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12)
자제하세요, 예니카 씨 (3)
오르테 페일로버는 목축업에 관해선 이미 전문가라 불러도 문제 없을 인간이었다.
사실 퓰란의 토렌 마을 토박이 치고 소와 양에 대해 잘 모르는 인간은 없다. 사람보다 소가 훨씬 더 많은 이 마을에서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하는 놈은 제 몫 잘 하는 인간으로 취급 받을 수도 없었으니까.
그는 마을에서 이름난 일꾼이다. 그의 탄탄한 실전 근육과 탁 트인 어깨가 두드러지는 듬직한 자태. 호탕한 성격과 더불어서 굳건한 심기까지…
우유와 땔감을 사는 김에 생필품을 팔아치우려고 온 행상인 세일라가 그에게 푹 빠진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야성미 넘치고, 수컷스러운 혈기가 줄줄 흐르는 오르테 페일로버에게서 예니카 페일로버라는 참한 아가씨가 태어날 수 있던 것도… 기품 있으면서도 생활력 있는 세일라라는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르테와 세일라.
페일로버 가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부부가 꾸리고 있는 페일로버 목장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토렌 마을에서 가장 이름난 목장이다.
두 사람이 꾸리기엔 좀 큰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방학마다 올라와서 일손을 보태주는 참한 딸도 있고, 성수기에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해서 어찌저찌 잘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여보, 편지 도착한 거 식탁에 올려뒀었는데 봤어요? 글쎄, 예니카가 이번에 학생 표창을 또 받았다지 뭐에요!”
“그 실베니아에서 이 정도라니… 우리 딸… 너무 능력 있는 거 아니야…?”
“정령술은 정말 놀라운 수준까지 성장했다는데.. 예니카 어렸을 때 생각해보면 항상 고산 지대에 있는 정령들이랑 어울리곤 했잖아요? 그게 다 복선이었나봐요.”
빙긋빙긋 웃고 있는 세일라는, 마을 아낙네 복장을 하고선 팔을 걷어붙인 상태였다.
사실상 예니카의 생활력 넘치는 모습은 모두 세일라에게서 이어 받은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어느덧 3학년 2학기도 절반 넘게 지나갔는데, 겨울에 돌아오면 제대로 진수성찬을 챙겨줘야겠어요.”
“그래도… 저번처럼 또 난데없이 휙 돌아가버리는 건 아니겠지…. 우리 딸, 방학 아니면 얼굴 보기도 힘든데.”
“생각해 봤는데, 그 때는 우리가 예니카를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없었던 것 같아요. 여보.”
이미 토렌 마을에는 예니카 페일로버의 순애보에 대한 이야기가 돌만큼 돌고 있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예니카에게는 워낙 버티기 힘든 일이었던지라, 구설수에서 내려가기 전까지는 아켄섬에 피신해있을 요량이었다.
오르테와 세일라는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다음에 예니카가 오면 절대로 자극하지 말고, 천천히, 은근하게,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예니카의 그 마음 속 상대가 누구인지 반드시 캐내리라 결심한 상태였다.
아마 다음 겨울 방학에도 예니카는 조기 귀교하리란 점만큼은,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듯 했다..
그렇게 토렌 마을의 시간은 쭉쭉 흘러갔다.
시골 목축 마을답게, 계절의 변동이 아닌 이상은 매일 하루 하루가 큰 변화 없이 흘러간다.
목장 일을 하면서 슥슥 넘어가다보면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힘들다.
그래도 이따금씩 마을에 들려오는 외부 소식이 갱신되거나, 지인에게서 연락이 오거나 할 때면 오르테는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타지의 친구가 늙어가고, 자신의 꺼끌꺼글한 수염도 쑥쑥 자라나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빨라지고…
그렇게 겨울을 향해 성큼 성큼 나아가고 있는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바깥 소식만이 시간의 경과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변수인 것이다.
예니카 페일로버가 학생 표창을 받았다는 소식으로부터 일주일 뒤, 페일로버 목장에는 오르테와 세일라의 공로를 치하하는 서신이 날아들었다.
부부는 발신인을 보고 뒤집어질 뻔 했다. 클로엘 황가의 3황녀, 페니아 엘리어스 클로엘이 직접 자필로 써내려간 친서였던 것이다.
“….이건… 뭐지….”
“페.. 페니아 황녀님이 직접 친서를 써서 내려주셨…는데…”
“내용은 뭐라 적혀있는데, 세일라? 나는 이런 고풍스러운 필기체는 못 읽어…”
“그러니까… 많은 공로를 쌓은 예니카 페일로버를 치하하고… 그 아이를 잘키워낸 저희들의 공로도 인정해주는 그런 내용이네요… 여보..”
예니카가 실베니아에서 좀 날고 기는 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황녀의 친서가 날아들 줄은 몰랐다.
“예니카가… 확실히… 잘 하고 있구나…”
“로스테일러 공작가에서 뭔가 대단한 사건이 있었나봐요. 이런 변방까지 아직 소식이 날아들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런 대단한 가문의 사고를 해결하는데 예니카가 크게 일조한 모양이에요.”
“그래…? 하긴, 나도 저번에 도시에 나갔다가 비슷한 소문을 들은 적 있어. 로스테일러 공작가를 중심으로 참사가 일어났다고 하던데, 예니카가 거기에 엮여 있었단 이야기야…?”
소매를 걷어붙이고 삼각 두건을 앞머리에 눌러쓴 채 열심히 소젖을 짜던 예니카의 모습이 생각난다. 편지에 적혀있는 내용과는 영 매치가 안되는 기억이다.
오르테와 세일라는 예니카가 실베니아에서 어떤 극적인 성장을 해냈는지 잘 모른다. 시골 사람이라 그런지, 고위 정령을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특출난 것인지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자기네 딸이 지금 생각 이상으로 대 활약을 펼치고 있단 것이었다.
“그, 그래…! 예니카! 정말 잘하고 있네! 솔직히 아예 황녀님의 친서가 날아들 거란 생각은 못했지만… 정말 이름을 날리고 있는 모양이군!”
“네…! 이렇게까지 잘해줄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역시 예니카를 실베니아에 보내길 잘 한 것 같아요! 호호호!”
“나도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라서 나도 좀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 이 오르테님의 딸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너무 자랑스럽다, 예니카!”
그 다음 달, 예니카 페일로버가 페니아 황녀의 비호 아래에서 로스테일러 공작가의 가신 신분으로서 남작 직위를 수여 받았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
“…”
“…”
테이블 위에는 로스테일러 공작가의 늙은 가신이 남작 직위를 상징하는 문장이 박힌 롱소드를 올려놓고 있었다.
그 옆에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방패 인장과, 귀족가 출신이 되었음을 알리는 상훈 문서도 펼쳐져 있었다.
이 험지까지 굳이 찾아와서 소식을 알린 가신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이야기했다.
“페일로버 남작령의 큰 주인이신 오르테 페일로버님, 세일라 페일로버님을 뵙습니다.”
척봐도 호화롭고 비싸보이는 예물들이었다.
오르테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늙은 가신에게 물었다.
“이, 이게 다 뭡니까…?”
“군신의 예우에 따라 제게는 말을 놓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로스테일러 공작가 출신의 가신 넬드렉이라고 하고, 이번에 공작령 북서 쪽의 켈클론 초원과 다렌 산 쪽 영지를 하사 받은 페일로버 남작님의 하수인입니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귀가… 고장난 건가…?”
가신 넬드렉은 원래 황실 쪽에서 근무하는 로스테일러 공작가 사람을 보조하는 직위에 있던 자다. 허나 지금은 중앙 권력에서 밀려나 일단은 공작저의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남작 예니카 페일로버님의 업무를 보조하는 입장이란 이야기입니다.”
“예니카… 남작님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지금 남작님은 학업에 힘을 쓰시느라 남작령을 돌보실 수는 없기에, 학업을 마치시기 전까지 남작령 쪽 일은 제가 섭정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그래도, 큰 주인 두 분께는 직접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게 예우에 맞기에… 먼 길을 찾아 왔습니다.”
“…”
“확실히, 퓰란 지방은 공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풍경도 아름답고, 생활력도 넘치게 느껴지는 것이, 이런 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남작님께서도 그렇게 덕을 쌓으실 수 있으셨던 것이겠지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넬드렉을 보면서 오르테는 숨을 집어삼켰다.
이미 마을에는 페일로버 가문이 귀족가가 되었다는 소문이 휙휙 돌기 시작했다. 그 이름난 로스테일러 공작가와도 접점을 가지고 있고, 아예 영지까지 똑 떼어서 줬다는 소문이다.
자기 딸이지만, 속으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뭘… 하고 다니는 거냐 대체….
*
“예니카가 남작이 되었대!”
“거기다가 페니아 황녀님의 비호를 직접적으로 받게 되었다던데?”
“그. 그래…? 예전에 예니카는 페니아 황녀님 이야기를 하면 막 표정이 무서워지고 그랬는데…”
“뭐 로스테일러 공작가에서 주도적으로 책봉한 형태라고 하니까…”
“그러면 예니카는.. 이제 귀족이야…?”
“뿐만 아니라 중앙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도 생긴 거야.”
“하긴, 예니카는 착하고 순진하단 느낌이 강해서 잘 티가 안날 때가 있지만… 분명 엄청난 능력자였지!”
“와아! 같이 부대끼던 예니카가 귀족이라고?! 남작님이라고?!”
“나 나중가서 자랑할 거야. 예니카가 덱스관 쓸 때 룸메이트였어 내가!”
“나, 나도 생활동에 간식 사러 갈 때 자주 같이 다녔는데!”
평민 출신인 예니카 답게, 친구들도 대개는 소박한 평민인 경우가 많았다.
자기네들 무리에서 귀족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신기한 것인지, 이른 아침의 학사에서는 흥분에 찬 소문이 맴돌았다.
누군가가 대성하면, 축하해주는 사람도 많지만 반대로 시기와 질투를 보내는 이도 많다.
특히 예니카처럼 출신 성분이 별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뭇 야망가들의 미움을 사기도 쉽다.
그러나 예니카는 그런 법칙조차도 초월하는 인망이 있었다. 학사에서는 그 누구도 예니카의 출세에 미간을 좁히지 않았다. 애초에 그 정도 능력은 있는 인물이라는 인상이었다.
사실 실베니아에는 갓 작위를 받은 남작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보일 정도로 출신이 고귀한 자들이 많았다. 그러니 이 정도는 예니카의 지인들 사이의 경사 정도로 끝날 일이었다.
다만, 예니카 본인에게는 일생일대의 대사건이었다.
“에드… 나 귀족 못하겠어…”
학사동 원소학 교실 구석에서 시무룩한 얼굴로 커다란 지팡이를 안아든 채 울상이 된 예니카의 모습.
“…왜 울상이야, 예니카.”
“처음에는 기뻤는데, 뭔가… 영지가 어쨌니.. 가신들 관리가 어쨌니… 제왕학이랑 용인술 같은 걸 익혀야된다고 생각하니까 머리에 과부하가 오기 시작했어…”
로스테일러 공작가 휘하의 페일로버 남작 가문.
겉보기에는 군신의 관계에 있지만, 사실은 그냥 친구 관계나 다름 없는 입장이었다.
본인의 능력만으로 자수성가해서, 그 인정을 받아 이름을 날리는 정령사 예니카 페일로버.
로스테일러 공작저의 참극에서 수많은 귀족들을 구해낸 공로와, 어린 나이에 온전한 최고위 정령을 불러낸 전적까지.
평민 출신으로 시작해 능력만으로 출세가도를 달린 인물. 그야말로 페니아 황녀 측의 얼굴로는 딱 좋은 인선이었다.
“그… 귀족다운 언행이란 게 대체 뭐야…?!”
장소는 교수동 원소학 수업장이었다.
예니카와 같은 A반 소속이 된 나는, 마법부의 핵심 커리큘럼까지도 모두 예니카와 함께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 덕에 칼레이드 교수의 원소학 심화 수업까지도 함께 참석하는 입장이 되었다. 원소 마법에 뜻을 두고 있는 학생이라면 모두 꿈을 꾸는 자리다.
수업 시작되기 전, 죽상이 되어 있는 예니카를 보면서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런 게… 중요한가…?”
“중요하지! 갑자기 귀족이 된 뒤로는 기품 있는 여귀족들의 기록을 도서관에서 찾아봤거든… 클레인 가문의 여공작 레스티나님이나, 델테르기스 여백작, 블룸리버 가문의 가주 시니르, 그리고 로스테일러 가문의 타냐나 헬스턴 지방의 박쥐 백작까지… 다들 하나 같이 귀족답고 멋진 사람들이잖아!”
예니카는 제 손을 모아쥐고 곁눈질을 하면서 물었다.
“그런데… 나 아무것도 모르겠어! 저번에 생활동에 갔다가 평민 주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주스를 쏟은 적이 있는데, 내가 걸레를 집어 들어서 닦으려고 하니까 주인이 뒤집어질 뻔 했어.”
“네가 직접 닦을 필요는 없지. 그냥 가게 주인한테 맡기면 되잖아.”
“내가 쏟았는데 내가 닦아야지! 그리고 그저께에는 1학년 평민 후배가 길을 가다 넘어져서 내 스커트 끝자락에 흙먼지가 묻었는데, 갑자기 엎드려서 사죄를 했단 말야! 스커트 정도는 그냥 빨면 되잖아!”
확실히, 배움의 미덕이 더 중요한 곳이라곤 하지만 귀족 학생과 평민 학생 사이의 간극이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다.
자연스럽게 평민은 평민들끼리, 귀족은 귀족들끼리 어울리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신분 차이가 막대한 클라라, 아니스 같은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던 예니카가 별종이었던 것이다.
“에, 에드도 평소엔 이런 느낌이야…? 나 귀족으로 산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
“그 정도까진 아니긴 해. 애초에 나는 한 번 파문 당해서 바닥 찍어본 적이 있고, 학사 내에서 여론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 길었잖아. 근데 예니카 너는 학사 안에서만큼은 이름을 날리니까, 유독 더 심한 건 있겠지.”
“그,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배려 받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 애초에 이 실베니아에서 귀족이라고 다 배려 받는 건 아니야.”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예니카는 주눅이 든 채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귀족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뭔 줄 알아?”
“뭔데?”
“자제 좀 하세요…”
아, 확실히 그럴만하다.
예니카는 사소한 일 하나 하나까지 자기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주스를 쏟았던 사건이야 사소한 일일지 몰라도, 애당초 근본적으로 온갖 잡일까지 직접 나서서 하는 타입이다.
벨 마이아가 메이드 장이 된 뒤로는 행정직으로 빠져서 불만이 쌓인 것처럼, 예니카는 귀족이라는 간판이 달린 것 만으로도 행동에 제약이 걸리는 셈이었다.
“귀족다워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귀족처럼 웃어볼까.”
“귀족처럼 웃는 건 또 뭔데…”
“으, 으음… 이, 이렇게… 손등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오호호… 오호호호호…!”
“…”
내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자, 예니카는 등줄기가 휙 달아올랐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이런 걸로 귀족다워진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래도, 귀족되서 마냥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야. 그래봐야 영지 하사 받은지 일주일도 채 안지났지만…”
“좋은 일도 있었어?”
“어떤 일이 있었다기보단… 응… 에드의 입장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된 느낌이야.”
그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다.
예니카는 그런 내 반응이 오히려 즐겁다는 듯이, 홍조가 가득하던 얼굴을 수습하고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웃었다.
“에드는 평생을 귀족으로 살았잖아.”
“아닌 시절도 있었지. 사실 밑바닥 한 번 찍었을 때가 제일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응. 그래도 말야, 나는 에드 옆에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좀 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웅성거리는 학생들 사이에서… 예니카는 책상에 양팔을 휙 얹은 채 이야기 했다.
“에드는 이런 무게 속에서 살았구나.”
“…”
“물론 공작과 남작의 차이는 그 무게감부터가 다르지만 말야. 비슷하게라도 느껴볼 수 있었어.”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할만한 것도 아닌데… 그냥 닥친 상황대로 살았을 뿐이니까.”
그러나 예니카는 고개를 가로젓고 이야기한다.
“나는 가끔 에드가 혼자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단 말야. 나는 절대로 이해 못할 고민이 잔뜩 있구나. 하긴, 사는 세계가 다르니까 어쩔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을 했어?”
“실제로 사실이잖아. 근데, 지금은 그래도 그 가슴이 헛헛한 기분이 좀 덜해.”
예니카는 베시시 웃으면서 자기 팔뚝 언저리를 멋쩍은 듯이 슥슥 만졌다.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야. 여전히 에드는 아득하게 높은 곳에 있지만 말야.”
헤헤― 하고 넋이 빠진듯한 웃음은 귀족이 되었든, 평민 신분이든 변함이 없었다.
나는 예니카 페일로버가 가문 하나를 이끄는 귀족가의 가주가 되는 미래가 잘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고해서 또 걱정이 되진 않았지만…
뭐, 어쨌든 잘 헤쳐나갈 것이다.
*[ 마법 능력 상세 ]
등급 : 능숙한 마법학도 전문 분야 : 원소/정령/성위 공통 마법 :
빠른 캐스팅 Lv 14
마나 감지 Lv 15 불 원소 마법 :
발화 Lv 18
일점폭발 Lv 6 바람 원소 마법 :
바람 칼날 Lv 16 정령계 마법 :
정령 감응 Lv 18
정령 이해 Lv 18
정령 현현 Lv 13
감각 공유 Lv 13 감응 단계 : 8 정령식 효율 : 완벽함 고유 부여 스킬 : 화복의 가호 (일시적 화염 면역 폭증) 폭성 (하위 폭발 마법)
불 마법 능력 증대 감응 단계 : 5 정령식 효율 : 매우 좋음 고유 부여 스킬 : 수사의 가호 ( 일시적 물리 공격 면역 ) 수원 발현 (하위 물 마법)
물 마법 능력 증대 감응 단계 : 6 정령식 효율 : 보통 고유 부여 스킬 : 풍랑의 가호 (주기적으로 피해 무력화) 상승 기류 (중위 바람 마법)
바람 마법 능력 증대 성위 마법 :
성위계 마력 발현 Lv 6
성질 변환 Lv 4
사망 면역 Lv 0
시간 감옥 Lv 1
단거리 공간 이동 Lv 0
강제 결집 Lv 2
환시 발현 Lv 0
현혹 Lv 1
“고위 원소 마법을 가장 빠르게 익히는 법은, 그냥 많이 쳐맞아 보는 거다.”
칼레이드 교수의 원소학 수업은 언제나 빠르게 마무리 된다. 애초에 본인이 가르치는 데에 그렇게 큰 뜻을 두고 있지 않은 탓이다.
허나, 전쟁영웅이자 이름난 마법사 ‘무법자 칼레이드’의 수업이다.
제 아무리 귀찮다는 듯이 툭툭 던지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이론 교수들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그 실전성부터가 달랐다.
코헬톤 무법지대에서 몇 년을 떠돌며 쌓아온 실전 지식들은… 학술가들에게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게 한참을 수업하다 마무리 된 뒤, 칼레이드 교수는 나를 수업장에 따로 남겨둔 채 이야기했다.
“지금 3학년 수준을 보건대, 제대로 고위 원소 마법을 익힐만한 놈은 너 밖에 없거든. 에드 로스테일러. 그러니 속성으로 가르쳐주마.”
“쳐맞아 봐야 빨리 배운다는 말씀은 혹시…”
“그래, 널 뒤지게 팰 생각이다. 고위 원소 마법으로 말이다. 너라면 죽거나 다치진 않겠지.”
내가 어이 없다는 듯이 칼레이드 교수를 쳐다보고 있짜, 그는 피식 웃으면서 연초를 피워 올렸다.
학생이 많은 수업시간 때는 차마 불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위 원소 마법을 쳐맞는 경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제 아무리 이름난 마법사라 할지라도 몇 발 쏘면 지쳐서 나가 떨어지는 게 고위 마법이다. 괜히 고위 마법 하나만 익히고 나가도 실베니아 마법부 최고의 영재 소리를 듣는 게 아니란 말이다.”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긴 한데… 그래도 직접 맞으면서 배우라는 건 너무 과격한 거 아닙니까…?”
“내가 다 해보고 말하는 거야. 마력 효율 이론을 체화시키고, 중급 마법의 사용 감각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라는… 그 잉크쟁이들 말 믿지 마. 난 너 같은 학생들을 잘 알아. 어디까지 소화 가능하고, 어디까지 감당 가능한 놈인지도 척 보면 척이지.”
칼레이드 교수는 면도를 하지 않은 것인지, 쑥쑥 튀어나와 있는 잔수염들을 제 손가락으로 뽑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도 하루 몇 발 쏘면 지치는 게 고위 마법이다. 그래도 힘을 다해서 쭉쭉 날려줄테니까, 최대한 피하고 대처하다보면 마력 흐름이나 사용 방식이 눈에 보일 거다.”
“방심하면 직격타 맞고 세상 하직하는 거 아닙니까?”
“네 실력은 나도 잘 안다. 그럴 실력 아니니까 하는 말이야. 하루에 적어도 대여섯 번은 상대해봐야 빨리 는다.”
그렇게 말하더니, 칼레이드 교수가 대충 걸치고 있는 백의가 펄럭대기 시작했다.
“너도 바쁘니까 괜히 시간 써봐야 좋을 건 없겠지. 바로 간다.”
“…….”
“정통으로 직격 당하진 마라..”
칼레이드의 막대한 마력이 수업장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학생을 상대로 고위 마법을 난사해대는 선생이라니.
솔직히 말해서, 제 정신은 아니었다.
*
“에드! 괘, 괜찮아?! 마, 많이 아프지?”
“아니. 이 정도는 상관 없다. 오히려 최근 지지부진 했던 원소 마법 성장에 박차를 가한 기분이라 진짜 상쾌하구만…”
“뭐…?”
캠프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온 몸 가득한 생채기에 붕대를 감는 것이었다.
미친 듯이 수직 상승하는 마력 감응은, 마치 막혀있던 댐이 뚫리기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고위 마법’이라는 새 자극은 내 정체된 마법 실력에 윤활유를 냅다 들이 붙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원소학에 뜻을 두고 있는 입장에서는 좀 더 많이 상대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고위 마법은 정말 잘못 맞으면 일격에 주님 곁으로 승천하는 수가 있다. 그걸 학생에게 날려대는 건 말 그대로 미친놈들이나 할 짓이었다.
솔직히 칼레이드 교수의 이런 난폭한 교수법도, 일대일 수업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학생을 상대로 고위 마법을 날려댔다는 게 소문이 나면 온갖 논란 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간만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자기 근육을 찢어가면서 맨몸 운동을 해대는 헬스 중독자들이 이런 기분이었던 것일까.
몸에 격통이 올라오고, 상처가 떨리고 있음에도… 마음 속에서는 상쾌함이 밀려올라오기 시작했다.
상승한 마력 감응의 양을 보면 헛웃음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무법자 칼레이드는 미친놈이지만… 실력의 성장세라는 것을 어떻게 자극해야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인간이었다.
나는 캠프의 모닥불 안으로 부지깽이를 휙 집어던지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이 정도 속도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루시.”
오두막 뒤편으로 가서 그 이름을 불렀다.
오두막이 들러붙어 있는 느티나무의 꼭대기 부근, 굵직한 줄기에 앉아 있는 소녀가 보인다.
자그마한 발광 마법을 등불 삼아, 달 아래에서 두터운 책을 읽고 있는 백발의 소녀. 익숙한 그 얼굴을 보면 이제 오랜 벗이라도 만난 느낌이다.
“부탁이 있다.”
“…?”
고위 마법은 이름난 대마법사도 하루에 몇 번 쓰면 지쳐서 나가 떨어지는, 그 희소성이 어마어마한 마법이다.
쳐맞아봐야 는다고 이야기 한들, 일반적인 사람들은 쳐맞아볼 기회조차도 없는 것이다.
“일단 좀 내려와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