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07)
최연소 은퇴 희망자 (2)
“회장님. 연금부 소속 시약 제조 동아리에서 선물 보내왔습니다. 향초를 유리병에 담아서 마법 불꽃으로 계속 향을 내는 도구라는데, 향이 정말 좋네요! 집무실에 하나 놓고 갈게요!”
“전대 학생회장 베로스님께서 자랑스럽다며 최고급 마법 지팡이를 선물로 보내주셨는데요. 개인실에 가져다 두라고 지시해둘까요?”
“학사 본부 쪽에서 현황 보고 갱신 주기를 좀 널널하게 잡아도 좋다고 지시를 내렸네요. 회장님 업무 처리 하시는데 방해 안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잡았나봐요.”
“생활동 상인회에서도 이런저런 다과랑 장식품을 선물로 보냈는데요. 오벨관 창고에 여유자리가 없어서 일단 복도에 뒀어요. 그냥 학생회원들한테 나눠줄까요?”
“토그 마력 학회에서 노고를 치하하는 메시지를 보냈어요. 마법학 연구에 해준 큰 기여에 감사하다는데… 아무래도 저번에 밀었던 학사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방침에 큰 수혜를 받았나봐요.”
타냐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오벨관 복도를 걸었다.
타냐에게 따라붙는 여러 학생 비서들이 올리는 보고사항은 하나 같이 훌륭하신 회장님께 잘 보이고자 날아든 선물에 관한 것들이었다.
“아 맞다. 학생 건의 일람 정리해서 올렸습니다! 내일 중으로 처리되어야 한다고 하니 검토 후 결재 부탁드려요!”
“저번에 학사 본부 쪽에서 요구했던 징계 위원회 개선안 마무리 됐다고 하네요! 지적 사항 있으면 정리해서 문건 보내주세요!”
“오후에는 로레일관 쪽 사용인들 격려하러 나가셔야 해요! 그 쪽 현장은 맞이할 준비 다 끝내놓은 상태라고 하니 우리만 일정을 알려주면 되는데, 시간을 어떻게 잡을까요?!”
물론 업무에 대한 내용도 한두가지는 아니었다.
타냐는 한참을 그렇게 비서들에게 시달리며, 집무실에 들어와 좌석에 몸을 묻었다.
“…”
이제는 천금보다도 더 귀해져버린 이 정적.
밤에 잠들 때가 아니면 귀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보고 사항만 전해듣고 있는 입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생회 일은 눈코뜰 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중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돼…”
분명 실베니아의 학생회장이 되어 두루 인정받는 자가 되는 게 꿈이었을텐데.
지금에 와서야 타냐는 노곤한 기분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종신 학생회장이 되어버리고 말아…!”
본디 집단을 대표하는 자가 되었다고 한들, 반대 세력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
누군가는 현 학생 회장 자리에 앉은 자에 반대하고, 갈등하고, 그렇게 지지세력을 흔들려고 들기 마련이건만… 타냐는 기묘할 정도로 모든 학생들의 지지를 두루 받았다.
좀 더 본격적으로 나서야만 했다. 좀 더 자신에게 반기를 들만한 세력이 준동할 수 있도록, 틈을 내주어야만 한다.
허나, 그 과정에서 피해보는 자들이 생겨나는 건 또 어떨까 싶다. 난동을 피우긴 피우되, 불합리하게 피해 보는 사람은 없게 만들고 싶다.
…애석하게도, 타냐의 주변엔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일러줄 사람이 없었다.
“…”
타냐는 숨을 후욱 몰아쉬고… 집무실 한구석에서 시선을 날카롭게 했다.
세상이 이렇게 나온다면, 자신도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는다. 이렇게 된 거, 철저하게 난동을 부려준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다음 날, 타냐가 향한 곳은 오필리스관이었다.
오필리스관은 실베니아의 최고급 기숙사로서 품위를 유지해야만 하는 곳이며, 그곳을 관리하는 메이드들은 그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안고 일한다.
일단 그 자부심을 긁는다. 학생 복지에 투자하겠다는 명목으로 오필리스관에 투자되는 기금을 삭감하고, 요 근래 오필리스관의 학생 관리가 소홀한 것 같다는 지적질까지 해댄다.
“확실히 그렇군요. 오필리스관이 인력 관리에 소홀해진 것 같다는 자각은 있었습니다. 역시 어느 정도는 간파하고 계셨군요. 지적해주신 바대로 개선안 마련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타냐 아가씨.”
“…네?”
그러나, 메이드장 벨 마이아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은 고사하고, 오히려 자중하는 자세를 보이며 타냐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필리스관은 학사 내부 시설 중에서도 유독 특별취급 받는 경향이 강했지요. 물론 중직을 행하는 만큼 특수한 지원이 많이 필요한 곳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기강이 해이해져서는 안될 일입니다. 시기적절한 조언 감사드립니다.”
“…아, 네에…”
허나, 이미 에드 로스테일러와는 호의적인 관계이고, 타냐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메이드장이 대립각을 세우려 들 리가 없었다.
오히려 내부 인력 관리에 대해 자기 반성의 기회로 삼고,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타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학생 비서들을 이끌고 트릭스관으로 향했다.
갑작스럽게 학생회장 타냐가 행차한다고 하자, 트릭스관 측에서는 레이첼 부교장이 직접 나타나서 맞이했다. 무슨 학생 하나 상대하는데 부교장이 직접 튀어나오나 싶어서 타냐는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트릭스관 차원에서는 아랑곳않고 최고의 예우를 해주었다.
“최근 엘테 상회 쪽이 학사에 많이 유한 대응을 보여주곤 하는데, 듣자하니 학생회 차원에서 펼친 포섭 정책이 크게 먹혀들었다고 하더군.”
부교장 레이첼은 타냐를 보고서 흡족한 표정을 유지한 채 이야기 했다.
“앞으로도 학사와 상회를 이어주는 다리로서 큰 역할을 도맡아주길 기대하고 있으마. 실베니아 개교 이래로 이토록 통합과 포섭을 두루 해낸 학생회장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구나.”
“그… 레이첼 부교장님… 다름이 아니고, 교수진들의 연구 자금 삭감을… 건의하러…”
“흐음.. 연구 자금 말인가. 확실히, 근래들어 자금 대비 실적 효율이 안나오긴 했군. 연구진들 기강도 잡을 겸 삭감안을 학사 본부 쪽에 올려볼까. 오벨 교장님께서 반대하실지도 모르겠구나.”
“그, 그럼… 오벨 교장님은 심기가 좋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연구 인력들도 엄청 싫어할테고…!”
타냐가 콧김을 훅훅 내뿜으며 그리 이야기하자, 부교장 레이첼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럴거라고 대답해주었다.
“반드시 진행하죠! 실적 없는 연구에 자금이 빠져나갈 바에… 학생 복지에 투자하는 것이 맞아요…!”
그렇게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타냐는 레이첼의 확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튿날, 학사 본부쪽에서 학생회 쪽에 대답이 돌아왔다.
― ‘현 학생회장이 직접 건의했다고 하니 의외로 쉽게 통과되었다. 연구진들도 이번 삭감안 통과를 계기로, 학술의 뜻을 잊고 나태해진 자신을 바로잡고 마법학 발전을 위해 더 의미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성찰하겠다고 보고를 올려오더군.’
― ‘학생 관리 뿐만이 아니라 트릭스관 교직원들까지 시야를 넓히고 있었다니. 참으로 놀랍구나, 타냐 로스테일러. 학생회장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을텐데, 그 노고를 진심을 다해 치하하고 싶구나.’
“왜! 왜! 왜!”
타냐는 집무실 책상에서 머리를 쥐어 뜯으며 소리를 질렀다.
“이번 주에 로레일관 돌면서 교직원 격려 하시고, 오필리스관 운영 실태와 내실 점검도 자발적으로 하시고, 연구직 교수들의 성과 검토까지 하셨더군요. 사실 회장일 하시는 거 즐기는 거 아닙니까?”
“난 그냥 학생회장일 뿐인데! 누가봐도 명백히 월권 행위잖아요! 왜 기분 나빠하지 않는 건데요 대체!”
“사람 이미지라는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크게 보면 결국 학생 복지 자금 증대를 위한 대외 활동이 되는 거지요.”
직스 에펠슈타인은 헝겊으로 롱소드를 슥슥 닦으며, 학생 비서 하나를 잡고 이런저런 지시사항을 전했다.
대부분은 늦가을에 치러질 통합 대련회 준비에 관한 것들이었다. 직스는 그 실행위원으로서 장소 확보, 연락 관리 따위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소집하셨던 학생 회동에 나가셔야 합니다. 식사 마치고 채비 시작하셔도 늦지는 않을겁니다.”
“이렇게 된 거… 각 학년 수석들 특권을 좀 없애면 어떨까요?! 학년 수석들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두루 지지 받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랑 좀 대립하는 느낌으로 가면 반대파들이 결집되지 않을까요?!”
“수석들 면면을 보십시오. 웨이드 캘러모어, 루시 메이릴, 에드 로스테일러, 다이크 엘펠란. 이름만 들어도 모르시겠습니까?”
에드 로스테일러는 타냐의 친오빠고, 다이크 엘펠란은 아예 학생회원이다.
루시 메이릴은 완전히 에드 로스테일러의 의견을 따라갈테니, 사실상 과반수가 이미 친 타냐 파라고 봐도 무방한 상태였다.
“왜 이렇게… 내 지지 세력은 굳건한 거야…!”
“….거 그렇게 절망적인 표정으로 할 말입니까, 그게…?”
“엘테 상회랑은 어떻게든 적대할 명분이 없을까요?! 그.. 일부 품목에 대한 독점 권한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 건 어때요?”
“어차피 대부분의 품목은 논란의 여지없이 명확하게 계약으로 규정되어 있고… 또, 에드 선배님이 친 학생회 파로 남아있는 한, 엘테 상회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에엑…”
여기서도 또 에드 로스테일러였다. 일단 에드 로스테일러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한, 엘테 상회와도 지지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화, 황실 쪽은 어때요? 페니아 황녀님이 계시는 황족 숙소 쪽에다가 학사 상납금 같은 걸 요구하는 방식으로 가면… 황족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요?”
“페니아 황녀님 쪽은 이미 로스테일러 가문 쪽이랑은 딱 붙은 상태 아닙니까. 관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다가 정말로 금화 몇 푼이라도 받아내는데 성공하면, 오히려 학사 쪽 지지가 굳건해지실 겁니다.”
“왜 이 쪽을 찌르면 저 쪽이 굳건해지고, 저쪽을 찌르면 이 쪽이 굳건해지는 거에요!”
“저한테 물으셔도 곤란합니다.”
여기서 포기할 타냐가 아니었다. 이를 악물고 머리를 굴리면서, 어떻게든 생각을 짜내는 일을 반복했다.
“교단! 텔로스 교단 쪽에서 걷어가는 십일조를 불합리 하다고 물고 늘어지는 거에요! 종교 문제는 그야말로 가장 민감한 부분이잖아요!”
“저런… 이미 에드 선배님께서 텔로스 교단 쪽 세력은 확실히 해뒀을 겁니다. 일단 클라리스 성녀님이 완전히 친 학생회 파입니다.”
“네?! 클라리스 성녀님이 절 지지해요? 왜요?!”
카일리 에크네와 성녀 클라리스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타냐다.
에드 로스테일러와 타냐 로스테일러. 두 사람에게는 완전히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클라리스에게, 적대를 바라는 것은 오히려 자충수에 가까운 선택이다.
“그… 에드 선배님 쪽에서 손을 써둔 것은 아닐지…”
“대체 오라버니는 몸이 몇 개인데요?!”
“저한테 물으셔도 곤란합니다.”
타냐는 그대로 회장석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얼굴을 몇 번 슥슥 쓸어올리더니, 죽어가는 듯한 소리를 냈다.
“도망 칠 수가… 없어… 이 주박과도 같은 학생회장의 자리에… 나는 영원히 묶여있어야 하는거야….”
“그… 타냐 회장님.”
“…네에?”
“… 덱스관 예산 결정안에… 사인 해주셔야 합니다…”
타냐는 스윽 고개를 들었다. 이번 학기 덱스관의 운영 예산 결정안.
학사 본부 쪽으로 넘어가기 전에 학생 회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그 예산안은, 얼추 147페이지 분량이었다.
“한 시간 안에 검토해주세요. 그래야 식사 하시고 오후 회동에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타냐는 살려달라는 듯이 직스를 바라보았지만, 직스가 할만한 대답은 여전히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저한테 그러셔도 곤란합니다.”
*
“오, 타냐. 왜 이렇게 죽상이야. 일이 많이 피곤하냐.”
타냐가 오랜만에 에드 로스테일러를 만난 것은, 오후 회동 자리가 시작하기 몇 분 전이었다.
소회의장에 들어서기 전, 복도에서 에드 로스테일러를 마주치자마자… 타냐는 울상을 지었다.
학생회장 타냐의 주재로 모여든 귀족가 자제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글록트관의 소회의실에 모여 앉아 있었다.
다들 자기 영지에 돌아가면 가신들에게 깍듯이 대우를 받으며 왕처럼 군림하는 자들이지만, 배움의 땅 실베니아 아카데미에서는 일개 학생 신분일 뿐이다.
최근들어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하는 학생회장 타냐가 직접 불러냈으니, 일동 십오분 전부터 모두 모여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모두 학년 내에서도 이름난 귀족가 출신의 학생들이었다.
귀족가 출신이 아닌 학생들도 몇몇은 와 있었는데, 대부분은 이번 황권 경쟁에 얽혀 있는 사람들이었다.
1학년.
웨이드 캘러모어. 요제프 화이트펠츠. 에이그 로킨. 델루스 아인스헤븐.
성녀 클라리스는 학생회장의 권위만으로는 불러내지 못했다.
2학년.
직스 에펠슈타인, 클레비어스 노튼데일, 엘비라 에니스턴, 엘카 이슬란.
마찬가지로, 페니아 황녀를 직접 불러낼 수는 없었다.
3학년.
에드 로스테일러, 페브리 지니페일, 드레이크 레이거스, 클라라 다니엘헤임.
4학년.
다이크 엘펠란, 도로시 화이트펠츠, 트레이시아나 블룸리버, 제 발로 기숙사를 옮긴 직스와 클라라를 제외하고는, 전부 오필리스관을 사용 중인 귀빈들이다.
그 외에도 실베니아에는 여러 귀족가 자제들이 많이 다니긴 하지만, 각 학년 별로 이번 황권 경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학생들을 뽑아보자면 대충 이 정도였다.
나머지는 변방 귀족가 자제들이거나, 황권 경쟁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기 힘든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렇게 이름난 귀족가 사람들이 한 데 모여있는 이곳은 모두에게 불편한 자리이기도 하다. 언동을 함부로 할 수가 없는 자리다.
그저, 다들 조용히 앉아 자리를 주재한 타냐가 입장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요즘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던데, 회장 일에 열중인 것 같아서 보기 좋다. 나도 생존 활동하랴, 오두막 개축하랴, 성적 관리 하랴 정신이 없어서 얼굴을 자주 못보네.”
반면, 복도 쪽에서는 에드와 타냐가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와중이었다.
에드 치고는 굉장히 반가워 하는 반응이었다.
사실 학사 내에서 두루 인기가 많은 에드 로스테일러지만, 그 사내에게 저 정도로 진솔하게 환영 받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제 아무리 호의적인 관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에드 로스테일러는 최저한의 선은 반드시 지키기 때문이다.
저 정도로 허물 없이 대해주는 것은 과연, 그래도 피가 섞여 있다는 친밀감이 묘하게 남아있기 때문일까.
몇몇 사람들이 보면 유독 에드에게 허물 없는 대우를 받는 타냐를 부러워할지도 모르겠으나, 타냐 본인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진지하게 이야기 할 뿐이었다.
“오라버니, 저 좀 살려주세요…”
“…뭐?”
“저… 그…”
타냐는 뭐라 말해야할까 고민하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어떻게 운을 떼야할지 갈피를 잡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로스테일러의 위광을 높이 세워주시고, 항상 열심히 뛰어다녀주시는 건 감사한데 적당히 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말하는 것도 좀 어이가 없다. 에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을 뿐이고, 애초에 타냐는 학생회장이기 이전에 로스테일러의 차기 후계자다. 그런 신분으로 적당히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것도 경우에 맞지 않다.
“…뭐냐? 혹시 곤경에 처했냐?”
“그…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요…”
“말해 봐. 혼자 고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움의 의사를 피력해주는 에드의 모습에, 감사의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에드 본인에게 있었다.
그렇다고 에드를 탓하는 것도 웃기는 짓이니, 타냐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혹시, 이번 회의를 소집한 거랑 연관이 있냐?”
“네에?”
“갑자기 귀족 자제들만 골라서 소환하길래, 네 의도가 뭔지 좀 궁금하긴 했거든.”
“아, 아뇨… 이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에요.”
타냐는 고개를 가로젓고, 에드에게 확실하게 이야기 했다.
“앞으로 저는… 셀라하 황녀님과 한 번 신경전을 치를 것 같거든요. 이번 학기에 계획된 통합 대련회 전후로 해서요.”
항상 울상짓고, 고생스러워하고 있던 타냐지만 미래 계획 만큼은 확실히 수립해두고 있었다.
제 아무리 툴툴거려도, 행동 방침 만큼은 언제나 확실히 하는 소녀다.
“그 전에, 괜한 후폭풍이 없도록 보험을 깔아두어야 해요.”
“보험?”
“황권 경쟁은 황권 경쟁이고, 학사는 학사라고… 모두에게 공포해 둘 생각이었어요.”
그제야 에드 로스테일러는 타냐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로스테일러 가문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반대 정책을 펴고 있는 셀라하 황녀를 잡으려면, 지금부터 그 밑밥을 깔아두어야 한다.
로스테일러 공작가 출신의 타냐가 주도해서 셀라하 황녀와 대립하기 시작하면… 셀라하 황녀를 지지하는 가문 측에서는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다.
그 갈등의 여파는 이 실베니아 아카데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니, 미리 어느 정도는 완화시키기 위해 선제적인 대응을 할 생각이었던 거다.
황실의 정쟁은 정쟁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배움의 미덕을 실천해 나가야만 한다.
황실의 정쟁을 배움의 땅 실베니아에 끌고 오지는 말자. 괜한 파벌 싸움으로 학사의 분위기를 흐리는 것은, 이 학업의 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 취지의 말을 모두에게 전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게 생각처럼 될까.”
에드는 회의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물론 타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안할 수는 없잖아요. 황권 경쟁 때문에 실베니아까지 반으로 갈라지는 꼴을 보고 싶진 않은 걸요.”
타냐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고는 이야기 했다.
“이번 통합 대련회 때 셀라하 황녀도 참관인으로 실베니아에 올 거에요. 황실 기사단이나 마법 연구회 소속의 현역들도 학생들의 실력을 보러 올 거고요. 그 중에서는 직접 학생들과 대련 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한 수 가르쳐 준다는 명목으로요.”
학생들이 황실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 기사나 마법사들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정말 이례적으로, 현역에 버금가는 실력을 가진 학생들이 출몰하긴 하지만, 그나마도 평범한 현역들에 비교한 것이다.
현역들 중에서도 전설로 남은 황실 최상위 인력들은… 그야말로 급이 다르다. 기사단장 다이룩스나, 황실 마법학회장 쯤 되는 자가 튀어나오면 학생들 선에선 절대 상대가 안된다.
물론, 루시 메이릴은 논외로 쳤을 때의 이야기다.
“그 때를 노려서 수립해놓은 계획이 좀 있어요. 아직은 구체화는 안됐지만, 셀라하 황녀의 입지에 의미 있는 타격을 줄 수 있을 방법이 보일 것 같아요.”
에드 로스테일러 입장에서는 말릴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페르시카 황녀는 회유했고, 페니아 황녀는 애초에 아군이다.
벨브로크가 강림할 때, 황실군을 아켄섬에 주둔 시킬 수 있는 상황이 목적인 그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변수인 셀라하 황녀만 어떻게든 치워버리면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
그 마지막 변수를 제거하는 작업이라면… 오히려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줘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래. 고민되는 거 있으면 바로 말하고. 되도록 다 도와줄테니까.”
“고민… 고민… 말이죠…”
“…역시 뭔가 고민이 있는거냐? 너 아까부터 표정이 계속 울상이야.”
“…저 진짜 죽을 것 같아요, 오라버니…”
타냐는 결국 죽상을 쓴 채 참지 못하고 이야기했다.
“가주로서 가문 책임지는 것도 고생스러운데, 학생회장 직위는 좀 내려놓고 싶어서…”
드디어 말했다…
타냐는 큰 일을 해냈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고서는, 에드에게 똑바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대로 가다가 저 정말 과로사 할지도 몰라요… 저… 학생회장 그만하고 싶어요…”
“…”
“우흑… 그런데… 좀 막나가 보려고 해도 이상한 방식으로 해석해서, 지지 세력만 결집되고, 어디에 시비를 좀 걸어보려 해도 다 에드 오라버니가 선수쳐놨고…”
“…”
“사실 가주 일도 지쳤어요. 저번에도 말씀 드렸잖아요. 그냥 흘려들으신 것 같지만, 저 나름대로 진심이었단 말이에요… 가문도 어느 정도 안정 되면… 그냥… 은퇴하고 싶어요… 으흑…”
그러더니, 타냐는 갑작스럽게 에드의 양손을 꽉 잡아쥐고 간절히 부탁하듯 이야기 했다.
“이, 이렇게 된 거… 일 다 마무리 되면 에드 오라버니가 제 험담 좀 뿌리고 다녀주시면 안 돼요? 그 뭐냐… 로스테일러 저택에 있었을 때 성격이 고약했다던가 그런 거 있잖아요! 실제로 1학기 때는 오라버니한테 죽일듯이 굴었으니까, 나름 근거로 삼을만한 장면도 몇 있을 거 아니에요!”
“하나 있는 동생 험담이나 하고 다니면, 일단 네 이미지 이전에 내 이미지가 영 나빠지지 않을까?”
“저 같은 거 하나 못난 놈으로 몰아간다고 뭐 얼마나 타격이 있겠어요!”
“너… 자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너는 학사 내부에서도 지지세력이 상당하다… 슬슬 이쯤되면 나한테도 부담이야.”
“왜! 왜! 대체 왜 그런 건데요!”
“…”
에드는 잠시간 시선을 내리깔다가, 멋쩍은 듯이 이야기했다.
“넌 이미 학사 쪽과 상회 쪽, 그리고 교단 쪽과 황족 숙소까지 싹 다 통섭해서 지지를 받는 입장이잖아. 실베니아 역사상 처음이라고 하지… 사실상 학사 입장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지위에 올라온거야.”
“…”
“지금 네가 회장을 관두면, 학사 쪽에서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테니까… 그렇게 놔두진 않을테지…”
타냐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에드의 양손을 놓았다. 그리고 예쁘게 정리된 금발 머리칼이 흐트러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양손으로 머리를 휙휙 휘저어보였다.
“그… 그러면…! 퇴로가 없잖아요! 그럼 전 대체 어떻게…!”
― 쾅!
그 순간, 소회의실의 문이 보란 듯이 열렸다.
안에는 타냐를 기다리고 있는 온갖 귀족 자제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오셨습니까!!! 타냐 회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충성어린 어조로 경의를 담아 소리치는 학생회 위원들. 허리를 90도로 꺾고 깍듯이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가운데 자리만 보란 듯이 비어있다. 다들 경의를 담아 오로지 타냐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와중이다.
타냐는 눈물이 핑 도는 것이 느껴졌다.
Enrique Carvajal
When eres Tanya: a veces, cuando planeas una cosa, te sale otra completamente diferente
Rip Tanya X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