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08)
최연소 은퇴 희망자 (3)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은 건, 앞으로 제국 전체에 일어날 권력 분쟁에서 저희 실베니아를 최대한 지켜내기 위함이에요.”
학생회 비서들의 보좌를 받으며 상석에 앉은 타냐는 본론부터 꺼내들었다.
애초에 빙빙 돌려 말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현재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는 타냐는 군더더기 없는 일처리와 허물 없는 의견 개진으로 유명했다.
이름난 귀족들을 두루 모아놓은 이 자리에서도, 쓸 데 없는 안부나 근황 이야기 따위로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는다.
할 말만 하고 헤어집시다. 그런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 오히려 타냐의 허례허식 없는 기질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듯 했다.
타냐 본인은 빨리 끝내고 일하러 돌아가고 싶었을 뿐일테지만.
“특히, 황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황권 분쟁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의 의견이 모두 갈라질 수 밖에 없는 걸 인정해요. 각자의 가문에서 지지하는 분이 다르다면 여러분은 그 뜻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니까요.”
의견은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그 의견의 선택권이 그들에게 없다는 것이 문제다.
타냐는 잠시 말을 멈추고 소회의실에 둥그렇게 모여 앉은 학생들을 보았다. 다들 듬직하고 굳건한 모습이지만, 아직은 배움의 땅에서 학업에 임하고 있을 뿐인 후계자들이다.
어떤 황녀를 지지하냐는 이들이 아니라, 이들이 속한 가문의 가주들이 정하는 것이다.
어른들이 정해둔 지지에 따라 그 슬하에 있는 학생들 또한 행동방침이 달라진다.
로스테일러 가문, 블룸리버 가문, 캘러모어 가문은 페니아 황녀 쪽으로 붙었다.
이슬란 가문, 로킨 용병대, 지니페일 가문, 레이거스 가문, 에니스턴 가문은 페르시카 황녀 쪽으로 붙었고, 엘펠란 가문, 화이트펠츠 가문, 노튼데일 가문은 셀라하 황녀 쪽으로 붙었다.
타냐 나름대로 각고의 노력을 펼쳤고, 일부는 회유했다고까지 생각했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핵심 귀족가문은 세갈래로 갈라지고 말았다. 사실 당연한 귀결이었다.
앞으로 일어날 권력 분쟁에서, 이들은 완전히 다른 쪽에 베팅한 세력들인 것이다.
당연히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크레스톨 대축제 기간에 있을 통합 대련회 때는 학생들 간의 대련 결과가 직접적으로 가문의 세력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후계자의 역량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뽐낼 수 있는 통합 대련회는, 귀족들 입장에서는 창창한 후계 구도를 뽐낼 수 있는 기회다.
“억지로 사이좋게 지내란 말은 안할게요. 다만, 권력 분쟁으로 인한 여파로 실베니아의 학생들까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상황은 원하지 않아요.”
침묵한 일동 사이에서 타냐는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학생이잖아요. 학생의 본분만을 다 하면 되는 거죠.”
격화되는 세력 갈등을 완전히 봉합할 수는 없다. 그래도 최소화 시키기 위한 노력은 한다.
그게 타냐의 방침이었다.
“동의합니다. 실베니아는 누가 황제가 되든, 학업의 땅으로서 명맥을 이어가야만 합니다.”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여서 동의한 것은 2학년 마법부의 직스 에펠슈타인이었다.
학생회 소속이자, 실질적으로 이슬란 가문의 대리자에 가깝기도 했다. 당연히 타냐의 의견에 호의적이므로,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여조를 만들고자 먼저 목소리를 드높인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황권 분쟁에 대한 갈등을 실베니아까지 끌고 오는 학생들이 없도록 단호하게 주의를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동의해요…”
직스에 이어서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동의의 뜻을 전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다지 춥지도 않은데, 어깨에 두꺼운 숄을 덧대고 많이 초췌해진 모습으로 앉아있는 소녀. 엘카 이슬란이었다.
북방 지대에 위치한 이슬란 가문 소속이자, 직스와 함께 실베니아에 다니고 있는 사서였다.
예전에 에드와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인상이 안 좋다. 지병인 천식이 심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학생들도 두루 알고 있었다.
“엘카. 무리해서 말 안해도 괜찮아.”
“아니야… 어쨌든, 이슬란 가문은 페르시카 황녀님의 방침을 따르기로 공포했지만… 다른 가문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존중은 할 거에요.”
엘카는 그렇게 빙그레 웃으며, 타냐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한쪽 구석에서 열심히 경청하고 있던 4학년 연금부 수석, 도로시 화이트펠츠 또한 동의의 의견을 얹었다.
“맞아요. 학생들끼리라도 뭉쳐야죠. 비록 황권 분쟁은 어떻게 결말이 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결말이 나든 간에 저희끼리는 화합하는 방향으로…”
“하지만, 저희는 현실을 먼저 봐야할지도 모릅니다. 누님.”
도로시 화이트펠츠의 말을 중간에서 자른 건, 1학년 마법부에 소속된 요제프 화이트펠츠였다. 그녀의 남동생이자, 최연소 토그 마력학회 연구원 출신이고, 철이 들기도 전에 중위 마법을 구사했다는 영재였다.
앞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겨 올리고, 남는 머리칼은 뒤꽁지로 묶은 그는 꽤나 학자다운 외관을 하고 있었다.
“뭐…? 요제프… 또 내 말에 반대하는 거야…?”
“무작정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저희는 몇 년이면 이 실베니아에 졸업하는 신분입니다. 반면, 각자의 가문 구성원으로서는 평생을 살아가야 하고요.”
요제프의 의견은 타당했다. 모두가 듣는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태도에도 그 확신이 서려있었다.
“가문의 방침이냐, 실베니아의 화합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가문 쪽으로 쏠리는 것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
“화이트펠츠 가문은 그렇게까지 저희한테 방침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만, 다른 가문도 그러리란 법은 없습니다. 그럼 그 학생들한테까지 가문의 방침을 무시하고, 무작정 실베니아의 화합을 위해서만 협조하라고 요구하는 건… 오히려 지나친 요구가 될지도 모릅니다.”
조리있게 말하는 요제프의 말에 논리적인 하자는 없다.
두루뭉술하게 화합을 이야기하는 이 자리에서 직접적으로 현실을 꼬집는 요제프의 말. 꽤나 소신어린 발언이었지만 불편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엘펠란 가문에서 내 의견을 존중해줄지는 잘 모르겠군.”
엄청난 거구에 건틀릿을 낀 4학년 전투부 수석, 다이크 엘펠란이 그 곰처럼 웅장한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나는 타냐 회장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싶지만, 가주님께서 마음먹고 내게 다른 지지세력에 속한 가문들과 거리를 두라고 명하시면… 솔직히 어디까지 거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동의를 표한건 마찬가지로 4학년 소속인 트레이시아나 블룸리버다.
애초에 그녀는 이미 가주 시니르 블룸리버의 방침대로, 완전히 페니아 황녀의 세력에 섞여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이 자리에선 누구보다도 세력전에 진심인 소녀다. 졸업 이후의 삶까지도 생각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로스테일러 가문에 최대한 가깝게 붙기 위해 에드 로스테일러와의 접점을 유지하고 있으며, 학생회에도 나름 호의적인 편이다. 그런 행동 방침 또한 전부 가문의 방침을 따라간 것이다.
“우리 4학년들은 졸업이 머지 않았거든. 학생 신분으로 있어봐야 이제 앞으로 몇 개월인데, 가문 방침을 무시하라는 것도 무리야.”
트레이시아나는 긴 머리칼의 끝을 슥슥 훑어내리며 말했다.
“최대한 화합하기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란 거지.”
“저는 가문의 꼭두각시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요. 트레이시아나 선배님.”
그 말에 정면으로 대치한 것은, 아까부터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는 1학년 마법부 소속 에이그 로킨이었다.
짧게 깎은 머리와 날렵해 보이는 인상. 요제프 화이트펠츠의 라이벌로서 1학년 사이에선 유명한 이다. 4학년 대선배인 트레이시아나 앞에서도 기죽는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뭐?”
“저희 로킨 용병대는 오히려 집단에 휘둘려서 판단을 그르치는 소신 없는 자를 멀리 하라 가르치거든요. 세상은 결국 제 스스로 판단해서 살아가는 것인데, 누구를 따르고 무엇을 할지조차 가문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과연 옳은가 싶네요~.”
건방진 태도에 트레이시아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럼에도 에이그는 아랑곳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희 로킨 용병대는 공식적으로 페르시카 황녀님을 지지했지만,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진 않아요.”
“에이그, 너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환경에 처한 사람들한테까지 소신을 요구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냐?”
“글쎄다, 요제프. 다른 사람이 처한 환경까지 내가 고려해야만 하나? 난 내 소신만 관철하면 될 뿐이야. 남의 사정에만 휘둘려 살다가는 내 몫도 못 챙기는 법이고.”
에이그는 피식 웃으면서 바톤을 다른 쪽으로 넘겼다.
“제 말이 틀립니까, 클라라 선배님?”
“뭐? 나?”
“누구보다도 다니엘헤임 가문의 뜻에 회의적이신 분 아니십니까? 저는 그 소신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소회의실 구석에서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녀.
날렵해 보이는 숏컷 머리와 앙증맞게 박힌 주근깨. 다니엘헤임 자작가의 장녀이자, 예니카 페일로버의 절친한 친구인 클라라 다니엘헤임이 당황하며 대답했다.
이런 정치적인 대담이 오고가는 자리는 끔찍이 싫어하는 클라라다. 적당히 끝날 때만을 기다리며 손톱 끝을 꾹꾹 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우리 가문의 꼰대들이 정말 싫지만… 너 같이 건방진 애들도 싫어. 친한 척 하지 마.”
“으윽…”
에이그는 아프다는 듯이 인상을 구겨보았지만, 장난스러운 태도는 여전했다.
“뭐, 이 자리에는 대단한 귀족 나으리께서 많이 계시니까. 저 같은 용병대 출신이 의견을 개진할 만한 자리는 아니겠죠.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계속 건방진 태도만 유지할 거면 그냥 나가. 에이그.”
의외로 그런 에이그를 걸고 넘어진 것은 1학년 전투부 수석, 웨이드 캘러모어였다.
희끗한 머리칼은 여전했다. 눈동자 또한 예전에 비해서 꽤나 차분해져 있었다.
“너만 소신을 관철할 줄 아는 게 아니야. 그리고…”
웨이드는 말을 쭉 이어가려다가, 시선을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1학년 연금부 소속, 델루스 아인스헤븐이 조용히 앉아있다.
아인스헤븐 남작가는 제국 남부의 연금술 가문 중에서도 꽤나 이름을 날리는 곳이다. 뭐라 한 마디 할법도 하건만, 장발을 늘어뜨린 델루스라는 소년은 가만히 앉아서 지그시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침묵하고 있는 자들 중에서도 생각이 있는 자들이 있다는 걸 무시하지 마.”
웨이드는 거기까지만 이야기 하고, 다시금 학생들의 눈치를 보았다.
일동 침묵.
잠시간 학생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오갔다.
“어, 어쨌든! 나도 쓸 데 없이 싸우지 말자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 우리끼리 싸워서 뭐하겠어!”
그냥 남들이랑 갈등하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고 무서운 클레비어스였다. 그냥 쓸 데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엘비라는 또 동의하지 않는 듯 했다.
시약병들을 이리저리 만지며 분류하고 있던 엘비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내 소신을 관철하는 편이야. 타냐 회장님한테는 미안하게 됐지만, 학사가 더 중요하냐 에니스턴 가문이 더 중요하냐 묻는다면… 나는 에니스턴 가문의 손을 들래.”
“뭐, 뭐엇…!”
“네가 그렇게 놀랄 일이야, 클레비어스?”
“에니스턴 가문은 노튼데일 가문이랑 다른 세력을 지지했잖아!”
“학사의 화합이랑, 너랑 나의 화합은 완전히 다른 문제잖아. 멍청한 클레비어스.”
눈을 가늘게 뜨고 클레비어스의 양볼을 쭉쭉 잡아당기던 엘비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난 에니스턴 가문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으면, 가만히 앉아 있진 않을거야.”
엘비라 에니스턴의 그 선언에 좌중엔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일부는 그 의견에 동조하고 있고, 일부는 그럼에도 쓸 데 없는 마찰은 피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양 측 어느 의견에도 타당성이 있다. 사실 집단을 이끄는 입장에서는 가장 머리 아픈 상황이었다.
“이제 적당히 하세요. 후우…”
상석에 앉아 있던 타냐가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덮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일제히 자기 의견 개진을 멈추고 가만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타냐는 그 모습을 보며, 아련한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이 상황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건 학생회장 자리에 앉아 있는 타냐 로스테일러다.
그녀가 중심을 꽉 잡고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세갈래로 나뉘어져 큰 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타냐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 지금 시점의 학사에 존재할 리가 없다.
학생회장은,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
타냐는 울고 싶었다.
*자작나무로 조잡하게 만들어 본 활에 화살을 끼워서 발사해보았다.
쌔액 거리는 소리와 함께 캠프를 가로질러서 그 옆 느티나무에 탁 하고 박혔다. 깔끔하게 박힌 화살대가 진동의 여파로 떨고 있었다.
“…”
나름 손맛은 좋지만, 만족스러운 위력이 아니다.
무엇보다 마공학용품의 힘을 이용해 부가적인 효과를 부여하거나, 아예 정령식을 박아넣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 정도 퀄리티의 활로는 어림도 없을테지만.
뭔가 획기적인 제작 요소를 추가해야만 흡족한 성능이 나올 것 같은데, 아직은 갈피를 잡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에드! 이것 봐! 짜잔!”
“…?”
화살을 갈무리하고 캠프 파이어 쪽으로 돌아오자, 예니카는 보란 듯이 에드의 교복 셔츠를 탁 펼쳐보이고 있었다.
“이것봐, 묵은 때가 다 빠졌어!”
“뭐야, 세탁하고 있었어?”
“응! 저번 방학 때 돌아오기 전에 본가에서 잿물이랑 기름을 섞어서 만든 비누를 챙겨줬거든! 이것 봐, 비누만 바꿨는데 이렇게 결과가 다르다니까. 신기하지 않아?!”
확실히 새옷 같은 느낌이 난다. 나는 짝짝 박수를 치면서, 과연 대단하다 놀랍다는 둥의 감탄사를 내뱉어주었다.
예니카는 퍽 자랑스러운지, 흠흠 거리면서 콧대를 세우고 셔츠를 보란 듯이 쫙쫙 펼쳐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캠프 파이어 옆에 앉아 턱을 쓸면서 활 시위를 다시금 슥슥 당겨보고 있었고, 예니카는 마무리된 빨래들을 슥슥 개고 있었다. 해가 저물 때 쯤에 둘이 모닥불 근처에 앉아서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는 이런 광경이 이젠 완전히 익숙해진 모양새다.
“그러고보면 크레스톨 대축제 기간이 두 달밖에 안남았네. 4년에 한 번씩만 돌아오는 제국 최대의 축제기간이라고 하니까 기대 된다…!”
“그 때 있을 통합 대련회 준비도 해야할텐데, 더 바빠질 것 같긴 하네.”
“응. 그래도 너무 신나! 퓰란의 토렌 마을은 너무 변방이라서 이런 대축제 기간에도 별 일이 없었거든. 기껏해봐야 마을 사람들끼리 음식을 좀 나눠먹는 것 뿐이려나… 그런 건 평소에도 하고 있는데 말야…”
예니카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웃어보였다. 실베니아에 와서 처음으로 겪는 축제인 것이다. 투박한 산골 생활에서 벗어난 것이 본격적으로 실감 날테니, 신날만도 했다.
“요즘 학사 분위기가 안 좋잖아. 에드가 오늘 갔다왔다던 학생 회동도 분위기가 날이 서있었다면서?”
“응. 요즘 귀족가 후계자들 사이에 도는 분위기가 썩 좋진 않지.”
“그래서… 이번 축제 기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좀 풀어졌으면 좋겠다. 헤헤.”
예니카는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잘 정리된 빨래들을 슥슥 쌓아올렸다.
나는 단검으로 활대의 끝을 슬금슬금 깎아내면서, 다시금 손잡이 부분을 슥 잡고 당겨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분쟁이 끝나야 학사 분위기도 예전으로 돌아올텐데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옆에 와 앉아 있는 소년이 있기에, 나도 예니카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류 한 뭉치를 안아든 채로, 모닥불 근처에서 익어가던 돼지 꼬치구이를 하나 집어든 직스가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
“오, 간이 잘 배어 있군요. 예니카 선배님 요리 솜씨가 날이 갈수록 좋아지십니다. 이 정도면 돈 받고 팔아도 되는 퀄리티 아닙니까?”
“응? 그래? 에드도 요즘 그렇게 말하던데, 헤헤…”
그 와중에 칭찬이 기분이 좋다는 듯이 베시시 웃는 모습은 참으로 예니카 답다고 할 수 있겠다.
“…그게 아니라, 직스 언제부터 와 있었어?”
“두 분 오붓하게 대화하시는 거 방해하는 것도 좀 그래서, 대충 불가에 앉아 있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그… 그래…? 그래두 왔으면 왔다고 이야기 하면 되는데…”
직스는 꼬치구이를 입에 물고서는, 서류 더미를 고쳐 안더니 대충 캠프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그냥… 학사 여기저기를 좀 돌고 있었습니다. 학생회 일 관련해서요.”
“학사 여기저기 도는 거랑 학생회 일이랑은 무슨 상관인데?”
“뭐… 순찰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쨌든, 이 쪽은 별 이상이 없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직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우물거리는 입을 멈추지 않은 채로 이야기 했다.
“아, 맞다. 에드 선배님. 다다음달에 있을 크레스톨 대축제 기간의 통합 대련회 말입니다. 각 학년 수석 간의 대련도 있을 예정입니다. 에드 선배님이 현 시점에선 3학년 수석이시니, 4학년 수석과의 대련이 잡힐 것 같습니다.”
“…그러냐.”
“예, 아마 황실 쪽 사람들이 다 방문한 시점에, 4학년 전투부 수석이신 다이크 선배님과 대련장에 서실 것 같습니다.”
다이크 엘펠란.
칼레이드 교수와의 학기말 시험에서, 마지막에 난입해 에드를 지켜주려 했던 그 곰같은 남자였다.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 주먹 한 방 한 방에 서린 묵직한 파괴력.
엘펠란 가문의 권왕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강인하고 호쾌한 스타일을 가진 전사였다.
“쉬운 상대는 아닙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 학년의 수석자리를 차지한 사람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학년이고요.”
“나도 대충 그 선배의 전력은 알고 있다.”
“네. 거기다가, 엘펠란 가문은 공식적으로 셀라하 황녀님을 지지한 곳이니까… 셀라하 황녀님이 바로 코앞에서 지켜보는 대련 현장에서 다이크 선배님이 패배하는 걸 허락하질 않을 겁니다.”
직스는 꼬치구이의 마지막 조각을 휙 베어물고는 말했다.
“다이크 선배님도 아마 진심으로 전력을 다하겠지요. 작정하고 주먹을 내지르면 돌벽도 박살내버리는 사람입니다. 아마 단 한 대만 허용해도… 바로 의무실 행입니다.”
“그래. 조언 고맙다.”
“아닙니다. 그럼 이만.”
직스는 꼬치구이 잘 먹었다고 꾸벅 인사를 보내고는, 다시금 수풀 사이로 스윽 들어갔다.
직스는 그렇게 수풀 사이로 나아가면서도, 뭔가 찜찜하다는 듯이 계속 캠프를 돌아보았지만… 이윽고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제 갈 길을 휙 나아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직스는 왜 온 걸까?”
“글쎄다… 학생회 업무야 워낙 광범위 하니까, 나름 사정이 있었겠지. 그나저나… 빨래 줘라, 내가 가져다 놓을테니까.”
“응? 괜찮아. 에드는 일 계속 봐. 어차피 내 것두 정리해야 돼.”
“아니, 뒷정리까지 부탁하는 것도 좀 미안한 일이잖아.”
나는 예니카의 무릎 위에 올라와 있던 빨랫감들을 휙 뺏어들어서, 오두막 쪽으로 슥슥 걸어갔다.
이제 막 공사가 완료된 오두막은 겉으로 보기에는 웅장하지만, 내부는 아직 미약하다.
기본적인 가구 배치는 끝이 났지만 그야말로 기본적인 가구 배치일 뿐이다.
이전에 쓰던 자그마한 오두막에서, 얼추 세배는 공간이 넓어진 이 오두막으로 가구를 옮겨봐야 주어진 공간을 다 쓰지 못한다.
1층에 좀 더 편의성 가구를 들이고, 2층을 공방으로 개조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 했다. 그 과정에서 누락된 목공 스킬도 더 숙련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아직은 휑해 보이지만, 그래도 공간이 넓어졌다는 사실은 썩 기분이 좋다.
나는 빨랫감을 들고 구석에 박혀 있는 허름한 목재 옷장 쪽으로 나아갔다. 옷 정리 정도야 금방 끝난다.
얼른 끝내고 연습용 활 제작을 마무리 할까 싶은 생각에,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당연스럽다는 듯이 그곳에는, 교복 로브를 늘어뜨린 타냐가 자기 무릎을 안고 앉아있었다.
“…”
“…”
“…안녕하세요, 오라버니.”
별로 안녕하지 못한 것 같은데.
말문이 막혀버려서 그런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그…”
“…”
“의외로 옷장 안은 편한 법이네요. 차분하게 착 가라앉는다고 해야하나. 저번에도 옷장 안에 숨었던 적이 있는데… 중독될 것 같기도 해요. 가끔 한 번씩 들어가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이 고요 속에서 숨쉬는 기분이 의외로…. 썩 나쁘지 않거든요…”
“…”
“뭐라도…. 말을 해주세요 오라버니… 숨어 있다 걸린 건 저인데, 왜 제가 호소해야되는 거에요…”
나라고 해서… 뭐라고 말문을 터야할지 잘 모르겠다.
참으로 어려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