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
개학 10일 전
실베니아 아카데미는 학교라기보다는 도시에 가까웠다.
왕국 남서부의 아켄 섬을 통째로 사들여 설립한 이 학교는, 어찌나 그 부지가 넓은지 졸업생들조차도 못 가본 곳이 많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그게 무슨 뜻이냐.
일단 걷다보면 뭐라도 나온다는 뜻이었다.
학생들의 시선이 무거워 이리저리 걷다보니, 아켄섬 북서부의 미개발된 숲까지 걸어나와 있었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학사 시설은 섬의 남동편에, 학생들의 편의시설이나 복지시설 혹은 상업 시설들은 남서편에 몰려있는 편이다.
애초에 이 학교와 육지를 잇는 다리가 남동에 하나, 남서에 하나 이렇게 둘 뿐이기 때문에 그 쪽을 중심으로 발달한 것이다.
반나절 쯤 걸어 북동부 언저리에 도달한 후, 다리가 아파서 대충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 앉았다.
“일단, 이 섬을 나가지 말자.”
반나절이나 걸어다니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얼추 결론이 날 것들은 다 나게 된다.
뭐가 어찌됐든 간에 이런 신분이 되어버렸으니, 어떻게든 적응해서 살아갈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실베니아 아카데미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온갖 귀족가에서 자제들을 입학시키고 싶어 안달이 난 곳이란 말이다. 압도적인 재능이나 압도적인 재력.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만 재적할 수 있는 곳이다.
실베니아의 졸업장을 들고 있다면, 뭐가 됐든 해먹고 살 수 있다. 이를 악물고 졸업장을 따내기만 하자. 아무것도 모르는 이 험난한 세상에 그만한 자산이 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시점에서 이 학교를 제 발로 걸어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솔선수범 미지의 세상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실베니아의 낙제검성’을 이미 몇 번이나 끝까지 플레이한 전적이 있다.
에드 로스테일러가 막 파문을 당한 시점이라면, 시나리오의 극 초반부 아닌가.
앞으로 이 학교에서 일어날 온갖 일들을 어느정도 꿰고 있는 입장이다. 이 학교 안이라면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게임적 지식을 활용할 여지가 많다.
그런 이점을 놔두고 굳이 작품적 배경과는 상관이 없는 미지의 세상 밖으로 나갈 이유가 전혀 없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인적 없는 숲의 나무 그루터기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
나는 또 다시 한숨을 푹 쉬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디… 보자…”
목재 가방 두 개를 풀밭 위에 올려놓고 열어보았다.
여러 옷가지나 수업에 쓰던 교재들, 마도구들도 있었지만 모두 학습용으로 출력이 조정된 것들이라 크게 유용하진 않았다.
그렇게 휘황찬란한 방에 살았는데 정작 개인 짐은 이게 전부라니. 얼마나 허울된 삶이었는지 새삼 체감이 되고 만다.
그래… 가문에서 파문되었을지언정 아직 학교에서 퇴학 당한 건 아니다.
가문의 지원 없이 홀몸으로 그 어마어마한 등록금을 해결할 순 없을테니 사실상 퇴학이나 다름 없긴 하지만, 어찌됐든 다음 학기 등록금까지는 지불된 상태였을테다.
이를 악물고 장학금을 따내든, 어디서 새로운 돈벌이를 벌어내든 하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는 있다. 다만 타임 리미트는 설정되어 있었다. 다음 학기까지.
“풍경은 참 좋네…”
조금만 더 걸어나가니 개울이 있었다. 아켄 섬 북서부의 야트막한 동산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줄기가 여기까지 조르르 흐르고 있었다.
새삼 수면에 반사된 달빛과, 차분하게 가라앉아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숲의 풍경에 취하고 만다.
낭만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긴 하다. 이러다 굶어 죽는다.
나는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들어서 바닥에 글씨를 써내려갔다.
당장에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필요한 것이 많았다.
목표는 졸업이다.
제일 위에 목표 = 졸업 이라고 큼지막하게 써내려갔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이제 2학년이다. 졸업까지 앞으로 여섯 학기 남았다.
한 학기 학비가 보통 플렌 금화로 20닢. 휘황찬란한 금테를 잔뜩 두른 마차 하나를 통째로 살 수 있는 값이었다.
그나마도 많이 후려친 가격이었다.
보통 실베니아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최고급 기숙사에 머무르며, 최고급 식단이 제공되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최고급 마도구를 이용해 학습하는 데다가, 시종을 둘 셋씩 끌고 다니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런 것들 다 후려쳐내고 나온 한 학기 학비가 마차 한 대 값인 것이다.
일단 학비는 답이 없다. 다음 학기 안으로 장학금을 따내면 모르겠으나, 이런 빈약한 능력치론 장학금은 커녕 낙제를 피하기도 힘들다.
대체 이렇게 능력 없는 인간이 어떻게 그리 오만하고 건방진 품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지 그저 의문스러울 뿐이다.
사실 의문 같은 걸 가질 필요도 없다. 그냥 초반에 주인공한테 처맞고 소비되는 악역을 그렇게 공을 들여 생각하는 놈이 어딨어.
어쨌든 학비를 차치해두고서라도 가장 급한 건 당장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이른바 의식주다.
옷이야 있다. 세탁할 환경이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장에 일주일은 어떻게 거지꼴은 면할 수 있다.
식과 주는 문제다. 당장 오늘 밤 잘 곳과 먹을 것이 없다.
“후우….”
또 다시 깊은 한숨.
그러나 이윽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다음에 내 뺨을 후려쳤다.
“한숨만 계속 내쉬고 있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를 악물고 벌떡 일어난 다음 스트레칭을 한 번 했다. 허리 한 번 풀고, 다리 한 번 풀고, 국민체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조져준다음 뜀뛰기 한 세트 푸쉬업 한 세트.
후욱 후욱 하는 숨소리와 함께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했다.
듣기로는 신입생 입학 시험이 있었다고 하니 다음 학기 개학까지 얼마 안 남았겠지. 날짜를 생각해보면 대략 열흘 쯤 남았을 것이다.
일단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환경을 어느 정도 만들어 놓자. 열흘이라는 시간이 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다.
일단 잘만한 곳을 마련해보자. 제법 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날씨라 어떻게든 노숙을 하려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맨바닥에 퍼질러서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간이 텐트 같은 걸 만들 수는 없을까?
텐트까지 갈 것도 없이 간단한 쉼터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다. 굵직한 나무줄기들을 지지대 삼아 세워놓고, 위에 천막 같은 것을 덮기만 하면 그럭저럭 지붕 있는 쉼터가 된다.
아켄 섬의 북동부 숲은 제법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가끔 정령 같은 것들도 목격되는 것을 보아하면, 인간의 손이 거의 닿지 않은 셈이다.
천막의 지지대가 되어줄 나무 줄기 정도는 잘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고민할 시간에 움직여야지.”
생각에만 빠져있을 시간이 어디있나. 뭐가 됐든 간에 행동이 앞서야 했다.
나는 개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고 다시 눈가에 힘을 집중했다.
[ Name : 에드 로스테일러 ]성별 : 남 나이 : 17 학년 : 2 종족 : 인간 업적 : 없음 체 력 3 지 력 4 재 주 7 의 지 력 7 행 운 6 전투 능력 상세>> 마법 능력 상세>> 생활 능력 상세>> 연금 능력 상세>> 여전히 바닥을 기는 능력치들을 뒤로하고, 마법 능력 상세를 확인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 마법 능력 상세 ]등급 : 조잡한 마법학도 전문 분야 : 원소 공통 마법 : 빠른 캐스팅 Lv 1 마나 감지 Lv 1 불 원소 마법 : 발화 Lv 2 바람 원소 마법 : 바람 칼날 Lv 1 전문 분야가 원소라면서 쓸 줄 아는 원소 마법은 가장 기초 마법 두 가지 뿐이다.
실베니아의 커리큘럼 상 원소계열 마법학도들은 1학년 때 두 개의 전문 원소 분야를 고르게 되어있다. 보아하니 불과 바람을 선택한 모양인데, 기초 중의 기초 마법도 거의 단련되어 있지 않은 걸 보면 얼마나 나태한 학생이었는지 순식간에 알 수 있다.
뭐, 어떤가. 어찌됐든 쓸 수 있는 마법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면 됐다.
나는 그대로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몸의 마나를 느꼈다. 주인공 캐릭터들의 흘러 넘치는 마나 양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하지만, 적당히 자란 숲의 나무 줄기들을 베어내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마력과 함께 일어난 바람의 칼날이 적당한 크기의 줄기들을 베어 넘겼다. 손으로 들기에 너무 무거우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 적당한 크기를 잘 고르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대여섯개의 나무 줄기를 골라 베어내고 나니, 벌써부터 호흡이 가빠졌다. 확실히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루지는 못하는 몸뚱아리다. 수련의 필요성이 절실해 보였다.
“진짜, 이게 뭔 개고생이람.”
침을 한 번 퉤 뱉고 숨을 잘 추스른 다음 줄기들을 적당히 양지 바른 곳으로 들고 갔다.
맨땅에 뼈대를 세우려 해봤자 힘의 균형이 안 맞아서 미끄러져 내릴 뿐이다. 지지대가 서있을 공간의 땅을 살짝 파내어주는게 좋다. 적당히 손등만한 나뭇가지로 땅을 찍어서 파냈다.
그렇게 네 군대의 땅을 파내어 지지대 4개를 세운 다음, 비스듬히 눕혀 중앙 부분에서 만나게 한다.
손은 두 개인데 지지대는 네 개라서 참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어깨나 머리로 지지대를 받쳐가면서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지대가 만나는 중앙 부분을 가죽 벨트로 묶었다. 가방 안에 있는 고급 튜닉에서 빼낸 벨트였다. 그리고 그 중앙부를 마지막 나무 줄기로 받치고, 바닥을 파내어 잘 무너지지 않도록 고정해주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고 불안하지만 제법 그럴싸한 쉼터 뼈대가 완성되었다. 그다지 모양새가 예쁘진 않았다. 애초에 딱 정중앙에서 지지대가 만나지도 않았고, 계산 없이 대충 만든 거라 높이도 생각보다 낮다.
그래도 여기다가 천막 같은 것을 올려주면 하룻밤을 버틸만한 쉼터가 되어줄 것이다.
목재 가방에 들어있던 옷가지들을 올려놓을까 하고 고민을 했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부피가 너무 적어서 옷 너덧 개를 묶어서 올려야 하는데, 당장 내일부터 입어야 할 옷들을 희생시키기에는 너무 수지가 안맞았다.
고급품이라서 되팔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천막으로 쓴답시고 더럽히기도 좀 그렇다. 대충 타협책으로 한 두 개만 묶어서 바닥에 깔기로 했다. 당장 흙바닥에서 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천막을 덮어줄 천은 뭘로 해야되나…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숲으로 들어가 잎사귀가 넓은 나무의 가지들을 잔뜩 챙겨나왔다.
이 과정만 해도 또 한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 나뭇가지들로 쉼터를 덮는데 또 한 시간.
그럭저럭 쉼터를 완성하고 나니 서쪽 하늘에 막 떠오르던 보름달은 이미 중천에 박혀있었다.
“후우.. 하… 빡쌔다 빡쌔.”
쉼터를 완성하고나서 허리를 쭉 펴 스트레칭을 하고 땀을 닦아 내었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어쨌든 끝나긴 끝났다.
그럭저럭 몸을 뉘일만한 쉼터가 앞에 완성되어 있었다. 막상 다 하고 나니 성취감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 제작을 완료했습니다. 제작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 [ 완성품 목록이 갱신 되었습니다. ]그런 메시지가 들려온 것은 그 직후였다.
“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어리둥절해다가, 다시 개울가로 가서 눈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 기나긴 정보창이 아니라, 다른 창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 생활 능력 상세 ]등급 : 초보 장인 전문 분야 : 없음 손재주 Lv 4 설계 Lv 1 채집 능력 Lv 1
“호오?”
아무래도 에드는 마법 보다는 제작에 더 재능이 있는 놈이었나보다. 하긴, 지력이나 체력보다는 재주 쪽에 스탯이 더 몰려 있기는 했다.
[ 새로운 완성품 ]–
목재 간이 쉼터 잠시 몸을 쉬게 할 수 있는 쉼터. 조잡하고 허름하다. 꾸준히 유지 보수를 해주지 않으면 금방 수명이 다할 것 같다.
제작 난이도 : ◐○○○○
–
제법 반가운 창이다. 제작 시스템까지 그대로 튀어나와줄 줄은 몰랐다.
제작 쪽 숙련도를 관리할 수 있다면, 다른 쪽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 그나마 희소식이다.
잘 생각해보면 좀 더 지금의 위기 상황을 타개해볼만한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몸에 피로가 쌓여 있는데다가, 정신적으로도 꽤 몰렸다.
휴식이 필요한 시기였다.
나는 얼른 완성한 쉼터에 몸을 뉘였다.
나뭇잎이 사각대는 소리나 풀벌레 같은 것들이 우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완전히 어두침침해져서 시야에 들어오는 것도 없다. 그대로 눈을 감고 천천히 잠에 빠져들기로 했다.
참으로 고생스럽고, 해결해야할 일들도 너무 많다.
그래도 일단 쉬자. 쉬고 보자.
쉬는 게 먼저다.
휴식이 끝나고 날이 밝으면, 장기적으로 이 아카데미에서 생존해나갈 방법을 모색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