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27)
살아남은 그대에게 (2)
축제 기간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이런저런 행사에도 많이 참석해야 하고, 학사 장학생 일도 좀 도와줘야하고, 캠프 생활도 이어가야 하고, 개인 수련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축제를 즐겼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는, 유독 셀라하 황녀가 공식 석상에서 내 이름을 언급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부교장 레이첼과의 면담에서는 에드 로스테일러라는 학생에 대해 이런 저런 것들을 물어봤다고 하질 않나.
중앙 무대에서 연설 할 때에도 에드 로스테일러를 언급하고, 성녀가 주재하는 기도회에 참석했을 때에도 로스테일러 저택에서의 무례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
마치 이번 기회에 반드시 나를 포섭해 가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것처럼, 지금까지의 거만한 태도가 무색할정도로 확실하게 접근해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집사장 데스트에 의해 날아온 서신도 엄청나게 많았다.
축제 기간동안 실베니아 아카데미에 머무르면서, 꼬박 하루에 한 통은 내게 서신을 보낸 것이었다. 심지어 전부 친필 서신이었고, 내용도 꽤나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매일 밤, 귀빈 숙소의 개인 집무용 테이블에 앉아 깃펜으로 편지를 써내려간 모습이 어렵지 않게 상상되었다. 무슨 연애 편지도 아닌데, 낭만적인 미사여구가 가득한 내용이 연달아 나오더니, 결국 마지막 결론은 자기 쪽으로 붙으라는 이야기였다.
– ‘아켄섬의 밤엔 한기가 도는구나. 슬슬 가을이 오고 있다는 뜻일까. 참으로 시간이 빠르구나. 우리가 로스테일러 저택의 참사 때 얼굴을 마주한지도 꽤나 긴 시간이 지났으나, 서로가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은 거의 받질 못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나는 너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 정치적 타협점을 찾아보자는 의미도 있지만, 그냥 너라는 인간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을 뿐이다. 내게 말해주겠느냐? 네 삶의 고초와, 네가 관철해왔던 신념이라는 걸 내게 이해시켜 주지 않겠느냐? 고독하지만 굳건하게 버텨왔던 네 삶이라면, 필시 나와 맞닿은 부분이 있을거라고 믿는다.’
– ‘축제의 열기가 계속 되는구나. 오늘은 생활동 시찰을 다녀왔다. 네가 생활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각별한 느낌이 들더구나. 그리고 축제의 분위기에 취해 평화로이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결국 갈등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 ‘지금까지의 대립은 모두 과거로 미뤄두고, 우리가 손을 맞잡는다면 필시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네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마. 황실 내 권력도, 크레핀이 가주로 있었을 때와 비교해서 아쉽지 않을 정도로 보장을 해줄 수 있다.’
– ‘반목을 끝내자. 로스테일러 저택의 참사는 크레핀이라는 별종의 일탈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새로운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그 아름다운 청사진이라는 것이 서로 다를 수는 있겠지만, 서로 잘 이야기 해나가면 더 위대한 제국을 만들기 위한 발판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경의를 꾹꾹 눌러담은 편지를 보고 있으면, 직접 셀라하 황녀를 만났을 때 느꼈던 바와는 너무나도 상반된 것 같아 위화감이 들고 만다.
내가 편지를 다 읽고 내려놓으면, 그걸 전달하려 왔던 집사장 데스트가 정중한 어조로 내게 묻는 것이다.
“셀라하 황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동행하시겠습니까?”
그런 질문을 하면, 나는 별 말 없이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그럼, 그 다음 날에도 편지가 날아온다.
– ‘내 초청에 응하지 않을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필시 너는 페니아의 편에 계속 서서 걔한테 힘을 주고 싶겠지. 하지만, 잘 생각해봐야할 일이다. 그 아이가 황제가 되는 것이, 과연 그 아이에게 행복한 일일까? 평소에는 권력 같은 것에 뜻을 두지 않았던 아이다. 언제나 자애롭고, 아랫 사람의 말에 귀기울이는 어진 황녀라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던 아이란 말이다.’
– ‘허나, 황권의 자리에 오르면 반드시 누군가의 원망을 사야 한다. 자고로 군주란, 자신의 결정에 반대하는 절반의 국민을 적으로 돌릴 줄 아는 용기가 있는 자란다. 페니아한테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보느냐? 필시 이상론을 좇다 현실의 돌부리에 채여서 바닥을 구를 게 뻔하다.’
– ‘나라면, 그런 페니아의 여린 마음을 계속해서 지켜줄 수 있다. 네가 내 곁에서 일을 잘 처리해주고 있는 한, 페니아는 언제까지나 장미궁 안에서 백성들을 생각하는 어지고 자애로운 황녀로서 살 수 있다. 현실의 일은 우리가 감당하고, 페니아 같은 아이는 밝은 세상에서 살게 하는 것이… 어찌보면 올바른 역할 배분이 아니겠느냐?’
이튿날 날아온 편지에서는 페니아의 행복을 팔고 있었다.
페니아 황녀와 내가 각별한 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셀라하 입장에선, 꽤나 던져볼만한 승부수 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페니아가 내게 간절히 일러두었던 이야기가 더 떠오르고 만다.
– ‘절대로, 셀라하 언니에게 넘어가선 안돼요.’
– ‘셀라하 언니는… 한 번 손에 넣는데 성공했으면 모든 흥미를 잃어요. 셀라하 언니의 탐욕이 부풀어오르는 때는, 손에 넣지 못한 것을 발견했을 때에요. 그러니까, 셀라하 언니가 어떤 제안을 하고, 어떤 접근 방식을 취하든… 넘어가는 순간 에드 당신의 가치도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거에요.’
참으로 역설적인 이야기다. 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가치를 높게 쳐주는 상대의 제안을 전부 쳐내야만 한다.
“셀라하 황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동행하시겠습니까?”
데스트의 말에, 캠프파이어 옆에 앉아있던 나는 또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여지 없이 다음 날에도 서신이 날아든다.
– ‘네 굳건한 뜻을 높게 평하마. 허나, 나는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네가 내 손을 잡는다면, 나는 반드시 이 제국의 황제가 될 것이다. 출세만큼은 보장해줄 수 있다. 네가 평생을 몸담은 로스테일러 가문이 다시금 이 제국의 제일가는 명문가가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줄 수도 있다.’
– ‘나는 네가 필요하다, 에드 로스테일러. 네가 내 사람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너를 절실하게 원한다.’
아예 대놓고 자기 세력으로 와달라고 부탁하는 어조. 편지에 간절함이 더해지고 있었다.
물론, 한낱 편지일 뿐이다. 이 편지를 써내려간 당사자가 실제로 간절해하고 있을지 어떨지는 완전히 미지수다. 상대는 정치판에서 평생을 살아온 자다. 글귀 몇 개 가지고 진정성을 느껴서 마음이 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동행하겠냐고 묻는 데스트의 말에, 또 다시 고개를 가로젓는다.
– ‘오늘은 하루종일 네 생각을 한 것 같다. 에드 로스테일러. 이것은, 정치적으로 너를 포섭해야겠다는 생각만이 원인은 아닌 것 같다.’
– ‘어느샌가 네 목소리나 얼굴이 가슴 속에 스며들어, 틈만 나면 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하루를 보내는구나. 물론, 일국의 향방을 결정하는 정치에 있어 사적인 감정을 우선해선 안된다. 하지만, 이 나도 한 명의 어엿한 여성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음 속에 열기라는 것이 피어오를 때가 있다.’
– ‘너에 대해 궁금하다. 너라는 인간이, 일국의 황녀 앞에서도 굳건하게 제 신념을 관철할 수 있는 너의 건실한 충심이 궁금하다. 그게 나를 향했으면 좋겠다. 나라는 여자에게 경의를 품어줬으면 좋겠다. 매일 집무실에 앉아 안건을 검토할 때, 그 옆에 네가 서있어 줬으면 좋겠다.’
– ‘나는 너를 갈망한다. 에드 로스테일러. 부디, 내가 걷는 길에서 내 곁에서 날 지탱해주길 바란다.’
이튿날 편지에는, 급기야 자기 연심을 팔고 있었다. 물론 내가 이 말을 절대 믿을 리가 없다.
이쯤되면 무서워질 지경이다. 이 황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선 어디까지 팔아넘길 수 있는 것일까.
그 무서울 정도의 탐욕엔 귀기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셀라하 황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디 동행해주시길.”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렇게 축제가 끝나는 날이 올 때까지, 이런 짓을 반복해야만 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듣기로는, 오늘 자정에 학생 광장에서 치러질 성대한 불꽃놀이를 끝으로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축제는 끝이 난다.
아직 제국 전체의 축제기간은 좀 남았지만, 클로엘 황제와 셀라하 황녀가 아켄섬에 머무르는 기간은 오늘로 끝이다.
모든 축제 일정이 잘 마무리 되면, 주말 이틀 쉬었다가 다시 학업이 계속되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셀라하 황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셀라하 황녀는 기어이 마지막 날까지 서신을 보냈다.
내용도 어느 정도 예상 했던대로였다. 반쯤은 사랑 고백에 가까운 내용이었으나, 나는 싸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황녀님께서는 필력이 대단하시군요. 묘한 진정성마저 느껴지는 글귀의 흐름이 정말 놀랍습니다. 시나 소설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편지를 다 읽고 난 다음, 내가 내놓을 답은 정해져있었다. 아마 데스트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죄송하지만, 저는 안 갑니다.”
*“의식적으로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좀 하시는 게 좋습니다. 타냐 회장님.”
“그걸 직스 선배님이 말하니까 너무 얄미워요.”
“저는 타냐 회장님을 걱정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
모처럼의 휴식 시간.
학생 회장 집무실의 소파에 반쯤 시체가 된 몰골로 드러누워 있던 타냐가, 부스스해진 머리칼을 쓸어올리고 문쪽을 쳐다보았다.
간식거리라도 챙겨들고온 직스 에펠슈타인은, 대충 집무용 테이블에 주전부리 몇 개를 던져놓고는 반대쪽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파 등받이에 양손을 올리고 편히 앉은 모습에, 학생회장을 향한 경의라고는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직스는 사실 학생회 내에선 당근 역할 보다는 채찍 역할을 맡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주로 도망간 타냐를 잡으러 다니는 입장으로 지내다보니, 이젠 상대가 학생회장처럼 보인다기보단 틈만나면 탈옥을 꿈꾸는 죄수처럼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보아하니 소파에 드러누워서 괜히 회장했다. 은퇴하고 싶다. 죽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 에드 오라버니는 뭐하고 있을까. 그냥 가주직도 넘겨버릴까. 애초에 받아주기는 할까. 하지만 내가 책임져야 할 일 아닐까. 애초에 왜 책임을 진 걸까. 그냥 죽고싶다. 살려줘. 누군가 나 좀 살려줘. 이런 독백을 반복하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타냐가 숨을 집어삼키며 직스를 쳐다보았다.
“이젠… 레퍼토리가 뻔해서, 사실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그래도 오늘 부로 축제기간 동안 밀린 일 다 마무리 짓지 않았습니까. 이제 아니스 선배님도 계시니, 일반 학기 생활로 돌아가면 많이 여유로워 지실겁니다.”
“나름대로 마음의 여유를 즐기고 싶은데, 나쁜 생각만 잔뜩 드는 걸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의식적으로라도 좀 좋은 생각을 하시란 말입니다. 거짓말이라도 상관없으니까.”
“거짓으로 좋은 말을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아니요, 나름 의미가 있습니다. 저도 엘카에게 전해들은 거긴 합니다만.”
직스는 자기 장비들 상태를 대충 슥슥 체크하면서, 건성으로 던지듯이 이야기했다.
“일종의 자기 암시일수도 있고, 가면을 쓰는 것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열심히 몰입해서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면, 어느 순간부터 마음은 그걸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하더군요. 무슨 전문 용어도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잘 안납니다만…”
“…묘하게 정신 분석학 비스무리한 내용이네요. 그런 분야는 잘 몰라요…”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좋은 것 아닙니까. 매일 자기 스스로에게 나는 행복하다. 나는 기운 넘친다. 나는 일이 너무 좋다. 일이 하고 싶어서 못 참겠다. 일이 나의 삶이다. 나는 일 하다 죽을 거다!! 하고 거짓말을 하고, 암시를 반복하면 삶에 좀 더 긍정적으로 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죄송한데, 그건 그거대로 인생이 끝장나는 것 같아서 싫어요.”
“…확실히, 예시가 좀 과하긴 했군요. 죄송합니다.”
직스는 헛웃음을 흘리더니, 오랜 과업을 끝마치고 드디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타냐를 곁눈질로 슬쩍 보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떻게든 기한 안으로는 맡은 바 일은 다 마무리 짓는 인간이다. 사람 품성이라는 것은 다 이어받는 거라더니 여러모로 제 오빠를 많이 닮았다.
잘 보좌하면 좋은 리더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 당장은 시체처럼 고꾸라져 있는 모습 때문에 위엄이 살지 않는다.
뭐, 이런 사람도 있는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직스는 헝겊으로 칼집을 슥슥 닦았다.
“… 동행을 거부하셨습니다. 아마 끝까지 동행하시진 않으실 것 같습니다.”
일국의 황녀가 이렇게까지 굽혀주는 데도 미동하는 기색조차 없다.
셀라하 황녀를 위해 준비된 으리으리한 개인실. 깔끔하게 정돈된 방 내부에는 집무용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었다.
거대한 테이블에 앉아서 깃펜을 놀리던 셀라하 황녀는, 데스트의 보고에 코웃음을 쳤다.
“비싼 척 굴기는… 결국 권력을 탐하고 있을 뿐이면서…”
축제 기간 동안 클로엘 황제와 동행하느라 시간을 자주 내기가 힘들다. 매일 같이 에드 로스테일러의 캠프에 가는 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셀라하 황녀는 편지를 통해 그를 회유하려 했으나, 역시 한계가 있었다. 좀 더 급진적이고 과감한 내용을 써내려가며 에드 로스테일러를 적극적으로 부채질 했지만… 역시나 그의 굳건한 마음은 전혀 움직일 기미가 없다.
이제는 묘한 오기마저 생기기 시작해서, 매일 같이 그에게 보내는 서신에 생각 이상으로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 편지의 내용에 진심이라고는 한 톨도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셀라하 황녀가 공작가 도련님 하나 손에 쥐겠다고 간이고 쓸개고 다 내 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저 감언이설일 뿐이다. 대개는 이 시점에서 넘어오기 마련이다.
일국의 황녀라는 인간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필요로 해준다는 사실에 취해,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놓치고 만다.
그러나, 제 아랫 것들은 모두 쓰다 버릴 체스말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폭군 셀라하가… 그렇게까지 해줄 이유가 없다.
“마음 같아선 시간을 내서 한 번 더 가보는 게 제일 좋겠다만…”
공교롭게도 당장 내일 아침에도 일정이 잔뜩 있고, 검토해야할 보고 사항도 무척이나 많다. 트릭스관 방문 일정도 잡아야 하고, 교장 오벨 포시어스와 오찬을 함께하러 가야한다.
결국 편지 글귀를 좀 더 성의 있게 쓰는 것 말고는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으나… 문제는 쓸 수 있는 레퍼토리는 전부 썼다는 것이다. 이 이상 진정성이 들어간 듯한 거짓 편지를 써내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내가 이 정도까지 굽혀주는 데에도, 눈 하나 깜짝 안한다라…”
오히려 셀라하 황녀는 비릿한 미소가 올라왔다. 이렇게까지 굳건하고 충직하게 버티고 있는 에드 로스테일러를 꺾었을 때의 희열감이 어떨지, 상상만 해보아도 너무나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적어도, 셀라하 황녀가 이렇게까지 과하게 몰입해서 누군가를 손에 쥐려한 적은 없다. 보통은 그 이전에 넘어오기 마련이었다.
최근에는 하루 종일 이번에는 어떤 글귀를 써서 그의 귓가에 바람을 넣어볼까 생각해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페니아 황녀에 대한 충심을 자극해보기도 했고, 급기야 자기 자신이 에드 로스테일러를 사적으로 연모하고 있다는 둥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 로스테일러는 꿈적조차 하지 않는다.
‘전부 거짓임을 간파한 것인가…?’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온갖 파격적인 말들을 잔뜩 적어보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넘어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아예 내용을 믿질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좀 더 믿음직스럽고, 진심이 들어간 듯한 어조가 필요한 것일까.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약속하는 것만으로는 그를 움직일 수 없기에, 지금 시점에 필요한 것은 상대가 자신을 진심이라고 믿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진정성이다.
그 진정성을 납득 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그 의심덩어리 에드 로스테일러조차 속아넘어가진 않고 못배길 정도로… 한없이 간절해보이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포장할 필요가 있다.
한 번 제 손에 넘어와, 페니아를 배신한 인간이 되었을 때, 그를 이용할대로 이용한 다음 내쳐버린다. 그렇게 셀라하에게 버림 받은 자가 되고 말았을 때 그 사내의 표정을 그려본다. 그 때의 희열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입가에 미소가 흘러나온다.
그렇게 셀라하는, 계속해서 거짓으로 점철된 편지를 써내려간다.
하루종일 편지의 문구에 대해 고민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끝없이 몰입해가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반복해나가고 있었다.
*“열람 요청은 거절되셨습니다. 사실상 지금 현자의 봉서는 연구 목적으로도 외부 공개가 되질 않는 상태라, 학생 차원의 요청으로는 허가가 떨어지기 힘듭니다.”
트릭스관의 직원이 창구 너머의 아일라에게 친절하게 이야기 해줬다. 벌써 며칠 째 오벨 포시어스에게 만남을 청하며, 반드시 현자의 봉서를 열람해보고 싶다고 요청서를 제출하고 있는 소녀였다.
“그런가요…”
“네… 절도 이력이 있는 보물이다보니, 역시 학사 차원에서도 신중하게 되네요…”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아일라는 창구에 인사를 올리고, 트릭스관을 빠져나왔다.
축제의 열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업무용 건물인 트릭스관은 아직도 꽤 사무적인 분위기다.
그 미묘한 열기는 남아있지만, 어쨌든 할 일은 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일라는 트릭스관을 잠시 돌아다 보고는, 고개를 내리깐 채 표정을 굳혔다.
뭔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어떻게든… 현자의 봉서를 열람해야만 할 것 같은 직감이… 계속해서 샘솟아 올라왔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