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17)
둔재들의 왕 (5)
– ‘왜 항복을 안하나?’
다이크 엘펠란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대련장의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던 까까머리 소년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졸업하고 없는 전대 학생회장 베로스가 칼을 내려놓았다.
이제 막 2학년이 되었을 시점, 3학년의 이름난 칼잡이 베로스와 대련이 잡혔을 때의 기억이다.
칠흑과도 같았던 1학년 시절을 보내고, 드디어 2학년이 되어 제대로 수업 진도를 따라갈 수 있게 되었을 시점.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진즉에 과로로 실려갔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정을 버텨내었음도 아직도 채 1인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둔재 중의 둔재가 학생회장 베로스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피와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 된 다이크는 주먹으로 바닥을 밀어내고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뿌드득 하고 이빨 갈리는 소리가 났다. 이마에서부터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그 사이로 다이크의 눈빛이 빛나고 있다. 후욱 후욱 내쉬는 숨소리는 인간이라기보단 짐승이다.
– ‘패배가 부끄럽나?’
검을 내려놓은 시점에서 베로스는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다이크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다.
–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네 노력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 여기서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 누구도 널 비난하지 않을거다.’
– ‘베로스 선배님은 비난받는 게 두려워서 결투를 하십니까?’
– ‘뭐…?’
그러나, 베로스의 예상과는 달리 다이크는 어떻게든 다시 몸을 일으켰다.
– ‘성과 없는 노력에 안주하면… 그 사람은 그냥 거기까지인 겁니다.’
이 결투가 진행될 당시의 다이크의 결투 전적은 2승 89패였다.
숱한 패배를 반복해왔음에도, 다이크 엘펠란은 절대로 패배를 당연시여기지 않았다.
패배가 당연한 상황 앞에서도 전력을 다해 밀어붙일 뿐이다.
– ‘왜 항복을 안하냐고 물으셨습니까?’
이어지는 다이크의 대답에, 베로스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놀라더니… 이윽고 피식 하고 웃었다.
이 남자를 상대로는, 전력을 다해 마주해주는 것이 최대한의 예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는 다시 검을 집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베로스의 그 다음 검격에 다이크는 정신을 잃고 패배하게 된다.
*“저 분이 에드 도련님이구나…!”
“으, 응…”
대기실을 빠져나와 대련장 가운데로 향한 에드 로스테일러는 페일로버 부부가 생각했던 것과는 인상이 많이 달랐다.
교복 외투를 벗은 채 셔츠의 팔을 걷어붙인 금발의 사내. 상상보다도 인상이 더 날렵했다.
걷어붙인 팔뚝에는 생활형 잔근육들이 조금씩 붙어있는 모습. 몸 여기저기에는 최근에 다친 곳이 많은지 붕대를 덕지덕지 감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똑부러지고 생활력 넘치는 사내라는 느낌이 강했지, 귀족집 도련님이라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너클 하나만 들고나온 다이크와는 달리, 에드는 온갖 전투용품을 잔뜩 싸들고 온 느낌이다. 등에는 지팡이를 매고 있고, 그 아래 허리춤에는 자작한 활을 매고 있었다. 허벅지 춤에는 단검집이 매여져있는 데다가 마공학용품까지 챙겨온 것이었다.
실베니아 아카데미에서의 결투란 최대한 실전을 지향하고 있다. 가진 모든 수단과 마법적 지식을 동원해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핵심이란 이야기였다.
그것이 권모술수나 비겁한 반칙이 아닌 이상에야, 자기 지식과 실력의 결과물이면 모두 결투의 수단으로 인정해준다. 연금부 학생들이 시약과 마공학용품을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런 방침의 연장선상이었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그런 규칙이 있다면 모두 극한까지 활용한다.
자존심과 긍지, 겉멋 같은 것에 목매지 않는다. 그런 성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꽤나 넓은 대련장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꽉꽉 차서, 서있는 사람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외부 관람객들 입장에서는 쉽게 구경할 수 없는 싸움이다.
실베니아의 각 학년 수석들은 사실상 이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미래를 책임지는 최고의 인재들이다. 그들 간의 대련은, 그야말로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정수를 모아놓은 것과도 같은 광경이다.
실베니아 아카데미에 동경을 가진 자들은 절대로 놓칠 수 없는 대련인 것이다.
1학년 수석, 웨이드 캘러모어.
2학년 수석, 루시 메이릴.
3학년 수석, 에드 로스테일러.
그런 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4학년 수석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 다이크 엘펠란.
대련장으로 나온 그의 모습은, 에드 로스테일러와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날렵해 보이는 에드의 인상과는 달리, 다이크는 그야말로 인간 병기와도 같은 모습이다.
에드 로스테일러도 체구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다이크는 그런 에드보다도 아예 다른 차원의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나와 멀찍이 떨어져서 마주본 순간, 환호성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 끼익
대련장 외문이 열리고, 신하들의 호위를 받는 늙은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그 뒤를 날카로운 인상의 소녀가 뒤따르고 있었다.
호화로운 인상착의와 더불어서 위엄 넘치는 모습. 입장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는 엄청난 기백이 느껴졌다.
이 클로엘 제국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희대의 성군, 클로엘 황제. 그 등장만으로도 좌중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 누구도 조용히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는 그런 기운이 있다.
그 뒤를 따르는 셀라하 황녀의 얼굴까지도 명확하게 드러났을 때, 대중은 본능적으로 침묵해야만을 깨달았다.
이 제국을 이끄는 꼭대기가 이 자리에 와있다. 결투를 관람하기 위해서.
호위병사들이 관객들을 가르고, 그 사이를 헤치고 들어온 클로엘 황제는 미리 준비된 상석에 앉았다. 그 옆에 셀라하 황녀도 다소곳이 앉아, 황제와 환담을 나누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맥주 있나.”
“대련 끝나면 바로 학사 본부로 돌아가서 일보셔야해요… 술 찾으실 때가 아니에요…”
칼레이드 교수에게 으름장을 놓은 클레어 조교수는, 이윽고 한숨을 푹 쉬었다.
모처럼의 수석 대련이라길래 구경을 나왔지만, 자리도 없어서 서서 구경해야한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안 그래도 수석 조교인 아니스가 학생회 일까지 겸하게 되면서 더 여유가 없어졌는데, 지도 교수라는 이 양반은 여전히 제대로 일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 아래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다보니, 어느샌가 상관에 대한 예의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글래스트 교수가 지도교수일 적에는 최소한 경의 비슷한 것은 품고 있었는데, 벽에 기대어 코를 후비던 손가락을 후후 불고 있는 이 늙은 전쟁영웅에게는 최소한의 존경심마저도 들지 않는다.
최근에는 그냥 제발 면도라도 좀 해줬으면 하는 사소한 바람이 생겼을 뿐이다.
부스스한 눈으로 대련장 쪽을 쳐다보고 있던 칼레이드 교수는, 에드의 몸에 흐르는 마력의 결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나도 제 정신은 아니지만, 저 놈도 어지간히 미친놈이군. 루시 메이릴한테 두들겨 맞은 건가.”
“네? 누구요. 에드 학생이요?”
“몸에 감은 붕대의 개수가 훨씬 늘었군. 몸을 타고 흐르는 마력도 원소의 기운이 더 강해졌어. 단기간 안에 이뤄낼만한 성과는 아니야.”
칼레이드는 고개를 슥 들어서 관객석을 보았다. 실베니아 학생들 중 향상심이 있는 놈이라 할만한 것들은 거의 다 모여있었다.
외부 관객들은 물론이과 황족까지도 찾아와 있으니, 이곳에서 실력을 드러내면 확실히 이름값도 어마어마해질 가능성이 컸다.
허나, 에드 로스테일러는 그런 무대의 환경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오로지 눈앞의 대련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고보면, 지금 학사 내에서 고위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학생이 몇 명 쯤 된다고 했지?”
“글쎄요. 일단 제가 아는 건 두 명이에요. 트레시아나 블룸리버, 그리고 루시 메이릴이요.”
“이제 세 명이겠네.”
“네?”
– 대련 시작!
그 외침이 울려퍼지는 순간, 엄청난 빛과 폭발음이 대련장에 퍼져나갔다.
폭발의 중심으로부터 퍼져나온 바람에 관객들이 탄성을 질렀다. 머리칼과 옷깃이 휘날리는 바람에 관객들은 모두 눈을 질끈감고 자세를 낮춰야했다.
–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고위 폭발 마법 ‘파멸’.
중위 폭발 마법 ‘일점 폭발’의 발전 형태로, 마력이 모이는 속도는 비슷하지만 그 결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반응하기도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현되지만, 적어도 ‘일점 폭발’은 그 화력은 중위 마법 치고는 애매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파멸’은 그런 단점조차도 극복해낸, 그야말로 폭발 마법의 완성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 거대한 폭발이 대련장 한가운데에서 퍼져나가고, 이윽고 피어오른 흙먼지가 흩어져갔다.
한쪽 손목을 꽉 쥔채 팔을 돌리고 있는 에드의 모습이 먼저 드러나고, 반대편에는 다이크의 모습이 드러났다.
막아낼 수가 없는 속도다. 그럼에도 다이크 엘펠란은 재빠르게 가드를 올려서 폭발의 여파를 최소화 한 것이다.
그럼에도, 다이크의 몸은 그대로 외벽까지 나가떨어져서 쳐박혀 있었다.
막았지만, 막은 것이 아니다. 이미 그을린 상처가 몸 여기저기에 나있었고, 내다 꽂힌 외벽은 일부 부서져내려 있었다.
일반적인 전사라면 여기서 즉시 정신을 잃고 패배다. 그러나, 다이크는 아랑곳 않고 몸을 일으킨다.
탁탁 흙먼지를 털고, 다시 너클을 꽉 쥔채 가드를 올렸다.
몸에 생긴 상처는 필시 큰 고통을 수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크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개전하자마자 때려 박히는 고위 마법.
그 광경에 관객들은 물론이고, 지켜보고 있던 학사 학생들 마저도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수준 높은 싸움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시작하자마자 고위 마법이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대련이었다면 고위 마법을 맨몸으로 받아낸 시점에서 전사의 패배다.
그러나, 정신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이크는, 그대로 몸을 일으킨 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가드를 올리고, 자기 팔뚝 속에 얼굴을 묻은 채 심호흡한다.
후읍-
하아-
그 잠깐의 호흡이 끝나자, 다이크 엘펠란은 그대로 사라졌다.
“…!”
관객들은 모두 소름이 돋고 말았다. 그 거구의 사내가 눈으로 인식하기도 힘들 정도로 빠른 속력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이크가 나타난 곳은 에드의 배후였다.
육중한 몸집을 지닌 전사인 만큼, 그 체급 차이를 통해 찍어누르는 전투 방식을 사용할거라 착각해선 안된다.
다이크는 수많은 전투부 학생들을 모두 제치고 수석의 자리에 앉은 자다.
걸어온 길은 피와 땀으로 얼룩졌다. 천부적인 재능으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내뿜으며 모두를 큰 차이로 찍어누른 것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전장에서 이 악물고 버텨내며 정신력으로 승리를 쟁취해온 자다.
기본적으로, 다른 전투부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건 다이크도 모두 할 수 있다.
어느 한 가지 방식으로 그의 전투 방식을 획일화 해서 판단 하는 건, 패배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 쾅!
다리를 들어올려 땅에 찍는다. 그것만으로도 대련장의 흙바닥이 울려퍼진다.
주먹을 내지르기 위한 도움닫기일 뿐이다. 땅을 내려찍으면서 몸의 힘을 끌어올리고, 힘의 축을 틀어서 앞으로 내지르는 한방의 권격.
다이크에게 ‘권왕’이라는 이름을 허락해준 그 한 번의 정권지르기는… 건물조차도 때려부수는 일격이다.
– 콰아아아아아앙!
마력이 동반된 것도 아니다. 특별한 마공학용품을 쓴 것도, 시약을 마신 것도 아니다.
오롯이 제 몸의 역량을 이끌어내 내지른 단 한 번의 주먹만으로, 주변의 공기가 요동치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주먹에 서린 기운이 퍼져나가 폭발하듯이 공기를 때린다. 채 반응조차 하지 못한 에드 로스테일러의 뒤통수를 향해, 마법보다도 빠른 속도로 날아가 꽂힌다.
주먹에서 대포가 나간다.
그런 은유는, 다이크의 주먹에 대한 실례다.
– 화아아아아아악!
그러나, 다이크의 주먹은 에드 로스테일러에게 닿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에드의 주변을 바람의 힘이 감싸더니, 그대로 다이크의 거구를 밀어서 날려버린다.
– 콰아아아악!
그제서야, 에드 로스테일러는 뒤를 돌아본다.
반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제 몸에 두르고 있는 정령의 축복 ‘풍랑의 가호’를 공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크윽…!”
영문조차도 모른 채 바람에 날려져버린 다이크는 그대로 흙바닥을 굴렀다.
저항조차도 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리고, 마법사를 상대로 거리를 벌리고 말았다는 것은, 그 다음 일격을 버텨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에드 로스테일러의 공격이 시작된다. 다이크는 비장한 눈으로 가드를 올리고, 그 틈으로 보이는 금발 귀족의 사내를 응시했다.
소년이 팔을 들어올리자, 불꽃이 대련장 주변을 휘감았다.
[ 카아아아아아아아악! ]소름이 돋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관객들의 감탄 소리와 함께 소년의 몸을 휘감는 것은, 거의 사람 크기에 버금가는 거대한 박쥐였다.
불타는 박쥐가 날개를 확 펼치자, 그 반동으로 인한 바람이 다시금 대련장을 휘감는다.
피어오르는 불의 기둥이 대련장을 돌다가, 이내 다이크를 향해 진격해온다.
마법은 마법으로 대응해야한다.
다이크는 마법에는 정말 절망적일 정도로 재능이 없다. 허나, 극한의 극한까지 수련해서, 최소한 적의 마법을 받아칠 수 있을 정도로는 단련했다.
마력 감응과 효율은 이제 막 기초 마법을 익힌 마법사 수준도 못된다. 그럼에도, 다이크는 온 몸의 마력을 억지로 이끌어내서, 발 끝에 모아 바닥을 찍었다.
– 콰앙!
‘항마의 발걸음’.
적의 마력을, 마력으로 받아쳐 파쇄시키는 마법이다. 그러나 마력 효율이 완전히 엉망인 마법인데다가, 기본적으로 다이크도 마법을 거의 못다루기 때문에.. 실전성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허나, 다이크는 이 실전성 없는 마법을 억지로 실전에 활용해왔다. 이것이 그가 마법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온몸에서 식은 땀이 피어오르지만, 어떻게든 머그의 불꽃 기둥을 파쇄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한 번 뿐이다. 가벼운 잽 한 번에 이렇게 온 힘을 다해야만 한다면, 필연적으로 패배할 것이다.
그러니, 속전속결로 가야만 한다.
다시 한 번 다이크 엘펠란은 가드를 올린 채 심호흡 한다.
후읍-
하아-
마음을 다잡고, 흐트러지지 않은 호흡을 유지하며, 그대로 다리를 박차고 에드 로스테일러에게 돌격한다.
코끼리의 몸집을 지닌 야수가 살쾡이처럼 날렵하다면 이런 느낌일까.
같은 전투부 학생들조차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그 움직임은, 같은 전사로서는 대처할 수가 없다는 확신이 들게 만든다.
빠른데, 강력하다. 단 한 번이라도 주먹을 허용하면 바로 저승행이다.
그대로 에드의 앞까지 빠르게 거리를 좁힌 다이크의 움직임엔 쓸 데 없는 잡기술이 없다.
평생을 최적의 효율로 단련해온 인생이 그대로 드러난다. 후천적으로 쌓아올린 전투 지식의 양은 천부적인 감각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둔재들의 왕이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끊임 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해온 끝에 체화할 수 있는 ‘몸의 감각’이다.
발 밑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중위 물 정령 ‘레이시아’를 발길질 한 번으로 튕겨내버린 것 또한, 체화된 감각 덕분이었다.
– 콰앙!
생각보다도 발이 먼저 나간다.
[ 카아아아아악! ]암사자 레이시아는 그대로 현현이 풀려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다이크는 깨닫는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수원 발현’ 마법을 이용해, 다이크가 거리를 좁혔을 때를 대비해서 함정을 쳐놓은 것이다.
그러나, 다이크는 반사신경만으로 대처해냈다. 그런 함정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음에도.
그러나, 자세가 무너진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려 꺾은 에드 로스테일러의 왼손에는 역수로 쥐어진 단검이 들려 있었다.
– 카앙!
다이크가 너클로 단검을 받아냈지만, 단검에서는 또 다른 마력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정령식 – 폭성.
그 자체로 또 다른 폭발을 일으켜내는 법진이 새겨져 있는 단검.
이번에는 작정하고 가드할 수가 없는 위치다. 그대로 기습적으로 퍼져나오는 폭발에는 에드 로스테일러 또한 휘말리고 말았지만, 발현된 ‘화복의 가호’ 때문에 본인은 폭발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이놈… 봐라…”
– 콰아앙!!!
다이크의 그런 허탈한 웃음소리와 함께, 또 다시 폭발이 터져나갔다.
고위 폭발 마법 마저도 버텨낸 다이크다. 이 정도 폭발로 단숨에 정신을 잃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드할 수가 없는 위치에서 기습적으로 일어난 폭발이다.
넉다운 시킬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다시금 거리를 벌릴 순 있을 것이다.
그런 에드 로스테일러의 예상과 달리, 폭발의 연기 속에서 똑바로 서있는 다이크의 얼굴이 코앞에 드러났다.
크르르 거리는 숨소리는 거대한 불곰을 코앞에서 마주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든다.
그 짧은 순간에 마력을 흩어냈는가? 아니다.
에드 로스테일러처럼 폭발에 저항하는 수단을 따로 수련한 것인가? 아니다.
혹시 정령식의 위력이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줄어들기라도 했는가? 아니다.
다이크 엘펠란은, 그저 버텨냈다.
기합과 의지력으로, 그냥 받아낸 것이다.
“제정신이 아니군…”
“내가 할 말이다, 에드 로스테일러.”
반쯤 힘이 빠져나간 다이크는 그대로 너클로 단검을 밀어내듯이 후려쳤다.
도움닫기도 안되고, 힘의 축을 끌어올릴만한 준비동작도 없었다. 단순히 밀어낸 것만으로도, 에드 로스테일러의 몸은 크게 뒤로 밀려나갔다.
– 콰악!!
에드는 이를 악물며 바닥을 몇 번 구르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우고선 다시 전투태세로 전환했다.
이어지는 추가타격이 들어오려는 순간, 다시 한 번 머그의 불마법이 대련장을 감싸기 시작한다.
다이크 엘펠란은 마력에 대처하는 능력이 거의 없다. 대부분은 이를 악물고 의지력으로 버텨내거나, 효율이 절망적일 정도로 구린 대 마법 능력을 발현할 뿐이다.
상성이 안좋다. 그 자각은 있었다.
그럼에도, 다이크 엘펠란의 대처 방식은 언제나 올곧다.
그대로 도약한 다이크는 공중을 부유하고 있는 불박쥐 머그의 멱살을 잡아쥐었다.
[ 카아악! 카악! ]제 아무리 박쥐라 한들, 사람의 상반신보다도 커다란 야수다.
그럼에도, 그대로 머그를 들고 바닥에 매쳐버린 뒤, 그 위로 깔아뭉개고 앉은 다이크는…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머그를 내려찍어버렸다.
그대로 역소환 되어서 마력으로 화해서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머그는 완전히 무력화 당했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미간을 구긴 채, 다시 자세를 잡았다.
다이크 엘펠란은… 다시금 가드를 올린다.
그리고 심호흡한다.
후읍-
하아-
몇 번이나 폭발에 휘말리고, 바닥에 처박혀서, 어느샌가 두피에서부터 피가 흘러내리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몇 번이고 반복한 그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는다.
상대하고 있는 자들로 하여금, 돌벽을 주먹으로 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그 아득한 체급의 차이에서 뿜어져나오는 위압감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려 든다.
다시금 도약하려는 다이크를 앞에둔 채로… 에드는 ‘벼락 맞은 천년 나무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손대중해서 될 상대가 아니다.
그 사실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