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33)
벨브로크 토벌전 (1)
아름답게 하늘을 수놓는 폭죽을 올려다보며 군중들이 내지르던 환호성이, 순식간에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 ‘꺄아아아아악!’
– ‘저게 뭐야! 도, 도망쳐! 도망쳐야 해!’
학생 광장의 연단에 서서 군중들과 함께 폭죽을 바라보던 타냐 또한, 눈앞의 광경을 보고 몸을 떨 수 밖에 없었다.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상공.
구름들 사이를 헤치고, 폭죽의 불빛을 받으며 유유히 드러낸 그 형상은… 누가보아도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였다.
축제의 불꽃이 하늘을 메우고, 모두가 평화를 외치며 웃고 있던 순간이 단 1분 전이다.
단 1분 만에, 세상의 종말을 고하며 나타난 용이 포효하려 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섬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날려버리는 그 거대한 재앙의 이름을 나는 알고 있다.
성창룡 벨브로크.
최종 보스이자.
정사대로라면, 주인공 테일리 맥로어가 졸업하는 해의 여름에 등장해, 실베니아를 부숴버리려드는 재앙이다.
– ‘꺄악! 꺄아아악! 괴물! 괴물이야!’
– ‘다들 도망쳐!’
– ‘내 아들! 벨라인! 어디 갔니?! 내 아들! 내 아들 좀 찾아줘요!’
– ‘다들 비켜! 비키라고!’
– ‘맥세스 대교! 지금 당장 맥세스 대교로 달려! 이 섬을 가장 빠르게 나갈 수 있는 길은 거기밖에 없어!’
– ‘크아아아악! 발! 내 발!’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 학생 광장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인파들로 가득하다.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나는 달아나는 군중들에 섞여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일단은,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침착할 수 있었던 것은 아예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글라스칸 토벌전도, 글래스트 토벌전도, 루시 토벌전도, 크레핀 토벌전도…
무엇하나 예상대로 흘러간 것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벨브로크라고 해서 딱 제 시간에 맞춰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타나줄 거란 생각도 안했다.
그렇기에, 시간이 있을 때 빨리빨리 테일리를 자극해서 성장시켜 놓은 것이고, 여유 시간이 좀 남아있더라도 내 마법 능력도 무리해서 끌어올린 것이다.
그래도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에드!”
인파들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모님을 이끌고 인파와 함께 뛰쳐나온 예니카였다. 예니카 또한 학생 광장에서 부모님과 함께 마지막 무대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예니카를 따라 달려나오고 있던 오르테와 세일라가 나를 보고 외쳤다.
“에드 도련님! 지금 당장 도망치셔야 합니다! 하늘에… 저 하늘에…”
“에드.”
그러나, 오르테의 말을 끊은 예니카가 한층 침착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에드가 말했던 성창룡…”
“그래… 예상보다 너무 빠르긴 하지만… 저 녀석이야.”
예니카는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표정이 굳고 말았다.
나는 일단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예니카에게 이야기했다.
“너희 부모님부터 대피시켜. 지금 맥세스 대교로 달려가봤자 인파들이 몰려서 제대로 다리를 이용할 수도 없을 거야.”
“그, 그런…”
“척 봐도 혼란스러운 지금 상황에서, 섬 밖으로 사람을 대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너는 무척 귀중한 인력이야. 비행 정령은 한 번에 몇 명이나 태울 수 있어?”
“중위 바람 정령을 불러내면… 그래도 한 번에 열명은 움직일 수 있어… 그렇게 많이 태우고 장거리 비행을 하고 나면 기진맥진하긴 하지만…”
“그럼, 당장 중요한 사람부터 섬 밖으로 대피 시켜. 부모님부터 살리는 게 제일 중요할 거 아니야.”
나는 당장 챙겨둔 장비들을 이리저리 체크하면서, 최대한 요점만 정리해서 예니카에게 전달했다.
비상사태다.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 카아아아아아아앙!
철판을 긁는듯한 벨브로크의 포효가 실베니아의 상공을 한차례 덮었다.
폭죽의 불꽃 사이에 드러난 모습.
그러나 그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벨브로크의 모습과는 묘하게 달랐다.
쇠사슬이 감겨 있다.
바다에서부터 상반신만 솟아오른 몸 여기 저기에, 칭칭 감긴 거대한 마력 쇠사슬이 다시금 바닷 속으로 벨브로크를 끌어내리려 들고 있다.
봉인이, 완전하게 풀리지 않았다.
시기가 이른 탓일까. 아니면 다른 외부적인 변수가 있는 것일까.
완전히 봉인을 깨부수고 나온 내 기억 속 벨브로크와는 달리, 저 벨브로크는 아직도 봉인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벨브로크의 포효도 광폭함의 결과라기보단, 봉인의 쇠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내지르는 비명에 가까웠다.
아직, 온전하게 부활하지 못한 것이다.
포효 소리만으로 광장의 군중들이 모두 나자빠진다.
마력이 담긴 포효는 그 자체로 물리력을 가진다. 그래도, 거리가 멀면 그 영향력은 줄어들 터다.
허나 저 먼 하늘에 떨어져 있는 벨브로크의 머리로부터 발현된 포효이건만, 사람들을 찍어 누를 정도의 힘을 내고 있었다. 새삼 벨브로크의 말도안되는 마력량을 실감하고 만다.
– ‘꺄아아아악’
– ‘사, 살려줘…!’
다시 한 번 군중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예니카 또한 부모님을 부축하면서, 다시금 심각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 봤다.
“에드는?”
“일단 예니카 네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부터 다 대피시키라고 했잖아. 부모님 대피 시킬 생각 먼저 해.”
“그 다음은 에드야.”
예니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했다.
오르테와 세일라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쳐다봤지만, 거기에 일일이 반응해줄 여유는 없었다.
“난…”
바다 속으로 다시금 빨려들어가는 쇠사슬을 지탱한 채로, 드넓은 창공에 계속해서 포효를 내지르는 벨브로크를 올려다 본다.
“저거, 막아야지.”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이야기 하는 바람에 차마 예니카도 반발할 생각조차 못했는지….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고보면, 나란 인간은 항상 이런 식이었던 것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일삼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예니카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굴면, 항상 휩쓸려 주곤 하던 소녀다.
예니카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당황스러워 하던 마음을 추스르고,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나, 에드가 가지고 있던 그 반지를 쓰면… 한 번에 수백명 넘게 대피시킬 수 있어.”
글래스트 교수가 전해준 불사조 반지.
미래의 마력을 끌어다가 지금 당장 몰아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 반지의 힘은 나 뿐만 아니라 누가 됐든 말도 안되는 수준의 마법을 다룰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사용자의 마력양이 막대하면 막대할수록, 그 위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된다.
“최고위 물 정령 프리데를 불러내면, 이 섬에 들어와있는 외부인들 대부분을 몇 번 왕복만으로 싹 다 대륙 쪽으로 대피시킬 수 있을거야. 그럼 적어도.,, ‘도망’은 칠 수 있어.”
성창룡 벨브로크의 부활은 한 개인이 막아설 수 있는 재앙이 아니다.
그러니,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는… 도망치는 것이다.
“하지만, 에드는 그렇게 생각 안하겠지.”
“그래, 맞아.”
예니카는 내 마음을 읽고 있다는 듯이, 오히려 작은 미소까지 흘려가면서 긴장을 날려보내려 했다.
“에드는… 저걸 쓰러뜨리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그것은 너무 비현실적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성창룡 벨브로크는 발길질 한 번으로 생활동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말도 안되는 수준의 괴물이다.
지금은 덜 풀린 봉인에 의해 온전히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지만, 얼마 안가서 쇠사슬을 끊어내버리는 순간 이 아켄섬은 그대로 멸망이다.
사실 그렇게 되면, 대피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
저 정도 재앙 쯤 되면 제국 전체에 안전구역이라 할만한 곳이 없다.
“알았어. 에드. 벌써부터 반지를 쓰면 중요할 때 못 쓰는데다 나까지 전투 불능이 되니까… 악수가 될 가능성이 크겠지. 그리고, 이왕 반지를 쓸 거면 가장 강한 사람… 루시나 오벨 교장님이 사용하는 게 효율상 맞을테고…”
“에드 도련님. 에드 도련님부터 대피하시는 게 맞습니다. 지금 당장 저희와 함께…”
“아니, 괜찮습니다. 아마 섬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겁니다. 바로 예니카와 함께 탈출 하십시오.‘”
나는 오르테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확실하게 이야기했다.
소란을 일으키며 달려나가는 군중들 사이, 몇몇의 사람들이 어깨를 툭툭치고 지나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도 정신이 없었을테지.
“에드 도련님..”
“두 번 말 안합니다. 상황이 급박해서 설득할 시간이 없습니다.”
내가 그리 단언하자, 오히려 오르테의 손을 끌어당긴 건 예니카였다.
“아빠, 빨리 가자!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시간 끄는 게 더 민폐야!”
그렇게, 세일라와 오르테를 꽉 끌어당긴 예니카는, 내 쪽을 보고서 굳건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에드는 어디로 가있을 거야?”
한시가 급박한 지금 상황에서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움직임은 무엇인가?
그 답은, 사실 명확하게 정해져있었다.
“테일리를 찾으러 갈 거야.”
나는 메릴다를 소환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모으며 이야기 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성창룡에게 마지막 일격을 넣을 수 있는 테일리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생각보다 이른 재앙이다. 테일리의 스펙은 아직 온전하게 성장을 끝마치지 못했다.
최종전 스펙에는 많이 모자를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벨브로크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는 용살검과, 벨브로크의 살점에 어느 정도 피해를 줄 수 있는 검성식들을 익혔다.
충분 조건에는 미달할지 모르나, 최소 조건은 맞춘 상태다.
그 외 동료들을 좀 붙여주고, 벨브로크의 심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기만 한다면… 지금의 테일리라면 마지막 일격 정도는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거면 된다.
벨브로크만 죽일 수 있으면.
저 하늘을 뒤덮은 끔찍한 성창룡만 어떻게든 할 수 있다면… 나의 모든 여정이 마무리 된다.
숲에 처박히는 걸로 시작해, 뛰고 구르고 다치고 상처입고 다시 딛고 일어나며 버텨왔던 모든 여정의 끝이… 드디어 도래하게 된다.
나는 이를 악문 채 계속해서 마력을 끌어모았다.
“에드, 테일리가 어디있는지는 알아?!”
일단 가장 중요한 건, 테일리를 데려다가 벨브로크의 심장 앞에 놓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테일리의 위치부터 특정지어야만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폐막 행사를 보기 위해 이 학생 광장에 와있긴 했지만…
“아마도, 트릭스관에 있을거야…!”
폐막행사가 시작하기 전, 테일리의 연인인 아일라가 내게 와서 했던 말이 있다.
현자의 봉서를 열람해야겠으니, 이번 폐막 행사를 틈타 트릭스관에 숨어들 예정이라는 것.
나한테까지 그 계획 실행을 상담했을 정도면, 그녀의 동반자인 테일리에게도 분명 말했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테일리라면 아일라의 게획을 도우려고 했을 터.
높은 확률로 테일리는, 아일라를 돕기 위해 트릭스관으로 향했을 것이다.
이 학생 광장에 없다면… 거의 확실하다..!
이윽고, 거대한 바람의 늑대가 내 마력에 이끌려 소환된다.
고위 바람 정령 메릴다의 고고한 자태가, 학생광장에 자리했다. 도망치던 외부인들도 그 광경을 보고 모두 혀를 내둘렀다.
뭐라 말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이, 메릴다가 고개를 숙이자 나는 얼른 그 등에 뛰어서 올라탔다.
*섬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육로인 맥세스 대교가 막혔다.
그 소식이 퍼져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실상 아켄섬 내에서 가장 빠른 소식통을 가지고 있는 로르텔에게도, 그 소식은 곧바로 날아들었다.
맥세스 대교는 엘테 상회 측에서 투자해 세운 교역용 대교로, 그 역사가 깊은 곳이다.
투자 주체가 엘테 상회인 만큼 그곳의 이동로를 이용해 노점을 차리고 있던 상인들도 대부분 엘테 상회 소속이었다.
“매, 맥세스 대교에 있던 상인들 서른 한 명이 사망했거나 행방불명입니다. 지금은 빠르게 확인한 부분만 전달해드리는 거고, 이, 이, 이후 보고 사항에 따라 사망자 수가 더 느. 늘어날… 수도…”
“당황하지 마요, 리엔나 비서. 우리는 수뇌부에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해야 해요.”
생활동 광장에서 직원들에게 보고를 받던 로르텔 케헬른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쇠사슬에 칭칭 감겨서 포효를 내지르는 성창룡.
그 공포스러운 광경이 드러난지도 어느덧 몇십분이 지나있었다.
주기적으로 마력이 담긴 포효를 내지르며 쇠사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벨브로크의 모습은… 마치 세상의 종말을 고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
인간이라면, 응당 공포에 휩싸여 도망치려 하는 것이 맞다.
누가 보아도 인간의 힘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재앙이다.
그러나, 로르텔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을 유지하는 침착함의 소유자다.
식은땀을 한 방울 흘리고, 숨을 가다듬는 것으로 이런 정신나간 상황 속에서도 평정을 유지한다.
오히려 로르텔의 그런 냉정한 모습 덕에, 혼란 속으로 끌려들어갈 뻔한 직원들도 일단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른 보고 사항은요?”
상회 내에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것도 절반 이상이 베테랑 상인들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대형사고다. 벨브로크 같은 대재앙이 아니었다면, 당장 회주 대리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피해다.
그럼에도 로르텔은 당황하는 일 없이 우선 순위를 확실하게 정했다.
“현재 생활동 쪽은 섬에서 나가고자 하는 외부인들과 생활동 주민으로 인해 아비규환인 상태입니다. 특히 선착장 쪽은 몰려든 인파 때문에 도저히 통제가 안될 지경이라고 해요.”
“그건… 지금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 외 특기할만한 움직임은?”
“몇몇 세력들을 중심으로 혼란을 수습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어요. 황족 숙소 쪽에 클로엘 황제님이 계시니, 폐하를 중심으로 모여든 황실파 사람들은 나름 조직력 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요.”
황실 쪽 정보원이 달려와서 로르텔에게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교수동 쪽에서는 학생회장 타냐 로스테일러가 일단 혼란을 수습해서 사람들을 모으는 중이고, 그 외 셀라하 황녀님께서도 교수동 쪽에 따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교장 오벨과 교직원들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고요.”
“생활동 쪽은요?”
“학생 성당 쪽에서 기도회를 하고 있던 텔로스 교도들을 중심으로, 성녀 클라리스님이 혼란을 수습 중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 아켄섬에서 탈출할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근원적인 혼란은 사라지지 않겠지만요.”
다행스럽게도, 아켄섬 내부에는 혼란스러운 인파를 꽉 잡고 수습해줄 수 있는 영향력있는 인물들이 산재해있다.
트릭스관을 중심으로 교장 오벨 포시어스.
황족 숙소를 중심으로 클로엘 황제와 페니아 황녀.
학생 광장 쪽에서 학생회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 타냐 로스테일러.
그리고 교사동 쪽으로 이동 중이던 셀라하 황녀.
학생 성당을 중심으로 사람을 모으고 있는 클라리스 성녀.
오필리스관 직원들과 귀빈 학생들을 끌어모아 보호하고 있는 메이드 장 벨 마이아.
거기다가 생활동을 중심으로 세력을 꽉 잡고 있는 엘테 상회의 로르텔 케헬른까지.
아켄섬 내부의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주변에 있던 리더들을 중심으로 점조직화 되어 일단 질서를 형성하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대부분은 학사 소속의 원로 직원들이거나, 신분이 드높아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들의 주도였다.
그러나, 근본적인 혼란은 수습되지 않았고, 가장 큰 문제인 탈출로의 부재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당장 저 먼 하늘 위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벨브로크가 언제 봉인의 영향에서 나와 아켄섬을 박살낼지 알 수가 없다.
황실 쪽에서 거대한 범선을 끌고 오는 걸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미 벨브로크가 몸부림을 치며 간헐적으로 뿜어내는 비늘이나, 발버둥에 해안가 일부와 절벽지대는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각자의 지역에서 모여 방어 태세를 취하며 농성하는 것은 좋다. 허나 결국 저 벨브로크를 수습하거나, 아켄섬을 탈출하지 못하면 파국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육로를 이용하지 않고 자력으로 섬을 탈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몇이나 있죠?”
“일단 공간계 마법으로 섬을 탈출하는 건 마력 소모 때문에 말도 안되고, 거대 정령을 활용하거나, 비행 마법을 쓰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일부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가능하긴 한데… 그 수가 너무 적어서 이 막대한 인파를 다 내보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 합니다…!”
“황실에서 해안도시에 범선을 동원하라고 지시를 내리긴 했답니다. 하지만… 당연히, 제 시간에 맞출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해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특성상, 배를 이용해 나갈 수 있는 인파도 끽해봐야 한 번에 몇십명 선이다.
거기다 서로 나가려고 선착장에 인파들이 이렇게까지 모여든 상황이면, 사실상 해로 또한 마비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다.
외통수.
이 아켄섬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벨브로크의 강림을 기다리다… 때가되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자들의 공동묘지가 되어 있었다.
“일단 클로엘 황제님과 더불어서 몇몇 귀빈들을 따로 먼저 탈출시킬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황제의 안위다.
황족 숙소 쪽 사람들은 우선 두 황녀와 클로엘 황제부터 이 섬에서 빼내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러나, 로르텔 케헬른은 클로엘 황제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
“아마, 클로엘 황제님의 성격이라면… 당장 탈출하는 데 급급하기보단 이 혼란을 먼저 수습하려 할 거에요.”
성군 클로엘 황제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단점이다.
제 스스로의 몸을 잘 돌보지 않는다. 국익과 백성을 생각하느라, 스스로의 안위를 잘 챙기질 않는 것이다.
그것은 일견, 백성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성군답다고 할만할지도 모르겠으나…
황제라는 자가 얼마나 중한 위치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리 현명한 기질은 아니다.
누가 뭐라해도, 황제는 모두의 구심점이 되는 자다. 그런 자가 다치거나 죽게 되면, 혼란은 더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일단 스스로의 안위를 챙기는 것이 군중의 안위를 챙기는 데에 직결되는 것이다. 그 사실을 가벼이 여기면 안되는 것이지만, 성군으로서 살아온 클로엘 황제는 어떻게든 백성들의 혼란부터 수습하려 들 터.
로르텔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걸음걸이에 속도를 더 했다.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한다. 엘테 상회를 이끄는 자로서, 1분 1초의 판단이 사람 수십명의 목숨을 왔다갔다하게 만들 것이다.
“저희 쪽 배는… 사용할 수 있나요?”
“자그마한 상선 일곱 척이 있습니다만, 모두 점거당한 상태입니다… 선착장에서 배를 잡고 난리를 치는 인파들 때문에 출발시킬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
“그래요. 그럼… 차라리 우리도 생활동 쪽 사람을 모아서 황족 숙소 쪽에 합류를…”
– 쿠궁…! 쿵…!
– 카아아아아아아아!
로르텔이 얼른 상황을 정리해보려고 하던 그 때였다.
하늘에서 발버둥 치던 벨브로크가, 다시 한 번 포효를 내질렀다.
마력이 담긴 포효가 다시 한 번 밤의 창공을 가로지르고, 고막을 찢을 듯이 세계에 울려퍼진다.
몸을 칭칭감고 있는 거대한 쇠사슬을 하나씩 뜯어내려고 발버둥 치다가, 이윽고 그 거대한 발이 이번엔 생활동 쪽을 내려친다.
생활동 외곽, 서쪽 해안지대로 이어지는 부분에 벨브로크의 발이 찍히며, 세상이 뒤집히는듯한 충격이 밀려온다.
–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렇게, 서쪽 해안지대의 절반이 벨브로크의 발에 찍혀나가버린다.
그리고… 벨브로크의 입가에 마력이 모여든다. 수십, 수백개의 마법진이 그 입가에 형성되더니, 말도 안될 정도로 막대한 양의 마력이 그 중심으로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갔다.
‘용 숨결’
어지간한 최고위 마법에 버금가는 위력을 자랑하는 일격이지만, 성창룡 벨브로크의 입장에선 그저 마력을 담아 숨을 내지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결과는, 재앙이다.
인파가 모여있는 곳에 꽂힌다면, 그 시점에서 수백 수천 단위의 사상자가 나올 것이다.
로르텔은 그 광경을 보며 숨을 확 머금었다.
이 아켄섬은… 크레스톨 대축제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있는 상태다.
벨브로크의 일격 일격이 모두 대량학살이다. 사람이 마치 개미떼처럼 죽어나가는 재앙이, 지금부터 시작될 터다.
하늘에 모여든 마법진들을 보며 로르텔은 생각한다.
이건, 진짜로 위험하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창공을 향해 날아든 마법사가 있다. 트릭스관의 꼭대기에서 날아오른 한 소녀가, 마녀 모자를 꾹 눌러쓴 채 저 하늘 위 괴물을 향해 손을 펼친다.
인간이 이끌어낸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막대한 마나량이 실베니아의 하늘을 뒤덮는다.
아켄섬의 수많은 인파들은 목도한다.
실베니아 이래로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거라고 일컫어지는 인류사 희대의 천재.
루시 메이릴이… 창공에 서서 벨브로크를 올려다 본다.
평소처럼 멍한 눈은 간 데 없다. 오히려 꽤나 진지해 보이는 모습이다.
이윽고, 벨브로크의 용숨결이 실베니아 아카데미를 향해 날아든다.
숨을 휙 몰아쉰 루시는… 벨브로크의 용숨결을 이를 악문 채 튕겨내 버린다. 순간적으로 세상의 빛과 소리가 다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거대한 마력의 충돌이 아켄섬의 상공을 덮었다.
총 81겹의 고위 방어마법과 3겹의 최고위 방어마법을 한 번에 구현해낸, 그 어떤 마법사라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인간이 아니라, 거대한 마력덩어리다.
저 왜소한 몸집에서 흘러나온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루시 메이릴이라 할지라도, 제 아무리 상대인 벨브로크가 아직 봉인의 영향에서 완벽히 벗어나진 못해 불안정한 상태라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한계라는 것이 있다.
온 힘을 다해 벨브로크의 숨결을 막아낸 루시는… 그대로 창공에서 지상으로 내다 꽂혀버린다. 심지어 완벽히 막아내지도 못했다.
튕겨나간 몇몇 벨브로크의 마력은 아켄섬 여기저기에 추락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생활동의 몇몇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교수동 학생회관의 글록트관이 무너져내린다.
북쪽숲 구석에선 화재가 일어나고, 오른산 중턱은 일부가 무너진 충격에 산사태가 밀려내려왔다.
루시는 학생광장 한가운데에 그대로 쳐박혀서, 거대한 크레이터를 남겼다. 아직 대피하지 못한 몇몇 학생들이 그 광경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흙먼지에 범벅이 된 루시 메이릴은… 몸을 털고 일어선다. 어느샌가 옆에 나풀대며 떨어진 마녀모자를 주워 들어서 탁탁 털었다. 그리고 모자를 꾹 눌러 쓰며 하늘을 올려다 본다.
올려다 본 하늘엔, 재앙이 도래해 있었다.
*오벨 포시어스의 지시로 내려온 공문을 보고, 트릭스관의 교직원들은 보고 사항을 모아든 채 회의실로 뛰어들어왔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해야할 학사 최고 책임자 오벨 포시어스는 자리에 없었다.
대신, 부교장인 레이첼 테이슬린이 교장석에 앉아 있었다.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레이첼 교장은… 그 예리한 눈을 부릅 뜬 채로 모여든 교직원들을 바라보았다.
“현재, 교장 오벨 포시어스는 행방불명 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최종 책임자의 리더십이 필요한 비상 상황.
그러나 그곳엔 대리인만 있을 뿐, 최고 책임자인 오벨이 없다. 그럼 이 공문은 대체 누가 쓴 것이란 말인가.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제가 임시로 학사의 대처를 주도합니다.”
레이첼은 교장석에서 숨을 몰아쉬었다가, 다시 한차례 내쉬었다.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핑계를 댈 생각도, 그럴 시간도 없었다.
“보고 사항 다 가져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