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34)
벨브로크 토벌전 (2)
“폐하, 일단 대피하셔야합니다! 지금 보좌들이 섬 밖으로 나갈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학사 쪽에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학사 내부 인력들 중에서 몇 명 정도는 섬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줄 능력이 있을겁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보고를 올리고 있는 클레르의 목소리가 다급해보였다.
황실의 호위대 소속으로 있는 한,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것은 클로엘 황족들을 대피시키는 것이다. 당장 저 높은 하늘에 육중한 몸을 드러내고 있는 용이 다른 움직임을 취하기 전에.
– 카아아아아아악!
용의 포효는 잊을만 하면 아켄섬을 뒤덮는다.
-카앙! 카강!
가면갈수록 그 위력이 드세지는 포효의 여파는 황족 숙소의 창문 몇 개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복도 쪽의 약한 창문들 몇은 이미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져나가고 있었다. 근처를 지나가던 사용인들이 공포에 찬 비명을 억지로 눌러참았다.
조금씩 벨브로크의 포효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양이 많아지고 있다.
느리지만 천천히, 온 몸을 칭칭감고 있는 쇠사슬을 끊어내고 있는 것이다. 대체 누가 어떻게 저 강대한 벨브로크의 봉인을 억지로 유지시키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이 일대는 쑥대밭이 될 것이란 사실이다.
–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황족 숙소의 창밖으로 성창룡의 거대한 앞발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광풍을 남기며 스쳐지나간 그 발은, 오른산 중턱에 충돌해서 거대한 흙먼지와 산사태를 일으킨다.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왜소한 몸집의 마법사가 날아오른다.
성창룡 벨브로크의 거대한 머리를 앞에 두고, 밤하늘에 부유한 채로 스커트의 흙먼지를 몇 번 털었다.
마법부 수석, 루시 메이릴이다.
창밖으로 그 광경을 보던 클로엘 황제는 순간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일단,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 황족 숙소 내에서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무관들을 전부 소집시켜라.”
“폐하! 일단 섬 밖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시끄럽다. 일개 학생도 지금 이 재앙 앞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데, 황족의 이름을 달고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치라고?”
클로엘 황제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클레르를 바라보며 이야기 했다.
“그게 황제라는 자가 취할 행동이라 보느냐? 아마 학사 쪽은 더 큰 혼돈에 휩싸여 있겠지. 더 큰 혼란에 빠지기 전에 상황을 정리하려거든 정당성 있는 권위로 찍어 눌러야만 한다. 학사에서 못한다면, 황실 권력이라도 움직여서 정리해야지.”
“하지만, 빨리 나가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아바마마. 저는 괜찮으니, 일단 아바마마라도 섬 밖으로 나가주세요…! 방법은 강구하면 얼마든지 있을거에요! 현장 지휘는 섬 밖에서도 하실 수 있을거고요!”
“제일 높은 인간인 황제라는 자가 공포에 떨며 도망치면, 이 아켄섬에 남은 자들은 더 혼란에 빠질 뿐이겠지. 그게 수습이 될 것 같으냐?”
클로엘 황제는 창밖 광경을 등진 뒤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황제로서 군림한다는 건,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도망칠 수 없다는 뜻이란다. 페니아.”
페니아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클로엘 황제를 바라보았다.
적지 않은 숫자의 외부인 관람객, 생활동 상인들, 아카데미 학생들, 교직원들이 이 좁은 아켄섬에 꽉곽 차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고 드높은 자를 꼽아보라면 단연코 클로엘 황제다.
그런 클로엘 황제가 누구보다도 먼저 도망친다면, 그 다음부터는 신분 순서로 어떻게든 섬밖으로 도망치려는 자들만이 줄을 서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자기는 섬을 나가지 않는다.
그 중심에 굳건하게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는 한, 다른 어떤 고귀한 자들도 함부로 이기적인 움직임을 취할 순 없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인간이 어떻게 그들을 주무를 수 있겠느냐?”
클로엘 황제는 거기까지만 이야기하고, 클레르에게 다시 한 번 호통을 쳤다. 빨리 황족 숙소 내부에 남아 있는 인력을 전부 소집시키라는 이야기다.
어쨌든, 황명을 거부할 수는 없다. 클레르는 다시 고개를 숙여서 알겠다고 대답하며 복도 쪽으로 뛰쳐 나갔다.
한 시가 바쁜 상황이었다.
클로엘 황제는 창밖의 상황을 계속 주시했다.
벨브로크와 루시 메이릴이 계속해서 합을 주고 받고 있다. 과연, 그 규모가 어지간한 황실 마법사들도 혀를 내두를만한 수준이다.
아직 제대로 봉인을 깨지도 못한 상태로 루시 메이릴을 찍어 누르려 드는 벨브로크. 그 둘의 전투 여파 만으로도 섬 여기저기에 파괴의 흔적이 퍼져나간다.
루시가 튕겨낸 벨브로크의 마력포가 절벽지대에 한 번 더 꽂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파가…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중심에 우뚝 서있던 첨탑에 직격했다.
– 쿠우우우우우웅
황족 숙소에서는 멀찍이 보이는 광경이다.
그러나, 그 광경만으로도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중앙 첨탑이 무너져 내린다.
중앙광장에 우뚝 서서, 아켄섬 어디에서나 그 꼭대기만큼은 보였던 거대한 첨탑. 그 꼭대기 부분의 벽돌 외벽이 통째로 부서져, 파편이 광장 위로 쏟아졌다.
중앙 광장은 외부인 관람객이 많이 모여있던 곳이다.
최소 수백단위의 부상자, 수십 단위의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다. 그나마도 최소화 해서 생각했을 때다.
이런 혼란 속에서 제대로된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을 턱이 없으니, 대부분은 사망할 것이다.
클로엘 황제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부득 갈았다. 그러나 여기서 침착함을 잃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무관들 소집은 아직 멀었느냐!”
답답한 듯 신하들을 닦달할 수밖에 없다. 일단은 중앙광장이나 학생 광장 쪽에 가서 생존자 무리들을 최대한 통제해, 그나마 아켄섬 안에서도 안전한 구역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
거대한 방어 마법을 구현할 수 있을만한 곳, 아니면 지하 공간, 그것도 아니면….
– 쿠우우우웅.
“저… 저건…?”
그러나,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간다.
아켄섬의 상공을 또 다른 형태의 마법진들이 뒤덮는다. 루시 메이릴이 다루는 원소 마법이 아니다. 명백히 용의 마력을 형상화 한, 벨브로크의 마력진이다.
이윽고 검붉은 마력이 기분 나쁘게 상공을 뒤덮더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 카아아아아아악
–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건, 지옥의 도래라고 봐도 무방했다.
기본적으로 용들은 수많은 마물족을 추종자로 끌고 다닌다.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선례가 많은 일이다.
그러나, 긴 시간 잠들어 있던 성창룡 벨브로크가 마물족을 지배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이제 막 부활하려하는 벨브로크에게 마물족을 지배할 시간이 어디에 있었겠나.
그러나, 아켄섬의 상공에 펼쳐진 검은 안개에서, 수많은 마물족이 쏟아져 내려왔다.
사실 결론은 간단했다.
성위 마법의 힘으로 시간선의 사이에 봉인되어 버린 벨브로크다.
그가 부리던 마물족도, 함께 성위 마법의 영향을 받아 봉인되었을 뿐이다.
그 시간 감옥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던 수많은 마물족들이, 수백년 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아켄섬으로 뛰쳐내려온다.
그 목적은 뻔하다.
벨브로크의 부활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일단 벨브로크가 부활하기만 하면, 마물족의 가담 따위 필요 없이 이 섬은 일격에 날아가버릴 것이다.
지금은 불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에, 제 추종자들로 하여금 혼란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날개 달린 마물족들은, 공중을 부유 한다.
그러나, 날개 없는 마물족들이라고 해서… 추락사 하는 것은 아니다.
마력을 다를 줄 아는 마물족들은 마법으로 착지의 충격을 최소화 하고, 그냥 말도 안되게 몸이 튼튼해서 이를 악물고 지상에 착지해버리는 마물족도 있다. 아예 죽음이란 개념이 없는 마물족들은 바닥에 착지해서 한 번 사망한 후 다시 몸을 일으킨다.
거대박쥐, 외눈거인, 그렘린, 시체늑대, 괴조수….
무리를 지어 인간을 사냥하는 마물족부터 단 한 놈을 잡기 위해 수십 명의 기사가 필요한 거인들까지…
“이런… 말도… 안되는…!”
– 꺄아아아아악!
– 콰아앙!
– 크아아악! 팔이! 팔이!
황족 숙소 내부에서도 비명소리가 가득 밀려올라왔다. 한 번씩 들려오는… 마물족이 황족 숙소 내부에 착지하는 소름돋는 소리가 클로엘 황제의 귓가에도 도달했다.
“…이런… 무슨… 비켜보거라…!”
클로엘 황제가 페니아 황제를 조심스럽게 옆으로 민 채, 복도 문을 직접 열고 뛰쳐나갔다.
금이 간 복도 창문을 열자, 황족 숙소 내부의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눈을 마주친다.
눈높이가 딱 맞는다. 분명 이곳은 황족 숙소의 3층이건만.
상대의 눈은, 하나 뿐이다.
거대한 크기의 외눈 거인이, 황제의 모습을 보고서는 기분 나쁘게 입꼬리를 비죽 올려보였다.
클로엘 황제는 온 몸의 소름이 확 밀려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황실 기사 하나가 창문을 열고 뛰쳐 나가서 거인의 눈을 찔렀다.
– 푸욱!
–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엑!
기분 나쁘고 기괴한 거인의 비명이 한 차례 황족 숙소 전체에 퍼져 나가더니, 이윽고 거인이 뒤로 넘어졌다.
사용인들이 사용하는 황족 숙소 별관으로 거인이 넘어진다. 거대한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건물이 반파되었따.
아마도 거인의 눈을 찌른 기사는 그 추락의 충격으로 몸이 온전치는 못할 것이다. 오로지 황제를 위한 충심만으로 반사적으로 행동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위기가 끝나진 않는다. 황족 숙소의 창문을 부수고 그렘린 네 마리가 날아들었다.
– 쨍그랑!
– 카가가각!
유리조각 위에 철퍼덕 소리와 함께 착지한 그렘린 넷, 그리고 거대박쥐 둘이 기분 나쁘게 취지직 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 화아아아악!
그러나,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먼저 페니아 황녀의 원소 마법이 날아들었다.
‘수구’, 그리고 ‘물 감옥’.
쏟아져 흘러나온 물이 그들을 원형으로 둘러서 익사시키려 들었다. 그러나, 페니아 황녀의 마력으로는 그 많은 수의 마물족을 한 번에 제압할 순 없었다.
페니아는 식은 땀을 흘리며 외쳤다.
“아바마마! 오래 버티진 못해요!”
“폐하! 다시 방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무관들에게 소집 명령을 전달하고 다시 올라온 클레르가, 호위 병사와 함께 그렘린 하나를 베어넘겼다. 그렘린의 어깻죽지가 갈라지며 핏물이 튀었다.
피를 뒤집어쓴 클레르는 나머지 호위병에게 저들을 제압하라고 명한 뒤, 황제와 황녀를 접견실로 다시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클레르는 문을 잠그고, 옷장을 밀어서 문 앞을 아예 막아버렸다.
“주변이 마물족으로 가득 찼습니다! 주둔군이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숙소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아켄섬 외곽에 있는 황족 숙소가 이 정도라면, 학사 중심부는… 학살의 현장이라는 것 아닌가!”
“일단 학생들 사이에도 전투 능력이 출중한 사람도 많고, 학사진들과 교수진들도 가만히 있진 않겠지요. 상회 쪽 용병대나 교단 쪽 수호대도 믿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저희는 숙소에서 농성을 해야하는 입장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 피해가…”
클레르는 접견실 창문 쪽을 가리켰다.
이미 황족숙소 근처는 수많은 마물족들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인간의 살점을 뜯기 위한 마물족들의 행렬은, 가히 보고만 있어도 지옥도 그 자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어쨌든 저희 황실 호위대의 최우선 목표는 폐하와 황녀님의 안전이옵니다. 부디… 일단은 옥체의 보전을 최우선 사항으로 생각해주시옵소서.”
그렇게 말하며, 클레르는 방 안의 불을 전부 꺼버리며 광원을 없앴다.
사람이 있는 티가 나면 비행 능력이 있는 마물족이 습격을 해올 것이 뻔했다. 커튼을 칠 수 있는 곳은 전부 치고, 가릴 수 없는 부분은 대충 식탁보를 챙겨와서 가렸다.
클로엘 황제는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고, 페니아 황녀는 손 끝을 벌벌 떨고 있었다.
아무리 황족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황에서 공포감을 느끼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이윽고 머리가 차갑게 식고 나면 떠오르는 사실이 있다.
“셀라하…!”
이 아켄섬에 있는 황족은, 이 둘이 다가 아니다.
마침 학생 광장에 폐막 공연을 보러 향하던… 셀라하 황녀가 황족 숙소 외부에 있다.
숙소 내부는 호위 병력들이 이미 중요 출입구를 막고 농성 태세에 들어갔다.
하지만, 교수동 쪽에 있는 셀라하 황녀는… 그 보호를 받지 못한다.
“내 딸 셀라하가… 교수동으로 향했지 않았느냐…!”
“…”
“셀라하를… 셀라하를 찾아내서 지켜야만 한다! 내 딸, 내 소중한 딸 셀라하…!”
클로엘 황제에게 세 황녀는 모두 공평하게 소중한 제 새끼다.
클로엘 황제가 절박한 표정으로 그리 이야기 하자, 클레르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별동대를 꾸려서 셀라하 황녀님을 황족 숙소로 데려오겠습니다.”
봉쇄해둔 입구 쪽의 책장을 슬쩍 밀어내며, 클레르가 이야기 했다. 황실 호위대의 임무는 황족을 지키는 것이다. 셀라하 또한 황족의 피를 타고난 사람인 이상, 클레르가 지켜야만 할 자였다.
“이 건물은 호위대가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몇 분 안에 추가 호위 병력이 도착할테니, 병력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옥체를 보전하고 계십시오. 그 동안 제가 기사 다섯 정도만 끌고 학사 쪽으로 가서…”
– 푸욱!
그러나, 클레르는 자기 말을 끝내지 못했다.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창문이 깨진 것을 제하면 큰 흐트러짐은 없는 복도였다.
그러나, 그 잠깐 사이에 복도 쪽 벽은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을 슬쩍 열고 나온 클레르의 가슴을 뾰족한 촉수 하나가 관통하고 있었다. 클레르가 피를 한모금 토해내었다.
“커, 헉…”
마물족은 겉모습 만으로는 그 강함을 판단하기 힘들다.
똑같이 생긴 그렘린과 거대박쥐라 할지라도, 그 강함이 개체마다 편차가 크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마물족은 정리됐지만, 방금 보았던 거대 박쥐 한 마리가 홀로 병사 일곱을 모두 제압해버린 것이다. 아직 추가 호위 병력이 도착하지 못한 상태에선 치명적인 위기 상황이었다.
“도, 망…”
클레르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대로 추욱 늘어진 클레르의 몸이 무너져 내리고, 문틈으로 세로로 찢어진 박쥐의 눈이 보인다.
페니아 황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것으로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참았다.
클레르가 굳이 문을 열지 않았어도, 이 방문을 부수고 들어오기 일보 직전이었던 듯 하다. 페니아 황녀는 덜덜 떨리는 몸을 일으켜서, 마력을 모은 채로 클로엘 황제 앞을 가로막고 섰다.
미숙한 마법일지언정, 지금 당장은 전투 가능한 자가 자기밖에 없다.
– 쾅!!
그렇게 이를 악무는 그 순간, 접견실의 문이 부서지면서 거대박쥐의 흉측한 몸이 들이닥쳤다.
*마력이 담긴 화살 두 발이 시체 늑대의 가슴을 관통했다.
-키케에엥! 깨갱!
비참한 소리를 내며 나가떨어진 시체늑대는 대리석 바닥에 검붉은 피를 흩뿌리며 굴렀다.
-아우우!
메릴다의 울음 소리가 아켄섬의 밤 하늘을 한 차례 갈랐다. 고위 바람 마법 ‘칼날 폭풍’이 일대를 뒤덮는다.
기초 원소 마법 바람 칼날의 발전형인 칼날 폭풍은, 일대를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범위 마법이다.
기초 마법과는 커버하는 범위 자체가 다르다. 교수동 외곽으로 빠지는 길을 점거하고 있는 시체 늑대들은 거의 살점 단위로 갈기갈기 찢어져서 나가 떨어졌다.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외곽 대로의 모습은 끔찍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진짜 더럽게 많네! 이래 가지고 트릭스관에 언제 도착할 수 있겠어! ]나는 메릴다의 옆에서 마력을 체크해 보았다. 역시 메릴다는 강하지만, 마력 소모 효율이 심각할정도로 별로다.
이대로 외곽 도로를 따라, 전투부 건물들을 가로질러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을 타고 올라가면 트릭스관이다.
교수동 풍경이 한 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그 대리석 건물은, 사실상 이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운영을 전담하고 있는 최고 행정 기관이다.
교장실도, 부교장실도, 중요 학사 기관실도 전부 트릭스관에 있으며, 대부분의 학사 회의도 트릭스관에 이루어지고, 이름난 교수들의 연구실도 동선 효율을 위해 모두 그 건물에 있다.
[ 뚫고 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되지만, 트릭스관에 도착할 때 쯤 되면 너 기진맥진해 있는 거 아니야? 정말 이렇게 내가 날뛰어도 돼? ]“지금 당장은 최대한 빠르게 트릭스관에 도달하는 게 중요하니까. 일단 길부터 빨리 뚫어야 해!”
[ 알았어! 더 온다! ]날카로운 날붙이를 들고 덤벼드는 그렘린 무리와, 다시 몸을 일으킨 시체늑대 무리가 다시금 나를 덮쳐왔다.
아무리 개체 하나 하나가 상대할만 하다 할지라도, 이만큼 양으로 밀어붙이면 역시 버겁다.
벨브로크가 마물족을 소환하는 패턴은… 최종보스전인 벨브로크 토벌전에서도 마지막에나 등장하는 최후 발악 패턴 중 하나다.
이걸 시작하자마자 보게 될 거라곤 생각 못했다. 사실상 벨브로크 토벌전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던 패턴 아니던가.
지금까지 사냥해왔던 온갖 마물족을 한 자리에 모두 등장시키면서, 그간의 플레이어가 이 괴물들을 상대해오며 겪어왔던 시련들을 다시금 겪게 된다.
착실히 성장해왔다면 어렵지 않게 모두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양은 너무한 수준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일단 가장 빠른 그렘린 무리부터 제압하려는 순간이었다.
– 쾅!
내가 뒤를 돌기도 전에, 거대한 굉음과 함께 그렘린 무리가 날아갔다.
그것은, 단 한 번 내지른 주먹의 여파였다. 그 주먹에 서린 마력과 충격량만으로 근처의 그렘린들이 모두 나가 떨어져버렸다. 광풍과도 같은 마력의 여파가 일대에 몰아치더니, 옷깃이 퍼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곳에 서있는 것은, 4학년 전투부 수석인 다이크 엘펠란이었다.
몸 여기저기에 칭칭 감고 있는 붕대는 역시 나와 결투를 치른 흔적이다. 그 때부터 벌써 며칠이나 지났긴 했지만, 벌써 저만큼이나 회복했다니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전투부 건물 쪽에는 어쩐 일이지, 에드 로스테일러?”
몸을 일으키려는 시체 늑대 하나의 목을 너클로 짓눌러 터뜨리면서, 피를 털어낸 다이크가 이야기했다.
“다이크 선배님. 일어나셨었습니까?”
“그래. 가주님한테 한 소리 듣느라 정신이 없었지. 너한테 시원하게 깨졌으니까.”
“그건…”
“쓸 데 없이 감정적인 이야기는 주고 받지 말도록 하자. 정정당당한 결투였고, 난 정정당당하게 두들겨 맞았으니까. 오히려 속이 시원할 지경이지. 일단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지 않나?”
전투부 소속 학생들이 일제히 함성을 외치며 튀어나와 마물족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전투부 내에서도 꽤 좋은 성적을 내고 있던 자들이다. 다이크를 따르는 학생들의 무리인 것이다.
“일단 전투부 건물 쪽에서는 중앙 훈련장에서 전투부 학생들끼리 모여서 농성을 치르고 있다. 너도 이 쪽으로 합류할테냐?”
“아니요. 저는 트릭스관으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트릭스관? 지금은 일단 안전한 곳을 찾아 가는게 나을텐데? 섬을 나갈 방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조건 안전한 곳에서 농성을 하는 게 현명하다.”
– 카앙! 카앙! 채앵!
마물족들과 전투부 학생들의 전투음이 가득한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빠르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서로 간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트릭스관 쪽에서 해결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을 수습하려면요.”
“수습! 수습이라고? 하.. 하하!”
다이크는 잠시간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보았다.
칭칭 감긴 쇠사슬과, 희대의 천재 마법사 사이에서 고군분투 중인 벨브로크가 재앙처럼 군림해있다.
“저걸, 수습하겠다고?”
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반박조차 안나오는지 다이크는 반대로 진지한 얼굴을 했다.
“너는 예측이라는 게 안되는 인간이로구나, 에드 로스테일러.”
“다이크 선배님은 계속 전투부 건물에 계셨습니까?”
“그래. 전투부 훈련장에 있었는데 이 사단이 나서, 주변 학생들을 규합해서 일단 움직였다. 그리고… 트릭스관을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는 나도 동감한다.”
다이크와 내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대화의 템포는 평소보다 한 층 더 빨라져 있었다.
재빨리 대화의 결론을 내고, 당장 전투에 합류해야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투부 학생들을 모아서 훈련장에 임시 안전지대를 만들고, 전투부 건물 주변의 일반인들과 학생들을 모아서 보호하고 있지만… 교직원들이 수상할 정도로 움직임이 적어.”
“교직원들 말입니까?”
“그래. 대부분 교수직이나 학사 직원들은 별도로 움직이며 각자의 위치에서 위기에 대처하고 있어. 근데 정작 수뇌부인 트릭스관 쪽 고위 임원직들한테서 아무런 지시가 내려오질 않는 모양이야. 그래서 말단 직원들은 더 혼란에 빠진 모양이고.”
분단위로 사람 수십명이 죽어나가는, 아카데미 역사상 다시 없을 희대의 위기 상황이다.
누구보다 바삐 움직여야할 트릭스관의 고위 임원직들이, 아무도 움직이질 않고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무래도 트릭스관에 무슨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지만, 보다시피 지금 상황이 이 모양이라 확인하러 갈 여유가 없다. 당장 전투부 건물 여기저기에 갇힌 학생들을 구출하러 다니는 중이거든.”
고개를 들어보면 저 멀리 언덕 꼭대기에 어렴풋이 보이는 트릭스관 건물.
멀리서 보기엔,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인가.
– 쾅!
다이크는 자기를 향해 달려드는 시체 늑대 하나의 목 언저리를 움켜쥐어서, 그대로 바닥에 내려 찍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주먹을 내려쳐 그 숨통을 다시 끊어놓는다.
“후우… 에드 로스테일러, 너라면 어중이떠중이들이랑 다르니까 걱정할 필요 없겠지. 트릭스관에 가서 대체 왜 재깍재깍 움직이질 않는지 원인을 파악 좀 해봐. 학생들 주도로 움직이면서 상황에 대처하는 건 한계가 있다.”
지금 마물족과 싸우고 있는 전투부 학생들의 눈에도 공포가 가득하다.
다이크가 중심을 딱 잡아서 주도적으로 전투부 학생들을 이끌고 있지 않았다면, 이들도 공포에 못이겨 모두 도망쳤을 것이 눈에 선했다.
구심점의 존재란 이토록 중요하다.
“지금 상황에서 전투 가능한 인력은 너무 귀해. 이왕이면 합류해줬으면 좋겠지만, 네 의견이 그렇다면 존중하마 에드 로스테일러.”
다이크는 피식 웃고 다시금 하늘을 본다.
“저걸… 수습하겠단 말이지…”
그리고 눈을 한 번 지그시 감았다 뜨고 얼른 침착함을 되찾는다. 안그래도 위태위태한 전투 상황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어쨌든, 지금 학사는 전투 가능한 인력들을 중심으로 여러 주둔지에서 각자 농성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트릭스관 상황 확인했으면, 굳이 내 쪽이 아니라 어디든지 가서 상황을 공유해 줘. 알겠나?”
“주둔지 말입니까?”
“그래.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보니 나도 들려오는 소식만 취합했을 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알려주자면, 학사 내부 여기 저기의 중요 인물들 중 아무나 찾아가면 된다.”
다이크는 전투부 학생 하나를 향해 달려드는 그렘린의 멱살을 움켜쥐고, 그대로 비틀어 꺾어버렸다.
그 광경을 코앞에서 보던 전투부 학생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다리를 떨었으나…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서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 또한 덩달아서 눈에 보이는 그렘린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클로엘 폐하가 계시는 황족 숙소, 회주 대리 로르텔이 주도해서 관리하고 있는 생활동 엘테 상회 쪽, 그리고 내가 전투부 학생들을 모아서 보호중인 전투부 훈련장, 클라리스 성녀님을 중심으로 텔로스 호위대가 지키고 있는 학사 성당, 학생회 소속 학생들끼리 모여서 농성하고 있는 학생광장 옆 오벨관… 그 외에도 잡다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전부 파악해내진 못했다.”
“…”
“아무곳이나 가서, 지금 상황을 공유하고… 피해를 최소화 할 방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건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클레비어스는 지금 전투부 훈련장에 합류해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다이크는 주먹을 휘두르다 말고 어리둥절해 했다.
“아, 그 녀석 말인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는 구석에 처박혀서 떨고 있길래 일단은 놔두고 나왔지. 용기를 복돋고 설득할 시간적 여유 따위는 없었거든.”
“알겠습니다. 어차피 당장 전투에 도움은 안되는 듯 하니, 나중에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벨브로크 토벌대.
최종장에서 테일리를 중심으로 소집되었던 그 벨브로크 토벌대는 주인공 세대로 이루어진, 사실상 마지막 무대의 주인공들이다.
혼란에 빠진 학사를 수습하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벨브로크의 심장을 베기 위해 스스로 그 품속에 뛰어든 자들이다.
테일리 맥로어
아일라 트리스
페니아 엘리어스 클로엘
로르텔 케헬른
직스 에펠슈타인
클레비어스 노튼데일
엘비라 에니스턴
최종장 최종파트.
최종무곡(最終舞曲).
그곳의 마지막 무대에까지 서있게 되는 일곱명의 토벌대를 모두 소집할 수 있으면… 어느 정도는 환경이 갖춰지는 셈이다.
어차피 어딜 가든 전투 요원은 귀한 상황이다. 벨브로크를 잡으러 사람을 우루루 끌고 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내가 가담시킬 수 있는 인원들만큼은 최대한 끌고 간다.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부활한 벨브로크기에, 정사와는 많은 부분이 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사보다 훨씬 나은 부분도… 많았으니까.
예니카 페일로버는 자기가 저지른 과오에 잡아먹혀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지 않았다.
로르텔 케헬른과 페니아 엘리어스 클로엘은 필요 이상으로 반목하지 않았다.
클라리스는 배신과 실망의 끝에 불신의 성녀로 화하지 않았다.
루시 메이릴은 잃은 것에 더 이상 집착하지도, 힘을 다 써가면서 발버둥치며 결백을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당장 벨브로크가 부활한 상황에서도 학사에 피해가 더 오지 않게 루시 메이릴이 벨브로크를 막아설 수 있다.
아무도 섬에서 탈출 할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예니카 페일로버가 조금씩이라도 탈출로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클라리스를 중심으로 생활동의 텔로스 교단 세력이 안전구역을 넓혀가고 있다.
로르텔과 페니아의 세력도 온전히 보전되어, 벨브로크를 상대하기 위한 힘을 충분히 비축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찌보면, 내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를 악물고 살아가다보면, 어떻게든 살아있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온다고 했나.
이것을 위해 살아왔다고 한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지도 모르겠으나….
살아남아온 것에 의미는 있었다.
적어도 그리 이야기 할 수는, 있는 것 아닌가.
“에드 로스테일러.”
트릭스관으로 달려가려는 내 뒷모습을 보고, 다이크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죽지 마라.”
“당연합니다.”
나는 웃음기조차 없는 얼굴로, 그리 받아쳐주고 메릴다의 위에 올라탔다.
펼쳐진 길이 쭉쭉 뻗어 있었다.