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14)
둔재들의 왕 (2)
?크레스톨 대축제 기간에는 아켄섬 및 학사 내에 외부인의 출입이 허가된다.
허나 제국 남서쪽 변방에 박힌 아켄섬까지 학사의 축제 광경을 보러 오겠다는 놈이 그리 많을 리가 없다. 대부분의 제국민들은 각자 생업을 유지하는 데 바쁘니, 각자의 거주지에서 나름대로 축제 기간을 즐길 뿐이다.
거기다 이 시기는 클로엘 제국 전체가 축제의 희열에 빠지는 시기이긴 하다만, 당연히 지역에 따라 그 열기가 다르다.
예니카의 출신지인 퓰란 같은 시골은 너무 외진 곳이라 제대로 축제의 열기가 닿지 않고, 클라리스 성녀의 성황도는 애초에 사시사철 엄숙한 분위기가 유지되는 곳이니 그리 시끌벅적하지도 않다.
그래도 한창 때의 청춘들이 모여있는 이 실베니아 아카데미는 나름 성대하게 축제를 치르는 곳인 만큼, 자훌 변경백 근처의 제국민들 중에 여유가 좀 있다 싶은 놈들은 모여드는 경향이 있다.
매일 이 실베니아에 들러붙어 살다보니 익숙해져서 실감이 나진 않지만, 적어도 클로엘 제국 남부 쪽에서는 이 학교만한 랜드마크가 없다. 멀리 있는 황도까지 직접 갈만한 여유가 없으면, 이 실베니아 아카데미에서 축제 분위기를 구가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축제를 즐길만한 여유가 있는 자들에 한해서다.
그렇기에 방문객들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부자들이거나, 귀족들이거나, 실베니아 아카데미에 재학생을 보낸 가족들이다.
“실베니아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문객 숙소는 덱스관에 마련되어 있으니, 그 쪽에 짐을 놓으시면 됩니다. 자세한 안내는 기숙사 관리인 멜리크 씨에게 받으시면 되고, 덱스관은 교사동 바깥쪽, 생활동과 맞닿은 부분으로 향하다보면 안내판이 있을겁니다.”
“헉, 고… 고맙습니다.”
오르테 페일로버는 선착장에 내려와서, 뒤따라 내려오는 아내 세일라를 받아주었다.
하루라도 쉬면 안되는 것이 목장 일이다. 두 사람의 딸인 예니카 페일로버는 이 부부가 아켄섬까지 왔을 거라고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터이다.
토렌 마을의 정 많은 마을 사람들이 부부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목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않았더라면, 이 부부는 머나먼 아켄섬까지 여행을 떠나오지는 못했을 터다.
마침 축제기간인지라 외부인의 출입도 허가되고, 근래들어 목장으로 날아오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서신들에 대한 사실도 확인하고 싶었던 시기다.
정말로 예니카 페일로버가 남작 직위에 올라 귀족이 되었다면, 부모된 입장에서는 직접 만나서 확인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침 시기도 딱 아켄섬에 들어가기 좋은 시기니… 큰 맘 먹고 아켄섬까지 달려온 것이다.
“그… 오필리스관은 어디로 가면 있습니까? 그… 학생…? 학생 맞으십니까?”
“편하게 불러 주시면 됩니다. 저는 학생회 소속 선임 행동위원 직스 에펠슈타인입니다. 지금은 선착장에서 외부 방문객 안내를 맡고 있는 입장이지만, 저 말고도 학사 돌아다니다 학생회 소속 행동위원을 보면 여러 안내를 받으실 수 있을겁니다.”
선착장 근처에 서서 서류에 이런 저런 체크를 하고 있던 직스는, 페일로버 부부를 보고서는 고개를 돌려 학사 내부 쪽을 스윽 가리켰다.
“어지간한 시설은 교수동이나 생활동 쪽으로 가시면 다 있습니다만… 오필리스관은 외부인 출입이 엄금되어 있습니다. 워낙 귀빈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고, 배타적인 분위기가 강한 곳이라서요. 오필리스관에 용무가 있으십니까?”
“으음… 내 딸이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예니카 페일로버는 본인이 오필리스관에서 쫓겨나서 숲의 오두막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전하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예니카가 오필리스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페일로버 부부는, 일단은 예니카를 만나기 위해 그 곳으로 향하고 싶었다.
“흐음… 지금은 저도 사정상 로레일관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만, 일전에는 오필리스관에서 오래 생활했었습니다. 자제분 성함 말씀해주시면 제가 오필리스관 쪽에 연락 넣어보겠습니다.”
“오, 오오… 예니카 페일로버라고 하는데… 착한 아이고, 학년 수석도 몇 번 했어서 유명하다고… 본인은… 말하던데…”
“…예니카 선배님 말입니까?”
글씨를 슥슥 써내려가던 직스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흐음… 꽤 가까운 사이입니다. 우연이군요.”
“오, 우리 예니카와 아는 사이라고?”
“예. 좋으신 분이시지요. 이런저런 사건에도 많이 엮였고요.”
그 순간, 직스를 보고 있던 오르테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척 보기에 듬직하고, 말끔해보이는 직스는 시골에서 오래 살았던 두 사람에게는 최고의 사윗감처럼 보인다.
애초에 누가 됐든 일손에 특출난 사람이 필요한 부부다. 사윗감에 목말라 있는 만큼, 예니카와 친하다는 남정네만 보면 일단 눈꼬리가 휙휙 올라가는 것이다.
직스의 양손을 휙 잡아올린 오르테가 눈에서 빛을 내며 이야기했다.
“학생은 예니카랑 많이 친한가…?!”
“…예?”
“우리 예니카가 많이 참하고 괜찮지?! 친하게 지내보니 어떻던가…?!”
직스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오르테를 쳐다보았다.
“가, 갑자기 말입니까…?”
“왜, 우리 예니카가 어디가서 꿀리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좋게 봐주신 건 감사한 일입니다만, 저는 연인이라 할만한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애초에 제가 예니카 선배님 눈에 들리도 없고요.”
“그, 그런가…? 예니카는 이 학사내에선, 남자를 고를 수 있는 입장인 건가…!”
“그런 식으로 표현하자니 굉장히 묘하긴 합니다만, 확실히 예니카 선배님을 동경하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요. 인성도 좋으시고, 실력도 출중하시고, 용모도 아리따우신 만큼 뭇 후배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긴 합니다…”
여기서 뭐라고 이야기를 더 덧댈까 하다가 직스는 입을 다물었다.
예니카의 인간관계에 대해 더 떠드는 건 단순한 오지랖일 가능성이 컸다. 예니카가 집안에서 어디까지 학사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지 알 수가 없으므로.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필리스관에서 쫓겨났단 사실도 숨기고 있는 것 같으니, 직스가 괜히 입을 놀렸다간 예니카가 곤란해 할 것만 같았다.
“그런가… 우리 예니카가…! 후후… 후후후후후후…”
흡족해하는 오르테의 표정을 보며 딱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겠다 판단했을 뿐이다. 딸 칭찬 싫어하는 부모는 없는 법이니, 기분 좋을 정도로만 이야기 해주고 나머지는 예니카 본인에게 맡기는 것이 맞다.
직스는 오르테와 세일라를 보면서 괜시리 아련한 기분이 되었다.
현재 예니카가 오필리스관을 나와 야생 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나, 작위를 받았음에도 평민 기질을 못버려서 매번 곤란해 하고 있는 모습, 거기다가 다 큰 사내와 반 쯤 동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끔찍했다.
이건 먼저 예니카를 만나서 알려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 당장 예니카가 어디에 있는지 알 방법도 없고, 가뜩이나 축제기간이라 일도 많이 밀려있는 상황이다.
“안 그래도 예니카가 학교에서 잘 하고 있는지, 요즘들어 날아오는 소식은 대체 뭔지 묻고 싶었는데… 이렇게 학교에 오자마자 예니카의 지인을 만나게 되니까 기분이 좋구만…!”
“날아오는 소식이라고 하면, 최근에 남작 작위와 영지를 받으신 것 말입니까?”
“그래…! 평생을 소젖이나 짜면서 살았는데, 갑자기 귀족 집안의 큰 어르신이라니… 이게 적응이 되어야 말이지. 듣자하니, 로스테일러 공작 가문의 도련님께서 힘을 써주셨다고 하는데, 그 쪽 가신 입장으로 들어가는 거니까 만나 뵙고 인사도 드려야지!”
“그… 그렇습니까…”
“맘에 들어하실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목장에서 가장 품질 좋은 소를 도축해서, 가장 비싼 포장을 해왔거든…”
“로스테일러 가문의 도련님인데, 이런 선물을 마음에 들어하실지는 잘 모르겠네요. 여보…”
“먹을 거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잖아, 세일라! 어쨌든 우리 입장에서는 은인과도 같은 분이시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다해야지! 이런 미천한 평민들에게 작위랑 영지를 주고,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게 해줬으니 말이야!”
오르테는 근육질 가득한 몸으로 세일라의 어깨를 꾹꾹 누르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내 시간 내서 로스테일러 공작가의 도련님과도 접견하고 싶고, 예니카랑도 만나고 싶은데… 어디랑 어디를 가면 가장 빠를 것 같나, 학생?”
둘 다 북쪽 숲의 오두막 캠프로 가시면 됩니다.
라고 차마 말할 수가 없어서… 직스는 식은 땀을 흘리며 얼버무렸다.
“지금 당장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하.. 하하하하..”
*학생 광장에서 열렸던 성대한 개막식도 끝이 났다.
학사 본부에서 교직원들이 우루루 나와서 마법을 이용해 학생 광장을 통제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장관이었다.
외부에서 들어온 방문객과 더불어, 내부 학생까지 합치면 차마 눈으로 가늠조차 못해볼 정도로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백명이 채 안되는 현장 인원으로 전부 통제하고 있는 걸 보면 과연 마법의 힘이란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학생회장 타냐가 나와서 연설을 하자 환호성이 튀어나오고, 그 다음 교장 오벨 포시어스를 대신해서 나온 부교장 레이첼의 연설도 끝이 나자 폭죽이 터져 올랐다.
이런저런 장식물이 잔뜩 붙어 있는 교수동 건물들도 평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이 때다 싶어서 장사하러 들어온 사람들의 노점이 교수동 길을 따라 즐비해 있었고, 평소엔 외부 공개가 되지 않는 실베니아 내부의 모습을 구경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껏 들떠 있었다.
학생 광장을 중심으로 학사 여기저기에 펼쳐진 무대에서는, 학사에서 초빙한 외부 예술인들이나 악단의 무대가 우수수 예정되어 있었고, 학생들끼리 꾸린 학술 발표회나 자그마한 마법 무대, 여러 가지 무투회나 경연대회들도 잔뜩 준비되어 있었다.
학사 측에서 배부한 축제 안내문을 보고 있으면 어찌나 글씨가 빼곡한지, 이걸 읽고 찾아올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수의 즐길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곳이 다 축제의 열기에 취해 있는 것만은 아니다.
학사 성당 구획 쪽은 클라리스 성녀가 주재하는 기도회가 예정되어 있다. 이런 곳까지 와서 기도회를 하고 싶은 외부인이 있나 싶은데, 클라리스 성녀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신도들에게는 큰 영광인 듯 했다.
아무래도 클라리스는 신도들과 함께 기도회를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듯 했다. 경의 받는 위치에 있는 것은 역시나 힘든 일이다.
“에드는 어쩔거야..? 결투회는 내일 모레잖아. 그 전까지는 역시 캠프 관리 하고 있을거야?”
학생 광장에서 우수수 흩어져가는 인파 사이에서, 예니카가 빙긋 웃으면서 다가왔다.
학년 별로 정렬해있었던 와중이라 그런지 꽤나 가까이에 서있었던 모양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사 분위기가 잔뜩 들뜬 축제날이라고 해서 캠프의 상태가 멀쩡하게 유지되는 건 아니다. 당면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단련할 수 있는 이 시간들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그걸 예니카 또한 잘 알고 있기에, 넌지시 묻는 것이다. 축제라고 해서 넉살 좋게 놀러다닐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좀 쉬긴 쉴 거야. 그래도 기본적인 일들은 해야지.”
“그래…? 나는 후배들이 정령학회 쪽에서 학술 발표회를 한다길래, 일단 그 쪽 참가한 다음 오후에 노점 좀 돌아보려고…!”
예니카는 쭈뼛거리면서 주변을 슬쩍 보다가, 가까이 다가와서 속삭이듯 이야기 했다.
“그럼 오후 늦게 같이 다닐래…?”
“좋지. 나도 클레어 조교수님 연구실 소속이니까. 그 쪽에도 한 번 들러야 되거든.”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예니카와 함께 다니는 것이 심적으로도 훨씬 편하므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알았다고 대답해두었다.
오전 중에는 캠프로 돌아가서 미리 해둬야 할 일을 마무리 하고, 점심께 쯤에 트릭스관에 들러서 클레어 조교수를 한 번 만난 다음, 오후 늦은 시간에는 예니카랑 노점이나 돌아다니면서 저녁거리나 사두면 될 일이다.
“다행이네. 요즘 워낙 바쁘고, 또 에드 며칠 전부터 더 조급해 보여서 걱정됐거든.”
“조급해 보인다고?”
“응… 얼마 전부터 무리하게 단련하는 것도 그렇고… 저번에 해줬던 벨브로크 이야기도 그렇고… 에드는 가면 갈수록 조급해지는 것 같아… 그래서 걱정 돼.”
예니카와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것들은 모두 공유했지만, 아직 전해주지 않은 말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축제 기간이 시작되기 전, 아일라와 모닥불에 앉아서 나누었던 이야기다.
축제를 앞두고 이렇게까지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예니카. 잠깐 옆에 앉아볼래.”
내가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자, 예니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내 옆으로 왔다.
*황실에서 예정되어 있던 일정도 끝이 나고, 슬슬 클로엘 황제와 함께 전국 일주를 다닐 시기가 되었다.
크레스톨 대축제 기간동안 제국 여기저기에 있는 큼지막한 시설들 순회를 다니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기 때문이다. 4년에 한 번씩 황제가 직접 시찰을 나간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으므로, 각지의 황실 직속 기관들은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만 하는 시기다.
호화로운 클로엘 황실의 장미궁 복도를 셀라하 황녀가 걷고 있었다.
슬슬 움직여야만 할 시기다. 긴 시간동안 클로엘 황제와 직접 다니면서 황실 직속 기관을 시찰하는 경험은, 황권 경쟁 구도에 있어서 크게 득점할 수 있는 기회다.
페니아 황녀는 실베니아에 다니고 있으므로 여건이 안되고, 페르시카 황녀는 어째서인지 황실에 남을 것을 청했다.
이런 귀중한 기회를 황실에 남아 흘려보내는 페르시카의 의중이 이해가 되질 않았으나… 당장에 닥친 일이 많아 바쁜 셀라하 황년느 차마 신경쓰지 못했다.
그렇게 복도를 가로지르며 신하들과 함께 성큼 성큼 걷고 있자니, 복도 끄트머리에서 자기 세력의 신하를 대동한 페르시카가 나타났다.
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인 것인지, 페르시카를 호위하는 병사의 수는 생각보다 적었다.
“어머, 많이 바빠보이는 구나. 페르시카.”
“셀라하 언니도 최근들어 많이 분주해지셨네요.”
서로 간에 웃음을 지으며 환담을 주고 받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호위하고 있는 병사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이제 정말 황실 경쟁 구도가 끝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클로엘 황제는 축제 기간이 끝나면, 이 지지부진한 후계자 경쟁도 끝을 낼 것이라고 은연 중에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셀라하 입장에서는 이번 시찰에 동행하는 것에 정치적인 명운을 걸었다. 함께 전국을 돌며 황제로서의 그릇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실베니아에 가신다고 하셨죠? 페니아를 만나실 수 있겠네요. 만나거든 안부 전해주세요.”
“물론이지. 같은 피가 흐르는 자매인데, 안부라도 확인할 수 있으니 참 기쁘구나.”
“많이 뻔뻔해지셨어요, 언니.”
“필요한 능력이지.”
빙긋빙긋 웃으며 말을 주고받는 자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페니아는 보란 듯이 셀라하를 적대해보였고, 페르시카 역시 셀라하와 그리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진 않는다.
페니아가 생각의 차이로 셀라하와 멀어졌다면, 페르시카는 단순히 셀라하의 세력이 너무 강대해서 멀리한 것일 뿐이다.
현재 가장 황권에 가까워졌다고 알려진 셀라하 황녀를 굳이 가까이 해서 세를 불려줄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페니아는… 완전히 ‘정리’하고 와야지… 이런 정치적인 일 말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움도 주고 말이야.”
셀라하가 웃음을 흘리며 이야기했다. 페르시카의 눈에는 그런 셀라하의 모습이 자기 힘에 취해 방탕해진 사자처럼 보였다.
“글쎄요. 페니아가 그리 쉽게 정리 당해줄지는 미지수네요. 근처에 두고 있는 인물들이 워낙… 까다로운 자들이 많아서..”
“에드 로스테일러 말이더냐?”
“어머, 역시 언니도 생각에 두고 있으셨군요.”
“글쎄… 슬슬 기울어져가는 로스테일러 가문 하나 장악 못해서 무슨 황제의 그릇을 논하겠느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콧대를 꺾어놓을 필요가 있겠어.”
가문의 위세는 단순히 작위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실베니아 아카데미 같이 배움의 미덕이 강조되는 곳은, 실력이야 말로 가장 우선되는 곳이다.
이 클로엘 황실과는 다소 다른 규칙이 돌아가는 곳이다.
“아바마마한테 보여드려야지. 나를 따르는 자들이 얼마나 격이 다른지 말이야.”
“…”
– ‘이번 결투회에 셀라하 황녀님께서 걸고 계시는 기대가 크다.’
엘펠란 가문의 가주 측에서 날아든 서신을 보고, 다이크는 미간을 찌푸렸다.
– ‘엘펠란 가문이 휘청거릴 때마다 가장 앞서서 도움을 주신 은인과도 같은 분이시다. 특히, 이번에 세력 구도상 완전히 갈라서버린 로스테일러 가문보다 실력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여드려선 절대로 안된다.’
한창 축제 분위기가 한창인 학사의 전투부 수업 참관실.
학생회 무리들을 이끌고 축제 분위기를 살피던 다이크는, 우편부가 급박하게 전달해준 서신을 받아들고는 숨을 푹 내쉬었다.
눈을 지그시 감으면 한 사내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말도 안되는 속도로 성장해서, 순식간에 3학년 마법부의 수석을 차지해버린 로스테일러 가문의 공자다.
직접 학사생활을 하면서 본 모습으로는, 실력이 출중하고 인성도 훌륭한 편이다. 별 다른 나대는 모습도 없이 자기 본분에만 충실하면서 건실하게 살아온 남자다.
가진 그릇의 크기도, 다이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장대하다.
– ‘우리 엘펠란 가문 측에서도 다이크 네 실력에 대해서는 호언 장담을 해두었다. 반드시 이번 결투회에서 우승을 취해, 모든 영예를 위대하신 셀라하 황녀님의 공덕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해두어라. 그렇게 확실하게 각인시켜 드릴 수 있다면, 적어도 우리 가문의 후일은 평안할 수 있을 것이다.’
– ‘네게 많은 것이 달려있다. 다이크. 그 동안 네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평가절하한 것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가문의 미래가 달려있는 이번 결투회에서, 꼭 성과를 내주길 바란다. 가주로서 부탁하마.’
다이크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듯이 말하지만, 꼴사납게 패배한다면 필시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올 것이다.
다이크가 이 자리에 오를 때까지 도와준 것이라고는 없는 주제에, 잘 되고 나서야 가문의 자랑으로 받드는 모습은 빈 말로도 호감을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다이크는, 조용하고 진중한 표정으로 서신을 접은 뒤 주머니 속에 넣었다.
“다이크 선배님.”
뒤따르던 전투부 소속 후배가 걱정스러운 듯한 얼굴을 보였다.
“결투회에서 패배하시면, 가문에서 쫓겨나시는 겁니까?”
“최소한 책임을 물겠지. 자기들이 면피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하니까.”
“그딴 가문… 엿이나 먹으라고 하십시오. 차라리 지금이라도…”
“말 조심해라. 벨룬.”
다이크는 진중한 목소리로 후배에게 주의를 줬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자기가 앞가림 못할 때 최소한의 거처와 생활을 보장해준 곳이었다.
썩어 빠진 곳일지언정 제 이름의 절반을 내준 곳이다. 다이크 엘펠란.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살았다.
“정치적인 이유나, 가문의 뒷배 따위는 애초에 내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럼…”
“결투가 잡혔으면 도망치지 않는다. 그냥 그것 뿐이다.”
내일, 셀라하 황녀가 아켄섬에 오고나면 그 다음 날 결투회다.
다이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인파들 사이로 섞여들어갔다.
*- ‘처음에는 선배님 말이 너무 어이 없어서, 의심이 먼저 들었어요. 그런데 한 번 머리를 식히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그런 의문이 들었어요.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애써가면서 테일리를 자극한 데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거라고요.’
캠프에 아일라 트리스가 찾아온 날, 로브를 내려쓰고 단호한 얼굴로 이야기하던 아일라 트리스.
그녀는 한창동안 무언가에 홀린 듯이 도서관을 뒤지고 있었다.
축제기간이 한참인데도 불구하고 관심도 없다는 듯이 도서관에 틀어박힌 아일라는 정말 뭔가에 씌인 듯 했다.
“커피라도 한 잔 가져다 줄까?”
“아니요… 그… 고맙습니다…”
그녀의 동료인 테일리는, 하루 종일 도서관에만 틀어박혀 있는 아일라가 걱정되어서 한 번씩 로비에 찾아와 얼굴을 보고 가곤 했다.
학사가 전부 들뜬 이런 축제기간에, 도서관에만 박혀 있을 아일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라는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 온갖 고서적들을 뒤져대고만 있었던 것이다. 바깥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관심이 없다는 듯이.
“아일라가 걱정 되니?”
그렇게 도서관 로비에서 아일라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테일리를, 엘카가 와서 위로해 주었다.
수석 사서인 엘카 이슬란은 어쨌든 학생 도서관에 상주하는 입장이다. 매일 같이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는 아일라를 지켜본지도 어언 며칠째인 것이다.
“네…? 음… 네에… 일전에 제가 고생을 좀 한 일도 있긴 한데, 저렇게까지 아일라가 급박하게 뭔가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든요. 무슨 일인지 알려주기라도 하면 걱정이 덜 할텐데…”
“분명 이유가 있겠지. 너한테 굳이 말하지 않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해. 아일라는 테일리 네 생각만 하고, 네 걱정만 하는 애잖아.”
“고맙게 생각하고는 있어요. 다만… 걱정 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아일라가 무슨 책을 그렇게 찾아대고 있는 건지 혹시 조금만 귀띔해주실 수 있나요?”
엘카는 도서관을 관리하는 입장이니, 아일라가 열람해대는 책의 공통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잠시간 고민스러운 듯한 얼굴을 하더니, 이윽고 테일리에게 남몰래 속삭여주었다.
“성위 마법. 먼 옛날 봉인된 성창룡에 대한 기록들.”
그 말을 듣고 테일리 역시 잠시동안 얼굴을 굳혔다. 테일리 또한 직스에게 들은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성창룡 벨브로크.
에드 로스테일러가 집착하다시피 할 정도로 반복해서 입에 올렸던 이야기라고, 직스 에펠슈타인이 테일리에게 일러주었다.
“그리고 대현자 실베니아에 대한 전승들을 수집하고 있어.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나봐…”
“그렇군요…”
테일리는 로비의 의자에 앉아 심각한 듯한 얼굴을 했다.
저 멀리 보이는 아일라의 표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일라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었다.
캠프에서 에드에게 건넸던 말 또한, 그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 ‘제가 알기로, 성창룡 벨브로크의 봉인을 유지해온 대현자 실베니아는 영원토록 그 봉인이 계속될 수 있도록 완벽한 성위 마법을 구현해냈어요. 시간선이 아무리 흘러가더라도, 변치 않고 벨브로크를 억제할 수 있는 영원의 법진이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던 에드의 표정이, 아직도 아일라의 기억 속에는 심각하게 자리해있다.
– ‘시간을 다루는 성위 마법의 원리가 여전히 작용한다면, 그 봉인은 절대로 쉽게 깨지지 않아요. 벨브로크의 어금니를 좀 가져다 댄다고 해서 불안정해지는, 그런 부류의 봉인이 절대 아니었을 거에요.’
대현자 실베니아에 대한 전승은 아직까지도 흘러내려오고 있다.
새하얀 백발의 머리칼을 뒤로 올려묶은, 호탕하고 발랄한 학술가였다는 소문이다.
이 세상을 사랑하고, 대륙의 역사를 흠모하여 수없이 많은 마법의 진보를 이루어낸, 모든 마법사들의 이상과도 같은 인물이다.
– ‘만약 벨브로크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인물이 있다고하면… 그 봉인을 구현해낸 사람이 아니면 말이 안돼요.’
아일라 또한, 실베니아에 대한 전승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존경하는 인물이기에, 그녀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많이 수집하기도 했다.
네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하고 있냐.
에드 로스테일러는 그 날, 아일라에게 그리 물었다.
아일라는 그런 에드의 질문에 당당히 대답한 것이다.
– ‘만약 선배님의 예언이 사실이라면… 벨브로크의 봉인은 오랜 세월에 걸쳐 미약해진 게 아니에요.’
– ‘…’
– ‘대현자 실베니아 본인이, 직접 풀어버린 거에요. 그거 말고는 가능성이 없어요.’
그녀는 역사에 기록된 희대의 위인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미 애먼 옛날에 사망한 자다.
그런 짓을 할 리도 없는 자이며, 그런 짓을 할 물리적인 여건조차도 안된다.
그러나 아일라의 표정은 변함 없이 진지했다.
그 다음 아일라에게서 튀어나온 것은…. 가정법을 동반한 질문이었다.
– ‘만약 대현자 실베니아가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단순한… 가정이지만요…’
*예니카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내가 말한 것이 영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이다. 제 아무리 내 말은 뭐든지 믿어주겠다고 한 예니카조차도, 한 방에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최종막.
벨브로크를 토벌하기 직전까지, 대현자 실베니아의 존재는 오로지 설정으로만 남아있었다.
벨브로크의 부활 또한, 긴 세월 끝에 벨브로크 스스로 봉인을 깨고 나왔다는 듯한 두루뭉술한 묘사만 남아 있었을 뿐이다.
머나먼 과거, 마법의 진보를 이루어내고, 학술가로서 이름을 날리며, 대 마법사 글록트 엘더베인을 키워내고, 이 거대한 학원을 세운… 이 모든 시나리오의 핵심을 관통하고 모든 이야기의 태초에 있었던 자.
정사에서는 이름도 얼굴도 드러내는 일조차 없이, 끝끝내 배경으로만 남아 사라진 자의 이름.
무대 뒤편의 암막 속에 가려져, 모든 이야기를 관조하고 있었던 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 자리에 앉아 있을만한 작자라곤 성위 마법의 대가, ‘대현자 실베니아’ 뿐이다.
그 사실이 각인되자, 나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만약 정말로 그녀가 벨브로크의 봉인을 부순 당사자라면…
이 세계 어딘가의 물밑에서 숨어있을 그녀를 찾아내 제압하기만 하면, 예정된 모든 시련은 마무리되는 것이다.
어떻게 수백년 전의 인물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인지, 세상의 진보를 이루어낸 위대한 위인이 왜 그런 짓을 하게 되는 건지, 아일라의 말이 사실이긴 한 것인지, 아직은 전부 미지수다.
허나 만약 그게 사실이라 한다면… 이 모든 무대를 끝낼 수 있는 방아쇠가 그곳에 있다.
그 가능성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사라지질 않았던 것이다.
이 세계에는 내가 에서는 확인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남아있다.
그것을, 파헤쳐야만 할 시간인 것이다.
Enrique Carvajal
Para los que no entendieron, Ed le contó a alya de la posible ruptura del sello del dragón de la lanza, pero como éste es imposible de romper, la única persona que podría romperlo sería su propio creador, algo que dejó atónitos no solo a alya sino también a yenika (que al parecer también escuchó la historia Ed, porque recuerden que en capítulos anteriores Ed le contó todo acerca del dragón y sus suposiciones pero no especificaron nada, así que posiblemente esa charla sea tanto de alya como de yenika) corrijan si no estoy m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