 창 밖 광경을 보았다.
실베니아에 재학한 뒤로, 한 없이 현실주의적으로 변한 그녀다, 눈빛 또한 여전히 차분하다.
“마법 실력만으로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나갈 수 없어.”
몇 번이고 되뇌었던 그 말을 굳이 입밖으로 내뱉어서 곱씹어 본다.
4학년 마법부 학생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수석 트레이시아나. 그런 그녀조차도 실베니아에 재학하며 진짜배기 재능의 벽을 느끼고 말았다.
그 탓에 다소 염세적이고, 현실적인 성향이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좌절 같은 걸 하는 성격은 아니다.
“처신, 분위기 파악, 그리고… 인맥.”
제국의 귀족 권력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핵심은 마지막에 그 꼭대기에 설 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다.
잘 분간해서 그들에게 배팅해야만, 격변하는 귀족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시니르 블룸리버가 로스테일러에 배팅했다면 트레이시아나도 그에 맞춰 자기 자리에서 노력해나갈 뿐이다.
학생회장인 타냐 로스테일러와는 학년 차이도 많이 나고, 접점이랄 것도 없어서 가까이 하기 힘들겠지만… 에드 로스테일러는 완전히 다르다.
학년도 가깝고, 안면도 텄고, 심지어 트레이시아나가 마법부 선배라는 이점도 있다.
그가 아직 세력이 미약할 때, 최대한 도움을 주거나 빚을 쌓아두는 것이 좋다. 시니르가 바라는 것이 이런 움직임일 것이다.
핵심은, 에드 로스테일러와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곧 미래에 대한 투자다.
그 방침을 명심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 쾅!!
“언니…!”
말괄량이 동생 페트리시아나가 트레이시아나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트레이시아나는 화들짝 놀아서 문쪽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숲을 거닐다가 온 것인지, 머리칼에 나뭇잎을 잔뜩 묻힌 페트리시아나가 발랄하게 이야기했다.
“성공! 성공했어! 임상 실험…! 내가 된다고 했지?!”
“….뭐?”
“확실하게 효과가 있었어! 대단하지!”
아까부터 느껴진 불길함은 과연,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효력이 생각보다 대단한 모양이야! 내가 몰래 먹여봤는데… 확실히 임상 반응이…”
“너 정말 미쳤니, 페트린?! 그걸 정말 사람한테 썼어?!”
“아, 아니…. 소량만 조금… 효과가 있나 확인만 해보려고…”
“본인 허락은 받았고?!”
일단 트레이시아나는 책과 편지들을 서랍에 밀어넣은 뒤, 페트리시아나에게 닦달하듯 물었다.
그러자 페트리시아나는 쭈뼛쭈뼛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뭐, 뭐어… 독극물도 아니고….”
“….”
“그리고, 그 뭐냐… 나쁜짓 하려는 건 아니고… 그… 사랑의 전도사…? 큐피드…? 그런 느낌으로다가…”
“…”
침묵.
자신을 조용하게 쳐다보고 있는 언니 트레이시아나.
페트리시아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이윽고 땀을 삐질대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 결과적으로,.. 뭐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언니, 일단 상황을 천천히 지켜보고 나서…”
“뭔가 행동을 할 때는, 홧김에 저지르지 말고 생각을 좀 해가면서 하라고 말했잖아! 그래서 누군데?! 누구한테 먹였어?!”
“…”
“누군지 알아야 수습을 하든, 사과를 하든 할 거 아니야… 누구한테 먹였어?!”
“어… 어어… 그으…”
트레이시아나는 다시 한 번 모종의 불안을 느꼈다.
페트리시아나는 언제나 최악의 방향으로 대형 사고를 치는 재주가 있었다. 항상 수습은 트레이시아나의 몫이었다.
그녀는 쭈뼛쭈뼛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다가, 시선을 회피한 채 어렵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에드 로스테일러.”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느낌이 났다.
과연, 아연실색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확실하게 알았다.
트레이시아나는 눈앞이 혼미해져서, 숨을 집어 삼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럴 줄 알았어! 내가 못 살아!”
*로르텔은 세상 어이 없다는 눈으로 양동이 앞에 서있었다.
학사 일정에, 상회 일까지 처리하느라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던 하루.
그래도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나서 별장으로 돌아갈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오필리스관에서 거주할 때랑은 다르게, 귀가가 즐겁다.
집이라는 곳은 잠을 자는 곳. 그런 사고방식으로만 살아왔던 로르텔에게 귀가가 즐겁다는 경험은 워낙 신선한 것인지라, 스스로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캠프에 돌아오자마자 로르텔이 가장 먼저 본 광경은, 식수를 담아 놓은 커다란 양동이에 에드와 예니카가 나란히 기대어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큭, 후우…”
“으읏… 으으…”
“…”
등장인물은 세 명이다.
우선은 에드 로스테일러다.
뭔지 모를 열기에 못 이겨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끙끙대고 있었다.
반대쪽 손은 아예 예니카의 어깨에 두른 채 꽉 힘을 주고 있는데, 마치 어디 가지 말고 옆에 있으라는 듯이 그녀를 구속하고 있는 듯 하다.
두 번째는 예니카 페일로버다.
볼을 홍당무처럼 붉힌 채, 에드의 옆에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앉아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뭔가 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에드의 박력에 못 이겨 그냥 나몰라라 몸을 맡긴 상태다.
세 번째는 로르텔 케헬른이다.
그 둘을 보고 있다. 이상.
“…뭐하세요…?”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당황스럽긴 하나, 일단 상황에 대한 설명을 먼저 요구했다.
무엇보다 에드의 상태가 이상해 보인다. 왠지 모르게 힘들어 보이는데, 건강에 이상이 온 건가 싶은 걱정이 먼저 든다.
그렇기에 로르텔은 일단 멀쩡해보이는 예니카에게 그리 물은 것이다.
“으, 응?! 응?! 언제왔어?!”
“방금이요.”
“빨리 왔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달이 중천에 떠있는데요. 이미 심야시간이에요.”
“어, 그렇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이미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인 것인지, 예니카는 목소리를 필요 이상으로 드높이면서 의미없는 질문을 해댔다.
“날이 춥네! 아니, 추울 시기가 아니네! 날이 덥네! 아닌가! 이제 초가을인가! 그래도 여름은 여름인가! 추운 걸까?! 더운 걸까?! 로르텔, 지금 추워? 더워?”
“…”
예니카 페일로버가…. 고장 났다…
혼란스러운 듯이 빙글빙글 돌아카는 예니카의 동공.
로르텔한테는 썩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다.
“시약을 먹었다고요?!”
자기 전에 검토하려고 들고 온 예산 서류들. 그것들을 가슴에 꽉 안은 채로, 로르텔은 모닥불 옆에 앉아 있었다.
한 차례 난리를 피운 결과, 여전히 제 얼굴을 쥐고 끙끙대는 에드를 옆에 앉혀둔 채로 로르텔과 예니카의 긴급 회의가 진행중이었다.
새로 떠온 냉수를 몇 번씩이나 들이키고, 한참동안 시원한 바람을 맞고 나서야 예니카는 제 정신이 들었는지… 타닥대는 모닥불 옆에서 로르텔에게 모든 상황을 전달했다.
“아, 아니 어이가 없긴 한데… 그런 상황에 넉살 좋게 양동이 옆에 앉아 있었어요? 일단 에드 선배님부터 침대로 옮기고, 쉬게 할 생각을 해야하는 거 아니에요?”
“나, 나도 그런 생각은 했어! 생각은 했단말야!”
“헬쭉한 표정으로 어깨를 내주고 한참동안 나란히 앉아있는 꼴을 방금 봤는데, 그런 말이 나와요?!”
로르텔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예니카를 쳐다봤다.
“당장 에드 선배님 몸상태가 경각을 왔다갔다 하는데, 사심을 채우고 있었단 얘기에요?!”
“그, 그렇게 말하면 내가 되게 이상한 사람 같잖아…!”
“틀린 말이 아니잖아요!”
“으, 윽…!”
확실히, 반박할 수가 없다.
에드 로스테일러의 기세에 눌려서 이렇다 할 반항을 못한 측면이 크지만… 그래서 예니카 스스로가 기분이 나빴냐고 한다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상, 로르텔의 추궁에는 단 한마디도 받아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예니카는 눈물을 머금고 입을 다물었다.
“너무… 언성을 높이진 마라… 머리가… 좀 아프다…”
에드는 자기 양쪽 관자놀이를 꾹 누르면서 끙끙대고 있었다. 로르텔은 그런 에드를 보며, 걱정스러운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일단 들어가서 쉬세요. 지금 상회 쪽에 연락 넣어서 진통제라도 챙겨오라고 말해둘게요.”
“아니, 됐다… 이 늦은 시간에 또 언제 상회까지 가려고.”
다소 고생스러운 듯한 얼굴이지만, 에드는 어렵사리 로르텔의 호의를 거절했다.
“이런 밤 늦은 시간까지 그렇게 뛰어다닐 필요는 없다. 당장에 약 기운은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다… 그냥, 로르텔 너도 좀 쉬어라… 큭…”
“아, 아니 에드 선배님. 그래도…”
“하루 종일 학사 일 하느라 상회 일 하느라 너도 바빴잖아. 안 그래도 정신 없이 사는데 내 일거수일투족까지 보조 해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너한테는 이미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더 받으려고 하는 마음이 잘 안 들어. 오히려 갚았으면 갚았지.”
“네, 네에…?”
제 얼굴을 감싸쥔 채 꾹꾹 누르면서 힘겹게 이야기 하는 에드.
그런 에드의 말에 로르텔은 숨을 삼켰다.
“네가 항상 고생하고 있는 거 뻔히 아는데, 더 고생해달라는 부탁을 어떻게 하겠냐.”
“아, 아니 그런…”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너무 내 걱정만 하지 말고… 너도 좀 쉬어라. 네가 너무 무리하면 나도 마음 쓰여서 힘드니까.”
“읏…”
로르텔은 뭐라 대답하려다가, 이윽고 말문이 막혀서 고개를 휙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열기가 오른 표정으로 예니카 쪽을 바라본 채 이야기 했다.
“이, 이건 뭐에요…?!”
“…”
“이, 이건 확실히 좀 위험할지도…?”
에드의 내면이야 어느 정도는 간파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감없이 입밖으로 내주는 것은 확실히 파괴력이 다르다.
애초에 로르텔은 의외로 대놓고 들이대는 것에 면역이 없다.
마치 취기에 오른 상태처럼, 한 없이 부드럽게 자신을 대해주는 에드의 모습에 적응이 되질 않는다. 이른바 스윗하다-라는 관용적 표현으로도 모자라다.
무뚝뚝하던 인간이 진심을 내비쳐주는 행위에서 오는 갭. 그 파괴력을 감당하기란 제 아무리 로르텔이라 할지라도 쉽지가 않다.
에드 입장에서야 단지 빙빙 돌려 말할 여유가 없을 뿐이다. 다만 로르텔이나 예니카에게는 다가가는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
기분이 좋은 걸 넘어서 버겁다!
호의라는 것이… 이렇게 묵직한 것이었나…!
“…”
“…”
그렇게 잠시간, 이번엔 예니카가 반달눈을 뜬 채 로르텔을 쳐다보았다.
방금까지 예니카를 추궁하고 있었던 로르텔 또한, 이번엔 멋쩍은 듯이 시선을 피했다.
“에드는 당장 내일도 학사 수업 들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
“이렇게 괴로운 상태면 학사 수업은 쉬는 게 맞겠죠.”
“그렇긴 한데… 학사 일정만 있는 것도 아니구… 거기다가, 성녀님이랑 같이 클레드릭 수도원에 간다는 일정까지 잡혀있단 말야…”
“…네? 클레드릭 수도원이요…?”
로르텔은 그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예니카보다 훨씬 더 세상 소식에 정통한 로르텔이다. 당연히 텔로스 교단의 성지인 클레드릭 수도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안다.
유명한 금남 구역에 에드를 데려간다는 건 금시초문이긴 하지만… 클라리스 성녀라면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지금 이 상태로… 클레드릭 수도원에 간다고요…?”
평상시의 에드는 언제나 이성적이고 차분한데다가, 쓸 데 없이 분란을 일으킬 조짐을 만들지 않는 소년이다. 자기 처신도 완벽하다.
다만, 지금 같이 제 몸 가누기 버겁고, 여유가 없어서 불필요하게 스윗하고 친절한 상태로는… 클레드릭 수도원 같은 곳에 갔다간 대형 참사가 일어나고 만다.
허나, 성녀 클라리스의 권위는 텔로스 교단 안에서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수준이다.
그녀가 직접 정한 일정이라면 쉽게 무를 수도 없다.
“…”
로르텔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예니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로르텔은 침착하게 이성을 되찾았다.
“이, 일단 어떻게든 에드 선배님이 약 기운을 이겨내기 전까지는 옆에서 지켜드려야 할 필요가 있겠네요.”
“으, 응… 그건 나도 동의해…”
“그럼 이왕이면 상회 시설에 묵게 하는 게 좋을 거에요. 의무 시설도 잘 되어 있고, 여러 의약품들도 많은데다가, 재고를 잘 뒤져보면 시약 성분에 중화 작용을 할 수 있는 약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논리적으로 깔끔한 흐름을 맞춰서, 자연스럽게 에드를 상회 건물로 데려가려고 했던 로르텔이었으나…
“그, 그건 안돼…! 어차피 누워서 쉬는 건 이 익숙한 환경이 더 좋을 거고, 약재는 에드가 없어도 찾아볼 수 있잖아…!”
“그래도 이왕이면…”
“아, 안돼애…!”
예니카는 로르텔의 의견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캠프에서 쉬든 상회에서 쉬든 크게 다를 건 없다. 오히려 에드에게는 캠프가 더 익숙한 환경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저 묘하게 감상적인 상태의 에드를 로르텔과 단 둘이 놔두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다.
“거, 거기다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환경은 좋지 않아…! 차라리 캠프에서 혼자 쉬는 게 낫지! 에드는 지금 이 상태에서 남 앞에 나서고 싶진 않을거야…!”
“…”
“그, 그러니까… 믿을만한 사람… 그래, 안 위험한 사람이 옆에서 지켜줄 수 있는 장소에 가만히 있는 게 최고야!”
그렇게 말하며, 언성을 높이는 예니카.
붉게 물든 얼굴에, 휙휙 몰아쉬는 콧김을 보고 있자니… 로르텔은 자연스럽게 반박의 말이 튀어나왔다.
“죄송한데 지금은 예니카 선배님이 제일 위험한 사람처럼 보여요…!”
“나?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진 않다…!
이런 상황에 와서까지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렇지 않다고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그런 제 심성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예니카 페일로버인 것을….
“그럴 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또 없는 건 아니라고 해서 무조건 위험하다고만 말할 수 없는 건 아니지가 않긴 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
“이것 봐요! 또 알 수 없는 소리로 얼버무리려 하잖아요!”
로르텔 또한 언성을 높여대기 시작했다. 언제나 차분하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나서는 건 참 보기 힘든 일이다.
“크, 크윽…”
다만, 사이에 낀 나무등걸에 앉아, 모닥불 앞에서 제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는 에드의 신음소리가 한층 더 깊어진다.
잠깐의 정적이 지나가고, 예니카와 로르텔은 다시금 서로를 마주보고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의견 대립이나 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어, 어쨌든… 로르텔도 안되고 나도 안 되는 상황이라면, 다른 믿을만한 제 삼자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요. 그런 시간적 여유가 있을까요?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그, 그렇지만… 이대로 에드를 가만히 놔둘 순 없잖아…”
그렇게, 한참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 두 분 무슨 일 있으십니까?”
구원 투수가 등판했다고 해야할까.
예니카와 로르텔, 두 사람이 다 신뢰하고 있으며, 믿고 에드를 맡길만한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
취침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루시를 찾으러 온 것일까.
아니면, 계약에 따라 로르텔의 별장을 관리해주러 온 것일까.
바쁜 동안에도 짬을 내서 캠프에 온 메이드장 벨 마이아는, 수선 연습을 위한 폐기 피복을 잔뜩 안아든 채로 수풀을 헤치고 나온 참이었다.
오필리스관의 일과를 어느정도 마무리 해놓고, 캠프에 잠깐 들르러 온 모습.
직원을 보낸다곤 했지만, 본인이 직접 옷을 들고온 것이 참으로 벨 마이아 답다.
“…?”
마치 구원자를 본 듯한 두 사람의 얼굴에, 벨은 잠깐이나마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로스테일러 가문과 블룸리버 가문, 캘러모어 가문은 페니아 황녀님 쪽으로 붙을 것 같습니다.”
클로엘 황궁 내부에서도 북동쪽. 장미궁 제 2관, 페르시카 황녀의 개인실.
“엘펠란 가문, 화이트펠츠 가문, 노튼데일 가문은 셀라하 황녀님 쪽으로 붙을 것으로 보이고요.”
황실 기사단의 단장직을 역임하고 있는 사내. 지긋한 수염을 늘어뜨리고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그 남자는, 이름을 말하기만 하면 황실 내의 모두가 고개를 푹 숙여야만 하는 사내다.
그 사내의 권위 앞에서도 기가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황족들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방증하듯, 사내를 뒤로한 채 장미궁 본관의 커다란 풍경화를 올려다보고 있는 소녀는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
클로엘 황궁의 으리으리한 모습을 그려낸, 퓰란 지방 출신의 화가가 그린 풍경화다.
어찌나 묘사가 세밀하고 아리따운지, 어지간한 예술작품을 다 보았던 페르시카의 눈에도 웅장해보일 지경이다.
“어지간한 유력가의 지지를 페니아 황녀님과 셀라하 황녀님이 나눠서 가져가고 있는데, 저희는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감히 의견을 여쭈어봅니다.”
페르시카 황녀는 가만히 풍경화를 바라보다가, 이내 지그시 미소를 흘렸다.
“좀 더 분위기를 봐야 할 것 같네요.”
격변하는 권력 구도에 황실 내의 관료들도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페르시카 황녀는 묘하게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 기사단장 다이룩스를 영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